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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 posts불가사리 (1985)
죽어서 영웅이 되거나 살아 남아 악당(혹은 골칫거리)가 되거나, 라는 오랜 딜레마는 대괴수에게도 얄짤이 없다. 탐관오리와 부패한 왕실을 필사적으로 격퇴해 준 수호신임에도 당장에 많이 쳐먹는다 타박하는 나약한 민초들의 태도는 순간 혐오스럽다가도 일견 동정과 이해가 간다. 농민들의 관점에서는 당장에 땅을 일굴 농기구를 빼앗아 가는 놈은 관군이든 수호신이든 다를 바가 없거든. 적을 물리친 힘이 계속 비대해지기만 한다면 결국 통제불능이 되어 그 힘의 주인에게도 오히려 해가 되어 돌아올 수 있는 법이기도 하고. 민중의 힘으로 왕조를 몰아내는 일종의 혁명 영화이기도 한데, 공산주의 국가에서 표리부동하게도 사실상 왕좌를 세습했던 김정일이 이 영화를 각별히 좋아했고 제작에 일부 관여하기 까지 했다더라. 대체
물괴 (2018)
이름을 남기는 괴수 영화나 매력있는 괴수 캐릭터가 조연으로라도 나오는 영화라면 대개 그 괴수의 탄생 배경이 심플하다. 혹은 하는 짓이 심플하다. 고지라는 피폭 당한 공룡, 한강 괴물은 독극물 쳐먹은 수중 생물이다. 심지어 킹콩은 그냥 존나 큰 야생 고릴라야. 초롱이는 어떠한고. 연산구이 수집한 정체불명의 외래종 생물이 역병 걸린 시체를 먹고 자랐다고? 일단 여기서 과부하 걸린다. 괴수의 탄생 배경이란 곧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와 직결 된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고지라]는 원폭의 트라우마를 재현, [킹콩]은 원시 자연의 공포를 어트랙션화 한 영화다. 봉준호 [괴물]은 주한미국 독극물 방류에 대한 문제제기가 깔려있었지. 그러니까 초롱이의 저 조잡하게 분산된 설정은 영화가 이것 저것 하고싶은 얘기가 존나
하녀 (1960)
한국전쟁 이후 전 국민이 경제활동에 참여하면서 소위 가정에 상주하는 가사노동자를 고용해야 할 필요성 또한 생겨나게 된다. 생활은 주부가 한다는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삶의 방식은 그것이 곧 필요악처럼 인식되어 근원적인 불안함을 잉태하게 되었으리라. 집에 사람은 필요한데 그 사람이 집안을 망칠 것이다라는 모순적이고 계층 혐오적인 공포는, 이은심에 대해 마치 존재 자체가 재앙의 근원인 것처럼 이물감 있는 묘사를 하고 있는 점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지방 극장 배급을 위해 추가한 분량, 영화 속 치정극을 극중극으로 설정한 일종의 메타픽션적 액자 구성은 영화의 완성도를 해친다는 게 중론이고 감독 본인도 맘에 들지 않아했다고 하던데, 나는 그게 있어서 영화가 더 입체적이고 흥미롭다는 쪽이다. "가정
헬로우 고스트 (2010)
[추격자]로 데뷔 대박을 터뜨린 나홍진의 차기작 [황해]와 극장가에서 맞붙었다. 처음부터 잘 돼 봐야 2차 시장의 히어로가 될 운명이었다. 그런데 [황해]를 이기고 흥행에 성공했다지. 그런데 정작 극장에서 본 사람보다 입소문 타고 재유입된 팬들이 더 많다지. 그러니까 이 영화는 컬트의 운명을 타고 났는데 컬트가 되지 못 했다가, 컬트가 아닌데도 컬트 대접을 받는 기묘한 컬트 영화라는 소리다. 이 영화에 감동을 받은 사람이 많다고들 하고 나 역시도 울었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 물어도 "걸작" 혹은 그 이하의 "명작" 대접도 받기 힘들 것이다. 즉,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결코 아니다. 눈물 버튼이 눌리기 전 까지는 클리셰 범벅에 유치한 코미디로 일관 되고, 배우들에 대한 연기 디렉션도 썩 좋진 않았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