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me Ishm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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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의, 루어만의, <위대한 개츠비>
나는 이 영화가 바즈 루어만 최고의 영화는 될 수 없어도, 어쩌면 디카프리오의 최고의 영화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그만큼 개츠비에 잘 어울리는 배우도 현재 없으며, 그것은 디카프리오를 위한 자리어야한다고 믿었다. 을 넘어서는 것은 디카프리오의 평생의 과업이겠지만, 그래도 팬으로서 이정도 기대는 가져도 좋지 않을까. 20대 초반 꽃미남 스타로 시작했으나 슬럼프와 한계에 부딪히던 중, 마틴 스콜세지를 만나며 그의 커리어는 일대 전환을 맞았다. 30대를 건너오는 동안 레오는 불안하고 이중적인 내면 연기에 특별한 장기를 발휘하며 자신의 연기 스타일을 쌓아왔다. 1974년생인 그는 이제 어느덧 불혹의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는 아이러니하

비상 근무, Bringing Out The Dead, 1999
뉴욕은 두 명의 감독을 보유하고 있다. 한명은 우디 앨런이고 또 다른 한명은 마틴 스콜세지다. 맨해튼 건너 브루클린에서 자란 공통점을 갖고 있는 이 둘은, 그대로 자신들의 영화 세계에 뉴욕이라는 거대한 짐을 짊어지고 걸어왔다. 하지만 둘이 그리는 뉴욕은 조금 다르다. 유태계인 우디 앨런이 그리는 뉴욕은 산뜻한 러브 코미디라기보단 강박과 편집적인 블랙 코미디에 가깝다. 그는 코미디 각본가로 시작했지만 그의 영화들은 마냥 포복절도 할 만한 영화들은 아니다. 우디 앨런의 영화들이 주는 웃음 코드는 대부분 고통과 결함으로부터 기인하기 때문이다. 반면 마틴 스콜세지가 그리는 뉴욕은 웃음을 빙자한 블랙코미디가 아니라 블랙 그 자체이다. 우디 앨런의 뉴욕이 풍자와 위트로 우리에게 어색한 웃음이나마
개츠비 단평
잘못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즈 루어만이 피츠제럴드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한 나에게 있는 것이겠지. 특히 개츠비의 마지막과 영화의 마지막 부분 각색은 헐리우드가 배드엔딩에 어떤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지 재확인시켜주는듯 해서 불편했다. 사실 한번 봐서는 잘 모르겠고.. 이번주에 다시 보고와서 다시 써야지. 신기하게 또 보고싶기는 하다.

트리 오브 라이프, The Tree of Life, 2011
영화평론으로 퓰리처상까지 수상한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영화평론가인 로저 에버트가 지난달 4월 4일에 사망했다. 그는 세상을 뜨기 하루 전날에도 자신의 블로그에,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하는 등 마지막까지 영화를 보고 글로 남긴 평론가였다. 영국 영화협회(BFI)의 월간지 'Sight & Sound'는 1952년부터 무려 10년에 한번씩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10선'을 선정해왔다. 로저 에버트는 이에 응답하여 2002년, 과 ,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등이 포함된 10편의 목록을 발표한 적이 있다. 10년 뒤, 'Sight & Sound'지가 2012년 다시 로저 에버트에게 물

언 애듀케이션, An Education, 2009
의 결코 잊을 수 없는 마지막 장면. 능선너머로 떨어지는 노을을 보고 주인공을 연기한 캐리 멀리건이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안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들과 너무나 뒤늦게 알아버린 서로의 사랑들이 함께 섞여 그녀의 볼을 타고 흐른다.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동의할 수 있겠지만, 그 장면에서의 그녀의 눈물은 청초하거나 애잔하다는 수식어로는 부족한, 마치 '따라 울고싶은 서글픔'을 동반한다. 캐리 멀리건은 귀여운 인상이라면 모를까 전형적인 헐리우드 미인형의 여배우는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배우다. 혼신을 다해 영혼의 연기를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아주 조금씩 자신의 매력을 은근하게 발산하는 배우. 잘 어울리는 짧은 숏컷의 헤어스타일로 자주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