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주부의 미국 여행과 생활 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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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난도어 국립공원의 로즈리버 폭포(Rose River Falls) 하이킹과 스카이랜드 리조트(Skyland Resort)
모처럼 아내와 쉬는 날이 겹쳤던 지난 금요일에, 7월에 구입한 연간회원권의 본전을 뽑을 요량으로, 집에서 2시간 걸리는 쉐난도어 국립공원(Shenandoah National Park)으로 하이킹을 다녀왔다. 블로그에 차례로 소개를 해온 것처럼 집 주변으로 '넓은 의미의 국립 공원'들이 많이 있지만,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3시간 정도 거리 안에서 입장료를 받는 곳은 이 내셔널파크 및 우리 동네의 그레이트폴스 공원(Great Falls Park), 그리고 아직 블로그에 등장하지 않은 1시간 거리의 다른 한 곳을 더해 딱 3개 뿐인 듯 하다. 그래서 셰넌도아 입구의 위에 걸려있는 요금표 사진을 보여드리는데, 연간회원권인 'Interagency Annual' 패스의 가격은 20년 가까이 80불 그대로인게 참 신기하다. 그 사이에 여기 및 그랜드캐년과 요세미티 등등의 메이저 내셔널파크의 차량당 입장료는 20불에서 30불로 50%나 인상되었는데 말이다. 공원을 종단하는 스카이라인 드라이브(Skyline Drive)를 남쪽으로 20분 정도 더 달려서 피셔갭 전망대(Fishers Gap Overlook)에 주차하고, 도로를 건너 하이킹을 시작했는데, 씩씩하게 앞서 걸어가던 사모님이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왼쪽의 좁은 오솔길로 좌회전 하세용~" 비지터센터가 있는 빅메도우(Big Meadows) 지역의 트레일맵에서, 우리 목적지인 로즈리버폴스(Rose River Falls)가 우측 상단에 보인다. 산비탈을 지그재그로 내려가 폭포를 구경한 후에 루프 트레일을 따라 소방도로(fire road)로 돌아오는 코스가 일반적이지만, 우리는 그냥 폭포만 보고 내려갔던 길로 다시 올라오기로 했다. (국립공원 전체 지도와 소개 및 지도 중앙에 보이는 Dark Hollow Falls 모습 등은 여기를 클릭해서 3년전의 첫번째 쉐난도어 여행기를 보시면 됨) 내리막 길을 30분 정도 걸어서 '장미 강'을 만났는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장미(rose)는 보이지 않았다...ㅎㅎ 계곡을 따라 내려갈수록 물소리가 점점 더 커지다가 선녀탕같은 웅덩이가 먼저 나오고, 쭈그려 앉은 '나무꾼'의 오른편 절벽으로 물이 떨어지는 것이... 공식적으로는 낙차가 67피트(20 m)인 로즈리버 폭포(Rose River Falls)로 지난 주까지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수량이 많아 아주 볼만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런데 아무리 잘 쳐줘도 바닥에서 저 꼭대기까지는 10미터가 겨우 넘을 듯 해던 것으로 봐서, 아마도 위쪽의 선녀탕으로 흘러드는 급류까지 포함해서 하나의 폭포로 그 높이를 계산한 것으로 생각된다. 둘이 함께 하이킹을 목적으로 외출을 한게 참 오래간만이라는 생각을 하며, 커플셀카 하나 찍어놓고 나중에 인터넷이 되는 곳에서 딸에게 카톡으로 보내줬다. (미국은 산속에서는 일반 전화기 인터넷이 거의 안 됨) 요즘 당근을 듬뿍 넣은 김밥을 자주 만들어 먹고 남은 것은 냉동실에 얼려 두는데, 아침에 두 줄을 해동해 계란을 묻혀 구워와서는 폭포수를 감상하며 간단한 점심으로 맛있게 먹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우리가 일어날 때가 되어서야 솔로하이커 한 명이 폭포 중간까지 내려와서 모델이 되어 주었다. 앞서 지도와 함께 설명했듯이 우리는 내려온 길로 다시 올라가서 주차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는데, 오르막 중간에 계곡물에 손을 담그며 좀 쉬었다 가기로 했다. 물가에 앉아있는 우리쪽이 등산로라고 착각을 했는지, 남성 한 분이 일행과 떨어져 이리로 오더니, 계곡에 걸쳐진 통나무 위를 조심스레 걷는 듯 하다가... 갑자기 이렇게 나무를 부둥켜 안고서는 물에 손이 닿는지 열심히 뻗으시는 것이 아닌가! ㅎㅎ 이렇게 2시간의 폭포 구경 하이킹을 잘 마치고는 미리 점찍어 둔 시원한 디저트를 먹기 위해서 10분 정도 북쪽에 있는 공원내 스카이랜드 리조트(Skyland Resort)로 향했다. 스카이랜드는 이름처럼 공원 안에서 가장 높은 해발 1,130미터 높이의 고원지대에, 쉐난도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한참 전인 19세기말부터 숙소와 식당 등의 시설들이 있는 휴양지로 인기있던 곳으로, 3년전 대륙횡단 이사의 마지막 날에 올랐던 스토니맨(Stony Man) 바위산이 근처에 있어서 당시에는 Stony Man Camp로 불렸단다. 외부 보수공사 중인 건물에 있는 Pollock Dining Room 레스토랑의 창가에 자리를 잡고, 이 식당의 시그니쳐 메뉴라는 마일하이 블랙베리 아이스크림 파이(Mile-High Blackberry Ice Cream Pie)를 주문했지만... 마침 재료가 다 떨어졌단다. 흑흑~ 그래서 그냥 시원한 커피만 하나 사서 야외 발코니에 앉아서 마시고는 오래간만의 쉐난도어 국립공원 방문을 마치고 하산을 했다. 지난 주에 집으로 배달된 아래 잡지의 기사를 통해 알게 된 그 디저트는 다음에 와서 꼭 먹어보기로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미동부 AAA 회원지 8-10월호는 내셔널파크 특집이었는데, 표지를 장식한 할머니와 손자는 현재 미국의 63개 국립공원을 모두 방문했단다. 특히 할머니 Joy는 85세에 손자와 캠핑을 한 그레이트스모키(Great Smoky)를 시작으로 작년 5월에 아메리칸사모아(American Samoa)를 마지막 63번째로 방문했을 때가 93세로, 가장 많은 나이에 미국의 63개 내셔널파크를 모두 방문한 기록을 세웠단다. 여기를 클릭하면 그들이 최고로 꼽은 10곳을 보실 수 있는데, 지금까지 43개를 방문한 위기주부는 신기하게 그 리스트의 1위와 2위를 아직 가보지 못했다. 여러 재미있는 국립공원 특집기사들 중에서, 내셔널파크 안에서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메뉴들을 소개한 디저트 항목에 쉐난도어 국립공원에서 파는 위 사진의 마일하이 블랙베리 아이스크림 파이(Mile-High Blackberry Ice Cream Pie)가 소개되어서 맛을 보려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특집기사에서 라고 미국 내셔널파크에 관한 지식을 테스트하는 10개의 질문이 있어서, 아래에 간단히 번역해서 남겨보니까, 몇 개나 정답을 아시는지 각자 확인해보기 바란다. (아래에서 '국립공원'은 좁은 의미로 63개의 National Park를 말함) 1. 가장 최근에 지정된 국립공원은? 2.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딴 유일한 국립공원은? 3. 국립공원이 가장 많은 주는? 4. Parade of Elephants와 Eye of the Whale의 바위를 볼 수 있는 국립공원은? 5. 미국의 가장 깊은 호수가 있는 국립공원은? 6. 세계에서 유일하게 Crocodile과 Alligator가 함께 살고 있는 국립공원은? 7. 방문객이 가장 많은 국립공원은? 8. National Park Service를 만든 법안에 서명한 대통령은? 9. 역사적인 루트66 도로 일부를 포함하는 유일한 국립공원은? 10. 적도 남쪽에 있는 유일한 미국의 국립공원은?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의 연구소와 자택을 둘러볼 수 있는 뉴저지 토머스에디슨(Thomas Edison) 국립역사공원
예전에 작성했던 미동부의 유료도로를 설명하는 포스팅에서 뉴저지(New Jersey) 주의 고속도로는 한국처럼 진출입 구간별로 이용요금을 징수해서 한국 스타일의 휴게소(service area)도 잘 만들어져 있지만, 차이점은 휴게소의 이름이 지역명이 아니라 유명한 인물들의 이름을 사용한다고 알려드렸었다. 그 중에 맨하탄에서 남쪽으로 95번 고속도로를 한 시간 못미쳐 달리면 나오는 휴게소의 정문 유리에는, 작년 초에 위기주부가 직접 찍어 놓았던 아래의 사진처럼 유명한 글귀가 적혀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여기 토머스에디슨 휴게소 부근의 멘로파크(Menro Park) 지역에 있던 그의 첫번째 연구소에서, 수 많은 발명품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전구와 축음기 등이 처음 만들어졌으며, 그 지역을 포함하는 인구 10만명 정도의 타운쉽(township)은 1954년에 도시명을 에디슨(Edison)으로 변경을 해서 그를 기리고 있다. 1887년에 40세의 에디슨은 뉴욕에 더 가까운 웨스트오렌지(West Orange) 마을로 자신의 발명품들을 대량 생산하는 공장과 연구소를 새로 지어서 이전해 여생을 거기서 보내게 된다. 그 웨스트오렌지 연구소의 이 외관 모습은 작년 봄에 보스턴을 다녀왔던 여행기 마지막에 똑같은 구도로 보여드린 적이 있는데, 그 때는 월요일이라 문을 닫아서 내부를 구경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이번 1박2일 뉴욕여행의 둘쨋날 일요일 오전에 꼭 여기를 다시 방문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여기 연구소와 인근의 그의 저택은 1950년대부터 국립공원청이 각각 관리하다가 1962년에 국립사적지로 통합 지정이 되었고, 2009년에 토머스에디슨 국립역사공원(Thomas Edison National Historical Park)으로 격상이 되었다. 입구를 지나서 첫번째 나오는 옛날 실험실 건물 하나를 개조한 비지터센터로 들어가는 아내의 모습으로, 높은 급수탑이 하나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보인다. 내부로 들어가기 전에 도로변에 있던 안내판의 사진을 먼저 보여드리며 설명하면, 1928년에 찍은 항공사진의 가운데 위쪽에 그 급수탑이 작게 보이는데, 그 왼편으로 모여있는 까만 지붕의 나지막한 벽돌 건물들이 지금 남아있는 연구소이다. 나머지 대부분을 차지하는 하얀색 6층의 콘크리트 건물들이 모두 축음기와 영사기 및 다른 제품들을 만들었던 공장이지만, 작은 한 동을 제외하고는 1970년대까지 모두 철거되었단다. 이 거대한 산업단지 전체가 에디슨의 회사였으며 일하는 직원의 수가 1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미동부에서는 드물게 이 국립역사공원은 입장료가 있어서, 그 동안 계속 미뤄왔던 위기주부의 13번째 연간회원권(Interagency Annual Pass)을 여기서 구입을 했는데, 처음으로 자연의 '내셔널파크(National Park)'가 아닌 인공의 역사공원에서 패스를 산 것이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에디슨 저택의 내부투어에 혹시 오늘 빈자리가 있는지 레인저에게 물어보았지만 모두 꽉 찼다고... "처음부터 여기 꼭 방문할 계획이었다면서, 왜 투어 예약은 까먹은 걸까?" 안쪽에서 안내영화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사모님께서 이 때까지는 별로 흥미가 없는 듯 해서 조금 보다가 그냥 일어섰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서 도로변에서 보이던 3층 주연구소(Main Laboratory) 건물의 허름한 입구로 특별한 기대없이 들어섰는데... 꼭대기까지 탁 트인 공간 전체를 에디슨의 많은 사진과 발명품들로 가득 채워놓은 이 홀에 들어서며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특히 고풍스런 실내와 잘 어울리던 많은 조명에 눈길이 갔는데, 에디슨하면 전구가 제일 먼저 떠오르기에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저 조명들이 그의 탄소 필라멘트 전구가 아니라 최신 LED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겠지만 말이다.^^ 벽난로 위에는 심각한 표정으로 축음기의 소리를 듣고 있는 에디슨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그 앞 책상에는 골동품 전구도 하나 놓여있었다. 홀을 둘러싼 2층에는 설계실 등의 작은 방들이 많이 있고, 각각마다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잘 설명이 되어 있었다. '입장불가(No Admittance)'라 씌여진 것은 옛날 표지판이니, 이 쪽으로 셀프투어를 계속하라는 안내에 따라 넓은 작업공간으로 나가니까... 전구를 들고 서있는 에디슨을 만나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해도 우리와 떨어져서 뻘쭘하게 계속 서있는 사람은 바로 에디슨의 경쟁자였던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이다. 그런데 그가 양손에 들고 쳐다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혹시 아시는 분...? 아래 1층에는 대형 가공선반 등의 중장비들이 가득했는데, 19세기말부터 이러한 정밀 기계들로 산업 제품들을 개발하고 양산했다는 사실이 정말 대단하다. 마지막에 소개할 링크에도 에디슨의 최대 업적은 몇몇 발명품이 아니라, 세계 최초의 민간연구소를 설립하고 잘 운영해서 현대 기업의 연구개발 과정의 기틀을 닦은 것이라고 한다. 다시 3층으로 올라오면 중앙 통로를 따라서 유리벽 안에 '발명왕'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에디슨은 평생에 적게는 1천개에서 많게는 2천개 이상의 발명품을 만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단다. 2년전에 DC의 스미소니언 국립 미국사박물관을 방문했을 때도 에디슨의 전구들이 별도의 전시실에 굉장히 많이 전시되어 있어서 놀랬던 기억이 있는데, 단순히 상용가능한 전구를 발명한 것에 그치지 않고, 전기 사용을 위한 발전기와 송전선 등의 전체 시스템을 개발해서 전기의 시대를 연 사람이다. 에디슨 회사의 로고가 박힌 초기 원통형 축음기들도 종류별로 많이 전시되어 있고, 작은 축음기가 내장된 '말하는 인형(talking doll)'의 실물도 있었다. 처음 알게된 사실로 에디슨이 탄광업과 시멘트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오하이오 주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던 그는 정규교육도 거의 받지 못했지만, 엄청난 노력과 열정으로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라 할 수 있는데, 그가 설립했던 전기 회사가 지금의 세계적인 대기업인 GE, 제너럴일렉트릭(General Electric)의 전신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3층 끝에는 뮤직룸이 있어서 에디슨이 자신의 축음기로 녹음을 했던 피아노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 또 영사기 등도 발명을 해서 전세계 최초의 영화 스튜디로로 사용된 암실인 '블랙마리아(Black Maria)'가 비지터센터 뒤쪽에 남아 있으며, 결과적으로 음반과 영상의 대중예술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한 동시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 전구를 들고 서있는 에디슨의 동상으로 왼편에 검게 보이는 것이 영사기를 개발하고 테스트한 블랙마리아 건물이다. 이 외에도 별도로 지어진 단층 건물인 화학 실험실과 금속 실험실 등을 잠깐씩 둘러보고는, 가까이에 있는 그가 살던 집을 구경하러 자동차로 이동했다. 방이 29개나 되는 대저택인 에디슨의 집은 '글레몬트(Glenmont)'라는 이름으로 불렸단다. 에디슨은 첫번째 부인과 사별하고 2년 후에 18살 연하의 여성과 재혼하면서 이리로 이사와서 죽을 때까지 이 집에서 함께 살았다. 정문 옆으로는 국립사적지로 지정 당시에 붙혔던 현판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내부투어에서 사진촬영은 금지인 모양이다. 집을 한바퀴 돌아서 뒷마당에서 다시 바라본 모습이다. 내부를 구경할 수도 없지만,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 온 이유는... 뒷뜰에 만들어진 그의 묘지를 참배하기 위해서이다. 토머스 에디슨은 1931년에 84세로 사망했는데, 그의 장례식이 있던 날 저녁에는 미국의 모든 집이 1분 동안 전깃불을 끄는 것으로 그를 추모했다고 하며, 그의 사후에 계속 이 집에 살았던 아내도 1947년에 옆에 함께 묻혔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익히 들어왔던 '발명왕 에디슨'의 여러 재미있는 이야기를 본 포스팅을 쓰면서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관심이 있으신 분은 위기주부가 참고한 나무위키의 내용을 클릭해서 직접 읽어보시기 바란다. 그 글의 기타 항목을 보면 '세계 최대의 에디슨 박물관'이 한국 강릉에 있다고 하지만 이 곳과 비교해서 소장품의 수는 적은 듯 하고, "필라델피아의 한 휴게소 이름이 토머스 에디슨이다."라 씌인 것은 명백한 오류이므로 혹시 나무위키 수정권한이 있으신 분이 고쳐주시면 좋겠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의 연구소와 자택을 둘러볼 수 있는 뉴저지 토머스에디슨(Thomas Edison) 국립역사공원
예전에 작성했던 미동부의 유료도로를 설명하는 포스팅에서 뉴저지(New Jersey) 주의 고속도로는 한국처럼 진출입 구간별로 이용요금을 징수해서 한국 스타일의 휴게소(service area)도 잘 만들어져 있지만, 차이점은 휴게소의 이름이 지역명이 아니라 유명한 인물들의 이름을 사용한다고 알려드렸었다. 그 중에 맨하탄에서 남쪽으로 95번 고속도로를 한 시간 못미쳐 달리면 나오는 휴게소의 정문 유리에는, 작년 초에 위기주부가 직접 찍어 놓았던 아래의 사진처럼 유명한 글귀가 적혀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여기 토머스에디슨 휴게소 부근의 멘로파크(Menro Park) 지역에 있던 그의 첫번째 연구소에서, 수 많은 발명품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전구와 축음기 등이 처음 만들어졌으며, 그 지역을 포함하는 인구 10만명 정도의 타운쉽(township)은 1954년에 도시명을 에디슨(Edison)으로 변경을 해서 그를 기리고 있다. 1887년에 40세의 에디슨은 뉴욕에 더 가까운 웨스트오렌지(West Orange) 마을로 자신의 발명품들을 대량 생산하는 공장과 연구소를 새로 지어서 이전해 여생을 거기서 보내게 된다. 그 웨스트오렌지 연구소의 이 외관 모습은 작년 봄에 보스턴을 다녀왔던 여행기 마지막에 똑같은 구도로 보여드린 적이 있는데, 그 때는 월요일이라 문을 닫아서 내부를 구경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이번 1박2일 뉴욕여행의 둘쨋날 일요일 오전에 꼭 여기를 다시 방문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여기 연구소와 인근의 그의 저택은 1950년대부터 국립공원청이 각각 관리하다가 1962년에 국립사적지로 통합 지정이 되었고, 2009년에 토머스에디슨 국립역사공원(Thomas Edison National Historical Park)으로 격상이 되었다. 입구를 지나서 첫번째 나오는 옛날 실험실 건물 하나를 개조한 비지터센터로 들어가는 아내의 모습으로, 높은 급수탑이 하나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보인다. 내부로 들어가기 전에 도로변에 있던 안내판의 사진을 먼저 보여드리며 설명하면, 1928년에 찍은 항공사진의 가운데 위쪽에 그 급수탑이 작게 보이는데, 그 왼편으로 모여있는 까만 지붕의 나지막한 벽돌 건물들이 지금 남아있는 연구소이다. 나머지 대부분을 차지하는 하얀색 6층의 콘크리트 건물들이 모두 축음기와 영사기 및 다른 제품들을 만들었던 공장이지만, 작은 한 동을 제외하고는 1970년대까지 모두 철거되었단다. 이 거대한 산업단지 전체가 에디슨의 회사였으며 일하는 직원의 수가 1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미동부에서는 드물게 이 국립역사공원은 입장료가 있어서, 그 동안 계속 미뤄왔던 위기주부의 13번째 연간회원권(Interagency Annual Pass)을 여기서 구입을 했는데, 처음으로 자연의 '내셔널파크(National Park)'가 아닌 인공의 역사공원에서 패스를 산 것이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에디슨 저택의 내부투어에 혹시 오늘 빈자리가 있는지 레인저에게 물어보았지만 모두 꽉 찼다고... "처음부터 여기 꼭 방문할 계획이었다면서, 왜 투어 예약은 까먹은 걸까?" 안쪽에서 안내영화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사모님께서 이 때까지는 별로 흥미가 없는 듯 해서 조금 보다가 그냥 일어섰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서 도로변에서 보이던 3층 주연구소(Main Laboratory) 건물의 허름한 입구로 특별한 기대없이 들어섰는데... 꼭대기까지 탁 트인 공간 전체를 에디슨의 많은 사진과 발명품들로 가득 채워놓은 이 홀에 들어서며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특히 고풍스런 실내와 잘 어울리던 많은 조명에 눈길이 갔는데, 에디슨하면 전구가 제일 먼저 떠오르기에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저 조명들이 그의 탄소 필라멘트 전구가 아니라 최신 LED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겠지만 말이다.^^ 벽난로 위에는 심각한 표정으로 축음기의 소리를 듣고 있는 에디슨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그 앞 책상에는 골동품 전구도 하나 놓여있었다. 홀을 둘러싼 2층에는 설계실 등의 작은 방들이 많이 있고, 각각마다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잘 설명이 되어 있었다. '입장불가(No Admittance)'라 씌여진 것은 옛날 표지판이니, 이 쪽으로 셀프투어를 계속하라는 안내에 따라 넓은 작업공간으로 나가니까... 전구를 들고 서있는 에디슨을 만나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해도 우리와 떨어져서 뻘쭘하게 계속 서있는 사람은 바로 에디슨의 경쟁자였던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이다. 그런데 그가 양손에 들고 쳐다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혹시 아시는 분...? 아래 1층에는 대형 가공선반 등의 중장비들이 가득했는데, 19세기말부터 이러한 정밀 기계들로 산업 제품들을 개발하고 양산했다는 사실이 정말 대단하다. 마지막에 소개할 링크에도 에디슨의 최대 업적은 몇몇 발명품이 아니라, 세계 최초의 민간연구소를 설립하고 잘 운영해서 현대 기업의 연구개발 과정의 기틀을 닦은 것이라고 한다. 다시 3층으로 올라오면 중앙 통로를 따라서 유리벽 안에 '발명왕'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에디슨은 평생에 적게는 1천개에서 많게는 2천개 이상의 발명품을 만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단다. 2년전에 DC의 스미소니언 국립 미국사박물관을 방문했을 때도 에디슨의 전구들이 별도의 전시실에 굉장히 많이 전시되어 있어서 놀랬던 기억이 있는데, 단순히 상용가능한 전구를 발명한 것에 그치지 않고, 전기 사용을 위한 발전기와 송전선 등의 전체 시스템을 개발해서 전기의 시대를 연 사람이다. 에디슨 회사의 로고가 박힌 초기 원통형 축음기들도 종류별로 많이 전시되어 있고, 작은 축음기가 내장된 '말하는 인형(talking doll)'의 실물도 있었다. 처음 알게된 사실로 에디슨이 탄광업과 시멘트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오하이오 주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던 그는 정규교육도 거의 받지 못했지만, 엄청난 노력과 열정으로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라 할 수 있는데, 그가 설립했던 전기 회사가 지금의 세계적인 대기업인 GE, 제너럴일렉트릭(General Electric)의 전신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3층 끝에는 뮤직룸이 있어서 에디슨이 자신의 축음기로 녹음을 했던 피아노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 또 영사기 등도 발명을 해서 전세계 최초의 영화 스튜디로로 사용된 암실인 '블랙마리아(Black Maria)'가 비지터센터 뒤쪽에 남아 있으며, 결과적으로 음반과 영상의 대중예술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한 동시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 전구를 들고 서있는 에디슨의 동상으로 왼편에 검게 보이는 것이 영사기를 개발하고 테스트한 블랙마리아 건물이다. 이 외에도 별도로 지어진 단층 건물인 화학 실험실과 금속 실험실 등을 잠깐씩 둘러보고는, 가까이에 있는 그가 살던 집을 구경하러 자동차로 이동했다. 방이 29개나 되는 대저택인 에디슨의 집은 '글레몬트(Glenmont)'라는 이름으로 불렸단다. 에디슨은 첫번째 부인과 사별하고 2년 후에 18살 연하의 여성과 재혼하면서 이리로 이사와서 죽을 때까지 이 집에서 함께 살았다. 정문 옆으로는 국립사적지로 지정 당시에 붙혔던 현판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내부투어에서 사진촬영은 금지인 모양이다. 집을 한바퀴 돌아서 뒷마당에서 다시 바라본 모습이다. 내부를 구경할 수도 없지만,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 온 이유는... 뒷뜰에 만들어진 그의 묘지를 참배하기 위해서이다. 토머스 에디슨은 1931년에 84세로 사망했는데, 그의 장례식이 있던 날 저녁에는 미국의 모든 집이 1분 동안 전깃불을 끄는 것으로 그를 추모했다고 하며, 그의 사후에 계속 이 집에 살았던 아내도 1947년에 옆에 함께 묻혔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익히 들어왔던 '발명왕 에디슨'의 여러 재미있는 이야기를 본 포스팅을 쓰면서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관심이 있으신 분은 위기주부가 참고한 나무위키의 내용을 클릭해서 직접 읽어보시기 바란다. 그 글의 기타 항목을 보면 '세계 최대의 에디슨 박물관'이 한국 강릉에 있다고 하지만 이 곳과 비교해서 소장품의 수는 적은 듯 하고, "필라델피아의 한 휴게소 이름이 토머스 에디슨이다."라 씌인 것은 명백한 오류이므로 혹시 나무위키 수정권한이 있으신 분이 고쳐주시면 좋겠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콜게이트 시계(Colgate Clock)와 여러 기념물이 있는 뉴저지 저지시티(Jersey City)의 허드슨 강변 산책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주의 사이에 있는 워싱턴DC를 중심으로 하는 광역도시권을 여기 사람들이 'DMV(D.C.-Maryland-Virginia)'라 부르는 것을, 미동부로 이사를 온 직후의 아랫동네 나들이 포스팅에서 지도와 함께 설명한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뉴욕 주가 대서양과 접하는 남쪽 끝인 뉴욕시(New York City)도 좌우로 인접한 다른 주들인 뉴저지와 코네티컷의 일부를 광역도시권에 포함하는데, 그래서 아래에 지도로 보여드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지역(New York metropolitan area)은 3개의 주가 모여있다고 보통 '트라이 스테이트(Tri-State)'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져 있다. 가운데 뉴욕시를 중심으로 차로 2시간 이내 거리의 3개 주 카운티들이 거기에 포함되는데, 색칠된 지역의 총 인구는 2천만명 이상으로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권이다. 뜬금없는 지리 공부로 아침산책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강 건너 맨하탄을 바라보며 걸은 땅은 뉴욕이 아니라 뉴저지(New Jersey) 주에 속하기는 하지만, 상기와 같은 이유로 블로그의 '다른 도시관광기>뉴욕' 카테고리에 넣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서이다.^^ 늦잠꾸러기 아내가 깰까봐 조용히 방을 나와서 호텔 밖으로 나오니, 제일 먼저 맨하탄의 마천루를 배경으로 전날 밤 포스팅의 마지막 사진으로 보여드렸던 동상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카틴 기념물(Katyn Memorial)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소련이 폴란드의 군장교와 지식인들을 수용소에 가둔 후에, 소련에 비협조적인 22,000명 이상을 1940년에 무참히 학살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1991년에 세워졌단다. 기단의 뒷면에는 1939년 소련이 점령한 후부터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된 폴란드인들의 슬픈 역사도 기록되어 있다. 문제는 여기가 저지시티(Jersey City)의 가장 중심가인 익스체인지 플레이스(Exchange Place) 공원의 한가운데라는 것인데, 동상이 좀 끔찍한 형상이고 미국과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학살을 추모하는 것이라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자는 주장이 2018년에 있었으나, 폴란드 대통령까지 일부러 방문하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현재의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제 허드슨 강변을 따라 남쪽으로 걸어보는데, 지역출신 미술가들의 여러 조각 작품이 산책로를 따라 놓여 있었다. 2018년까지는 뉴저지 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고, 지금도 2위를 기록하고 있는 238미터(42층)의 골드만삭스 타워(Goldman Sachs Tower)를 배경으로, 한 가족이 보고있는 까만 석판과 구부러진 녹슨 철근 및 하얀 헬멧을 쓰고 난간에 걸터앉은 인물의 조각상이 보인다. 서류가방과 헬멧 및 그 옆에 놓여진 소방호스 등이 어울리지 않고, 성조기와 다른 소품들까지 섞여 있어서, 어디까지가 최초 작품의 모습인지 알기가 어렵다. 키스하는 수병과 치마가 날리는 마릴린 먼로의 동상을 거대하게 만든 것으로 유명한 조각가 Seward Johnson의 로워맨하탄 벤치에 앉아 서류를 재확인하는 비지니스맨을 조각한 라는 작품이 9/11테러 직후 폐허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살아남아서, 사람들의 임시 추모물(Makeshift Memorial)이 되었던 모습을 작가가 2004년에 재현해놓은 것이란다. (원본 작품은 수리 후 맨하탄 추모공원에 원래 모습으로 다시 설치가 되었음)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빌딩의 녹슨 철골이 놓여있는데, 저렇게 두꺼운 H빔이 어떻게 휘어지고 부러질 수 있었는지... 그리고 사고 1년 후에 만들어진 까만 석벽의 앞면에는 여기서 바라보이던 쌍둥이 빌딩의 모습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당시 사망한 저지시티 주민 38명의 이름이 적혀있단다. 바로 근처에 작년 초 겨울에 우리 가족이 배를 타고 건너편 맨하탄으로 갔었던 파울러스훅 선착장(Paulus Hook Pier)이 나오고, 좀 더 걸어가면 오늘의 주인공이 등장을 해주신다~ 그것은 바로 커다란 콜게이트 시계(Colgate Clock)로 우리집에서 사용하는 바로 그 치약의 이름이 맞다. 일단 수로 건너편 제일 왼쪽에 보이는 큰 건물은 옛날 기차역인데, 여기를 클릭하면 13년전에 우리 가족이 저기서 페리를 타고 엘리스 섬(Ellis Island)의 이민 박물관을 구경했던 여행기를 보실 수 있다. 또 건물 조금 오른쪽을 자세히 보시면 횃불을 들고 서있는 녹색 자유의 여신상 윗부분도 살짝 보인다. 조금 전 지나왔던 골드만삭스 빌딩이 있던 자리에 생활용품 회사인 콜게이트-팜올리브(Colgate-Palmolive)의 공장단지가 있었는데, 그 중 본사 건물 옥상에 1906년에 최초로 커다란 시계가 만들어지고, 1924년에 지금의 시계로 바뀌어서 광고판 역할을 했단다. 그러나 1980년대에 재개발이 되면서 건물은 모두 철거되고 시계는 공터에 그냥 보관이 되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 다시 작동 가능하도록 수리가 되었고 2013년에 LED 조명 등으로 완전히 업그레이드를 해서 현재의 위치에 설치가 되었단다. 지름이 50피트(15 m)로 제작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계였고, 지금도 전세계에서 7번째로 크다고 한다. 테두리가 팔각형인 이유도 재미있는데, 시계가 만들어질 당시에 콜게이트 회사의 가장 인기상품이 팔각형의 빨랫비누인 '옥타곤'이었기 때문이란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철골 지지대로 받혀놓은 뒷면 모습으로, 왠지 시계가 멈추면 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건전지를 바꿔줘야 할 듯한 느낌이다. ㅎㅎ 다음 볼거리를 찾아서 보드워크를 따라 걸어가는데, 일요일 아침에 산책을 나온 주민들이 좀 있었다. 여기 보이는 건물들은 대부분이 소위 '맨해튼 뷰'를 자랑하는 고가의 뉴저지 콘도와 아파트들이다. 이리로 걸어올 때 왼편으로 보이던 녹지는 리버티 주립공원(Liberty State Park)의 일부로 관리되는데, 먼저 오른쪽 도로의 끝에 있는 다른 기념물을 찾아간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허드슨 카운티(Hudson County)의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물은 2002년에 이 자리에 만들어졌는데, 이 지역 출신으로 한국전에서 사망한 126명과 다른 많은 부상자들을 기리는 공간이다. 지난 3월에도 여기처럼 지자체에서 만든 집 근처의 작은 한국전 기념관을 짧게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이러한 장소들을 방문하면 참 고마운 느낌이 들어서 짧게나마 감사의 시간을 혼자 가진다. 동상을 둘러싼 까만 반원의 뒤쪽 절반은 전쟁 당시의 옛날 모습을 새겨 놓았고, 나머지 앞쪽 절반은 발전한 현재의 한국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사진에는 고향 부산의 해운대 누리마루과 광안대교 및 울산의 자동차 공장이 보이고, 맞은편에는 서울 명동과 남산의 모습 등이 있었다.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많았던 주립공원의 끝에서, 거친 강가의 바위들 너머로 보이는 맨하탄의 풍경도 이채로웠다. 그 사이에 해가 더 높이 떠올랐고 이제 호텔로 돌아가야 하는데, 지도를 보니까 시내를 관통해서 지나가면 다른 볼거리가 더 있는 것으로 나와서 아침산책도 순환코스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미국에서 이런 오벨리스크(Obelisk)가 세워져 있으면 대부분 조지 워싱턴과 관련된 장소라고 보면 되는데, 1776년에 뉴욕시를 점령한 영국군에 맞서서 워싱턴의 대륙군이 잠시 주둔했다가 후퇴한 장소라는 설명이 있었다. 여기 파울러스훅(Paulus Hook) 요새는 1779년에 미국이 다시 빼앗는데, 당시 전투를 이끈 Henry Lee III 지휘관이 바로 남북전쟁의 로버트 E 리 장군의 아버지이다. 마지막 볼거리는 1913년에 보자르 양식으로 화려하게 건축되었다는 우체국으로, 놀랍게도 지금도 저지시티의 중앙우체국으로 계속 사용되고 있다! 당연히 가장 도심에 위치하고 건물에 지하 주차장같은 것도 없으니, 오래된 석조 건물을 빙 둘러싸고 최신의 하얀 우편 배달트럭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는 모습이 아주 흥미로웠다.^^ 그렇게 완전히 사각형 코스로 저지시티를 한바퀴 돌았던 혼자만의 아침산책을 마치고, 오른편에 지붕이 만들어진 입구가 보이는 호텔 건물로 돌아가서 아직 주무시고 있는 아내를 깨웠다. 건물 꼭대기 층에 호텔 로비와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이 있어서, 탁 트인 맨하탄 뷰를 즐기며 일요일의 늦은 아침식사를 한 후에, 한국의 어린이를 위한 전세계 위인전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유명한 사람을 기념하는 인근의 국립역사공원을 향해서 출발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콜게이트 시계(Colgate Clock)와 여러 기념물이 있는 뉴저지 저지시티(Jersey City)의 허드슨 강변 산책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주의 사이에 있는 워싱턴DC를 중심으로 하는 광역도시권을 여기 사람들이 'DMV(D.C.-Maryland-Virginia)'라 부르는 것을, 미동부로 이사를 온 직후의 아랫동네 나들이 포스팅에서 지도와 함께 설명한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뉴욕 주가 대서양과 접하는 남쪽 끝인 뉴욕시(New York City)도 좌우로 인접한 다른 주들인 뉴저지와 코네티컷의 일부를 광역도시권에 포함하는데, 그래서 아래에 지도로 보여드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지역(New York metropolitan area)은 3개의 주가 모여있다고 보통 '트라이 스테이트(Tri-State)'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져 있다. 가운데 뉴욕시를 중심으로 차로 2시간 이내 거리의 3개 주 카운티들이 거기에 포함되는데, 색칠된 지역의 총 인구는 2천만명 이상으로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권이다. 뜬금없는 지리 공부로 아침산책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강 건너 맨하탄을 바라보며 걸은 땅은 뉴욕이 아니라 뉴저지(New Jersey) 주에 속하기는 하지만, 상기와 같은 이유로 블로그의 '다른 도시관광기>뉴욕' 카테고리에 넣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서이다.^^ 늦잠꾸러기 아내가 깰까봐 조용히 방을 나와서 호텔 밖으로 나오니, 제일 먼저 맨하탄의 마천루를 배경으로 전날 밤 포스팅의 마지막 사진으로 보여드렸던 동상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카틴 기념물(Katyn Memorial)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소련이 폴란드의 군장교와 지식인들을 수용소에 가둔 후에, 소련에 비협조적인 22,000명 이상을 1940년에 무참히 학살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1991년에 세워졌단다. 기단의 뒷면에는 1939년 소련이 점령한 후부터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된 폴란드인들의 슬픈 역사도 기록되어 있다. 문제는 여기가 저지시티(Jersey City)의 가장 중심가인 익스체인지 플레이스(Exchange Place) 공원의 한가운데라는 것인데, 동상이 좀 끔찍한 형상이고 미국과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학살을 추모하는 것이라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자는 주장이 2018년에 있었으나, 폴란드 대통령까지 일부러 방문하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현재의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제 허드슨 강변을 따라 남쪽으로 걸어보는데, 지역출신 미술가들의 여러 조각 작품이 산책로를 따라 놓여 있었다. 2018년까지는 뉴저지 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고, 지금도 2위를 기록하고 있는 238미터(42층)의 골드만삭스 타워(Goldman Sachs Tower)를 배경으로, 한 가족이 보고있는 까만 석판과 구부러진 녹슨 철근 및 하얀 헬멧을 쓰고 난간에 걸터앉은 인물의 조각상이 보인다. 서류가방과 헬멧 및 그 옆에 놓여진 소방호스 등이 어울리지 않고, 성조기와 다른 소품들까지 섞여 있어서, 어디까지가 최초 작품의 모습인지 알기가 어렵다. 키스하는 수병과 치마가 날리는 마릴린 먼로의 동상을 거대하게 만든 것으로 유명한 조각가 Seward Johnson의 로워맨하탄 벤치에 앉아 서류를 재확인하는 비지니스맨을 조각한 라는 작품이 9/11테러 직후 폐허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살아남아서, 사람들의 임시 추모물(Makeshift Memorial)이 되었던 모습을 작가가 2004년에 재현해놓은 것이란다. (원본 작품은 수리 후 맨하탄 추모공원에 원래 모습으로 다시 설치가 되었음)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빌딩의 녹슨 철골이 놓여있는데, 저렇게 두꺼운 H빔이 어떻게 휘어지고 부러질 수 있었는지... 그리고 사고 1년 후에 만들어진 까만 석벽의 앞면에는 여기서 바라보이던 쌍둥이 빌딩의 모습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당시 사망한 저지시티 주민 38명의 이름이 적혀있단다. 바로 근처에 작년 초 겨울에 우리 가족이 배를 타고 건너편 맨하탄으로 갔었던 파울러스훅 선착장(Paulus Hook Pier)이 나오고, 좀 더 걸어가면 오늘의 주인공이 등장을 해주신다~ 그것은 바로 커다란 콜게이트 시계(Colgate Clock)로 우리집에서 사용하는 바로 그 치약의 이름이 맞다. 일단 수로 건너편 제일 왼쪽에 보이는 큰 건물은 옛날 기차역인데, 여기를 클릭하면 13년전에 우리 가족이 저기서 페리를 타고 엘리스 섬(Ellis Island)의 이민 박물관을 구경했던 여행기를 보실 수 있다. 또 건물 조금 오른쪽을 자세히 보시면 횃불을 들고 서있는 녹색 자유의 여신상 윗부분도 살짝 보인다. 조금 전 지나왔던 골드만삭스 빌딩이 있던 자리에 생활용품 회사인 콜게이트-팜올리브(Colgate-Palmolive)의 공장단지가 있었는데, 그 중 본사 건물 옥상에 1906년에 최초로 커다란 시계가 만들어지고, 1924년에 지금의 시계로 바뀌어서 광고판 역할을 했단다. 그러나 1980년대에 재개발이 되면서 건물은 모두 철거되고 시계는 공터에 그냥 보관이 되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 다시 작동 가능하도록 수리가 되었고 2013년에 LED 조명 등으로 완전히 업그레이드를 해서 현재의 위치에 설치가 되었단다. 지름이 50피트(15 m)로 제작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계였고, 지금도 전세계에서 7번째로 크다고 한다. 테두리가 팔각형인 이유도 재미있는데, 시계가 만들어질 당시에 콜게이트 회사의 가장 인기상품이 팔각형의 빨랫비누인 '옥타곤'이었기 때문이란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철골 지지대로 받혀놓은 뒷면 모습으로, 왠지 시계가 멈추면 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건전지를 바꿔줘야 할 듯한 느낌이다. ㅎㅎ 다음 볼거리를 찾아서 보드워크를 따라 걸어가는데, 일요일 아침에 산책을 나온 주민들이 좀 있었다. 여기 보이는 건물들은 대부분이 소위 '맨해튼 뷰'를 자랑하는 고가의 뉴저지 콘도와 아파트들이다. 이리로 걸어올 때 왼편으로 보이던 녹지는 리버티 주립공원(Liberty State Park)의 일부로 관리되는데, 먼저 오른쪽 도로의 끝에 있는 다른 기념물을 찾아간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허드슨 카운티(Hudson County)의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물은 2002년에 이 자리에 만들어졌는데, 이 지역 출신으로 한국전에서 사망한 126명과 다른 많은 부상자들을 기리는 공간이다. 지난 3월에도 여기처럼 지자체에서 만든 집 근처의 작은 한국전 기념관을 짧게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이러한 장소들을 방문하면 참 고마운 느낌이 들어서 짧게나마 감사의 시간을 혼자 가진다. 동상을 둘러싼 까만 반원의 뒤쪽 절반은 전쟁 당시의 옛날 모습을 새겨 놓았고, 나머지 앞쪽 절반은 발전한 현재의 한국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사진에는 고향 부산의 해운대 누리마루과 광안대교 및 울산의 자동차 공장이 보이고, 맞은편에는 서울 명동과 남산의 모습 등이 있었다.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많았던 주립공원의 끝에서, 거친 강가의 바위들 너머로 보이는 맨하탄의 풍경도 이채로웠다. 그 사이에 해가 더 높이 떠올랐고 이제 호텔로 돌아가야 하는데, 지도를 보니까 시내를 관통해서 지나가면 다른 볼거리가 더 있는 것으로 나와서 아침산책도 순환코스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미국에서 이런 오벨리스크(Obelisk)가 세워져 있으면 대부분 조지 워싱턴과 관련된 장소라고 보면 되는데, 1776년에 뉴욕시를 점령한 영국군에 맞서서 워싱턴의 대륙군이 잠시 주둔했다가 후퇴한 장소라는 설명이 있었다. 여기 파울러스훅(Paulus Hook) 요새는 1779년에 미국이 다시 빼앗는데, 당시 전투를 이끈 Henry Lee III 지휘관이 바로 남북전쟁의 로버트 E 리 장군의 아버지이다. 마지막 볼거리는 1913년에 보자르 양식으로 화려하게 건축되었다는 우체국으로, 놀랍게도 지금도 저지시티의 중앙우체국으로 계속 사용되고 있다! 당연히 가장 도심에 위치하고 건물에 지하 주차장같은 것도 없으니, 오래된 석조 건물을 빙 둘러싸고 최신의 하얀 우편 배달트럭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는 모습이 아주 흥미로웠다.^^ 그렇게 완전히 사각형 코스로 저지시티를 한바퀴 돌았던 혼자만의 아침산책을 마치고, 오른편에 지붕이 만들어진 입구가 보이는 호텔 건물로 돌아가서 아직 주무시고 있는 아내를 깨웠다. 건물 꼭대기 층에 호텔 로비와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이 있어서, 탁 트인 맨하탄 뷰를 즐기며 일요일의 늦은 아침식사를 한 후에, 한국의 어린이를 위한 전세계 위인전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유명한 사람을 기념하는 인근의 국립역사공원을 향해서 출발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