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그리고 핏빛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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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와 다보탑
지금은 거의 흔적이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불국사 주변이 못으로 둘러쳐져 있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연못은 당시에 비해서는 훨씬 축소된 것일 뿐 아니라 나중에 위치도 확인하지 않고 판 것이다. 그래서 지금 불국사의 다리를 건너가면 거대한 연못을 건넌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동쪽의 청운교\백운교와 서쪽의 연화교\칠보교 계단 아래에 뚫려 있는 아치형 문이 옛날 물이 흐르던 물길이라고 알려준다. 그 물길 덕분에 옛날 불국사를 멀리서 보면 물안개에 싸여 물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원래 유서 깊은 건축물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자세히 알고 보면 계단 하나 하나에도 다 뜻이 있다. 청운교\백운교만 해도 그렇다. 아래쪽의 청운교와 위쪽 백운교의 계단 숫자를 합치면 33개다. 부처의 경지까지 가는
다른 방송사에서 KBS 역사저널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이유
그동안 일이 좀 많이 밀려들어서, 작성해서 올리는 글을 좀 자제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역사저널로 검색해서 들어오는 일이 많아, 주워들은 말 한가지만...얼마전 모 방송사 간부와 점심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역사 저널 이야기가 나왔다. 좀 비판적인 쪽으로... 이유인 즉, “이건 공영방송인 KBS가 취할 컨셉이 아니다‘라는 것. 조금 구체적으로 요지를 보자면 이렇다. 이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7%정도 나온다고 한다. KBS 측에서 시청률보다 더 좋아하는 점은 제작비가 패널 몇 명에 들어가는 정도로 이 정도 시청률을 올린다는 점. 하지만 이런 구조는 케이블이나 교육 방송 컨셉이지 KBS 가 추구할 방향이 아니라는 점이 불만의 요지라고 할 수 있다. 얼핏 보기에는 ‘남의 방송사가 저비용 고효율 프로그램 개발해서
기황후를 위해 바꿔버린 역사적 사실들
드라마 기황후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기를 바라는 건 무리지만. 최근 몇 편은 좀 심하게 바꾼 듯. 이중인격자로 묘사된 두 번째 황후 바얀 후투그. 실제로는 꽤 조용한 성격의 착한 여자였다는데... 게다가 곱게 죽은 사람은 사약받아 죽었다고 만들어 놓았으니.또 꽤 비중있는 인물로 설정된 백안. 그가 국수주의 성향이 강했던 건 맞는데, 죽은 이유는 황제보다 더 위세를 부리고 다니다가 위협을 느낀 황제의 미움을 사서다. 드라마에서처럼 황제는 죽일 생각 없는데 기황후가 음모 꾸며 죽인 것은 아니다. 사실 백안을 제거할 때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건 조카 탈탈이다. 드라마에서처럼 개인적인 연민에 눈물 쏟으며 직접 찌르는 짓을 한 건 아닐텐데... 그는 숙부를 제거할 의사가 있느냐는 황제의 물음에 ‘공은 공이고, 사는
짬뽕이 된 역사-드라마 기황후
이 드라마 처음부터 실제 역사와는 담을 쌓겠다고 시작한 것 같지만... 그래도 드라마 시청율이 높다고 하니, 이것보고 진짜 역사까지 헛갈리는 사람 많아질 것 같다. 우선 원이 타환 재위 시절에 대규모 정복전쟁에 나섰다는 점부터 조금 어폐가 있다. 이 시기 원은 사방에서 일어나는 반란 때문에 주변에 그렇게 대규모 정복전쟁을 일으킬 상황은 아니었다. 그리고 복위한 왕유가 원에 조공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당시 중원을 장악한 제국은 조공-책봉관계 이외에는 관계를 맺지 않았으니, 조공을 가지 않겠다는 것은 지금식으로 말하면 단교를 하겠다는 뜻이 된다. 실제로 비슷한 행동을 시작한 시기는 공민왕 때이고, 이조차 한꺼번에 하지 못하고 많은 파란을 겪었는데. 실제 역사에 별 관심 없는 드라마이니 한참 앞서 가보겠
드라마 정도전에서 말하는 사대의 원칙
2월 9일 방영된 드라마 정도전에서 재미 있는 장면이 나왔다. 명이 고려 사신의 입국을 불허하면서 이인임이 사신으로 올 것을 요구했다는 설정. 이 때 정몽주가 ‘내정간섭을 하는 것은 사대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식으로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정말 ‘사대의 원칙’이라는 것 중에 이런 것이 있었을까? 원래 내정간섭이라는 개념부터가 민족자결주의에 입각한 독립국가 개념이 확립된 근대 이후에나 적용될 개념일텐데.. 사대는 작은 세력이 큰 쪽을 섬긴다는 개념이고, 고려말을 비롯한 전근대라는 시대는 독립국가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러니 정몽주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 나왔을 리가 없을 것. 그리고 공물에 관한 문제도 그렇다. 여기서는 명에서 고려의 제정이 흔들릴 만큼 많은 공물을 요구하며 외교적으로 압력을 넣어왔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