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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5
동네의 그리스 레스토랑에 세 번을 갔다. 세 번 모두 그릭 샐러드를 먹었고, 술은 그때마다 달랐다. 화이트와인, 그리스 맥주,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칵테일. 쟁반처럼 생긴 접시엔 토마토와 오이, 양파와 올리브. 그리고 치즈가 한가득 올려져 있다. 아직 따뜻한 피타빵과 함께 접시 위 모두를 싹싹 비운다. 몇 알 안 되는 올리브들은 짠 맛이 도드라졌다. 나는 올리브 한 알에, 술을 두세 모금씩 마셨다. 이것이 그리스일까. 나는 그 곳에서 친구에게 줄 엽서들을 썼다. 칵테일이 독했는지, 엽서의 말미에서 눈물이 조금 났다. 이것 또한 그리스일까. 역시 동네에 있는 작은 피자 가게. 열린 문 사이로 들어서자, 가게가 아니라 화덕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좁은 피자 가게 안은 오븐이 뿜어내는 열기로 가득했다. 한 조각에

뉴욕 4
제멋대로의 스케줄 속에, 유독 챙기는 날이 있다. 미술관에 가는 날. 그런 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 가방을 가볍게 해 집을 나선다. 지하철 역에 내려 사람들이 졸졸졸 걸어가는 방향으로 따라가니, 미술관이 나온다. 나는 개장 시간의 미술관을 좋아한다. 사람들의 밀도가 높아지기 전의 미술관. 어깨 너머로 기웃거릴 일도 적고, 화장실도 쾌적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일 위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것도 하나의 방법. 나는 흰 벽과 마루바닥으로 나뉜 공간들을 거닐며, 작품 사이를 마음껏 배회한다. 걸음을 옮기기 전 캔버스 한 켠의 작가 싸인에 눈을 맞춘다. 저 싸인을 남길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상상해 보면서. 그렇게 한 층을 둘러보고 미술관 까페의 첫 손님이 된다. 미술관의 까페는 이렇다 저렇다 할 이유 없이

뉴욕 3
지천에 만개한 햇살. 얼린 생수병은 이미 미지근해졌다. 더위를 피할 곳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잠시 그늘을 찾아 손 안의 지도를 들여다본다. 몇 번 검지를 문지르는 사이, 즉각적인 선택지들이 펼쳐진다. 쇼핑몰, 미술관, 공원. 어쩌면 이 셋의 조합이 뉴욕이 아닐까. 그때의 기분에 따라 나는 셋 중 하나를 선택했다. 이 날은 공원이었다. 여행자는 도시의 겉면을 본다. 내밀한 삶 속으로 들어가 보고픈 욕망이야 언제든 넘쳐나지만, 결국 겉면만을 문지르다 돌아오게 된다. 내가 뉴욕 주의 세금 정책과, 데이케어 제도와, 공공주차 제도에 대해 어찌 알 수 있을까. (반면, 서울에 대해 물어보라. 나는 구구절절 서울살이에 토로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 볼 수 있는 인상들이 있다. 여행지에서 나는 종종 '해도

뉴욕 2
로어이스트사이드의 스튜디오를 빌렸다. 나는 열하루동안 여기에 머문다. 캐리어를 열어, 열하루동안의 일상을 위해 짐을 푼다. 세면 도구와 화장품들을 거울 앞에 늘어놓는다. 노트북을 비롯한 각종 전자기기들은 한데 잘 모아둔다. 캐리어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던 봉투에서 그날 그날 일용할 달러를 꺼내 지갑에 넣는다. 무겁게 이고 온 햇반들도 부엌 한 켠에 자리를 잡는다. 오직 헤드윅을 위해 가져온 원피스도 곱게 걸어둔다. 아무 것도 기록되지 않은 필름들도 줄을 이어 세워둔다. 그렇게 뉴욕에서의 날들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스튜디오는 서서히 자취방으로 변해갔다. 별다르게 할 일도 약속도 없는 그런 자취생의 방. 세상 모든 하릴없는 시간들이 고인 공간. 모아둔 빨랫감을 들고 동네의 코인 세탁소에 다녀온 오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