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뮤지엄(Museum)'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는 않는 미술관이나 또는 작은 전시장이 있는 기념관 등을 모두 포함해서 넓은 의미의 박물관으로 따진다면,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는 약 70~80개의 박물관이 있다고 한다. 4월의 두번째 일요일에 의욕적으로 내셔널몰에 있는 박물관 한 곳에 문 열자마자 들어가 보겠다고 오전 10시 좀 넘어서 도착했지만, 그 오픈하는 시간에는 주차할 곳을 찾는 것이 오후보다 더 어려웠다. 한 바퀴를 돌아도 주차를 못해서 포기하고, 약간 북쪽에 떨어져 있는 다른 곳을 찾아가기로 했는데, 아직도 못 가본 박물관들이 수두룩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1월에 대학교 후배의 초대로 NBA 농구경기를 스위트석에서 봤던 캐피탈원 체육관이 왼쪽에 보이는데, 한자로 '體育中心'이라 씌여져 있는 이유는 이 동네가 DC의 차이나타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른쪽 건너편에 이 날 '꿩 대신 닭 두마리'로 선택된 건물이 보인다.
두 개의 간판 위쪽에는 스미소니언(Smithsonian) 로고와 함께 이 건물의 공식적인 Donald W. Reynolds Center for American Art and Portraiture 이름이 같이 새겨져 있고, 여기 입주해 있는 두 미술관의 포스터가 각각 들어가 있어서 '한 지붕 두 미술관'을 둘러본 이야기를 두 편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런데, 문제는 이 미술관 건물의 오픈시간은 오전 11:30 부터라는 것... OTL
꽃샘추위를 피해서 체육관과 지하철역을 전전하다가 맥도널드에서 시간을 때우고는 맞춰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도시의 한 블럭을 모두 차지하는 이 큰 건물은 1836년에 미국 특허사무소(Patent Office)로 건설이 시작되었는데, 당시에는 특허를 받으려면 발명품을 직접 체출해야 했기 때문에 보관을 위해서 큰 공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남북전쟁 중에는 병원으로도 사용되었고, 31년이나 걸려서 1867년에 완공이 되어 1932년까지 특허청이 사용을 했기 때문에, 지금도 Old Patent Office Building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장소와 시간이 모두 달라지기는 했지만, 어찌되었건 박물관에 문 열자마자 들어가보겠다는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북쪽 G St.에 면한 입구 앞에는 그리스 신전같은 건물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말에 올라타 총을 쏘는 카우보이의 화려한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아내가 여기서 무슨 유명한 그림을 감상해야 하는지 알기위해 기념품 가게에 먼저 가보자고 했다. 가운데 보이는 오바마 부부, Barack Obama와 Michelle Obama의 초상화가 여기서 가장 인기가 있는데... 아쉽게도 두 작품은 올해 10월말까지 미국 순회전시중이라서 직접 볼 수는 없었다. (작품명이나 전시명을 클릭하면, 미술관의 해당 사이트를 직접 보실 수 있음)
무려 4층까지 전시공간이 있는데, 1층과 2층의 평면도만 여기서 보여드린다. (PDF로 전 층을 보시려면 클릭) 지도가 여러 색깔로 칠해져 있는 이유는 한 지붕 아래 두 미술관의 전시공간을 구분하기 위해서인데, 이 포스팅 1편에서는 푸른색 계열로 칠해진 국립 초상화 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과 녹색의 공용공간(Shared Spaces)을 먼저 소개한다.
사실 구경하는 사람 입장에서 두 미술관을 구분하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기는 하지만, 이렇게 친절하게 복도 위에 어느 곳 소속의 작품들인지 알 수 있도록 해놓았다. 원래는 북쪽 입구 옆의 여기 Recent Acquisitions 전시실을 지나서, 가운데 막아놓은 통로로 1층 동편에 옛날의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초상화들이 왕창 걸려있는 Out of Many 전시실로 연결되지만, 조명공사로 그 큰 전시실은 임시폐쇄된 상태인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래서 가로질러 찾아간 남문 옆의 특별전시실에서는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된 신문만평과 사진 등의 작품을 모아놓은 Watergate: Portraiture and Intrigue 전시가 작게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부끄러운 역사의 모습을 미술관에서 특별전시한다는 것이 참 특이하게 생각되었다.
이 날 우리 부부에게 가장 큰 감동을 준 작품은 다름 아니라... 바로 이 건물의 중앙정원인 Kogod Courtyard였다! 사진과 같이 곡면의 유리돔으로 덮혀 있어서 매서운 4월의 꽃샘추위를 막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마침 난초(orchid)를 주제로 정원이 꾸며져 있어서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에 꽃향기가 이 넓은 공간에 가득했다.
카페에서 라떼 한 잔을 사서 미리 준비한 간단한 도시락과 함께 저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마도 워싱턴DC에서 우리 부부가 최고로 좋아하는 장소의 강력한 후보를 발견한 것 같았다~
초상화 미술관은 1962년에 설립되었지만 이 역사적인 건물에 입주해서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1968년인데, 건물의 노후화가 문제되어서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무려 약 3억불을 들여서 완전히 새단장을 하면서 건물 중앙에 유리돔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나서 다양한 난초꽃들을 구경하면서 하나하나 사진도 찍었는데, 일일이 소개하기에는 너무 많아서 동영상으로 전체적인 분위기만 보여드리니 클릭해서 보실 수 있다. 단지 21세기의 첨단기술로도 꽃향기는 기록하거나 전해드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 참, 동영상의 마지막에도 나오지만 이 조경도 Orchids: Hidden Stories of Groundbreaking Women 미술전시의 일부인데, 제목을 클릭하시면 온라인으로 감상을 하실 수 있다.
고르고 골라서 꽃과 우리집 사모님 사진도 한 장 보여드리고, 이제 진짜 미술관 구경을 위해서 2층으로 올라가자~
2층 남쪽 중앙의 특별전시실에 걸려있던 2012년에 4명의 여성 대법관들을 그린 The Four Justices 그림을 아내가 보고 있다. 2020년에 사망한 "RBG" Ruth Bader Ginsburg가 앞줄 오른쪽에 앉아있고, 왼쪽은 1981년에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 되었던 Sandra Day O'Connor로 2006년에 은퇴했지만 아직 92세로 생존해 있단다. 참고로 이 초상화 속의 여성 4명은 모두 백인이지만, 지난 주에 "KBJ" Ketanji Brown Jackson이 상원인준을 통과해서 6월부터 최초의 흑인 여성 대법관이 될 예정이다.
국립초상화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곳으로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America’s Presidents 전시실로 아내가 들어서고 있다. 오른쪽에는 그리다가 그만 둔 그림도 보이고, 가운데 있는 워싱턴의 전신초상 Lansdowne portrait는 1796년에 최초로 그려진 원본으로 (모사본이 많이 있다고 함), 미술관에서 2001년에 2천만불에 구매해서 전시하는 것이라 한다.
링컨의 전신초상도 있지만, 옛날 대통령들의 그림은 모두 이런 클래식한 화풍이라서 구경하는 재미가 별로 없고, 현대로 오면 아주 다양한 스타일의 그림들을 볼 수 있었다.
케네디를 그린 이 현대적인 유화는 그가 암살당한 해인 1963년 초에 그려진 것이라고 한다.
가장 특이한 스타일로 얼굴만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던 클린턴과 그 오른쪽에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초상화이다.
순회전시중인 오바마의 초상화가 걸려있던 자리에는 대신에 그가 대통령 선거기간에 사용했던 "HOPE" 포스터의 콜라주(collage) 작품을 전시해놓았다. 왼쪽으로는 차례로 레이건과 카터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사람들이 모여서 보고있는 오바마의 뒤쪽 벽에는...
모든 화가가 트럼프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기 싫었는지, Newly Acquired Photograph of Donald J. Trump 제목으로 2019년에 타임지에서 찍은 사진만 한 장 크게 인쇄해서 액자에 넣어놓았다.
대통령 전시실을 통과하면 민권(civil rights) 운동과 관련된 여러 인물들이 묘사된 The Struggle for Justice 전시실로, 제목 아래 보이는 초상은 2020년에 사망한 하원의원 John Lewis이다. 앞에 전시된 두상은 유명한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도 영향력있는 시민운동가였다고 한다.
2층의 초상화 미술관 특별전시실에서는 작년에 사망한 중국계 미국화가인 홍 리우의 Hung Liu: Portraits of Promised Lands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그녀 역시 중국에서 태어나 1984년에 미국으로 왔기 때문에 이민자와 난민, 가난한 사람들을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좀 자세히 보여드리고 싶어서 제일 왼쪽의 그림을 확대해서 찍어봤다.
칠하다 만 듯한 붓질에 흘러내리는 물감, 그리고 붉은 선으로 표시된 실루엣이 정말 독특한 느낌이 있는 화풍이었다.
그녀의 그림 한 장 더... 그림 속의 여성이 머리에 꽃장식을 하고 있는데, 그림을 관람하는 여성도 머리에 꽃장식을 하고 있다~
중앙정원과 함께 이 건물의 또 다른 포토스팟인 3층의 그레이트홀(Great Hall) 모습을 광각으로 찍어봤다. 이 홀의 좌우로는 20th Century Americans 제목으로 미국의 여러 현대 인물들의 다양한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고,
그 뿐만이 아니라 자연광이 들어오는 복도의 좌우 위쪽으로 중간층(Mezzanine)이 있어서, 그레이트홀의 동서를 나누어 각각 스포츠 분야의 Champions와 문화예술 분야의 Bravo! 전시실을 두고 있는데, 솔직히 저 위에까지 다 둘러볼 힘이 남아있지를 않았다.
팝스타 케이티 페리를 모델로 그린 Cupcake Katy라는 그림을 마지막으로 한 장 보여드리고 한 지붕 두 미술관의 1편을 마치는데, 이 그림을 올리는 이유는...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우리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조지타운 컵케익(Georgetown Cupcake)을 먹으러 가보기로 했는데, 처음에는 엉뚱한 메릴랜드 지점을 찍어서 한 참을 헤맸고, 다시 차를 돌려 조지타운에 도착했을 때는 주차할 곳도 없고 가게에 줄도 너무 길어서 다음 기회에 와보기로 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갔던 것이 떠올라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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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의 제목이 이장호 감독, 안성기/이보희 주연의 1984년 영화 <무릎과 무릎사이>를 떠올리게 해서 좀 거시기 하지만... 출발한 곳으로 차를 몰고 돌아가는 왕복 대륙횡단의 가운데가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별개의 대륙횡단을 연달아 했던 '두 횡단의 사이 기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정확히 표현하고 싶었다. LA에서 이삿짐을 싣고 무작정 미대륙을 횡단해서 북부 버지니아에 도착한 우리 부부는 다음 날부터 앞으로 살 집을 찾아 돌아다녀야 했다. 그런데...!
블로그에 올릴까말까 조금 망설였지만, 기록 차원에서 사실대로 적어보면... 8일 동안 약 5천 km의 대륙횡단을 아무 문제없이 잘 달려준 차가 바로 다음날 오후에 집을 보러 다니다가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이었다. 주행거리 25만 km의 17년된 차를 몰고 대륙횡단을 하겠다고 할 때, 많은 분들이 여행중에 고장이 나지 않도록 기도를 해주겠다고 하셨었는데, 이렇게 대륙횡단을 마친 바로 다음날에 문제가 터진 것은... 오직 그 분들의 '기도의 힘'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할렐루야~^^
자동차는 정비소에 맡기고 우버를 타고 하루 더 집을 보러 다닌 후에 몇 군데 오퍼를 넣은 다음날,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으니 홀가분하게 워싱턴DC에 놀러가기로 했다. 공항 근처 숙소에서 여기 레스톤 타운센터(Reston Town Center)까지 우버를 타고와서 점심을 먹은 후에, 최근에 새로 개통되었다는 근처 지하철 역으로 걸어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실버라인 제일 왼쪽에 우리가 출발한 Wiehle-Reston East 역이 보이는데, 이 노선은 올여름에는 덜레스 공항을 지나서 애쉬번(Ashburn)까지 연결이 된다고 한다. 야외 승강장에서 한참을 기다려 지하철을 타고는 워싱턴 내셔널몰에 있는 Smithsonian 역이 내렸다.
DC 시내의 방공호 겸용으로 설계되어서 굉장히 깊이 만들어져 있는 지하철역에서 땅 위로 올라오니, 바로 이렇게 10년만에 보는 '연필탑' 워싱턴 모뉴먼트가 보였다. 커플셀카를 찍는데 아내가 손가락을 뾰족하게 탑처럼 세워 보이고 있다.
맞은편에는 그 해 1월에 6일에 폭도들에게 점령당했다가 20일에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던 미국 국회의사당이 좀 특별한 느낌으로 서있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하나 들어가 볼까 하다가, 앞으로 이제 이 근처에 살건데 뭐... 그냥 동네사람들 처럼 커피나 한 잔 마시면서 이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그래서 국립미술관 야외 조각정원의 카페에서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을 사서 마시는 것으로 10년만의 워싱턴DC 방문은 목적달성에 충분했다. (조각정원과 또 뒤로 보이는 국립문서보관소는 최근에 방문을 해서 별도의 포스팅으로 소개될 예정임)
지하철 역 입구에 국립공원청에서 세워놓은 내셔널몰(National Mall)의 안내판을 보며 여기 있는 곳들 빨리 다 가봐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벌써 이 때로 부터 5개월이나 지났는데 당시 마음가짐보다는 별로 많이 둘러보지 않은 것 같다... 참, 지도 제일 오른쪽에 유명한 링컨기념관이 있는데, 올해 여름부터는 아래 사진과 같이 링컨 대통령의 좌상을 돌려서 뒷면이 밖으로 보이도록 전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난 주 4월 1일에 NPS 내셔널몰 홈페이지에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직접 기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정동쪽을 바라보는 링컨 대통령 조각의 정면 얼굴이 지난 100년동안 햇볕에 많이 손상이 되어서, 올여름부터는 180도 돌려서 전시하여 앞뒷면이 균일하게 되도록 할 예정이라고 하니까, 여름 이후로 링컨기념관을 방문하시는 분들은 위 사진처럼 링컨의 뒷통수와 뒤쪽에서 보이는 옆모습만 감상하실 수가 있다.
레스톤 전철역과 연결된 쇼핑몰로 돌아왔는데, 통로의 지붕에도 디스플레이 패널을 붙여서 파란 하늘을 보여주는 것 보고 처음에는 정말 깜박 속을 뻔 했다.^^ 이 날 저녁에 숙소에서 이주계획의 플랜B를 가동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판매자 한 명이 우리의 오퍼를 수락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음날 우리의 무모한 대륙횡단 이사가 성공한 것을 기념해 북버지니아 한인타운의 페어옥스몰(Fair Oaks Mall)에 있는 일식뷔페에서 둘이 자축을 했다. 딱 맞춰서 정비소에 맡겼던 자동차도 스타팅모터 교체를 끝냈다고 찾아가라는 연락이 왔는데, 그 정비소가 우리가 앞으로 살게 될 집의 바로 근처였다.
차를 찾아서 드라이브 삼아 동네 북쪽의 알공키안 공원(Algonkian Park)에 잠시 들렀었다. 옛날 블로그에 소개한 적이 있는 로스앤젤레스 강(Los Angeles River)과는 완전히 다르게 녹색으로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흐르는 넓고 푸른 강물... 바로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의 주경계를 따라 흘러서 워싱턴으로 흘러가는 포토맥 강(Potomac River)이었다. 이제 1차 대륙횡단의 목적이었던 집계약을 완료했으니, 다음날 LA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아침 일찍 새 보금자리로 와서는 봇짐을 진 상태로 저 차는 차고 앞에 세워두고, 여행용 캐리어 하나만 챙겨서는 공항으로 가는 우버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캘리포니아 번호판을 단 이삿짐 차를 2주 정도 저기에 세워뒀더니, 나중에 만난 이 동네 이웃들이 우리가 캘리포니아에서 이사온 것을 전부 알고 있더라는...^^
작년 8월에 LA에서 비행기로 보스턴 방문했다가 돌아갈 때 잠시 경유한 적이 있는 덜레스 국제공항(Dulles International Airport)인데, 이제 앞으로는 우리 버지니아 거주 가족의 허브공항이 된 셈이다.
아메리칸에어 항공사의 저 비행기를 타고 텍사스 오스틴(Austin)을 경유해서, LA의 살던 집 주차장에 세워두었던 다른 차를 가지러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갔다.
비행기 창문 밖으로 보이는 메마른 바둑판 위의 LA 다운타운과 그 너머의 샌가브리엘 산맥... 앞으로 당분간은 다시 보기 힘들거라는 것을 알기에, 왠지 조금은 뭉클하고 울컥했던 것 같기도 하고...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마치 동부에서 LA에 놀러온 사람인 것처럼 "Welcome to Los Angeles" 광고판 앞에서 사진도 한 장 찍었다.^^ 우리 부부가 1차 횡단을 마치고 다시 LA로 돌아온 것을 알고는, 저녁시간이니까 와서 밥 먹고 자고 내일 출발하라는 분들이 계셨다. 하지만, 그러면 고맙고 반갑겠지만 이미 했던 이별을 또 해야 하고, 왠지 오늘밤 LA를 벗어나지 않으면 발목이 잡힐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거절을 했던 것이니 다시 한 번 양해를 구한다.
살던 집으로 돌아가서 하나 가지고 있던 차고 열쇠로 대륙횡단 이삿짐 2호차를 찾은 후에 열쇠는 집주인에게 전달하고, 자주 다니던 동네 한인마트에 가서 김밥 2개만 사서는 바로 출발을 했다. 이 101번 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조금 달리니 그 전에 살던 집으로 가는 길 표지판이 나와서 아내가 한 장 찍었다. 그렇게 2021년 10월 중순의 달 밝은 밤에 우리는 14년 동안 살았던 미서부 LA를 영영(?) 떠났다~
2시간 정도를 쉬지 않고 달려서 밤 9시반 정도에 바스토우(Barstow)의 이 숙소에서 2차 대륙횡단의 첫밤을 보내기로 했다. 비록 1호차처럼 봇짐은 지지 않았지만 저 2호차도 트렁크는 당연하고 뒷자리의 바닥부터 천정과 뒷 유리창 아래까지 이삿짐을 최대한 꼭꼭 맞춰서 쑤셔 넣었는데, 이 사진으로도 뒤쪽 차체가 아래로 많이 내려가 있는 것이 보인다. "자, 또 가로질러 보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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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DC의 유명한 봄행사인 벚꽃축제 기간을 위해서 아껴두었던 내셔널몰 남쪽의 인공호수인 타이들 베이슨(Tidal Basin)에 있는 3개의 국가기념물(National Memorial)들을 둘러본 두번째 이야기이다. 1부에서는 벚꽃축제에 대한 안내와 함께 제퍼슨 기념관을 보여드렸었고 (포스팅을 보시려면 클릭), 2부에서는 남은 2개의 기념물들을 묶어서 소개해드린다. 이렇게 3개의 내셔널메모리얼이 위기주부의 방문리스트에 추가되면서, 현재 423개인 국립공원청이 관리하는 NPS Official Units 중에서 대략 100곳 이상을 방문한 것이 되었다.
벚꽃향을 맡으며 타이달베이슨 호수를 시계방향으로 절반을 넘게 돌았을 때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 메모리얼(Franklin Delano Roosevelt Memorial) 안내판이 나왔다. 흔히 줄여서 'FDR'이라 많이 부르는 제32대 루스벨트 대통령을 국가적으로 기념하는 장소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 전에 오른편 끝에 살짝 보이는 석탑에 대해 먼저 알아보면,
내셔널몰의 벚나무는 1912년에 일본 도쿄 시장이 워싱턴 시에 기증한 것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후로 1930년대까지 일본이 지속적으로 묘목을 공급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41년 진주만 폭격에 화난 사람들이 벚나무 몇 그루를 베어버리기도 했지만, 전후에도 다시 일본이 적극적으로 이 곳의 벚나무와 벚꽃축제에 지원을 하게 되는데, 이 석탑도 요코하마 시장이 1958년에 워싱턴 시에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루스벨트 기념관의 출구에 해당하는 석벽의 제일 아래에 '1933-1945'라고 씌여있는데, 그는 4번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서 12년 이상을 재임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초대 워싱턴 이후로 대통령은 2번을 당선된 이후에는 다시 출마하지 않는 불문율이 있었지만, 루스벨트는 이를 무시하고 4선까지 한 것이다. 그의 사후에 대통령의 3회 이상 중임을 제한하는 수정헌법 22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사실상 그의 재임기록은 앞으로도 깨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기념관이라고 해서 링컨이나 제퍼슨 메모리얼처럼 거대한 기둥의 건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넓은 면적에 벚나무와 어우러지도록 자연석과 조각상들로 멋진 산책로를 만들어 놓은 느낌이었다. 기념관은 그의 4번의 임기를 상징하는 4개의 공간이 차례로 만들어져 있는데, 우리가 출구쪽에서 들어온 바람에 그냥 역순으로 소개를 한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사진에 인력거와 유모차가 보이는 것에 알 수 있듯이 모든 경로가 평지에 만들어져 있는데, 루스벨트가 39세의 나이에 소아마비에 걸려서 휠체어에 의지하는 장애인으로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설계를 했다고 한다.
무려 4선을 했음에도 재임기간이 16년이 아닌 이유는 1945년 3월에 4번째 취임을 하고 1달여만에 뇌출혈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오른편에 아내가 보고있는 부조는 국장행렬을 나타낸 것이고, 왼편의 동상은 아내인 엘리너 루스벨트(Eleanor Roosevelt)로 남편 사후에도 유엔 인권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세계인권선언>을 기초하고 채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회운동가로 미국 역사상 최고의 영부인으로 평가를 받는단다.
2차 세계대전과 정확히 겹치는 1941~1945년의 재임 3기 전시장에, 이 메모리얼을 대표하는 망토를 걸치고 앉아있는 그의 동상이 있는데, 그의 애완견 팔라(Fala)가 함께 만들어져 있다. 공식행사에도 항상 데리고 다녔다는 팔라는 미국의 약 30개의 국가기념물에 있는 유일한 개의 동상이며, 나중에 12살의 나이로 죽어서도 루스벨트 부부의 묘지 옆에 묻혔다고 한다.
전쟁과 대공황이라는 큰 국가적 어려움이 있는 시기였다고는 해도, 전례없던 3선 또 4선 출마는 정말로 '구국의 일념'이고 개인적인 욕심은 없었을까? 만약 63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뇌출혈로 사망하지 않고 4번째 임기를 다 채웠다면 또 어떻게 되었을까? 반짝반짝하는 그의 검지 손가락을 잡고 사진을 찍으면서 그런 생각들이 들었었다~
루스벨트는 1930년대에 대공황 극복을 위한 뉴딜(New Deal) 정책을 추진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 중에는 미국 전역의 국립공원들을 돌아다니면 항상 그 흔적을 만날 수 있는 CCC(Civilian Conservation Corps)를 만든 사람이라는 것이 위기주부에게는 직접적으로 와닿는다.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의 침체기에 그의 첫번째 1933~1937년의 임기가 시작되었는데, 빵을 받기 위해 배급소에 줄을 선 사람들의 동상 등이 만들어져 있었다. 취임 후에 그는 국민들을 상대로 '노변정담(爐邊情談, Fireside chat)'이라 불린 친근한 라디오 연설로 뉴딜정책에 동의를 구했는데, 그래서 라디오를 듣고 있는 가족의 동상도 옆에 만들어져 있다.
갑자기 그 많던 상춘객들은 다 어디가고,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낙네가 나타났다가 벽 뒤로 사라졌다...
다행히 헛것을 본 게 아니고, 벚꽃과 기념물을 배경으로 웨딩촬영을 하는 커플이었다~^^ 그 뒤쪽 벽에는 루스벨트가 첫번째 취임사에서 했다는 말인 "우리가 유일하게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두려움 그 자체(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입구에는 루스벨트가 휠체어에 앉아있는 동상이 따로 만들어져 있는데, 1997년에 이 기념관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없던 동상이다. 장애인 단체 등에서 그가 실제로 휠체어 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여서 2001년에 추가로 설치된 것이라 한다. 마지막으로 이 기념물에는 원래 벽쪽으로 작은 폭포같은 물이 흐르도록 설계가 되었지만,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물은 모두 잠궈놓은 상태였다. 언제 여름철에 다시 방문하게 되면 비지터센터에 들러서 브로셔도 얻고, 그 폭포들에 담긴 의미도 다시 알려드려야 겠다.
큰 길로 나오니까 국립공원청이 주관하는 국립벚꽃축제(National Cherry Blossom Festival)의 무대가 일본 항공사의 후원으로 만들어져 있고, 도로에는 여러 부스들이 만들어져 있었지만 평일 저녁에는 장사를 안 하는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작년에 대륙횡단 자동차여행을 하면서 테네시 주의 멤피스(Memphis)에서 마틴루터킹이 암살당한 장소를 방문했었는데 (여행기를 보시려면 클릭), 흑인 민권운동가인 그를 국가적으로 추모하는 마틴 루터 킹 메모리얼(Martin Luther King, Jr. Memorial)이 마지막 방문지였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벚꽃에 둘러싸인 광장에 MLK의 석상이 미완의 모습으로 세워져 있는데, 그 옆면에 이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Out of the Mountain of Despair, a Stone of Hope"라고 새겨져 있다. 이 말은 그가 1963년에 여기서 조금 북쪽에 있는 링컨 기념관의 계단에서 했던 유명한 <I Have a Dream> 연설의 말미에 나왔던 문구로,
기념물을 정면에서 보면 이렇게 뒤쪽의 '절망의 산(Mountain of Despair)'에서, 마틴루터킹의 석상으로 상징되는 '희망의 돌(Stone of Hope)'이 잘려져 나온 것을 알 수 있다. 또 석상이 완전히 다 깍여져 나온 완성된 모습이 아닌 것은, 아마도 그의 민권운동이 아직도 미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않나 생각된다.
이 동상은 2011년에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가 참석한 가운데 제막되었는데, 제작 당시에 흑인을 하얀 대리석으로 조각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완성된 후에는 팔짱을 끼고 있는 그의 모습과 얼굴 표정이 너무 완고한 이미지를 풍긴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워싱턴 내셔널몰(National Mall)에 세워진 최초의 흑인 동상이며, 대통령이 아니었던 사람으로는 4번째 기념물이라 한다.
이렇게 타이들 베이슨(Tidal Basin) 주변의 국가기념물 3곳의 구경을 마치고는, 다시 호숫가로 나와서 벚꽃구경을 했다.
아내가 찍은 짧은 동영상을 클릭해서 보시면, 멀리 호수 건너편의 토마스제퍼슨 메모리얼을 중심으로 걸어왔던 호숫가 풍경과 함께, 포토맥 강가의 레이건 국제공항으로 착륙하는 비행기도 보실 수 있다.
물가쪽으로 축축 늘어진 나뭇가지에도 하얀 벚꽃들이 가득해서, 이렇게 화면에 벚꽃을 꽉꽉 채워서 셀카를 찍을 수가 있는데,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빈 틈을 잘 노려야 했다.
이 근처에 1912년에 최초로 심은 벚나무도 있고, 또 일본에서 기증한 석등도 세워져 있는데다, 잔디밭도 비교적 넓게 만들어져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
내셔널몰 남쪽의 Independence Ave가 지나는 Kutz Memorial Bridge를 걸어서 건너 워싱턴 기념탑쪽으로 돌아갈 때는 저녁 7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이었는데도 이제 벚꽃을 구경하러 걸어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서쪽으로 석양을 돌아보면서 해가 지고 저 가로등에 불이 들어올 때까지 있다가 갈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주중이고 내일 또 출근하셔야 해서 그만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주차한 곳으로 걸어가면서 내년에는 꼭 DSLR 카메라를 챙겨서 도시락과 돗자리도 들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와서 반시계 방향으로 돌와봐야 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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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간 살았던 캘리포니아 LA를 떠나서 북부 버지니아의 워싱턴DC 지역으로 이사를 온 가장 큰 이유는 좀 과장해서... 더 이상 서부에서는 놀러다닐 곳이 없어서, 동부로 여행의 베이스캠프를 옮긴 것이지만, 외동딸이 있는 곳까지 원하면 바로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사는 것이 좋겠다는 이유도 컸다. 하지만 내년 여름에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안 밀려도 8시간이나 걸리는 보스턴(Boston)까지 운전을 해야 하는데, 마침내 봄방학을 한 딸을 픽업해 데려오기 위해서 처음으로 그 거리를 운전해서 올라간 것을 복습하면서 기록으로 남겨본다.
장거리 자동차 여행에서 동부가 서부와 가장 큰 차이점은 유료도로를 이용하지 않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리 신청해서 우리 차 앞유리에도 붙여놓은 이지패스(E-ZPass) 단말기 사진을 하나 퍼왔다. 한국 고속도로도 전자식 통행료 시스템인 하이패스가 있으니까 동작원리야 설명할 필요가 없는데, 미국은 넓은 땅덩어리 때문에 여러 주(state)가 제각각의 통행료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미국지도에서 보라색으로 표시된 미동부 대부분의 주들이 EZ패스(E-ZPass) 시스템으로 통합이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관광지가 몰려있고 유료도로가 많은 버지니아, 펜실바니아, 뉴욕, 메사추세츠 주들이 모두 E-ZPass를 쓰기 때문에 미동부 자동차 여행에서는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수동으로 통행료를 내는 경우나, 렌트카처럼 번호판 인식을 통해 후불로 지불하는 경우에는 E-ZPass보다 요금이 더 높음)
위의 경로가 금요일 오후에 출발해서 1박2일 동안에 약 10시간을 실제로 운전했던 코스이다. 동부는 통행료도 문제지만 고속도로 망도 서부에 비해서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몇 번을 더 달리게 될 구간이라서 '도로공부'를 좀 해보기로 했다. 물론 네비게이션이 가라는 데로 신경 안 쓰고 달리면 되지만... "역사공부에 이어서 도로공부까지! 동부로 이사와서 만학의 꽃을 피우고 있네~"
일단 기본으로 알고 출발해야 하는 것은 미동부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인터스테이트 95번(Interstate 95, I-95)이다.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Miami)에서 출발해 메인 주에서 캐나다 국경과 만나며 끝나는 총연장 1,908마일(3,071 km)의 남북으로는 가장 긴 고속도로로, 당연히 워싱턴에서 보스턴까지도 95번만 타도 갈 수는 있다. 하지만 이 과목이 어려운 이유가 중간에 뉴욕시(New York City) 등의 밀리는 도심을 피해서 우회로를 계속 바꿔 타야 한다는 것인데... 각설하고, 그럼 이제 북부 버지니아의 집을 출발해보자. 부릉부릉~
금요일 오후 정체로 워싱턴 외곽순환 495번 고속도로에서 1시간이 더 소요되어, 95번을 만나고 처음 나오는 여기 메릴랜드(Maryland) 주 웰컴센터까지 2시간이나 걸렸다. 건물 내부 여기저기와 직원이 쓰고있는 마스크까지 메릴랜드 주기(state flag)의 문양이 그려져 있는데, 메릴랜드 차량 번호판에서 처음 저 문양을 봤을 때는 무슨 자동차 레이싱팀의 깃발인 줄 알았었다.
I-95를 따라 조금 더 달리니까 볼티모어 시내가 정면에 보인다. 사진 가운데 MLB 야구팀인 볼티모어 오리올스(Baltimore Orioles)의 홈구장이 있는 이너하버(Inner Harbor) 지역에서 옛날옛적에 학회참석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사와서 아직 다시 가보지는 못했다. 이 때까지는 통행료가 없는데, 여기서 볼티모어 시내를 통과하지 않고 계속 I-95를 달리면 유료 해저터널을 통과하게 된다.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위 사진과 같은 입구의 포트맥헨리 터널(Fort McHenry Tunnel)을 통과하고 나면 이지패스 요금소가 나오는데 통행료는 $4이었다. (메릴랜드 차량은 $3, 번호판 인식은 $6) I-95를 우회해서 I-895로 Baltimore Harbor Tunnel을 지나거나, 더 밖으로 I-695로 Key Bridge를 지나는 경우에도 동일한 요금이므로, 여기서는 95번으로 계속 달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요금소를 지나서 I-895와 다시 합쳐진 후에 5마일 정도의 Toll Express Lane이 시작되는데, 일반 차선도 밀리지 않아서 탈 이유가 없었다.
신나게 I-95를 20분 정도 달리면 큰 강을 건너는 Millard E. Tydings Memorial Bridge를 건너게 되고 바로 이렇게 커다란 요금소가 또 나오는데, 통행료는 무려 $8이나 된다! 하류 1.5마일 정도에 40번 국도가 지나는 Hatem Bridge도 같은 요금이고, 10마일 정도 상류에 있는 1번 국도로 강을 건너면 공짜지만 30분 이상 돌아가는 것이다... 메릴랜드 교통공사의 안내에 따르면 이 요금은 단순히 다리만 건너는 비용이 아니라, 주경계까지 이어지는 I-95의 약 50마일 구간인 John F. Kennedy Memorial Highway를 이용하는 통행료라는데, 특이한 것은 반대방향은 요금이 없다.
그리고 I-95의 델라웨어(Delaware) 주 환영간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이지패스 안내판이 나온다. 이번에는 델라웨어 주에 또 $4을 내야하는데, 이 요금소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피해갈 수 있단다. 메릴랜드의 마지막 인터체인지에서 빠져서 남쪽 281번 도로로 주경계를 넘은 후에 다시 I-95를 타면 되는데, 거리는 3마일 정도 돌아가면서 시간도 10분 정도만 더 소요된다고... "다음에 한 번 피해서 가볼까?"
델라웨어의 최대 도시인 윌밍턴(Wilmington) 남쪽에서 I-295로 빠져서 이 Delaware Memorial Bridge를 건너서 뉴저지 주를 통과해 뉴욕시 방향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왜냐하면 I-95는 윌밍턴과 펜실바니아 주의 필라델피아 등 도시권을 관통해서 밀리기 때문이다. 앞서와는 반대로 이 다리는 우리처럼 뉴저지로 갈 때는 통행료가 없지만, 뉴저지에서 델라웨어로 건너오면 $5의 통행료를 내야 한단다. 그렇다고 다리요금 안냈다고 좋아하기에는 이르다. 이번 자동차 여행에서 가장 많은 통행료를 걷어 간 주인 뉴저지(New Jersey)가 강건너에 기다리고 있다.
다리를 건너고 나면 이렇게 복잡한 도로표지판이 나오는데, 서부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턴파이크(Turnpike)'라는 단어가 보인다. 옛날 영국에서 돈을 줘야만 길을 막아 놓은 막대기(pike)를 돌려서(turn) 지나갈 수 있게 해준 것에서 유래해, 동부에서 Turnpike라고 하면 거의 통행료가 있는 유료도로이다. 이제 시작되는 뉴저지 턴파이크(New Jersey Turnpike)는 뉴욕 맨하탄으로 들어가는 George Washington Bridge까지 117마일의 유료도로로 한국 경부고속도로처럼 구간별 이용요금을 징수한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펜실베니아에서 넘어오는 I-95와 다시 합쳐지기 전까지 48마일은 위 표지판의 I-295와 거의 평행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우회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이것도 다음에 한 번 해볼까?"
뉴저지 턴파이크는 진출입로마다 톨게이트가 있는 유료도로라서, 한국처럼 고속도로 휴게소도 도로변에 별도로 만들어져 있는데, 대부분 지명이 아니라 사람 이름을 휴게소에 붙여놓은 것이 차이점이다. 우리는 오후 6시반쯤에 여기 James Cooper 휴게소의 파파이스에서 저녁을 간단히 해결했다.
휴게소 매점에는 이렇게 뉴저지(New Jersey) 주 방문기념 티셔츠와 후드티도 팔고 있었는데, 가운데 그려진 주의 모양이 한반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정확히 지도로 보니까 남한만 그려놓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네비게이션이 노란색 New Jersey Turnpike로 맨하탄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위 지도의 교차로에서 녹색으로 표시된 가든스테이트 파크웨이(Garden State Parkway, GSP)로 갈아타고 훨씬 북쪽으로 빙 돌아서 올라가라고 했다. 당연히 저녁시간에 맨하탄 북쪽이 정체가 심하니까 완전히 뉴욕시를 피해서 가라는 뜻이다. 그래서 11번 출구로 빠졌는데 NJ Turnpike를 89마일 달린 요금은 $10.15 이었다. 하지만 갈아탄 GSP도 공짜는 아니라서 주경계까지 가는 동안에 $1.96의 통행료를 두 번 내었다. 참, 가든스테이트(Garden State)는 뉴저지 주의 별칭이다.
주경계 표시말고는 환영간판도 없던 뉴욕(New York) 주로 들어오면 I-287을 만나서 잠시 후 이렇게 멋진 Governor Mario M. Cuomo Bridge로 허드슨 강을 건너게 된다. 코로나19 때문에 엄청 유명해져서 민주당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했다가, 성추행 폭로로 주지사직을 사퇴해서 정치생명이 끝난 앤드류 쿠오모의 아버지 이름을 따서 2017년에 개통한 최신 다리이다. 멋진 모습만큼 통행료도 비싸서 $6.61을 이지패스 계좌에서 빼갔는데, 287번 고속도로가 뉴욕 주의 동쪽 끝에서 다시 I-95와 합류하는 구간도 뉴욕스테이트 스루웨이(NYS Thruway)라 불리는 유료도로이기 때문이다.
I-95와 합류한 후에 작은 다리를 건너면 코네티컷(Connecticut) 주로 들어서는데, 특별하지도 않은 환영간판을 따로 캡쳐해서 보여드리는 이유는, 이번에 지나간 주들 중에서 유일하게 유료도로가 없는 땅이라서 감사한 마음에...^^ 처음 보여드린 미국 유료도로 지도에서도 대서양에 접한 주들 중에서 유일하게 회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원래는 이 길도 Connecticut Turnpike라 불리며 통행료가 있었지만 1985년에 모두 없앴다고 한다.
그래서 서비스플라자의 비싼 기름을 가득 채우는 것으로 코네티컷 주의 재정에 대신 도움을 드렸다~ 작년 10월에 두 번의 대륙횡단을 할 때 유가가 비싸다고 해도 동부가 갤런 당 $3이었는데, 지금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동부도 $4을 훨씬 넘었다. 여기서 I-95는 예일 대학교가 있는 뉴헤이븐(New Haven)과 로드아일랜드 주의 프로비던스(Providence)를 지나서 보스턴까지 이어지지만, 네비게이션은 잠시 후에 15번 국도로 빠져서 내륙의 하트포드(Hartford) 방향으로 우리를 안내해서 그 부근에 숙소를 예약하고 밤 10시 지나서 숙박했다.
다음날 토요일 아침에 숙소 밖의 주차장은 안개가 가득했다. 아직 코네티컷이니까 북쪽으로 향하는 I-91과 북동쪽으로 향하는 I-84를 차례로 공짜로 달린 후에, 마지막으로 보스턴이 있는 매사추세츠(Massachusetts) 주로 들어갔다.
메사추세츠 주로 들어와 조금 달리면 시애틀에서 출발해 미국대륙 북쪽을 동서로 연결하는 길이 3,021마일(4,862 km)의 인터스테이트 90번(Interstate 90)을 만나서 보스턴으로 향하게 된다. 고속도로 마크의 왼쪽에 있는 그림은 '필그림 모자'로 I-90이 유료도로인 Massachusetts Turnpike라는 뜻이다. 하지만 톨게이트는 전혀 없고 전자식으로만 요금을 징수하는데, 약 50마일 정도 달리면서 이지패스로 지불한 요금은 총 $3.95로 전날 지나온 주들에 비해서 비싸지는 않다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1박2일 동안에 합계 약 10시간을 운전해서, 작년 8월말에는 LA에서 비행기를 타고와 렌트카로 이사 들어가는 것을 도와줬던 지혜의 대학 기숙사에 도착을 했다. 이제 저 큰 가방에 쓰지 않는 겨울옷과 짐들을 챙겨서 가족 3명이 함께 2박3일 여행을 하면서 버지니아의 집으로 또 운전해서 돌아가게 된다. 정리해보면 워싱턴에서 보스턴까지 편도 750 km의 통행료는 총 $40.63로 약 5만원 정도 들었는데, 궁금해서 찾아보니까 현재 서울-부산 416 km의 고속도로 통행료가 19,300원으로 나온다. 미서부에서 자동차 여행을 다니며 고속도로를 아무리 달려도 통행료가 없다면서 좋아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여기 미동부는 날씨만 한국과 같은 것이 아니라 여행할 때 통행료를 걱정해야 한다는 사실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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