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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Gettysburg National Military Park)에서 남북전쟁의 격전지를 차로 돌아보기

반응형 미국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420여곳의 장소들 중에서 '국립군사공원' 분류에 해당하는 25곳은 독립전쟁, 남북전쟁 등에서 중요한 전투가 실제로 일어났던 장소를 기념하는 것으로 National Military Park 9개, National Battlefield Park 4개, National Battlefield 11개, 그리고 National Battlefield Site 1개로 구성되는데, 이들이 군사공원으로 따로 분류되는 이유는 대부분이 1930년대 이전에 지정되어서 전쟁부에서 관리를 하다가 내무부 국립공원청으로 이관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전체 NPS Official Units 정리를 하면서 이 군사공원들이 미서부에는 하나도 없다고 투덜댄 적이 있었는데, 작년에 이사를 온 여기 미동부 버지니아 부근에는 오히려 집중적으로 모여있어서 참으로 격세지감이 든다. 그 중에서 처음으로 가장 유명하다 할 수 있는 펜실베니아 주의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Gettysburg National Military Park)을 방문한 두번째 이야기로, 이제 차를 몰고 남북전쟁의 사망자들이 묻힌 묘지와 실제 전투가 일어났던 격전지들을 돌아보려고 한다. (사진의 박물관과 비지터센터를 둘러본 첫번째 여행기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비지터센터 바로 북쪽에 있는 게티스버그 국립묘지(Gettysburg National Cemetery)는 전투가 끝나고 4개월여 후에, 전사한 연방군의 병사 3,512명의 유해를 안치했는데, 그 후에 세계대전 등의 다른 전사자들의 묘역도 추가되어서 미국의 공식적인 국립묘지들 중의 한 곳이다. 입구로 들어가면 바로 오른편에, 앞서 전편에서 자세히 소개했던 링컨 대통령이 이 곳에서 1863년에 한 연설을 기념해서 1912년에 만들었다는 Lincoln Address Memorial이 그의 흉상과 함께 만들어져 있다. 철책 너머로 많은 비석들이 세워진 곳은 게티스버그 전투 전부터 있던 일반묘지인 Evergreen Cemetery라서 이 언덕이 세메터리힐(Cemetery Hill)로 불렸다. 이 언덕에서도 전투가 있었기 때문에 좌우의 대포와 함께 여기서 싸웠던 웨스트버지니아 출신의 북군들에게 헌정된 기념물이 앞쪽에 보인다. 높이 18 m의 Soldiers' National Monument가 국립묘지 중앙에 세워져 있고, 그 너머에 반원형으로 남북전쟁 북군의 묘역이 배치되어 있다. 그 앞에서 지혜가 지금 읽고 있는 것은 링컨이 출생한 켄터키 주에서 게티스버그 연설을 기념해서 1975년에 만든 기념물이다. 반원형의 묘역은 높은 비석도 없이 바닥에 이렇게 표석으로만 이름을 새겨 놓았는데, 아마도 그 후손 중의 한 명이 최근에 다녀간 모양이다. 미국이 분단될 뻔한 남북전쟁의 묘역에 50개의 별이 박힌 지금의 성조기가 꽂혀있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입구에서 만났던 자원봉사자가 실제로 링컨이 연설을 했던 위치는, 저 멀리 나무 뒤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New York State Monument와 여기의 중간쯤이었다고 설명을 해주셨다. 하지만 이 묘지 말고도 둘러볼 곳이 많았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구경을 하고는 차로 돌아갔다.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의 지도로 비지터센터와 국립묘지가 중앙 오른편에 표시되어 있다. 게티스버그 마을 북쪽은 3일간의 전투 중에서 첫날이라서 그냥 생략하고, 남쪽 왼편으로 만들어진 자동차 투어코스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보았다. 그리고 지도의 제일 왼쪽 아래에 보면 별도의 국립공원인 아이젠하워 국가유적지(Eisenhower National Historic Site)가 있는데, 미국의 34대 대통령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의 농장이 있던 곳이란다. 하지만 5월부터 10월까지만 게티스버그 비지터센터에서 셔틀을 타고 가서 무료투어를 할 수 있고, 당시에는 직접 차로 가서 건물 외관만 볼 수 있다고 해서 이 때는 들리지 않았다. 격전지 자동차 셀프투어에서 제일 먼저 정차한 곳은 지도에 4번으로 표시된 노스캐롤라이나 기념비(North Carolina Memorial)이다. 게티스버그 전투 2일째와 3일째는 서쪽 평지의 남군이 동쪽 언덕의 북군을 공격했는데, 남북전쟁이 내전(civil war)이다 보니까 북군이 묻힌 국립묘지와 함께 이렇게 남군쪽에서 만든 추모비들도 함께 볼 수 있는게 처음에는 신기했다. 올바른 비유인지는 좀 의문이지만... 만약에 한국도 6·25전쟁에서 북진통일을 했다고 가정하면, 인천상륙작전 기념지에 그 곳에서 전사한 북쪽출신 병사들의 위령비가 따로 만들어져 있는 셈이라고나 할까? (노스캐롤라이나는 이름에 'North'가 들어있다고 북군이 아니고, 버지니아 남쪽에 있는 주로 남부동맹에 가담했음) 결과적으로 남군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간 전투라서 그런지, 노스캐롤라이나 기념비로 만들어진 병사들의 동상도 왠지 좀 안타깝고 짠한 느낌이 들었다~ 남군의 주둔지들을 연결하는 이 남쪽으로 일방통행 도로의 이름도 West Confederate Ave인데, 그 옆으로는 이렇게 대포들이 수 없이 줄지어 놓여져 있었다. 동쪽 언덕에 있는 북군에게 대포를 발사하려고 하는 아내인데... "큰 나무가 앞에 있어서 쏠 수가 없습니다!" 다음은 남부의 주력군인 버지니아 군대가 주둔했던 장소에 만들어진 Virginia Memorial로 말을 타고있는 동상은 멀리서 봐도 남군 총사령관인 Robert Lee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비록 반란군의 수장으로 군생활을 마감했지만, 남북전쟁 발발 당시에 미국 최고의 군인이었다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는 게티스버그 전투의 마지막 3일째에 George Pickett 소장에게 12,000명을 이끌고 정동쪽으로 약 1 km 떨어진 언덕에 주둔한 북군을 정면돌파할 것을 명령하는데 (지도의 15번 High Water Mark), 이것은 그가 지휘관으로 내린 가장 큰 실수였다. 전편에 소개했던 사이클로라마 그림으로도 그려진 이 무모한 '피켓의 돌격(Pickett's Charge)'으로 남군 5,000명이 1시간만에 전사하며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다음날 빗속에서 버지니아로 퇴각하게 된다. 다른 곳들은 건너뛰고 자동차 투어에서 가장 중요한 곳인 8번 리틀라운드탑(Little Round Top) 언덕에 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이 곳은 전투 2일째에 남군의 2인자였던 롱스트리트(James Longstreet)가 점령을 시도했으나 북군이 필사적으로 방어에 성공한 곳이다. 가운데 보이는 기념비는 이 곳에서 싸웠던 펜실베니아 부대를 추모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있는 언덕 끝 쪽으로 걸어가면... 군복(?)을 입으신 분이 저 멀리 바위 위에 세워진 동상의 사진을 찍고있는 것이 보인다. 북군의 공병대 장교였던 워렌(Gouverneur K. Warren)은 방비가 허술했던 이 언덕이 요충지임을 파악하고, 남군의 공격에 대비해서 미리 병력을 보충하도록 해서 "Hero of Little Round Top"이라고 불린단다. 그래도 남군의 반복되는 돌격에 북군도 병력이 부족해졌고, 탄약까지 모두 떨어지자 메인 주에서 온 체임벌린(Joshua Chamberlain)이 이끄는 연대는 '착검 돌격'으로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남군을 육탄전으로 물리치며 이 고지(高地, high ground)를 사수했다고 한다. 역시 전투에서는 높은 위치에 자리를 잡는 것이 중요한데, 일찌기 오비완 케노비가 아나킨 스카이워커와 용암이 흐르는 무스타파 행성에서 맞짱을 뜰 때 마지막에 한 말이 있다... "I Have the High Ground!" 마침 5월 4일 스타워즈데이(Star Wars Day)도 다가오고 해서, 해당 영화장면과 대사를 이용해서 정말 잘 만든 뮤직비디오가 있어서 소개해드린다. 참 대단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 듯...^^ 자신의 뉴욕 주 부대를 이끌고 이 고지를 방어하다가 26살로 숨진 Patrick O'Rork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의 뒤로 1889년에 뉴욕 주에서 만든 추모탑이 작은 성처럼 우뚝 서있다. 모녀가 어느새 성의 위에 올라가서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찍어주고 뒤따라 올라갔더니 벌써 내려오더라는... 미국 남북전쟁 최대의 전투가 벌어졌던 게티스버그 들판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2022년 봄방학 여행의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언덕을 내려가서도 자동차 투어코스가 더 남아있기는 했지만, 표지판을 놓치면서 다음 번호를 찾아가는 것을 관두고 그냥 약 1시간반 거리의 집으로 향했다.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Gettysburg National Military Park)은 이런 경치를 보기 위해서 일부러 다시 찾아갈 것 같지는 않지만, 펜실베니아의 주도인 해리스버그(Harrisburg)에 여행을 간다거나 또는 그 위쪽으로 지나가는 길이라면 잠시 들러서, 이번에 다 보지 못한 다른 격전지와 기념물들도 둘러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링컨 대통령의 명연설로 유명한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Gettysburg National Military Park)의 박물관

반응형 위기주부처럼 중고등학교 때 영어공부를 정말로 싫어했던 사람이라도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라고 보통 번역하는 "...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라는 말은 모두 들어보셨을 거다. 영어 전치사 용법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이 구절은 미국 링컨 대통령의 유명한 연설문의 마지막 문장에서 가져온 것인데, 위기주부는 뒤늦게 성문종합영어를 공부하면서 장문독해에 소개된 그 연설문의 첫 문장에 나오는 영어단어 "score"의 뜻이 '점수'가 아니라 '20'이라는 수를 의미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의 자괴감도 새록새록하다. 링컨 대통령이 1863년 11월 19일에 추모사로 그 연설을 했던 곳은 미국 펜실베니아 주의 게티스버그(Gettysburg)로 남북전쟁 최대의 전투가 그해 7월 1일부터 3일간 벌어졌던 곳이다. 봄방학 2박3일 여행의 마지막 방문지로 그 곳에 만들어진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Gettysburg National Military Park)을 찾았는데, 오른편 멀리 거대한 실내체육관처럼 보이는 건물이 비지터센터 겸 박물관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건물 입구의 벤치에 앉아있는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왠지 자신의 이름과 비슷하게 "아브라카다브라!"라고 외치면서 오른손에 쥐고 있는 모자를 들어올리면, 안에서 하얀 토끼가 나올 것 같았다~ 여기도 역사공원인 셈이니 안내영화를 꼭 봐야하는데, 이 곳은 영화는 물론 박물관을 구경하는 것도 모두 유료이고 국립공원 연간회원권 소유자에 대한 할인도 전혀 없다. 멀리 직원이 앉아있는 좌우로 두 개의 문이 보이는데, 커다란 극장도 양쪽으로 두 개나 만들어져 있음에도 말이다. 극장 입장을 기다리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한 쪽 벽에 남북전쟁 당시에 사용된 총기류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오전에 들렀던 독립전쟁 유적지에는 칼과 창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지만, 백 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후에는 거의 총기로 승부를 본 모양이었다. 약 20분 정도 길이의 영화 을 보기 위해 극장에 앉았다. 앞쪽 대부분은 단체로 견학을 온 고등학생들이었는데, 친구들과 좋다고 장난치고 떠드는 것은 미국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영화에 유명한 연기자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나래이션의 목소리는 대배우 모건 프리먼(Morgan Freeman)이었다. 영화가 끝나면 관객석 제일 위쪽의 뒷문으로 나가라고 하는데, 그러면 사진의 두 에스컬레이터가 모두 위쪽으로 올라가고 있다. 뒤돌아 보고 찍은 사진에서 오른편은 남군의 총사령관 로버트 리(Robert Lee)이고, 왼편은 북군의 지휘관 조지 미드(George Meade)의 모습이다. 비지터센터 건물이 원형의 실내체육관같이 컸던 이유는 꼭대기에 이렇게 동서남북 방위가 표시된 넓은 원형의 공간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인데, 그 원형 실내의 벽면을 따라서 푸르스름한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은... 3일간의 전투 마지막 날인 1863년 7월 3일의 게티스버그 모습을 360도로 그린 "Battle of Gettysburg" 사이클로라마(Cyclorama) 그림으로, 높이 13 m의 패널을 이어붙여서 원형으로 만들어진 전체 둘레의 길이는 무려 115 m나 되는데, 프랑스의 사이클로라마 전문 화가였던 Paul Philippoteaux를 초빙해서 1884년에 완성했던 초대형 유화이다. 극장의 관객들이 다 올라오고 나면 조명과 효과음을 이용해서 전투상황에 대한 설명을 5분 정도 진행했는데, 비록 그림이 움직이지는 않지만 마치 그 전투의 한 가운데에 서있는 듯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림의 앞쪽에 있는 부서진 대포의 바퀴와 풀들은 그림이 아니고 실물로, 이렇게 대형의 원형(cycle) 그림을 배경으로 만든 디오라마(diorama)인 사이클로라마는 19세기말에 유행한 일종의 '가상현실' 체험공간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많이 만들어졌지만, 이렇게 지금까지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짧은 쇼가 끝나고 전체 그림을 걸어다니며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보스턴에서 처음 공개되어서 20년이 지나고 사람들이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자, 이 지역의 사업가가 옮겨와서 전시하던 것을 국립공원청이 1940년대에 구입해서 1962년에 전용의 원형건물을 만들어서 일반에 공개했었다. 그리고 2003년부터 다시 1천3백만불을 들여서 그림을 완전히 복원하고, 새로 지은 이 비지터센터 건물로 옮겨서 2008년부터 지금과 같이 최신의 기술로 공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전시장에서 내려오면 출구에서 이렇게 그림의 전체 모습과 함께 묘사하고 있는 장면들에 대한 설명을 볼 수가 있다. 방금 우리가 본 사이클로라마는 사실 Paul Philippoteaux가 두번째로 그린 것으로, 1883년에 시카고에서 그가 최초로 그린 작품은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까지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그 후 기증된 노스캐롤라이나 웨이크포레스트 대학교(Wake Forest University)에 많이 훼손된 상태로 보관이 되어 있다. 또한 초기에는 게티스버그 사이클로라마가 워낙 인기가 있어서 다른 도시에서 조악한 모조품들이 몇 개 그려지기도 했단다. 이제 입구에 표검사를 하는 직원이 지키고 있는 유료박물관을 구경할 차례인데, 박물관의 공식 명칭은 '미국 내전의 게티스버그 박물관(The Gettysburg Museum of the American Civil War)'이다. 전시의 규모가 워낙 방대해서 중요한 사진 몇 장만 보여드리면, 남북전쟁의 결정적 계기가 된 1860년 미국 대통령선거의 결과로 4명의 후보들 중에서 북부의 지지를 받은 공화당 링컨의 당선을 보여주고 있다. 선거 직후부터 남부의 주들이 연방을 탈퇴하기 시작했고, 결국 링컨이 대통령에 취임한 이듬해 4월 12일 새벽 4시에 연방군이 주둔한 사우스캐롤라이나 섬터 요새(Fort Sumter)를 남군이 공격하면서 내전이 발발하게 된다. (상세한 전쟁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왼편이 1861년의 미연방의 국기라고 하는데, 가운데 겹친 것을 하나로 본다면 32개 별의 배치가 정말 특이하다. 오른편에 연방을 탈퇴한 11개의 주를 상징하는 11개의 별이 표시된 것이 남부동맹에서 처음 채용한 국기라고 한다. 남북전쟁의 분수령이 되었다고 하는 1863년 7월의 게티스버그 전투는 거의 유일하게 북군의 영토에서 벌어진 전투였고, 지도를 보면 남군이 오히려 북쪽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상세한 전쟁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남군 총사령관인 Lee가 주력부대를 이끌고 북군의 보급로를 끊고 결정적인 타격을 줄 목적으로 우회해서 진격한 것인데, 부하 한 명이 혹시 이러다가 북군이 버지니아 남쪽에 있는 남부동맹의 수도인 리치몬드(Richmond)를 점령하면 어떡하냐고 물었단다. 그러자 Lee가 대답하기를... "그러면 우리가 워싱턴을 점령하고, 수도를 서로 맞바꾸면 되지~" 박물관에는 3일간 전투의 세세한 진행 상황까지 묘사를 해 놓았고, 여러 화면에는 앞서 소개영화에서 봤던 해당일의 전투장면을 반복해서 틀어주고 있었다. 반짝반짝하는 대포가 하나 놓여 있는데, 나중에 차로 전쟁터를 돌아보면 이런 대포를 수 없이 만나게 된다. 남과 북의 포병의 옷을 비교 전시해놓은 모습으로, 남북전쟁은 산업화 이후에 대량 생산된 무기와 모든 물자를 동원한 최초의 총력전이자 현대전이었단다. 또한 지금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참혹하고 인명피해가 많았던 전쟁으로 1865년까지 약 4년 동안에 군인만 62만명이나 죽었다고 한다.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남군이 패배하고 물러나면서, 결국 남북전쟁이 북군의 승리로 끝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벽면에 붙은 수 많은 흑백사진의 주인공들을 포함해 양측 합계 약 5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이는 전투에 참가했던 군인들의 1/3에 해당하는 처철하고 치열한 전투였다는 방증이다. 전투가 끝나고 약 4개월이 지나서야 연방군의 유해를 다 수습해서 급조한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행사의 주최자가 약 2시간의 장황한 연설을 한 이후에 참석한 링컨 대통령에게 한 마디를 부탁했다고 한다. 링컨은 272개의 단어로 약 2분간만 말하고 단상을 내려왔는데, 그것이 바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이자 가장 많이 인용된 연설문이라는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The Gettysburg Address)'이다. "87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이 대륙에 자유의 정신으로 잉태되고 만인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신념이 바쳐진 새로운 나라를 세웠습니다. ... 이 분들의 죽음을 무위로 돌리지 않으리라 이 자리에서 굳게 결단하여야 하며, 이 나라가 하나님 아래에서 자유의 새로운 탄생을 누려야 할 뿐 아니라,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가 지상에서 소멸하지 않아야 한다는 그 위대한 사명에 우리 스스로를 바쳐야 합니다."로 번역되는 연설의 처음과 끝이 왼쪽에 씌여있고, 그것이 미국의 독립선언과 헌법전문을 하나로 함축하는 '새로운 선언'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제 밖으로 나가서 링컨이 연설을 했던 곳과 실제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들을 돌아볼 차례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펜실베니아(Pennsylvania) 주의 밸리포지(Valley Forge) 국립역사공원과 아미시빌리지(Amish Village)

반응형 지난 2015년에 미동부 아이비리그 대학투어 여행을 하면서 펜실베니아 주는 필라델피아만 구경을 했었는데, 동부로 이사온 후로 봄방학 여행 때 처음 다른 몇 곳을 둘러봤다. 펜실베니아는 영국 퀘이커 교도였던 윌리엄 펜(William Penn)의 '신성한 실험'으로 1681년에 건설된 식민지로, 당시 유럽에서 박해받던 모든 신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지상낙원을 만들고자 했단다. 그래서 특히 종교개혁의 중심지였던 독일로부터의 이민이 많았는데, 봄방학 여행에서 둘쨋날 숙박을 한 도시가 '프로이센의 왕'이라는 뜻인 킹오브프러시아(King of Prussia)라는 독특한 이름인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이 곳에 있는 밸리포지 국립역사공원(Valley Forge National Historical Park)의 비지터센터를 아침 일찍 찾았는데, 3월 중순에 밤사이 내린 눈으로 하얀 설경을 보여주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참고로 필라델피아의 위성도시인 킹오브프러시아에는 매장면적 기준으로 미국에서 3번째로 큰 쇼핑몰이라는 King of Prussia Mall이 있는데, 사모님께서 나중에 알고는 안 데리고 갔다고 가이드를 나무라셨다~ (4위는 LA지역에 있는 South Coast Plaza로 옛날에 가봤고, 1위는 미네소타 주라서 가망이 없지만, 2위는 뉴저지 주라서 앞으로 모시고 갈 수 있음^^) 거의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들어가서 다른 손님도 없고 모든 것이 반짝반짝했는데, 이 비지터센터와 박물관은 우리가 방문하기 바로 전달에 워싱턴의 생일이었던 2월 21일에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새로 문을 열어서 그렇다. 그 생일의 주인공인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 이렇게 '백마를 탄 왕자님'처럼 위풍당당하게 전시장 입구에 서있지만... 실상은 미국이 필라델피아에서 독립선언을 한 다음해인 1777년 12월 19일에 영국군에게 그 필라델피아를 내어주고 자신이 이끄는 패퇴한 대륙군(Continental Army) 약 12,000명을 이끌고 쫒겨온 곳이 여기 밸리포지(Valley Forge)이다. 패잔병과 함께 불을 쬐면서 돌을 데워서 굽는 빵이 익기를 기다리는 모녀인데, 벽화와 같이 실제로도 밖에 얇게 눈이 덮힌 상태라서 현실감 백배였다~ 당시 필라델피아를 점령한 영국군이 워싱턴을 여기까지 추격하지 않은 이유는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기 위해서였다는데, 만약에 그 때 영국군이 계속 여기까지 진격해서 대륙군을 완전히 섬멸하거나 워싱턴을 죽이기라도 했다면 전세계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아무도 모른다고... 추운 겨울 동안에 군대를 주둔(encampment)하기 위해서 나무들을 잘라서 임시 통나무집을 만드는 것을 우리가 도와주고 있다. "이런 조립해서 만드는 일은 내가 잘하지~" 왼쪽 투명상자에 들어있는 샘플과 똑같이 위기주부가 순식간에 한 채 만든 것이 앞쪽에 보이고, 지혜가 만들다가 포기한 통나무집은 아내가 이어받아서 계속 만들고 있다. 약 1,500채의 통나무집을 만들어서 그나마 추위는 피했지만, 식량부족에 전염병까지 돌아서 1778년 봄까지 약 2,000명이 캠프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가운데 벽에 독립전쟁 당시에 사용되었던 무기들을 전시해놓은 것을 지혜가 보고 있는데, 총기류 보다도 칼들이 더 많았고 제일 아래에는 아주 기다란 창도 보인다. 총이 있었다고는 해도 그 때는 서로 코 앞에서 한 발씩 쏘고는 그냥 달려가서 베고 찌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제 큰 전투도 벌어지지 않았고, 단순히 워싱턴이 총사령관이었던 퇴각한 대륙군이 통나무집만 많이 지어서 겨울 동안 피신했던 장소라면 왜 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되었을까? 이 뒤쪽으로 그에 대한 전시가 있었지만, 소개영화를 볼 시간이 다 되어서 기념품 가게를 지나서 비지터센터 위쪽으로 나갔다. 비지터센터와 붙어있는 극장은 아직 재단장이 끝나지 않아서, 여기 별도의 건물에서 대형 TV로 봤는데, 이전 여행기에도 말씀드렸지만 정말 역사공원에서는 소개영화를 꼭 봐야된다. 얼떨결에 독립을 한 미국은 대륙군을 소집해서 워싱턴을 총사령관에 앉혔지만, 대부분이 전투경험이 없는 의용군이라서 당시 세계최강 영국군에 상대가 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여기 밸리포지에 주둔하는 동안에 군사고문으로 와있던 프러시아의 전직장교 Von Steuben이 체계적으로 전투하는 방법과 규율을 가르쳤는데, 이 기간의 훈련으로 오합지졸이던 대륙군이 진정한 군대로 거듭났기 때문에 이 곳을 '미군의 탄생지(Birthplace of the American Army)'라 부르며 기념하는 것이다. 진짜 잘 만들었던 소개영화를 보고나서는 차를 몰고 이 곳의 여러 유적지들을 한바퀴 둘러보면 된다. 첫번째로 조금 전에 우리가 만들었던 것과 같은 통나무집들을 재현해놓은 곳을 차로 지나쳤는데, 저기 걸어서 구경하시는 분들은 타주에서 단체로 관광버스를 타고 온 미국인들이었다. 첫번째로 차를 세우고 이 역사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인 내셔널메모리얼아치(National Memorial Arch)를 보러 눈 내린 잔디밭을 걸어가는 중이다. "야~ 파리 개선문이다!" 여기서 겨울을 보내며 단련된 미군이 다음 해 이 밸리를 떠나서 영국군을 추격하기 시작한 6월 19일에 맞춰서, 연방정부의 예산으로 1917년에 워싱턴과 병사들을 위해서 헌정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정면 모양은 비슷하지만 높이는 약 18미터로 파리 개선문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조지 워싱턴이 프리메이슨(Freemason)의 회원이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그래서 이 아치가 1990년대에 전면적인 보수를 할 때 그 자금을 지원한 곳이 펜실베니아 주의 프리메이슨 조직이었다고 한다. 눈 내린 들판 위의 앙상한 나뭇가지... 불과 한 달 전에 펜실베니아는 이런 모습이었는데, 4월 중순인 지금은 들판의 잔디와 나무의 나뭇잎들이 여기 버지니아처럼 모두 무서운 속도로 파래지고 있겠지? 도로 옆으로 멋진 청동 기마상이 나와서 또 워싱턴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차를 세우고 자세히 보니 General Wayne Statue라 되어있다. 동상의 주인은 펜실베니아 출신의 Anthony Wayne으로 당시 워싱턴의 부관들 중의 한 명으로 지역연고를 이용해서 신병모집과 보급을 담당했단다. 조금 더 운전하니까 왼편으로 지붕이 있는 다리가 보이길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떠올랐다~ 동부의 옛날 나무다리는 사계절의 변화무쌍한 날씨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지붕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으로, 아이오와(Iowa) 주의 매디슨 카운티에 있는 그 다리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다리를 지나가지 않고 계속해서 공원 순환도로를 조금 더 달려서, 강가를 따라 기찻길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차를 세웠다. 미군이 이 곳에 주둔하는 동안 워싱턴이 숙박했던 집인 Washington's Headquarters를 찾아왔는데, 가운데 보이는 것은 기차역이고 그 왼편으로 나무에 가려진 본부가 살짝 보인다.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봐야 어차피 건물내부는 못 들어간다고 해서, 그냥 여기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다시 출발~ 마지막으로 차를 세운 곳은 Washington Memorial Chapel로 1921년에 만들어진 기념예배당이다. 가운데 본관은 문을 닫아서 들어가 볼 수 없었고, 오른쪽에 높이 서있는 종탑의 내부만 잠깐 둘러보았다. 1953년에 추가로 건설된 이 종탑의 이름은 National Patriots Bell Tower로 성조기를 이용한 천정의 장식 등 내부 전체가 애국적인 분위기가 팍팍 풍기는데, 특히 예배당과 함께 스테인드글래스 장식이 유명하다는데, 스테인드글래스 그림이 이렇게 워싱턴의 일생이나 독립전쟁 등을 묘사하고 있다. 이것으로 미국 독립군이 패퇴해서 주둔했던 장소를 미군의 탄생지로 기념하는 밸리포지 국립역사공원 구경은 마치고, 서쪽으로 1시간 정도 운전을 해서 인터코스(Intercourse)라는 좀 거시기한 이름의 마을을 찾아갔는데, 그 곳은 아래의 옛날 명작 영화가 촬영된 장소로 알려져 있다. 위기주부에게는 영원한 인디애나존스이자 한솔로인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1985년 영화 는 이제 간단히 소개할 아미시(Amish) 사람들의 존재를 전세계에 가장 널리 알린 작품이다. 그 해 아카데미에서 주요 8개 부문 후보에 올라서 각본상과 편집상 2개를 수상해 작품성도 인정받아 옛날 KBS '주말의 명화'의 단골 방영작이었다. 제일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초기 펜실베니아 주로 독일계 이민자가 많았는데, 그 중에는 네덜란드에서 시작되어 성서적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메노나이트(Mennonite) 교인들이 있었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으로 새로운 문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아미쉬 공동체로 아직도 전기와 자동차를 사용하지 않는다. 인터코스 마을에서부터 '마차주의' 표지판이 도로에 등장해서 설마했더니, 이렇게 차도 옆으로 까만 마차(buggy)들이 많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이 지역에서 주로 농업을 생계로 조용히 살아가기 때문에, 관광지라 부르기는 좀 그렇고 투어를 통해서만 그들의 생활상을 볼 수가 있단다. 그냥 지나갈까 하다가 가장 널리 알려진 투어가 진행되는 곳인 아미시빌리지(Amish Village)라고 씌여진 곳에 잠깐 들러보기로 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옛날 모뉴먼트밸리 여행을 갔을 때도 나바호 부족의 생활상을 보는 투어를 할 기회가 있었지만, 아내와 나는 다른 사람들이 살고있는 모습을 유료투어로 구경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그냥 투어는 생략하고 아미시 사람들이 전통방법으로 만들었다는 살구잼만 기념으로 하나 사서 아미시빌리지를 나왔다. 그리고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인 랭카스터(Lancaster)로 가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 곳의 코스트코에는 이렇게 아미시 마차를 세워둘 수 있는 별도의 주차공간(?)까지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이제 다시 30번 국도를 타고 서쪽으로 1시간여를 더 달려서, 2박3일 봄방학 자동차여행의 마지막 방문지이자 가장 중요한 목적지를 이제 찾아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2018년 5월 필[2018년 5월 필라델피아 코믹콘 여행]괜찮았던 햄버거집, 버거파이(Burger-Fi)[12]

[2018년 5월 필[2018년 5월 필라델피아 코믹콘 여행]괜찮았던 햄버거집, 버거파이(Burger-Fi)[12]

..이렇게 펍에서 인종차별을 당하고...그래도 저녁은 먹어야 했기에!! 찾아간 버거파이 맛집 뭐 이런거 찾기도 귀찮아서 그냥 호텔 근처에 있길래 들어갔습니다. 가게는 이런 느낌 일단 맥주,구스 아일랜드가 있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대부분의 문제는 맛있는 맥주를 마시면 해결된다!!! 그리고 나온 햄버거 & 감자튀김.별생각 없이 들린 곳 치고는 맛있었습니다!!! 미국이니 패티가 고기고기&묵직한건 당연하고...양상추나 토마토같은 야채가 싱싱한게 좋았습니다. 감자튀김도 무슨 기름으로 튀겼는지 모르겠는데 꼬소꼬소하니 자꾸만 손이 가는 맛 검색해 보니 미국 남부에 주로 분포하는(?)가게인 듯? 미국여행 가다가 보면 들러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