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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 잭의 집](2018)

|2019년 3월 8일

라스 폰 트리에 영화 중 최고작임은 틀림없다. 그의 영화 중에 애초에 불쾌하지 않은 영화는 없었고, 이 작품은 단언컨대 내가 본 감독의 전작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불쾌하다. 여성들 겁나 죽어나가고 심지어 유아도 죽어나간다. 칸 상영 때 문제가 됐던 여성 신체훼손과 유아살해 장면은 심의등급 조정차 일부를 잘라냈다는 걸 봐서 더 노골적으로 찍어뒀음에 틀림없다. 죽음에 대한 연민이 없는 사이코패스를 그렸으므로 작품 속 캐릭터의 죽음 또한 그 속에 연민의 시선이라곤 없다. 작품 속 피해자들의 죽음은 주인공에 의해 문자 그대로 '건축자재'로 사용되고 피해자의 시신을 비추는 카메라의 시선 또한 그러하다. 공학과 건축에 대한 편집증은 사이코패스 주인공을 설명하는 설정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의 중심 주제가 어떤

[사울의 아들](2016)

|2018년 12월 21일

아웃포커싱이 주인공인 영화다. 카메라는 집요하게 사울의 목덜미 뒤를 좇고, 목덜미 너머로 아우슈비츠의 참상이 블러 처리된다. 만약 그것들 모두가 팬포커싱으로 스크린에 형형하게 그려졌다면 이 영화는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목덜미 너머 초점이 모조리 나간 부분이, 이 영화를 다른 홀로코스트 영화와 다르게끔 만들었다. 제국의 폭력에도 민족해방운동의 폭력에도 모두 손을 들어주지 않으면서, 조중동이 제일 좋아할 법한 수정-수정주의적 주장으로 빠지지 않고 제국의 통치가 얼마나 심원한지를 밝히는 것은 탈식민주의 비평의 기본적인 착상이다. 멀리 갈 것 없이 군사독재와 운동권을 동시에 까는 봉준호 감독의 (2003)을 떠올리면 되겠다. 그렇다면 그 둘을 어렵게 밀쳐두고 대체 뭘

[안시성](2018)

[안시성](2018)

|2018년 9월 22일

조인성이 연기를 못하는 건 온 천하가 다 아는 일인데, 그 낮은 기대치보다는 이 영화에서의 조인성은 나쁘지 않다. 조인성은 연기의 폭이 좁은 배우고, 그 좁은 폭을 감독과 작품이 어떻게 써먹느냐에 따라 연기의 퀄이 확확 달라진다. 잘 써먹힌 쪽이 라면, 전혀 안붙었던 쪽은 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 영화에서의 그는 그래도 잘 써먹힌 쪽에 속한다. 작품이 기도하는 고구려 남성의 털털하고 투박한 멋과, 조인성의 뭔가 어긋난 듯한 연기가 그럴싸하게 어울린다. 이 영화는 어떠한 모험도 하지 않는다. 고구려가 안시성에서 당태종의 대군을 물리쳤다는 이야기는 이순신의 전과처럼 전국민이 다 아는 이야기다. 영화는 그 전국민이 다 아는 이야기를 집요하게 훼손하지 않으려

[버닝](2018) : '이야기'를 통한 희망과 절망

[버닝](2018) : '이야기'를 통한 희망과 절망

|2018년 5월 20일

이 영화의 문법은 확연히 비대중적이고, 관객이 많이 안 들 것이며, 바로 그 부분이 영화제에서 각광받는 요소가 되리라 확신한다. 그 부분에 대해 두 가지만 짚자면 다음과 같다. 일단 이 영화는 유아인의 1인칭 시점으로 일관하는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1인칭 시점의 주인공의 편을 결국 들어주지 않는다.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 외의 묘사가 이창동스럽지 않게 거의 전혀 없는 걸 이런 식으로 뒤집는 것은 꽤 흥미롭다. 가령 이 영화 속 유아인은 전형적인 수줍은 한남이고, 거기에 대고 누군가는 여혐의 맥락을 캐물을 수 있다. 헌데 정작 영화는 이 유아인에 대해 별반 동의하고 있지 않다. 이게 이 영화의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만약 마지막 10분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지나치게 브레히트적이거나,

[1987](2017) : 장테일

[1987](2017) : 장테일

|2018년 1월 1일

* <1987>(2017) 두번째 관람. (스포일러 만땅) 첫 관람 때 못 봤던 부분이 보인다. 실화 이외의 영화적 터치를 어떻게 가미했는가를 중점으로 보았는데, 그 디테일이 꽤나 촘촘하고 두터워서 덕질하기에 딱 좋다. 먼저 박처원(김윤석 분)의 인물 묘사가 새로 들어온다. 예고편에도 등장하는 박처원의 대사 "내래 빨갱이 잡는 거 방해하는 간나들은, 무조건 빨갱이로 간주하갔어" 앞에는, 남영동의 휘하 요원을 잡아다 고문한 경찰 측 간부의 "감히 각하의 명령을 어기고"라는 대사가 놓인다. 박처원이 실제로 조직 보위에 예민했다는 점에 비추어 자기 조직을 건든 데 대한 분노로 읽을 수도 있지만, 더 파고들어볼 구석도 있다. 국가와 정부가 다르다는 건 사학과 강의의 첫 시간에서 배우는 것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