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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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숲 (2017)

비밀의 숲 (2017)

멧가비|2017년 8월 1일

초반 몰입도를 겪으면서는 이소룡의 "절권도"가 떠오른다. 절권도를 일종의 철학으로 풀이할 때, "쓰지 않을 동작은 버리라"는 말을 이소룡은 곧잘 하곤 했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미덕은 군더더기가 없는 것이다. 이른바 "감초"라는 이름으로 관습처럼 투입되는 코미디 담당 캐릭터가 없고, 주인공을 위기에 빠뜨리기 위해 갑자기 지능이 떨어져 뻔한 함정에 빠지는 등의 속 터지는 전개도 없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녀 두 주인공이 티격태격 하다가 어느 새 사랑에 빠진다는 시시껄렁한 플롯을 배제한 것이 가장 좋다. 몰입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로만 채워졌음에도 밀도는 높다. 잘라 말하면 맥거핀 투성이다. [사망유희]의 이소룡이 사망탑을 오르며 새로운 고수들을 만나듯, 맥거핀 하나가 나타났다 사라지면 또 다른

더 기프트 The Gift (2015)

더 기프트 The Gift (2015)

멧가비|2017년 7월 26일

답답하지만 현실적인 답인 것들이 있다. 현실이기 때문에 답답한 차선책이 있다. 사적 처벌을 허용하지 않는 문화권에서, 폭력의 피해자가 해소되지 않는 응어리를 처리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목 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 근본부터 양아치인 종자가 뉘우치고 사과할 줄 아는 "인간"이 되길 기대하느니, 고든은 피해자신 자신이 피해자 이상의 그 무언가로 변화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고든의 복수 과정은 엉뚱한 교훈을 주기도 한다. 추측컨대, 고든이 처음부터 복수를 계획하고 사이먼의 주변에 접근하진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그랬을 것이라는 직접적인 묘사는 없다. 다만 우연히 사이먼을 마주쳤을 때 부터 이미 복수의 첫 단추가 끼워졌을 것임은 추측 가능한 부분이다. 기회가 우연히 다가왔

유 아 넥스트 You're Next (2011)

유 아 넥스트 You're Next (2011)

멧가비|2017년 7월 26일

집 바깥에서 침입을 시도하는 나쁜 놈들과 자신을 보호하려는 서바이버의 대결. 굳이 작품을 특정해서 제목을 대지 않더라도 흔해 빠진 이야기다. 흔한 만큼 부담 없고, 조금만 변화를 줘도 언제든 즐길 수 있는 고정 레퍼토리. 즉, 이 역시 하나의 장르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년 전, 영화 [베이컨시]를 보면서 문득 상상한 적이 있다. 저렇게 음흉한 무차별 살인마들이 불특정 다수를 타겟으로 삼는데 그 중에 우연히 성룡이나 장 끌로드 반담이 있다면? 혹은, 레이저 무기 적당히 갖춘 외계인들이 지구에 침공했는데 그 지구에 [엑스맨]들이 있다면? 그저 장르 파괴에 대한 공상이었지만, 그 오래 전 공상을 문득 다시 떠올리게 하는 무언가가 이 영화에 있다. 간단하다. 집에서 방어해야 하는 주인공이

혼밥이 사회적 자폐라고 말 하는 사람

멧가비|2017년 7월 26일

1. 사람들이 밥을 혼자 먹으면 사회의 유대 관계가 심각하게 단절되기라도 한다고 생각하나보다. 타인과 교류하는 창구가 얼마나 많은데 그깟 밥 하나 혼자 먹는다고 자폐라니. 세상을 얼마나 단순하게 보길래 그런 호들갑을. 밥은 그냥 밥이다. 같이 먹어도 좋겠지만 혼자 먹는 게 그 보다 나쁘거나 열등하지 않다. 전적으로 개인이 선택할 문제다. 완벽히 자유로워도 되는 일에 옳고 그름을 나누고 심리적 강제성을 부여하려는 "으르신네들"의 그런 삿대질이 지겨워 혼자 밥 먹기를 택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2. 여유로워서 혼밥을 한다는 혼밥족의 말이, "여우의 신 포도"처럼 사실은 진심이 아니다? 사실은 같이 먹고 싶은데 혼자 먹는 처지에 대해 혼밥족이 정신승리 한다는 소리다. 자기가 원하는 대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2016)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2016)

멧가비|2017년 7월 25일

서부극 은행강도물인 척 짐짓 시작하지만 껍데기 깐 알맹이는 가족 드라마다. 저 둘이 은행강도가 아니라 어떤 이야기에 던져진 인물이라 할지라도 이야기는 대강 성립한다. 형제애, 그것도 사막의 지렁이처럼 살려고 버둥대면서도 절대로 져버리지 않는 형제애를 다룬 이야기. 그럼에도 그것을 과시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는 [태극기 휘날리며]와도 같은 이야기이지만 그 보다 덜 수사적이다. 세련되려고 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세련됐다. 어쩌면 동시에 미국이라는 세계관에 대한 염세적 자조이기도 하다. 땅의 원래 주인이었던 코만치족의 후예든, 미국을 일으킨 텍사스 백인의 후손이든 지금은 모두 똑같이 버려진 땅에서 말라 비틀어지다 못해 모래 바람처럼 스러져 가고만 있다. 가난 대물림의 연쇄를 끊고 싶어서 선택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