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 beata vita.
Posts
166 posts
나들이.
평일에 미술관에 가는 것은 누릴 수 있는 큰 호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출근 기차를 타고 가는 길. 9년 전 인턴을 했을 때 애용했던 2층짜리 기차이다. 난 늘 2층에 앉길 좋아했다. Union station까지 가는 기차,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정장을 차려 입은 바쁘게 걷는 사람들 사이에 묻혀 조금이라도 더 어른스럽게 보이고 싶어했던 시절. 몇 번을 와도 매번 새로운 곳. 평일 이른 아침 미술관에는 아무도 없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난 이곳에 온 후 관람에 신경쓰일 정도로 미술관이 붐비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행여 다른 방문객이 있더라도 몇 분만 기다리면 곧 그 전시공간에 나만 남게 된다. 홀로 Rothko 그림에, Giacometti 작품에 둘러쌓이고, Modigliani

Arrival.
i. Arrival을 보고 (Amy Adams는 정말 다양한 얼굴을 지닌 배우 같다.) 언어, 소통, 공감, 이해에 대해 생각했다. 상대방의 언어를 습득한다는 것은, 내 언어를 가르쳐 준다는 것은, '같은' 언어로 소통한다는 것은. ii. 또 TV를 보다가 (앞부분은 놓쳐서 못 봤지만 아마도 정황상) 영국에 사는 프랑스인들을 인터뷰한 것이 나왔는데, 발렌타인 데이 스페셜인지 유독 사랑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그 중 흥미로웠던 것은 한 남자가 자신은 Je t'aime이란 표현이 너무나 의미있고 굉장히 무게감이 있어 거의 쓰지 않게 되는데, 그에 반해 (그의 모국어가 아닌) I love you는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빈번하게 사용되는 것 같아 놀랍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언어구사 능력이나 어휘력을

L'viv.
오래된 것, 낡은 것에 늘 정을 느끼던 마음. 색이 바랜 모습을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이라 부르고 과거를 미화하던 시간들. 그렇게 언제나 제멋대로 낭만과 의미를 부여했던 건 아닌지... 풍경을 멀리서 그렇게 지나치기보다, 자세히, 가까이서, 오래오래 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들의 구석구석 다채로운 삶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다시 가보고 싶은 곳들이 많다.

Ceský sen.
Czech Dream. 사회주의 붕괴 후, 물질만능주의 세상의 면모를 보여주고, EU 가입을 위한 체코 정치인들의 허상된 "체코 드림" 광고를 비판하고 싶었던 두 영화학도의 사기극. 2004년 다큐멘터리라고 하는데, 2017년 post-truth와 alternative facts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보아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다큐멘터리의 배경이 staged된 점이 또 신선했다.) 허위광고가 난무하는 세상에 그들의 사기는 국민들을 농락한 용납될 수 없는 범죄인가, 아니면 재치있는 실험일까. 난 저렴한 가격에 카메라와 생필품을 구입하려 "체코 드림"을 방문한 이들(-그들을 비판할 이유도, 그들이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을 보며,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생각하기 보다는 광고의

Blind.
보통 Love is blind.라고 할 때는 사랑에 눈이 멀어 상대방의 결점이 안 보인다는 것을 의미하겠지만, 이 영화를 보고 사랑에 눈이 먼다는 것의 다른 의미를 알게 된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라고 했던 어린왕자의 말처럼, 루벤의 눈이 먼 사랑은, 사랑이란 것에 시야가 가려져 앞뒤를 헤아리지 않는 무모한 사랑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을 사랑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루벤의 마지막 선택이 내게는 눈에 보이는 것(-이 또한 마리의 본질이겠다-)을 외면하고 눈 감아 버리는 모습이 아니라, 그의 사랑의 방법을 알려주려는 행동이라 비춰진다. 루벤은 사랑하는 이의 결점도 응시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 기꺼이 질끈 눈을 감을 수 있는 수 있는 용기 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