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176 posts
〈Dogville〉
Dogville by Lars Von Trier, 2003 가끔 감상이라고 늘어놓을 말들이 한없이 형편없고 초라해지는 영화를 만난다. [도그빌]이 그렇다. 절대선의 존재에 대하여. 그리고 그 앞에 서려하는 인간의 오만함에 대하여…. 동시에 그 두꺼운 형이상학적 관념과 명확하게 평행하는 영상과 세트까지. 실로 아름답다. 오랫동안 살아남은 세계고전문학 한 권을 완독한 것 같다. '판단'이란 것이 무엇인지. 판단할 자격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거나 박탈하는, 판단할 자격을 판단하는 인간의 오만함을 생각하게 한다. 마지막 챕터의 대화씬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 '절대선' 같았던 그레이스는 틀렸다. '절대'라는 개념이 과연 실존할 수 있는 것인지 자문하게 한다. 열린 결말로 끝날 줄 알았는데 명확한 엔딩을 내린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
2014-12-24 10:47PM, New Jersey 집에서 #1. 나만의 시간이 돌아왔다 워싱턴에서 뉴저지로 돌아왔다. 집에 온 느낌이다. 머나먼 미국 땅에선 여기가 내 집이다. '돌아온다'는 건 언제나 따뜻하고, 또 안정된 느낌을 준다. 바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 떠나간 연인이 돌아오는 것, 잃어버린 물건이 돌아오는 것처럼. 따뜻하고 안정된 나만의 시간이 돌아왔다.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향초 내음을 맡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워싱턴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면서 생각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타지에서 지내면서 다른 언어와 다른 환경에 노출되다보니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언제나 꽉 잡아두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충분히 나만의 시간을 갖고 글을 써야 한다

워싱턴에서
2014-12-24, 11:21AM at Starbucks around Dupont Circle #1. 나는 여전히 한국 시간에 어제 찍은 사진들을 다음 클라우드에 올리면서 알아챘다. 나는 여전히 한국 시간에 살고 있다는 걸. 폴더에 적힌 날짜가 하루씩 빠르게 입력돼있었다. 육체적인 시차는 하루만에 극복했다쳐도, 정신적인 시차는 쉽게 극복하기 힘든거구나 싶다. 아무리 외국에 오래 살아도, 내 몸에 20년 동안 각인돼있던 한국 시간을 바꾸는 건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2. 비행 스케줄을 변경했다 1월 10일 예정이던 귀국 날짜를 앞당겼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 중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공부' 때문이다. 워싱턴에 와서 여러 사람과

그와 뉴욕 여행, 나의 뉴욕 여행
그는 홀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긴 경유 끝에 도착한 낯선 땅에서 그는 뉴욕의 겨울과 그 자유로움에 사로잡힌다. 기회만 있다면 이 곳에서 살고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그를 가득 채운다. 뉴욕행 비행기 안에서 10여 년 전 아버지의 미국 여정을 상상해본다. 나와는 조금 다른, 많이 닮은 모양새의 그것을.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삶의 방향을 찾아보고자, 나와 오빠에게 더 많은 미래 가능성을 선물하고자 하는 생각에서 떠난 출장 여행이었다. 정치가 국민을 소외시키고, 정책이 사회를 망가뜨리고, 사람이 사람을 외면해갈수록, 아버지는 다른 나라에서의 생활을 꿈꿨다. 특히 이곳에서의 큰아버지의 성공을 눈앞에서 목도한 아버지에겐 더더욱 절실한 과제였다. 지금껏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눈이 그토록

영화 '루시' 관련 개인 감상
최근 영화 감상들을 보면...루시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것으로 보여 제 생각을 나눠보려 글 남깁니다. 우선 저는 최근에 스칼렛 요한슨을 컬트적 요소가 많은 영화에서 자주 목격한 터라선입견?으로 무장하고 영화를 봤습니다만 (영화 "HER"은 루시와 비슷한 모티브로 보입니다) 일단 보는 재미가 있고 이리저리 지적인 자극이 많이 되는 영화이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제시되는 "루시" 라는 인간상을 인간의 궁극적 진화형으로 받아들이신다면(혹은 기타 긍정적인 동경의 이미지)아마도 제작자들 본연의 목적에 너무 쉽게 넘어가는 것 아닐까 우려됩니다. 제가 본 영화의 포인트는 이것입니다: -다윈의 진화설을 전제로 깔고 시작한다.인간은 Ape 에서 기원하며, 진화는 또 다시 Ape-인간-루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