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실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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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 스크랜턴(Scranton)의 스팀타운(Steamtown) 국립사적지로 시작한 북부 뉴욕주 2박3일 여행

아내가 혼자 한국을 살짝 다녀오기로 한 10월말에 맞춰서 2박3일로 업스테이트 뉴욕(Upstate New York) 여행 계획을 '몰래'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10월부터 미국 연방정부가 셧다운에 들어가면서 모든 국립 공원들이 문들 닫았다! 여행의 주목적이 위기주부의 취미인 'NPS 오피셜유닛 도장깨기'인데 말이다... 그래서 그냥 등산이나 한두번 더 다녀올까 하다가, 어차피 비지터센터에서 진짜 도장(stamp)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 곳에 대한 공부는 현장보다 돌아와 위키로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대로 강행하기로 했다. 위의 초승달같은 경로를 시계방향으로 돌았는데, 2박3일 동안 실주행 거리는 1,200마일도 넘었다. 지도에 표시된 곳들 외에도 들린 장소가 많아서 모두 12개의 NPS official unit들이 리스트에 추가될 예정이며, 국립 공원 외에 서너곳 정도 관광지(?)도 사이사이에 등장하게 된다. 뉴욕 주에 속하지 않는 장소가 경로상 처음과 마지막에 각각 하나씩 딱 2곳뿐이었는데, 첫날 5시에 출발해서 두 시간을 달려 펜실베니아 주청사가 있는 해리스버그에서 아침을 먹고 또 두 시간을 더 운전해 도착한 첫번째 공원부터 시작한다. 이번 로드트립에서 가장 많이 달린 인터스테이트 81번에서 스크랜턴(Scranton)으로 빠지는 길의 이름이 '바이든 대통령 고속도로(President Biden Expressway)'였던 것이 제일 먼저 기억에 남아서, 구글 스트리트뷰 한 장 캡쳐해봤다. 펜실베니아 스크랜턴이 바이든이 태어나서 10살까지 살았던 도시라서, 그가 대통령에 취임했던 2021년에 도로명을 이렇게 변경한 것이라 한다. 살짝 낙후된 공업도시 느낌을 받으며 도심 기차역의 차량기지에 해당하는 곳을 찾아왔는데, 넓은 주차장이 입구쪽 일부분만 개방되어 있었다. 쌀쌀한 내륙의 가을바람을 맞으며 차에서 내려, 갈색 표지판의 스팀타운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커다란 "PARK CLOSED" 사인이 위기주부를 반겨주었다! 국립공원청에서 추가로 붙여놓은 안내문에는 '정부 폐쇄(government shutdown)'라는 말 대신에 '예산 중단(lapse in appropriations)'이란 표현을 쓰는게 특이했고, 나중에는 방문하는 곳마다 저 안내문을 찾는 재미가 쏠쏠했었다. ㅎㅎ 그래도 꿋꿋하게 건물쪽으로 걸어와보니 매표소 겸 안내소 건물이 나온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공원이 운영되는 주말에는 인근의 마을로 향하는 실제 복원된 증기 기관차가 끄는 열차를 타고 '소풍(excursion)'을 갈 수도 있는데, 그 목적지들 중에는 여기서 남동쪽으로 11마일 떨어진 모스크바(Moscow)도 있단다.^^ 스팀타운 국립사적지(Steamtown National Historic Site)는 여기 1986년에 설립되었지만, 그 역사는 사실 다른 곳에서 한 개인에 의해 시작되었다. 뉴잉글랜드 지역의 사업가이자 열렬한 철도애호가였던 F. Nelson Blount는 개인적으로 수집한 증기 기관차들을 전시하고 관리하기 위해 1964년에 'Steamtown USA' 재단을 만들었는데, 안타깝게도 3년만에 개인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다. 백만장자 주인을 갑자기 잃은 개인 박물관은 장기간 적자에 허덕이기 시작했고, 결국 도시 재개발을 추진하던 스크랜턴 시가 관광지로 개발할 목적으로 1984년에 재단을 인수하고, 수집된 기차들을 모두 펜실베니아 북동부에서 운영되는 철도 노선 DL&W의 야적장으로 끌고 오게 된다. 어차피 안으로 못 들어가니까, 공원 브로셔의 조감도라도 보여드리며 설명을 계속하면... 스크랜턴 시는 철도 박물관이 매년 20만~40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일거라 홍보했지만, 그 수는 개장 첫해에 6만 명에 불과했고 바로 이듬해부터 2백만 달러 이상의 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역 국회의원이 발빠르게 국립사적지로 지정을 추진해서 연방정부에 운영을 떠넘기게 된 것이다. 수집품 중에는 캐나다에서 운영된 기차가 많아서 미국사적 가치도 별로 없었고, 지역의 역사적 특색도 반영하지 못한다는 반대가 있었지만, 주지사까지 나서서 노력한 끝에 1986년에 법이 통과된 것이다. 입구에 전시되어 있던 크레인 철도 차량인 듯 하고... 그렇게 떠밀려서 스팀타운을 인수한 국립공원청은 불필요한 기차는 폐기하거나 매각하고, 노후된 기관차 정비소와 건물 등을 개조하고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등에 무려 6,600만 달러를 사용한 후인 1995년에야 처음 일반에 공개를 해서, 그 해에 스크랜턴 시가 꿈에 그리던 212,000명의 방문객을 달성하게 된다. 그러나 연간 운영비로 500만 달러 이상이 지출됨에도 불구하고 방문객은 지속적으로 감소해서 현재는 5만~6만 명에 불과한 수준이란다. 구경 다 했으니까 뒤돌아 주차장으로... 옛날에 LA의 시립 철도 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듯이, 미국 전역에 이런 곳들이 워낙 많아서 여기가 가장 크거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차를 소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일하게 연방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철도 박물관으로 특히 조감도에 중앙에 보이는 기관차를 철로와 함께 통째로 회전시켜서 정비와 보관을 위한 라운드하우스(Roundhouse)에 입고시키는 턴테이블이 작동하는 단 3~4곳들 중의 하나인게 큰 의미란다. 돌아가는 길에 다른 두 쌍의 노부부가 위기주부처럼 여기를 찾아와 비지터센터 쪽으로 걸어가는게 보였다. "나중에 여기를 마누라랑 다시 올 일이 있을까?" 이런 생각이 잠깐 들었었고, 떠나기 전에 별도의 카운티 박물관인 트롤리 뮤지엄(Trolley Museum)에 대해서도 잠깐 알아보면, 스크랜턴은 1880년에 미국에서 전기를 가장 먼저 도입한 도시들 중의 하나로, 특히 1886년에 최초로 노면 전차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면서 'Electric City'라는 별칭을 가지게 된다. 그러한 역사적 배경을 기념하기 위해서 1999년에 카운티에서 전차 박물관을 따로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는 문을 열었다고 해도, 금요일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없기는 마찬가지인 듯... "그러면, 주차장에 제법 있는 차들은 다 누가 타고 온 걸까?" 참, 여기까지 복습을 하다보니 시즌9까지 제작되어서 나름 미국에서는 인기가 있었다는 NBC의 시트콤 드라마 의 배경 도시가 스크랜턴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그 드라마에도 자주 등장했던 스크랜턴을 대표하는 네온사인으로 덕분에 '일렉트릭 시티'라는 별명이 알려지는데 도움이 되었단다.^^ 주차장을 빠져 나가려는데 그 옆으로 뻗은 철로에 세워져 있던 기차와 안내판이 정면으로 보여서, 예의상 한 대라도 제대로 꼼꼼히 보고 가자는 생각에 다시 차에서 내려서 국립공원청에서 만든 안내판을 (읽지는 않고) 사진만 찍었다. 볼드윈 기관차(Baldwin Locomotive)에서 1916년에 제작해서 1937년까지는 테네시에서 여객을 운송했고, 그 후 뉴저지로 와서 Rahway Valley #15 이름의 화물열차로 1953년까지 사용된 기차라고 한다. 북부 뉴욕주 2박3일 여행기의 첫 편을 이렇게 마치며 돌이켜 보니, 사실 국립 공원들이 문을 열어서 비지터센터에서 안내영화도 보고 전시물들도 더 둘러봤다면, 앞으로 계속 소개될 곳들을 과연 모두 방문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살짝 들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전화위복 아니면 새옹지마, 또는 불행 중 다행이라 부르는 걸까? ㅎㅎ

펜실베니아 출신의 괴짜 고고학자, 유물 수집가, 타일 제작자가 살던 집인 폰트힐 캐슬(Fonthill Castle)

펜실베니아 출신의 괴짜 고고학자, 유물 수집가, 타일 제작자가 살던 집인 폰트힐 캐슬(Fonthill Castle)

이젠 당일로 맨하탄을 다녀오는게 쉽지 않아서, 조카 부부를 만나고 돌아오는 저녁에 뉴저지에서 숙박을 했다. 호텔비를 썼으니 다음날 뭔가 구경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텐데... 필라델피아 시내는 주차가 힘들까봐 그렇게 끌리지 않았고, 유명한 정원들은 아직 겨울이라 본전을 못 뽑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필라델피아 외곽 벅스카운티(Bucks County)의 도일스타운(Doylestown)이란 마을에 있는 이 독특한 '성(城)'을 아내가 찾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이드 투어비 인당 15불이 전혀 아깝지 않았던 흥미있는 장소였다. 그 전에 승용차만 겨우 마주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철교의 사진을 보여드리는데, 뉴저지와 펜실베니아의 경계인 델라웨어 강에 놓여진 워싱턴크로싱 다리(Washington Crossing Bridge)로, 강 양쪽의 마을 이름도 동일하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 이유는 1776년 크리스마스 저녁에 조지 워싱턴이 직접 2,400명의 대륙군을 이끌고, 바로 여기서 반쯤 얼어붙은 강을 배로 건넜기 때문인데, 미국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은 보신 적이 있을 아래의 그림으로 유명한 역사적 장소이다. 가로 6.5미터의 대작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인데, 다음에 MET를 다시 방문하면 미국관에 걸려있는 이 그림을 꼭 직접 봐야겠다~ 이렇게 강을 건너 뉴저지 트렌턴(Trenton)에 주둔한 영국이 고용한 독일용병 부대를 상대로 기적같은 승리를 거둬서, 꺼져가는 독립의 불씨를 극적으로 되살리게 된다. 이를 기념하는 펜실베니아 주립의 역사공원이 강가에 만들어져 있지만, 다음 기회에 들리기로 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원래의 목적지를 찾아갔다. 폰트힐 캐슬(Fonthill Castle)은 제목의 소개와 같은 헨리 머서(Henry Mercer)가 직접 설계해서 1908~1912년에 콘크리트로 건설한 자신의 집이다. 성에는 44개의 방과 200개의 창문 및 18개의 벽난로가 있는데, 1시간짜리 유료 투어에서는 중앙의 출입문을 기준으로 미로같은 왼쪽 절반만 겨우 둘러보게 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입구를 통해 실내로 처음 들어섰을 때는 던전(Dungeon)같은 분위기의 좁은 공간에 기둥과 천장도 기괴해서, 집주인이 드라큘라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하지만 가이드 왼편의 닫혀진 문을 열고 첫번째 방으로 들어가면서부터 그 걱정은 감탄으로 바뀌게 된다~ 복층의 도서관으로 집주인 헨리 머서가 직접 만든 세라믹 타일(tile)로 장식되어 있다. 집의 모든 콘크리트 기둥과 천장이 원래는 파스텔 톤으로 칠해졌었다고 하지만, 10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흘러서 그 색깔들이 모두 바래진 상태란다. 벽난로 위의 이 타일들은 아라비안나이트 이야기를 묘사한 것으로 그는 이와같이 특별한 디자인의 타일 제작자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데, 작년말에 위기주부가 직접 방문해 소개했던 펜실베니아 주의사당에 그의 최대 타일 모자이크 작품이 있으며, 모두가 들어본 LA 헐리우드 거리의 만스차이니즈(Mann's Chinese) 극장 로비의 바닥도 그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타일이란다! 도서관 옆으로는 주 거실이 나오는데, 그가 전세계를 여행하며 수집한 많은 나라의 타일들이 일련번호와 함께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벽난로 옆에 서있는 말년의 주인장 모습으로, 그는 1856년 도일스타운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교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유펜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지만, 한 번도 변호사로 활동을 하지는 않고 바로 유럽으로 떠나서 8년이나 여행을 했단다. 그리고 돌아와서 1890년에 펜실베니아 대학교 박물관의 고고학 큐레이터로 취직했지만 바로 그만두고, 독일 도예가로부터 전수를 받아서 1898년에 여기 자신의 땅에 나중에 보여드릴 타일 공장을 먼저 만들게 된다. 거실 중앙의 사각 기둥에는 색색의 타일에 둘러싸인 작은 점토 조각들이 있는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된 바빌론 쐐기문자가 새겨진 점토판으로 기원전 2,3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의 수집품들이란다! 거실에서 계단을 올라온 후에 뒤돌아 올려다 보면, 지나온 문 위로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직접 만들어서 붙인 타일들이 보인다. 여기서 건너편 주방과 식당 등을 포함해 사방으로 갈림길이 미로처럼 만들어져 있어서, 가이드를 잘 따라다니지 않으면 길을 잃기 쉽상이었다.^^ 많은 게스트룸들 중의 하나로 얼핏 열악해 보이지만, 지금 불을 밝히고 있는 전구의 전기배선은 물론 당시로는 최첨단의 인터폰 시설까지 그가 직접 설치를 했고, 욕조와 세면대 및 수세식 변기가 구비된 전용 화장실까지 딸려있는 마스터룸이었다! 2층 응접실에 해당하는 콜럼버스룸(Columbus Room)으로 이 집에서 가장 화려한 천장을 볼 수 있는 곳인데, 컬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다른 두 문명의 만남 등을 주제로 하나하나 직접 만든 타일들로 손수 장식을 했다고 한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헨리 머서는 1930년에 73세로 이 방에서 사망했고, 유언에 따라 이 집과 그의 개인 박물관은 그가 회원이던 카운티 역사협회에 기증되었다. 하지만 그를 돌보고 집을 관리하던 하인 부부는 계속 여기서 거주할 수 있다는 조항을 달아서, 하녀였던 Laura Swain은 1975년까지 여기 살면서 가끔 직접 투어 가이드를 하기도 했단다. 이 시점에서 옛날에 네이버 메인화면에도 소개되었던 위기주부의 데스밸리 스코티캐슬(Scotty's Castle) 이야기가 떠오른다~ 복도 계단의 위쪽을 그가 중국에서 수집한 기와와 장식들을 전시하기 위해서, 아예 작은 기와 지붕을 만들어 놓기까지 했다. 공장에서 타일을 만들지 않을 때, 그는 이 서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단다. 책상 위의 책장과 벽난로 사이에 놓여진 것은 진짜 사람의 해골인데, 1900년대 초에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해골을 소유하고 전시하는 것이 이상한 행동이 아니었다고 하며, 이 해골도 선물을 받은 것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했던 것 같다. 서재 옆으로는 별도의 서고가 또 만들어져 있어서, 이 집에만 약 6천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는데, 거의 모든 책에 헨리 머서가 단 주석이 달려있는 것으로 봐서 단순 전시용이 아니라 모두 직접 다 읽었다는 뜻이다. 노란색 톤으로 예쁘게 꾸며진 이 방은 여성 손님을 위해 마련한 방인데, 제일 오른쪽 빨간 벽에 붙여놓은 타일로 만들어진 그림들은 프랑스 설화 '푸른 수염(Bluebeard)'의 장면들이란다. 그 전래된 이야기의 여주인공은 푸른 수염의 귀족과 결혼을 하는데, 알고 보니 남편이 지금까지 6명의 아내를 차례로 모두 죽인 살인마라는 내용이다...ㅎㅎ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 지역 '알함브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지중해 스타일의 타일로 예쁘게 장식된 출입구 옆의 온실을 마지막으로 구경하고는 1시간이 후딱 지나간 흥미만점의 투어를 모두 마쳤다. 그리고는 앞서 언급한 이 성을 꾸미는데 사용된 타일들이 모두 제작된 그의 공장이 바로 옆에 있다고 해서 거기도 잠깐 둘러보기로 했다. 모라비아 도자기 및 타일 공장(Moravian Pottery & Tile Works)은 현재 카운티 소유의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도예 공방과 이벤트 장소 등으로 활용되며 역시 정해진 시간에 유료로 내부 가이드투어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우리는 오른편 입구 안에 있는 기념품 가게만 잠시 둘러보기로 했다. 폰트힐캐슬 등의 장식에 사용된 것들과 같은 틀을 이용해 찍어서 유약을 바르고 구운 타일들을 여기서 직접 구매할 수 있는데... 어른 손바닥만한 이 타일들이 하나에 무려 47불로 가격이 아주 비싸서, 그냥 가까이서 만져보고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헨리 머서는 자신의 많은 수집품들을 전시하기 위한 별도의 개인 박물관을 또 하나 더 지었는데, 여기서 1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는 그 곳은 다음 기회에 구경하기로 하고, 우리는 밥도 먹고 눈요기도 할 목적으로 2022년 봄에 방문했던 밸리포지 국립역사공원이 위치한 마을인 킹오브프러시아(King of Prussia)애 있는 쇼핑몰로 향했다. 필리(Philly)들은 그냥 KOP라 부르는 킹오브프러시아 쇼핑센터는 약 450개의 점포가 입점해서, 2025년 현재 매장면적 기준으로 미국에서 4번째로 큰 쇼핑몰이란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사진은 가장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명품 브랜드들이 모두 모여있는 곳으로, 필라델피아 시내에서 1시간 가까이 떨어진 외곽에 위치한 이런 럭셔리 매장들이 장사가 되는게 신기했다.^^ 쇼핑몰이 너무 크고 복잡해서 잠시 길을 잃기도 한 후에, 3시간여를 쉬지 않고 운전해 버지니아 집에 도착하는 것으로 2025년의 첫번째 1박2일 뉴욕여행을 마쳤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펜실베니아 출신의 괴짜 고고학자, 유물 수집가, 타일 제작자가 살던 집인 폰트힐 캐슬(Fonthill Castle)

펜실베니아 출신의 괴짜 고고학자, 유물 수집가, 타일 제작자가 살던 집인 폰트힐 캐슬(Fonthill Castle)

이젠 당일로 맨하탄을 다녀오는게 쉽지 않아서, 조카 부부를 만나고 돌아오는 저녁에 뉴저지에서 숙박을 했다. 호텔비를 썼으니 다음날 뭔가 구경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텐데... 필라델피아 시내는 주차가 힘들까봐 그렇게 끌리지 않았고, 유명한 정원들은 아직 겨울이라 본전을 못 뽑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필라델피아 외곽 벅스카운티(Bucks County)의 도일스타운(Doylestown)이란 마을에 있는 이 독특한 '성(城)'을 아내가 찾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이드 투어비 인당 15불이 전혀 아깝지 않았던 흥미있는 장소였다. 그 전에 승용차만 겨우 마주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철교의 사진을 보여드리는데, 뉴저지와 펜실베니아의 경계인 델라웨어 강에 놓여진 워싱턴크로싱 다리(Washington Crossing Bridge)로, 강 양쪽의 마을 이름도 동일하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 이유는 1776년 크리스마스 저녁에 조지 워싱턴이 직접 2,400명의 대륙군을 이끌고, 바로 여기서 반쯤 얼어붙은 강을 배로 건넜기 때문인데, 미국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은 보신 적이 있을 아래의 그림으로 유명한 역사적 장소이다. 가로 6.5미터의 대작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인데, 다음에 MET를 다시 방문하면 미국관에 걸려있는 이 그림을 꼭 직접 봐야겠다~ 이렇게 강을 건너 뉴저지 트렌턴(Trenton)에 주둔한 영국이 고용한 독일용병 부대를 상대로 기적같은 승리를 거둬서, 꺼져가는 독립의 불씨를 극적으로 되살리게 된다. 이를 기념하는 펜실베니아 주립의 역사공원이 강가에 만들어져 있지만, 다음 기회에 들리기로 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원래의 목적지를 찾아갔다. 폰트힐 캐슬(Fonthill Castle)은 제목의 소개와 같은 헨리 머서(Henry Mercer)가 직접 설계해서 1908~1912년에 콘크리트로 건설한 자신의 집이다. 성에는 44개의 방과 200개의 창문 및 18개의 벽난로가 있는데, 1시간짜리 유료 투어에서는 중앙의 출입문을 기준으로 미로같은 왼쪽 절반만 겨우 둘러보게 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입구를 통해 실내로 처음 들어섰을 때는 던전(Dungeon)같은 분위기의 좁은 공간에 기둥과 천장도 기괴해서, 집주인이 드라큘라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하지만 가이드 왼편의 닫혀진 문을 열고 첫번째 방으로 들어가면서부터 그 걱정은 감탄으로 바뀌게 된다~ 복층의 도서관으로 집주인 헨리 머서가 직접 만든 세라믹 타일(tile)로 장식되어 있다. 집의 모든 콘크리트 기둥과 천장이 원래는 파스텔 톤으로 칠해졌었다고 하지만, 10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흘러서 그 색깔들이 모두 바래진 상태란다. 벽난로 위의 이 타일들은 아라비안나이트 이야기를 묘사한 것으로 그는 이와같이 특별한 디자인의 타일 제작자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데, 작년말에 위기주부가 직접 방문해 소개했던 펜실베니아 주의사당에 그의 최대 타일 모자이크 작품이 있으며, 모두가 들어본 LA 헐리우드 거리의 만스차이니즈(Mann's Chinese) 극장 로비의 바닥도 그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타일이란다! 도서관 옆으로는 주 거실이 나오는데, 그가 전세계를 여행하며 수집한 많은 나라의 타일들이 일련번호와 함께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벽난로 옆에 서있는 말년의 주인장 모습으로, 그는 1856년 도일스타운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교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유펜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지만, 한 번도 변호사로 활동을 하지는 않고 바로 유럽으로 떠나서 8년이나 여행을 했단다. 그리고 돌아와서 1890년에 펜실베니아 대학교 박물관의 고고학 큐레이터로 취직했지만 바로 그만두고, 독일 도예가로부터 전수를 받아서 1898년에 여기 자신의 땅에 나중에 보여드릴 타일 공장을 먼저 만들게 된다. 거실 중앙의 사각 기둥에는 색색의 타일에 둘러싸인 작은 점토 조각들이 있는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된 바빌론 쐐기문자가 새겨진 점토판으로 기원전 2,3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의 수집품들이란다! 거실에서 계단을 올라온 후에 뒤돌아 올려다 보면, 지나온 문 위로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직접 만들어서 붙인 타일들이 보인다. 여기서 건너편 주방과 식당 등을 포함해 사방으로 갈림길이 미로처럼 만들어져 있어서, 가이드를 잘 따라다니지 않으면 길을 잃기 쉽상이었다.^^ 많은 게스트룸들 중의 하나로 얼핏 열악해 보이지만, 지금 불을 밝히고 있는 전구의 전기배선은 물론 당시로는 최첨단의 인터폰 시설까지 그가 직접 설치를 했고, 욕조와 세면대 및 수세식 변기가 구비된 전용 화장실까지 딸려있는 마스터룸이었다! 2층 응접실에 해당하는 콜럼버스룸(Columbus Room)으로 이 집에서 가장 화려한 천장을 볼 수 있는 곳인데, 컬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다른 두 문명의 만남 등을 주제로 하나하나 직접 만든 타일들로 손수 장식을 했다고 한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헨리 머서는 1930년에 73세로 이 방에서 사망했고, 유언에 따라 이 집과 그의 개인 박물관은 그가 회원이던 카운티 역사협회에 기증되었다. 하지만 그를 돌보고 집을 관리하던 하인 부부는 계속 여기서 거주할 수 있다는 조항을 달아서, 하녀였던 Laura Swain은 1975년까지 여기 살면서 가끔 직접 투어 가이드를 하기도 했단다. 이 시점에서 옛날에 네이버 메인화면에도 소개되었던 위기주부의 데스밸리 스코티캐슬(Scotty's Castle) 이야기가 떠오른다~ 복도 계단의 위쪽을 그가 중국에서 수집한 기와와 장식들을 전시하기 위해서, 아예 작은 기와 지붕을 만들어 놓기까지 했다. 공장에서 타일을 만들지 않을 때, 그는 이 서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단다. 책상 위의 책장과 벽난로 사이에 놓여진 것은 진짜 사람의 해골인데, 1900년대 초에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해골을 소유하고 전시하는 것이 이상한 행동이 아니었다고 하며, 이 해골도 선물을 받은 것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했던 것 같다. 서재 옆으로는 별도의 서고가 또 만들어져 있어서, 이 집에만 약 6천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는데, 거의 모든 책에 헨리 머서가 단 주석이 달려있는 것으로 봐서 단순 전시용이 아니라 모두 직접 다 읽었다는 뜻이다. 노란색 톤으로 예쁘게 꾸며진 이 방은 여성 손님을 위해 마련한 방인데, 제일 오른쪽 빨간 벽에 붙여놓은 타일로 만들어진 그림들은 프랑스 설화 '푸른 수염(Bluebeard)'의 장면들이란다. 그 전래된 이야기의 여주인공은 푸른 수염의 귀족과 결혼을 하는데, 알고 보니 남편이 지금까지 6명의 아내를 차례로 모두 죽인 살인마라는 내용이다...ㅎㅎ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 지역 '알함브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지중해 스타일의 타일로 예쁘게 장식된 출입구 옆의 온실을 마지막으로 구경하고는 1시간이 후딱 지나간 흥미만점의 투어를 모두 마쳤다. 그리고는 앞서 언급한 이 성을 꾸미는데 사용된 타일들이 모두 제작된 그의 공장이 바로 옆에 있다고 해서 거기도 잠깐 둘러보기로 했다. 모라비아 도자기 및 타일 공장(Moravian Pottery & Tile Works)은 현재 카운티 소유의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도예 공방과 이벤트 장소 등으로 활용되며 역시 정해진 시간에 유료로 내부 가이드투어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우리는 오른편 입구 안에 있는 기념품 가게만 잠시 둘러보기로 했다. 폰트힐캐슬 등의 장식에 사용된 것들과 같은 틀을 이용해 찍어서 유약을 바르고 구운 타일들을 여기서 직접 구매할 수 있는데... 어른 손바닥만한 이 타일들이 하나에 무려 47불로 가격이 아주 비싸서, 그냥 가까이서 만져보고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헨리 머서는 자신의 많은 수집품들을 전시하기 위한 별도의 개인 박물관을 또 하나 더 지었는데, 여기서 1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는 그 곳은 다음 기회에 구경하기로 하고, 우리는 밥도 먹고 눈요기도 할 목적으로 2022년 봄에 방문했던 밸리포지 국립역사공원이 위치한 마을인 킹오브프러시아(King of Prussia)애 있는 쇼핑몰로 향했다. 필리(Philly)들은 그냥 KOP라 부르는 킹오브프러시아 쇼핑센터는 약 450개의 점포가 입점해서, 2025년 현재 매장면적 기준으로 미국에서 4번째로 큰 쇼핑몰이란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사진은 가장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명품 브랜드들이 모두 모여있는 곳으로, 필라델피아 시내에서 1시간 가까이 떨어진 외곽에 위치한 이런 럭셔리 매장들이 장사가 되는게 신기했다.^^ 쇼핑몰이 너무 크고 복잡해서 잠시 길을 잃기도 한 후에, 3시간여를 쉬지 않고 운전해 버지니아 집에 도착하는 것으로 2025년의 첫번째 1박2일 뉴욕여행을 마쳤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en Poe)와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Thaddeus Kosciuszko)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en Poe)와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Thaddeus Kosciuszko)

정확히 10년전 여름에 하이스쿨 입학을 앞두고 있던 딸을 위해 다녀왔던 아이비 리그(Ivy League) 대학투어 8박9일 미동부 여행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던 도시가 필라델피아(Philadelphia)였다. 하지만 3년전에 미동부로 이사와서는 인근의 유명한 정원을 구경하기 위해 스쳐지나간 적만 있을 뿐, 시내로는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대도시였다. 참, 그래서 딸 자식은 투어를 다녀온 4년 후에, 아이비리그 8개 중 6개에 합격을 해서 그 중 한 곳을 졸업했고, 벌써 직장인 2년차로 맨하탄에서 혼자 살고 있다... 시간 참 겁나게 빠르다! 76번 고속도로가 스퀼킬 강(Schuylkill River)을 만나서부터 정체가 시작되어서, 앞차와의 거리를 충분히 두고 10년만에 다시 만난 필라델피아 빌딩숲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하지만 이제 찾아가는 곳은 저 시내가 아니라, 대부분의 여행객은 듣도 보도 못한 장소인데, 이 때가 위기주부 홀로 작년 12월초에 떠났던 '4차 듣보잡 여행'의 오후였기 때문이다. 고속도로에서 빠지자마자 표지판이 역시 필라델피아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인디펜던스 홀(Independence Hall)의 방향을 알려주는데, 아이비리그 대학투어 가족여행의 마지막 날에 방문했던 그 곳의 여행기를 클릭해 보실 수 있다. 그러면 위기주부는 도대체 어디를 찾아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신 분을 위해 아래 지도를 준비했다. 최근 업데이트 된 국립공원청 앱의 지도로 필라델피아를 확대하면 위와 같이 4개의 장소가 표시된다. 그러나 제일 아래쪽 Gloria Dei Church는 제휴된(affiliated) 장소라서 현재 433개의 NPS official unit들에 포함되지 않고, 가운데 인디펜던스 국립역사공원은 10년전에 다녀왔으니, 나머지 2개의 장소를 이제 방문하려는 것이다. 첫번째는 에드거앨런포 국립사적지(Edgar Allen Poe National Historic Site)로 그가 필라델피아에서 약 6년간 시인, 비평가, 편집자로 살며 거의 매년 옯겨다닌 거주지들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물이란다. 다른 오래된 집들처럼 철거될 예정이었지만 열혈팬이 1933년에 구입해서 박물관으로 개장했고, 유언으로 필라델피아 시에 기증한 것을 다시 연방정부가 인수해서 1980년에 국립사적지로 재개장을 했다. 하지만 작은 "Closed for construction" 표시가 비지터센터 문앞에 예상대로 붙어 있었다. 몇 달 전에 확인했을 때는 겨울에 다시 오픈할 예정이라고 했었지만, 미국 공무원들 일하는 스타일로 봐서 언제 재단장이 끝날지 기약이 없는 것을 알기에... 겉모습이라도 구경하려고 찾아왔던 것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안내판에 따르면 그는 뒤쪽의 작은 건물에서 어리고 병약한 아내 Virginia Clemm Poe와 고모인 동시에 장모였던 Maria Poe Clemm과 함께 1843-44년 기간에 살았고, 현재 비지터센터로 사용되고 있는 앞쪽의 큰 건물은 1848년에 추가된 것이다. 그런데 앞쪽 건물의 붉은 벽에 석양의 햇살을 받아 살벌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던 동상이 있었으니... 그가 1845년애 발표한 시(詩)의 제목이기도 한 까마귀(The Raven, 갈가마귀)이다.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en Poe)는 한국에서는 등의 공포/추리 소설의 작가로 많이 알려졌지만, 영문학에서는 를 쓴 시인으로 더 유명해서 그 시에서 까마귀가 읊조리는 말로 처음 등장했던 "Nevermore"라는 단어는 유치원생들도 출처를 알 정도라고 한다. 또한 그가 본격적인 전업작가 생활을 시작했고 또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던 도시인 볼티모어를 연고로 하는 미식축구 팀의 이름이 '레이븐스(Ravens)'인 것도 그 시에서 유래했다. 건물 내부에서 가장 인기있는 장소는 바로 안내판에서도 대표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는 지하실인데, 그 이유는 바로 그의 다른 대표작인 에서 벽 속의 시체와 함께 한쪽 눈이 없는 검은 고양이가 나타나는 지하실이 바로 이 곳을 모티브로 했기 때문이란다. 약간은 허전한 느낌을 가지고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하려다 잠시 옆건물로 눈을 돌렸는데, 특유의 애매한 눈빛으로 위기주부를 바라보는 포(Poe)가 거기에 있었다! 이 포스팅을 쓰면서 그의 일생에 대한 나무위키의 설명을 참 재미있게 읽어서, 언젠가는 여러 작품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볼티모어에는 그의 묘지와 함께 그가 살았던 집이 사설 박물관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는데, 여기를 클릭하시면 블로그 이웃이신 짱남님이 방문했던 여행기를 보실 수 있다. 남쪽으로 10분 정도 차를 달려서 두번째 목적지인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 국립기념관(Thaddeus Kosciuszko National Memorial)을 찾아왔는데, 다닥다닥 붙은 오래된 아파트들 중에서 눈에 띄는 삼각형 지붕의 건물이다. 예전에 백악관과 그 주변을 소개한 글에서 미국독립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외국인 4명을 모아 놓은 라파예트 공원에 있는 그의 동상을 간단한 소개와 함께 사진으로 보여드린 적이 있다. 폴란드 군사학교를 졸업한 코슈추슈코(Kosciuszko)는 1776년에 30세의 나이로 아무 연고도 없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와, 미국독립 전쟁에 자원해 6년간 공병장교로 활약해서 준장 계급을 받는다. 그 후 유럽으로 돌아가 고국 폴란드의 독립을 위해 또 싸우다가 러시아에 붙잡혀 징역을 살고 석방되는데, 이 곳은 그 후에 그가 다시 미국을 방문한 1797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지냈던 숙소이다. 이 곳은 이유도 없이 그냥 "Closed"가 붙어 있는데, 그 이유는 방문했던 겨울철에는 아예 문을 열지 않고, 여름철에도 주말 오후에만 잠깐 오픈할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래도 안내판 정도는 하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모퉁이를 돌아보니, 예상대로 국립공원청에서 세워 놓은 설명판이 눈에 띄었다. 무작정 신생 독립국의 수도였던 필라델피아로 와서는 대륙군에 들어가기 위해서, 벤자민 프랭클린을 찾아가 수학 실력을 보여주고는 공병장교로 추천을 받아서 입대를 할 수 있었단다. 특히 미국 독립전쟁 초기의 가장 중요한 승리로 기록되는 새러토가 전투(Battles of Saratoga)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 후 허드슨 강변의 웨스트포인트(West Point)를 요새화 하는 것을 지휘했다. 전쟁이 끝나고 그 곳에 미국 육군사관학교가 들어설 때, 제일 먼저 세워진 동상의 주인공이 코시치우슈코라고 한다. 안내판의 초상은 좀 영웅적이고 근엄한 모습이지만, 브로셔의 표지로 사용된 아래의 그림은 아주 앳된 얼굴이다. 참고로 그는 폴란드의 국민영웅이기도 해서 공원 브로셔의 뒷면은 특이하게 폴란드어로 만들어져 있었다. 미국 화가 Benjamin West가 런던에서 우연히 만나 그린 그림이라는데, 이 때의 코시치우슈코 나이가 45세라고 하니 굉장히 동안인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전혀 무골(武骨)이 아닌 공학도의 순수함(?)이 느껴지는 얼굴인데, 그가 처음 대서양을 건넜던 이유는 첫사랑의 실패로 지구 반대편에 가서 죽을 작정으로 미국 독립전쟁에 가담했다는 설도 있단다.^^ 이상과 같이 두 위인의 체취가 남았을 지도 모르는 잠겨진 두 문짝만 구경을 하고는 짧은 필라델피아 방문을 마치고 떠나며, 신호를 기다리다가 운전석 차창 밖으로 기념관의 전체 모습을 담아봤다. 정확히 건평이 81제곱미터인 저 건물만 1972년에 국가기념물(National Memorial)로 지정이 되었는데, 현재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넓은 의미의 국립 공원들 433개 중에서 면적이 가장 작은 곳이라고 한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