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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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posts소년과 개 A Boy And His Dog (1975)
[매드 맥스 2]라는 포스트 묵시록 영화의 교본이 존재하는 데에 영향을 끼친 일종의 부모 작품을 꼽으라면 [죽음의 레이싱]과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이 바로 이 영화(와 원작 소설). 그런데 정신 나간 컬트 영화를 꼽을 때 [죽음의 레이싱]이 (다분히 로저 코먼 빨로) 꽤 빈번히 그 인기를 증명하는 것에 비하면 이 작품은 그 중요도에 비해 더럽게 인기가 없는 게 사실이다. 아무래도 [매드 맥스 2]로 대변되는, 뭐랄까 그 어딘가 처절하면서도 어딘가 데카당스적인데 끓어오르는 에너지도 충만한 묵시록 오락 영화등과는 하등의 결이 달라서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의뭉스러운 풍자극에서 [매드 맥스 2] 같은 막가파 활극이 사생아로 태어난 것이 기적이라면 기적이다. 하지만 기초적인 아이디어는 여기서 거의 완성되었
캐스트 어웨이 Cast Away (2000)
"불 구경, 물 구경, 싸움 구경 3대 구경"이라는 아주 못된 말이 있다. 즉, 인간이 타인의 고난과 생존 발버둥을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는 습성을 함축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주인공인 척 놀런드는 생존 투쟁이라는 쇼를 시연하는 엔터테이너인 셈이다. 로빈소네이드가 애초에 그런 장르이긴 하다. 불 피우고 물고기 잡아먹고, 왜 재미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재미있는 그런 구경. 관객에게 놀런드의 4년은 그런 의미이다. 아니 까놓고 말해, 무인도 분량에 메시지나 성찰 같은 게 있긴 어딨어 그냥 구경이지. 놀런드에게 4년은 끝에 무엇이 있을지, 끝이 있기는 한지 아무 것도 알 수 없이 막연하게 버틸 뿐인 삶이다. 살아있으니 계속 사는 삶, 그 삶을 지탱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형이
크롤 Crawl (2019)
장르물이라는 것의 성패는 똑같은 이야기를 이번엔 또 어떻게 썰 푸느냐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종의 이유로 통제에서 풀려난 무시무시한 괴수 혹은 육식의 포식자. 충분한 화력과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주인공이 저 무시무시한 이빨을 피해 어떻게 살아남느냐에 대한 이야기는 [죠스]에서 이미 틀이 잡혔고 스필버그는 [쥬라기 공원]으로 그것을 또 한 번 변주한다. 그 괴수가 악어라고? [앨리게이터]가 나온지 40년이 넘었다. 이미 크리처를 CG로 구현하는 기술력 조차도 임계점에 달해서 기술력만으로 티켓을 팔아치울 수도 없다. 정말 원점으로 돌아가 순수하게 재미있어야 한다. 장르 영화, 그것도 괴수가 나오는 영화에서 누구도 작가주의를 기대하진 않는다. "장르"화 된 시점에서 이미 뻔한 이야기
더 임파서블 Lo imposible (2012)
'재난물' 하면 롤랜드 애머리히의 이름이 즉각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이 영화가 당황스러운 것은, 그 재난물 황금기의 영화들이 관객에게 학습시킨 몇 가지의 공식들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상 현상을 예측하는 국가 기관이 없다. 모두가 코웃음 칠 때 홀로 헌신하는 과학자도 없고 성조기 그 자체인 해병대라든지 무감각하게 죽어나가는 군중이 없다. 영웅이 없고 내러티브의 인과관계도 없고 사필귀정, 권선징악의 메시지도 없다. 쓰나미 오고 사람 죽어, 그게 전부다. 영화에는 그저 타국에서 무력하게 다치는 평범한 한 가족이 있을 뿐이다. 거대 고릴라와 육식 공룡과의 삼각관계에서도 멀쩡하던 강철인간 나오미 왓츠는 죽음의 문턱을 반보 밟는다. 이완 맥그리거는 더 이상 포스가 함께하지 않아 막연히 가족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