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주부의 미국 여행과 생활 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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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 있는 미국 최대의 가톨릭 성당인 Basilica of the National Shrine of the Immaculate Conception

워싱턴에 있는 미국 최대의 가톨릭 성당인 Basilica of the National Shrine of the Immaculate Conception

뜻에 충실히 길게 번역하자면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를 기리는 국가적 성소인 대성전'이라 할 수 있고, 한자를 이용해서 짧게 '무염시태 대성당(無染始胎 大聖堂)'으로 쓰기도 하는 이 곳은 미국에서 가장 큰 종교 건물로, 수도 DC에 위치해서 이름에 '내셔널'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지만 나라에서 세금으로 지은 것은 아니다. 참고로 대통령의 국장이나 추모예배, 취임식 기도회 등이 열리는 장소로 유명한 '워싱턴 국립성당(Washington National Cathedral)'과는 다른 곳인데, 그 곳은 이름과 달리 개신교인 성공회 교회이고, 여기가 로마 가톨릭 즉 천주교 미사를 드리는 성당이다. 진짜 '국립'의 수목원을 구경하고 근처 DC 시내의 유일한 코스트코 매장을 잠깐 들린 후에, 미국 가톨릭 대학교 내에 위치한 이 성당을 찾아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정확히 100 m 높이의 종탑은 워싱턴에서 두번째로 높은 건축물로, 작년에 세번째로 높은 타워에 올라갔던 여행기를 클릭해서 'Top 5'에 대한 설명을 보실 수 있다. 아랫층의 기념품 가게 등을 구경하고, 실내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와 황금빛의 본당을 처음 봤을 때 아주 놀라웠다. 이 성당은 1920년에 공사를 시작해 1959년에 1차 완공되었는데, 총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 한다. 이 중앙홀의 좌우로 수 많은 작은 예배당들이 만들어져 있어서, 먼저 오른편을 구경하며 앞쪽으로 걸어갔는데, 종교쪽은 전공(?)이 아니라서 그 중 일부만 간략한 설명과 함께 보여드린다.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Pieta) 조각상이 놓여진 작은 제단의 모습이다. 다른 예배당에는 아기 예수를 안은 모습의 조각이 또 있는데, 성모에게 봉헌된 이 대성당 안에는 이러한 성모 마리아가 등장하는 조각과 그림이 82개나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중앙돔 아래에 가장 앞쪽에 의자가 놓여진 곳까지 와서, 우리 부부도 잠깐 앉아서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고개를 들어서 바라본 돔의 안쪽에 천사에게 둘러싸여 양팔을 벌리고 있는 성모와 함께, 성자와 성령이 그려져 있어서 삼위일체(Trinity)를 상징하고, 테두리를 따라서는 여러 성인과 교황의 모습들이 새겨져 있다. 세계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모자이크 중의 하나라는 이 중앙돔 안쪽의 그림은 2017년에야 최종 완성이 되었다고 한다. 대제단에 따로 기둥과 지붕이 만들어진 제대는 교황의 자리를 상징하는데, 역대 교황들이 미국을 방문하면 빠짐없이 이 곳에서 미사를 집전하게 된다. 가장 흥미를 끈 부분은 제단의 바로 뒤쪽, 그러니까 예배석에 앉았을 때 정면으로 보였던 예수의 모습으로... 양팔을 벌려서 들고 있는 모습 및 한쪽 어깨만 걸친 붉은 의상과 후광의 불꽃에다가 무서운 표정까지 더해져서 무슨 무협지의 표지나 불화 만다라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제단을 한바퀴 돌아본 후에 건너편을 따라 다시 돌아나가면서, 곳곳에 놓여진 기도초들 중의 하나에 우리도 불을 밝히기도 했다. 많은 예배당의 그림이나 표식들이 다양성을 존중해서 만들어진 것도 인상 깊었는데, 이 제단에 놓여진 그림은 마리아와 예수의 피부색이 검게 그려져 있고, 이렇게 한자와 함께 중국풍으로 만들어진 모자이크도 있었다. 성모상은 아니지만 입구쪽 벽에는 한국의 가톨릭 성인들을 묘사한 부조도 따로 만들어져 있다고 하지만, 방문 당시에는 몰라서 찾아보지는 못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기도를 드리고 있던 예배당의 멕시코 '과달루페의 성모(Our Lady of Guadalupe)' 모자이크화이다. 그리고 본당을 나와서 종탑의 제일 아래쪽에 놓여진 성모 조각상을 마지막으로 구경했다. 종탑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계단은 막아 놓아서, 이걸로 미국 최대의 가톨릭 대성당의 내부 구경은 끝...^^ 바실리카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항공사진을 보여드리며 방문기를 마치는데, 로마시대의 고전 건축양식에 화려하고 큰 중앙돔이 더해진 로마네스크 비잔틴(Romanesque-Byzantine) 스타일의 건물이란다. 일요일에 방문하면 누구나 미사에도 참여할 수 있고, 우리처럼 평일에도 무료로 입장해서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내부를 구경할 수 있으므로, 관광지로 부담없이 둘러봐도 손색이 없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PS. 혼동하지 마시라고 서두에 언급했던 워싱턴 국립성당(Washington National Cathedral)은 예전에 차로 지나가면서 슬쩍 본 적은 있는데, 내부 구경을 하려면 15불의 입장료를 내야해서 일부러 찾아갈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이 기회에 간단한 소개와 함께 외부 사진을 가져와 보여드리고, 특히 위기주부가 흥미 있어한 내용들만 간단히 추가로 보여드린다. 1907년에 초석이 놓여져 1990년에 공식적으로 완공된 전형적인 신고딕(Neo-Gothic) 양식으로 DC에서 네번째로 높은 건축물이며 시의 북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총 6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미국에서 두번째로 큰 교회 건물이며, 수도에 위치한 특성상 미국의 문화와 역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장식과 스테인드글래스 등이 만들어진 것으로 유명하다. 아폴로 11호의 달착륙 5주년을 기념해 봉헌된 이 스테인드글래스는 '스페이스 윈도우(Space Window)'로 불리는데, 붉은 원의 가운데에 큼지막하게 박혀 있는 것은 달에서 가져온 월석(moon rock)이란다. 그리고, 1980년대에 북서쪽 탑을 건설하면서 고딕타워를 장식하는 돌출된 형상인 가고일(Gargoyle) 또는 그로테스크(Grotesque)를 그리는 어린이 대회를 열었는데, 그 결과 3위로 선정되어서 정식으로 조각된 것이 바로...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악당인 다스베이더(Darth Vader)이다! 이게 소위 너드(Nerd)들 사이에 유명해져서 교회 기념품 가게에서 작은 모형을 팔기도 하며, 홈페이지에는 다스베이더가 교회 직원으로 일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올려두기도 했다. 탑의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해서 맨눈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고 쌍안경이 필요하다지만, 이건 그냥 밖에서도 볼 수 있으므로... 스타워즈의 팬이면서 나름 그 과에 속하는 위기주부도 언제 직접 보러가자고 할지도 모르겠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워싱턴에 있는 미국 최대의 가톨릭 성당인 Basilica of the National Shrine of the Immaculate Conception

워싱턴에 있는 미국 최대의 가톨릭 성당인 Basilica of the National Shrine of the Immaculate Conception

뜻에 충실히 길게 번역하자면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를 기리는 국가적 성소인 대성전'이라 할 수 있고, 한자를 이용해서 짧게 '무염시태 대성당(無染始胎 大聖堂)'으로 쓰기도 하는 이 곳은 미국에서 가장 큰 종교 건물로, 수도 DC에 위치해서 이름에 '내셔널'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지만 나라에서 세금으로 지은 것은 아니다. 참고로 대통령의 국장이나 추모예배, 취임식 기도회 등이 열리는 장소로 유명한 '워싱턴 국립성당(Washington National Cathedral)'과는 다른 곳인데, 그 곳은 이름과 달리 개신교인 성공회 교회이고, 여기가 로마 가톨릭 즉 천주교 미사를 드리는 성당이다. 진짜 '국립'의 수목원을 구경하고 근처 DC 시내의 유일한 코스트코 매장을 잠깐 들린 후에, 미국 가톨릭 대학교 내에 위치한 이 성당을 찾아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정확히 100 m 높이의 종탑은 워싱턴에서 두번째로 높은 건축물로, 작년에 세번째로 높은 타워에 올라갔던 여행기를 클릭해서 'Top 5'에 대한 설명을 보실 수 있다. 아랫층의 기념품 가게 등을 구경하고, 실내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와 황금빛의 본당을 처음 봤을 때 아주 놀라웠다. 이 성당은 1920년에 공사를 시작해 1959년에 1차 완공되었는데, 총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 한다. 이 중앙홀의 좌우로 수 많은 작은 예배당들이 만들어져 있어서, 먼저 오른편을 구경하며 앞쪽으로 걸어갔는데, 종교쪽은 전공(?)이 아니라서 그 중 일부만 간략한 설명과 함께 보여드린다.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Pieta) 조각상이 놓여진 작은 제단의 모습이다. 다른 예배당에는 아기 예수를 안은 모습의 조각이 또 있는데, 성모에게 봉헌된 이 대성당 안에는 이러한 성모 마리아가 등장하는 조각과 그림이 82개나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중앙돔 아래에 가장 앞쪽에 의자가 놓여진 곳까지 와서, 우리 부부도 잠깐 앉아서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고개를 들어서 바라본 돔의 안쪽에 천사에게 둘러싸여 양팔을 벌리고 있는 성모와 함께, 성자와 성령이 그려져 있어서 삼위일체(Trinity)를 상징하고, 테두리를 따라서는 여러 성인과 교황의 모습들이 새겨져 있다. 세계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모자이크 중의 하나라는 이 중앙돔 안쪽의 그림은 2017년에야 최종 완성이 되었다고 한다. 대제단에 따로 기둥과 지붕이 만들어진 제대는 교황의 자리를 상징하는데, 역대 교황들이 미국을 방문하면 빠짐없이 이 곳에서 미사를 집전하게 된다. 가장 흥미를 끈 부분은 제단의 바로 뒤쪽, 그러니까 예배석에 앉았을 때 정면으로 보였던 예수의 모습으로... 양팔을 벌려서 들고 있는 모습 및 한쪽 어깨만 걸친 붉은 의상과 후광의 불꽃에다가 무서운 표정까지 더해져서 무슨 무협지의 표지나 불화 만다라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제단을 한바퀴 돌아본 후에 건너편을 따라 다시 돌아나가면서, 곳곳에 놓여진 기도초들 중의 하나에 우리도 불을 밝히기도 했다. 많은 예배당의 그림이나 표식들이 다양성을 존중해서 만들어진 것도 인상 깊었는데, 이 제단에 놓여진 그림은 마리아와 예수의 피부색이 검게 그려져 있고, 이렇게 한자와 함께 중국풍으로 만들어진 모자이크도 있었다. 성모상은 아니지만 입구쪽 벽에는 한국의 가톨릭 성인들을 묘사한 부조도 따로 만들어져 있다고 하지만, 방문 당시에는 몰라서 찾아보지는 못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기도를 드리고 있던 예배당의 멕시코 '과달루페의 성모(Our Lady of Guadalupe)' 모자이크화이다. 그리고 본당을 나와서 종탑의 제일 아래쪽에 놓여진 성모 조각상을 마지막으로 구경했다. 종탑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계단은 막아 놓아서, 이걸로 미국 최대의 가톨릭 대성당의 내부 구경은 끝...^^ 바실리카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항공사진을 보여드리며 방문기를 마치는데, 로마시대의 고전 건축양식에 화려하고 큰 중앙돔이 더해진 로마네스크 비잔틴(Romanesque-Byzantine) 스타일의 건물이란다. 일요일에 방문하면 누구나 미사에도 참여할 수 있고, 우리처럼 평일에도 무료로 입장해서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내부를 구경할 수 있으므로, 관광지로 부담없이 둘러봐도 손색이 없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PS. 혼동하지 마시라고 서두에 언급했던 워싱턴 국립성당(Washington National Cathedral)은 예전에 차로 지나가면서 슬쩍 본 적은 있는데, 내부 구경을 하려면 15불의 입장료를 내야해서 일부러 찾아갈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이 기회에 간단한 소개와 함께 외부 사진을 가져와 보여드리고, 특히 위기주부가 흥미 있어한 내용들만 간단히 추가로 보여드린다. 1907년에 초석이 놓여져 1990년에 공식적으로 완공된 전형적인 신고딕(Neo-Gothic) 양식으로 DC에서 네번째로 높은 건축물이며 시의 북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총 6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미국에서 두번째로 큰 교회 건물이며, 수도에 위치한 특성상 미국의 문화와 역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장식과 스테인드글래스 등이 만들어진 것으로 유명하다. 아폴로 11호의 달착륙 5주년을 기념해 봉헌된 이 스테인드글래스는 '스페이스 윈도우(Space Window)'로 불리는데, 붉은 원의 가운데에 큼지막하게 박혀 있는 것은 달에서 가져온 월석(moon rock)이란다. 그리고, 1980년대에 북서쪽 탑을 건설하면서 고딕타워를 장식하는 돌출된 형상인 가고일(Gargoyle) 또는 그로테스크(Grotesque)를 그리는 어린이 대회를 열었는데, 그 결과 3위로 선정되어서 정식으로 조각된 것이 바로...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악당인 다스베이더(Darth Vader)이다! 이게 소위 너드(Nerd)들 사이에 유명해져서 교회 기념품 가게에서 작은 모형을 팔기도 하며, 홈페이지에는 다스베이더가 교회 직원으로 일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올려두기도 했다. 탑의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해서 맨눈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고 쌍안경이 필요하다지만, 이건 그냥 밖에서도 볼 수 있으므로... 스타워즈의 팬이면서 나름 그 과에 속하는 위기주부도 언제 직접 보러가자고 할지도 모르겠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국립묘지 언덕에 있는 알링턴하우스 겸 로버트 리 기념관(Arlington House, The Robert E. Lee Memorial)

국립묘지 언덕에 있는 알링턴하우스 겸 로버트 리 기념관(Arlington House, The Robert E. Lee Memorial)

1759년에 26세의 조지 워싱턴은 한 살 많은 과부 마사 커스티스(Martha Custis)와 결혼을 하는데, 그녀의 전남편은 버지니아 최고의 부자였으나 일찍 급사를 했다. 둘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고 아내가 낳은 전남편의 아들과 딸을 키웠지만, 딸은 17세에 간질로 사망하고 결혼한 아들도 1781년 요크타운 전투 직후에 4명의 자녀를 남기고 병사한다. 그래서 워싱턴 부부는 그들 중 어린 손녀와 손자를 데려와 직접 키우는데,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면서 뉴욕과 필라델피아의 관저에서 함께 살았으며, 나중에는 유산을 상속해주기 위해 법적으로 딸과 아들로 입양을 한다. 알링턴 국립묘지의 케네디 대통령 무덤을 둘러본 후에 좁은 산책로인 Custis Walk를 따라 언덕을 오르니, 꼭대기에 누리끼끼한 색깔의 그리스 신전같은 건물이 나온다. 바로 위에 설명한 워싱턴의 양아들인 조지 커스티스(George Washington Parke Custis)가 자신이 물려받은 플랜테이션에, 워싱턴을 기리는 의미로 웅장하게 만든 알링턴 하우스(Arlington House)로 1802년에 공사를 시작했지만 1818년에야 완공되었다. 1789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The Washington Family"라는 이 그림에서 왼쪽의 남자 어린이가 조지 커스티스인데, 어릴 때는 여러모로 워싱턴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한 때는 재혼한 친어머니 집으로 돌려보내지기도 했단다. 하지만 그는 키워주신 할아버지 워싱턴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잊지 않았기에, 성인이 되어서 땅과 재산을 물려받은 동시에 이 집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뭔가 좀 이상한게, 거대한 기둥이 나무계단 위에 세워져 있고, 그 바닥도 빨간 벽돌이다... 당시 의사당을 설계한 최고의 건축가를 고용해서 야심차게 공사를 시작했지만, 그는 땅과 노예만 많지 현금은 없었고 1812년 전쟁으로 물자부족까지 겹치면서, 결국은 벽돌로 지은 건물의 기둥과 벽면을 매끈하게 바른 후에 대리석처럼 보이게 칠을 한 것이란다. 뒤돌아 동쪽 아래로 내려다 보면, 국립묘지의 정문에서 이어지는 알링턴 기념교(Arlington Memorial Bridge)로 포토맥 강을 건너서 바로 링컨 기념관이 나오고, 오른편으로는 워싱턴 기념탑이 우뚝 솟아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안으로 들어가서 오른편 가족실(Family Parlor)의 좌우 벽난로 위에는 이 집에 마지막으로 살았던 부부의 초상화가 각각 걸려있다. 왼쪽이 조지 커스티스의 유일하게 장성한 자손으로 알링턴 플랜테이션을 물려받은 딸인 메리 커스티스(Mary Anna Randolph Custis)이고, 1831년에 이 집에서 그녀와 결혼식을 올린 오른쪽의 남편이 바로... 로버트 E. 리(Robert Edward Lee)로 1838년에 그려진 초상화이다. 그의 아버지도 독립전쟁에 참전했었고 1799년의 워싱턴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할만큼 이미 명문가의 자제였는데, 법적으로 치자면 워싱턴 대통령의 손녀 사위가 후에 남북전쟁에서 남군을 이끌었던 리(Lee) 장군인 것이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군인이라서 결혼 후 대부분 떠돌며 살았지만, 1857년에 장인이 사망하자 유산 집행을 위해 여기로 돌아온다. 결국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고 버지니아가 연방을 탈퇴하자, Lee는 이 집에서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남군에 가담하기로 결정하고 부부가 함께 리치먼드로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식탁이 차려진 다이닝룸(Dining Room)의 벽에는 조지 커스티스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데, 그는 할아버지이자 양아버지인 워싱턴 대통령의 소지품 보존과 기념사업 등을 위해 노력했고, 역사 희곡과 책을 쓰기도 하는 등 말년까지 활발히 활동했단다. 신전같은 외관과 달리 내부는 거주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런 침실과 주방 등의 모습도 옛날 생활상 그대로 복원을 해 놓았다. 실내 투어코스의 마지막인 모닝룸(Morning Room)에 꾸며진 스튜디오인데, 조지 커스티스가 직접 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단다. 여기서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게 되는데, 그 통로의 벽에 국립공원청이 관리하는 이 집의 공식 명칭인 알링턴 하우스, 로버트 리 기념관(Arlington House, The Robert E. Lee Memorial) 명칭이 붙어있다. 박물관 전시는 노예들의 숙소를 복원한 별도의 뒷채에 작게 만들어져 있지만 들어가 보지 않았기 때문에, 공원 홈페이지에서 사진과 그림만 몇 장 가져와서 설명을 드린다. 리 부부가 떠난 후에 이 언덕은 수도 방어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바로 연방군이 점령을 했고, 농장에는 자유 흑인들의 정착촌과 흑인 병사들의 훈련을 위한 군부대가 임의로 설치된다. 결국 위 사진이 찍힌 1864년에 세금체납을 이유로 공식적으로 연방정부가 이 땅을 몰수한 후에 남북전쟁에서 사망한 북군 병사들을 여기 매장하기 시작해서, 지금의 알링턴 국립묘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전후 1877년에 부부의 장남인 조지 리(George Washington Custis Lee)가 소송을 해서, 몰수가 부당했다는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내었지만 이미 농장은 묘지로 바뀌어 있었고, 어차피 현금 보상을 원했던 그는 결국 15만불에 다시 모든 건물과 땅을 연방정부에 매각을 했다. 지난 5월초에 직접 방문했던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Appomattox Court House)에서 남군의 항복문서에 서명한 리(Lee)가 북군 총사령관 그랜트(Grant)와 악수하는 모습의 "Let Us Have Peace" 그림이다. 부하 장군들 중의 일부가 후퇴가 불가하니 뿔뿔이 흩어져서 게릴라전을 계속하자고 제안했지만, 그는 국가가 하나로 회복되는데 수 년이 더 걸리는 무의미한 짓이라며 거부하고 깨끗한 항복을 결정했다. 그리고 그 후에도 남북의 평화와 재결합을 위해서 노력했기 때문에, 한 때 미국에 맞서 싸웠던 인물을 기리는 유일한 연방정부 지원의 국가기념관이 만들어진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버지니아 렉싱턴(Lexington)의 워싱턴 대학교 총장이 되었고, 위 사진의 1869년에 대통령이 된 그랜트의 초청으로 백악관을 방문하고 이듬해 사망해서, 그의 사후에 Wasington and Lee University로 이름이 변경된 대학의 예배당 옆 묘지에 묻혔다. 남부연맹 가담자들은 전후 미국 정부에 충성을 맹세하는 사면선서(Amnesty Oath)를 제출해야만 복권이 되었는데, 리도 당연히 서명해서 우편으로 보냈지만 남부에 반감을 가진 어떤 이가 고의로 누락했단다. 그래서 이 집은 1925년부터 문화재로 관리는 되었지만 그냥 Custis-Lee Mansion으로 불리다가, 1972년에 문서보관소에서 리의 사면선서가 발견된 이후에야 공식적으로 시민권이 회복되고 현재와 같이 그의 이름이 들어간 메모리얼이 될 수 있었단다. 맨션의 남쪽에 있는 정원을 지나면 나오는 남북전쟁 무명용사묘를 잠깐 구경하고는 다시 언덕을 걸어 내려가 알링턴 국립묘지 구경을 마저 했었다. 옛날 한국에서는 청바지 브랜드로, 또 세쿼이아 국립공원에 있는 나무 이름으로 '리(Lee)'가 원래 미국에도 있는 성씨라는 것을 알았던 기억이 나는데, 그 동안 남북전쟁 관련 포스팅에 수 없이 등장했던 로버트 E. 리(Robert Edward Lee) 장군의 국립 기념관을 마침내 둘러봤고, 이로써 집에서 1시간 이내 거리에 있는 NPS Official Unit들은 빠짐없이 모두 방문한 것이 되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국립묘지 언덕에 있는 알링턴하우스 겸 로버트 리 기념관(Arlington House, The Robert E. Lee Memorial)

국립묘지 언덕에 있는 알링턴하우스 겸 로버트 리 기념관(Arlington House, The Robert E. Lee Memorial)

1759년에 26세의 조지 워싱턴은 한 살 많은 과부 마사 커스티스(Martha Custis)와 결혼을 하는데, 그녀의 전남편은 버지니아 최고의 부자였으나 일찍 급사를 했다. 둘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고 아내가 낳은 전남편의 아들과 딸을 키웠지만, 딸은 17세에 간질로 사망하고 결혼한 아들도 1781년 요크타운 전투 직후에 4명의 자녀를 남기고 병사한다. 그래서 워싱턴 부부는 그들 중 어린 손녀와 손자를 데려와 직접 키우는데,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면서 뉴욕과 필라델피아의 관저에서 함께 살았으며, 나중에는 유산을 상속해주기 위해 법적으로 딸과 아들로 입양을 한다. 알링턴 국립묘지의 케네디 대통령 무덤을 둘러본 후에 좁은 산책로인 Custis Walk를 따라 언덕을 오르니, 꼭대기에 누리끼끼한 색깔의 그리스 신전같은 건물이 나온다. 바로 위에 설명한 워싱턴의 양아들인 조지 커스티스(George Washington Parke Custis)가 자신이 물려받은 플랜테이션에, 워싱턴을 기리는 의미로 웅장하게 만든 알링턴 하우스(Arlington House)로 1802년에 공사를 시작했지만 1818년에야 완공되었다. 1789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The Washington Family"라는 이 그림에서 왼쪽의 남자 어린이가 조지 커스티스인데, 어릴 때는 여러모로 워싱턴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한 때는 재혼한 친어머니 집으로 돌려보내지기도 했단다. 하지만 그는 키워주신 할아버지 워싱턴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잊지 않았기에, 성인이 되어서 땅과 재산을 물려받은 동시에 이 집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뭔가 좀 이상한게, 거대한 기둥이 나무계단 위에 세워져 있고, 그 바닥도 빨간 벽돌이다... 당시 의사당을 설계한 최고의 건축가를 고용해서 야심차게 공사를 시작했지만, 그는 땅과 노예만 많지 현금은 없었고 1812년 전쟁으로 물자부족까지 겹치면서, 결국은 벽돌로 지은 건물의 기둥과 벽면을 매끈하게 바른 후에 대리석처럼 보이게 칠을 한 것이란다. 뒤돌아 동쪽 아래로 내려다 보면, 국립묘지의 정문에서 이어지는 알링턴 기념교(Arlington Memorial Bridge)로 포토맥 강을 건너서 바로 링컨 기념관이 나오고, 오른편으로는 워싱턴 기념탑이 우뚝 솟아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안으로 들어가서 오른편 가족실(Family Parlor)의 좌우 벽난로 위에는 이 집에 마지막으로 살았던 부부의 초상화가 각각 걸려있다. 왼쪽이 조지 커스티스의 유일하게 장성한 자손으로 알링턴 플랜테이션을 물려받은 딸인 메리 커스티스(Mary Anna Randolph Custis)이고, 1831년에 이 집에서 그녀와 결혼식을 올린 오른쪽의 남편이 바로... 로버트 E. 리(Robert Edward Lee)로 1838년에 그려진 초상화이다. 그의 아버지도 독립전쟁에 참전했었고 1799년의 워싱턴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할만큼 이미 명문가의 자제였는데, 법적으로 치자면 워싱턴 대통령의 손녀 사위가 후에 남북전쟁에서 남군을 이끌었던 리(Lee) 장군인 것이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군인이라서 결혼 후 대부분 떠돌며 살았지만, 1857년에 장인이 사망하자 유산 집행을 위해 여기로 돌아온다. 결국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고 버지니아가 연방을 탈퇴하자, Lee는 이 집에서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남군에 가담하기로 결정하고 부부가 함께 리치먼드로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식탁이 차려진 다이닝룸(Dining Room)의 벽에는 조지 커스티스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데, 그는 할아버지이자 양아버지인 워싱턴 대통령의 소지품 보존과 기념사업 등을 위해 노력했고, 역사 희곡과 책을 쓰기도 하는 등 말년까지 활발히 활동했단다. 신전같은 외관과 달리 내부는 거주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런 침실과 주방 등의 모습도 옛날 생활상 그대로 복원을 해 놓았다. 실내 투어코스의 마지막인 모닝룸(Morning Room)에 꾸며진 스튜디오인데, 조지 커스티스가 직접 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단다. 여기서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게 되는데, 그 통로의 벽에 국립공원청이 관리하는 이 집의 공식 명칭인 알링턴 하우스, 로버트 리 기념관(Arlington House, The Robert E. Lee Memorial) 명칭이 붙어있다. 박물관 전시는 노예들의 숙소를 복원한 별도의 뒷채에 작게 만들어져 있지만 들어가 보지 않았기 때문에, 공원 홈페이지에서 사진과 그림만 몇 장 가져와서 설명을 드린다. 리 부부가 떠난 후에 이 언덕은 수도 방어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바로 연방군이 점령을 했고, 농장에는 자유 흑인들의 정착촌과 흑인 병사들의 훈련을 위한 군부대가 임의로 설치된다. 결국 위 사진이 찍힌 1864년에 세금체납을 이유로 공식적으로 연방정부가 이 땅을 몰수한 후에 남북전쟁에서 사망한 북군 병사들을 여기 매장하기 시작해서, 지금의 알링턴 국립묘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전후 1877년에 부부의 장남인 조지 리(George Washington Custis Lee)가 소송을 해서, 몰수가 부당했다는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내었지만 이미 농장은 묘지로 바뀌어 있었고, 어차피 현금 보상을 원했던 그는 결국 15만불에 다시 모든 건물과 땅을 연방정부에 매각을 했다. 지난 5월초에 직접 방문했던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Appomattox Court House)에서 남군의 항복문서에 서명한 리(Lee)가 북군 총사령관 그랜트(Grant)와 악수하는 모습의 "Let Us Have Peace" 그림이다. 부하 장군들 중의 일부가 후퇴가 불가하니 뿔뿔이 흩어져서 게릴라전을 계속하자고 제안했지만, 그는 국가가 하나로 회복되는데 수 년이 더 걸리는 무의미한 짓이라며 거부하고 깨끗한 항복을 결정했다. 그리고 그 후에도 남북의 평화와 재결합을 위해서 노력했기 때문에, 한 때 미국에 맞서 싸웠던 인물을 기리는 유일한 연방정부 지원의 국가기념관이 만들어진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버지니아 렉싱턴(Lexington)의 워싱턴 대학교 총장이 되었고, 위 사진의 1869년에 대통령이 된 그랜트의 초청으로 백악관을 방문하고 이듬해 사망해서, 그의 사후에 Wasington and Lee University로 이름이 변경된 대학의 예배당 옆 묘지에 묻혔다. 남부연맹 가담자들은 전후 미국 정부에 충성을 맹세하는 사면선서(Amnesty Oath)를 제출해야만 복권이 되었는데, 리도 당연히 서명해서 우편으로 보냈지만 남부에 반감을 가진 어떤 이가 고의로 누락했단다. 그래서 이 집은 1925년부터 문화재로 관리는 되었지만 그냥 Custis-Lee Mansion으로 불리다가, 1972년에 문서보관소에서 리의 사면선서가 발견된 이후에야 공식적으로 시민권이 회복되고 현재와 같이 그의 이름이 들어간 메모리얼이 될 수 있었단다. 맨션의 남쪽에 있는 정원을 지나면 나오는 남북전쟁 무명용사묘를 잠깐 구경하고는 다시 언덕을 걸어 내려가 알링턴 국립묘지 구경을 마저 했었다. 옛날 한국에서는 청바지 브랜드로, 또 세쿼이아 국립공원에 있는 나무 이름으로 '리(Lee)'가 원래 미국에도 있는 성씨라는 것을 알았던 기억이 나는데, 그 동안 남북전쟁 관련 포스팅에 수 없이 등장했던 로버트 E. 리(Robert Edward Lee) 장군의 국립 기념관을 마침내 둘러봤고, 이로써 집에서 1시간 이내 거리에 있는 NPS Official Unit들은 빠짐없이 모두 방문한 것이 되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의사당 기둥(Capitol Columns)과 분재 박물관 등이 유명한 워싱턴DC의 국립수목원(National Arboretum)

의사당 기둥(Capitol Columns)과 분재 박물관 등이 유명한 워싱턴DC의 국립수목원(National Arboretum)

지금은 한국 곳곳에 크고작은 많은 식물원과 정원 및 숲길 등이 관광지로 조성되었지만, 그 옛날에는 현재처럼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과의 첫번째 데이트 장소로, 삼촌한테서 물려받았던 당시 10년도 훨씬 더 된 수동기어의 88년형 엑셀(Excel) 승용차를 몰고 찾아갔던 곳이 바로 경기도 가평의 '아침고요수목원'이었다. 아마 그 때도 6월쯤이었던 듯 한데...^^ 머나먼 여기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미국의 국립수목원을 찾아가면서, 위기주부의 머리 속에는 계속 그 곳의 이름이 맴돌고 있었다~ 수도 워싱턴DC의 동쪽 애나코스티아(Anacostia) 강변에 1.8 ㎢ 면적으로 만들어진 국립수목원(National Arboretum)의 전체 지도를 먼저 보여드리는데, 역시 이런 장소의 안내도를 수채화풍으로 그리고 싶은 마음은 만국공통인가 보다. 우리는 정문에 해당하는 R Street Gate로 들어가서 일단 도로를 좀 더 달려서 지도 한가운데 쯤에 있는 볼거리를 먼저 찾아갔다. 그것은 생뚱맞게도 풀밭 너머로 보이는 저 커다란 기둥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무슨 폐허가 된 숲속의 유적지라 보기에는 바닥과 주변이 깨끗하고, 가운데 동그란 우물(?)에서 흘러나온 물이 아래에 보여드릴 연못으로 흘러가도록 일부러 만들어 놓기도 했다. 비록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처럼 반짝이는 대리석은 아니지만 무늬가 있는 사암(sandstone)을 깍아서 만들었고, 특히 꼭대기 부분은 코린트식(Corinthian)으로 아주 정교하게 공을 들여서 조각을 해놓았다. 여기 22개의 기둥들은 원래 1828년에 처음 완공된 미국 의사당((United States Capitol) 건물의 동쪽 현관에 세워졌던 것들이다. 그렇게 130년이 지나서 1958년에 현재의 대형 중앙돔을 포함한 확장공사를 계획하면서, 이 사암으로 만든 기둥들은 충분히 튼튼하지 않다고 판단되어 철거되었고, 1980년대까지는 조각으로 분리되어서 그냥 창고에 보관이 되었단다. 정확히 25년전의 그 엑셀 옆자리에 탔던 분과 찍은 커플셀카 한 장 보여드리고...^^ 그러다가 국립수목원 후원자들의 노력으로 이 자리에 1990년에 새로 이렇게 기둥들만 멋지게 다시 세워져 햇살을 받고 있는 것이란다. 여기를 클릭해서 보실 수 있는 재작년 미의사당 방문기 중에 현재의 동쪽면 사진이 있는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지금의 기둥과 크기와 높이 및 꼭대기의 코린트 장식과 하단부 디자인이 완전히 똑같은 것을 확인하실 수 있다. 그렇게 일단 차로 한바퀴 돌고나서, 다시 들어왔던 입구쪽에 주차를 하고 비지터센터를 통과해서 건너편의 정원으로 향했다. 참고로 국립수목원은 미국 농무부(U.S. Department of Agriculture)에서 관리하는 시설이다. 건물 뒷편은 최근에 리모델링을 마쳤다는 워터가든(water graden)으로 둘러싸여 있어 다양한 수생식물들을 볼 수 있는데, 사람 머리만한 엄청나게 큰 연꽃이 하나 피어 있었고, 사진에는 한 마리만 나왔지만 많은 비단잉어(Japanese koi)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향기로 가득한 허브가든(herb garden)을 잠깐 둘러보고는, 이 수목원에서 가장 인기있는 박물관을 찾아갔다. 그 곳은 National Bonsai & Penjing Museum으로 '본자이'는 분재(盆栽)의 일본어 발음이고 '펜징'은 분경(盆景)의 중국어 발음이다. 나무를 이용해 일본식으로 만들어진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130년 이상 다듬어가며 키웠다는 흑송(黑松) 분재가 제일 먼저 나온다. 이 나무를 포함해서 53개의 분재를 일본이 1976년에 미국독립 200주년을 기념하는 선물로 미국에 기증한 것을 시작으로, 그 후에 중국이 기증한 분경들 및 미국에서 자체적으로 키운 것들도 더해져서 현재는 약 300개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고, 그 중 일부만 돌아가며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실내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두루마리 그림과 함께 수석(壽石)이 한 점 놓여있는데, 모래 위에 한 마리의 작은 게(crab)도 돌을 깍아서 만든 것이었다! 옆으로는 족자가 걸린 동양적인 공간을 만들어두고 기괴한 형상의 수석들로 장식을 해놓았다. 수석을 영어로는 Viewing Stone 또는 Scholar's Stone이라 부르는게 일반적이고, 한자어 수석(水石)의 일본어 발음인 'Suiseki'로 쓰기도 한다. 또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한국영화 에서 수석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 후에는 한국어 발음 'Suseok'으로 부르는 경우도 늘고있는 모양이다. 실내 공간은 이렇게 수석 전시실로 이용되고 있는데, 최근에 유행하는 말로 부르자면 애완돌 또는 반려돌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유행은 미국에서 1975년에 불티나게 팔렸다는 '펫락(pet rock)'을 따라한 것이지만 말이다. 돌과 나무를 합쳐서 이렇게 실제 풍경같은 모습을 화분에 작게 만드는 것이 박물관 이름에 등장하는 분경(盆景, Penjing)이란다. 나무가 삐딱하게 자란게 먼저일까? 아니면 화분을 기울인게 먼저일까? 이렇게 멋진 분재들을 한자리에서 마지막으로 많이 봤던 곳은 LA의 헌팅턴 라이브러리였던 것 같고, 미국으로 이사오기 전에는 아마도 처음 언급한 아침고요수목원에서였던 듯 하다. 이 정도로만 첫번째 국립수목원 구경을 마치고, 여기까지 온 김에 근처의 다른 볼거리를 찾아 이동을 했다. 비록 한국정원은 따로 없지만 첫번째 지도 제일 오른편 강가의 Hickey Hill 구역에는 Korean Hillside라 불리는 곳에 버드나무 등이 심어져 있다고 하며, 지도 왼편의 Azalea Road 안쪽 산책로는 봄에 진달래 꽃이 유명하다고 하니, 내셔널몰에서 많이 떨어져 있어 찾아오는 교통이 좀 불편한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오는 가을이나 아니면 내년 봄에라도 두번째 방문을 기대해 본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