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좁고 긴 공원인 미동부 애팔래치아 산맥군의 블루리지파크웨이(Blue Ridge Parkway)
미국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국가공원도로(National Parkway)는 현재 약 10구간이 있는데, 그 중에서 4개의 도로만이 독립적인 공원으로 인정을 받는다. 옐로스톤과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을 연결하는 John D. Rockefeller Memorial Parkway와 포토맥 강가를 따라서 조지워싱턴의 생가를 찾아가는 George Washington Memorial Parkway는 이미 소개했고, 이제 3번째로 미국의 가장 유명한 공원도로인 Blue Ridge Parkway에 대해 알려드린다. (마지막 남은 하나는 Natchez Trace Parkway로 남부 미시시피 나체즈에서 테네시 내슈빌 부근까지 이어지는 444마일의 관광도로)
대륙횡단 여행기 전편에서 소개했던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그레이트스모키마운틴 국립공원의 오코날룹티 비지터센터 바로 아래가 블루리지파크웨이(Blue Ridge Parkway)의 남쪽 끝이다. 다시 와보기 쉽지 않은 곳이라서 위기주부도 파란색 표지판 앞에 서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저 두 분이 서로 모델을 바꿔가며 독사진까지 너무 열심히 찍으셔서 그냥 아내가 조수석에 앉아서 그들을 찍은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America's Favorite Drive, 번역하자면 '미국의 최애(最愛) 도로'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Blue Ridge Parkway는 지도와 같이 북쪽으로 버지니아 쉐난도어 국립공원까지 이어지는 도로인데, 블루리지 산맥(Blue Ridge Mountains)을 따라서만 달리는 꼬불꼬불한 산길의 전체 길이가 무려 469마일(755 km)이나 된다. 1930년대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순전히 관광과 경제개발의 목적으로만 1935년에 공사가 시작되어서, 약 30년 후인 1966년에 딱 한 구간만을 제외하고는 완성되었다. 당연히 수 많은 사유지를 관통하지만 공식적으로 도로 자체와 그에 연결된 전망대 및 비지터센터 등은 연방정부 소유의 땅으로 등록되어서 "세계에서 가장 좁고 긴 공원"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왕복 2차선의 755 km의 전구간에는 26개의 터널이 있고, 약 15개의 비지터센터와 200곳이 넘는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는데, 남쪽에서 출발했을 때 처음 나오는 비지터센터가 있는 워터락노브 전망대(Waterrock Knob Overlook)에 차를 세웠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산등성이의 푸르스름한 안개 때문에 Blue Ridge라고 불리는 곳이라서 그런지, 표지판도 멀리 보이는 산들과 비슷한 푸른빛이 도는 색깔로 칠해놓았다.
잠시 후 우리가 또 차로 지나가게 될 도로가 멀리 보이는데, 거의 대부분의 구간이 저렇게 산사면이나 능선을 깍아서 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공사가 계속되던 1950년대 부터는 환경보호론자들의 반대도 만만치가 않았고, 그래서 다음 편에 별도로 소개할 마지막 완공된 구간은 1983년에야 개통할 수 있었다.
블루리지를 물들인 레드와 옐로우 단풍을 배경으로 커플셀카 한 장 찍고, 좌우를 둘러보니 주변으로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참, 블루리지파크웨이는 이 블로그에서 몇 번 소개한 적이 있는 미국 교통부가 자체적으로 지정하는 약 60개의 '국민도로(All-American Road)'에도 포함되는데, 노스캐롤라이나와 버지니아의 두 구간이 나뉘어져서 각각 지정되어 있다.
들고나는 통로만 수십개인 750 km가 넘는 이 산속 도로의 방문객을 어떻게 자신있게 계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국립공원청의 통계에 따르면 블루리지파크웨이는 4백개가 훨씬 넘는 '넓은 의미의 모든 국립공원 유닛들' 중에서 1946년 이후로 단 4번(1949/2013/2016/2019년)을 제외하고는 항상 방문객이 가장 많은 곳이란다. 그저께 CNN 기사를 보면 2021년도 블루리지파크웨이 방문객은 약 1천6백만명으로 역시 1위였다고 하는데, 이 수치에는 우리 부부가 이틀 동안에 두 번 방문해서 4명으로 계산에 포함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전망좋은 이 언덕의 주차장 옆으로 피크닉테이블도 만들어 놓아서 한 상 차려놓고 점심을 먹는 가족도 볼 수 있었다. 아쉽게도 여기 비지터센터는 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주차장을 한 바퀴 빙 돌아서 다서 블루리지 공원도로를 만나 조금 더 달렸다.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아내가 산 아래로 보이는 단풍이 멋있다고 빨리 오른쪽 길가에 차를 세우라고 해서 정차한 전망대의 이름은 포크리지오버룩(Fork Ridge Overlook)이다.
사실 단풍은 1~2주 정도 지나서 왔어야, 사진에 아직 녹색으로 보이는 동그란(?) 나무들도 다 노랗고 빨갛게 바뀌어서 완벽했을거다. 오히려 이 사진에서는 단풍보다도 그 너머로 보이는 푸르스름한 산들의 실루엣이 더 멋있는 것 같다.
나의 웃는 모습을 보니까 갑자기... 대륙횡단 순서를 잘못 세웠다고, 구박을 받았던 추억이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한 참 후에 보여드리겠지만, 2차 대륙횡단 때는 유타와 콜로라도의 단풍이 다 지고 난 후였기 때문에, 1차 횡단과 2차 횡단의 경로를 서로 바꾸었어야 했다는 뜻임)
그나마 블루리지에서는 여기 남쪽 구간의 도로가 해발 1,600미터 전후로 가장 높은 곳이라서 이 정도라도 단풍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계속 18마일 정도를 더 달리면 나오는 Richland Balsam Overlook이 해발 6,053피트(1,845 m)로 블루리지파크웨이 전구간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고는 하는데, 그러면 산길을 너무 돌아가는 것이라 그 전에 산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구박 좀 받았다고 아내를 두고 도망가는 것은 아니고, 그냥 운전석에서 창밖으로 V자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보고 싶어서 부탁했다.^^ 아내를 다시 조수석에 모시고 바로 앞 발삼고개(Balsam Gap)에서 74번 국도로 빠져서, 1차 대륙횡단의 메인도로인 인터스테이트 40번 고속도로를 마지막으로 조금 더 달려서 애쉬빌(Asheville)에 도착을 했다.
그 40번 고속도로의 표지판이 사진 위에 작게 보이는 이 곳은 '미국에서 제일 큰 집'으로 유명한 빌트모어(Biltmore)의 입구이다. 사실 애쉬빌에 있는 블루리지파크웨이 공원본부 겸 비지터센터를 들리려고 했지만 시간이 늦어서 문을 닫았고, 이 곳은 위기주부의 사전계획에는 없었지만 아내가 한 번 가보자고 해서 찾아오게 되었다.
여기가 집의 대문인 셈인데, 옆으로 기념품 가게와 주차장도 만들어져 있다. 대문을 통과해서도 5분 정도를 차로 운전해서야 겨우 매표소 주차장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빌트모어(Biltmore)는 남성정장 상표 이름 아닌가? 양복 팔아서 번 돈으로 이렇게 큰 집을 지은거야?"
문 닫는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주차장은 한산했고, 하이킹에 산길 운전까지 많이 해서 노곤함이 몰려왔지만, 매표소 앞의 벤치 좌우로 예쁜 화분이 놓여 있어서 포즈를 잡으신 사모님 사진 한 장 찍어 드렸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방이 250개나 있다는 1895년에 완공된 빌트모어 하우스(Biltmore House)는 양복을 팔아서 번 돈으로 지은 것은 아니고... 전날 방문했던 내슈빌의 밴더빌트 대학교 여행기에서 설명드렸던 코닐리우스 밴더빌트(Cornelius Vanderbilt)의 손자인 조지 밴더빌트(George W. Vanderbilt, 1862~1914)가 그냥 물려받은 유산으로 지은 것이다. 그래서 밴더빌트가 더 지은 빌트모어~
매표소 입구에 집의 정면 사진이 걸려있어서 같이 찍었는데, 까만 선글라스에 까만 작업화를 신었더니 무슨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경비원같으신 느낌이 난다.^^
안내판에 여기 지도가 대강 그려져 있는데, 지금도 밴더빌트 가문의 후손이 소유한 이 집에는 방이 250개인 건물은 일부에 불과하고, 와이너리와 호텔 및 작은 쇼핑몰과 함께 강 너머로는 포도원과 지금도 사슴들이 방목되고 있는 사냥터까지 포함되어서, 그 전체를 보통 밴더빌트 에스테이트(Vanderbilt Estate)라 부른다. 아까 그 '경비원'이 저 멀리 매표소에서 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자판기로 저택과 정원의 최신 사진을 감상하는 것으로 1차 대륙횡단 6일째의 관광은 마감하고, 애슈빌에서 26번 고속도로를 북쪽으로 1시간 정도 달려 다시 테네시 주로 돌아가서 존슨시티(Johnson City)에 도착해 저녁으로 베트남 쌀국수를 아주 맛있게 먹고 숙박했다. 부연하자면 당시 빌트모어 내부투어는 마감되었고 정원을 둘러보는 가든투어는 가능했었지만, 입장료가 한마디로 사악했기 때문에 쉽게 돌아설 수 있었는데... 이미 방문해보셨거나 또는 들어서 아시는 분들은 물러나 계시면 감사드리고, 저 집 내부를 구경하는 가장 싼 투어의 성인요금이 얼마일지 한 번 상상해서 댓글창에 적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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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피스 다운타운의 빌스트리트(Beale Street)와 마틴루터킹이 암살당한 로레인모텔(Lorraine Motel)
미국남부 테네시 주의 서쪽 끝, 미시시피 강변의 항구도시로 세계 최대의 목화 시장인 멤피스(Memphis)를 소개하는 대표적인 말은 '블루스의 본고장'이다. 음악에 문외한인 위기주부도 아는 블루스 기타리스트 겸 가수, 비비 킹(B.B. King)은 1925년 미시시피 주 인디애놀라(Indianola)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라일리 킹(Riley King)이었다. 그는 1946년 멤피스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DJ로 활동하던 중 ‘블루스 보이(Blues Boy)’라는 뜻의 ‘BB’라는 별명을 얻었고, 1949년에 멤피스에서 데뷔를 해서 60년 이상 활동을 한 '블루스의 왕(King of the Blues)'이다.
바로 그 '블루스의 본고장(Home of the Blues)' 파란색 사인을 볼 수 있는 곳이 멤피스 다운타운의 빌 스트리트(Beale Street)이다. 사실 여기 Main St 교차로를 찾아온 원래 이유는 빌스트리트 남쪽 작은 공원에 있는 아래의 엘비스 동상(Elvis Statue)을 보기 위해서였다.
대륙횡단 여행기 전편에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멤피스에서 가수로 데뷔한 이야기를 들려드렸는데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데뷔 당시의 젊었을 때 모습을 보여주는 동상이라고 한다. 음악 역사상 최초로 십대 팬들의 광적인 사랑을 받는 슈퍼스타가 된 엘비스의 로큰롤도 직접적으로 블루스 음악에서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흑인 음악을 훔친 백인 가수"라고 비난하기도 했단다.
그리고 동쪽으로 조금 걸어 가보니 왼편의 하드락카페부터 Beale St 좌우로 많은 라이브카페와 레스토랑, 음악 스튜디오 등이 모여있다는 곳이 보였는데, 오른편의 BB King's Blues Club을 시작으로 해서 2nd St 부터 4th St 까지는 보행자전용 도로로 되어있다.
그 가장 중심에서 남북으로 교차하는 도로의 이름인 비비킹 블러버드(B.B. King Blvd)의 표지판이 멀리 보인다. 저기 어디 들어가서 블루스 음악에 맥주 한 잔 곁들여 저녁을 먹으며 오늘을 마무리할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사실 둘 다 블루스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또 다른 들러야 할 곳이 하나 더 남아있어서 그냥 돌아섰다.
예의상 멤피스 여행기에 사진 한 장은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서, 비비 킹의 대표곡이라는 <The Thrill Is Gone>의 1993년 공연실황 영상을 하나 걸어본다. 비비 킹은 2006년에 대중음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인 '자유의 메달'을 받았고, 2015년에 그가 89세로 사망했을 때 여기 미국에서는 몇 일 동안 내내 톱뉴스로 보도가 되었다. (2012년에 시카고의 House of Blues에서 비비킹의 공연을 직접 보셨던 요세미티님의 추모 포스팅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그냥 우리는 엘비스 동상 앞에서 셀카나 한 장 남기고 다음 장소로 이동을 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이야기는 '멤피스 여행기 3부작'의 마지막 3부에서 다시 계속해서 들려드리기로 하고, 이 2부에서는 멤피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킹(King)'의 이야기로 넘어가도록 하자~
다운타운 조금 남쪽에 있는 로레인 모텔(Lorraine Motel)이라는 곳인데, 오늘 밤 우리가 여기에 숙박하는 것은 아니고...
작은 흑백화면 속의 오른쪽에 서있는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가 1968년 4월 4일에 암살을 당한 장소가 여기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화면 왼쪽에 마지막으로 함께 서있던 사람은 아직 살아있는 민주당 정치인인 제시 잭슨(Jesse Jackson) 목사이다.
그는 화환이 놓여진 2층 306호 앞에 서있다가 건너편 건물에서 날아온 총알에 맞아서 숨졌다. 일찌기 1964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세계적인 유명인이었지만, 흑인 청소노동자들이 백인들과 차별되는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항의하기 위한 파업에 연대하기 위해 멤피스 시를 방문 중이었던 것이다.
그가 1956년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투쟁'을 이끌어서 승리한 직후에 결성했던 남부 그리스도교도 지도회의(Southern Christian Leadership Conference, SCLC)에서 만들어 놓은 추모 석판에는,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는 창세기 37장 19~20절의 말씀, 소위 "꿈 꾸는 자"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있다.
"그들이 서로 이르되 보라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 그를 죽여서 ...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라"
위 글귀가 추모판에 적힌 이유는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마틴루터킹 목사가 1963년에 워싱턴DC의 링컨 기념관 앞에서 했던 유명한 "I Have a Dream" 연설 때문일 것이다. 위기주부는 1989년에 성문종합영어 장문독해에서 이 연설문을 처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영어자막이 들어간 당시 연설의 동영상을 클릭해서 보실 수 있는데, 참고로 2분 20초 정도부터 "I have a dream"으로 시작되는 부분이 나온다. 한글자막이 들어간 동영상이나 번역문도 쉽게 찾아서 보실 수 있고, 아마도 마틴루터킹의 이 연설은 그 연설장소 부근에 세워진 그의 기념비를 방문한 후에, 블로그에 다시 상세히 소개를 할 기회가 또 올 것이다.
아내가 보고있던 안내판의 왼쪽 가운데에, 그 날 오후 6시 1분에 쓰러져있는 킹 목사와 주변의 사람들이 총알이 날라온 곳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다. (사진을 클릭해서 원본보기를 하시면 내용을 읽으실 수 있음)
바로 길 건너에 오른쪽에 보이는 뒤쪽 빨간 벽돌건물의 열려있는 2층 창문이 바로 과격파 백인단체 소속의 제임스 얼 레이(James Earl Ray)가 총을 쏜 곳이다. 범인은 캐나다를 거쳐서 영국으로 도망갔지만 가짜 여권이 발각되어 미국으로 추방된 후 체포되어서 99년형을 받고 복역하다가 1998년에 교도소에서 70세로 지병으로 사망했다. 당시 킹 목사를 공산주의자로 몰던 에드가 후버의 FBI가 암살을 사주한 것이라는 등의 많은 음모론이 있지만, 여기서는 그냥 팩트만 전달을 해드리는 것으로...
이 곳은 암살사건 이후에도 계속 모텔로 운영이 되다가 결국 폐업 후에 1982년에 건물이 철거될 뻔 했지만, 지역 흑인사회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국가민권운동 박물관(National Civil Rights Museum)의 일부가 되었다. 여기서 'National'을 국립이 아니라 국가로 개인적으로 번역한 이유는, 이 박물관은 나라에서 세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문을 닫은 후였기 때문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서 우리도 돌아섰지만, 이 때는 찾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좀 씁쓸하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1950년대 스타일로 세워놓은 로레인 모텔(Lorraine Motel)의 간판 아래에 'I HAVE A DREAM'과 함께,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의 영어 첫글자만 모아서 자주 쓰는 표현인 'MLK'가 적혀있다. 그렇게 MLK가 암살당한 장소를 짧게 방문하고, 그 옆의 넓은 주차장에서 뒤를 돌아보니...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여기 추모의 공간을 찾아온 것을 보니, 앞서 씁쓸한 마음이 사라졌다~ 미국에서는 그의 탄생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1월 세번째 월요일을 마틴루터킹 데이(Martin Luther King, Jr. Day)라는 연방 공휴일로 지정했는데, 올해 2022년은 1월 17일로 정말 신기하게도 마침 이 포스팅을 올리는 날이다! (실제 생년월일은 1929년 1월 15일)
다음날 아침에 여기 멤피스에서 꼭 더 들러야 할 곳이 하나 남았기 때문에,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서 공항 근처에 숙소를 잡고는 Piccadilly Cafeteria라는 곳에 저녁을 먹으러 왔는데, 굉장히 큰 이 식당에 백인도 거의 없었고 우리 부부 빼고는 전부 흑인이었다. 몇 일 후에 테네시 주에 사는 아내의 친구집을 잠시 방문하게 되는데, 그 친구분 말씀이 특히 멤피스 남쪽은 흑인들이 아주 많은 위험한 동네라서 자기는 절대로 안 간다고... 그래서 약 한 달간 두 번의 미국 대륙횡단을 하면서, 저녁을 먹은 장소로는 가장 기억에 남는 곳들 중의 하나였다.
라바튜브 동굴이 있는 엘말파이스(El Malpais) 준국립공원 구경하고 뉴멕시코를 횡단해서 텍사스로~
알래스카와 하와이를 제외한 미본토의 48개 주(state)들 중에서 마지막으로 1912년 1월에 뉴멕시코(New Mexico), 2월에 아리조나(Arizona)가 미연방에 가입이 되었다. 1차 대륙횡단 이사를 하며 그 두 주를 지나갔던 여행기는 본편이 마지막이다 보니, 조만간에는 다시 아리조나와 뉴멕시코의 이야기는 위기주부의 블로그에 쓸 기회가 안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간단한 역사를 끄적여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삿짐을 꽉 채우고 머리에 봇짐까지 올린 상태로 비포장도로까지 조금 달려서 차에게 정말 미안했던 기억이 난다.^^
트레일 안내판 위에 적혀진 이 곳의 이름은 엘말파이스 내셔널모뉴먼트(El Malpais National Monument)로 뉴멕시코 주에 있는 13개의 준국립공원들 중 하나이다. 원래 이리로 오는 길에 있는 국립공원청의 Information Center에 먼저 들리려고 했지만, 문을 열지 않아서 바로 트레일헤드를 찾아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공원지도에서 53번 도로의 동쪽끝에 이전 여행기로 소개했던 별도의 준국립공원인 엘모로(El Morro)가 작게 보인다.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바위산으로 일찌감치 1906년에 지정된 엘모로와는 달리, 엘말파이스는 화산지형(volcanic field)을 보호할 목적으로 1987년에야 지정되었는데, 녹색 영역이 국립공원청이 관리하는 준국립공원이고 그 주변의 노란색은 국토관리국(Bureau of Land Management, BLM) 소관의 El Malpais National Conservation Area로 구분되어 있다.
무엇을 찾아 어디로, 어디까지 가는지도 모르지만, 사모님은 앞서서 잘도 걸어가신다~^^ 얼핏 보기에는 그냥 들판같지만, 가운데 땅이 까맣게 보이는 곳까지 가보면...
이렇게 땅이 꺼져서 동굴이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옛날에 용암이 흘렀던 곳에 만들어지는 라바튜브(lava tube)인데, 공원의 이름인 스페인어는 영어로 "The Badlands" 즉 황무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주차한 곳에서 0.1마일만 걸으면 이 짧은 트레일의 목적지인 정션케이브(Junction Cave)의 입구가 나온다. 이 트레일은 여기까지만 보고 돌아간다고 했더니, 사모님이 아주 좋아하셨다는...^^
그래서 셀카를 찍는 표정도 아주 밝으시다~
여기는 라바튜브 동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되어있는데, 저 속이 어떤 모습인지 전혀 궁금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지난 여름에 많이 들어가봤기 때문이다.
북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라바베즈(Lava Beds) 준국립공원 여행기를 클릭해서 보시면, 작은 것부터 아주 큰 동굴까지 내부가 어떤 모습인지를 3편의 여행기로 모두 보실 수 있다.
주차장의 안내판 반대편에 이 루프트레일의 이름인 엘칼데론(El Calderon)과 우측 위에 지도가 작게 보이는데, 우리는 루프가 시작되는 입구까지만 조금 걸어갔다 온 것이다.^^ 거기에 있던 동굴의 이름이 '정션(Junction)'인 이유는 아주 중요한 다른 트레일과 교차하는 곳이기 때문인데,
바로 미대륙을 지형적으로 동서로 나누는 경계를 따라 멕시코에서 캐나다까지 이어지는 컨티넨탈디바이드 트레일(Continental Divide Trail)을 지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즉, 여기 북쪽의 콜로라도에서 록키산맥 고개를 넘는 것처럼, 우리는 방금 뉴멕시코 고원지대에서 대륙을 동서로 나누는 경계를 넘어온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의미심장한 생각은 하지 않았고, 빨리 큰 마을로 가서 점심을 먹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지만 말이다.
두 곳의 준국립공원 구경을 마치고 다시 40번 고속도로와 만나는 그랜츠(Grants)에서 점심을 먹었던 아시안 슈퍼뷔페(Asian Super Buffet)의 모습이다. 나는 간단히 서브웨이를 먹자고 했지만, 아내가 여기 가보자고 해서 따라갔는데, 조금 과장해서... 내 평생에 가장 가성비가 좋은 뷔페를 먹은 곳이라, 나와서 사진 한 장 찍어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황량한 고속도로를 1시간 정도 달려 뉴멕시코 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앨버커키(Albuquerque)에서 별다방 커피와 함께 주유를 한 후에, 다시 3시간 이상을 동쪽으로 더 달려야 뉴멕시코와 텍사스의 주경계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보라색 황혼과 함께 "매혹의 땅(Land of Enchantment)"을 떠나고 있는 모습이다. 고속도로 반대쪽의 뉴멕시코로 들어가는 방향은 저 기둥 두 개를 세워서 아예 환영게이트를 만들어 놓았는데, 이번에 대륙횡단을 하면서 지나간 17개의 주들 중에서 뉴멕시코가 주경계의 간판을 가장 거창하게 만들어 놓은 주였다.
그리고, 우리의 이삿짐차는 텍사스(Texas)로 들어섰다. "Drive Friendly - The Texas Way"라 환영간판에는 적혀 있지만,
이 40번 고속도로를 지배하는 컨테이너 트럭들은 어두워질수록 별로 '프랜들리'하지는 않았던 기억이다. 물론 밤눈이 어두운 위기주부는 초행길이고 잘 안 보여서 속도를 줄였지만, 그들은 낮이나 밤이나 자주 다닌 이 길을 같은 속도로 계속 달리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그래서 2차선으로 얌전히 달렸기 때문에, 조수석의 아내가 창밖으로 풍력발전기들 위로 뜬 그믐달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금방 완전히 어두워져서 지나가는 길에 있는 관광지는 내일 아침에 돌아와서 보기로 하고, 숙소를 예약한 도시인 아마리요(Amarillo)로 직행을 해야 했다. 점심을 아시안 푸드로 거하게 먹고 5시간을 내리 운전만 했기 때문에, 저녁은 간단히 '치맥'으로 하기로 했다.
윙스탑(Wingstop)에 닭날개를 주문해놓고 마트에 맥주를 사러 들어가는 우리를 텍사스가 환영해주었다.^^ 1차 대륙횡단의 2일째는 아리조나 홀브룩에서 텍사스 아마리요까지 정동쪽으로만 총 538마일(866 km)을 9시간41분 동안 운전한 것으로 구글 타임라인에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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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서부 진출을 상징하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St. Louis)의 게이트웨이아치(Gateway Arch) 국립공원
누가 우리 부부에게 미국 대도시 이름 하나를 말하게 되면, 위기주부는 그 도시를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 등의 스포츠팀을, 아내는 그 도시에 있는 유명한 대학교를 먼저 떠올리는 차이점이 있다.^^ 미국 중서부의 미주리(Missouri) 주에서 맞이한 2차 대륙횡단의 10일째 아침에, 바로 동쪽으로 2시간 정도를 달려 세인트루이스(St. Louis)로 향할 예정이라고 하자, 아내는 미국에서 10위권의 대학으로 보통 줄여서 '와슈(WashU)'라 많이 부르는 워싱턴 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가 있는 곳이라 말했고, 나는 LA다저스와 같은 MLB 내셔널리그의 강팀인 카디널스(Cardinals)의 연고지라 알려줬다. 하지만 이제는 누가 우리에게 세인트루이스 이야기를 꺼내면... 둘 다 공통적으로 이 국립공원의 아치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날 것이다.
다운타운에 주차를 하니까 주차장의 대각선으로 앞서 언급한 프로야구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홈구장인 부시스타디움(Busch Stadium)이 바로 딱 보였다. 이 때가 메이저리그 시즌은 다 끝난 10월 마지막 금요일이었는데, 다른 행사를 준비하는지 흐린 날씨에 오전부터 조명이 들어와 있었다.
주차타워를 나와서 야구장과는 반대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니까, 눈에 확 띄는 오늘의 주인공이 바로 건물들 너머로 등장을 해주셨다!
국립공원 영역에 포함되는 이 건물은 Old Courthouse로 사진 오른편의 계단 옆에 까만색 Dred and Harriet Scott 부부의 동상이 작게 서있다. 흑인 노예였던 드레드 스콧이 1846년에 이 법원에서 처음 자유를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1857년 연방대법원에서 "흑인 노예는 사유재산으로 시민권이 없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는 미국 대법원 최악의 역사로 손꼽히는 드레드스콧 판결(Dred Scott Decision)을 내려서, 노예제 폐지를 둘러싼 대립을 더욱 악화시켜서 남북전쟁의 발발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그 옛날 법원 건물에서 동쪽 잔디밭 너머로 1965년에 높이 630피트(192 m)로 만들어져서,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아치형 구조물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게이트웨이 아치(Gateway Arch)가 세워져 있는데, 미국이 프랑스로부터 1803년의 루이지애나 매입으로 여기 세인트루이스가 미시시피 강을 건너 서쪽으로 미서부 확장의 '관문(gateway)' 역할을 했던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아치를 배경으로 커플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역시 가장 멀리서 찍어 전체모습이 잘 보이는 이 사진으로 낙점했다. 사진에서 두 기둥의 좌우 거리도 높이와 동일한 630피트로 여기서 봤을 때 정사각형 안에 딱 맞게 들어간다고 보시면 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일찌기 1935년부터 미시시피 강가의 여기 공원은 루이지애나 매입을 추진한 당시 제퍼슨 대통령을 기념해서 Jefferson National Expansion Memorial로 지정되었다. 무려 30년후에야 기념물인 아치가 완성되고도 계속 그렇게 불리다가, 2018년에 이르러서야 게이트웨이아치 국립공원(Gateway Arch National Park)으로 승격이 되었다. 그래서 이 곳은 현재 미국의 63개의 내셔널파크들 중에서 가장 면적이 작으면서 동시에 유일하게 인공 기념물이 공원의 핵심인 곳이다.
사모님이 입구의 벤치에 앉아서 잠시 업무를 보시는 동안에 아치의 모습과 뒤쪽의 지나온 법원 건물까지 비디오로 찍은 것을 클릭해서 보실 수 있다. 영상에서 아치의 제일 꼭대기를 확대했을 때 까만색 점들이 찍혀있는 것이 보이는데,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으로 나중에 우리도 그 꼭대기까지 올라가게 된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올려다 볼 수록 정말로 대단한 구조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테인리스 강철로 만든 아치의 단면은 삼각형이고 제일 아래 기둥의 양쪽 꼭지점이 마주 보고 있어서 꼭대기는 역삼각형으로 연결이 되어있다.
아내가 만지고 있는 모서리는 용접해서 붙인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사람 키높이의 삼각형 덩어리를 정확한 수학공식에 따라 조금씩 다른 크기로 미리 만들어 가지고 와서, 비스듬히 쌓아올려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콜로라도 그레이트샌드듄 국립공원에서 했던 '옆차기' 포즈를 여기서도...^^ 양쪽 기둥 아래로 만들어진 경사로는 출구 전용이라서, 입장을 하기 위해서는 비디오를 찍었던 정면 아래쪽의 입구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약 2백미터나 떨어진 곳에 솟아있는 반대편 기둥만 찍은 사진을 보면, 금속판으로 외부를 두른 기념탑이 비스듬히 솟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광장 아래에 만들어진 비지터센터 겸 전시실로 들어오면, 제일 먼저 저 멀리 티켓센터가 눈에 띈다. 우리는 불확실한 대륙횡단 일정 때문에 전날에야 전망대에 올라가는 티켓을 예매했는데, 지금 저 파란 화면에는 오늘표는 모두 매진이라고 나와 있었으니까, 정말 아슬하게 운이 좋았던 셈이다.
들어왔던 입구쪽을 잠깐 뒤돌아 봤는데, 하얀 대리석 바닥과 유리로 아주 멋지게 만들어 놓았다.
박물관이 있는 아랫층의 바닥에는 파란색으로 강줄기를 그려놓은 미본토의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노란원으로 표시된 미주리 강과 미시시피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미국이 독립하기도 전인 1764년 프랑스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가 Louis IX of France 왕의 이름을 딴 여기 세인트루이스이다.
전시실로 연결되는 통로에는 대형 스크린을 바닥에 세워놓고 세인트루이스를 넘어 서부로 향하는 도로와 철도 등의 사계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역시 이 전시실의 주인공은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으로, 뭔가 있어보이는 그의 포즈와 눈빛을 위기주부가 따라하고 있다~ "그래, 당신은 미국이 서쪽으로 진출하기를 원했지만, 우리는 동쪽으로 이사갑니다."
1800년대 중반부터 1900년대 초까지 내륙 강가의 세인트루이스가 미국의 3대 항구에, 1920년까지는 미국에서 4번째로 큰 도시였으며, 특히 1904년에는 월드엑스포와 하계올림픽이 동시에 이 도시에서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강을 이용하는 해운에서 육지의 철도로 운송이 넘어가면서 북쪽의 시카고에 중부 최대도시의 자리를 넘겨주게 되고, 저 수 많은 배들이 정박했던 항만시설이 1930년대에 모두 철거된 자리에 지금의 이 기념공원이 만들어진 것이다.
전시실을 다 지나오면 튼튼한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아치 바로 아래의 지하가 나온다. 여기는 다른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는 아치의 모형 등이 많이 만들어져 있는데,
특히 역삼각형의 튜브로 만들어져 있는 아치의 가장 꼭대기 전망대 부분을 만들어 놓은 것이 볼만하다. 우리는 잠시 후에 진짜로 저기에 올라가보게 될거니까 잠깐 구경하고는 바로 안내영화를 보러 갔던 것 같다.
한쪽 벽면에 아치의 마지막 조각을 크레인으로 들어올려서 양쪽에서 각각 쌓아올린 곡선의 가운데에 끼워넣는 순간을 재현한 모형이 세워져 있었다. 영화에서도 저 장면이 하이라이트로 금속이 팽창해서 잘 들어가지가 않아서 물을 뿌려서 식히는 모습 등이 흥미진진했었다. 가운데 새겨진 부조의 주인공이 게이트웨이 아치를 설계한 핀란드계 미국인 에로 사리넨(Eero Saarinen)으로, 현재 위기주부가 살고있는 버지니아의 덜레스 국제공항 청사의 디자인도 담당했다.
점심 때가 되었는데 마침 넓은 카페가 있어서, 그냥 메뉴판 가운데 St. Louis Specials라 되어있는 메뉴 두 개를 시켜서 먹기로 했다. 금방 나온 음식을 받아서 왼쪽 벽의 멀티스크린 옆에 앉았는데...
사진으로는 볼품이 없지만, 오른쪽의 백립이 정말로 맛있었다! 아마도 대륙횡단에서 먹었던 음식들 중에 최고로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식사를 잘 마치고 이제 꼭대기의 전망대를 올라갈 차례인데, 여기서 퀴즈... 위쪽으로 올려서 다시 아치의 전체모습을 보시면, 거의 수직의 바닥에서 수평으로 허공에 떠있는 전망대까지 경사가 달라지는 '곡선'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데, 과연 무엇을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해답은 이어지는 게이트웨이아치 국립공원 여행기 2편에서 알려드리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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