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주부의 미국 여행과 생활 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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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립아시아미술관(National Museum of Asian Art)의 새클러 갤러리(Arthur M. Sackler Gallery)

미국 국립아시아미술관(National Museum of Asian Art)의 새클러 갤러리(Arthur M. Sackler Gallery)

스미소니언 재단이 운영하는 워싱턴DC에 있는 미국의 국립 아시아 미술관(National Museum of Asian Art)은 1923년에 오픈한 프리어 갤러리와 1987년에 건설된 새클러 갤러리의 두 건물이 지하로 연결되어서 하나의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예전에는 두 곳을 묶어서 그냥 Freer|Sackler라고도 쓰기도 했던 것 같지만, 지금은 두 갤러리의 이름은 건물에만 씌여있을 뿐 잘 사용하지 않는 듯 한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글의 마지막에 간단히 설명을 드릴 예정이다. 별도로 이미 소개했던 프리어 갤러리(Freer Gallery of Art) 구경을 마치고 남문 쪽으로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여기서 밖으로 나갈 필요없이 바로 아래 G층의 동쪽 끝에서 지하로 내려가면 옆건물로 통하게 된다. G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걸려있던 미국화가 애벗 세이어(Abbott Handerson Thayer)의 1893년 작품 A Virgin 그림을 한참 구경하고 또 뒤돌아 봤다. 당시에도 그림 속 인물들을 바라보며 왠지 느낌이 짠했는데, 해설을 찾아보니 아내가 사고로 죽고 난 후에 자신의 3명의 자녀를 모델로 그린 것이라 한다. 지하 1층(B1)으로 내려가면 새클러 갤러리(Arthur M. Sackler Gallery) 건물에 들어선 것이고, 제일 먼저 두 갤러리의 전시를 아우르는 기념품 가게가 나와서 잠시 들어가 봤다. 앞쪽에 보이는 실용적인 사케(sake) 술잔과 뒤에 보이는 고려청자같은 다양한 도자기들과 멀리 일본의 목판화(Ukiyoe, 우키요에) 사본 등의 수준있는 기념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여기 '부처와의 조우(Encountering the Buddha)'라는 제목의 전시실이 새클러 갤러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어두운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서 바로 왼편에 나오는 작은 방의 안에는... 이렇게 작은 불상과 법기들이 오래된 가구 및 탱화들과 함께 방에 가득해서 마치 시공을 초월해 어느 절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티벳불교법당(Tibetan Buddhist shrine)이라고 안내가 되어 있었는데, 어디선가 아주 은은하게 향의 냄새도 나는 듯.. 아니면 착각이었을지도~ 아시아 여러 나라의 대표적인 불교사찰을 작은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한국은 경주 불국사가 소개되어 있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또 다른 방에는 다양한 불교의 세계를 영상과 해설로 보여주고 있어서, 단순히 미술품 관람을 넘어서 전시실의 제목과 같이 부처 또는 불교를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날에 위기주부도 참으로 오래간만에 이런 불상들을 직접 봤던 것 같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다음으로 아랍권의 전시실이 만들어져 있는데, 카타르 도하(Doha)의 이슬람 박물관 협찬으로 카페트(?)와 관련된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바닥의 화려한 카펫은 딱 봐도 사람이 정말 한줄한줄 정성스럽게 엮어서 만든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새클러 갤러리 건물은 입구와 로비만 별도로 지상에 작게 있고, 모든 전시실들은 지하에 만들어져 있었다. 여기가 지하 1층인 B1이고, 아래 복도가 B2, 그리고 그 아래가 B3로 바닥까지 자연광이 들어가도록 설계되었고, 다음편에 따로 소개할 다른 미술관 및 스미소니언 재단의 공연장인 리플리센터(S. Dillon Ripley Center)와 모두 지하로 연결이 된다. B2에는 전시실이 없었고, 제일 아래 B3에는 이렇게 Prehistoric Spirals: Earthenware from Thailand 제목으로 태국에서 발견된 기원전 도기를 전시하고 있는 것이 볼만했다. 구경을 마쳤으니 이제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로 지상까지 올라가면, 새클러 갤러리 건물의 지상 로비가 나왔다. 국립 현대미술관 포스팅에서 설명드렸던 것과 똑같은 '바르셀로나 체어'에 아내가 앉아 있는데, 상표를 찾지는 못했지만 다시 봐도 하나에 8백만원 이상 한다는 놀(Knoll) 회사의 제품이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바닥의 카페트도 의자 못지 않게 비싼 제품인게 팍팍 느껴졌다~ 북쪽 창밖으로는 스미소니언 재단 20개 박물관들의 비지터센터인 '캐슬(The Castle)'이 보이고, 바로 앞의 작은 정원은 이름이 문게이트 가든(Moongate Garden)인데, 양쪽에 세워진 돌로 만든 동그란 출입구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붙인 모양이다. 새클러 갤러리는 입구도 내셔널몰에서는 아예 보이지가 않기 때문에, 일반 여행객들은 찾아오기도 어려워서 그런지 일요일임에도 아주 한산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이렇게 우리 현지인 부부는 미국 국립 아시아 미술관의 두 갤러리 관람을 모두 마치고, 직원 두 명만 계속 서있는 저 쪽의 정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이 건물은 1982년에 약 1천점의 아시아 미술 수집품과 건축비 4백만불을 스미소니언 재단에 기증한 아서 새클러(Arthur M. Sackler)의 이름을 땄는데, 문제는 그가 아편계 진통제인 옥시콘틴(OxyContin)을 만들어 무분별하게 판매한 제약회사인 퍼듀파마(Purdue Pharma)를 운영한 새클러 집안(Sackler family)의 의사 3형제 중의 장남이라는데 있다. 미국에서 마약성 진통제 과용 문제는 옛날부터 있기는 했지만, 퍼듀파마가 처방약 옥시콘틴을 판매하기 시작한 1997년부터 급격히 사망자가 증가해서 지금까지 이러한 아편(opioid)계 약물 중독으로만 50만명 이상이 숨져서 '오피오이드 사태(Opioid Crisis)'라 불리고 있다. 결국 한국 뉴스에도 보도되었던 것처럼 작년에 퍼듀파마는 유죄를 인정하고 9조원대의 배상금을 내고 파산하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그 동안 '합법적(?) 마약장사'로 3대에 걸쳐 수십조원을 벌었던 새클러 집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프랑스 루브르 등의 세계적 박물관과 하버드, 예일, 옥스포드 등의 최고 대학교에 거액 기부자로 이름을 올리며 명성을 쌓았지만, 모든 곳이 더 이상 기부금을 받지 않는 것은 물론 기존 시설에서도 그 이름을 삭제하고 있다. 비록 Arthur M. Sackler는 옥시콘틴이 출시되기 한참 전인 1987년에 사망해서 직접적인 비난은 피해갔지만, 이 갤러리도 "most evil family in America"라 불리는 이름인 Sackler를 공개적으로 계속 사용하는 것을 꺼리는 것으로 생각된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블루리지파크웨이(Blue Ridge Parkway)를 대표하는 구름다리인 린코브 비아덕트(Linn Cove Viaduct)

블루리지파크웨이(Blue Ridge Parkway)를 대표하는 구름다리인 린코브 비아덕트(Linn Cove Viaduct)

LA에서 워싱턴DC까지의 1차 대륙횡단 이사 겸 여행의 7일째 아침은 테네시(Tennessee) 주의 북동쪽 끝에 있는 도시인 존슨시티(Johnson City)에서 맞았다. 이전 글에서 6일째 아침도 테네시 녹스빌이라고 했었으니 횡단방향과 반대로 움직인 것으로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전날 스모키마운틴 국립공원을 구경한다고 남쪽으로 약간 우회하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는 북동쪽의 워싱턴DC 방향으로 계속 맞게 가는 경로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은 것이다. 그래도 전날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주의 애쉬빌(Asheville)에서 바로 버지니아로 향하지 않고 북쪽으로 산을 넘어 다시 테네시로 돌아온 이유는, 숙소 근처의 그레이(Gray)라는 마을에 사는 여기 아내의 친구집을 방문하기 위해서 였다. 맨발로 뛰어 나와서 우리를 반겨준 아일린은 아내의 직장 동료였는데, 우리보다도 먼저 LA에서 여기까지 대륙횡단 이사를 한 선배님이라 할 수 있다.^^ 고양이를 10마리 이상 키우는 '캣맘'이라 캠핑카를 빌려서 고양이들을 모두 태우고 이사를 해서 우리처럼 중간에 관광을 하지도 못했고, 횡단거리도 우리보다 400마일 정도 짧았지만 말이다. 월드컵이 열리는 축구장처럼 잔디를 깍아놓은 땅이 모두 이 집의 뒷마당이고, 그 오른쪽에 잔디 상태가 안 좋은 옆집과 다시 줄 맞춰 깍아놓은 옆옆집의 뒷마당이 담장도 없이 붙어있는데, 한 마디로 미국의 전원 주택단지의 스케일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축구장이 끝나는 곳에 코너킥을 차는 위치를 표시하는 막대기가 하나 세워져 있고, 그 너머로는 소들을 방목하는 목장이라고 해서, 집구경과 담소를 모두 마치고 떠나기 전에 함께 저 아래까지 하이킹(?)을 했다. 마침 소들이 이 쪽 나무그늘에 다 모여있어서 커다란 소가 '실례하는' 모습과 귀여운 송아지까지 원없이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아일린과 작별하고 여기서 바로 북쪽의 인터스테이트 81번 고속도로를 타서 6시간 정도만 운전하면 대륙횡단의 최종 목적지에 바로 도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하루의 시간이 더 남아있었고, 꼭 구경해야 할 곳이 있어서 19E 국도를 타고 다시 동쪽의 노스캐롤라이나 주로 들어갔다. 그랜드파더마운틴(Grandfather Mountain)은 전날 알아 봤을 때는 주립공원이라고 생각되어서 입장료를 조금 내더라도 방문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구글 스트리트뷰로 보여드리는 이 도로 옆 입구에서 자동차로 산 위로 올라가는 길은 사유지라서 성인 1인당 $22의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다시 온다고 해도 아마 '할아버지 산'을 비싼 요금을 내고 이리로 올라갈 것 같지는 않아서, 유명하다는 장소 두 곳의 사진만 아래에 보여드리고 넘어간다. 1994년도 영화 의 유명한 대륙횡단 달리기 장면에서 아주 잠깐 나오는 이 오르막길이 산 위의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도로에서 찍은 것이란다. 그래서 Forrest Gump Curve라는 안내판도 붙여놓았다고 하는데, 다시 보니까 저 멀리 해뜨는 블루리지 산맥의 모습이 왠지 익숙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꼭대기 주차장에서 바로 걸어갈 수 있는 1952년에 만들어진 흔들다리인 Mile High Swinging Bridge가 인기있는 관광지이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립공원의 지도를 보면 사유지를 통과하지 않고 여기까지 하이킹으로 오는 트레일도 있기는 한데, 왕복거리가 제법 되어서 우리처럼 지나가는 여행객이 산을 타고 이 흔들다리를 구경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여서 포기했다. 전날에 이어 다시 블루리지 공원도로(Blue Ridge Parkway)를 만나서 먼저 정차한 곳은 린코브 비지터센터(Linn Cove Visitor Center)인데, 구글맵에는 임시폐쇄라고 되어있지만 코로나 훨씬 이전부터 운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이 날 우리가 꼭 구경해야할 장소에 대한 안내판을 볼 수가 있었다. 블루리지파크웨이는 약 30년의 공사를 거쳐서 1966년에 전체 469마일 중에서 딱 한 구간만 제외하고는 완성되었다고 말씀드렸는데, 바로 그 미완의 구간이 여기 그랜드파더 산을 지나는 7.7마일로 평소처럼 산을 깍아서 길을 만드는 경우에 바위산의 절경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최초로 곡선의 육교(viaduct)를 조립해서 만드는 공법으로 1979년에 공사가 시작되어서, 당시 화폐로 1천만불의 공사비를 들여서 1983년에 완성이 되었다. 비지터센터를 떠나서 북향으로 조금 달리니 바위절벽과 단풍이 어우러진 풍경을 정면에 두고, 좌우로 난간이 만들어져 있는 부드럽게 휘어진 도로를 지나게 되었다. "아~ 여기가 그 구름다리 위네! 그냥 다 지나가면 안 되는데..." 생각이 들었는데, 다리가 끝나고 조금 지나서 오른편에 Yonahlossee Overlook이라고 차를 안전하게 세울 수 있는 곳이 나왔다. 그리고 도로와는 튼튼한 난간으로 구분되어져서 차로 지나왔던 구름다리까지 다시 안전하게 걸어올 수 있는 트레일이 길옆에 잘 만들어져 있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린코브비아덕트(Linn Cove Viaduct)는 S자 모양으로 휘어진 전체길이가 약 380미터인 구름다리로 7개의 기둥 위에 153개의 콘크리트 조각을 조립해서 만든 것이라 한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드는 생각은... "적당히 터널을 뚫는 것이 훨씬 더 쉽지 않았을까?" 글의 제목 그대로 블루리지파크웨이를 대표하는 장소라서 'blue ridge parkway'로 이미지 검색을 해도 대부분 여기가 나온다. 그 사진들처럼 S자로 도로가 휘어진 모습을 좀 더 잘 볼 수 있을까 해서 위험하게 난간 위로도 올라가 봤지만 별반 다르지 않다. 검색에서 나온 사진들과 같은 풍경을 찍으려면 앞서 소개한 비지터센터에 차를 세우고 타나화 트레일(Tanawha Trail)로 0.5마일 정도 걸어서 도로 건너편 언덕 위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서있던 약간 도로 아래의 바위까지 우리도 걸어와서 기둥과 육교를 가까이서 구경을 했다. 여기 도로 아래는 와봤으니까 다음 번에 이 길을 다시 지날 때는 꼭 비지터센터에서 트레일을 해서 도로 위로 올라가봐야 겠다! 소떼들과 함께 찍은 커플사진을 위에서 보여드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기서 찍은 커플셀카 한 장 더 투척한다~ 돌아서 나오면서도 계속 사진을 찍게 되는 그런 멋진 풍경이었는데, 그래서 360도 풍경을 동영상으로도 하나 찍었으니 클릭해서 유튜브 비디오로 보실 수 있다. 난간에 앉아서 포즈를 잡으신 사모님 독사진도 한 장 찍어드리고는 겨우 주차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도로 건너편에는 불법주차를 막고 또 여기서 바로 언덕으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나무로 펜스를 예쁘게 만들어 놓았다. 다시 차를 몰고 블루리지파크웨이를 북쪽으로 달리면 Julian Price Memorial Park를 지나는데, 도로 바로 오른편으로 이렇게 작은 호수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가서 블로잉락(Blowing Rock)이라는 산속 마을에 있는 Moses H. Cone Memorial Park에 차를 세웠다. 여기는 리바이스(Levi's) 청바지 회사에 원단을 공급해서 "Denim King"이라 불렸다는 Moses and Bertha Cone 부부가 1901년에 만든 여름별장인 콘매너(Cone Manor)가 있지만, 내부투어가 중단된 상태라서 마굿간을 개조한 이 비지터센터의 화장실만 잘 이용하고, 아침에 아내의 친구가 이것저것 챙겨준 간식들로 점심을 해결했다. 시간 관계상 계속 블루리지파크웨이를 달릴 수는 없었기 때문에 Deep Gap에서 221번 국도로 빠져 Grassy Creek이라는 곳에서 마침내 대륙횡단 7일째만에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입성을 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웨스트버지니아(West Virginia) 주의 하퍼스페리 국립역사공원(Harpers Ferry National Historical Park)

웨스트버지니아(West Virginia) 주의 하퍼스페리 국립역사공원(Harpers Ferry National Historical Park)

미국의 50개 주들 중에서 '동서남북'의 영어단어가 이름에 들어간 주는 North & South Carolina와 North & South Dakota, 그리고 West Virginia의 딱 5개 주이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의문은 "웨스트버지니아(West Virginia)와 짝인 버지니아 주의 이름은 왜 East Virginia가 아니고, 그냥 Virginia일까?"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처음부터 남북으로 구분되어서 함께 사이좋게 미연방에 각각 가입한 앞의 두 쌍과는 달리, 웨스트버지니아는 미국이 남북전쟁 중이던 1863년에 남부 동맹(Confederacy)에 속했던 버지니아 주의 북서부 공업지역이 독립해 나와서, 따로 북부 연합(Union)에 새로운 주로 가입을 했기 때문이다. 현재 위기주부가 살고있는 버지니아(Virginia) 주를 중심으로 주변의 다른 주들을 보여주는 지도인데, 북쪽의 웨스트버지니아(West Virginia)와 메릴랜드(Maryland)를 보면 주경계가 마치 직소퍼즐을 끼워서 맞춘 것처럼 특이하게 들쭉날쭉한 것이 보인다. 이사 와서 처음으로 점심 도시락을 직접 만들어서 2월 중순의 나들이를 떠난 곳은 위의 지도에서 그 3개의 주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마을인 하퍼스페리(Harpers Ferry)이다. 그 마을은 구시가지인 로워타운(Lower Town)과 주변의 언덕 등이 모두 1944년부터 하퍼스페리 국립역사공원(Harpers Ferry National Historical Park)으로 지정되어 있다. (한여름에 찍은 구글 스트리트뷰 사진을 가져온 것임) 깊은 산골이지만 연간 5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국립공원이라서 마을 외곽에 1천대를 수용하는 큰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고, 공원 입장료도 차 1대당 $20을 내야 한다. 물론, 우리는 국립공원 연간회원권을 보여주고 그냥 통과~ 날씨가 추워서 차 안에서 점심 도시락을 까먹고 비지터센터에서 공원브로셔와 지도를 받은 후에 마을로 들어가는 셔틀버스에 탑승을 하는 모습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즉, 여기는 셔틀버스를 운행하기 위한 주차장이라고 보는 것이 맞고, 실제 역사공원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는 안내소와 기념품 판매 등은 모두 구시가지의 건물들에 나누어져 있다. 로워타운 정류소에서 버스를 내리니 제퍼슨의 말이라는 "Worth a voyage across the Atlantic"과 함께 공원에 대한 소개와 사진이 안내판에 보인다. 강 건너 언덕에서 내려다 본 강물에 둘러싸인 이 마을의 모습은, 아래와 같이 연말에 딸이 선물 받았던 내셔널지오그래픽 <100 Parks, 5000 Ideas> 책에도 전체사진으로 등장할 만큼, 미동부를 대표하는 자연의 풍경으로 유명하다. 대서양을 건너와서 구경을 해야 할 정도의 절경은 아니지만, 위와 같이 특히 가을단풍이 들었을 때의 모습이 가장 인기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나무에 나뭇잎이 하나도 없는 겨울의 끝자락인 2월 중순이었다... 흑흑~ 국립공원청에서 직접 관리하는 구시가지의 건물들은 각각의 용도로 활용되고 있는데, Bookshop과 Fancy Goods 간판이 붙은 건물은 기념품 가게로, 그 옆 건물은 1800년대 소총을 제작하던 공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Industry Museum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너편 두 곳은 돌아오는 길에 들렀고 먼저 도로 이 쪽에 있는 역사를 소개한 전시실을 구경했다. 이 곳은 이름에서 유추가 가능하듯이 1747년에 Robert Harper가 강을 건너는 페리를 운항하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작은 마을이었지만, 1796년에 사진 제일 왼편의 미국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이 이 곳에 미군이 사용하는 총기류를 제작하는 병기창을 건설하기로 한다. 상류의 철광석과 석탄을 배로 운송해 와서 두 개의 강이 제공하는 풍부한 수력으로 총을 만들고, 다시 하류에 있는 수도까지 배로 운송하면서 이 곳은 공업도시로 발전을 했다. 그러다가 1859년에 급진적 노예해방론자였던 존 브라운(John Brown)이 (가운데가 젊었을 때, 왼쪽 두번째가 말년 모습) 흑인들의 무장을 위해서 여기 무기고를 습격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는 노예제에 대한 남과 북의 갈등을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고, 결국 1861년에 연방군이 주둔한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섬터 요새를 남부군이 습격하면서 내전이 발발한 것이다. 강가에 주춧돌만 남아 있는 여기가 당시 무기고(arsenal)의 자리이고, 주변에 요새와 건물들의 잔해가 남아있다. 결국 모두 파괴되기는 했지만 병기창과 무기고가 있는데다 지리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남북전쟁 중에 격전지가 되어서 1865년에 전쟁이 끝날때까지 무려 10번 이상 이 곳의 점령군이 바뀌었단다... 역사공부는 일단 이 정도로 하고, 이제 땅끝으로 걸어가 풍경을 감상해보자~ 사진 왼편에서 흘러와 가운데 멀리 흘러가는 누런 흙탕물이 본류인 포토맥 강(Potomac River)이고, 오른편에서 흘러와 합류하는 청록색의 맑은 물이 쉐난도어 강(Shenandoah River)이다. 이렇게 두 강이 합쳐져서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로 흘러가므로, 이 곳을 '미국판 양수리'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강물에 의해 끊기기는 했지만 앞에 보이는 언덕들이 블루리지 산맥(Blue Ridge Mountains)이니까, 유명한 존 덴버의 노랫가사가 어쩌면 여기를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노래에 대해서는 웨스트버지니아를 처음 밟았던, 작년의 2차 대륙횡단 여행기에서 소개할 예정) 또한 여기는 남부 조지아(Georgia)에서 북동부 메인(Maine) 주까지 연결되는 약 2,100마일의 국가경관로(National Scenic Trail, NST)인 애팔래치안 트레일(Appalachian Trail)이 지나는 곳이다. 특히 안내판에 알 수 있듯이 전체 트레일의 거의 중간에 해당하는 곳이라서 그런지 Appalachian Trail Conservancy 본부 겸 비지터센터가 여기 하퍼스페리에 있다. 애팔래치안 트레일은 우리가 자동차로 건너왔던 버지니아 쪽 다리로 쉐난도어 강을 건너 웨스트버지니아의 이 마을을 통과하고, 다시 이 오래된 철교를 따라 포토맥 강을 건너 메릴랜드 주로 이어진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사진을 찍어줬는데, 밖에서도 마스크를 하고있는 이유는 강바람에 얼굴이 추웠기 때문이다. 거기에 필수품인 털모자까지... 이 추운 겨울은 언제 끝나는거야? 참, 뒤로 보이는 로워타운까지도 직접 차를 몰고 올 수는 있는데, 기차역 등에 마련된 공영주차장들도 모두 NPS가 관리하는 곳이라서 공원 입장료 $20을 자율적으로 내는 것이 원칙이다. 철교가 바로 이어지는 터널의 앞에 빨간 신호등이 켜져 있는 것으로 봐서, 오래된 철로지만 지금도 비정기적으로 화물열차 등이 다니는 모양이다. 다리를 건너 정면의 바위산을 돌아서 올라가면, 앞서 보여드린 책에 나온 사진과 같은 풍경을 볼 수 있는 절벽 위의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하지만, 하이킹은 우리 나들이 계획에 없었던 관계로 그냥 여기서 돌아섰다. 마을의 오르막길을 따라서 하퍼스페리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물인 1833년에 지어진 St. Peter's Roman Catholic Church까지 올라왔는데, 남북전쟁 중에 당시 5개의 교회들 중에서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은 건물이라고 한다. 지금도 매주 일요일 아침 9시반에 예배가 열린다고 되어 있지만, 우리가 간 오후에는 문이 닫혀 있어서 내부를 구경할 수는 없었다. 그 옆으로 이 돌계단의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따라서 언덕 위로 더 올라가면 이 곳의 마지막 구경거리가 나온다. 오른편에 보이는 폐허는 St. John's Episcopal Church가 남북전쟁 중에 파괴된 모습이고, 정면에 보이는 멋진 가정집은 전후 1887년에 만들어져서 1962년까지 개인소유였다가, 지금은 Potomac Appalachian Trail Club에 기증되어서 A.T. 하이커들의 유료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고! 버지니아 출신의 미국의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1783년에 이 언덕에 올라서 '엄청난 풍경(stupendous scene)'이라고 불렀다는데, 저 멀리 사람들이 있는 곳에 특이하게 놓여진 바위가 제퍼슨락(Jefferson Rock)이다. 참, 제퍼슨 대통령은 미국 2달러 지폐의 앞면 모델인데, 문제는 2달러 지폐를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므로, 얼굴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서 보시기 바란다. 그레이스 켈리를 모나코의 왕비로 만들었다는 행운의 미국 2달러 지폐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일까? 두 개의 납닥한 바위가 원래는 그냥 아슬아슬하게 포개져 있어서, 올라가서 흔들면 위에 큰 바위가 조금씩 움직였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계속 흔들어서 위에 바위가 완전히 굴러 떨어질 상황이 되자, 1855~60년 사이에 동네 사람들이 저렇게 4개의 기둥을 만들어서 받쳐놓은 것이라 한다. 그리고 지금은 저 위로 올라가는 것 자체가 국립공원청에 의해서 금지되어 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 없이, 명당 자리에 앉아서 제퍼슨의 정기를 받는 포즈로 열심히 사진을 찍으시던 여성분~ 여기서 두 강이 합류해서 흘러가는 동쪽 방향으로 바라본 이 모습을 일러스트로 만든 자석과 엽서 등이 기념품 가게에 많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반대편으로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따라 더 걸어서 마치 쓰루하이커(thru-hiker)인 것처럼 트레일 본부 건물 앞에서 인증사진도 남기고, 차를 세워둔 곳까지 걸어서 돌아갈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냥 아무 말 않고 왔던 길로 돌아서 셔틀버스를 타러 내려갔다. 북스토어 간판을 달고있는 건물답게 기념품가게에는 남북전쟁과 특히 여기서 만들었던 당시 총기류에 관한 책들이 많았다. 미동부에서 "아는만큼 보이는" 여행을 다니려면 미국의 역사공부는 정말 필수라 할 수 있고, 다녀와서 이렇게 블로그에 여행기를 쓰는데도 옛날 LA에 살 때보다 시간이 엄청 더 걸리는데, 이 수고를 알아주시는 분이 계실랑가 모르겠다~ T_T 함께 셔틀버스를 기다리던 다른 분들의 복장을 보니 이 날 우리만 추웠던 것이 아니었다.^^ 다음에 날씨가 풀리고 나무에 잎들이 파랗게 돋아나면, 도시락과 간식을 배낭에 넣어와서 애팔래치안 트레일도 더 걸어보고, 강 건너 언덕의 전망대까지도 올라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위기주부가 5번째로 방문한 미국의 국립역사공원(National Historical Park)인 하퍼스페리(Harpers Ferry) NHP의 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리스버그 프리미엄아울렛(Leesburg Premium Outlets)으로 향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좁고 긴 공원인 미동부 애팔래치아 산맥군의 블루리지파크웨이(Blue Ridge Parkway)

세계에서 가장 좁고 긴 공원인 미동부 애팔래치아 산맥군의 블루리지파크웨이(Blue Ridge Parkway)

미국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국가공원도로(National Parkway)는 현재 약 10구간이 있는데, 그 중에서 4개의 도로만이 독립적인 공원으로 인정을 받는다. 옐로스톤과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을 연결하는 John D. Rockefeller Memorial Parkway와 포토맥 강가를 따라서 조지워싱턴의 생가를 찾아가는 George Washington Memorial Parkway는 이미 소개했고, 이제 3번째로 미국의 가장 유명한 공원도로인 Blue Ridge Parkway에 대해 알려드린다. (마지막 남은 하나는 Natchez Trace Parkway로 남부 미시시피 나체즈에서 테네시 내슈빌 부근까지 이어지는 444마일의 관광도로) 대륙횡단 여행기 전편에서 소개했던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그레이트스모키마운틴 국립공원의 오코날룹티 비지터센터 바로 아래가 블루리지파크웨이(Blue Ridge Parkway)의 남쪽 끝이다. 다시 와보기 쉽지 않은 곳이라서 위기주부도 파란색 표지판 앞에 서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저 두 분이 서로 모델을 바꿔가며 독사진까지 너무 열심히 찍으셔서 그냥 아내가 조수석에 앉아서 그들을 찍은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America's Favorite Drive, 번역하자면 '미국의 최애(最愛) 도로'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Blue Ridge Parkway는 지도와 같이 북쪽으로 버지니아 쉐난도어 국립공원까지 이어지는 도로인데, 블루리지 산맥(Blue Ridge Mountains)을 따라서만 달리는 꼬불꼬불한 산길의 전체 길이가 무려 469마일(755 km)이나 된다. 1930년대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순전히 관광과 경제개발의 목적으로만 1935년에 공사가 시작되어서, 약 30년 후인 1966년에 딱 한 구간만을 제외하고는 완성되었다. 당연히 수 많은 사유지를 관통하지만 공식적으로 도로 자체와 그에 연결된 전망대 및 비지터센터 등은 연방정부 소유의 땅으로 등록되어서 "세계에서 가장 좁고 긴 공원"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왕복 2차선의 755 km의 전구간에는 26개의 터널이 있고, 약 15개의 비지터센터와 200곳이 넘는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는데, 남쪽에서 출발했을 때 처음 나오는 비지터센터가 있는 워터락노브 전망대(Waterrock Knob Overlook)에 차를 세웠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산등성이의 푸르스름한 안개 때문에 Blue Ridge라고 불리는 곳이라서 그런지, 표지판도 멀리 보이는 산들과 비슷한 푸른빛이 도는 색깔로 칠해놓았다. 잠시 후 우리가 또 차로 지나가게 될 도로가 멀리 보이는데, 거의 대부분의 구간이 저렇게 산사면이나 능선을 깍아서 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공사가 계속되던 1950년대 부터는 환경보호론자들의 반대도 만만치가 않았고, 그래서 다음 편에 별도로 소개할 마지막 완공된 구간은 1983년에야 개통할 수 있었다. 블루리지를 물들인 레드와 옐로우 단풍을 배경으로 커플셀카 한 장 찍고, 좌우를 둘러보니 주변으로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참, 블루리지파크웨이는 이 블로그에서 몇 번 소개한 적이 있는 미국 교통부가 자체적으로 지정하는 약 60개의 '국민도로(All-American Road)'에도 포함되는데, 노스캐롤라이나와 버지니아의 두 구간이 나뉘어져서 각각 지정되어 있다. 들고나는 통로만 수십개인 750 km가 넘는 이 산속 도로의 방문객을 어떻게 자신있게 계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국립공원청의 통계에 따르면 블루리지파크웨이는 4백개가 훨씬 넘는 '넓은 의미의 모든 국립공원 유닛들' 중에서 1946년 이후로 단 4번(1949/2013/2016/2019년)을 제외하고는 항상 방문객이 가장 많은 곳이란다. 그저께 CNN 기사를 보면 2021년도 블루리지파크웨이 방문객은 약 1천6백만명으로 역시 1위였다고 하는데, 이 수치에는 우리 부부가 이틀 동안에 두 번 방문해서 4명으로 계산에 포함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전망좋은 이 언덕의 주차장 옆으로 피크닉테이블도 만들어 놓아서 한 상 차려놓고 점심을 먹는 가족도 볼 수 있었다. 아쉽게도 여기 비지터센터는 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주차장을 한 바퀴 빙 돌아서 다서 블루리지 공원도로를 만나 조금 더 달렸다.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아내가 산 아래로 보이는 단풍이 멋있다고 빨리 오른쪽 길가에 차를 세우라고 해서 정차한 전망대의 이름은 포크리지오버룩(Fork Ridge Overlook)이다. 사실 단풍은 1~2주 정도 지나서 왔어야, 사진에 아직 녹색으로 보이는 동그란(?) 나무들도 다 노랗고 빨갛게 바뀌어서 완벽했을거다. 오히려 이 사진에서는 단풍보다도 그 너머로 보이는 푸르스름한 산들의 실루엣이 더 멋있는 것 같다. 나의 웃는 모습을 보니까 갑자기... 대륙횡단 순서를 잘못 세웠다고, 구박을 받았던 추억이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한 참 후에 보여드리겠지만, 2차 대륙횡단 때는 유타와 콜로라도의 단풍이 다 지고 난 후였기 때문에, 1차 횡단과 2차 횡단의 경로를 서로 바꾸었어야 했다는 뜻임) 그나마 블루리지에서는 여기 남쪽 구간의 도로가 해발 1,600미터 전후로 가장 높은 곳이라서 이 정도라도 단풍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계속 18마일 정도를 더 달리면 나오는 Richland Balsam Overlook이 해발 6,053피트(1,845 m)로 블루리지파크웨이 전구간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고는 하는데, 그러면 산길을 너무 돌아가는 것이라 그 전에 산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구박 좀 받았다고 아내를 두고 도망가는 것은 아니고, 그냥 운전석에서 창밖으로 V자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보고 싶어서 부탁했다.^^ 아내를 다시 조수석에 모시고 바로 앞 발삼고개(Balsam Gap)에서 74번 국도로 빠져서, 1차 대륙횡단의 메인도로인 인터스테이트 40번 고속도로를 마지막으로 조금 더 달려서 애쉬빌(Asheville)에 도착을 했다. 그 40번 고속도로의 표지판이 사진 위에 작게 보이는 이 곳은 '미국에서 제일 큰 집'으로 유명한 빌트모어(Biltmore)의 입구이다. 사실 애쉬빌에 있는 블루리지파크웨이 공원본부 겸 비지터센터를 들리려고 했지만 시간이 늦어서 문을 닫았고, 이 곳은 위기주부의 사전계획에는 없었지만 아내가 한 번 가보자고 해서 찾아오게 되었다. 여기가 집의 대문인 셈인데, 옆으로 기념품 가게와 주차장도 만들어져 있다. 대문을 통과해서도 5분 정도를 차로 운전해서야 겨우 매표소 주차장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빌트모어(Biltmore)는 남성정장 상표 이름 아닌가? 양복 팔아서 번 돈으로 이렇게 큰 집을 지은거야?" 문 닫는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주차장은 한산했고, 하이킹에 산길 운전까지 많이 해서 노곤함이 몰려왔지만, 매표소 앞의 벤치 좌우로 예쁜 화분이 놓여 있어서 포즈를 잡으신 사모님 사진 한 장 찍어 드렸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방이 250개나 있다는 1895년에 완공된 빌트모어 하우스(Biltmore House)는 양복을 팔아서 번 돈으로 지은 것은 아니고... 전날 방문했던 내슈빌의 밴더빌트 대학교 여행기에서 설명드렸던 코닐리우스 밴더빌트(Cornelius Vanderbilt)의 손자인 조지 밴더빌트(George W. Vanderbilt, 1862~1914)가 그냥 물려받은 유산으로 지은 것이다. 그래서 밴더빌트가 더 지은 빌트모어~ 매표소 입구에 집의 정면 사진이 걸려있어서 같이 찍었는데, 까만 선글라스에 까만 작업화를 신었더니 무슨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경비원같으신 느낌이 난다.^^ 안내판에 여기 지도가 대강 그려져 있는데, 지금도 밴더빌트 가문의 후손이 소유한 이 집에는 방이 250개인 건물은 일부에 불과하고, 와이너리와 호텔 및 작은 쇼핑몰과 함께 강 너머로는 포도원과 지금도 사슴들이 방목되고 있는 사냥터까지 포함되어서, 그 전체를 보통 밴더빌트 에스테이트(Vanderbilt Estate)라 부른다. 아까 그 '경비원'이 저 멀리 매표소에서 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자판기로 저택과 정원의 최신 사진을 감상하는 것으로 1차 대륙횡단 6일째의 관광은 마감하고, 애슈빌에서 26번 고속도로를 북쪽으로 1시간 정도 달려 다시 테네시 주로 돌아가서 존슨시티(Johnson City)에 도착해 저녁으로 베트남 쌀국수를 아주 맛있게 먹고 숙박했다. 부연하자면 당시 빌트모어 내부투어는 마감되었고 정원을 둘러보는 가든투어는 가능했었지만, 입장료가 한마디로 사악했기 때문에 쉽게 돌아설 수 있었는데... 이미 방문해보셨거나 또는 들어서 아시는 분들은 물러나 계시면 감사드리고, 저 집 내부를 구경하는 가장 싼 투어의 성인요금이 얼마일지 한 번 상상해서 댓글창에 적어보시기 바란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공작새방, 피콕룸(Peacock Room)이 유명한 국립 아시아 미술관의 프리어 갤러리(Freer Gallery of Art)

공작새방, 피콕룸(Peacock Room)이 유명한 국립 아시아 미술관의 프리어 갤러리(Freer Gallery of Art)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들의 비지터센터인 '캐슬(The Castle)'을 나와서 워싱턴DC 지역의 주민이 된 후에 처음으로 방문하는 새로운 미술관은, 약 백년 전에 오로지 찰스 랭 프리어(Charles Lang Freer) 한 사람의 기부와 수집품으로 세워졌던 곳인 프리어갤러리오브아트(Freer Gallery of Art)였다. 캐슬의 바로 서쪽에 있는 이 프리어 갤러리는 1923년에 완공되어서, 캐슬을 제외한 박물관들 중에서는 예술산업관과 자연사박물관 다음으로 스미소니언 재단에서 오래된 건물인데, 당시 건축비 약 1백만불도 전액 프리어의 돈으로 충당했다고 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입구에는 아래에 다시 등장할 한 여인의 전신초상과 함께 국립 아시아 미술관(National Museum of Asian Art)이라는 배너가 걸려있는데, 이어지는 별도의 포스팅으로 소개할 지하로 연결된 다른 건물과 함께 아시아 미술을 소개하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건물은 중정(Courtyard)을 가지는 'ㅁ'자형의 구조로 내셔널몰(National Mall)의 북쪽 입구로 들어가면, 계단을 올라가서 우측 1번 전시실부터 한바퀴 돌면서 둘러보면 되는 단순한 구조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래층에서 헤매다가 남쪽 입구까지 가서 계단을 올라오는 바람에 10번 전시실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구경을 하게 되었다. 계단을 올라와서 제일 먼저 마주친 것은 코트야드 공사를 하고있다는 안내판이었다. 내년 2023년에 개관 100주년이 되는 것을 기념해서 정원을 새로 꾸미는 것인데, 그래서 정원과 좌우로 붙어있는 5번과 13번 전시실은 폐쇄된 상태였다. 유리창으로 내다보니 이렇게 이제 나무판으로 건물을 보호하고 공사를 시작하는 단계라서 올해 안에 끝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당연히 내년 개관 100주년 기념식 전에는 완성이 될 테니까, 분명히 다시 와서 멋진 중앙정원의 모습을 직접 볼 날이 올 것이라서 아쉬움은 없었다. "나, 이 동네에 살아~" 강수지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한 첫번째 전시실에는 의외로 현대적으로 채색된 도자기들과 함께 몽환적인 서양화들이 걸려있었다. 앞서 보여드린 미술관 지도에도 'America'로 표시되어 있는 이 방은, 프리어가 아시아 미술품들과 함께 기부했던 19세기말 미국 화가들의 그림이 걸려있는데, 이에 관한 스토리는 포스팅의 마지막에 다시 설명드린다. 그 옆으로 12번 구석방에 이 갤러리에서 가장 유명한 전시인 원제 Harmony in Blue and Gold: The Peacock Room, 즉 '공작새의 방'이 나온다. 이 방은 원래 영국의 해운업자로 중국의 도자기를 수집했던 Frederick R. Leyland의 런던 저택의 거실로 1877년에 만들어졌는데, Leyland 사후 1904년에 프리어가 방을 통째로 사서는 미국 디트로이트에 있던 자신의 집으로 옮겼다가, 1919년에 그가 죽자 재단에서 지금 미술관으로 다시 옮겨온 것이다. 이 방을 꾸민 사람은 19세기 유명한 미국 화가인 제임스 맥닐 휘슬러(James McNeill Whistler)로 가운데 걸려있는 여인의 그림을 그린 사람인데, 건축가와 집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자기 마음대로 방 전체를 파란색(정확히는 어두운 청록색)으로 칠하고 금박으로 공작새들을 천정과 왼편에 보이는 세로로 길쭉한 창문 가리개 등에 그려넣었다고 한다. 나중에 돌아온 집주인은 마음에 안 든다고 노발대발해서 화가와 대판 싸웠고, 그 와중에 휘슬러는 가운데 보이는 두 마리의 공작새가 싸우는 Art and Money: or, The Story of the Room 제목의 그림까지 추가로 그려넣고는 결국 쫓겨났다고 한다. 지금 벽면에 아슬아슬하게 빼곡히 전시된 청화백자들은 대부분 Leyland의 당시 수집품들인데, 혹시 큰 지진이라도 나면 다 떨어질 것 같아서, 바닥을 단단히 붙여놓았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방과 도자기를 통째로 디트로이트로 옮겨갔던 Freer는 백자보다는 청자같이 색깔이 들어간 도자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수집한 청자들로만 다시 벽면을 채웠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미술관에서는 주기적으로 Leyland의 백자와 Freer의 청자를 바꿔가면서 전시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운이 나빠서 교체 시기에 방문하면 도자기들이 전혀 없는 경우도 있단다. 나가기 전에 입구쪽에 걸려있던 휘슬러가 그린 여인을 다시 바라본다. 그림의 제목이 The Princess from the Land of Porcelain 인데, 좌우의 백자들은 중국산이지만 여인은 기모노를 입은 일본풍으로 그려져 있다. 한가지 더 피콕룸(Peacock Room)에 관한 정보를 알려드리면, 매달 세번째 목요일의 오후에는 공작이 그려져 있는 3개의 창문 가리개를 모두 열어서 자연광이 들어오는 상태에서 내부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단다. 다음은 한국 도자기만을 모아둔 14번 전시실인데, 프리어 사후 미국정부에 기증된 그의 수집품 전체 9,500점 중에서 약 450점이 'Korea'의 미술품이었다 한다. 그 중 아주 일부만 이 전시실에서 소개가 되고있는 것인데, 이렇게 거의 국보급이라고 할 수 있는 12세기에 만들어진 고려청자도 다수가 포함되어 있다. (고려시대 918~1392년 사이에 제작된 전체 162점의 사진들은 여기를 클릭해서 보실 수 있음) 중국 도자기 전시실에서 귀여운 작은 찻잔과 그릇들만 모아놓은 전시를 아내가 보고있다. 대부분 3~400년은 된 도자기들인데도 왼편에 보이는 빨간 찻잔 같은 것은 금방 행남자기 공장에서 만든 것처럼 유약의 광택이 완전히 살아있는 것이 신기했다. 17~19번 방에는 중국의 불상들과 장신구 등의 다양한 조각과 공예품들이 전시가 되어 있었다. 중정의 북쪽을 동서로 잇는 복도의 양쪽 끝에는 일본에서 가지고 온 나무로된 조각상이 한 명씩 세워져 있었다. 이제 오른편의 인도와 중동의 물품들을 구경한 후에 다시 나와서 왼편의 일본 전시실로 가면 된다. 동아시아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의 인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 만들어진 조각상들과 이슬람 문화권의 미술품들을 함께 구경할 수 있었다. 14세기 네팔에서 나무로 만들어진 조각상이라고 하는데, 네 팔이 아니고 여섯 팔이다... (썰렁한 아재개그~^^) 힌두교의 무슨 신인지 모르겠는데, 일단 작품의 제목의 단어들이 엄청나게 길고 외우기 어렵다. Bodhisattva White Avalokiteshvara (Amoghapasha Lokeshvara) 일본 전시실은 도자기나 불상보다는 그림이 주를 이루는데, 에도시대에 활약한 대표적인 목판화가인 가쓰시카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 1760~1849)의 작품들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프리어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그의 작품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미술관 입구에 배너로도 걸려있던 Breaking Waves인데, 아쉽게도 내부 보수중이라서 직접 감상을 할 수는 없었다. 호쿠사이라는 화가의 이름이나 일본 목판화를 뜻하는 우키요에(Ukiyoe, 浮世絵)라는 말을 전혀 모르시는 분이라도, 위 사진 아래에 있는 2024년부터 유통될 예정의 일본 천엔권 지폐의 뒷면에 사용된 The Great Wave off Kanagawa 그림은 적어도 한 번은 보셨을거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일본인의 그림으로는 고금을 막론하고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데, 19세기 유럽 문화계에도 큰 파도를 일으켜서 고흐와 모네 등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은 물론이고, 작곡가 드뷔시가 이 그림을 보고 교향곡 La Mer를 작곡한 사실도 유명하다. 여기 프리어 미술관이 보유한 호쿠사이의 그림들은 내년에 다시 와서 직접 보기로 하고, 이제 마지막 전시실로 들어간다. 찰스 랭 프리어(Charles Lang Freer)는 1854년에 뉴욕에서 가난한 집안의 6남매중 셋째로 태어나서, 중학교도 다 마치지 못하고 시멘트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단다. 그러나 그의 총명함을 알아본 관리자의 비서로 발탁되어 결국은 동업자가 되었고, 철도건설 사업을 거쳐서 1885년에 디트로이트로 가서 기차(railcar)를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불과 45세인 1899년에 미국 최대 기차 제작사의 공동 소유주가 되었다. 그 전후로 미술품 수집과 유럽여행을 시작해서, 당시 런던에서 활동하던 미국화가 휘슬러를 만나서 친구가 되었고 (왼편이 휘슬러가 그린 프리어의 초상화), 처음 보여드렸던 약간 뿌옇고 몽환적인 느낌의 토널리즘(Tonalism, 색조주의) 화가들의 후원자가 되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프리어는 1906년에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자신의 모든 수집품을 정부에 무상으로 기증하기로 하고, 건축 비용까지 전액 부담을 해서 1916년에 미술관 건설이 시작되었지만, 자신의 이름을 딴 프리어 갤러리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1919년에 65세로 사망했다. 휘슬러의 Venus Rising from the Sea 그림과 16~17세기경 시리아에서 만들어진 단지(jar)를 나란히 놓고 바라보는 프리어의 흑백사진 앞에 실제 그 두 작품이 유리벽 안에 놓여있었다. 앞서 초상화 오른편의 "The Power to See Beauty" 제목의 안내판을 읽어보면, 지금 프리어가 다른 문화의 두 작품을 놓고 'cross-cultural interchange'를 통한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 같다... 여기 프리어갤러리를 시작으로 앞으로 많은 워싱턴DC의 미술관들을 새로 방문할 예정인데, 과연 나에게도 그가 말한 그런 "아름다움을 보는 힘"이 있을까?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