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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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9 posts휴일에 만끽하는 대전 미술 100년
1월도 벌써 중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시간을 잡을 수는 없는 것인가요. 대전의 대표적인 여행지 대전시립미술관이 올해로 개관 2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20일까지 만나볼 수 있는 전시를 소개합니다. '대전 미술 100년 미래의 시작' 전시에 참여한 작가는 김환섭, 김수평, 김홍주, 남철, 윤영자, 이건용, 이종수, 정해조, 조평휘, 한정수 작가입니다. 작가들마다 개성 있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전시공간마다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작가들의 생각이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게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일찍이 미술관에서 예술과 문화를 향유하는 데 익숙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비교적 늦게 미술관이 조성되었습니다. 대전에서 다양한 미술 전시를 만날 수 있는 대전시립미술관에서는 양질의 전시를 연중 열고 있는데요. 2019년에도 기대가 됩니다. 미술관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들은 실경 수묵화로, 조평휘의 작품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조평휘 작가는 실경 위주의 수묵화로 전환하기 위해 끊임없는 사생을 통해 한국 수묵화를 재해석하는 시도를 했습니다. 조평휘 작가는 대전을 넘어서 한국화단의 많은 후배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KBS에서 특집 프로가 방영됐는데요. 바로 '혐오의 문화였습니다. 반대편에 서서 서로를 공격하는 것이지요. 여자의 반대편에 남자가 있고, 남자의 반대편에 여자가 있어서 서로를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대립적인 관계로 만들고 있는 것이 요즘 세태입니다. 작품들을 보면 정면에 보이는 작품은 공간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반대로 보아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조각의 면과 곡선은 형상의 세계에 속하는 반면, 그 면들이 이루고 있는 공간은 공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 미술세계의 특징입니다. 도자의 원형에 예술정신이 적당히 스며들어 있는 작품입니다. 찻사발을 표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인에게는 내재된 강한 에너지가 있다고 합니다. 한국인만의 도자문화는 한국을 대표하는데 도자는 불의 예술이자, 기다림의 미학이죠. 흙, 물, 바람, 불을 사용해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의 이치를 따릅니다. 우리의 도예작품을 이종수 작가가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2000년에 대전으로 거쳐를 옮긴 후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는 강환섭 작가의 작품입니다. 그의 작품들에는 한글화 된 글자 모형이 반영되어 한글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추구한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종이 원판에서 느껴지는 투박한 질감과 판화의 유연한 곡선들이 특징이라고 하네요. 명상요법의 본질적 요소는 그 의미를 추론하려고 애쓰는 일 없이 한 상징에만 집중함으로써 생각과 통찰을 불러일으키게 해 주는데 있다고 하는데요.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에 오면 때론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액자속에서 주인공이 되어보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입니다. 색채는 우리의 정서에 즉각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작품속에서 사용된 검은색은 파괴의 여신 칼리이며, 흰색은 티베트인들에게 깨달음을 향해 올라가는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또 황금색은 불멸성의 신화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림에서 많이 사용된 파란색은 고대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이 사랑의 여신 비너스의 색깔로 여겼다고 합니다. 옻칠 작품은 보통 옻나무 수액을 정제하여 생칠, 흑칠, 투명칠, 색칠의 제작 단계를 거쳐서 탄생하는데요. 옻칠은 천연의 광물 효과뿐만이 아니라 특유의 광택으로 우아하고 미려한 빛깔을 만들어냅니다. 정해조 작가는 배재대학교에 칠연구소를 설립하여 지금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형태가 기하학적이면서도 독특하게 다가옵니다다. 기하학적인 느낌의 작품에서 상징성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기계와 예술작품의 조화가 엿보입니다. 마음은 정말로 아름다운 집과 유사하다고 합니다. 일상적 사고의 바깥에 놓여 있는 그 각 부분을 탐험해보지 않는 이상,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타인으로 남아 있게 된다고 하죠. 대전미술 100년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오는 20일까지 입니다. 대전시립미술관 개관 20주년 기념 100 years of Daejeon Art : The Beginning of the Future2018.11.16 - 2019.01.20
삼국시대부터 현대까지 장구 다 모였다! 고당 한기복 '장구 이야기'展
"쳐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40 여 년간 전국각지, 아니 전세계를 돌며 수집한 장구를 전시하는 고당 한기복 선생이 말합니다. '전통타악그룹 굿'의 대표인 한기복 선생은 평생 모아온 장구와 북 등의 악기를 한 곳에 모은 전시회를 열고 있는데요. 지난 1월 2일 중구 대흥동 고당마당에서 '삼국시대부터 현대까지, 역사를 거슬러 만나는 - 장구이야기展'이 개막했습니다. 개막이라고 말하기에 전시실은 다소 협소하고, 일반적인 전시회에서 흔히 보는 유리장 하나 없지만 전시품들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귀한 것들입니다. 이번 전시에는 한기복선생이 40년 전부터 사용하거나 수집한 작품, 기증 받은 작품, 재현 작품 150 여 점을 선보이고요. 장구와 북, 기타 전통악기와 국악용품 300여 점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저는 전시 이틀 째인 3일 오후에 관람했는데요. 마침 대학에서 판소리를 전공하고 있는 학생들과 같이 하게 됐어요. 이 학생들은 즉석에서 합창으로 '풍구타령'을 들려줬는데요. 한기복 선생은 즉석에서 장구로 장단을 맞춰줬습니다. 짧지만 공연을 보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전시에서 만난 악기들은 저 같은 문외한이 보기에도 아주 귀한 것들이었습니다. 평소 이곳을 방문했을 때 잘 보관하고 있던 악기들을 보았지만, 이렇게 한 곳에 모아 놓으니 그 양이 방대합니다. 전시실이 협소한 것이 아쉽습니다. 울림통이 도자기인 장구들 장구는 원래 울림통의 가운데가 잘록하게 생겼죠. 1500년 전인 삼국시대에 '허리가 잘록해'라는 의미로 요고라고 불렸던 것도 있습니다. 고려시대 도자기 장구, 조선 숙종 때 쯤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구의 모양은 저마다 크기와 색깔이 다 다릅니다. 삼국시대 요고 (복원품) 전시품 중 특히 요고는, 지난 2000년 경기도 하남시 이성산성에서 출토된 장구를 실측한 것인데요. 몸통 길이 42㎝에 지름 16㎝, 길이 58㎝로 재현한 장구라고 합니다. 요즘 사용하는 장구보다는 조금 작습니다. 전시된 북에서 세월의 풍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각종 북 장구 중에는 '악학궤범 장구'라고 이름 붙인 것이 있었는데요. 우연한 기회에 손에 넣은 장구로서, 악학궤범에 기록된 장구와 모양과 크기가 일치해 이름을 붙였다고 해요. 장구와 북 외에도 징과 운라, 꽹과리, 바라 등 전통 타악기와, 아쟁, 거문고 등 현악기, 외국에서 수집한 젬베, 퍼쿠션 등의 악기도 있습니다. 징과 운라 아쟁 가야금 거문고 또 전통농악에 사용하던 상모와, 짚으로 엮은 장구 등 모든 것이 신기했어요. 인도, 네팔 등 외국의 타악기도 모양과 크기가 조금식 다르기는 하지만, 인간이 생각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 수집한 악기들 전시된 악기가 대부분 타악기인데, 악기만큼이나 다양한 연주용 채들도 신기했습니다. 장구채나 북채, 꽹과리 채 외에도 모양만으로는 어떤 악기를 연주하는 채인지 잘 모르겠는 것도 있었어요. 각종 타악기를 연주하는 채. 모양도 크기도 다양하다. 또 하나 눈길을 끈 악기는 고생창연한 풍금이었습니다. 딱 봐도 일제시대의 것으로 보였는데요. 한기복선생은 풍금 케이스에 새겨진 문양이나 글씨 등으로 보아 일제강점기 때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대청호오백리길 황새바위에서 연주하는 한기복선생 장구와 북을 직접 만들기도 하고(고당국악사), 언젠가 우리나라 최초의 '장구박물관'을 세우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고당 한기복 선생. 평생의 '장구사랑 이야기'는 조만간 다시 들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당마당은 주소를 알아도 찾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중구 대흥동 우리들공원 인근 골목에 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장구를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사전에 전화로 문의를 하고 기왕이면 한기복선생으로부터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에 꼭 한번 관람을 권합니다. 삼국시대부터 현대까지, 역사를 거슬러 만나는 - 장구이야기展 전시일시 : 2019. 1. 2 ∼23(수) 전시장소 : 고당마당(고당국악사) 대전광역시 중구 중앙로122번길 17 (대림 BD 7층) 관 람 료 : 무 료 관람문의 : 042-226-5658 2019 대전광역시 소셜미디어기자 조강숙
유성온천공원의 낮과 밤은 부드러워라~
제가 휴일을 즐기기 위해서 들고 나온 한 권의 책 '밤은 부드러워라'.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입니다. 스콧 피츠 제럴드의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위대한 개츠비'이지만 이 작품도 인상적입니다. 이 소설을 들고 유성온천공원을 찾았습니다. 늦은 시간에는 제한적으로 족욕체험장이 운영이 되지만 낮에는 여러 곳에서 족욕체험을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온도도 조금씩 달라서 자신의 발에 맞는 족욕 공간에서 족욕을 즐기면 됩니다. 전국에 있는 온천 시설마다 강알칼리성 온천수, 유황 온천수, 게르마늄 암반 광천수 등 수질이 다른데요. 유성은 온천수로 유명한 여행지입니다. 대한민국 온천법에 따르면, 온천은 지하로부터 솟아나는 25℃ 이상의 온수로서 그 성분이 음용 또는 목욕용으로 사용해도 인체에 해롭지 않은 물을 의미합니다. 주로 중년 이상의 연배를 가지신 분들이 이곳을 많이 이용하지만 젊은 분들도 자주 눈에 띄기도 합니다. 온천족욕 문고에서 책 한 권을 읽으며 여유를 만끽하셔도 좋습니다. 이렇게 유성온천공원으로 직접 나오는 것은 물리적인 여행이지만 책을 통해 여행하는 것은 정신적인 여행입니다. 생각을 넓히며 즐거움을 향유하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이제 유성온천공원의 야경을 즐겨봅니다. 가진 것이라곤 젊음과 야망밖에 없던 20대의 스콧 피츠제럴드는 작품 '낙원의 이쪽'으로 대성공을 거두면서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었습니다. ㅎ지만 세월이 지나 주목받지 못하면서 불과 20년이 지난 때인 44세에 알코올 중독과 병마에 시달렸는데요. 그러다 1940년 '최후의 대군'을 집필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인생이야기를 읽으면서 밤의 야경을 보니까 말그대로 밤이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어떤 사람은 치유된 흉터를 피부에 생기는 병에 느슨하게 비유하지만, 개인의 삶에 그런 것은 없다. 열린 상처가 있을 뿐이다. 때로는 바늘로 찌른 점 크기로 움츠러들지만 그래도 여전히 상처다." -스콧 피츠제럴드, - 유성의 밤은 이렇게 환한 불빛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이곳 일대는 유성온천공원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빛의 광장부터 수경시설, 잔디광장, 워터스크린, 향기원, 온천탑분수, 족욕체험장, 두드림공연장, 벽천분수 등이 있는데요. 그중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은 족욕체험장이죠. 족욕체험장을 중심으로 조금씩 확대해가던 공원은 이렇게 구획으로 구분이 될 만큼 상당히 긴 편입니다. 유성온천축제가 열릴 때 이 공간들이 모두 활용 됩니다. 추운 겨울날의 밤은 부드러울까요.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듯합니다. 소설 에는 금전 만능주의, 이기주의, 감상주의 등의 인간의 본질적인 본능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본능대로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절제하고 타협하지 않은 힘을 길러내면서 각자 다른 개성을 지니게 된다고 합니다. 추운 겨울날의 밤이지만 족욕을 하면서 약간은 부드러워진 밤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집에 족욕기가 있기도 했지만 몇 번 사용하다 보면 귀찮아서 잘 사용하지 않았는데요. 그냥 밖으로 나와 족욕체험장에 들리는 게 더 편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수족냉증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족욕이 좋다고 합니다.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기 때문인데요. 족욕 시간은 20분 정도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족욕을 하게 되면 다리의 붓기를 완화하는 데에 도움이 되며 두통과 불면증에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장시간 서서 일하는 사람의 경우 하지와 발에 피가 쏠리게 되어 다리가 부을 수 있는데 이때도 족욕을 하면 효과가 있습니다.
대전선사박물관에서 만나는 제주도 고산리 유적
역사 속에서 생존만 하면 되던 시대를 생각하면 신석기시대까지 일 것입니다. 무기가 활용되고 군대의 형태를 띠게 되는 청동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이르러 문명은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되죠. 고고학에서 선사시대를 다루는 연구 분야를 선사학 또는 선사고고학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자연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갔기 때문에, 의·식·주가 중심이 되는 문화를 자세히 살펴봐야 합니다. 선사시대(prehistory)는 기록이 없기에 문자를 사용하는 역사시대(history)와 대칭됩니다. 보통 선사시대는 구석기시대, 중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초기 철기시대까지 포함하는데요. 문명의 역사에서 대전은 다른 지역에 비해 유물이 적지만 선사시대의 유물은 상당히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대전 선사박물관은 비교적 늦게 발굴이 된 대전지역의 매장문화재를 구석기부터 철기까지 4개의 전시실로 구성해 보여줍니다. 2층의 상설전시실은 구석기 문화관, 신석기 문화관, 청동기 문화관, 철기 문화관으로 구분돼있는데요.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체험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이 있습니다. 기획전시실에서 제주 고산리 유적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찾아가 봤습니다. 보통 노은동은 거쳐가는 곳이어서 안쪽까지 들어가 볼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요. 최근에는 지나치는 길이 있어서 주변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선사시대를 살펴보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 시대를 살았을 사람들은 지금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지금과 비슷한 게 있을듯합니다. 무언가를 그리고 기록하고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입구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면 아이들의 눈높이로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교육공간에서는 퍼즐 맞추기, 돌려보기 큐브, 무덤 체험, 스탬프 찍기 코너가 마련됐습니다. 제주도 북제주군 한경면 고산리에서 신석기 유적이 발굴되었다고 하는데요. 현재 사적 제412호로 지정된 그곳의 유적은 1987년에 알려졌습니다. 이 고산리 유적이 주목받게 된 이유는 바로 '고산리식 토기'때문입니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라는 '고산리식 토기'에는 식물성 섬유질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형태의 토기는 아직까지 제주도에서만 발견이 되었다죠. 제주도의 유적을 대전에서 만나는 것도 색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지금 보는 유적들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무척이나 낯선 것들입니다. 복합적인 문화양상을 띠고 있다고는 하나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오래전에 사용했을 원시적인 도구나 토기에 지나지 않아 보일 수 있습니다. 토기를 만드는 것은 음식을 저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흙을 반죽하고 나름 구우면서 성공하기까지 수세대가 흘러서 가능했을지도 모르죠. 지금이야 디지털 방식으로 만들어볼 수 있도록 체험관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고산리에서 토기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석기도 출토됐습니다. 석촉, 찌르개, 새기개, 새석핵 등의 성형석기를 살펴보며 수렵 중심의 생업 체제를 유지한 집단의 문화를 확인할 수 습니다. 주먹도끼 · 홈날석기 · 긁개 등 단지 깨진 돌이라 생각했던 각 석기들이 실제로는 가공을 위한 최적의 모양이었음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고산리 출토 토기는 고산리식 토기, 무문 양토기, 용기문토기, 점열문토기, 압날문토기 등이 있으며 용기문토기는 겉면에 흙으로 만든 띠를 붙여 장식한 토기입니다. 제주도에 이렇게 많은 신석기 유적이 많은지 몰랐습니다. 고산리 유적을 비롯하여 용수리, 월령리, 비양도, 외도동, 이호동, 도두동, 어영, 병문천, 한천, 아라동, 산지천, 삼화지구, 삼양동, 북촌리, 동북리, 김녕리, 월정리, 행원리, 한동리, 면수동, 종달리, 우도, 다랑쉬, 수산벌라리등 여행으로 가본 곳도 눈에 뜨입니다. 한반도의 경우 철기시대 전기 말인 서기전 194년을 선사시대로 보고 있고요. 중국은 서기전 1,750년대인 상(商)나라, 영국은 로마가 침입한 서기 전후 시기, 클라우디우스의 43년 이전을 선사시대로 보고 있습니다. 그 후는 역사시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명이 비교적 늦게 발달한 잉카나 아즈텍의 경우 늦은 시기에 역사시대로 진입하고 결국에는 문명이 사라지는 운명에 처하고 말죠. 둔산동의 선사 유적지만 아는 대전분들이 많지만 이곳에서 그 외에도 용호동, 구즉동, 가수원동 유적에서 발견된 구석기 문화, 둔산동 유적에서 발견된 신석기 문화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또 용산동, 상대동, 관저동, 복룡동 유적의 청동기문화, 용계동, 도안동, 판암동 유적에서 발견된 철기문화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석기에 남아있는 사용흔을 통해 사용한 나무의 수종과 도구의 목적을 과학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데요. 선사시대 도구의 높은 효율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날카롭게 가공한 석기는 나무로 된 손잡이인 자루를 만나 인간 신체의 외부 영역으로 도구를 확장시키기도 했습니다. 대전에서는 세형동검(細形銅劍)·좁은 놋단 검·청동단검(靑銅短劍)이라고도 부르는 한국식 동검도 출토됐습니다. 한국식 동검은 몸통 가운데 굵은 허리가 있어 비파형 동검이나 중국식 동검·오르도스 동검과는 그 모양이 다릅니다. 이 동검은 대전 괴정동, 화순 대곡리의 돌널무덤 등 주로 무덤 유적에서 청동 투겁창(銅鉾)·청동 꺾창(銅戈) 등의 무기류, 청동거울·청동 종방 울(銅鐸)·방패형 동기(防牌形銅器) 등의 의식 용구와 함께 출토됐습니다. 비교적 최근 시기의 공간을 재현해놓은 부뚜막입니다. 이와 같은 화덕이 오늘날의 것과 비슷한 부뚜막으로 발전한 것은 고구려 시대에 들어와서부터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고구려 시대의 부뚜막은 기능에 따라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부뚜막은 부엌 가운데에서도 가장 신성한 장소로 여겨왔습니다. 이곳에 조왕신을 모셨으며 사람이 걸터앉는 것을 금하기도 했습니다. 대전의 선사시대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은 대표적으로 둔산동, 관평동, 송촌동에서 발굴됐습니다. 세 곳 모두 택지개발공사 중에 발견됐는데요. 둔산동 신석기 유적은 기원전 3,000년을 전후한 흔적을 보여주고요. 관평동에서는 빗살무늬 토기 편, 송촌동에서는 신석기시대뿐만이 아니라 백제시대 유적이 확인됐습니다. 대전 선사박물관 발굴 유물 특별전 주제 : 제주 고산리 유적 처음 만난 토기 장소 : 대전선사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대전광역시 유성구 노은동로 126) 전시기간 : 2018.11.30 - 2019.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