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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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판> 비판하는 방법으로 부터의 부재

<영화판> 비판하는 방법으로 부터의 부재

ozwonsuv blog|2013년 2월 4일

한국영화, 문제 참 많다. 80년대 지독한 정치검열에의해서 이념에 부딛쳐 상영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영상예술은 국가의 정치적 이념을 전파하는 수단으로써 이용되고 그에 반하는 영화는 상영은 커녕, 만든 감독은 남산 지하실 어딘가로 끌려 가곤 했던 시절이 있었다. 문제는 이것이 오래전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87년 이후, 영화 검열자체가 해제되기 전까지 채 25년 전 이야기다. 한국영화의 황금기라 여겨지는 60년대에서 70년대로 접어들면서 독재정치는 이념의 문제로 영화를 짖밟았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지금. 영화는 자본의 이름으로 짖밟힌다. 대기업의 자회사 그룹들이 영화판에 진출해 말그대로 '수익이 되는 상품'으로써 산업에 꼬리를 틀었다. 1999년, 멀티플렉스 시대의 개막과 동시에 충무

남영동 1985

남영동 1985

토니 영화사 |2012년 12월 23일

말 그대로 고문 영화다. 시작부터 고문실에서 시작해서 후반부까지 고문만 받다가 끝난다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다. 당연히 박원상에게 큰 박수를 보내야 한다. 거의 모든 고문 장면을 대역없이 소화하며 그 고통을 느끼며 연기했다. 박원상 뿐만 아니라 이경영, 문성근, 명계남, 김의성이 이들의 21세기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사실 영화 속 고문 장면이 보기 힘든 수준은 아니다. 피부로 느끼는 영화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보기 힘들 정도의 고문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그 당시 고문관들이 피해자에게 외상을 입히면 안됐기에, 물고문이나 전기고문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연기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조금 멘붕이 오긴 했다만. 정말 중요한 것은 육체적 고문보단 정신적 고문일 것이다. 거짓된 사실을

유혹의 대열에 동참해 달라! <남영동 1985> 박원상

유혹의 대열에 동참해 달라! <남영동 1985> 박원상

루시드레인|2012년 11월 29일

고문을 당하는 사람만큼, 고문 가하는 연기를 펼친 배우도, 이 모든 걸 총괄하는 감독님도 는 쉬운 영화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럼요. 그게 이중고거든요. 어쩌면 저는 고문을 버텨내기만 하면 되는 거였어요. 하지만 명계남 선배님이나 이경영 선배님, 의성이 형님, 찬희, 중기는 이중고예요, 이중고. 그들 입장에서 제 상태가 왜 걱정이 안 되겠어요. 그런데 걱정하는 게 들켜버리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배로 힘드셨을 거예요. 그걸 모니터로 계속 봐야하는 감독님은 더 힘드셨을 테고요. 감독님은 고문하는 사람도 됐다가, 고문당하는 사람도 돼야했으니까요. 감독님이 그러시더라고요. “30년간 영화해 오면서 이렇게 힘든 작품은 처음이다. 고문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가 없는 이유를 알겠다”고요.

<남영동 1985> 응답하라 1985!

<남영동 1985> 응답하라 1985!

루시드레인|2012년 11월 26일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여기가 남영동입니까?” ‘여기’에 끌려온 김종태(박원상)가 고문관들에게 처음 하는 말이다. ‘여기’가 어디인가. 대한민국 땅 한복판에 버젓이 있는 ‘여기’는, 그러나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 같은 공간이도 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니다. 진실을 거짓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짓 자백만이 통용된다. ‘빨갱이’ 축출이라는 명목으로 당국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을 가차 없이 잡아들이던 시절, 고문 집행관들은 상대가 풀에 죽어 거짓 자백을 토해낼 때까지 각종 고문의 기술을 쏟아냈다. 물고문, 전기고문, 고춧가루고문… ‘여기’에 자유는 없다. ‘여기’엔 인권도 없다. ‘여기’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인가? ‘여기’는 남영동, 비인간적인 야만의 행위가 펼쳐지는 ‘남영동 대공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