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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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8
여름 여행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지천이 푸르다. 청명한 하늘, 무성한 나무 그늘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나는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의 하루 하루는 어떨까. 가게 유리창에 걸린 바캉스 안내문을 마주치면, 그들은 어디로 여행을 떠났을까 상상했다. 지도를 검색하고, 교통 편을 예약하고, 짐을 꾸려 떠나는 여정. 상상은 지구를 돌고 돌아 서울에 가닿았다. 런던 사람들에게 빨간 이층 버스는 교통 수단이고, 파리 사람들에게 에펠탑은 늘 익숙한 배경이듯 생활인이 보는 도시는 그저 밋밋하기만 하다. 익숙한 도시에서 우리는 무감각하게 걷는다. 표지판 하나 보지 않고, 가장 빠른 환승 출구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가방을 여미며 행인들을 관찰할 새도 없다. 서투르고 어색한 인삿말로 인포메이션을 두드릴 일도 없다.

파리에서 7
여행자의 눈은 다르거나 비슷한 것을 찾는다. 서울에서라면 살필 겨를도 없이 지나치고 말았을 것들이 하나하나 들어온다. 낯선 언어의 그래피티, 생김새가 다른 신호등, 지하철의 광고 표지판. 도시의 가로수, 나는 비둘기, 낮은 건물들이 만드는 스카이라인, 그리고 하늘.물감을 푼 듯 푸른 하늘이다. 썬글라스를 벗으면 눈을 똑바로 뜨기도 어려울 정도. 덕분에 나의 시선은 얌전해진다. 공원을 걸으며 온몸에 볕을 흠뻑 받는다. 모래길을 따라 한참 터덜터덜 걷다 슬그머니 그늘로 숨어든다. 넓은 공원 곳곳에 철제 의자들이 놓여있다. 그 의자들이 마음에 들어 유심히 관찰한다. 색깔은 하나, 종류는 세 가지. 나는 그중 등받이가 뒤로 젖혀진 의자가 가장 좋았다. 앉아 기대면 자연스레 몸이 반쯤 눕는다. 팔걸이에 팔을 걸치면

파리에서 6
알람 없이 일어나 아침을 챙겨먹은 후 씻고 옷을 갈아입는다. 카메라와 필름, 책을 챙기고 집을 나선다. 열쇠로 문을 잠그고 거리에 나온다. 아마도 일요일. 어렴풋하게 요일을 짐작하고 해가 기우는 것과 배가 고픈 정도로 시간을 가늠할 수 있는 것. 출근하지 않는 자의 호사다. 어디를 갈까 점쳐보다 튈르리로 정한다. 그쯤 가면 다시 마음 내키는 대로 동선을 정할 수 있으니까. 책에서 보던 미술관들이 지척이고, 코 앞엔 강이 넘실댄다. 강을 따라 몇 개의 다리를 지나다 보면, 우람한 성당과 마주하고 그 앞에 앉아 첨탑의 그늘이 광장을 지나는 것도 볼 수 있다. 그쯤 하여 시떼 섬 어귀에서 유람선을 탈 수도 있고, 조금 더 걷고 걸어서 유서깊은 대학가를 거닐 수도 있다. 튈르리 공원으로 가기 위해 집에서 가까운 지

파리에서 5
그 쇼파에 껌처럼 눌러 붙어서 갈 만한 곳들을 검색해 본다. 별점이 많은 피자집이 근방에 있다. 몇 골목을 채 건너지 않아 나오는 집. 실내엔 아주 좁은 주방과 카운터 뿐, 테이블은 가게 앞 골목에 놓여 있다. 이십여 분 후에 저녁 영업이 시작한다고 앉아 기다리면 된단다. 기다리는 김에 맥주를 하나 시킨다. 빼곡히 일렬 주차된 차들 사이로 지나는 사람들을 본다. 몇 개의 테이블은 금방 찬다. 다들 피자를 기다리며 술을 마시고 있다. 내 앞엔 아가씨들이 모여 앉아 수다를 떤다. 동네 친구인가보다. 때는 여름이라, 저녁이지만 해가 훤하다. 수다를 떨다 지나던 친구가 인사하며 다가오자 볼을 부비며 비쥬를 한다. 나도 나의 동네 친구들을 생각한다. 집 떠나 학교 근처에 엉겨살던 우리들. 서로의 집은 지척이라 늦은

파리에서 4
공원을 둘러 집에 들어오는 길, 근처의 모노프리에 들린다. 일층의 생활 용품은 곁눈으로만 스치고 곧장 지하 슈퍼마켓으로 내려간다. 바구니 하나를 끼고 천천히 돌아본다. 진열된 과일과 야채를 들여다본다. 과자들은 건너뛴다. 음료 코너에 서서 한참을 구경한다. 나는 이런 시간이 즐거웠다. 낯선 도시, 처음 가보는 거리에서 캐리어 하나의 짐을 풀고 나면 그 집이 당분간 나의 머물 곳이 된다. 나는 잠시 내 것이 된 냉장고를 채우기 위해 장을 본다. 여행과 일상이 겹쳐진 느낌이다. 결국 왜 기를 쓰고 돈을 쓰고 고생을 자처하며 바다 건너 산을 건너 떠나는 지에 대한 답이 될 것 같다. 나는 왜 여행을 하는가. 봇짐 하나에 지팡이만 들고 길을 떠나던 때엔 어떠했을까. 운 좋으면 살아 돌아오고, 운 나쁘면 객



![[CV] [Comi] 'ファイブスター物語'(더 파이브 스타 스토리즈) 19권. 연재분에서 벌어지는 '검성 대 검성'](https://img.zoomtrend.com/2026/06/06/1780766083-ECB2ABEB93B1EC9EA5EB8DB0ECBD94EC8AA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