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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3

뉴욕 3

한량|2015년 8월 25일

지천에 만개한 햇살. 얼린 생수병은 이미 미지근해졌다. 더위를 피할 곳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잠시 그늘을 찾아 손 안의 지도를 들여다본다. 몇 번 검지를 문지르는 사이, 즉각적인 선택지들이 펼쳐진다. 쇼핑몰, 미술관, 공원. 어쩌면 이 셋의 조합이 뉴욕이 아닐까. 그때의 기분에 따라 나는 셋 중 하나를 선택했다. 이 날은 공원이었다. 여행자는 도시의 겉면을 본다. 내밀한 삶 속으로 들어가 보고픈 욕망이야 언제든 넘쳐나지만, 결국 겉면만을 문지르다 돌아오게 된다. 내가 뉴욕 주의 세금 정책과, 데이케어 제도와, 공공주차 제도에 대해 어찌 알 수 있을까. (반면, 서울에 대해 물어보라. 나는 구구절절 서울살이에 토로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 볼 수 있는 인상들이 있다. 여행지에서 나는 종종 '해도

뉴욕 2

뉴욕 2

한량|2015년 8월 24일

로어이스트사이드의 스튜디오를 빌렸다. 나는 열하루동안 여기에 머문다. 캐리어를 열어, 열하루동안의 일상을 위해 짐을 푼다. 세면 도구와 화장품들을 거울 앞에 늘어놓는다. 노트북을 비롯한 각종 전자기기들은 한데 잘 모아둔다. 캐리어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던 봉투에서 그날 그날 일용할 달러를 꺼내 지갑에 넣는다. 무겁게 이고 온 햇반들도 부엌 한 켠에 자리를 잡는다. 오직 헤드윅을 위해 가져온 원피스도 곱게 걸어둔다. 아무 것도 기록되지 않은 필름들도 줄을 이어 세워둔다. 그렇게 뉴욕에서의 날들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스튜디오는 서서히 자취방으로 변해갔다. 별다르게 할 일도 약속도 없는 그런 자취생의 방. 세상 모든 하릴없는 시간들이 고인 공간. 모아둔 빨랫감을 들고 동네의 코인 세탁소에 다녀온 오후

뉴욕 1

뉴욕 1

한량|2015년 8월 15일

필름 카메라의 결과는 여행이 끝난 후에야 알 수 있다. 나는 내가 들여다보는 구도의 수평과 빛의 질감을 확신할 수 없다. 막연한 기대와 불안이 섞인 채로 렌즈 캡을 닫고 종종거리며 자리를 뜬다. 그래서 필름 카메라와 여행을 할 땐, 여행의 끝도 굉장히 기다려진다. 무거워진 가방을 정리하는 마음은 되려 홀가분했다. 돌아오는 길은 갈 때만큼 힘들지 않았다. 비행기가 훨씬 더 노후했음에도. 두 번의 기내식과 한 번의 샌드위치, 그리고 수십 잔의 물을 마시는 사이 인천이 가까워졌다. 나는 비행기와 건물 사이의 연결 통로를 지나며 고국의 습도와 온몸으로 맞닥뜨렸다. 익숙한 불쾌와 희미한 반가움. 그것은 조국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혼자만의 사투

한량|2015년 8월 3일

이상한 저주에 걸렸다. 잠이 오질 않는다. 겨우 겨우 잠이 들면, 마치 알람을 맞춘 것 처럼 세 시간만에 눈이 떠진다. 태평양을 건너는 사이 꼬인 시차가 영 회복되지 않는다. 이게 네다섯 번을 반복되니, 신기하기보다 걱정이 되었다. 더워서 그런 것일까 해서 얼린 페트병과 함께 눕기도 하고, 낮잠 없이 종일 걸어다니기도 했다. 그렇지만 어김없이 눈이 떠진다. 잠드는 시간만 조금씩 빨라졌을 뿐. 그러니 아침 다섯시에 일어났다가, 세시에 일어났다가, 급기야 두시에 일어나기도 했다. 이걸 어쩐단 말이냐. 게다가 어제는 더위라도 먹은 듯 얼굴이 뜨겁고, 신열이라도 오르는 것 같아 겁이 덜컥 났다. 잠이라도 조금 더 자야 체력 회복을 기대할텐데. 하며 안절부절 못하다 결국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섰다. 금요일 밤의 흔

낮과 밤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낮과 밤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한량|2015년 8월 1일

아직은 밤낮이 오락가락하는 상태. 날씨에 또 유난히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인데다, 여행에선 그걸 하나 걸러줄 필터도 없다. 예를 들어, 출근이라든가 어떤 스케줄이라든가. 정해진 일정과 반드시 해야 할 리스트도 없다.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엔, 조용한 까페를 찾았다. 첫손님이 되어 들어간 까페에서 이른 커피를 마시며 책을 구경한다. 일층과 이층에는 섹션별로 다양한 책들이 놓여있다. 이리저리 뒤적여도 봤다가 조용히 자리로 돌아온다. 가방 안에 넣어온 책을 편다. 사람이 없어 그랬을까. 도서관 느낌이기도 했다. 책장을 술술 넘기며, 터지는 몇 번의 웃음을 참아가며 읽었다. 여행지에서 여행기를 읽는 느낌은 좋다. 게다가 그것이 하루키라면 더. 돌아오는 길, 잠시 장을 본다. 방대한 양의 진열장 앞에 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