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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트 갤러틴을 아시나요? 펜실베니아의 프렌드쉽힐 국립사적지(Friendship Hill National Historic Site)

앨버트 갤러틴을 아시나요? 펜실베니아의 프렌드쉽힐 국립사적지(Friendship Hill National Historic Site)

거의 한 달만에 여행기를 쓰려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 그래봐야 또 별볼일 없는 국립공원에 관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작년 여름부터 일부러 찾아다녀, 이제 집에서 2시간 이내 거리에는 NPS Official Unit들이 정말 2~3곳밖에 남지를 않았는데, 거기는 '별볼일 있는' 곳들이라서 아내와 함께 갈 장소로 계속 남겨두고 있다. 그래서 모처럼 혼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낼 수 있었던 지난 월요일에, 처음으로 범위를 넓혀서 편도 3시간 내외가 걸리는 여러 곳들을 묶어서 다녀온 첫번째 시리즈를 시작한다. 위의 경로와 같이 집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향해서,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주의 남서부에 있는 5개의 '내셔널'들과 다른 유명한 장소 하나까지 더해, 총 6곳을 하루만에 모두 둘러보았다. 저녁 8시에 집으로 돌아와 계기판을 확인해보니, 총 운전시간이 정확히 딱 10시간에 주행거리는 512마일(824 km)이었다. "오래간만에 쉬는 날 이게 뭐하는 짓이냐?" 새벽 4시반 출발의 긴장이 풀어지며 잠이 좀 온다는 느낌이 들때, 고맙게 등장해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분홍색 봄꽃 너머로 바라본 주황색 아침 여명이다~ 좀 더 기다려 일출까지 감상하려 했지만, 이 날 꽃샘추위가 극심해서 내리기 전 확인한 계기판의 온도계가 섭씨로 영하였다는...! 뒤돌아 본 메릴랜드 주의 사이들링힐 웰컴센터(Sideling Hill Welcome Center) 모습으로, 건물 오른편으로 도로를 만들기 위해 산을 깊이 깍은 것이 보인다. 저 고개를 넘어 계속 서쪽으로 달려야 하는 고속도로가 인터스테이트 68번 겸 국도 40번인데. 이 루트가 바로 1800년대 초에 신생국가 미국의 첫번째 국책사업으로 만들어진 동서를 잇는 마찻길인 '내셔널로드(National Road)' 구간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으로, 이에 대해서는 본 시리즈 여행기의 다음 편에서 자세히 설명될 예정이다. 1시간을 더 달려 "Wild and Wonderful" 웨스트버지니아 주에 들어가니까, 또 딱 맞취서 아주 잘 지어놓은 휴게소가 나온 덕택에, 졸음을 쫓고 보온병에 넣어간 커피와 아침을 먹었다. 그렇게 두 번이나 쉬면서 거의 4시간만에 펜실베니아 주에 있는 첫번째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프렌드쉽힐 국립사적지(Friendship Hill National Historic Site)라는 이름만으로는 어떤 곳인지 짐작하기 어려우니, 친절하게 그 밑에 누구의 집이었다고 적어 놓았다. 붉은 필기체 서명은 앨버트 갤러틴(Albert Gallatin)으로 그의 이름은 백악관과 그 주변을 소개했던 예전 포스팅에 이미 한 번 등장한 적이 있다. "LA 바닷가에 있는 우정의 종각은 가봤어도, 우정의 언덕은 또 처음이네~" 간판이 세워진 숲을 빠져 나오면, 파란 초원에 좌우로 가로수가 잘 심어진 진입로가 나와서, 언덕 위의 멋진 저택이 나올 것을 직감하게 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넓은 주차장에는 멀러 보이는 국립공원청 차량만 한 대 세워져 있었는데, 파크레인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난 앨버트 갤러틴은 19살이던 1780년에 신생 독립국인 미국으로 와서 하버드 대학에서 프랑스어 강사를 한 후에, 22살에 느닷없이 당시로는 가장 변방인 서부 펜실베니아 시골에 땅을 사서는 지역 유지 및 정치인이 된다. 그 후 연방 하원의장을 거쳐서 불과 40세인 1801년에 미국 재무장관이 되어 무려 13년간 역임했고, 그 후에는 외교관으로 프랑스와 영국 대사를 거쳐서, 말년에는 지금의 뉴욕 대학교(New York University, NYU)를 설립하기도 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중간에 그의 동상이 만들어져 있는데, 앞서 설명한 그가 활약한 분야들인 정치/경제/외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측량을 하는 모습이다. 그는 일찌기 서부개척에 미국의 미래가 있음을 예견해서 이리로 이사를 왔고, 지리학에 밝아서 상기의 National Road를 어디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이 지역을 방문한 워싱턴 대통령을 직접 만나 설명하기도 했단다. 그래서 재무장관 시절에 루이지애나 매입과 루이스/클라크 탐험대 후원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게 된다. 또한 언어학에도 뛰어나서 원주민 언어를 최초로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통해서 남북 아메리카 인디언이 모두 아시아에서 이주해왔다는 주장을 처음 한 사람으로 '미국 민족학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단다. 한 마디로 다재다능, 박학다식 그 자체! 그가 여기를 '우정의 언덕(Friendship Hill)'으로 부르며 1789년부터 집을 짓고, 아래쪽 강가에 자신의 고향을 기려 뉴제네바(New Geneva)라는 마을을 만들어서 유리 공장을 세웠단다. 하지만 중앙 정계로 진출해 장관과 외교관이 되고, 그 후에도 뉴욕시에서 계속 활동했기 때문에 여기에 살았던 기간은 길지 않으며, 결국 1832년에 다른 사람에게 집과 땅을 모두 팔았다고 한다. 제일 왼편의 돌로 된 외벽 부분과 우물 정도가 갤러틴이 소유했을 때 모습이고, 그 오른편과 나머지 많은 부분들은 다음 집주인이 개보수와 증축을 한 것이란다. 왠지 전설이 있을 것 같은 우물 속이 궁금해서 내려다 보니, 현대적 자물쇠로 옛날 나무로 된 입구를 잠궈 놓은게 특이했다. 비지터센터가 건물 안에 만들어져 있고, 그리로 통해서 자유롭게 집 내부도 일부 구경을 할 수 있지만, 4월말까지는 주말에만 문을 열기 때문에 직접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새로운 주인이 강을 내려다 보는 곳에 만든 정자(gazebo)는 이 지역의 사교장으로 유명했는데, 절벽이 무너질 위험이 있어서 국립공원 지정 후에 안쪽으로 옮겨 다시 만든 것이라는 설명이 안내판에 적혀 있다. 저 끝에서 축대 아래쪽을 내려다 보면, 그 옛날에는 수 많은 배들이 오가던 모논가헬라 강(Monongahela River)이 지금은 조용히 흐르고 있다. 이 강은 사진 오른편 북쪽으로 흘러 피츠버그에서 앨러게니 강(Allegheny River)과 합류해 오하이오 강이 되어 결국 미시시피 강과 연결되기 때문에, 갤러틴이 그 당시에는 모든 산업의 동맥인 뱃길을 끼고 있는 이 땅을 구입했던 것이다. 앞마당 잔디밭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주인이 바뀌며 증축이 많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국가유적으로 등록될 때까지 개인소유였다가, 정부가 구입해서 필요한 수리를 거친 후에 1978년에 국립사적지가 되었다. 그리고 언덕 아래로 아침 햇살에 빛나는 평화로운 초원의 풍경을 바라보니, 그냥 바로 떠나기는 좀 섭섭한 듯 하길래...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만난 앨버트 옹과 셀카 한 장 함께 찍었다.ㅎㅎ 공원 홈페이지 서두에는 그를 '잊혀진 건국의 아버지(America's Forgotten Founding Father)'로 부르지만, 실제 미국의 독립보다는 그 후에 주로 활동을 한 사람이다. 그러나 제4대 재무부 장관으로 미국이 지금의 세계최대 경제대국이 되는 토대(foundation)를 마련한 사람이기에 꼭 틀린 말도 아닌 듯 하다. 타주의 별볼일 없는 국립공원들까지 돌아봤던 나들이의 다음 편은, 누구나 다 아는 '국부(國父)' 조지 워싱턴의 젊은 시절 이야기로 이어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앨버트 갤러틴을 아시나요? 펜실베니아의 프렌드쉽힐 국립사적지(Friendship Hill National Historic Site)

앨버트 갤러틴을 아시나요? 펜실베니아의 프렌드쉽힐 국립사적지(Friendship Hill National Historic Site)

거의 한 달만에 여행기를 쓰려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 그래봐야 또 별볼일 없는 국립공원에 관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작년 여름부터 일부러 찾아다녀, 이제 집에서 2시간 이내 거리에는 NPS Official Unit들이 정말 2~3곳밖에 남지를 않았는데, 거기는 '별볼일 있는' 곳들이라서 아내와 함께 갈 장소로 계속 남겨두고 있다. 그래서 모처럼 혼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낼 수 있었던 지난 월요일에, 처음으로 범위를 넓혀서 편도 3시간 내외가 걸리는 여러 곳들을 묶어서 다녀온 첫번째 시리즈를 시작한다. 위의 경로와 같이 집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향해서,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주의 남서부에 있는 5개의 '내셔널'들과 다른 유명한 장소 하나까지 더해, 총 6곳을 하루만에 모두 둘러보았다. 저녁 8시에 집으로 돌아와 계기판을 확인해보니, 총 운전시간이 정확히 딱 10시간에 주행거리는 512마일(824 km)이었다. "오래간만에 쉬는 날 이게 뭐하는 짓이냐?" 새벽 4시반 출발의 긴장이 풀어지며 잠이 좀 온다는 느낌이 들때, 고맙게 등장해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분홍색 봄꽃 너머로 바라본 주황색 아침 여명이다~ 좀 더 기다려 일출까지 감상하려 했지만, 이 날 꽃샘추위가 극심해서 내리기 전 확인한 계기판의 온도계가 섭씨로 영하였다는...! 뒤돌아 본 메릴랜드 주의 사이들링힐 웰컴센터(Sideling Hill Welcome Center) 모습으로, 건물 오른편으로 도로를 만들기 위해 산을 깊이 깍은 것이 보인다. 저 고개를 넘어 계속 서쪽으로 달려야 하는 고속도로가 인터스테이트 68번 겸 국도 40번인데. 이 루트가 바로 1800년대 초에 신생국가 미국의 첫번째 국책사업으로 만들어진 동서를 잇는 마찻길인 '내셔널로드(National Road)' 구간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으로, 이에 대해서는 본 시리즈 여행기의 다음 편에서 자세히 설명될 예정이다. 1시간을 더 달려 "Wild and Wonderful" 웨스트버지니아 주에 들어가니까, 또 딱 맞취서 아주 잘 지어놓은 휴게소가 나온 덕택에, 졸음을 쫓고 보온병에 넣어간 커피와 아침을 먹었다. 그렇게 두 번이나 쉬면서 거의 4시간만에 펜실베니아 주에 있는 첫번째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프렌드쉽힐 국립사적지(Friendship Hill National Historic Site)라는 이름만으로는 어떤 곳인지 짐작하기 어려우니, 친절하게 그 밑에 누구의 집이었다고 적어 놓았다. 붉은 필기체 서명은 앨버트 갤러틴(Albert Gallatin)으로 그의 이름은 백악관과 그 주변을 소개했던 예전 포스팅에 이미 한 번 등장한 적이 있다. "LA 바닷가에 있는 우정의 종각은 가봤어도, 우정의 언덕은 또 처음이네~" 간판이 세워진 숲을 빠져 나오면, 파란 초원에 좌우로 가로수가 잘 심어진 진입로가 나와서, 언덕 위의 멋진 저택이 나올 것을 직감하게 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넓은 주차장에는 멀러 보이는 국립공원청 차량만 한 대 세워져 있었는데, 파크레인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난 앨버트 갤러틴은 19살이던 1780년에 신생 독립국인 미국으로 와서 하버드 대학에서 프랑스어 강사를 한 후에, 22살에 느닷없이 당시로는 가장 변방인 서부 펜실베니아 시골에 땅을 사서는 지역 유지 및 정치인이 된다. 그 후 연방 하원의장을 거쳐서 불과 40세인 1801년에 미국 재무장관이 되어 무려 13년간 역임했고, 그 후에는 외교관으로 프랑스와 영국 대사를 거쳐서, 말년에는 지금의 뉴욕 대학교(New York University, NYU)를 설립하기도 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중간에 그의 동상이 만들어져 있는데, 앞서 설명한 그가 활약한 분야들인 정치/경제/외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측량을 하는 모습이다. 그는 일찌기 서부개척에 미국의 미래가 있음을 예견해서 이리로 이사를 왔고, 지리학에 밝아서 상기의 National Road를 어디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이 지역을 방문한 워싱턴 대통령을 직접 만나 설명하기도 했단다. 그래서 재무장관 시절에 루이지애나 매입과 루이스/클라크 탐험대 후원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게 된다. 또한 언어학에도 뛰어나서 원주민 언어를 최초로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통해서 남북 아메리카 인디언이 모두 아시아에서 이주해왔다는 주장을 처음 한 사람으로 '미국 민족학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단다. 한 마디로 다재다능, 박학다식 그 자체! 그가 여기를 '우정의 언덕(Friendship Hill)'으로 부르며 1789년부터 집을 짓고, 아래쪽 강가에 자신의 고향을 기려 뉴제네바(New Geneva)라는 마을을 만들어서 유리 공장을 세웠단다. 하지만 중앙 정계로 진출해 장관과 외교관이 되고, 그 후에도 뉴욕시에서 계속 활동했기 때문에 여기에 살았던 기간은 길지 않으며, 결국 1832년에 다른 사람에게 집과 땅을 모두 팔았다고 한다. 제일 왼편의 돌로 된 외벽 부분과 우물 정도가 갤러틴이 소유했을 때 모습이고, 그 오른편과 나머지 많은 부분들은 다음 집주인이 개보수와 증축을 한 것이란다. 왠지 전설이 있을 것 같은 우물 속이 궁금해서 내려다 보니, 현대적 자물쇠로 옛날 나무로 된 입구를 잠궈 놓은게 특이했다. 비지터센터가 건물 안에 만들어져 있고, 그리로 통해서 자유롭게 집 내부도 일부 구경을 할 수 있지만, 4월말까지는 주말에만 문을 열기 때문에 직접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새로운 주인이 강을 내려다 보는 곳에 만든 정자(gazebo)는 이 지역의 사교장으로 유명했는데, 절벽이 무너질 위험이 있어서 국립공원 지정 후에 안쪽으로 옮겨 다시 만든 것이라는 설명이 안내판에 적혀 있다. 저 끝에서 축대 아래쪽을 내려다 보면, 그 옛날에는 수 많은 배들이 오가던 모논가헬라 강(Monongahela River)이 지금은 조용히 흐르고 있다. 이 강은 사진 오른편 북쪽으로 흘러 피츠버그에서 앨러게니 강(Allegheny River)과 합류해 오하이오 강이 되어 결국 미시시피 강과 연결되기 때문에, 갤러틴이 그 당시에는 모든 산업의 동맥인 뱃길을 끼고 있는 이 땅을 구입했던 것이다. 앞마당 잔디밭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주인이 바뀌며 증축이 많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국가유적으로 등록될 때까지 개인소유였다가, 정부가 구입해서 필요한 수리를 거친 후에 1978년에 국립사적지가 되었다. 그리고 언덕 아래로 아침 햇살에 빛나는 평화로운 초원의 풍경을 바라보니, 그냥 바로 떠나기는 좀 섭섭한 듯 하길래...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만난 앨버트 옹과 셀카 한 장 함께 찍었다.ㅎㅎ 공원 홈페이지 서두에는 그를 '잊혀진 건국의 아버지(America's Forgotten Founding Father)'로 부르지만, 실제 미국의 독립보다는 그 후에 주로 활동을 한 사람이다. 그러나 제4대 재무부 장관으로 미국이 지금의 세계최대 경제대국이 되는 토대(foundation)를 마련한 사람이기에 꼭 틀린 말도 아닌 듯 하다. 타주의 별볼일 없는 국립공원들까지 돌아봤던 나들이의 다음 편은, 누구나 다 아는 '국부(國父)' 조지 워싱턴의 젊은 시절 이야기로 이어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날아서 주택 2층에 꽂힌 토요타 코롤라 충돌 사고

날아서 주택 2층에 꽂힌 토요타 코롤라 충돌 사고

자유로의 꿈|2023년 8월 10일

안녕하세요? 가장 빠른 자동차 뉴스와 F1 소식, 자동차 전문지식을 전하는 사냥꾼입니다. 말 그대로 해외 토픽입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데카투르 타운쉽 알파라타 로드에서 벌어진 일인데요, 자동차가 날아가서 주택 2층에 꽂혀버리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사고 차량은 2006년식 토요타 코롤라라고 합니다. 이 사고는 펜실베니아 소방서가 페이스북에 피드를 올리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차가 어떻게 집 2층을 이렇게 때려박을 수 있을까요?ㅎ 집 주인은 다치지 않았고, 운전자 Evan Miller는 Geisinger Lewiston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자동차가 날아서 집에 충돌한 것이 처음이 아니라, 최근 일주일.......

보스턴 1박2일 왕복에서 유일하게 들린 곳인 펜실베니아 허쉬초콜릿월드(Hershey's Chocolate World)

반응형 지난 3월 봄방학때 처음으로 워싱턴DC에서 보스턴까지 750 km를 1박2일로 운전해서 올라간 것과, 또 지혜를 픽업해서 2박3일로 여행하며 내려온 것을 이미 소개해드렸었다. 두 달이 지나서 여름방학을 한 지혜가 기숙사의 짐을 모두 빼야해서, 또 다시 차를 몰고 보스턴까지 그 먼거리를 그냥 1박2일만에 빡세게 왕복을 했는데... 우리 가족 여름휴가 여행기의 프롤로그로, 둘쨋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린 펜실베니아 주의 관광지 한 곳을 보여드린다. 그 전에 먼저 첫쨋날의 사진 한 장만 보여드리면, 토요일 오후 3시반에 출발을 해서 밤 9시반에 기름을 넣고있는 여기는 코네티컷 주의 뉴타운(Newtown)이라는 시골 마을인데, 10년전에 발생했던 가장 슬프고 끔직했던 총기난사 사건으로 어린이들이 희생되었던 샌디훅(Sandy Hook) 초등학교가 있는 곳이었다. 원래 계획은 지난 번처럼 이쯤에서 숙박을 하는 것이었는데, 전날 예일 대학교가 졸업식을 해서 그런지 적당한 가격의 방이 부근에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2시간여를 더 운전해서 자정 가까운 시간에 보스턴 근교까지 가서 숙박을 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일찍 지혜의 기숙사로 가서 짐을 뺄 수가 있었다. 원래 계획은 추가로 1박을 하면서 근처의 다른 여행지들을 둘러보고 월요일에 집에 돌아가는 것이었지만, 곧 비행기를 타고 여름휴가를 떠날건데 굳이 1박을 더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아서, 집으로 그냥 바로 내려가기로 했다. 대신에 경로를 조금 돌아가더라도 일부러 내륙쪽으로 잡아서, 이제부터 보여드리는 '달달한 여행지' 한 곳을 잠깐이라도 들러서 구경하기로 했다. 펜실베니아의 주도인 해리스버그(Harrisburg) 동쪽에 있는 허쉬초콜릿월드(Hershey's Chocolate World)는 1894년에 창업한 미국 허쉬 초콜릿 회사의 첫번째 공장이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비지터센터로 1973년에 문을 열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소나기가 내리던 날씨라서 모녀가 우산을 받쳐쓰고 입구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허쉬초콜릿월드는 이 곳을 시작으로 해서 현재 전세계에 5곳이 있는데, 나머지는 차례로 라스베가스 스트립, 나이아가라 폭포, 뉴욕 타임스퀘어, 그리고 아시아 싱가포르에 만들어졌다. 반짝이는 포토부스에서 사진을 찍는 방문객들인데,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찍어 준 후에... 허쉬스(Hershey's), 키세스(Kisses), 리세스(Reese's) 마스코트들과 함께 사진을 부탁해서 찍었다~ 비지터센터 관람과 잠시 후 소개할 투어는 무료이지만, 나머지 여러 체험이나 4D영화 등은 유료이기 때문에 여기서 티켓을 구입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차피 시간도 별로 없었기에 그냥 이렇게 달달한 초콜릿 향기가 가득 풍기는 기념품 코너를 구경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가게 안에는 여러 초콜릿 제품과 관련된 많은 상품들을 살 수 있는데, 여기는 허쉬에서 1907년부터 자체적으로 개발해서 판매하기 시작한 작은 원뿔형의 초콜릿인 키세스(Kisses) 관련상품 진열대이다. 의외로 허쉬 회사에서 가장 매출액이 많다는 리세스 피넛버터컵(Reese's Peanut Butter Cups)은 1923년에 Harry Burnett Reese라는 사람이 개발한 것인데, 1963년에 허쉬가 그의 회사를 인수했다고 한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기다랗고 말랑말랑한 캔디인 트위즐러(Twizzlers)도 1929년에 다른 회사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역시 1982년에 허쉬가 합병을 했단다. 재미있는 것은 위기주부도 좋아하는 이 킷캣(Kit Kat)인데... 이 또한 다른 회사의 제품으로 1969년부터 허쉬가 라이센스를 받아서 생산과 판매를 해왔는데, 문제는 그 회사가 1988년에 허쉬의 경쟁사라 할 수 있는 유럽의 네슬레(Nestlé)에 인수가 된 것이다. 하지만 허쉬의 라이센스는 계속 유효하기 때문에 미국내의 킷캣은 지금도 허쉬의 제품이라는 사실...! 캔디머신에 들어있는 작은 알갱이들도 모두 허쉬에서 생산하는 제품들과 관련이 있는 알갱이들로 채워져 있었다. 앞서 소개한 전세계 5곳의 허쉬초콜릿월드들 중에서도 여기 발생지에만 있는 투어를 하기 위해서 입구로 들어가고 있는데, 벽에 그려진 인상 좋은 노신사가 바로 밀턴 허쉬(Milton S. Hershey)이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이 투어가 우리 가족 여름휴가의 전초전이라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투어로 향하는 기다란 통로를 따라서 2층으로 올라가니까, 이렇게 기념품 매장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는데, 기둥과 벽면을 허쉬바처럼 만들어 놓은 것도 눈에 띄지만, 무엇보다도... 이 계산을 기다리는 기다란 줄... 기념으로 뭐 하나 사려고 해도,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를 했다.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서인지 통로에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서 끝까지 바로 걸어갔는데,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놀이공원에서 볼 수 있는 탑승형 어트랙션으로 움직이는 차에 타고 초콜릿이 생산되는 과정을 정말 최신의 모형과 화면으로 보여주었다. 전체 9분 정도로 조금 길지만 유튜브 동영상을 클릭해서 보시면 투어 전체의 내용을 직접 확인하실 수 있다. 탑승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는 작은 허쉬바를 우리에게 하나씩 챙겨주는 것도 잊지 않아서 정말 즐거웠다. 울트라 사이즈의 키세스 초콜릿을 들고있는 모녀~ 이외에도 커다란 랩탑만한 허쉬바와 사람 얼굴만한 리세스 등도 사서 먹을 수가 있다. 구경을 마치고 입구 옆에 세워진 키세스 자동차 앞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오른쪽 뒤로 보이는 두 개의 굴뚝은 실제 1903년에 여기 만들어진 공장의 일부이다. 왼쪽 뒤의 노란색은 놀이동산인 허쉬파크(Hersheypark)의 롤러코스터로 이외에도 커다란 스타디움과 공연장 등이 모여있는 이 마을의 이름도 허쉬(Hershey)이다. 초콜릿을 정말 좋아하는 분이 아니라면 일부러 찾아갈 필요까지는 없지만, 지난 번에 소개했던 아미시빌리지(Amish Village)와 게티스버그(Gettysburg)에서 가까우므로 충분히 함께 둘러볼만한 곳이다. P.S. 블로그에 정치/사회적인 이슈나 의견은 쓰지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첫번째 사진 아래에 샌디훅 이야기를 해놓고 보니, 어제 또 텍사스의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로 4학년 어린이 19명과 선생님 2명이 사망한 사건을 모른척 할 수가 없네요~ 나이가 18세만 되면 순식간에 수십명을 죽일 수 있는 자동소총을 아무나 구입할 수 있는 나라, 하지만 헌법이 보장한 무장의 권리라는 이유로 총기규제가 절대로 불가능한 나라인 미국... 정말 과격한 말을 여기에 쓰고싶지만 참기로 하고, 이유없이 희생당한 아이들과 선생님의 명복을 빌 뿐입니다. T_T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