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새방, 피콕룸(Peacock Room)이 유명한 국립 아시아 미술관의 프리어 갤러리(Freer Gallery of Art)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들의 비지터센터인 '캐슬(The Castle)'을 나와서 워싱턴DC 지역의 주민이 된 후에 처음으로 방문하는 새로운 미술관은, 약 백년 전에 오로지 찰스 랭 프리어(Charles Lang Freer) 한 사람의 기부와 수집품으로 세워졌던 곳인 프리어갤러리오브아트(Freer Gallery of Art)였다.
캐슬의 바로 서쪽에 있는 이 프리어 갤러리는 1923년에 완공되어서, 캐슬을 제외한 박물관들 중에서는 예술산업관과 자연사박물관 다음으로 스미소니언 재단에서 오래된 건물인데, 당시 건축비 약 1백만불도 전액 프리어의 돈으로 충당했다고 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입구에는 아래에 다시 등장할 한 여인의 전신초상과 함께 국립 아시아 미술관(National Museum of Asian Art)이라는 배너가 걸려있는데, 이어지는 별도의 포스팅으로 소개할 지하로 연결된 다른 건물과 함께 아시아 미술을 소개하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건물은 중정(Courtyard)을 가지는 'ㅁ'자형의 구조로 내셔널몰(National Mall)의 북쪽 입구로 들어가면, 계단을 올라가서 우측 1번 전시실부터 한바퀴 돌면서 둘러보면 되는 단순한 구조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래층에서 헤매다가 남쪽 입구까지 가서 계단을 올라오는 바람에 10번 전시실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구경을 하게 되었다.
계단을 올라와서 제일 먼저 마주친 것은 코트야드 공사를 하고있다는 안내판이었다. 내년 2023년에 개관 100주년이 되는 것을 기념해서 정원을 새로 꾸미는 것인데, 그래서 정원과 좌우로 붙어있는 5번과 13번 전시실은 폐쇄된 상태였다.
유리창으로 내다보니 이렇게 이제 나무판으로 건물을 보호하고 공사를 시작하는 단계라서 올해 안에 끝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당연히 내년 개관 100주년 기념식 전에는 완성이 될 테니까, 분명히 다시 와서 멋진 중앙정원의 모습을 직접 볼 날이 올 것이라서 아쉬움은 없었다. "나, 이 동네에 살아~"
강수지의 <보라빛 향기>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한 첫번째 전시실에는 의외로 현대적으로 채색된 도자기들과 함께 몽환적인 서양화들이 걸려있었다. 앞서 보여드린 미술관 지도에도 'America'로 표시되어 있는 이 방은, 프리어가 아시아 미술품들과 함께 기부했던 19세기말 미국 화가들의 그림이 걸려있는데, 이에 관한 스토리는 포스팅의 마지막에 다시 설명드린다.
그 옆으로 12번 구석방에 이 갤러리에서 가장 유명한 전시인 원제 Harmony in Blue and Gold: The Peacock Room, 즉 '공작새의 방'이 나온다. 이 방은 원래 영국의 해운업자로 중국의 도자기를 수집했던 Frederick R. Leyland의 런던 저택의 거실로 1877년에 만들어졌는데, Leyland 사후 1904년에 프리어가 방을 통째로 사서는 미국 디트로이트에 있던 자신의 집으로 옮겼다가, 1919년에 그가 죽자 재단에서 지금 미술관으로 다시 옮겨온 것이다. 이 방을 꾸민 사람은 19세기 유명한 미국 화가인 제임스 맥닐 휘슬러(James McNeill Whistler)로 가운데 걸려있는 여인의 그림을 그린 사람인데,
건축가와 집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자기 마음대로 방 전체를 파란색(정확히는 어두운 청록색)으로 칠하고 금박으로 공작새들을 천정과 왼편에 보이는 세로로 길쭉한 창문 가리개 등에 그려넣었다고 한다. 나중에 돌아온 집주인은 마음에 안 든다고 노발대발해서 화가와 대판 싸웠고, 그 와중에 휘슬러는 가운데 보이는 두 마리의 공작새가 싸우는 Art and Money: or, The Story of the Room 제목의 그림까지 추가로 그려넣고는 결국 쫓겨났다고 한다.
지금 벽면에 아슬아슬하게 빼곡히 전시된 청화백자들은 대부분 Leyland의 당시 수집품들인데, 혹시 큰 지진이라도 나면 다 떨어질 것 같아서, 바닥을 단단히 붙여놓았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방과 도자기를 통째로 디트로이트로 옮겨갔던 Freer는 백자보다는 청자같이 색깔이 들어간 도자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수집한 청자들로만 다시 벽면을 채웠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미술관에서는 주기적으로 Leyland의 백자와 Freer의 청자를 바꿔가면서 전시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운이 나빠서 교체 시기에 방문하면 도자기들이 전혀 없는 경우도 있단다.
나가기 전에 입구쪽에 걸려있던 휘슬러가 그린 여인을 다시 바라본다. 그림의 제목이 The Princess from the Land of Porcelain <도자기의 나라에서 온 공주>인데, 좌우의 백자들은 중국산이지만 여인은 기모노를 입은 일본풍으로 그려져 있다. 한가지 더 피콕룸(Peacock Room)에 관한 정보를 알려드리면, 매달 세번째 목요일의 오후에는 공작이 그려져 있는 3개의 창문 가리개를 모두 열어서 자연광이 들어오는 상태에서 내부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단다.
다음은 한국 도자기만을 모아둔 14번 전시실인데, 프리어 사후 미국정부에 기증된 그의 수집품 전체 9,500점 중에서 약 450점이 'Korea'의 미술품이었다 한다. 그 중 아주 일부만 이 전시실에서 소개가 되고있는 것인데,
이렇게 거의 국보급이라고 할 수 있는 12세기에 만들어진 고려청자도 다수가 포함되어 있다. (고려시대 918~1392년 사이에 제작된 전체 162점의 사진들은 여기를 클릭해서 보실 수 있음)
중국 도자기 전시실에서 귀여운 작은 찻잔과 그릇들만 모아놓은 전시를 아내가 보고있다. 대부분 3~400년은 된 도자기들인데도 왼편에 보이는 빨간 찻잔 같은 것은 금방 행남자기 공장에서 만든 것처럼 유약의 광택이 완전히 살아있는 것이 신기했다.
17~19번 방에는 중국의 불상들과 장신구 등의 다양한 조각과 공예품들이 전시가 되어 있었다.
중정의 북쪽을 동서로 잇는 복도의 양쪽 끝에는 일본에서 가지고 온 나무로된 조각상이 한 명씩 세워져 있었다. 이제 오른편의 인도와 중동의 물품들을 구경한 후에 다시 나와서 왼편의 일본 전시실로 가면 된다.
동아시아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의 인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 만들어진 조각상들과 이슬람 문화권의 미술품들을 함께 구경할 수 있었다.
14세기 네팔에서 나무로 만들어진 조각상이라고 하는데, 네 팔이 아니고 여섯 팔이다... (썰렁한 아재개그~^^) 힌두교의 무슨 신인지 모르겠는데, 일단 작품의 제목의 단어들이 엄청나게 길고 외우기 어렵다. Bodhisattva White Avalokiteshvara (Amoghapasha Lokeshvara)
일본 전시실은 도자기나 불상보다는 그림이 주를 이루는데, 에도시대에 활약한 대표적인 목판화가인 가쓰시카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 1760~1849)의 작품들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프리어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그의 작품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미술관 입구에 배너로도 걸려있던 Breaking Waves인데, 아쉽게도 내부 보수중이라서 직접 감상을 할 수는 없었다.
호쿠사이라는 화가의 이름이나 일본 목판화를 뜻하는 우키요에(Ukiyoe, 浮世絵)라는 말을 전혀 모르시는 분이라도, 위 사진 아래에 있는 2024년부터 유통될 예정의 일본 천엔권 지폐의 뒷면에 사용된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 The Great Wave off Kanagawa 그림은 적어도 한 번은 보셨을거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일본인의 그림으로는 고금을 막론하고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데, 19세기 유럽 문화계에도 큰 파도를 일으켜서 고흐와 모네 등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은 물론이고, 작곡가 드뷔시가 이 그림을 보고 교향곡 <바다> La Mer를 작곡한 사실도 유명하다. 여기 프리어 미술관이 보유한 호쿠사이의 그림들은 내년에 다시 와서 직접 보기로 하고, 이제 마지막 전시실로 들어간다.
찰스 랭 프리어(Charles Lang Freer)는 1854년에 뉴욕에서 가난한 집안의 6남매중 셋째로 태어나서, 중학교도 다 마치지 못하고 시멘트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단다. 그러나 그의 총명함을 알아본 관리자의 비서로 발탁되어 결국은 동업자가 되었고, 철도건설 사업을 거쳐서 1885년에 디트로이트로 가서 기차(railcar)를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불과 45세인 1899년에 미국 최대 기차 제작사의 공동 소유주가 되었다. 그 전후로 미술품 수집과 유럽여행을 시작해서, 당시 런던에서 활동하던 미국화가 휘슬러를 만나서 친구가 되었고 (왼편이 휘슬러가 그린 프리어의 초상화), 처음 보여드렸던 약간 뿌옇고 몽환적인 느낌의 토널리즘(Tonalism, 색조주의) 화가들의 후원자가 되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프리어는 1906년에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자신의 모든 수집품을 정부에 무상으로 기증하기로 하고, 건축 비용까지 전액 부담을 해서 1916년에 미술관 건설이 시작되었지만, 자신의 이름을 딴 프리어 갤러리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1919년에 65세로 사망했다.
휘슬러의 Venus Rising from the Sea 그림과 16~17세기경 시리아에서 만들어진 단지(jar)를 나란히 놓고 바라보는 프리어의 흑백사진 앞에 실제 그 두 작품이 유리벽 안에 놓여있었다. 앞서 초상화 오른편의 "The Power to See Beauty" 제목의 안내판을 읽어보면, 지금 프리어가 다른 문화의 두 작품을 놓고 'cross-cultural interchange'를 통한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 같다... 여기 프리어갤러리를 시작으로 앞으로 많은 워싱턴DC의 미술관들을 새로 방문할 예정인데, 과연 나에게도 그가 말한 그런 "아름다움을 보는 힘"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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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간서클 역사지구(Logan Circle Historic District)의 미국 국립사적지들과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등
프랑스 출신의 피에르 랑팡(Pierre L'Enfant)이 베르사유 왕궁을 참고해 1791년에 설계했다는 워싱턴DC 중심부의 도로망은, 일반적인 바둑판 형태에다 중요 장소들을 비스듬히 연결하는 대로들을 추가한 것이 특징으로, 동서 방향의 도로는 알파벳, 남북은 숫자, 그리고 사선의 대로는 여러 주(state)의 이름을 붙였고, 백악관과 의사당이 들어선 위치를 제외한 나머지 그 대로들이 교차하는 곳에는 사각형의 넓은 광장이나 또는 '서클(Circle)'이라 부르는 둥근 로터리를 만들었다. 메릴랜드의 그린벨트 공원 하이킹을 마치고 DC를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중에 소소한 볼거리들이 부근에 많이 있는 로간서클(Logan Circle) 지역을 들러보기로 했다.
차를 주차한 곳은 로드아일랜드 애비뉴(Rhode Island Ave)에 접해있는 조그만 카터 G. 우드슨(Carter G. Woodson) 기념공원 부근이었다. 그는 노예였던 부부에게서 1875년에 태어나 농장과 탄광 일을 한다고 20세가 넘어 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그후 꾸준히 문학과 역사를 공부해서 1912년에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런데 기념물 계단에 놓인 맥주캔에다가 동상 뒤쪽으로는 노숙자 한 분이 살림을 차리고 계셔서, 사진 한 장만 찍고는 바로 아래에 있다는 국립 공원으로 지정된 그의 집을 찾아갔지만...
카터우드슨 국립사적지(Carter G. Woodson Home National Historic Site)는 내부수리중으로 내년 봄에 재개관을 한단다. 그는 평생을 아프리카와 미국의 흑인들 역사에 대해 연구했는데, 그가 만든 학회에서 1926년에 최초로 2월 둘쨋주를 'Negro History Week'로 지정한 것이, 지금은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2월을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로 기리는 계기가 되었고, 이를 따라해서 수 많은 '○○ History(또는 Heritage) Month'들이 생겨났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남서쪽으로 비스듬한 로드아일랜드 대로를 따라 로간서클까지 걸어왔는데, 로터리 도로를 따라서 둥글게 늘어선 빅토리아풍의 예쁜 건물들은 1870년대부터 신흥부자들의 집으로 지어져서, 지금도 DC에서 주택가격이 가장 비싼 동네들 중의 하나라고 한다. 로터리 중앙에 만들어진 공원을 구경하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가면,
1901년에 매킨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헌정된,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장군이자 정치가였던 존 A. 로건(John Alexander Logan)의 청동 기마상이 공원 중앙에서 위용을 자랑한다.
일리노이 주 출신의 하원의원이었던 그는 블로그에 방문기가 있는 첫번째 불런 전투(First Battle of Bull Run)에 참가한 후에 주로 서부전선에서 남군과 싸웠다. 그리고 1868년에 남북전쟁에서 사망한 병사들을 추모하는 날의 제정에 앞장서는데, 그게 지금 미국의 여름 휴가시즌 시작을 알리는 연휴를 만든 5월말의 메모리얼데이(Memorial Day)가 되었다. 그 후 상원의원을 거쳐서 1884년에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지만 낙선하고 2년 후에 사망했다.
날씨는 흐렸지만 가을 단풍이 들기 시작할 때였고, 동상 주변의 잔디만 더 잘 관리되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마상의 기단도 청동으로 만든 것은 처음인 듯 했는데, 이 쪽 면에 새겨진 그림은 상원의원 선서를 하는 모습이란다. 이제 공원을 통과해서 두번째 목적지를 찾아 걸어간다.
로건서클의 다른 '비스듬 대로'인 버몬트 애비뉴(Vermont Ave)를 따라 조금 내려오니까, 바로 길 건너편으로 메리맥러드베순 의사당 국립사적지(Mary McLeod Bethune Council House National Historic Site)라는 긴 이름이 적힌 작은 국립공원청 간판이 보였다.
로간서클 역사지구 안내판에 메리 매클러드 베튠(Mary McLeod Bethune, 1875~1955)에 대한 소개와 사진들이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역시 노예의 딸로 태어났던 그녀는 학교를 만들어 흑인 소녀들에게 글을 가르치다가, 1935년에 FDR 대통령의 자문위원이 되어 DC에 와서는 전미흑인여성회(National Council of Negro Women)를 조직해서 권리신장과 평등을 위해 여생을 바쳤다.
그녀가 1943년부터 살면서 NCNW 본부로도 사용되었던 이 건물이 1982년에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점심 시간이라서 1시 이후에 문을 연다는 종이가 문에 붙어 있었다... 그래서, 버몬트 애비뉴를 따라서 남쪽으로 더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로 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조금 작은 다른 서클을 만나는 모퉁이에 서있는 Luther Place Memorial Church는 1873년에 건축되었는데, 그 앞의 청동상은 당연히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Martin Luther)로 독일황제 빌헬름 1세가 선물한 것이란다~
사선의 매사추세츠 대로(Massachusetts Ave)가 지하로 지나가는 토마스서클(Thomas Circle)은 현대적으로 개발이 되었는데, 오른편 버몬트 대로로 계속해서 1km만 더 직진하면 백악관이 나온다. 교차로 중앙의 동상은 뒷모습만 멀리 보여서 그냥 이름만 찾아보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위키피디아의 내용을 읽어보니까 그의 사진과 함께 간단히 소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부 버지니아가 고향인 조지 H. 토머스(George Henry Thomas)는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군인으로, 남북전쟁에서 가족과 동료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으며 연방에 남아서 북군 지휘관이 되었다. 서부전선에서 그랜트와 셔먼에 버금가는 전공을 올리며 소장(major general)으로 전쟁을 마친 후에도, 회고록을 쓰며 업적을 자랑하는 다른 장군들과는 달리, 남부에서 학대받는 흑인들을 보호하며 군정에 참여했다. 잭슨 대통령이 중장으로 진급시켜 워싱턴으로 부르려 했지만, 그는 정치판에 얽히기 싫다며 거부하고, 태평양군 지휘관을 자청해 샌프란시스코로 온 이듬해 53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단다.
토머스서클에 있는 이 건물은 1930년에 만들어진 National City Christian Church라는데, 사실 걸려있는 큰 깃발에 더 눈이 갔다. 무지개 깃발이야 자주 봤지만 저런 식으로 색깔이 훨씬 더 많이 추가된 것은 처음이라 찾아보니 LGBTQIA2S+ 깃발이란다... 오후 1시가 넘어서 앞서 국립사적지를 다시 찾아갔지만, 계속 문은 잠겨있고 서성거려도 안에 인기척이 없어서 그냥 바로 3번째 목적지를 찾아갔다.
여기서 정서 방향에 있는 2011년 미동부 여행에서 숙박했던 듀퐁서클(Dupont Circle)은 상업지구로 개발된 반면에, 로간서클은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주택가로 남아있는게 큰 차이점이다. 이 예쁜 집들의 제일 북쪽에 목적지가 있는데, 다시 로터리 공원 안을 지나서 걸어간다.
로간 장군은 새들의 친구...ㅎㅎ 주변에 나무가 많고 교통량은 적은 곳이라서 그런지, 지금까지 워싱턴DC에서 본 동상들 중에서 새들이 가장 많이 앉아있는 모습이었는데, 대충 세어봐도 20마리 정도 되는 듯 했다. 기단의 서쪽면은 남북전쟁에서 가운데 로간이 장교들과 작전회의를 하는 모습이라는데, 모두 긴 콧수염에 같은 사람처럼 보인다.
옥상에서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는 모퉁이의 집이 바로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Old Korean Legation Museum)으로, 아래쪽 게양대에는 한미수교 70주년 기념 배너와 표지판도 볼 수 있었다.
우리 민족이 미국에서 처음 소유한 건물로 1891년에 고종의 쌈짓돈 2만5천불로 매입한 자주외교의 상징이었지만,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뺏긴 후 일제가 1910년에 매각한 것을 오랜 노력 끝에 2012년에 350만불에 다시 한국 정부가 사들였다. 그 후 6년 동안 옛모습으로 복원해서 2018년 5월 22일 박물관으로 재개관했는데, 1890년대에 DC에 있던 30여 곳의 외국 공사관들 중에서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된 곳이란다.
평소에 문은 잠겨있고 사전예약을 통해서만 내부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데, 몇 번 예약을 시도했었지만 우리 가족이 가능한 시간과는 잘 맞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바쁜 따님은 이제 시간 맞추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2명으로 다시 예약을 해보도록 해야겠다~
복원 전에 주차장이 있던 자리에는 한국식 돌담과 작은 정원, 그리고 창덕궁 불로문(不老門)의 복제품이 세워졌는데, 다른 한국분들이 오랫동안 구경을 하셔서 저기도 다음에 함께 둘러보는걸로 하고, 주차해둔 곳으로 돌아가면서 마지막 보너스 하나를 더 찾아가봤다.
'수박집' 워터멜론하우스(Watermelon House)는 작은 연립주택의 벽면을 원래 핑크색으로 칠하려다, 색깔이 진하게 나오는 바람에 얼떨결에 수박을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2017년에 누군가 이 집 앞에서 점프를 하며 찍은 사진이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해져서 #watermelonhouse #watermelonjump 등의 태그를 단 나름 핫스팟이 되었단다. 혼자 점프를 하며 셀카를 찍을 수도 없고 해서 여기도 다음 기회에...^^ 참, 위에 소개한 2곳의 국립사적지도 내부는 못 봤지만 방문한 것으로 친다면, 이제 워싱턴DC 안에서 아직 둘러보지 못한 국립공원청의 독립적인 Official Unit은 딱 두 개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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