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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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A Space Odyssey (1968)
유인원이 허공에 던진 짐승의 뼈가 우주선으로 넘어가는 매치컷으로 유명하다. 우주라는 억겁과 무한함의 시공간에서 인류의 발전사란 그렇게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작아지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데 그게 불쾌하지 않은 영화. HAL과의 대결을 끝으로 인류의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는 주인공. 이 지점에 개인적인 가장 궁금한 의문이 있다. 영화 속 어딘가 존재하는 우주적 존재(그것이 모노리스이든 아니든)의 판단으로는,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지능이 자신만의 논리의 자의식으로 인간을 역습하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 현생 인류의 최종 단계라고 상정한 것일까. 아니면 피조물에게 압도당한 시점에서 이미 현생 인류의 가능성이 바닥나고 한계점에 봉착했다는 뜻일까. 어느 쪽이든, 우주적 기운이 작용해 인류를 "다음 단

해피 데스데이 Happy Death Day (2017)
[사랑의 블랙홀]에서 명백히 영향받은 "워너비"이자, 노골적으로 의식한 작위적 안테테제의 영화. 영원히 하루라는 삶이 반복된다면 그것을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던 철학적 질문 대신 그것을 뒤집어, 단 한 번이어야할 죽음이 수도 없이 되풀이 된다면 그것은 산 것인가 죽은 것인가를 탐구한다. 조금은 투박하지만 구체적으로 장르화 하기에는 쌈박한 명제다. 하필 죽는 날이 생일이라는, 그럴싸하지만 아무 의미없는 상징성도 덤으로 붙는다. 즉 영화는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느슨한 틀에 트랩과 도전 과제를 덧붙임으로써 일종의 게임처럼 구성된다. 그러나 여기서 치명적인 실수. 게임에는 룰이 존재해야 한다. 관객을 게임 구경꾼으로 끌어들였다면 공정한 게임의 룰을 소개해야 했다. 같은 하루의 반복이라는 포맷의 게임에서

쥬만지 Jumanji (1995)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성난 짐승들, 살인 식물과 사냥꾼. '보드 게임'의 트랩들이 현실로 튀어나온다는 상상, 이것은 "실사화"에 대한 실사화 영화다. 굴리고, 달아나고, 싸운다는 게임 감각. 그러나 그런 장르적인 재미를 떠나서도, 영화는 궁극의 인생 시뮬레이션이기도 하다. '쥬만지'라는 게임의 진정한 마법은 게임 과정 자체가 아닌, 게임이 끝난 후에 작동한다. 말(piece)이 골인점에 도착하고 쥬만지 사인을 외치면 게임 시작 전으로 모든 게 돌아가버린다는 극단적인 룰. 그 어떤 SF 문학, 영화보다도 감각의 체험과 시간적 회수 범위를 넓게 잡은 가상현실이다. 상상하기 나름이다. 게임을 시작한 이후 부터 게임을 끝내기 전 까지는 어떠한 체험, 어떠한 선택도 가능한 것이다.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를

너의 이름은 君の名は。 (2016)
타임슬립에 신체 교환, 주술 등, 로맨스 작품에서 서브로 쓰기 좋은 판타지적 설정들이 버라이어티하게 뒤엉켜있다. 어디에 방점을 두느냐의 문제일텐데, 오바야시 노부히코의 1982년작 영화 [전학생]과 그 원작 소설이 토대가 된 남녀 신체 교환의 코드 쪽이 가장 흥미롭다. 타키와 미츠하는 황혼 전 까지 (서로를 인지하고) 만난 적이 없지만, 수 없이 많이 몸이 바뀌었었다는 경험들만으로 이미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이것은 고도의 "자기애(自己愛)"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타키와 미츠하는 "객체"로서 상대방을 느낀 경험 대신, 자신 스스로 그 사람이 되어 산 기억의 누적들을 통해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즉, 자신이 살았던 또 다른 삶의 주체(또 다른 나)를 사랑하게 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사람

![[일상] Eave 65와 목새 택타일 | 토프레 무접점 느낌 | 타건 영상 있음](https://img.zoomtrend.com/2026/06/07/1780838085-SE-77297eb3-90bf-43a7-9629-75fd8530e370.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