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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꽝찌먹거리열전: 쌀국수 완전공략
그간 좀 우울한 얘기만 써댄 것 같아서 오늘은 먹는 얘기. 사실 난 음식에 대한 집착이 좀 없는 편이라, 맛집을 찾아 굳이 줄 서서 먹거나 정말 맛있는 걸 먹었다고 다시 먹고 싶어 하거나 그런 게 없다. 외국에서 먹었던 음식을 그리워하지도 않는다. 근데 베트남 음식, 특히 꽝찌에서 먹었던 음식은 정말이지... 먹고 싶은 걸 못 먹는 고통이 이렇게 크다는 걸 처음 알았다. 물론 음식 자체를 먹고 싶다기보단 그걸 먹었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임을 알고 있지만. 어쨌든 이전에 음료 올릴 때와 마찬가지로, 베트남 음식에 대해 다 알지도 못하고 그나마 아는 것도 제대로 연구(?)한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체득형이다 보니 매우 주관적임을 먼저 밝힌다. 가기 전에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쌀국수 많이 먹
나는 파견자다
이 동네(?)에서 파견을 나간다고 하면 보통 ‘해외봉사’를 떠올린다. 파견을 내보내는 기관 대부분 해외봉사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기도 하고, 흔히 말하는 개도국 혹은 후진국에 자의로 나간다는 게 아직 한국에선 봉사로 인식된다는 점도 한몫 한다. 거기다 나이든 분일수록 개발협력 분야는 낯선 세계라 우리 부모님도 주변에서 나 어디 갔냐고 물으면 그냥 해외봉사 갔다고 말씀하셨다. (참고로 엄마는 여전히 친척들이나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하는 게 너무 어렵다고 하신다. 팔순의 외할머니는 오죽하랴. 과년한 손녀딸의 결혼이 지상목표 3위쯤 되는 외할머니는 내 선자리 알아보는데 직업을 뭐라고 하면 되냐고 건수가 있을 때마다 되물으신다...) 이 ‘봉사’라는 명칭에 대한 이의는 따로 언급할 기회가

장애아동의 장애가 보이지 않을 때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전 포스팅에 이어 변화 시리즈 2탄 되겠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처음으로 꽝찌를 방문했을 때 얘기를 먼저 해야 한다. 그동안 서류나 사진으로만 접했던 곳을 드디어 내 눈으로 본다는 생각에 조금쯤 두근거리기도 했던 그때. 베트남 전쟁 피해라니, 장애아동이라니, 매우 가난한 마을이라니. 모든 조건이 이 분야에 발 딛은 초짜들이 흔히들 생각하는 '현장'과 부합했다. 방문 중에 센터 아동 전체를 불러 한 명씩 물리치료를 하며 상태를 파악하고 기록하는 일정이 있었다. 내 역할은 치료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아이들의 사진을 찍는 것이었는데 뷰파인더로 아이들을 보며 몇 번이나 울컥했는지 모른다. 그때 내 상태는 거의 전후 첫 방문한 외국인 수준이었으므로 눈에 담는 모든 풍경에 전쟁 당시가 오버랩

서울촌놈이 감동한 풍경이란
꽝찌 생활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지나치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건기인 여름은 숨막히는 더위로 힘들긴 해도 하늘만큼은 마치 우리의 겨울처럼 청명해서, 구입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비루한 똑딱이로도 괜찮은 결과물을 건질 수 있었다. 내 업무 특성상 '이 길을 지나간 최초의 외국인'의 영광을 누릴 수 있을 몇몇 곳들은 정말 숨겨놓고 싶을 정도였다. 언제 아름다운 풍경이 나타날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항상 카메라를 소지했고, 쎄옴을 타고 달리며 찍는 기술은 나날이 발전했다(많은 사진들이 달리는 오토바이 위에서 찍은 것들이다). 물론 풍경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내가 도시 출신이라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내가 있던 지역은 아니지만 다른 지방에 파견되었던 어떤 한국인은 원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