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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라워 호가 상륙했던 플리머스(Plymouth)와 케이프코드(Cape Cod) 국립해안공원 비지터센터

반응형 지난 3월에 일주일의 짧은 대학교 봄방학을 한 지혜를 데려오기 위해서, 버지니아의 집에서 금요일 오후에 출발해 1박2일 동안에 약 750 km를 운전해서 토요일 오전에 보스턴 지역의 기숙사에 도착을 했다. 여름방학까지는 필요없는 짐들을 차 트렁크에 가득 싣고 기숙사를 나와서, 딸의 남친을 만나 함께 4명이 점심을 먹고는 헤어진 후에, 가족 3명이서 차가운 봄비가 내리는 도로를 남쪽으로 달렸다. 그래서 도착한 곳은 보스턴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의 남쪽에 있는 플리머스(Plymouth)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모녀가 비바람을 뚫고 차에서 내려 까만 모자를 쓴 칠면조와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그 아래에 '1620'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다. 우리의 목적지는 뜬금없이 바닷가 도로변에 세워진 저 기념관(?)으로 오른편에 보이는 안내판에 플리머스록(Plymouth Rock)이라는 제목이 보인다. 이 곳은 매사추세츠 주의 필그림 주립기념공원(Pilgrim Memorial State Park)으로 바로 1620년에 종교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Mayflower) 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이 상륙해서, 그들이 출발했던 영국의 플리머스(Plymouth) 항의 이름과 같은 마을을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 처음으로 건설했던 곳이다. 주립공원 안내판을 고해상도로 올려드리니 클릭 후 확대해서 내용을 직접 읽으실 수 있는데, 지금 찾아가는 기념관의 주인공(?)에 대한 역사가 잘 소개되어 있다. 그 분은 바로바로... 저 아래 모래사장 위에 놓여져 있는 저 바위 덩어리 되시겠다~^^ 모녀의 표정이 웃고는 있지만 "우리가 이 돌멩이 보려고 비바람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온거여?"라는 속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1620년에 메이플라워 호로 신대륙에 이주한 102명이 처음으로 밟은 땅이 바로 저 바위였다는데... 앞서 보여드린 안내판에 따르면, 상륙 후 120년이나 지난 1741년에 당시 95세의 할아버지가 "그 때 사람들이 저 바위를 밟고 내렸다 카더라~"라고 처음으로 말씀하셨단다. 그 후 지금 보이는 윗부분만 잘라서 박물관으로 옮겼다가 1880년에 숫자 '1620'을 새겨서 다시 바닷가로 가지고 왔고, 1920년에 상륙 300주년을 기념해서 '바위님'을 위해 이 기념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바위를 보호하기 위해서 감시 카메라도 설치를 해놓았는데 저 발자국들은 뭘까? 사실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영국식민지는 버지니아 남쪽에 1607년에 건설된 제임스타운(Jamestown)이지만, 거기는 영국회사들이 주로 빈민이나 부랑아, 전과자들을 배에 태우고 신대륙에 와서 오직 돈벌이를 목적으로 만든 식민지였다. 그래서 오늘날 미국인들은 신대륙의 이상과 종교적 열정, 개척정신을 가지고 여기 도착했던 102명의 사람들을 필그림파더스(Pilgrim Fathers), 즉 '순례의 조상들[巡禮始祖]'이라 부르면서 그들의 진정한 선조로 생각한다. 참고로 이주한 102명 중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온 청교도는 35명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절반 이상은 역시 식민지 개발회사의 이익을 위해 고용된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역사적인 여기 플리머스 마을에는 복제한 배인 메이플라워 2호(Mayflower II) 범선과 필그림 박물관 등의 볼거리가 있다지만, 저 기우뚱한 모녀의 자세에서 알 수 있듯이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고 추워졌기 때문에, 다른 곳을 더 둘러볼 형편이 아니어서 비바람이 좀 잦아들기를 바라며 바로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대서양을 건너왔던 사람들이 상륙한 곳이니까 동쪽 끝이라고 생각했던 플리머스에서, 다시 6번 국도로 한참을 더 동쪽으로 달리면 케이프코드 국립해안공원(Cape Cod National Seashore)이 나온다. 이 곳은 그 국립공원의 남쪽 입구라고 할 수 있는 솔트폰드 비지터센터(Salt Pond Visitor Center)이다. 비는 좀 멈췄지만 날씨는 계속 흐리고 추워서 적막한 비지터센터의 입구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비지터센터의 내부... 가운데 커다란 지도에서 플리머스는 서쪽 육지에 면해 있고, 갈고리처럼 툭 튀어나온 반도의 동쪽 끝이 케이프코드 국가해안이다. 그 아래쪽으로 역시 매사추세츠 주에 속하는 두 개의 큰 섬이 보이는데, 왼편은 '마사의 포도밭(Martha's Vineyard)'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휴양지이고, 오른편도 바로 허먼멜빌의 소설 에 등장하는 고래잡이 항구가 있는 낸터컷(Nantucket)으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봄방학 여행계획을 세울 때는 둘 중 하나라도 다음날 가볼까 생각했었지만, 3명의 뱃삯이 너무 비싸서 후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전시실로 들어가는 입구의 공원이름 아래에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책 의 저자로 매사추세츠 주 출신의 사상가 겸 수필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글귀가 씌여있다. 그는 이 바닷가를 좋아해서 4번이나 여행와서 감상을 기록했는데, 그 글들은 사후인 1865년에 책으로 출간되었단다. "어이 거기 앞에 가는 지혜야, 너 대학 선배님이시다~" 약간은 2% 부족한 느낌의 전시실이었지만, 이것저것 자잘한 볼거리가 많았다. 역시 앞쪽에 고래에게 작살을 던지는 그림처럼 옛날 고래잡이와 관련된 물품들이 많았는데, 포경선에서 다음 고래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한가한 시간에, 선원들이 잡은 고래의 이빨에 이렇게 그림을 새겼다고 한다. 코드곶의 '코드(cod)'가 제일 위에 보이는데, 당연히 우리에게도 익숙한 생선으로 입이 커서 '대구(大口)'라 불리는지 처음 알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에는 엄청나게 잡혔지만, 지금은 모두 개체수가 줄어서 어업에 제한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쪽 대서양 대구(Atlantic cod)는 한국에서 주로 먹는 태평양 대구(Pacific cod)보다는 더 크고 육질이 좀 달라서, 매운탕을 끓여도 맛이 별로 없다고 하니까 낚시 좋아하시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길이가 약 65마일(105 km)에 이르는 케이프코드에는 무려 18개의 등대(lighthouse)가 있는데, 전시실 가장 안쪽에 사진으로 걸려있던 가장 유명한 저 등대는 내일 직접 보기로 하고, 예약한 숙소를 향해서 갈고리의 끝쪽으로 30분 정도 더 운전을 해서 찾아갔다. 갈고리 끝의 마을인 프로빈스타운(Provincetown)에 있는 샌드캐슬 리조트의 스위트룸 거실에 들어오자마자 모녀가 오션뷰를 즐기며 감탄하고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오래간만에 따님을 모시고 하는 가족여행이라 엄마아빠가 좀 질렀음...^^ 이 날 밤에 진눈깨비가 내릴 정도로 추웠기 때문에, 이 발코니에서 못 먹고 거실에서 먹은 것이 옥의 티이기는 하지만... 이런 멋진 풍경이 보이는 숙소에서는 밖으로 안 나가고 점심 레스토랑에서 남아서 싸온 음식과 컵라면 등으로 저녁을 때우는 것이 진리였다. 오션뷰라고는 했지만 정확히는 이 바다는 동남쪽을 향하는 케이프코드 만(Cape Cod Bay)으로, 대서양 망망대해는 정반대쪽으로 언덕을 넘어가야 만날 수 있다. 보스턴이 고향인 지혜 남친의 아버지도 예전에 여기 케이프코드에 집이 있었다고 하던데, 보스토니안(Bostonian)들의 인기있는 여름 휴가지로 보스턴에서 배를 타고도 올 수 있는 프로빈스타운 마을과 또 케이프코드의 유명한 등대들을 둘러본 다음 날의 이야기가 별도로 계속 이어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스미소니언 재단과 박물관들의 역사를 알려주는 비지터센터인 스미소니언 캐슬(Smithsonian Castle)

스미소니언 재단과 박물관들의 역사를 알려주는 비지터센터인 스미소니언 캐슬(Smithsonian Castle)

스미스소니언 협회(Smithsonian Institution)는 영국인 제임스 스미슨(James Smithson, 1765~1829)의 유산을 기금으로 하여 미국 연방정부가 1846년에 설립한 교육재단으로, 현재 다수의 박물관과 도서관 및 연구센터를 운영하는 세계 최대의 복합 학술단체이다. 재단이 직접 운영하는 박물관들의 연간 총 입장객은 3천만명이 넘으며, 운영예산은 1조5천억원 정도로 2/3는 연방정부 예산으로 지원되고 나머지는 기부금 등의 자체수익으로 충당이 된다. 내셔널몰의 남쪽 경계인 인디펜던스 애비뉴(Independence Ave)를 따라서 워싱턴 기념탑을 지나서 주차를 하고 북쪽으로 올려다 보니, 나무들 사이로 미국 드라마 에나 정말로 나올법한 노르만(Norman) 양식으로 지어진 붉은 성의 첨탑과 망루가 보인다. 그래서 현재 이름도 '스미소니언 캐슬(Smithsonian Castle)'로 불리는 이 멋진 건물은 재단에서 1855년에 최초로 만들었던 박물관으로 현재는 스미소니언 비지터센터(Smithsonian Visitor Center)로 사용되고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간판과 출입문에 비지터센터라고 씌여있지만 스미소니언 재단과 그 박물관들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물과 설명이 있어서, 재단의 현재 20개 박물관들 중의 하나로 분류가 된다. 2월이 되었지만 아직도 추워서 두꺼운 파카에 털모자를 쓰고 나왔는데, 추운 워싱턴DC의 겨울 주말을 보내는데 박물관과 미술관 구경만큼 좋은 것이 없다~ 건물의 정면사진을 찍으려면 제법 걸어나가야 하는게 귀찮아서, 궁금해 하시는 분이 계실까봐 아래 옛날 사진으로 대신한다. 2011년의 워싱턴/나이아가라/뉴욕 봄방학 여행에서 찍었던 스미소니언 캐슬의 정면 사진이다.^^ 이제 DC의 여행객이 아니라 거주민이 되어서, 캐슬을 시작으로 해서 그 때 못 가본 뮤지엄들을 모두 돌아보겠다는 원대한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옆문을 통해서 바로 건물 중앙의 그레이트홀(Great Hall)로 들어서니 바닥에 재단의 설립연도와 이름이 타일 모자이크로 클래식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워싱턴 기념탑과 국회의사당 사이의 내셔널몰 항공사진에다가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 등의 건물들을 입체로 만들어서 붙여놓았고, 여기 캐슬만 가운데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잔디밭 좌우로 유일하게 입체가 아닌 빨간 지붕의 건물이 왼편에 하나 보이는 것은 미국 농무부(Department of Agriculture)가 입주한 관공서이다. 그레이트홀 내부는 자연사 박물관 및 도서관 등으로 사용되다가 1940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는데, 작은 기념품 가게와 카페가 있어서 홀에서는 간단한 식사와 휴식을 할 수 있다. 저쪽 너머로 건물의 동편은 재단의 사무실이 입주해 있어서 일반인들은 들어갈 수 없고, 반대쪽의 이 입구를 통해 건물 서편으로 들어가면 재단의 역사와 운영하는 박물관들에 대한 전시를 볼 수가 있다. 작년 2021년에 재단 설립 175주년을 맞아서 비지터센터의 장식과 설명 등을 모두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셔머홀(Schermer Hall)에는 "Welcome to Your Smithsonian"이라는 제목으로 재단의 설립에서부터 현재 세계 최대의 박물관군으로 발전하기까지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데, 사진 제일 오른편에 오늘의 주인공 모습이 보인다. 제임스 스미스슨(James Smithson)은 영국의 과학자로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하고 화학과 광물학을 연구했는데, 일반 과학 교과서에 이름이 나올만한 중요한 업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영국의 공작(Duke)이었던 아버지와 부유한 미망인의 혼외정사로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서, 양가로부터 막대한 부를 물려받은 덕택에 당시 유럽의 과학과 예술계에서 인맥은 대단했던 모양이다. 그는 자신의 전재산을 "미국 워싱턴에서 지식의 추구와 확산"을 위해 사용해달라고 유언을 남겼는데, 제일 아이러니한 것은 그는 죽을 때까지 미국을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것을 선견지명이라고 하나? (사진 위의 원문에 생략된 '...' 부분이 재미있는데, 나중에 추가로 설명함) 스미소니언 캐슬의 모형과 이를 설계한 건축가 James Renwick, Jr.의 두상 및 옛날 사진들을 보여주는 전시이다. 그리하여 뜬금없이 돈벼락을 맞은 미국은 1836년에 그의 유산을 영국에서 금화로 바꿔서 약 50만불을 가지고 왔는데, 단순히 현재의 달러로만 계산해서는 1200만불 정도이지만, 당시 미국의 GDP나 물가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봤을 때 그 실제 가치를 현재로 따지면 2억불이 훨씬 넘는 거금이었다고 한다. 현재 스미소니언 재단은 맨 위의 원형 그림처럼 중심의 '캐슬'을 포함해서 모두 20개의 박물관을 직접 운영하고 있는데, 아래에 차례로 시설의 설립연도를 기준으로 전체 목록을 소개해드린다. (파란색 링크로 표시된 박물관은 방문한 곳으로 클릭하면 각각 장소의 최신 포스팅을 보실 수 있으며, 뉴욕에 있는 2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워싱턴 지역에 있음) 이렇게 지금까지 스미소니언이 수집한 세계적인 자료와 물품은 1억5천만점 이상이라서, 미국 사람들은 스미소니언 박물관들을 "나라의 다락방(the nation's attic)" 또는 "미국의 보물상자(America's treasure chest)"라고 부른단다. 1855년 Smithsonian Institutuon Building, The Castle (스미소니언 캐슬) 1881년 Arts and Industries Building (예술산업관) ※최초의 국립 박물관 건물이었음 1891년 National Zoo (국립 동물원) 1910년 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국립 자연사박물관) 1923년 Freer Gallery of Art (프리어 미술관) ※국립 아시아 미술관에 속함 1964년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국립 미국사박물관) 1967년 Anacostia Community Museum (애나코스티아 지역박물관) 1968년 American Art Museum (미국 미술관) National Portrait Gallery (국립 초상화박물관) 1972년 Renwick Gallery (렌윅 갤러리) ※미국 미술관 별관 1974년 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 (허쉬혼 미술관/조각정원) ※현대미술 1976년 National Air and Space Museum (국립 항공우주박물관) Cooper Hewitt Design Museum (쿠퍼휴잇 디자인박물관, 뉴욕) 1987년 Arthur M. Sackler Gallery (새클러 갤러리) ※국립 아시아 미술관에 속함 National Museum of African Art (국립 아프리카 미술관) 1993년 National Postal Museum (국립 우편박물관) 1994년 George Gustav Heye Center (조지 구스타프 헤이 센터, 뉴욕) ※인디언박물관 별관 2003년 Steven F. Udvar-Hazy Center (스티븐 F 우드바하지 센터) ※항공우주박물관 별관 2004년 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 (국립 인디언박물관) 2016년 National 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 (국립 흑인역사문화관) 주1) 재단 홈페이지 등에는 1987년에 만들어진 극장 겸 전시장인 리플리센터(S. Dillon Ripley Center)를 별도의 박물관으로 소개하고 있으나, 주로 행사용으로만 사용되는 건물인 관계로 본 리스트에서는 제외함 주2) 내셔널몰에 있는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은 스미소니언 재단에 속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됨 캐슬의 서쪽 끝에 있는 공간인 커먼스(The Commons)는 노르만 양식 건축의 아름다운 천장을 보여준다. 콩코드 여객기 모형과 동물의 박제가 함께 전시된 것이 이 곳의 힌트인데, 한마디로 여러 스미소니언 박물관들의 전시를 맛보기로 모두 모아서 조금씩 보여주는 곳이라 할 수 있었다. 비지터센터 구경을 마치고 정문쪽으로 나가기 전에 그레이트홀과 사이에 이런 작은 공간이 나온다. 정문으로 들어왔을 때 왼편이 사진 가운데 보이는 제임스 스미슨의 관이 안치된 방이고, 반대쪽 오른편에는 그의 흉상과 함께 기부자들의 명단이 있는 방이 있다. 제임스 스미슨은 서자로 태어나서 그랬는지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유럽을 떠돌면서 방랑생활을 하다가, 1829년에 이탈리아 제노아(Genoa)에서 사망하고 거기에 묻혔었다. 그래서 스미슨(Smithson)의 유산으로 만들어진 미국의 스미소니안(Smithson-ian) 재단에서 그의 유해를 1904년에 미국으로 가지고 와서 이 자리에 유골을 안치한 과정의 설명판을 아내가 보고있다. 사실 자식이 없던 스미슨은 유언장에 그의 모든 재산을 좋아하던 조카에게 남겼는데, 단 조카가 자식이 없이 사망하는 경우에만 미국 워싱턴 소재의 재단 설립에 사용되는 것으로 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생략된 '...' 부분의 내용) 그런데 유산을 물려받았던 젊은 조카가 스미슨이 죽고 6년 후인 1835년에 갑자기 사망을 하게 된다! 그러면 보통 주변 사람들이 은근슬쩍 유산을 가로채기 십상일 것 같지만, 그 조카의 어머니가 아들을 잃은 슬픔에도 불구하고 스미슨의 유언을 꼭 지켜야 한다면서 미국 정부에 연락을 하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건너편 방에는 제임스 스미슨의 흉상과 함께 광물학자였던 그를 기리기 위해 1832년에 '스미소나이트(Smithsonite)'로 명명된 광물인 능아연석[ZnCO3]이 유리상자 안에 놓여있다. 그 주변으로 방의 3면에는 '특출한 기부자들(Distinguished Benefactors)'의 명단이 적혀있는데, 빌게이츠 정도 되어야 이름으로 나오고 대부분은 세계적인 회사명이 적혀 있었다. 빼곡하게 적힌 칸도 있고 듬성듬성 적힌 칸도 있어서, 얼마를 기부해야 어느 칸에 이름이 적히는지를 궁금해 하고 있는데, 아내가 혹시 싸인펜이 없는지 물어본다~ 가운데 스미소니언 재단 마크가 있는 노란색 빈 칸에 우리 이름을 써놓고 가자고...^^ 여기에 이름이 적힐만큼 특출나게 기부할 능력은 안 되고, 여러 스미소니언 박물관들을 블로그로 널리 알리는 재능기부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입장객이 늘어나 본들? 어차피 모든 스미소니언 박물관들은 입장료도 안 받는 공짜인데... 성의 정문으로 나오니까 스미소니언 재단의 초대 원장인 Joseph Henry 동상의 뒷모습이 보이고, 내셔널몰 잔디밭 건너편에는 20개의 스미소니언 박물관들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곳인 국립 자연사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뜨내기 여행객이 아니야, 잘 알려지지 않은 곳들을 찾아가자구~" 그러면서도... 비행기 타고 워싱턴DC에 처음 온 여행객처럼 캐슬의 시계탑을 배경으로 커플셀카 한 장 또 찍었다. ㅎㅎ 바로 옆에 있는 국립 아시아미술관인 프리어 갤러리부터 '박물관 깨기' 프로젝트를 이제 시작하는데, 아주 멋진 분재 작품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분재를 마지막으로 본게 LA에 살 때인 2008년에 방문했던 헌팅턴 라이브러리(Huntington Library)였는데, 본 포스팅과 함께 블로그의 '전시관과 공연장' 카테고리에 같이 있다. 박물관과 미술관 등의 전시장과 뮤지컬 관람기 등의 공연장은 물론, 운동경기를 직관한 체육관들도 모두 이 카테고리에 넣어서 글이 지금 68개나 되는데, 각각 하위 카테고리를 만들어 분류를 할까말까 고민이 된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핫스프링스(Hot Springs) 국립공원 비지터센터 박물관과 마운틴타워(Mountain Tower) 전망대 풍경

핫스프링스(Hot Springs) 국립공원 비지터센터 박물관과 마운틴타워(Mountain Tower) 전망대 풍경

명실상부한 미국 유일의 '국립온천'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남부 아칸소(Arkansas) 주에 있는 핫스프링스 내셔널파크(Hot Springs National Park)의 두번째 여행기이다. 참고로 미국의 여러 주들을 묶어서 지역으로 구분하는데는 많은 방법이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인구통계국에서 서부(West), 중서부(Midwest), 남부(South), 북동부(Northeast)의 4개 지역으로 나누는 방법이다. 여기 아칸소를 포함한 그 남부의 주들은 사회적으로 개신교의 영향력이 크고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지역이라서 "바이블 벨트(Bible Belt)"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칸소 중서부에 인구 4만명 정도의 작은 도시인 핫스프링스(Hot Springs)의 중심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 도로 오른편으로 건너가면 바로 국립공원 땅이다.^^ 아칸소 주 첫번째 여행기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의 제42대 대통령인 빌 클린턴(Bill Clinton)은 아칸소 남부의 호프(Hope)라는 시골에서 태어나 새아빠를 따라서 여기 핫스프링스로 이사해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그래서 이 근처 어디에 빌 클린턴의 얼굴이 크게 그려진 안내판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찾지를 못했다. 왼쪽으로 보이는 돔이 있는 건물이 우리가 조금 전에 미국 국립온천 엄청난 수질을 체험할 수 있었던 '쿼포탕(Quapaw Baths)'이다. (국립공원에 대한 소개와 온천욕을 하는 모습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해서 1편을 보시면 됨) 이제 그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온천장 건물에 들어선 국립공원 비지터센터(Visitor Center)를 둘러볼 차례인데, 간판 오른편에 흔들의자에 앉아서 온천을 해서 보들보들해진 손을 흔들고 계신 사모님이 보인다~ 옛날에 포다이스(Fordyce) 온천으로 운영된 건물의 입구로, 국립공원청 직원들이 서있는 뒤로 귀중품을 보관하던 금색의 작은 락커들이 클래식한 멋을 풍겼다. 여러 커다란 온천이 줄지어 서있는 Bathhouse Row에서 이 곳이 1962년에 제일 먼저 폐업을 했기 때문에, 아마도 국립공원 비지터센터로 개조가 된 것 같다. 그냥 국립공원 브로셔만 챙겨서 나올 뻔 했는데, 박물관으로도 운영된다는 것이 생각나서 2층으로 올라갔다. 이 곳의 온천들은 1930~50년대에 그 전성기였다고 하는데, 당시의 여러 모습을 아주 그대로 잘 복원해 놓았다. 마사지실의 모습을 마네킹으로 재현을 해놓았는데, 새하얀 타일과 쉬트들과 함께 흰 천을 덮은 마네킹까지 누워 있어서 처음부터 약간은 으스스한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 여기 치료실의 고압호스와 저 아내가 가까이 목을 대고 있는 스팀캐비넷(steam cabinet)을 보면서는 약간의 공포까지 밀려왔다. 왜냐하면 작년에 봤던 넷플릭스 드라마 에서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한다는 명목으로 사람을 저 스팀캐비넷으로 고문을 하고, 나중에는 저기 가두고 뜨거운 물로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는 정신병원이 아니라 온천휴양지이긴 하지만 말이다... 남자 탈의실의 중앙에는 인디언이 스페인 병사에게 여기 온천수를 바치는 듯한 모습의 동상과, 그 위로는 멋진 스테인드글라스 천정이 화려하게 만들어져 있다. 여기 포다이스(Fordyce) 온천이 이렇게 가장 럭셔리하고 그래서 이용요금이 비쌌기 때문에, 1960년대 온천문화가 쇠락기로 접어들면서 가장 빨리 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개인 마사지실의 모습으로 왼편 테이블에 놓인 것은 처음에는 전화라고 생각을 했는데, 안내판의 설명을 다시 읽어보니 전기를 이용한 마사지 기계라고 한다. 앞서 스팀캐비넷을 봤더니 저 기계도 혹시 전기고문 용도로 사용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여자 탈의실인데 당시 상류층이 이용을 하던 곳이라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각각의 작은 방으로 탈의실이 만들어져 있어서 안에서 옷을 다 갈아입고 나올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탈의실의 유령...은 아니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목만 옆으로 내고 사진을 찍으시겠단다~ 3층으로 올라갔더니 체조연습장같은 마루바닥의 체육관이 만들어져 있었다. 요즘도 수영장이나 스파에는 헬스시설이 있는 것 처럼, 러닝머신이나 웨이트트레이닝 등은 없지만 이런 운동으로 땀을 흘릴 수 있는 공간이 옛날 온천에도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예쁜 타일바닥과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여성 휴게실에는 그랜드피아노도 있고 당시 상류층 여성들이 입었던 옷들도 전시가 되어 있었다. 건물 안에는 오래된 엘리베이터도 동작을 하고 있어서 한 번 타볼까 하다가, 밀폐된 공간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계단으로 걸어서 1층으로 내려갔다. 로비 위에 씌여진 예레미야 30장 17절의 성경말씀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를 보니까, 이 곳이 단순한 온천이 아니었음을 또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바이블벨트에 속하는 미국남부에 와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남부에 와있다는 것은 여기 점심을 먹기 위해서 들린 팬케잌 가게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영어듣기가 잘 안 되는데 이 동네 사람들이 하는 말은 더욱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물론 더 남쪽의 루이지애나 또는 알라바마 등의 '딥사우스(Deep South)'로 가면 사투리가 훨씬 심해진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아침에 지나갔던 노천온천탕이 있는 Arlington Lawn 잔디밭이 길 건너로 보이는데, 공원 간판이 도로쪽으로 향하고 있어서 아침에는 못 봤던 것이었다. 시내 중심가 도로 옆에 세워진 내셔널파크 사인은 다시 봐도 어색하면서 재미있었다. 알링턴 호텔(Arlington Hotel)의 로비에 잠시 들어가서 구경을 했는데, 알 카포네가 단골손님이었고 4명의 미국 현직 대통령이 숙박했던 장소답게 화려하기는 했지만, 역시 쇠락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밤이 되면 유령이 나오기에 딱 좋은 호텔이라는 생각을 하며, 우리가 숙박했던 호텔로 돌아가서 차를 몰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국립공원 영역에 포함되는 산 정상에 이런 전망타워가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 약간 의외였는데, 1877년부터 나무로 만든 전망대가 서있던 자리에 1982년에 지금의 높이 216피트(66 m)의 마운틴타워를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꼭대기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입장료가 있는데, 국립공원 연간회원권을 보여주면 조금 할인이 되었던 기억이다. 오른편 삼거리의 큰 건물이 알링턴 호텔이고, 거기서 남쪽으로 좁고 긴 배스하우스로우(Bathhouse Row)가 이어지고, 그 끝에 큰 성같이 서있는 옛날 육군/해군 종합병원(Army & Navy General Hospital) 건물이 보인다. 제일 꼭대기 야외 전망대에서는 360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데, 바람이 아주 상쾌했던 것이 사진으로도 느껴진다. 아내가 두 번의 대륙횡단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들 중의 한 곳으로 꼽았던 남부 아칸소 주의 핫스프링스 국립공원(Hot Springs National Park)... 온천을 하러 다시 꼭 오고싶다고 해서, 만 60세 환갑잔치 대신에 여기 다시 데리고 와주겠다고 했는데, 과연 언제 다시 이 외진 곳을 방문하게 될 지 위기주부도 궁금하다~ 아래층 실내 전망대로 내려오면 잘 만들어진 설명판과 함께 파노라믹뷰로 핫스프링스 지역을 편하게 구경할 수 있다. 아칸소 주는 "The Natural State"라는 별칭답게 사방이 숲이었는데, 이 때가 약간씩 단풍이 들려고 하는 시기였다. 주차장으로 내려가 다시 차에 시동을 걸고 오른편 멀리 보이는 70번 국도를 잠시 거쳐서, 텍사스와 아칸소에만 있는 인터스테이트 30번을 타고 동쪽으로 대륙횡단 이사를 계속했다. 캘리포니아에서부터 시작되는 40번 고속도로를 다시 만나는 주도인 리틀록(Little Rock)에는 주 의사당과 함께 1957년 흑인인권운동의 역사가 있는 Little Rock Central High School National Historic Site 등이 있지만, 모두 생략하고 미시시피 강을 만날 때까지 약 3시간을 쉬지 않고 동쪽으로 계속 달렸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뉴멕시코(New Mexico) 주의 엘모로(El Morro) 준국립공원의 인스크립션락(Inscription Rock) 트레일

뉴멕시코(New Mexico) 주의 엘모로(El Morro) 준국립공원의 인스크립션락(Inscription Rock) 트레일

지금으로부터 6년반 전인 2015년 봄에 LA의 집에서 자동차로 출발해 아리조나를 지나서 뉴멕시코(New Mexico) 주까지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순백의 화이트샌드 국립공원과 신성한 산타페 등등의 전체 여행기 목록과 경로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1차 대륙횡단 이사의 둘쨋날에는 그 때 시간이 없어서 들리지 못했던 준국립공원 두 곳을 구경한 후에, 동서로 완전히 뉴멕시코 주를 횡단해서 텍사스까지 가서 숙박을 할 예정이다. 아침을 먹은 모텔 식당에 걸려있던, 미국 각 주의 자동차 번호판으로 만든 미국지도의 사진이다. 이 날은 갈색 아리조나 번호판의 숫자 1의 머리에서 출발해 노란색 뉴멕시코를 횡단하고, 텍사스 제일 위쪽에 별이 있는 곳까지 가면 되는 셈이다~^^ 그런데, 자동차 번호판들을 이어붙인 것을 보니까 자연스럽게 영화 의 아래 포스팅이 떠올랐다. 우리 부부도 약 한 달간... 영화 속의 주인공과 같이 '하우스리스(houseless)' 생활을 하는 노매드가 되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가 영화처럼 저 차에서 자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앞 두자리를 빼고는 뒷좌석과 지붕까지 이삿짐이 빼곡해서 쥐새끼 한마리 들어가 잘 틈도 없었다~^^ 참, 이삿짐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들은 따로 작은 여행가방에 넣어서 숙소에 도착하면 방에 두기로 계획했었지만, 첫날밤부터 2층까지 별도로 가지고 올라가기가 귀찮아서 그대로 차에 두고 잤는데, 이후로는 대륙횡단을 마칠 때까지 중요물품 가방이 따로 있는지도 거의 잊어버리고 여행을 했다는... 40번 고속도로가 관통하는 페트리파이드포레스트(Petrified Forest) 국립공원은 두 번이나 방문을 했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고 (11년전의 첫번째 여행기를 보시려면 클릭), 샌더스(Sanders)라는 곳에서 처음으로 인터스테이트40을 벗어나 191번 국도로 빠져 조금 남쪽으로 내려간 후에, 동쪽으로 방향을 트니까 뉴멕시코(New Mexico) 주가 시작된다는 표지판이 나왔다. 옛날에는 노란 바탕에 빨간색과 녹색의 칠리(chili)가 그려진 단순한 디자인이었는데, 최근에 새로운 디자인의 환영간판으로 바뀌었다. 뉴멕시코 53번 주도를 따라 주니 인디언 보호구역(Zuni Reservation)을 지나면서 1시간쯤 달려서, 이 날의 첫번째 목적지인 엘모로 내셔널모뉴먼트(El Morro National Monument)라는 곳에 도착을 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비지터센터 내부에는 방문객보다도 일하는 직원들이 더 많았고, 우리는 이 지역 원주민들과 개척자들의 역사에 관한 전시를 후다닥 둘러본 후에, 빨리 트레일을 하기 위해서 건물을 관통해 나갔다. 그랬더니 젊은 남자 직원이 뒤따라 달려나와서는 위기주부 손에 들린 코팅된 안내책자를 하나 전해주었다. 이 곳은 따로 공원지도를 보여드릴 필요없이 책자에 보이는 두 개의 트레일이 거의 전부인 작은 준국립공원으로, 우리는 빨간색으로 표시된 전체 0.5마일의 인스크립션락 루프트레일(Inscription Rock Loop Trail)을 한다. 개울을 건너는 다리도 아주 잘 만들어 놓았는데, 이 트레일은 전체 구간이 휠체어로도 다닐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잘 포장된 산책로를 따라 조금 걸어가면 아주 멋진 바위산 아래에 도착하는데, 공원 이름인 스페인어 El Morro는 "The Headland"라는 뜻으로 머리처럼 툭 튀어나온 지형 때문에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바위절벽으로 둘러싸인 전망대에 쉼터와 안내판을 아주 잘 만들어 놓았다. 여기서 사진 가운데 폭포수가 떨어진 까만 자국이 보이는 곳까지 걸어가면서 찍은 동영상을 아래에 보여드리니까 클릭해서 보실 수 있다. 해발 2천미터가 넘는 곳에서 올려다 보는 파란 하늘 아래에 우리 두 명만 있는 고요함도 느끼실 수 있는데, 한 없이 맑고 상쾌했던 공기는 동영상으로도 전달해드릴 수 없어서 유감이다.^^ 폭포수가 떨어진 자국이 있던 바위 아래에는 이렇게 물웅덩이(pool)가 있었는데, 물이 제법 고여 있었다. 600 풀 앞에서 커플셀카 한 장 찍었는데, 아무리 각도를 맞춰도 배경으로는 높은 바위들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파란색 LA 다저스 셔츠를 입은 커플이 우리를 뒤따라 오길래 우리도 로스앤젤레스에서 왔다고 인사를 하면서, 이제 버지니아로 이사가면 다저스가 워싱턴 내셔널스와 원정경기를 하러 DC에 오면 '고향팀'을 응원하러 야구장에 한 번 가봐야 겠다는 생각을 속으로 했다. 그런데 이 커플은 벽면을 꼼꼼히 바라보면서 걷는 것이 아닌가... "바위에 뭐가 있나?" 괜히 직원이 뒤따라 뛰어나와서 우리에게 안내책자를 전해준 것이 아니었다. 이 바위산의 벽면에는 원주민의 암각화(petroglyph)와 서양인들이 여기 다녀갔다고 바위를 깍아서 남긴 인스크립션(inscription)이 약 2천개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즉 이 거대한 바위산 전체가 화폭이자 방명록인 셈인데, 트레일에 설치된 각 번호판에 대한 설명이 안내책자에 사진과 함께 나와 있었다. 특히 아내가 보고있던 이 스페인어는 뉴멕시코 식민지의 총독이었던 Juan de Oñate가 1605년에 새긴 것으로, 방명록 중에서는 여기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글씨가 까맣게 선명한 이유는 1920년대에 희미해져 가는 흔적들을 남겨둘 목적으로 굵은 연필로 홈을 따라 덧칠을 해서 메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캘리포니아 제1기병대의 대장이었던 R. H. Orton이 남북전쟁이 끝나자, 1866년에 여기를 지나서 캘리포니아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것이란다. 이렇게 바위에 새겨진 방명록이 가지는 역사적 중요성으로 일찌감치 1906년 12월에 미국의 두번째 내셔널모뉴먼트(National Monument)로 지정해 보호되었고, 그 후로는 더 이상 바위에 새로 무엇을 새기는 것은 연방법으로 금지되었다 한다. 그렇게 구경하면서 걷다보면 바위산이 끝나는 곳에 삼거리가 나오는데, 광각으로 찍어서 삼각형으로 보이지만, 양쪽 모두 거의 수직의 절벽인 바위산이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계속 돌아가면 바위산 위로 올라가는 헤드랜드 트레일(Headland Trail)로, 멋진 경치와 함께 원주민들의 1300년대 집단 거주지인 Atsinna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안내판에는 어떻게 바위에 새겨진 그림과 글씨를 보존해왔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처음에는 방수 파라핀(paraffin)을 바르거나 바위를 깍아서 물길을 바꾸고 또는 앞서 소개한 것처럼 연필로 글씨에 덧칠을 하기도 했지만, 1930년대부터는 이런 인위적인 방법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지금은 바위에 심각한 손상이 있는 경우에만 구멍을 메우거나 고정을 하는 정도로만 관리를 한단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참 자기 이름을 남겨놓고 싶었나 보다... 마지막으로 테두리까지 둘러서 빼곡히 새겨진 이름들을 구경하고는, 비지터센터로 돌아가서 직원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안내책자를 반납을 했다. 1시간도 채 머물지 않았지만 참 와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엘모로 준국립공원이었는데, 언젠가는 다시 와서 저 바위산 위로 올라가는 헤드랜드 트레일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다시 우리는 차에 올라서 바로 옆에 10분 거리에 있는 이름은 비슷하지만 풍경은 차이가 나는 다른 준국립공원을 또 찾아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