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복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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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osts사라토가(Saratoga) 국립역사공원에서 영국군이 항복한 장소, 필립 스카일러 장군의 집, 그리고 기념비
내년 2026년은 필라델피아 인디펜던스홀에서 미국이 공식적으로 영국의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지 250주년(Semiquincentennial)이 되는 해이다. 하지만 미국의 혁명 전쟁(American Revolutionary War)은 1775년 4월 19일의 렉싱턴/콩코드 전투를 그 시작으로 보기 때문에, 이를 포함해 독립전쟁의 가장 중요한 5개의 전투를 기념하는 아래와 같은 우표가 올해 발행됐었다. 제일 윗줄의 Battles of Lexington & Concord는 보스턴 외곽에서 벌어져 현재 Minute Man National Historical Park로 관리되고 있는데, 예전에 주변을 몇 번 지나가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직접 가보지는 못했다. 같은 해 6월의 벙커힐 전투(Battle of Bunker Hill) 기념비는 2015년에 방문했었고, 셋째줄 1776년 12월의 트랜턴 전투(Battle of Trenton)에 대해서는 수채화로 묘사된 워싱턴이 델라웨어 강을 건넌 곳을 올초에 지나간 적이 있다. (사진은 트랜턴에서 영국군이 주둔하고 있던 막사) 전편에서 보여드렸던 대포의 사진이 들어간 새러토가 전투(Battle of Saratoga)에 대해서는 이제 설명을 드릴 예정이고, 마지막 줄은 사실상 전쟁이 종결된 1781년 10월의 요크타운 전투(Battle of Yorktown)로 3년전에 역시 현장을 들렀다. 여기를 클릭해 보실 수 있는 1부에서 설명드린 두 번의 공격이 모두 실패한 후에, 전장에서 몇 마일 북쪽의 작은 마을로 후퇴했던 존 버고인(John Burgoyne) 소장이 이끄는 영국군이 열흘이 지난 10월 17일에 호레이쇼 게이츠(Horatio Gates) 소장의 대륙군에게 이 자리에서 항복을 하게 된다. 이는 당시 세계를 주름잡던 대영제국의 장군이 통솔하는 5천명 이상의 정규군이 야전에서 항복한 역사상 최초의 사례라 한다. 그것도 다른 유럽의 강대국이 아니라 아메리카 식민지의 반란군에게! 포신에 영국 왕실을 상징하는 왕관과 대문자 'R'이 새겨진 이 대포는, 항복한 영국군의 왕립 포병대로부터 압류한 것의 모조품이라 한다. 당시 30문 이상의 대포를 압류해서 계속 이어진 독립 전쟁에 대륙군이 대부분 사용을 했고, 지금까지 몇 개 남아있는 실물은 다른 박물관 등에 보존되어 있단다. 좌우로 두 개가 원래 설치되었던 모양인데 오른편의 것은 누가 훔쳐갔는지 사라지고 없었다.^^ 기념물의 중앙에 부조로 새겨진 그림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할 예정이고, 좌우로 4개의 어록이 동판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게이츠 장군이 다음날 의회에 승전보를 알린 문장을 아래에 보여드린다. 꼼꼼히 1부를 읽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게이츠는 전투 직전에 북부군 사령관으로 부임해 와서, 두 번의 전투 동안에 계속 수비만 주장하며 요새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왔었다... 자신의 상관인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에 대한 보고는 건너뛰고 바로 대륙의회에 전문을 보낼 때부터 꿍꿍이가 있었던 그는,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받기 어려운 훈장인 의회 황금 메달(Congressional Gold Medal)을 받고 전쟁위원회 위원장을 겸임하게 되자, 워싱턴을 끌어내리고 자신이 총사령관을 하겠다는 야망에 부풀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콘웨이 음모(Conway Cabal)가 사전에 발각되자 그는 워싱턴에게 직접 사과해야 했고, 자신이 신생 미국의 지도자가 되려던 꿈도 접어야 했다. 커다란 의회 황금 메달을 자랑스럽게 걸고 있는 호레이쇼 게이츠의 초상화지만... 여차저차해서 그는 1780년에 다시 남부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지만, 그 해 8월 사우스캐롤라이나 캠던(Camden)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수적우위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용병술로 영국군에게 대패하고 혼자 북쪽으로 300 km를 쉬지 않고 줄행랑을 친다. 친분이 있는 의원들의 로비로 군사재판은 면하고 종전때까지 참모직은 유지했지만, 그는 흔히 미국 역사상 최악의 장군들 중의 하나로 항상 언급된다. 허드슨 강을 따라 북쪽으로 이어지는 4번 국도 옆의 여기 사라토가 항복지(Saratoga Surrender Site)를 내려다 보는 저 커다란 집의 주인은 누굴까? 외롭게 서있는 차로 돌아가면서 마지막으로 왼쪽의 안내판을 둘러봤다~ 기념물의 동판은 워싱턴DC의 미의사당 로툰다에 걸려있는 총 8개의 대형 역사화들 중에서, 존 트럼벌((John Trumbull)이 그린 4개 중의 하나인 그림이었다. 사라토가 전투에서 대륙군이 승리한 것을 계기로 영국과 앙숙이던 프랑스가 미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동맹을 맺으며, 스페인과 함께 영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독립전쟁은 유럽 강대국들간의 국제전으로 확대되는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게이츠가 그림의 중앙에 서있고 오른편이 대륙군인데, 그 중에 유일하게 민간인 복장으로 등장하는 23번 인물의 집을 이제 찾아간다. 북쪽으로 딱 1 km만 달리면 나오는 필립 스카일러 장군의 집(General Philip Schuyler House)으로 위기주부는 그의 이름을 올해로 10년째를 맞는 뮤지컬 을 예전에 관람하면서 주인공의 장인으로 잠깐 등장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필립 스카일러는 이 지역 출신의 전임 북부군 사령관으로 버고인의 영국군이 여기까지 남하하는 것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대륙군에 민간인 신분으로 계속 남아서 후임자인 게이츠를 도와서 식량 보급과 민병대 충원 등에 큰 도움을 줬다. 스카일러의 저택은 남쪽으로 35마일 거리인 뉴욕 주도 올버니(Albany)에 있으나, 안내판의 그림처럼 여기를 중심으로 주변의 넓은 땅을 아우르는 자신의 농장을 방문할 때 노란 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독립전쟁 당시에 이 마을의 이름이 바로 새러토가(Saratoga)였지만, 그 후 1831년에 스카일러빌(Schuylerville)로 마을 이름을 바꿔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처음 영국군이 마을을 점령했을 때는 여기 스카일러의 집을 본부로 사용했지만, 두 번의 전투가 끝나고 북쪽으로 위험한 후퇴 또는 깔끔한 항복을 놓고 고민할 때, 버고인 장군은 집과 농장의 다른 모든 건물을 불태우라고 직접 명령을 했다. 그래서 지금 보이는 집은 전투가 끝나고 불과 한 달만에 새로 만들어서 지금까지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라 한다. 평소에는 내부도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다지만, 방문했을 때는 연방정부 셧다운 안내문만 또 읽어야 했다.^^ 버고인과 스카일러의 이야기 및 사라토가 전투의 후일담은 시리즈 다다음편에서 또 잠깐 이어질 예정이다. 사라토가 국립역사공원 둘러보기의 마지막 장소로 영국군이 항복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주둔했던 언덕 위에 세워진 사라토가 기념비(Saratoga Monument)를 찾아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언덕에는 프로스펙트 힐 공동묘지(Prospect Hill Cemetery)가 1865년에 먼저 만들어지긴 했지만, 독립전쟁이나 남북전쟁 전사자와는 관련이 없는 개인 소유의 일반 묘지라 한다.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옛날 영국군 참호의 흔적 등이 발견되어서, 여기가 마지막 주둔지였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기념비도 이 자리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여행의 첫날에도 묘지에서 예쁜 노란 단풍을 구경했었는데 둘쨋날도...^^ 이 길을 따라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참호 등을 복원해놓은 빅토리 우즈(Victory Woods)가 나온다고 하지만, 이 날도 그렇게 한가한 일정이 아니라 바로 뒤돌아서 화강암으로 만든 높이 약 47m(155피트)의 오벨리스크로 전투 100주년인 1877년에 초석을 놓고 1883년에 완공된 사라토가 기념비만 한바퀴 빨리 둘러보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동서남북 네 방향 모두 출입문이 만들어져 있고, 그 윗층에는 흔히 조각을 세워놓는 등의 장식을 위해 벽을 파놓는 공간을 뜻하는 '벽감(壁龕, niche)'이 만들어져 있지만, 지금 보이는 남쪽은 그냥 비워져 있다... 오전의 햇살을 정면으로 받는 동쪽 면에는 자신의 농장을 내려다 보는 필립 스카일러 장군의 동상이 이렇게 멋있게 세워져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정반대 서쪽 벽감에 세워진 동상은 맹활약한 저격수 부대를 이끌었던 대니얼 모건(Daniel Morgan) 대령으로 앞서 설명한 그림에도 흰 옷을 입고 가장 크게 그려져 있다. 그는 글도 거의 모르는 민간인 마차꾼으로 1755년 브래독 원정에 조지 워싱턴과 함께 참여했었고, 이듬해 식민지 영국군 장교를 때린 죄로 499대의 태형을 견뎌낸 것으로 유명하며, 준장으로 독립전쟁을 마친 후에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현재 출입구로 사용되는 북쪽 문에는 어김없이 또 안내문이 붙어있는데, 평소에는 188개의 계단을 따라 꼭대기의 전망대까지 자유롭게 올라갈 수 있단다. 여기 위에는 어쨌거나 북쪽에서 내려온 영국군을 막아낸 사령관인 호레이쇼 게이츠 장군의 동상이 만들어져 있는데, 그렇다면 남쪽의 벽감만 비워져 있는 이유는? 새러토가 전투의 가장 큰 영웅이지만 이름이나 형상을 남길 수는 없는 그 놈을 상징적으로 기리는 것이다! "저기 사시는 분은 대문을 나설 때마다 대포가 자기 집을 조준하고 있는 모습을 보시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주차한 곳으로 돌아가서, 북부 뉴욕주 2박3일 여행 둘쨋날의 다음 목적지인 유서 깊은 휴양도시로 짧게 이동했다. PS. 미국에서는 특별히 독립 250주년이 되는 해라고, 타임스퀘어의 크리스털 볼도 아래와 같이 '250'이란 숫자와 성조기 디자인으로 번쩍이며 새해를 맞이할 예정이랍니다. 2년전에는 맨하탄에서 새해맞이를 했었지만 이번에는 딸의 아파트가 연말내내 비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 못 가고 조용히 집에서 보낼 듯하여 미리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블로그 방문해주시는 모든 분들 202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미국이 다시 하나된 곳"인 버지니아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Appomattox Court House) 국립역사공원
윌머 맥클린(Wilmer McLean)은 지금 센터빌 남쪽에 큰 농장을 운영하는 식료품 도매상이었다. 미국이 남북으로 갈라진 후인 1861년 7월에 남부군이 그의 농장에 주둔했고, 버지니아 민병대 출신이었던 그는 기꺼이 자신의 집을 지휘 본부로 제공했다. 21일 새벽에 북군이 개울 건너에서 선제공격을 했는데, 포탄 한 발이 그 집의 부엌으로 날아들기도 했단다. 그렇게 남북전쟁 최초의 교전인 제1차 불런전투(First Battle of Bull Run)가 그의 농장에서 시작되었고, 이듬해 인근 매너서스에서 또 전투가 벌어지자 그는 가족의 안전을 위해 150마일이나 떨어진 시골 마을로 이사를 하게 된다. 새벽에 출발해 3시간반 동안 쉬지않고 운전을 해와서 만난 국립 공원의 간판이 너무 반가워, 앞뒤로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운전석에서 사진을 찍었다.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 국립역사공원(Appomattox Court House National Historical Park)은 여기부터 제법 넓은 면적을 아우르지만, 비지터센터와 중요한 볼거리는 모두 마을 안에 있다. 참고로 옛날에는 그 카운티(County)의 법원이 소재한 마을의 이름을 '○○ Court House'로 불렀다고 한다. 공원 브로셔에 인쇄된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 마을의 조감도로 한가운데 옛날 법원(courthouse) 자리에 지은 비지터센터가 있고, 그 아래쪽에 '맥클린 하우스(McLean House)'라는 굵은 글씨가 보인다. 그렇다! 바로 처음 소개한 윌머 맥클린이 전쟁을 피해서 이사를 온 남부 버지니아의 깡촌이 바로 여기 Appomattox Court House였던 것이다. 남부 버지니아의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들 당일여행의 첫번째 목적지로 찾아왔지만, 여기를 그렇게 부르기에는 좀 미안한게... 비지터센터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위기주부 외에도 이렇게 제법 있었고, 미국 역사책에도 아주 중요한 장소로 항상 등장하는 곳이며, 여기서 벌어졌던 일을 다룬 라는 제목의 현대 오페라까지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아침부터 근무하는 파크레인저도 4명이나 되어서, 한 명은 벌써 맥클린 하우스에 가있었고, 다른 한 명이 2층의 극장에서 틀어준 이 날 첫번째로 상영하는 안내영화를 봤다. 부제는 1865년 3월초 링컨의 두번째 대통령 취임 연설 중의 유명한 문구인 "With malice toward none, with charity for all"에서 따온 것이다. 극장을 감싼 정사각형의 복도를 따라 전시가 만들어져 있는데, 먼저 미국 남북전쟁의 중요한 사건들이 시간순으로 적혀 있다. 비록 교전은 없었지만 공식적인 시작으로 보는 1961년 4월 12일 사우스캐롤라이나 포트섬터(Fort Sumter)부터, 이미 블로그에 모두 소개한 First Manassas, Antietam, Gettysburg 등등의 전투를 차례로 거쳐서... 사실상의 마지막 전역인 애퍼매톡스 캠페인(Appomattox Campaign)이 1865년 4월 2~8일 동안에, 남부연맹의 수도였던 버지니아 리치먼드(Richmond)에서부터 서쪽으로 여기 애퍼매톡스까지 전개되었던 것이다. 시리즈 전전편에 소개했던 9달반의 피터스버그 포위전(Siege of Petersburg) 끝에 서쪽으로 후퇴를 하는 빨간색의 남군과, 이들이 남쪽으로 내려가 노스캐롤라이나의 다른 남군과 합류하지 못하도록 계속 남쪽에서 따라붙었던 파란색 북군의 이동경로와 그 과정의 주요 전투를 보여준다. 4월 6일에 Sailor's Creek에서 돌파시도가 실패한 다음에는 후미도 추격을 당해서 앞뒤로 포위되고, 마지막으로 8일에 Appomattox Station에서 기차를 이용해 린치버그(Lynchburg)로 후퇴하려던 계획도 좌절되자 남군 지휘부는 마침내 항복을 결정한다. (데이비스 대통령을 포함한 남부 지도자들은 일찌감치 2일밤에 바로 특별열차를 이용해 Danville로 탈출) 전시물 중에 눈길을 끌었던 발굴된 옛날 총탄들이라고 하는데, 손가락 굵기 정도로 예상보다 아주 큰게 신기했고, 또 대부분이 흰색에 가깝게 보이는 이유가 궁금하다... 여하튼, 8일의 마지막 전투가 끝나고 몇 번의 의견교환 후에, 바로 다음날 양측의 총사령관이 만나기로 한 장소가 바로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 마을에서 가장 상태가 좋았던 윌머 맥클린 집의 거실(parlor)이었다. 1865년 4월 9일에 오른쪽 책상에 앉은 북군 총사령관 율리시스 S. 그랜트(Ulysses Simpson Grant)가 직접 그 자리에서 쓴 간단한 항복조건 문서에 왼쪽의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E. 리(Robert Edward Lee)가 서명을 하는 모습이다. 물론 이 후에도 몇 달간 다른 지역에서 남북간에 약간의 교전이 있기는 했지만, 차례로 다른 남부 지휘관들도 소식을 듣고 항복을 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이 날을 남북전쟁이 끝난 날로 역사책에 기록한다. 여기서 항복했던 남군 부대의 군기를 북군 지휘관 한 명이 기념으로 고향에 가져갔다가, 사후 그의 아내가 국립 공원에 기증한 것이 전시되어 있었다. 문제는 여기같은 박물관이 아니라, 자기 집이나 차에 저 깃발을 지금도 걸어놓은 사람들이 남부 버지니아에서는 가끔 보인다는 것... 그리고 왼편 그림은 다음날 그랜트가 먼저 떠나기 전에 리를 다시 만나서 말 위에서 30분간 이야기를 나눴다는 모습인데, 그 장소가 공원 조감도에도 제일 위쪽에 표시되어 있다. (Lee와 Grant에 대해서는 그들을 기념하는 각각의 국립 공원 방문기에서 별도로 소개 예정) 전시의 마지막은 그렇게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간 남군 장교 한 명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 애퍼매톡스에서 총성이 멎고 불과 5일이 지난 14일 저녁에, 링컨 대통령이 워싱턴DC의 포드 극장((Ford's Theatre)에서 남부 지지자에게 암살을 당하게 된다! 비지터센터를 나와 한적한 시골길을 조금 걸어서, 실제 두 장군의 만남이 있었던 맥클린 하우스(McLean House)로 왔다. 이 곳은 복원된 후에 남북전쟁 역사를 다룬 영화나 다큐멘터리의 실제 촬영장소로 여러 번 사용되었는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12년 영화 에서도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돌아가는 리(Lee)에게 그랜트(Grant)가 모자를 벗어 예를 표하는 위의 장면에 짧게 등장을 했단다. 몇 개의 계단을 올라서 정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왼편에 역사적인 장소가 완벽하게 복원되어 있다. 항복 직후에 다른 북군 장교들이 두 책상을 포함해 기념품이 될만한 것들은 모두 집주인에게 적당한 돈을 주거나 또는 그냥 가져갔기 때문에, 거실이 바로 텅텅 비었단다. 리가 사용했던 왼쪽 하얀색 대리석 상판의 책상은 시카고 역사박물관에, 그랜트가 사용했던 오른쪽 작은 나무 책상은 DC 미국사 박물관에 각각 진품이 전시되어 있다. 1층 맞은편은 맥클린 부부의 침실로 모든 것이 당시의 모습대로 꾸며져 있고, 2층에 자녀들 방도 아주 잘 만들어 놓았었다. 사실은 가구와 장식만 새로 가져다 놓은 것이 아니라, 이 집 전체가 1950년에 옛날 자재를 일부 사용해서 완전히 새로 지어진 것으로 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거실 바로 아래 본채의 주방 사진과 함께 설명드리면... 전쟁이 끝난 후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윌머 맥클린은 이 집을 팔고 북부 버지니아의 고향으로 돌아갔고, 그 후에 어떤 사업가가 다시 사서는 이 유명한 집을 통째로 워싱턴DC로 옮겨서 전시해 돈을 벌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래서 1892년에 덩어리로 분해까지는 되었는데, 결국 운반되지는 못하고 그대로 거의 방치가 되어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는 1935년에 마을 전체가 국립 기념물로 지정이 되고나서, 목재는 대부분 썩어서 버려졌지만 남아있는 원래 벽돌 등으로 현재의 집을 새로 지었던 것이다. 건너편 잘 차려진 식당의 벽에 당시 집주인 부부의 초상화가 좌우로 걸려있는데, 모든 군인들이 떠나고 난 후에 윌머 맥클린이 "The war began in my front yard and ended in my front parlor."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말로 MBC 방송의 에 나와도 될만한 기막힌 우연이 아닐까? ㅎㅎ 출구를 통해 뒷뜰로 나가면 부엌과 당시 이 집의 노예들이 살았던 숙소를 추가로 구경할 수 있다. 부엌의 모습도 당시와 비슷하게 재연을 해놓았고, 내부 다른 쪽에서는 당시 남부 노예들의 상황과 함께 남북전쟁이 끝나고 노예해방 소식이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었다. 하우스가 아니라 슬레이브쿼터스(Slave Quarters)로 불린 숙소의 내부 모습이, 좀 전의 본채 침실과 많이 비교가 되었다. 여기서 왕복 3시간이나 더 운전을 해야하기 때문에 원래 계획에는 없었던, 시리즈 전편에 소개했던 노예 출신의 흑인 교육자를 기리는 준국립공원을 방문해보기로 결정을 했기 때문에 서둘러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중심가 건너편에 1850년대 지어진 상태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사진의 Meeks Store 및 오른편 나무 뒤로 살짝 보이는 남군 병사의 가석방(parole) 증서를 급히 인쇄했었다는 Clover Hill Tavern 등은 구경할 수 없었다. 본 여행기의 제목에 쓴 것처럼 애퍼매톡스 카운티의 환영간판에 "Where Our Nation Reunited"라 써진 것을 봤었는데, 이렇게 4년 동안 전쟁을 했던 남북도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않고' 다시 하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의 미국은 서로 총질만 안한다 뿐이지 더 심하게 둘로 다시 갈라졌다는 느낌이 든다... 그나저나 이렇게 남북전쟁이 끝난 곳은 다녀왔는데,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시작된 곳은 언제쯤 직접 가볼 수 있을까?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미국이 다시 하나된 곳"인 버지니아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Appomattox Court House) 국립역사공원
윌머 맥클린(Wilmer McLean)은 지금 센터빌 남쪽에 큰 농장을 운영하는 식료품 도매상이었다. 미국이 남북으로 갈라진 후인 1861년 7월에 남부군이 그의 농장에 주둔했고, 버지니아 민병대 출신이었던 그는 기꺼이 자신의 집을 지휘 본부로 제공했다. 21일 새벽에 북군이 개울 건너에서 선제공격을 했는데, 포탄 한 발이 그 집의 부엌으로 날아들기도 했단다. 그렇게 남북전쟁 최초의 교전인 제1차 불런전투(First Battle of Bull Run)가 그의 농장에서 시작되었고, 이듬해 인근 매너서스에서 또 전투가 벌어지자 그는 가족의 안전을 위해 150마일이나 떨어진 시골 마을로 이사를 하게 된다. 새벽에 출발해 3시간반 동안 쉬지않고 운전을 해와서 만난 국립 공원의 간판이 너무 반가워, 앞뒤로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운전석에서 사진을 찍었다.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 국립역사공원(Appomattox Court House National Historical Park)은 여기부터 제법 넓은 면적을 아우르지만, 비지터센터와 중요한 볼거리는 모두 마을 안에 있다. 참고로 옛날에는 그 카운티(County)의 법원이 소재한 마을의 이름을 '○○ Court House'로 불렀다고 한다. 공원 브로셔에 인쇄된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 마을의 조감도로 한가운데 옛날 법원(courthouse) 자리에 지은 비지터센터가 있고, 그 아래쪽에 '맥클린 하우스(McLean House)'라는 굵은 글씨가 보인다. 그렇다! 바로 처음 소개한 윌머 맥클린이 전쟁을 피해서 이사를 온 남부 버지니아의 깡촌이 바로 여기 Appomattox Court House였던 것이다. 남부 버지니아의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들 당일여행의 첫번째 목적지로 찾아왔지만, 여기를 그렇게 부르기에는 좀 미안한게... 비지터센터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위기주부 외에도 이렇게 제법 있었고, 미국 역사책에도 아주 중요한 장소로 항상 등장하는 곳이며, 여기서 벌어졌던 일을 다룬 라는 제목의 현대 오페라까지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아침부터 근무하는 파크레인저도 4명이나 되어서, 한 명은 벌써 맥클린 하우스에 가있었고, 다른 한 명이 2층의 극장에서 틀어준 이 날 첫번째로 상영하는 안내영화를 봤다. 부제는 1865년 3월초 링컨의 두번째 대통령 취임 연설 중의 유명한 문구인 "With malice toward none, with charity for all"에서 따온 것이다. 극장을 감싼 정사각형의 복도를 따라 전시가 만들어져 있는데, 먼저 미국 남북전쟁의 중요한 사건들이 시간순으로 적혀 있다. 비록 교전은 없었지만 공식적인 시작으로 보는 1961년 4월 12일 사우스캐롤라이나 포트섬터(Fort Sumter)부터, 이미 블로그에 모두 소개한 First Manassas, Antietam, Gettysburg 등등의 전투를 차례로 거쳐서... 사실상의 마지막 전역인 애퍼매톡스 캠페인(Appomattox Campaign)이 1865년 4월 2~8일 동안에, 남부연맹의 수도였던 버지니아 리치먼드(Richmond)에서부터 서쪽으로 여기 애퍼매톡스까지 전개되었던 것이다. 시리즈 전전편에 소개했던 9달반의 피터스버그 포위전(Siege of Petersburg) 끝에 서쪽으로 후퇴를 하는 빨간색의 남군과, 이들이 남쪽으로 내려가 노스캐롤라이나의 다른 남군과 합류하지 못하도록 계속 남쪽에서 따라붙었던 파란색 북군의 이동경로와 그 과정의 주요 전투를 보여준다. 4월 6일에 Sailor's Creek에서 돌파시도가 실패한 다음에는 후미도 추격을 당해서 앞뒤로 포위되고, 마지막으로 8일에 Appomattox Station에서 기차를 이용해 린치버그(Lynchburg)로 후퇴하려던 계획도 좌절되자 남군 지휘부는 마침내 항복을 결정한다. (데이비스 대통령을 포함한 남부 지도자들은 일찌감치 2일밤에 바로 특별열차를 이용해 Danville로 탈출) 전시물 중에 눈길을 끌었던 발굴된 옛날 총탄들이라고 하는데, 손가락 굵기 정도로 예상보다 아주 큰게 신기했고, 또 대부분이 흰색에 가깝게 보이는 이유가 궁금하다... 여하튼, 8일의 마지막 전투가 끝나고 몇 번의 의견교환 후에, 바로 다음날 양측의 총사령관이 만나기로 한 장소가 바로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 마을에서 가장 상태가 좋았던 윌머 맥클린 집의 거실(parlor)이었다. 1865년 4월 9일에 오른쪽 책상에 앉은 북군 총사령관 율리시스 S. 그랜트(Ulysses Simpson Grant)가 직접 그 자리에서 쓴 간단한 항복조건 문서에 왼쪽의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E. 리(Robert Edward Lee)가 서명을 하는 모습이다. 물론 이 후에도 몇 달간 다른 지역에서 남북간에 약간의 교전이 있기는 했지만, 차례로 다른 남부 지휘관들도 소식을 듣고 항복을 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이 날을 남북전쟁이 끝난 날로 역사책에 기록한다. 여기서 항복했던 남군 부대의 군기를 북군 지휘관 한 명이 기념으로 고향에 가져갔다가, 사후 그의 아내가 국립 공원에 기증한 것이 전시되어 있었다. 문제는 여기같은 박물관이 아니라, 자기 집이나 차에 저 깃발을 지금도 걸어놓은 사람들이 남부 버지니아에서는 가끔 보인다는 것... 그리고 왼편 그림은 다음날 그랜트가 먼저 떠나기 전에 리를 다시 만나서 말 위에서 30분간 이야기를 나눴다는 모습인데, 그 장소가 공원 조감도에도 제일 위쪽에 표시되어 있다. (Lee와 Grant에 대해서는 그들을 기념하는 각각의 국립 공원 방문기에서 별도로 소개 예정) 전시의 마지막은 그렇게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간 남군 장교 한 명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 애퍼매톡스에서 총성이 멎고 불과 5일이 지난 14일 저녁에, 링컨 대통령이 워싱턴DC의 포드 극장((Ford's Theatre)에서 남부 지지자에게 암살을 당하게 된다! 비지터센터를 나와 한적한 시골길을 조금 걸어서, 실제 두 장군의 만남이 있었던 맥클린 하우스(McLean House)로 왔다. 이 곳은 복원된 후에 남북전쟁 역사를 다룬 영화나 다큐멘터리의 실제 촬영장소로 여러 번 사용되었는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12년 영화 에서도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돌아가는 리(Lee)에게 그랜트(Grant)가 모자를 벗어 예를 표하는 위의 장면에 짧게 등장을 했단다. 몇 개의 계단을 올라서 정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왼편에 역사적인 장소가 완벽하게 복원되어 있다. 항복 직후에 다른 북군 장교들이 두 책상을 포함해 기념품이 될만한 것들은 모두 집주인에게 적당한 돈을 주거나 또는 그냥 가져갔기 때문에, 거실이 바로 텅텅 비었단다. 리가 사용했던 왼쪽 하얀색 대리석 상판의 책상은 시카고 역사박물관에, 그랜트가 사용했던 오른쪽 작은 나무 책상은 DC 미국사 박물관에 각각 진품이 전시되어 있다. 1층 맞은편은 맥클린 부부의 침실로 모든 것이 당시의 모습대로 꾸며져 있고, 2층에 자녀들 방도 아주 잘 만들어 놓았었다. 사실은 가구와 장식만 새로 가져다 놓은 것이 아니라, 이 집 전체가 1950년에 옛날 자재를 일부 사용해서 완전히 새로 지어진 것으로 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거실 바로 아래 본채의 주방 사진과 함께 설명드리면... 전쟁이 끝난 후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윌머 맥클린은 이 집을 팔고 북부 버지니아의 고향으로 돌아갔고, 그 후에 어떤 사업가가 다시 사서는 이 유명한 집을 통째로 워싱턴DC로 옮겨서 전시해 돈을 벌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래서 1892년에 덩어리로 분해까지는 되었는데, 결국 운반되지는 못하고 그대로 거의 방치가 되어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는 1935년에 마을 전체가 국립 기념물로 지정이 되고나서, 목재는 대부분 썩어서 버려졌지만 남아있는 원래 벽돌 등으로 현재의 집을 새로 지었던 것이다. 건너편 잘 차려진 식당의 벽에 당시 집주인 부부의 초상화가 좌우로 걸려있는데, 모든 군인들이 떠나고 난 후에 윌머 맥클린이 "The war began in my front yard and ended in my front parlor."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말로 MBC 방송의 에 나와도 될만한 기막힌 우연이 아닐까? ㅎㅎ 출구를 통해 뒷뜰로 나가면 부엌과 당시 이 집의 노예들이 살았던 숙소를 추가로 구경할 수 있다. 부엌의 모습도 당시와 비슷하게 재연을 해놓았고, 내부 다른 쪽에서는 당시 남부 노예들의 상황과 함께 남북전쟁이 끝나고 노예해방 소식이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었다. 하우스가 아니라 슬레이브쿼터스(Slave Quarters)로 불린 숙소의 내부 모습이, 좀 전의 본채 침실과 많이 비교가 되었다. 여기서 왕복 3시간이나 더 운전을 해야하기 때문에 원래 계획에는 없었던, 시리즈 전편에 소개했던 노예 출신의 흑인 교육자를 기리는 준국립공원을 방문해보기로 결정을 했기 때문에 서둘러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중심가 건너편에 1850년대 지어진 상태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사진의 Meeks Store 및 오른편 나무 뒤로 살짝 보이는 남군 병사의 가석방(parole) 증서를 급히 인쇄했었다는 Clover Hill Tavern 등은 구경할 수 없었다. 본 여행기의 제목에 쓴 것처럼 애퍼매톡스 카운티의 환영간판에 "Where Our Nation Reunited"라 써진 것을 봤었는데, 이렇게 4년 동안 전쟁을 했던 남북도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않고' 다시 하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의 미국은 서로 총질만 안한다 뿐이지 더 심하게 둘로 다시 갈라졌다는 느낌이 든다... 그나저나 이렇게 남북전쟁이 끝난 곳은 다녀왔는데,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시작된 곳은 언제쯤 직접 가볼 수 있을까?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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