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첫 녹음을 한 테네시 주 멤피스(Memphis)의 선스튜디오(Sun Studio)
미국에는 미시시피(Mississippi)라는 긴 이름처럼 실제 길이도 긴 강(river)이 있다는 것은, 아마도 영어를 잘 읽지도 못하던 국민학교 시절에 누나들의 사회과부도(요즘도 이렇게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교과서의 세계지도를 볼 때부터 기억했던 것 같다... 미서부 LA에서 동쪽으로 향한 대륙횡단 여행 겸 이사의 4일째 오후에, 아주 오래 전부터 내 머리 속에 추상적으로만 들어있었던 그 미시시피 강을 마침내 자동차를 몰고 직접 건너게 되었다.
인터스테이트 40번 고속도로가 지나는 에르난도데소토 다리(Hernando de Soto Bridge)로 미시시피 강을 동쪽으로 건너면, 환영간판에 붓글씨처럼 적혀있는 테네시(Tennessee) 주가 시작되면서, 시경계의 남쪽이 바로 미시시피(Mississippi) 주와 접해있는 도시인 멤피스(Memphis)가 나온다. 이집트 나일강변의 고대도시 이름을 그대로 따온 것답게 강가에 거대한 피라미드가 보이는데, 1991년에 실내 경기장으로 만들어졌다가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아웃도어 브랜드인 배스프로샵(Bass Pro Shops)의 초대형 매장이 있는 호텔 겸 전망대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단다.
아무래도 미시시피강(Mississippi River)의 지도 한 장은 보여드리고 지나가야 할 것 같아서 네이버 두산백과에서 가져왔다. 미국 50개 주들 중에서 미시시피 강의 유역이 포함되는 주가 31개라고 하니, 미국의 지리를 이해하는데 이 강을 빼놓고는 불가능하다 할 수 있다. 앞서 보여드린 고속도로 다리의 이름은 1540년 전후로 미국남부를 탐험하면서 미시시피 강을 건넌 기록을 최초로 남긴 스페인 탐험가 Hernando de Soto에서 유래했는데, 그 다리와 멤피스는 지도에서 빨간 '미시시피강' 글자의 두번째 모음 'ㅣ'의 꼭대기 위치라고 보시면 된다.
멤피스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내가 이 도시의 관광에 대해 벼락공부를 했는데, 꼭 가봐야하는 1등 관광지는 이 낡은 빨간 벽돌건물에 위치한 선스튜디오(Sun Studio)라는 녹음실이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대륙횡단 여행의 4일째만에 처음으로 좁은 실내의 관광지에 들어간 셈인데, 남부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잘 착용하고는 있었다. 이 곳은 바로 우측의 커다란 흑백사진 속에 앉아있는 "로큰롤의 왕(King of Rock and Roll)"이라 불린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첫번째 녹음을 하고 음반을 냈던 곳, 즉 전설적인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를 만들어 낸 음반사인 선레코드(Sun Records)가 있던 곳이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 날의 마지막 투어만 남겨두고 매진이라는 표시가 앞에 있었다. 하지만, 여직원에게 투어를 하겠다고 하니까 아무 고민 없이 두 장의 표를 더 판매를 했다... 코로나로 기본 투어인원이 줄었기 때문에 추가가 가능했는지? 캘리포니아에서 왔다고 해서 특별히 배려해 준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우리는 마지막 참가자로 스튜디오 투어에 참가할 수 있었다.
1970년대초에 녹음실이 문을 닫은 후에 이 건물은 건축회사, 자동차부품 가게 등으로 사용되다가, 엘비스 프레슬리가 죽고 10년 후인 1987년에 다시 음악 스튜디오 겸 카페와 기념품가게로 문을 열었다. 그 후 전세계 엘비스 팬은 물론 멤피스를 방문하는 우리같은 일반인들로부터도 큰 인기를 끌어서 최고의 관광지가 되었고, 2003년에는 공식적으로 미국역사유적(National Historic Landmark)으로도 지정되었다고 한다.
"자~ 그럼 여기 화장실 문 위에 걸린 사진속에 핫바지를 입고 껄렁한 자세로 서 있는, 포레스트 검프에게서 개다리춤을 배워서 세계적인 대스타가 된 엘비스 프레슬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합시다." 그 전에 화장실부터...
커다랗게 걸려있던 흑백사진은 "Million Dollar Quartet"이라고 알려진, 이 스튜디오에서 있었던 즉흥연주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엘비스가 대형음반사인 RCA레코드로 이적하고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하던 1956년 겨울에 우연히 옛날 스튜디오를 방문했다가, 당시 선스튜디오 소속의 다른 가수들을 만나서 즉흥적으로 여러 노래를 함께 다양한 시도로 부르는 것을 녹음한, 락큰롤 역사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사건으로 동명의 뮤지컬로 만들어지기도 했단다.
카페 내부에도 옛날 LP판과 녹음기계 등등의 많은 전시가 있으므로, 꼭 투어를 하지 않더라도 잠시 들러서 구경할만 했다.
물론 이렇게 좌우의 벽에 가득 쌓여있는 판매용 기념품들이 훨씬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오후 4시반이 되자 밖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긴 줄이 만들어졌고, 차례로 입장을 해서 안쪽의 좁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지난 1년여 동안에 국립공원 등 곳곳에서 거리두기를 해달라는 다양한 사인을 많이 봐왔지만, 이 안내문이 가장 재미있고 딱 맞아 떨어졌다. "Please keep ONE ELVIS apart" 하지만, 사실상 2층 전시실에서의 거리두기는 불가능하게 사람들이 많았다...
이 스튜디오는 프로듀서이자 라디오 진행자인 사진 속의 Sam Phillips가 1950년에 Memphis Recording Service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는데, 당시 흑인들만의 음악이었던 블루스(Blues)를 널리 알리는데 주력해서, 나중에 '블루스의 왕'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는 비비킹(B. B. King)도 1952년에 이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사진 가운데 까만 마스크를 쓴 투어가이드가 계속해서는 아마 이런 이야기를 했을거다... 1953년 여름 어느날, 기타를 멘 청년 하나가 찾아와서는 어머니 생일선물로 드릴 음반을 하나 자비로 녹음하고 싶다고 여기를 찾아왔다. 그 때 사장인 샘 필립스는 없었기 때문에 여직원이 기술자와 함께 그가 두 곡을 부르는 것을 녹음해서 주고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받은 다음에 "좋은 발라드 가수, 꼭 붙잡을 것"이라고 메모를 해두었다.
위의 동영상이나 여기를 클릭하면 당시 녹음을 투어에서 잠깐 틀어서 들려주는 장면을 보실 수 있다. 당시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던 그 청년은 낮에는 트럭운전을 하고 밤에는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며 1년이 흘렀고, 1954년 여름에 "흑인 창법으로 노래하는 백인 가수"를 찾던 샘은 그에게 다시 연락을 해 정식녹음을 하면서 <That's All Right Mama>라는 곡을 그의 독특한 창법으로 불렀던 것을 7월 10일 밤 9시 30분경에 처음으로 멤피스 라디오로 방송을 하게 된다. 그러자 청취자들의 전화와 엽서가 방송국으로 폭주했고...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가 탄생하게 된다.
이 정도 설명하고 2층의 전시물들을 관람하는 자유시간을 좀 줬는데,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사진 아래에 보이는 그의 고등학교 졸업앨범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남동쪽으로 100마일 정도 떨어진 미시시피 주의 투펠로(Tupelo)에서 1935년에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형은 바로 죽어서 외아들로 자랐는데, 집은 아주 가난했으며 아버지가 무능하고 폭력적이라서 모자관계가 아주 돈독했다고 한다. 1948년에 가족이 멤피스의 빈민가로 이사를 했고, 로큰롤을 부를 때의 반항아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고등학교 때는 전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착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엘비스의 고등학교 졸업사진을 보고 있는데, 바로 옆에 계시던 분이 하는 말씀이... 엘비스 왼쪽에 있는 여성이 바로 자신의 숙모, 즉 아버지의 여동생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때 뭔가 알 수 없는 시공간을 거쳐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직접적으로 우리와 연결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하면 좀 심하게 과장이겠지?
투어는 1층으로 내려와서 카페 옆의 녹음실로 계속 이어졌는데, 엘비스가 1955년에 매니저를 "Colonel" Tom Parker로 바꾸고 RCA Victor 레코드와 계약하기 전까지의 모든 녹음과, 또 이후에도 앞서 소개한 Million Dollar Quartet을 포함해 다른 몇 번의 녹음을 여기서 했다. 흑인의 블루스에 백인의 컨트리 음악이 섞인 로큰롤이 사실상 여기서 탄생하는 과정을 가이드가 몇 곡의 음악과 함께 설명을 했던 것 같다.
가이드는 로큰롤 특유의 기타사운드를 내는 방법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고, 모든 투어를 마치면서 하는 말이... 사진에 파란 모자 위로 보이는 오래된 마이크가 이 곳을 스튜디오로 복원할 때 선레코드에서 가지고 온 것인데, 당시 담당자 말이 1950년대에 엘비스가 이 마이크를 잡고 녹음을 '했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원하시는 분은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 기념사진을 찍으시라고 하는 것이었다.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이렇게 차례로 얌전히 마이크를 잡고 기념사진을 찍으시길래, 저 분들은 엘비스가 저런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좀 들었다. 그래서, 모두 찍으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할 수 없이 이 몸이 직접...
가볍게 포즈를 한 번 잡아드렸다~ 엘비스의 개다리춤까지 췄으면 대박이었겠지만...^^
선스튜디오(Sun Studio) 투어를 마치고 나오니까,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시는 분들이 많아서 우리도 한 장 부탁했는데, 둘 다 고개를 왜 갸우뚱하고 찍었을까? 여기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가수로 데뷔한 이야기만 해드렸다고 섭섭해 하지 않으셔도 된다. 앞으로 이어질 나머지 두 편에서도 엘비스의 이야기는 계속되니까, 사실상 멤피스 여행기는 '엘비스 3부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다음 편 2부에서는 다른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장소가 주무대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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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팔래치안 트레일(Appalachian Trail)을 처음 걸어 찾아간 쉐난도어의 스토니맨(Stony Man) 전망대
미국대륙을 자동차로 누가 빨리 횡단하는 지를 겨루는 '캐논볼런(Cannonball Run)'이라는 불법적이고 비공식적인 기록도전이 있다. 뉴욕 맨하탄 Red Ball Garage에서 LA 레돈도비치 Portofino Hotel까지 2,906마일(4,677 km)을 특별 개조한 차량에 보통 3명이 탑승해서 달리는데, 작년 10월에 새로 수립된 최단기록이 25시간 39분으로 전구간을 무려 110 mph, 시속 180 km라는 믿기지 않는 평균속도로 계속 달린 것이다! 위기주부가 이 도전에 참가할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걱정은 접어두시고, 자동차 대륙횡단이라고 하면 보통 LA와 뉴욕 사이를 달려줘야 한다는 것을 알려드리려 했다. 같은 작년 10월에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에서 출발했던 위기주부의 첫번째 자동차 대륙횡단은 비록 뉴욕(New York)까지 가지는 않고 워싱턴DC 부근에서 끝났는데, 이제 정확히 20번째 횡단여행기인 이 마지막 글로 대미를 장식할 차례이다.
특별 개조는 고사하고, 뒷자리와 트렁크도 모자라서 지붕 위까지 이삿짐을 가득 싣고 대륙횡단에 나섰던 우리집 차가 가운데 보인다. 대륙횡단 8일째 오후에 2시간 정도 거리에 최종목적지를 남겨두고서, 또 하이킹을 하기 위해 주차를 한 이 곳은 버지니아 주의 쉐난도어 국립공원(Shenandoah National Park)의 스카이랜드 리조트(Skyland Resort) 입구이다.
스토니맨(Stony Man) 트레일이 시작되는 곳의 안내판 옆에서 아내가 손을 흔들고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오솔길 건너편 큰 나무에 흰색과 파란색의 페인트가 세로로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칠해져 있는 것이 보이는데, 바로 이 길이 국립공원청이 관리하는 423개의 Official Units에 독립적으로 포함되는 애팔래치안 국립경관로(Appalachian National Scenic Trail)임을 알려주고 있다.
애팔래치안 트레일(Appalachian Trail, AT)은 지도와 같이 남쪽 조지아(Georgia) 주의 Springer Mountain에서 출발해, 미동부의 14개 주를 거쳐서 북쪽 메인(Maine) 주의 Mount Katahdin에서 끝나는 총길이 약 2,180마일(3,500 km)의 등산로로 1937년에 완성되었다. 흔히 미서부를 남북으로 종주하는 PCT(Pacific Crest Trail), 대륙경계를 따라가는 CDT(Continental Divide Trail)와 함께 묶어서 '하이킹의 3관왕(Triple Crown of Hiking)'으로 불린다.
예전에 PCT를 소재로 한 리즈 위더스푼(Reese Witherspoon) 주연의 2014년도 영화 <Wild>를 소개해드린 적이 있는데,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와 닉 놀테(Nick Nolte)가 출연한 2015년 영화 <A Walk in the Woods>는 애팔래치안 트레일이 무대다. 영화는 두 분 나이와 비슷해지면 보기로 하고, 그 전에 그들이 서있는 장소로 AT 전구간에서 가장 유명한 버지니아에 있는 바위산인 맥아피놉(McAfee Knob) 등산은 빨리 해보고 싶다.
노란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 정취가 느껴지시나요? (왼팔로 나뭇가지를 힘껏 흔드는 중...^^)
애팔래치안 트레일의 가을 단풍을 배경으로 커플셀카도 많이 찍었다.
다른 하이커들도 많이 없고 나무줄기가 검어서 약간 으스스한 느낌도 들었지만, 공기는 상쾌했던 듯... 기억이 가물가물~
그렇게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따라서 0.4마일 정도만 걸은 후에 갈림길에서 스토니맨(Stony Man) 정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옛말에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그러면 절반을 더해서 AT 전구간의 50.02%를 걸은 셈인가? ㅎㅎ
등산로를 따라 걸어가면 정상 조금 아래에 있는 여기 스토니맨 룩아웃(Stony Man Lookout)이 나온다. 등산로에서는 별로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전망좋은 바위에 많이 모여있어서 약간 놀랐던 기억이 난다.
서쪽 아래로 보이는 골짜기는 동굴로 유명한 루레이(Luray) 마을이 있는 페이지 밸리(Page Valley)이고, 그 너머를 가로막고 있는 산맥은 마사누텐 마운틴(Massanutten Mountain)으로 모두 북동쪽으로 나란히 뻗어있다.
전망대 바위에서 한바퀴 돌면서 찍은 360도의 풍경을 클릭해서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다.
우리가 지나왔던 블루리지 산맥(Blue Ridge Mountains)의 쉐난도어 국립공원의 언덕들을 배경으로도 한 장~
기억하시는 분은 없겠지만 대륙횡단 여행계획 포스팅에서 목표로 했던 6개의 내셔널파크에 여기 셰넌도어는 포함되지 않았었다. 앞으로 살 집에서 2시간 거리라서 이사 후에 홀가분하게 다녀오려고 했던 것인데, 이렇게 마지막 날에 두 곳의 하이킹까지 하면서 끝내 둘러보게 되다니... V자 하고 계신 분도 참 대단하십니다!
우리 동네에 왔으니 이 하이킹도 가이아GPS로 기록을 했다. A와 T를 세로로 합친 모양의 애팔래치안 트레일 로고와 함께, 우리가 걸었던 구간을 따라서 Appalachian Trail이라고 씌여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LA에서 DC까지 7박8일 1차 대륙횡단 이야기의 마지막 포스팅이다 보니, 자꾸 출발전 계획을 세울 때가 떠오른다. 맨아래 대륙횡단 배너를 클릭하시면 그 때 계획과 함께 20편의 여행기를 모두 차례로 보실 수 있는데, 그 글의 제일 마지막에 노란 단풍이 든 숲속 두 갈래 길의 사진이 있다... 그 중에서 선택한 이 하나의 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돌아가서, 1차 대륙횡단의 마지막 도착지 주소를 네비게이션에 입력했다.
그곳은 바로 북부 버지니아에서 한국분들이 가장 많이 모여사는 곳인 센터빌(Centreville) 쇼핑몰의 파리바게트 빵집이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비록 주문은 영어로 했지만, 직원과 손님들 대부분이 한국사람이라서 마치 웜홀을 통해서 순식간에 LA 코리아타운의 마당몰로 돌아간 것으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최초의 자동차 대륙횡단은 1915년에 Erwin George "Cannon Ball" Baker가 11일 7시간이 걸렸다는데, 우리 부부의 2021년 1차 대륙횡단 '캐논볼런'은 만으로 7일 6시간이 걸렸고, 주행거리는 LA에서 뉴욕까지보다 더 긴 3,045마일인 정확히 4,900 km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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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피카(Topeka)의 캔사스 주청사와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Brown v. Board of Education) 국립역사공원
작년 10월에 LA에서 워싱턴DC까지 두 번의 대륙횡단을 하면서 지나간 주(state)의 갯수는 모두 18개인데, 그 중에서 오클라호마, 아칸소, 테네시, 캔사스, 웨스트버지니아 5개주의 주도(state capital)를 차를 몰고 통과했었다. (30분 이내 거리로 스쳐지나간 미주리 제퍼슨시티와 켄터키 프랑크푸르트를 포함하면 모두 7개주) 하지만, 그 도시들 중에서 주청사를 직접 구경한 곳은 캔사스 주도인 토피카(Topeka) 한 곳 뿐이었던게,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아쉽고 좀 후회도 된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면 나머지 주들은 주청사 이외의 다른 굵직한 볼거리들이 있었던 반면에, 캔사스 주는 구경거리가 하도 없으니까 커다란 주청사 건물이라도 보고 지나가자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미국의 50개 주도가 표시된 지도를 찾아봤는데, 딸이 초등학교 4학년 정도에 50개 스테이트와 캐피탈을 학교에서 배우면서, 몇 일동안 함께 생소한 도시 이름들을 외웠던 기억이 난다.^^ 위기주부가 겉모습이라도 직접 본 주청사는 2015년에 뉴멕시코 산타페와 메사추세츠 보스턴, 2019년 콜로라도 덴버, 그리고 작년에 캘리포니아를 떠나기 직전에 방문한 새크라멘토의 4개 뿐이었는데, 대륙횡단을 하면서 불과 단 하나만 더 추가가 된 셈이다.
미본토의 중앙에 있는 캔사스(Kansas)의 주도는 인터스테이트 70번 고속도로가 지나는 토피카(Topeka)이다. 주의회 의사당의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 엘리베이터를 타는 곳의 벽을 돔지붕처럼 만들어 놓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엘리베이터는 바로 광장의 지하로 연결되어 주도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들을 지나서, 주청사 비지터센터까지 바로 걸어갈 수 있었다.
성조기에 그려진 별의 갯수와 같이 캔사스는 미연방에 34번째 주로 1861년에 가입을 하는데, 바로 그 해 남북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새로 연방에 가입하는 이 주를 노예주로 할 것이냐 자유주로 할 것이냐는 문제를 주민투표로 결정한다는 1854년에 통과된 '캔자스-네브라스카법' 때문에, 각각 남북에서 이주해 온 노예제 찬반론자들 사이에 끔찍한 유혈사태가 발생을 해서 '피흘리는 캔자스'로 미국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면서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비지터센터가 있는 주청사(State Capitol) 건물의 1층 중앙홀에 선 아내인데, 머리 위로 돔지붕의 끝까지 보이는 모습이 멋있었다.
한가운데에 서서 올려다 보면 윗층의 동그란 난간을 따라서 8개의 깃발을 꽂아놓은 것이 보인다. 지금의 캔사스 땅을 전체 또는 일부라도 지배했던 세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사진 9시 위치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차례로 영국, 프랑스 왕국, 프랑스 공화국, 스페인, 멕시코, 텍사스, 미국, 캔사스 깃발이 걸려있다.
2층으로 올라오니까 노란 빛을 띠는 내벽과 황동색 철제난간, 그리고 대리석 바닥에 조명이 어우러져서 아주 고급스럽고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4층과 5층의 벽들이 팔각형을 이루면서 그 위의 둥근 돔과 연결되는 것이 특이한 모습이다.
'허허벌판' 캔사스에 딱 어울리는 초원의 풍경이 그려진 벽화 등을 지나서 주요 시설의 입구가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먼저 건물 서쪽에 있는 하원(House of Representatives) 본회의장 모습이다. 지금까지 사진들의 등장인물을 봐도 짐작을 하시겠지만, 작년 10월말 주중 목요일에 오후 2시에 주차장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마주친 다른 사람은 비지터센터에 있던 직원과 경비의 딱 두 명이었다.
"하원의장님, 이의있습니다!" 마누라가 우영우 변호사야? 거기 서서 이의있다고 하게...^^
다른 사람들도 없으니 마스크 벗고 커플셀카 한 장 찍고는 다음 방으로 이동한다.
북향에 있는 주의회 도서관인데 여기도 불은 환하게 다 켜놓고 아무도 없다... "캔사스 주의 공무원들은 다 어디 간거야?"
마지막으로 상원(Senate) 회의실까지 구경을 하고는 다시 중앙홀로 돌아 나갔다.
마치 이 넓은 건물을 둘이서 전세낸 듯한 착각이 들면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주청사 구경을 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하며, 계단을 내려가서 건물 밖으로 나가봤다.
1866년부터 건설을 시작해서 1903년에 완공된 이 캔사스 주청사(Kansas State Capitol)는 워싱턴DC의 미국 국회의사당을 본따서 설계했다고 한다. 전체적인 건물의 크기는 당연히 작지만, 아내가 서있는 광장에서 저 돔 꼭대기까지의 높이는 304피트(93 m)로 국회의사당의 288피트(88 m)보다 더 높다는 것이 포인트다.
이 방향에서 찍은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돔의 꼭대기에 세워진 높이 약 7미터의 동상은 북극성을 향해서 활을 쏘는 칸사(Kansa) 부족 원주민의 모습으로 2002년에야 처음 설치가 되었다고 한다. 캔사스 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동상과 여러 다른 기념물 등의 볼거리가 야외에도 있다지만, 빗방울이 떨어지는 관계로 구경을 마치고 지하주차장으로 바로 돌아갔다.
주청사 조금 아래쪽에 국립공원청에서 관리하는 국가유적지가 하나 있어서 잠시 들러보기로 했다. 비포장 주차장에 이삿짐 차를 세웠는데, 사모님은 차안에 그대로 계시고 위기주부만 우산도 없이 차에서 내려서 정면에 가로수들 너머로 보이는 건물을 찾아갔다.
1952년에 여기 먼로(Monroe) 초등학교에 다니던 두 딸의 아빠인 Oliver Brown은 토피카 교육위원회에 집에서 가까운 섬너(Sumner) 초등학교로 딸들을 전학시켜 달라고 요청하지만, 그 학교는 백인전용이라서 흑인인 브라운의 딸들의 전학이 거절된다. 당시 미국은 1896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분리하되 평등(Seperate but Equal)"이라는 논리로, 모든 분야에서 흑인과 백인의 이용시설을 분리하는 것이 합법적으로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이 소송은 2년 후인 1954년에 대법관 9인의 만장일치로 기존 판례를 뒤집으며 "분리 자체가 불평등"이라서 공립학교에서 인종에 따른 학교 분리가 위헌이라는 역사적 판결을 내리게 된다. 사실 그런다고 당장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이후 1960년대말까지 이어지는 흑인민권운동의 시발점이 된 역사적 의미로 이 곳이 1992년에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국가유적지(Brown v. Board of Education Natonal Historic Site)로 처음 지정이 되었고,
위기주부가 다녀온 다음 해인 2022년 5월에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에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위의 지도에 표시된 1950년대 초 당시에 유사한 소송이 진행되었던 미동부 델라웨어, 워싱턴DC, 버지니아,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학교 건물들이 추가되어서 국립역사공원(National Historical Park)으로 승격이 되었다.
아내는 차에서 기다리고, 갈 길은 먼데다 빗방울까지 또 굵어져서, 건물 안은 들어가지도 않고 옛날 운동장 옆 건물에 그려진 벽화만 구경하고는 동쪽으로 대륙횡단을 계속했다. 여기 토피카에서 캔사스시티까지의 70번 고속도로 구간은 약간의 통행료를 내야 했는데, 작년 10월 두 번의 대륙횡단을 하면서 유일하게 이 날 오후에만 통행료가 있었던 것도 추억이다.
대도시권에 들어선데다 빗길의 퇴근시간까지 겹쳐서 오랜만에 차가 밀리는 경험을 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캔사스시티(Kansas City)라는 이름의 도시는 캔사스 주에도 있고, 바로 인접한 주경계 너머 미주리 주에도 있어서 함께 광역도시권을 형성하지만, 대도시로 고층건물이 있고 프로스포츠팀의 연고가 있는 곳은 여기서 강 건너 미주리 주의 캔자스시티이다.
그래서 도심 한가운데를 지나는 고속도로 표지판 사이에서 처음 방문하는 미주리(Missouri) 주의 작은 환영간판을 발견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토피카에서 여기 캔사스시티까지 1시간이 걸렸는데, 캔사스시티를 구경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쉬지 않고 연달아 2시간반을 더 달려서 저녁 7시에 미주리 주의 컬럼비아(Columbia)에서 2차 대륙횡단의 9일째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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