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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뉴욕 주 오번(Auburn)의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 생가와 교회 등의 국립역사공원과 묘지

가로가 긴 직사각형 모양의 펜실베니아 주 동쪽을 비스듬히 종단하는 81번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북쪽으로 주경계를 넘으면, 뉴욕(New York) 주의 핑거레잌스(Finger Lakes) 지역이 나온다. 뉴욕 주의 비공식적인 11개 지역 구분은 여기를 클릭해서 마지막의 지도를 보시면 되고, 그 중 손가락처럼 길쭉한 모양의 호수들이 많이 있어서 핑거레이크라 이름 붙은 지역에 대한 설명은, 작년 가을에 아내와 함께 '뉴욕주 최고의 절경'을 찾아갔던 여행기의 첫번째 세부지도를 클릭해서 보시면 된다. 올해의 유일한 '듣보잡 취미생활'로 10월말에 위기주부 혼자 다녀왔던 북부 뉴욕주 2박3일 여행에서 두번째 목적지를 찾아가는 길에, 그 핑거레이크들 중의 하나인 스캐니에틀레스 호수(Skaneateles Lake)의 선착장에 잠시 차를 세웠다. 여기서 건너편까지 동서 방향의 폭은 1.5마일인 반면에 남북으로의 길이는 16마일이나 되니까 기다란 호수가 맞다. 내륙의 고지대라서 그런지 여기 호숫가는 벌써 가을 단풍이 끝물인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잠시 여행자의 시선을 끌기엔 충분했다. 그러나 한가롭게 단풍구경을 할 여유가 없는 빡빡한 일정이라서 바로 다시 차에 올라서 옆의 다른 호수 북쪽 끝에 있는 마을을 찾아갔다. 시골길을 달리다 오번(Auburn)이란 도시 경계를 지나자마자 카운티에서 세워놓은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 이름의 안내판이 나온다. '그녀 민족의 모세(Moses of Her People)'와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 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메릴랜드 주에 있는 그녀의 출생지와 활동을 기리는 다른 국립 공원을 작년말에 방문했던 아래의 여행기를 먼저 보시면 된다. "정말로 그녀의 얼굴이 들어간 미국 20달러 지폐가 만들어져 통용되는 날이 올까?" 해리엇터브먼 국립역사공원(Harriet Tubman National Historical Park)을 검색하면 나오는 위치가 이 곳인데, 저 안쪽 주차장에 의외로 차들이 제법 많아서 놀랐던게 가장 먼저 기억이 난다. 그녀는 캐나다에서 약 10년간 도피생활을 한 후인 1859년에 미국으로 돌아와 이 동네에 정착하게 되는데, 먼저 왼편으로 보이는 하얀색 목조 건물부터 설명을 드린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녀가 다른 가난하고 나이 든 흑인과 원주민들을 위해 1896년에 땅을 사서 지었던 양로원(Home for the Aged) 건물을 1953년에 복원한 것이다. 하지만 1975년에 국가유적(National Historic Landmark)으로 지정되었다는 명패만 있을 뿐 국립공원청 로고 등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 관련 장소들을 묶어서 2017년 1월에 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된 이후에도, 양로원과 인접한 생가는 그녀로부터 기증받았던 교회에서 별도로 만든 재단에서 계속 소유 및 관리를 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연방정부 셧다운 중임에도 위기주부가 도착하기 직전에 투어가 있어서 그렇게 차들이 많았던 것이고, 투어 요금은 일인당 7달러라고 안내판에 씌여있다. 바로 남쪽에 두 여성분이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있는 벽돌집이 그녀가 1913년에 약 90세로 사망할 때까지 살았던 집으로, 시경계를 벗어나서 정확한 행정구역 상으로는 플레밍(Fleming) 마을에 속한다. 처음 부모님을 모시고 이사를 올 때는 목조주택이었지만 1880년에 화재로 전소된 후에 벽돌로 새로 지어서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란다. 해리엇 터브먼이 여기 정착할 수 있도록 집을 마련해준 사람은 이 지역 유지의 딸로 노예제 폐지론자인 Frances Adeline Seward인데, 바로 뉴욕 주지사와 상원의원을 거쳐 링컨의 국무장관으로 지명되고 나중에 알래스카를 매입한 것으로 유명한 윌리엄 H. 슈워드(William Henry Seward)의 아내이다. 참고로 재작년에 맨하탄의 매디슨스퀘어 공원에 있는 슈워드 국무장관의 동상을 보여드린 적이 있다. 다음으로 국립역사공원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곳을 보기 위해서 오번 시의 중심에 있는 포트힐 묘지(Fort Hill Cemetery)를 찾아왔다. 인적없는 넓은 공동묘지라서 그냥 2박3일 동안 2,000 km 가까이 잘 달려준 자동차 독사진 하나 찍어줬다.^^ 유명인답게 커다란 나무 아래에 성조기와 함께 넓게 자리를 잡고 있어서, 그녀가 잠든 곳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묘비에 이름이 Harriet Tubman Davis라고 적혀있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이 탈출시킨 22세 연하의 넬슨 데이비스(Nelson Davis)란 남성과 1869년에 결혼했기 때문이다. 묘비의 뒷면에는 그녀의 업적 및 생애와 함께 "잘 했어, 하나님의 종"이란 글귀가 씌여있었다~ 묘비 위에 놓여있던 작은 돌들까지 잠깐 구경하고는 다음 목적지를 찾아 다시 차로 이동하는데, 수 많은 묘비들 위로 노란 단풍이 아주 멋있어서, 잠시 창문을 내리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장소는 묘지 바로 옆의 주택가에 있는 그녀가 생전에 열심히 출석하고, 자신이 만든 양로원과 사후에 집 등을 모두 기증한 교회이다. 1891년에 지어진 톰슨 AME 시온교회(Thompson African Methodist Episcopal Zion Church)로 앞서 보여드린 양로원과 생가와는 달리, 이 건물은 연방정부가 매입해서 내외부를 완전히 수리한 후에 주중에는 국립공원청 비지터센터로 사용되고, 주일에는 신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공원 홈페이지의 대표사진이 이렇게 교회를 올려다 본 모습이라서 같은 구도로 한 번 찍어봤는데... 정말 이상한 점은 여기도 국립 역사공원임을 알리는 간판 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공원이 트럼프가 처음 4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열흘전에 오바마 행정부와 의회에서 부랴부랴 설립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 했다. 그래도 명색이 내셔널파크와 버금가는 권위의 국립역사공원 방문기니까 NPS 로고라도 하나 등장해야 할 듯 해서, 비지터센터 겸 교회 정문에 붙어있던 안내문 사진을 마지막으로 보여드리며 마친다~ 그나저나 사상최장 기록을 계속 갈아치우고 있는 이번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은 언제까지 계속되려나? 우리집에도 급여를 바로 못받고 있지만 필수인력으로 오늘도 새벽 출근한 공무원이 한 분 계시는데 말이다. ㅎㅎ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구준엽, 서희원 묘지 지키는 근황 폭우 속 묘비 지킴이 사랑의 끝은 추모였다

구준엽, 서희원 묘지 지키는 근황 폭우 속 묘비 지킴이 사랑의 끝은 추모였다

구준엽, 서희원 묘지 지키는 근황 폭우 속 서희원 묘비 지킴이 사랑의 끝은 추모였다 구준엽, 폭우 속에서도 묘비 곁을 지킨 사연 "진짜 사랑은, 끝나도 그 자리를 지킨다." 2025년 7월, 대만발 뉴스가 하나의 파문처럼 퍼져나갔습니다. 바로 구준엽이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고(故) 서희원의 묘지를 지키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단순한 추모 그 이상의 감정이 담긴 이 장면은 수많은 대만 네티즌들의 눈시울을 붉혔고, 한국 팬들의 마음마저도 울렸습니다. ‘구준엽, 폭우 속 서희원 묘비 지킴이’는 단순한 이슈가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사랑이었습니다. 결혼 2년, 이별은 너무 갑작스러웠고, 남겨진.......

구준엽, 故 서희원 유해 자택 보관 논란 묘지 선정 지연 이유는?

구준엽, 故 서희원 유해 자택 보관 논란 묘지 선정 지연 이유는?

구준엽, 故 서희원 유해 자택 보관 논란…묘지 선정 지연 이유는? 최근 대만 연예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소식이 있습니다. 가수 구준엽 씨가 지난달 세상을 떠난 아내, 대만 배우 故 서희원의 유해를 여전히 자택에 보관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데요. 일부 이웃들의 항의까지 이어지며 상황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구준엽 씨가 유해를 자택에 보관할 수밖에 없는 이유, 묘지 선정이 늦어지는 배경, 그리고 현지 반응까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 故 서희원의 유해, 왜 아직 자택에 있을까? 서희원 씨는 지난달 2일 일본 가족 여행 중 폐렴을 동반한 독감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일본에서 장례 절.......

발명왕 에디슨의 연구소와 자택을 둘러볼 수 있는 뉴저지 토머스에디슨(Thomas Edison) 국립역사공원

발명왕 에디슨의 연구소와 자택을 둘러볼 수 있는 뉴저지 토머스에디슨(Thomas Edison) 국립역사공원

예전에 작성했던 미동부의 유료도로를 설명하는 포스팅에서 뉴저지(New Jersey) 주의 고속도로는 한국처럼 진출입 구간별로 이용요금을 징수해서 한국 스타일의 휴게소(service area)도 잘 만들어져 있지만, 차이점은 휴게소의 이름이 지역명이 아니라 유명한 인물들의 이름을 사용한다고 알려드렸었다. 그 중에 맨하탄에서 남쪽으로 95번 고속도로를 한 시간 못미쳐 달리면 나오는 휴게소의 정문 유리에는, 작년 초에 위기주부가 직접 찍어 놓았던 아래의 사진처럼 유명한 글귀가 적혀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여기 토머스에디슨 휴게소 부근의 멘로파크(Menro Park) 지역에 있던 그의 첫번째 연구소에서, 수 많은 발명품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전구와 축음기 등이 처음 만들어졌으며, 그 지역을 포함하는 인구 10만명 정도의 타운쉽(township)은 1954년에 도시명을 에디슨(Edison)으로 변경을 해서 그를 기리고 있다. 1887년에 40세의 에디슨은 뉴욕에 더 가까운 웨스트오렌지(West Orange) 마을로 자신의 발명품들을 대량 생산하는 공장과 연구소를 새로 지어서 이전해 여생을 거기서 보내게 된다. 그 웨스트오렌지 연구소의 이 외관 모습은 작년 봄에 보스턴을 다녀왔던 여행기 마지막에 똑같은 구도로 보여드린 적이 있는데, 그 때는 월요일이라 문을 닫아서 내부를 구경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이번 1박2일 뉴욕여행의 둘쨋날 일요일 오전에 꼭 여기를 다시 방문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여기 연구소와 인근의 그의 저택은 1950년대부터 국립공원청이 각각 관리하다가 1962년에 국립사적지로 통합 지정이 되었고, 2009년에 토머스에디슨 국립역사공원(Thomas Edison National Historical Park)으로 격상이 되었다. 입구를 지나서 첫번째 나오는 옛날 실험실 건물 하나를 개조한 비지터센터로 들어가는 아내의 모습으로, 높은 급수탑이 하나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보인다. 내부로 들어가기 전에 도로변에 있던 안내판의 사진을 먼저 보여드리며 설명하면, 1928년에 찍은 항공사진의 가운데 위쪽에 그 급수탑이 작게 보이는데, 그 왼편으로 모여있는 까만 지붕의 나지막한 벽돌 건물들이 지금 남아있는 연구소이다. 나머지 대부분을 차지하는 하얀색 6층의 콘크리트 건물들이 모두 축음기와 영사기 및 다른 제품들을 만들었던 공장이지만, 작은 한 동을 제외하고는 1970년대까지 모두 철거되었단다. 이 거대한 산업단지 전체가 에디슨의 회사였으며 일하는 직원의 수가 1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미동부에서는 드물게 이 국립역사공원은 입장료가 있어서, 그 동안 계속 미뤄왔던 위기주부의 13번째 연간회원권(Interagency Annual Pass)을 여기서 구입을 했는데, 처음으로 자연의 '내셔널파크(National Park)'가 아닌 인공의 역사공원에서 패스를 산 것이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에디슨 저택의 내부투어에 혹시 오늘 빈자리가 있는지 레인저에게 물어보았지만 모두 꽉 찼다고... "처음부터 여기 꼭 방문할 계획이었다면서, 왜 투어 예약은 까먹은 걸까?" 안쪽에서 안내영화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사모님께서 이 때까지는 별로 흥미가 없는 듯 해서 조금 보다가 그냥 일어섰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서 도로변에서 보이던 3층 주연구소(Main Laboratory) 건물의 허름한 입구로 특별한 기대없이 들어섰는데... 꼭대기까지 탁 트인 공간 전체를 에디슨의 많은 사진과 발명품들로 가득 채워놓은 이 홀에 들어서며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특히 고풍스런 실내와 잘 어울리던 많은 조명에 눈길이 갔는데, 에디슨하면 전구가 제일 먼저 떠오르기에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저 조명들이 그의 탄소 필라멘트 전구가 아니라 최신 LED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겠지만 말이다.^^ 벽난로 위에는 심각한 표정으로 축음기의 소리를 듣고 있는 에디슨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그 앞 책상에는 골동품 전구도 하나 놓여있었다. 홀을 둘러싼 2층에는 설계실 등의 작은 방들이 많이 있고, 각각마다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잘 설명이 되어 있었다. '입장불가(No Admittance)'라 씌여진 것은 옛날 표지판이니, 이 쪽으로 셀프투어를 계속하라는 안내에 따라 넓은 작업공간으로 나가니까... 전구를 들고 서있는 에디슨을 만나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해도 우리와 떨어져서 뻘쭘하게 계속 서있는 사람은 바로 에디슨의 경쟁자였던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이다. 그런데 그가 양손에 들고 쳐다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혹시 아시는 분...? 아래 1층에는 대형 가공선반 등의 중장비들이 가득했는데, 19세기말부터 이러한 정밀 기계들로 산업 제품들을 개발하고 양산했다는 사실이 정말 대단하다. 마지막에 소개할 링크에도 에디슨의 최대 업적은 몇몇 발명품이 아니라, 세계 최초의 민간연구소를 설립하고 잘 운영해서 현대 기업의 연구개발 과정의 기틀을 닦은 것이라고 한다. 다시 3층으로 올라오면 중앙 통로를 따라서 유리벽 안에 '발명왕'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에디슨은 평생에 적게는 1천개에서 많게는 2천개 이상의 발명품을 만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단다. 2년전에 DC의 스미소니언 국립 미국사박물관을 방문했을 때도 에디슨의 전구들이 별도의 전시실에 굉장히 많이 전시되어 있어서 놀랬던 기억이 있는데, 단순히 상용가능한 전구를 발명한 것에 그치지 않고, 전기 사용을 위한 발전기와 송전선 등의 전체 시스템을 개발해서 전기의 시대를 연 사람이다. 에디슨 회사의 로고가 박힌 초기 원통형 축음기들도 종류별로 많이 전시되어 있고, 작은 축음기가 내장된 '말하는 인형(talking doll)'의 실물도 있었다. 처음 알게된 사실로 에디슨이 탄광업과 시멘트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오하이오 주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던 그는 정규교육도 거의 받지 못했지만, 엄청난 노력과 열정으로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라 할 수 있는데, 그가 설립했던 전기 회사가 지금의 세계적인 대기업인 GE, 제너럴일렉트릭(General Electric)의 전신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3층 끝에는 뮤직룸이 있어서 에디슨이 자신의 축음기로 녹음을 했던 피아노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 또 영사기 등도 발명을 해서 전세계 최초의 영화 스튜디로로 사용된 암실인 '블랙마리아(Black Maria)'가 비지터센터 뒤쪽에 남아 있으며, 결과적으로 음반과 영상의 대중예술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한 동시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 전구를 들고 서있는 에디슨의 동상으로 왼편에 검게 보이는 것이 영사기를 개발하고 테스트한 블랙마리아 건물이다. 이 외에도 별도로 지어진 단층 건물인 화학 실험실과 금속 실험실 등을 잠깐씩 둘러보고는, 가까이에 있는 그가 살던 집을 구경하러 자동차로 이동했다. 방이 29개나 되는 대저택인 에디슨의 집은 '글레몬트(Glenmont)'라는 이름으로 불렸단다. 에디슨은 첫번째 부인과 사별하고 2년 후에 18살 연하의 여성과 재혼하면서 이리로 이사와서 죽을 때까지 이 집에서 함께 살았다. 정문 옆으로는 국립사적지로 지정 당시에 붙혔던 현판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내부투어에서 사진촬영은 금지인 모양이다. 집을 한바퀴 돌아서 뒷마당에서 다시 바라본 모습이다. 내부를 구경할 수도 없지만,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 온 이유는... 뒷뜰에 만들어진 그의 묘지를 참배하기 위해서이다. 토머스 에디슨은 1931년에 84세로 사망했는데, 그의 장례식이 있던 날 저녁에는 미국의 모든 집이 1분 동안 전깃불을 끄는 것으로 그를 추모했다고 하며, 그의 사후에 계속 이 집에 살았던 아내도 1947년에 옆에 함께 묻혔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익히 들어왔던 '발명왕 에디슨'의 여러 재미있는 이야기를 본 포스팅을 쓰면서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관심이 있으신 분은 위기주부가 참고한 나무위키의 내용을 클릭해서 직접 읽어보시기 바란다. 그 글의 기타 항목을 보면 '세계 최대의 에디슨 박물관'이 한국 강릉에 있다고 하지만 이 곳과 비교해서 소장품의 수는 적은 듯 하고, "필라델피아의 한 휴게소 이름이 토머스 에디슨이다."라 씌인 것은 명백한 오류이므로 혹시 나무위키 수정권한이 있으신 분이 고쳐주시면 좋겠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