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에 우리 동네에 있는 트럼프 골프장을 소개하면서, 그가 자랑스럽게 만들어 놓은 "The River of Blood" 동판이 붙어 있는 국기 게양대를 보여드린 적이 있다. 여기를 클릭해서 보실 수 있는 그 포스팅에서, 남북전쟁 당시에 강물을 피로 물들이는 그런 대규모 전투가 그의 골프클럽 바로 옆에서 벌어졌다는 것은 뻥이고, 실제로는 포토맥 강의 상류 11마일 떨어진 리스버그(Leesburg) 강가에서 벌어진 작은 전투가 부근에서 유일한 교전이라고 알려드렸었다. 마침 리스버그 프리미엄아울렛에 급히 환불을 하러 혼자 갈 일이 있는 김에, 현재 북버지니아 지역공원으로 관리되고 있는 그 전쟁터를 둘러보았다.
공원 간판이 나오며 진입로가 비포장으로 바뀌어서, 약간 망설이다가 조심해서 계속 안으로 운전해 들어갔다. 볼스블러프(Ball's Bluff)라는 이름의 '볼(Ball)'은 동그란 공을 말하는게 아니고, 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이름을 딴 George Washington Ball의 성씨인데, 그는 워싱턴의 어머니 Mary Ball 집안의 후손이었단다.
넓은 비포장 주차장의 옆에는 봄~가을의 주말에만 진행되는 무료 가이드투어를 위한 만남의 장소까지 잘 만들어져 있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안내판들도 여러 개가 세워져 있는데, 지도를 겸해서 전투상황을 보여주는 것 하나만 아래에 보여 드린다.
남북전쟁이 발발한 1861년의 7월에 남북이 맞붙었던 첫번째 불런 전투(First Battle of Bull Run) 이후로, 북버지니아에서는 처음으로 다시 교전한 10월 21일의 여기 전투상황을 보여주는 지도이다. 리스버그에 주둔하고 있던 빨간색 남군을 괜히 파란색 북군이 강을 건너 쳐들어 왔다가, 그림처럼 후퇴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에서 포위 공격을 받게 된다. 양측 각각 1,700명 가량이 전투에 참가해서 사상자가 남군은 150명 정도였지만, 북군은 약 1,000명이나 되는 패배로 기록된단다.
트레일을 따라 조금 걸어가면 아래쪽으로 나무들이 거의 없는 풀밭이 나오는데, 가장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이다. 바로 직진하면 거기를 지나서 묘지가 나오지만, 안내에 따라서 왼편으로 Interpretive Battlefield Trail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는데,
그 때 풀숲에서 나타난 사슴 두 마리... 아침 일찍 도로 옆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우리 동네에서는 흔한 야생 동물이다.
소소한 기념비와 안내판 등을 지나서 풀밭을 북쪽으로 돌아 강쪽으로 걸어가니까, 북군의 대포라는 설명과 함께 두 문이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남북전쟁 당시의 이런 대포 사진이 슬슬 지겨워지는 것을 보니, 그 동안 관련된 장소들을 참 많이 소개한 것 같다...^^
전망대인 Bluff Overlook에 도착했지만 빽빽한 나무들 때문에 강물은 내려다 보이지 않았고, 멀리 보이는 언덕의 집은 포토맥 강 건너 메릴랜드 주이다. 5년전 러시모어와 콜로라도/와이오밍 주 자동차 여행의 스코츠블러프(Scotts Bluff) 준국립공원 여행기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여기 이름의 '블러프(bluff)'는 뻥이 아니라 절벽을 뜻한다. 즉, 북군은 하필이면 강가의 절벽 위에서 배수진을 치고 싸웠던 것이다.
조금 하류쪽에 있는 삼거리 표지판으로 강가로 내려가는 River Trail은 딱 봐도 경사가 너무 급해서 포기하고, 묘지가 있는 가운데 초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나무에 칠해진 하늘색 직사각형과 포토맥 헤리티지 트레일(Potomac Heritage Trail) 표식이 보이는데, 여기서 강물로 내려간 후에 조금 더 이어지는 산책로가 버지니아 주 PHT의 마지막 북쪽 끝 구간이었다.
묘지로 향하는 길가의 작은 표석 옆에 성조기가 꽂혀 있고, 주변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캘리포니아 출신 지원병들로 구성되었던 펜실베이니아 71 연대(71st PA Regiment)를 지휘한 에드워드 D. 베이커(Edward Dickinson Baker) 대령이 여기서 전사한 것을 알려주고 있는데, 그가 누군고 하니...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전쟁에서 사망한 현직 상원의원(Senator)으로 그의 유해는 샌프란시스코 국립묘지에 묻혀있다. 그는 1811년 런던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으로 이민와서 일리노이 주에서 변호사가 되어 주의회에서 활동하며 1935년경부터 링컨과 친구가 되었고, 그 후 캘리포니아에서 정치활동을 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북쪽 오레곤으로 옮겨서 남북전쟁 발발 전해에 연방 상원의원으로 뽑혔다. 그래서 1861년 3월에 링컨이 대통령 취임식에 함께 마차를 타고 갈 만큼의 절친이었는데, 그의 전사 소식에 링컨은 거의 쓰러질만큼 오열했단다. 원래 링컨은 친구를 최전방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 여단장급의 소장(major general)에 임명하려 했지만, 그가 자신의 군경력에 비춰 대령(colonel)이면 충분하다며 사양했다고!
그 옆으로 나지막한 돌담으로 둘러싸인 볼스블러프 국립묘지(Ball's Bluff National Cemetery)가 나오는데, 현재 미국 전역의 164개 국립묘지들 중에서 3번째로 작은 규모라 한다.
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에 만들어져서, 이 전투에서 사망한 북군 54명의 유해가 여기 매장되었지만, 신원이 밝혀진 병사는 매사추세츠 주에서 온 1명 뿐이란다. 문이 잠겨 있어서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담 너머로 묘지 내부의 전체 모습이 한 눈에 보인다. 둥글게 세워진 비석은 모두 25개인데, 혹시라도 나중에 무료 가이드 투어를 하게되면 왜 54개가 아닌지는 물어볼 생각이지만... 아마 그럴 가능성은 없을 듯 하다~^^
대통령의 절친까지 전사한 굴욕적인 참패였던 이 전투 이후에, 미의회는 전쟁수행공동위원회(Joint Committee on the Conduct of the War)를 만들어서 전쟁의 진행상황을 감독하고 평가하게 되는데, 지휘관의 교체나 강경한 전략 추진 등으로 남북전쟁의 종전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
초원을 가로질러 돌아가는 길에 이번에는 까만색의 다른 표석이 또 눈에 띄었는데 "그의 고향 주를 지키다가 용감히 쓰러졌다(fell bravely depending his native state)"고 적혀 있다.
Thomas Clinton Lovett Hatcher는 붉은 수염에 193cm의 장신으로 연대깃발을 들고 고향 버지니아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21살의 나이로 이 자리에서 전사한 후에, 리스버그 서쪽의 퍼셀빌(Purcellville) 교회 공동묘지에 묻혔단다... 지금까지 남북전쟁 관련 유적지는 연방정부 국립공원청 소유의 장소들만 둘러보다가, 처음으로 남부연합 지역의 주정부가 관리하는 곳을 방문한 셈인데 분위기에서 미묘한 차이가 느껴졌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남군의 입장에서 내전을 서술하고 전시한 장소들도 있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그런 곳도 찾아가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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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420여곳의 장소들 중에서 '국립군사공원' 분류에 해당하는 25곳은 독립전쟁, 남북전쟁 등에서 중요한 전투가 실제로 일어났던 장소를 기념하는 것으로 National Military Park 9개, National Battlefield Park 4개, National Battlefield 11개, 그리고 National Battlefield Site 1개로 구성되는데, 이들이 군사공원으로 따로 분류되는 이유는 대부분이 1930년대 이전에 지정되어서 전쟁부에서 관리를 하다가 내무부 국립공원청으로 이관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전체 NPS Official Units 정리를 하면서 이 군사공원들이 미서부에는 하나도 없다고 투덜댄 적이 있었는데, 작년에 이사를 온 여기 미동부 버지니아 부근에는 오히려 집중적으로 모여있어서 참으로 격세지감이 든다.
그 중에서 처음으로 가장 유명하다 할 수 있는 펜실베니아 주의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Gettysburg National Military Park)을 방문한 두번째 이야기로, 이제 차를 몰고 남북전쟁의 사망자들이 묻힌 묘지와 실제 전투가 일어났던 격전지들을 돌아보려고 한다. (사진의 박물관과 비지터센터를 둘러본 첫번째 여행기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비지터센터 바로 북쪽에 있는 게티스버그 국립묘지(Gettysburg National Cemetery)는 전투가 끝나고 4개월여 후에, 전사한 연방군의 병사 3,512명의 유해를 안치했는데, 그 후에 세계대전 등의 다른 전사자들의 묘역도 추가되어서 미국의 공식적인 국립묘지들 중의 한 곳이다.
입구로 들어가면 바로 오른편에, 앞서 전편에서 자세히 소개했던 링컨 대통령이 이 곳에서 1863년에 한 연설을 기념해서 1912년에 만들었다는 Lincoln Address Memorial이 그의 흉상과 함께 만들어져 있다.
철책 너머로 많은 비석들이 세워진 곳은 게티스버그 전투 전부터 있던 일반묘지인 Evergreen Cemetery라서 이 언덕이 세메터리힐(Cemetery Hill)로 불렸다. 이 언덕에서도 전투가 있었기 때문에 좌우의 대포와 함께 여기서 싸웠던 웨스트버지니아 출신의 북군들에게 헌정된 기념물이 앞쪽에 보인다.
높이 18 m의 Soldiers' National Monument가 국립묘지 중앙에 세워져 있고, 그 너머에 반원형으로 남북전쟁 북군의 묘역이 배치되어 있다. 그 앞에서 지혜가 지금 읽고 있는 것은 링컨이 출생한 켄터키 주에서 게티스버그 연설을 기념해서 1975년에 만든 기념물이다.
반원형의 묘역은 높은 비석도 없이 바닥에 이렇게 표석으로만 이름을 새겨 놓았는데, 아마도 그 후손 중의 한 명이 최근에 다녀간 모양이다. 미국이 분단될 뻔한 남북전쟁의 묘역에 50개의 별이 박힌 지금의 성조기가 꽂혀있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입구에서 만났던 자원봉사자가 실제로 링컨이 연설을 했던 위치는, 저 멀리 나무 뒤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New York State Monument와 여기의 중간쯤이었다고 설명을 해주셨다. 하지만 이 묘지 말고도 둘러볼 곳이 많았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구경을 하고는 차로 돌아갔다.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의 지도로 비지터센터와 국립묘지가 중앙 오른편에 표시되어 있다. 게티스버그 마을 북쪽은 3일간의 전투 중에서 첫날이라서 그냥 생략하고, 남쪽 왼편으로 만들어진 자동차 투어코스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보았다. 그리고 지도의 제일 왼쪽 아래에 보면 별도의 국립공원인 아이젠하워 국가유적지(Eisenhower National Historic Site)가 있는데, 미국의 34대 대통령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의 농장이 있던 곳이란다. 하지만 5월부터 10월까지만 게티스버그 비지터센터에서 셔틀을 타고 가서 무료투어를 할 수 있고, 당시에는 직접 차로 가서 건물 외관만 볼 수 있다고 해서 이 때는 들리지 않았다.
격전지 자동차 셀프투어에서 제일 먼저 정차한 곳은 지도에 4번으로 표시된 노스캐롤라이나 기념비(North Carolina Memorial)이다. 게티스버그 전투 2일째와 3일째는 서쪽 평지의 남군이 동쪽 언덕의 북군을 공격했는데, 남북전쟁이 내전(civil war)이다 보니까 북군이 묻힌 국립묘지와 함께 이렇게 남군쪽에서 만든 추모비들도 함께 볼 수 있는게 처음에는 신기했다. 올바른 비유인지는 좀 의문이지만... 만약에 한국도 6·25전쟁에서 북진통일을 했다고 가정하면, 인천상륙작전 기념지에 그 곳에서 전사한 북쪽출신 병사들의 위령비가 따로 만들어져 있는 셈이라고나 할까? (노스캐롤라이나는 이름에 'North'가 들어있다고 북군이 아니고, 버지니아 남쪽에 있는 주로 남부동맹에 가담했음)
결과적으로 남군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간 전투라서 그런지, 노스캐롤라이나 기념비로 만들어진 병사들의 동상도 왠지 좀 안타깝고 짠한 느낌이 들었다~
남군의 주둔지들을 연결하는 이 남쪽으로 일방통행 도로의 이름도 West Confederate Ave인데, 그 옆으로는 이렇게 대포들이 수 없이 줄지어 놓여져 있었다. 동쪽 언덕에 있는 북군에게 대포를 발사하려고 하는 아내인데... "큰 나무가 앞에 있어서 쏠 수가 없습니다!"
다음은 남부의 주력군인 버지니아 군대가 주둔했던 장소에 만들어진 Virginia Memorial로 말을 타고있는 동상은 멀리서 봐도 남군 총사령관인 Robert Lee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비록 반란군의 수장으로 군생활을 마감했지만, 남북전쟁 발발 당시에 미국 최고의 군인이었다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는 게티스버그 전투의 마지막 3일째에 George Pickett 소장에게 12,000명을 이끌고 정동쪽으로 약 1 km 떨어진 언덕에 주둔한 북군을 정면돌파할 것을 명령하는데 (지도의 15번 High Water Mark), 이것은 그가 지휘관으로 내린 가장 큰 실수였다. 전편에 소개했던 사이클로라마 그림으로도 그려진 이 무모한 '피켓의 돌격(Pickett's Charge)'으로 남군 5,000명이 1시간만에 전사하며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다음날 빗속에서 버지니아로 퇴각하게 된다.
다른 곳들은 건너뛰고 자동차 투어에서 가장 중요한 곳인 8번 리틀라운드탑(Little Round Top) 언덕에 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이 곳은 전투 2일째에 남군의 2인자였던 롱스트리트(James Longstreet)가 점령을 시도했으나 북군이 필사적으로 방어에 성공한 곳이다. 가운데 보이는 기념비는 이 곳에서 싸웠던 펜실베니아 부대를 추모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있는 언덕 끝 쪽으로 걸어가면...
군복(?)을 입으신 분이 저 멀리 바위 위에 세워진 동상의 사진을 찍고있는 것이 보인다.
북군의 공병대 장교였던 워렌(Gouverneur K. Warren)은 방비가 허술했던 이 언덕이 요충지임을 파악하고, 남군의 공격에 대비해서 미리 병력을 보충하도록 해서 "Hero of Little Round Top"이라고 불린단다.
그래도 남군의 반복되는 돌격에 북군도 병력이 부족해졌고, 탄약까지 모두 떨어지자 메인 주에서 온 체임벌린(Joshua Chamberlain)이 이끄는 연대는 '착검 돌격'으로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남군을 육탄전으로 물리치며 이 고지(高地, high ground)를 사수했다고 한다.
역시 전투에서는 높은 위치에 자리를 잡는 것이 중요한데, 일찌기 오비완 케노비가 아나킨 스카이워커와 용암이 흐르는 무스타파 행성에서 맞짱을 뜰 때 마지막에 한 말이 있다... "I Have the High Ground!"
마침 5월 4일 스타워즈데이(Star Wars Day)도 다가오고 해서, 해당 영화장면과 대사를 이용해서 정말 잘 만든 뮤직비디오가 있어서 소개해드린다. 참 대단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 듯...^^
자신의 뉴욕 주 부대를 이끌고 이 고지를 방어하다가 26살로 숨진 Patrick O'Rork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의 뒤로 1889년에 뉴욕 주에서 만든 추모탑이 작은 성처럼 우뚝 서있다.
모녀가 어느새 성의 위에 올라가서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찍어주고 뒤따라 올라갔더니 벌써 내려오더라는...
미국 남북전쟁 최대의 전투가 벌어졌던 게티스버그 들판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2022년 봄방학 여행의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언덕을 내려가서도 자동차 투어코스가 더 남아있기는 했지만, 표지판을 놓치면서 다음 번호를 찾아가는 것을 관두고 그냥 약 1시간반 거리의 집으로 향했다.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Gettysburg National Military Park)은 이런 경치를 보기 위해서 일부러 다시 찾아갈 것 같지는 않지만, 펜실베니아의 주도인 해리스버그(Harrisburg)에 여행을 간다거나 또는 그 위쪽으로 지나가는 길이라면 잠시 들러서, 이번에 다 보지 못한 다른 격전지와 기념물들도 둘러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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