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ary.邊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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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팩스(Halifax)+42: Weird Harbour의 커피와 중국집 외식
학원을 다니면서 바쁜 일상이 시작됩니다. 잠이 덜 달아난 아침, 이른 시각에 몸이 적응할 때까지 커피의 힘을 빌려 봅니다. 학원 근처에 슬쩍 보기에도 - 많은 사람들과 거침없는 커피만드는 손길, 그리고 차가운 공기를 가르는 커피 향기의 질 - 솜씨가 좋아보이는 곳이 있어 잠시 앉았다갑니다. 가게 로고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 중세시대의 엠블렘을 연상시키는 방패에 가게 이름에서 딴 W와 H, 항구를 뜻하는 갈매기와 파도가 들어 있습니다. 로고 뿐만 아니라 커피와 파이도 제 취향입니다. 저는 좀 신맛이 도는 커피를 좋아하는데 여기 원두가 그렇더군요. 아내가 좋아하는 자바카페의 원두는 좀 구수한 맛이 강해서...게다가 아내는 저에게 커피를 잘 주지 않습니다. 띵 한 머리를 커피로 깨우고 학원으로 발걸음

할리팩스(Halifax)+41: 비건용 글루텐프리 김치를 시험삼아 만들었습니다.
설명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서 간단하게 정리하면, 파머스마켓에서 김치를 팔고 있는(!) 영국여인(!!)을 알게 되어, 그 사람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가 김치 만드는 법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젓갈을 못 찾아 젓갈 없이 담근 우리집 김치를 맛보고 괜찮다고 느낀 제시 - 그 영국여자 - 는 비건(Vegan)용에 글루텐 프리 - 밀가루를 쓰지 않고 - 용 김치를 만들어 볼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 날이 목요일이었지요. 그래서 그 전에 다시 한번 집에서 김치 담그는 법을 복습해 보았습니다. 잘 되서 파트타임 잡이라도 얻게 되면 더할 나위 없고, 적어도 여기에서 친구 한 명은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요. 사실 이 모든 사태는 추진력이 넘치는 아내가 다 저지른 일이라서 저는 그냥 쫓아만 가고 있습니

할리팩스(Halifax)+40: 일요일 공원에서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8월에는 2시부터 4시, 공원에서 콘서트를 합니다. 장르는 다양하게 재즈부터 컨템퍼러리 락까지. 그런데 오시는 분들은 언제나 연령대가 좀 지긋하신 분들입니다. 정자라고 표현하기에는 좀 애매하지만, 아무튼 정자 같은 곳에서 연주자들이 연주를 하면 그 앞에 늘어선 벤치에 사람들이 앉습니다. 하얀 머리가 송송 피어난 것이 목화꽃송이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 한켠 벤치에 앉아 햄버거나 롤, 도시락이나 쿠키를 먹습니다. 노인은 사랑하지 않는다 누가 그랬습니까. 음악에 맞춰 즐거이 춤을 추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습니다.그 춤사위 옆에 전동차를 탄 분이 조금 슬퍼보이는 것은 저의 기분일까요. 음악이 끝나갈 무렵 담은 한 컷에는 여름인데 문득 가을의 그림자가 보입니다. 가을이 되면 이 공원도

할리팩스(Halifax)+39: 요가와 페리에서 일상이 시작됩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침에 일어나면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침에 일어나면 일상이 시작되겠지요.반복. 그리고 의무. 반갑지만 그와 동시에 지루한 것들. 일어나면 거실에 요가매트를 펴고 유튜브의 동영상을 보며 20분간 요가를 합니다. 가구라고는 어제 산 전등 밖에 없는 거실은 빨래를 말리고 운동을 하는 곳일 뿐, 손님도 소파도 없습니다. 월요일 부터 어학원에 다니면 페리도 일상이 되겠지요. 여름이든 겨울이든 눈이오나 비가오나 이제 8시에는 페리에 타서 할리팩스로 '가야합니다.' 그 페리의 풍경, 지금은 탈 때마다 눈이 부신 하늘과 폭신한 구름에 감탄사가 나오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겠지만 아마 어느 순간이 되면 옆 자리에 앉은 아저씨의 표정처럼 심등렁해질 때가 올 것입니다.

할리팩스(Halifax)+37:어학원에서 배치고사를 봤습니다. 그리고 라자냐...
8월17일, 그러니까 어제 일입니다. 한국과 캐나다의 시차로 지금 저는 8월18일 오후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포스팅을 하는 시점과 실제 사건 발생시점의 간극이 없어질 터이니 좀더 편하게 글을 쓸 수 있겠네요. 여하튼, 저는 어제 어학원 배치고사를 보았습니다. 이곳에는 꽤 많은 어학원이 있지만 저는 그 중에서도 한국인이 제일 적은 것으로 알려진 조금 오래된 곳을 선택했습니다. 중국 언어연수 시절, 부족한 중국어라도 할 수 있게 된 것은 중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많이 얻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이 주변에 많으면, 아무래도 한국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지요. 힘들어도 많이 말하고 듣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대학시절 교수님이 그랬었습니다. 병과에 비교한다면 어학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