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420여곳의 장소들 중에서 '국립군사공원' 분류에 해당하는 25곳은 독립전쟁, 남북전쟁 등에서 중요한 전투가 실제로 일어났던 장소를 기념하는 것으로 National Military Park 9개, National Battlefield Park 4개, National Battlefield 11개, 그리고 National Battlefield Site 1개로 구성되는데, 이들이 군사공원으로 따로 분류되는 이유는 대부분이 1930년대 이전에 지정되어서 전쟁부에서 관리를 하다가 내무부 국립공원청으로 이관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전체 NPS Official Units 정리를 하면서 이 군사공원들이 미서부에는 하나도 없다고 투덜댄 적이 있었는데, 작년에 이사를 온 여기 미동부 버지니아 부근에는 오히려 집중적으로 모여있어서 참으로 격세지감이 든다.
그 중에서 처음으로 가장 유명하다 할 수 있는 펜실베니아 주의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Gettysburg National Military Park)을 방문한 두번째 이야기로, 이제 차를 몰고 남북전쟁의 사망자들이 묻힌 묘지와 실제 전투가 일어났던 격전지들을 돌아보려고 한다. (사진의 박물관과 비지터센터를 둘러본 첫번째 여행기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비지터센터 바로 북쪽에 있는 게티스버그 국립묘지(Gettysburg National Cemetery)는 전투가 끝나고 4개월여 후에, 전사한 연방군의 병사 3,512명의 유해를 안치했는데, 그 후에 세계대전 등의 다른 전사자들의 묘역도 추가되어서 미국의 공식적인 국립묘지들 중의 한 곳이다.
입구로 들어가면 바로 오른편에, 앞서 전편에서 자세히 소개했던 링컨 대통령이 이 곳에서 1863년에 한 연설을 기념해서 1912년에 만들었다는 Lincoln Address Memorial이 그의 흉상과 함께 만들어져 있다.
철책 너머로 많은 비석들이 세워진 곳은 게티스버그 전투 전부터 있던 일반묘지인 Evergreen Cemetery라서 이 언덕이 세메터리힐(Cemetery Hill)로 불렸다. 이 언덕에서도 전투가 있었기 때문에 좌우의 대포와 함께 여기서 싸웠던 웨스트버지니아 출신의 북군들에게 헌정된 기념물이 앞쪽에 보인다.
높이 18 m의 Soldiers' National Monument가 국립묘지 중앙에 세워져 있고, 그 너머에 반원형으로 남북전쟁 북군의 묘역이 배치되어 있다. 그 앞에서 지혜가 지금 읽고 있는 것은 링컨이 출생한 켄터키 주에서 게티스버그 연설을 기념해서 1975년에 만든 기념물이다.
반원형의 묘역은 높은 비석도 없이 바닥에 이렇게 표석으로만 이름을 새겨 놓았는데, 아마도 그 후손 중의 한 명이 최근에 다녀간 모양이다. 미국이 분단될 뻔한 남북전쟁의 묘역에 50개의 별이 박힌 지금의 성조기가 꽂혀있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입구에서 만났던 자원봉사자가 실제로 링컨이 연설을 했던 위치는, 저 멀리 나무 뒤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New York State Monument와 여기의 중간쯤이었다고 설명을 해주셨다. 하지만 이 묘지 말고도 둘러볼 곳이 많았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구경을 하고는 차로 돌아갔다.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의 지도로 비지터센터와 국립묘지가 중앙 오른편에 표시되어 있다. 게티스버그 마을 북쪽은 3일간의 전투 중에서 첫날이라서 그냥 생략하고, 남쪽 왼편으로 만들어진 자동차 투어코스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보았다. 그리고 지도의 제일 왼쪽 아래에 보면 별도의 국립공원인 아이젠하워 국가유적지(Eisenhower National Historic Site)가 있는데, 미국의 34대 대통령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의 농장이 있던 곳이란다. 하지만 5월부터 10월까지만 게티스버그 비지터센터에서 셔틀을 타고 가서 무료투어를 할 수 있고, 당시에는 직접 차로 가서 건물 외관만 볼 수 있다고 해서 이 때는 들리지 않았다.
격전지 자동차 셀프투어에서 제일 먼저 정차한 곳은 지도에 4번으로 표시된 노스캐롤라이나 기념비(North Carolina Memorial)이다. 게티스버그 전투 2일째와 3일째는 서쪽 평지의 남군이 동쪽 언덕의 북군을 공격했는데, 남북전쟁이 내전(civil war)이다 보니까 북군이 묻힌 국립묘지와 함께 이렇게 남군쪽에서 만든 추모비들도 함께 볼 수 있는게 처음에는 신기했다. 올바른 비유인지는 좀 의문이지만... 만약에 한국도 6·25전쟁에서 북진통일을 했다고 가정하면, 인천상륙작전 기념지에 그 곳에서 전사한 북쪽출신 병사들의 위령비가 따로 만들어져 있는 셈이라고나 할까? (노스캐롤라이나는 이름에 'North'가 들어있다고 북군이 아니고, 버지니아 남쪽에 있는 주로 남부동맹에 가담했음)
결과적으로 남군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간 전투라서 그런지, 노스캐롤라이나 기념비로 만들어진 병사들의 동상도 왠지 좀 안타깝고 짠한 느낌이 들었다~
남군의 주둔지들을 연결하는 이 남쪽으로 일방통행 도로의 이름도 West Confederate Ave인데, 그 옆으로는 이렇게 대포들이 수 없이 줄지어 놓여져 있었다. 동쪽 언덕에 있는 북군에게 대포를 발사하려고 하는 아내인데... "큰 나무가 앞에 있어서 쏠 수가 없습니다!"
다음은 남부의 주력군인 버지니아 군대가 주둔했던 장소에 만들어진 Virginia Memorial로 말을 타고있는 동상은 멀리서 봐도 남군 총사령관인 Robert Lee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비록 반란군의 수장으로 군생활을 마감했지만, 남북전쟁 발발 당시에 미국 최고의 군인이었다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는 게티스버그 전투의 마지막 3일째에 George Pickett 소장에게 12,000명을 이끌고 정동쪽으로 약 1 km 떨어진 언덕에 주둔한 북군을 정면돌파할 것을 명령하는데 (지도의 15번 High Water Mark), 이것은 그가 지휘관으로 내린 가장 큰 실수였다. 전편에 소개했던 사이클로라마 그림으로도 그려진 이 무모한 '피켓의 돌격(Pickett's Charge)'으로 남군 5,000명이 1시간만에 전사하며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다음날 빗속에서 버지니아로 퇴각하게 된다.
다른 곳들은 건너뛰고 자동차 투어에서 가장 중요한 곳인 8번 리틀라운드탑(Little Round Top) 언덕에 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이 곳은 전투 2일째에 남군의 2인자였던 롱스트리트(James Longstreet)가 점령을 시도했으나 북군이 필사적으로 방어에 성공한 곳이다. 가운데 보이는 기념비는 이 곳에서 싸웠던 펜실베니아 부대를 추모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있는 언덕 끝 쪽으로 걸어가면...
군복(?)을 입으신 분이 저 멀리 바위 위에 세워진 동상의 사진을 찍고있는 것이 보인다.
북군의 공병대 장교였던 워렌(Gouverneur K. Warren)은 방비가 허술했던 이 언덕이 요충지임을 파악하고, 남군의 공격에 대비해서 미리 병력을 보충하도록 해서 "Hero of Little Round Top"이라고 불린단다.
그래도 남군의 반복되는 돌격에 북군도 병력이 부족해졌고, 탄약까지 모두 떨어지자 메인 주에서 온 체임벌린(Joshua Chamberlain)이 이끄는 연대는 '착검 돌격'으로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남군을 육탄전으로 물리치며 이 고지(高地, high ground)를 사수했다고 한다.
역시 전투에서는 높은 위치에 자리를 잡는 것이 중요한데, 일찌기 오비완 케노비가 아나킨 스카이워커와 용암이 흐르는 무스타파 행성에서 맞짱을 뜰 때 마지막에 한 말이 있다... "I Have the High Ground!"
마침 5월 4일 스타워즈데이(Star Wars Day)도 다가오고 해서, 해당 영화장면과 대사를 이용해서 정말 잘 만든 뮤직비디오가 있어서 소개해드린다. 참 대단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 듯...^^
자신의 뉴욕 주 부대를 이끌고 이 고지를 방어하다가 26살로 숨진 Patrick O'Rork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의 뒤로 1889년에 뉴욕 주에서 만든 추모탑이 작은 성처럼 우뚝 서있다.
모녀가 어느새 성의 위에 올라가서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찍어주고 뒤따라 올라갔더니 벌써 내려오더라는...
미국 남북전쟁 최대의 전투가 벌어졌던 게티스버그 들판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2022년 봄방학 여행의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언덕을 내려가서도 자동차 투어코스가 더 남아있기는 했지만, 표지판을 놓치면서 다음 번호를 찾아가는 것을 관두고 그냥 약 1시간반 거리의 집으로 향했다.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Gettysburg National Military Park)은 이런 경치를 보기 위해서 일부러 다시 찾아갈 것 같지는 않지만, 펜실베니아의 주도인 해리스버그(Harrisburg)에 여행을 간다거나 또는 그 위쪽으로 지나가는 길이라면 잠시 들러서, 이번에 다 보지 못한 다른 격전지와 기념물들도 둘러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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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주부처럼 중고등학교 때 영어공부를 정말로 싫어했던 사람이라도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라고 보통 번역하는 "...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라는 말은 모두 들어보셨을 거다. 영어 전치사 용법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이 구절은 미국 링컨 대통령의 유명한 연설문의 마지막 문장에서 가져온 것인데, 위기주부는 뒤늦게 성문종합영어를 공부하면서 장문독해에 소개된 그 연설문의 첫 문장에 나오는 영어단어 "score"의 뜻이 '점수'가 아니라 '20'이라는 수를 의미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의 자괴감도 새록새록하다.
링컨 대통령이 1863년 11월 19일에 추모사로 그 연설을 했던 곳은 미국 펜실베니아 주의 게티스버그(Gettysburg)로 남북전쟁 최대의 전투가 그해 7월 1일부터 3일간 벌어졌던 곳이다. 봄방학 2박3일 여행의 마지막 방문지로 그 곳에 만들어진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Gettysburg National Military Park)을 찾았는데, 오른편 멀리 거대한 실내체육관처럼 보이는 건물이 비지터센터 겸 박물관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건물 입구의 벤치에 앉아있는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왠지 자신의 이름과 비슷하게 "아브라카다브라!"라고 외치면서 오른손에 쥐고 있는 모자를 들어올리면, 안에서 하얀 토끼가 나올 것 같았다~
여기도 역사공원인 셈이니 안내영화를 꼭 봐야하는데, 이 곳은 영화는 물론 박물관을 구경하는 것도 모두 유료이고 국립공원 연간회원권 소유자에 대한 할인도 전혀 없다. 멀리 직원이 앉아있는 좌우로 두 개의 문이 보이는데, 커다란 극장도 양쪽으로 두 개나 만들어져 있음에도 말이다.
극장 입장을 기다리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한 쪽 벽에 남북전쟁 당시에 사용된 총기류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오전에 들렀던 독립전쟁 유적지에는 칼과 창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지만, 백 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후에는 거의 총기로 승부를 본 모양이었다.
약 20분 정도 길이의 영화 <A New Birth of Freedom>을 보기 위해 극장에 앉았다. 앞쪽 대부분은 단체로 견학을 온 고등학생들이었는데, 친구들과 좋다고 장난치고 떠드는 것은 미국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영화에 유명한 연기자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나래이션의 목소리는 대배우 모건 프리먼(Morgan Freeman)이었다.
영화가 끝나면 관객석 제일 위쪽의 뒷문으로 나가라고 하는데, 그러면 사진의 두 에스컬레이터가 모두 위쪽으로 올라가고 있다. 뒤돌아 보고 찍은 사진에서 오른편은 남군의 총사령관 로버트 리(Robert Lee)이고, 왼편은 북군의 지휘관 조지 미드(George Meade)의 모습이다.
비지터센터 건물이 원형의 실내체육관같이 컸던 이유는 꼭대기에 이렇게 동서남북 방위가 표시된 넓은 원형의 공간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인데, 그 원형 실내의 벽면을 따라서 푸르스름한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은...
3일간의 전투 마지막 날인 1863년 7월 3일의 게티스버그 모습을 360도로 그린 "Battle of Gettysburg" 사이클로라마(Cyclorama) 그림으로, 높이 13 m의 패널을 이어붙여서 원형으로 만들어진 전체 둘레의 길이는 무려 115 m나 되는데, 프랑스의 사이클로라마 전문 화가였던 Paul Philippoteaux를 초빙해서 1884년에 완성했던 초대형 유화이다. 극장의 관객들이 다 올라오고 나면 조명과 효과음을 이용해서 전투상황에 대한 설명을 5분 정도 진행했는데, 비록 그림이 움직이지는 않지만 마치 그 전투의 한 가운데에 서있는 듯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림의 앞쪽에 있는 부서진 대포의 바퀴와 풀들은 그림이 아니고 실물로, 이렇게 대형의 원형(cycle) 그림을 배경으로 만든 디오라마(diorama)인 사이클로라마는 19세기말에 유행한 일종의 '가상현실' 체험공간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많이 만들어졌지만, 이렇게 지금까지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짧은 쇼가 끝나고 전체 그림을 걸어다니며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보스턴에서 처음 공개되어서 20년이 지나고 사람들이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자, 이 지역의 사업가가 옮겨와서 전시하던 것을 국립공원청이 1940년대에 구입해서 1962년에 전용의 원형건물을 만들어서 일반에 공개했었다. 그리고 2003년부터 다시 1천3백만불을 들여서 그림을 완전히 복원하고, 새로 지은 이 비지터센터 건물로 옮겨서 2008년부터 지금과 같이 최신의 기술로 공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전시장에서 내려오면 출구에서 이렇게 그림의 전체 모습과 함께 묘사하고 있는 장면들에 대한 설명을 볼 수가 있다. 방금 우리가 본 사이클로라마는 사실 Paul Philippoteaux가 두번째로 그린 것으로, 1883년에 시카고에서 그가 최초로 그린 작품은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까지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그 후 기증된 노스캐롤라이나 웨이크포레스트 대학교(Wake Forest University)에 많이 훼손된 상태로 보관이 되어 있다. 또한 초기에는 게티스버그 사이클로라마가 워낙 인기가 있어서 다른 도시에서 조악한 모조품들이 몇 개 그려지기도 했단다.
이제 입구에 표검사를 하는 직원이 지키고 있는 유료박물관을 구경할 차례인데, 박물관의 공식 명칭은 '미국 내전의 게티스버그 박물관(The Gettysburg Museum of the American Civil War)'이다.
전시의 규모가 워낙 방대해서 중요한 사진 몇 장만 보여드리면, 남북전쟁의 결정적 계기가 된 1860년 미국 대통령선거의 결과로 4명의 후보들 중에서 북부의 지지를 받은 공화당 링컨의 당선을 보여주고 있다. 선거 직후부터 남부의 주들이 연방을 탈퇴하기 시작했고, 결국 링컨이 대통령에 취임한 이듬해 4월 12일 새벽 4시에 연방군이 주둔한 사우스캐롤라이나 섬터 요새(Fort Sumter)를 남군이 공격하면서 내전이 발발하게 된다. (상세한 전쟁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왼편이 1861년의 미연방의 국기라고 하는데, 가운데 겹친 것을 하나로 본다면 32개 별의 배치가 정말 특이하다. 오른편에 연방을 탈퇴한 11개의 주를 상징하는 11개의 별이 표시된 것이 남부동맹에서 처음 채용한 국기라고 한다.
남북전쟁의 분수령이 되었다고 하는 1863년 7월의 게티스버그 전투는 거의 유일하게 북군의 영토에서 벌어진 전투였고, 지도를 보면 남군이 오히려 북쪽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상세한 전쟁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남군 총사령관인 Lee가 주력부대를 이끌고 북군의 보급로를 끊고 결정적인 타격을 줄 목적으로 우회해서 진격한 것인데, 부하 한 명이 혹시 이러다가 북군이 버지니아 남쪽에 있는 남부동맹의 수도인 리치몬드(Richmond)를 점령하면 어떡하냐고 물었단다. 그러자 Lee가 대답하기를... "그러면 우리가 워싱턴을 점령하고, 수도를 서로 맞바꾸면 되지~"
박물관에는 3일간 전투의 세세한 진행 상황까지 묘사를 해 놓았고, 여러 화면에는 앞서 소개영화에서 봤던 해당일의 전투장면을 반복해서 틀어주고 있었다. 반짝반짝하는 대포가 하나 놓여 있는데, 나중에 차로 전쟁터를 돌아보면 이런 대포를 수 없이 만나게 된다.
남과 북의 포병의 옷을 비교 전시해놓은 모습으로, 남북전쟁은 산업화 이후에 대량 생산된 무기와 모든 물자를 동원한 최초의 총력전이자 현대전이었단다. 또한 지금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참혹하고 인명피해가 많았던 전쟁으로 1865년까지 약 4년 동안에 군인만 62만명이나 죽었다고 한다.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남군이 패배하고 물러나면서, 결국 남북전쟁이 북군의 승리로 끝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벽면에 붙은 수 많은 흑백사진의 주인공들을 포함해 양측 합계 약 5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이는 전투에 참가했던 군인들의 1/3에 해당하는 처철하고 치열한 전투였다는 방증이다.
전투가 끝나고 약 4개월이 지나서야 연방군의 유해를 다 수습해서 급조한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행사의 주최자가 약 2시간의 장황한 연설을 한 이후에 참석한 링컨 대통령에게 한 마디를 부탁했다고 한다. 링컨은 272개의 단어로 약 2분간만 말하고 단상을 내려왔는데, 그것이 바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이자 가장 많이 인용된 연설문이라는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The Gettysburg Address)'이다.
"87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이 대륙에 자유의 정신으로 잉태되고 만인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신념이 바쳐진 새로운 나라를 세웠습니다. ... 이 분들의 죽음을 무위로 돌리지 않으리라 이 자리에서 굳게 결단하여야 하며, 이 나라가 하나님 아래에서 자유의 새로운 탄생을 누려야 할 뿐 아니라,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가 지상에서 소멸하지 않아야 한다는 그 위대한 사명에 우리 스스로를 바쳐야 합니다."로 번역되는 연설의 처음과 끝이 왼쪽에 씌여있고, 그것이 미국의 독립선언과 헌법전문을 하나로 함축하는 '새로운 선언'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제 밖으로 나가서 링컨이 연설을 했던 곳과 실제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들을 돌아볼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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