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에 미국 국립공원청(National Park Service, NPS)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3부작 포스팅의 두번째로 준국립공원(準國立公園)이라 할 수 있는 당시 121개의 내셔널모뉴먼트(National Monument)에 대해 정리한 포스팅을 여기를 클릭해 보실 수 있다. 지난 10월에 바이든 대통령이 콜로라도의 육군 산악훈련소였던 곳을 Camp Hale - Continental Divide National Monument로 지정하면서 지금은 130개가 되었는데, 이처럼 최근에 추가된 곳들은 해제된 군부대나 연방정부가 새로 취득한 역사적인 건물 등이 많다. 지난 9월 남부 버지니아 1박2일 여행의 둘쨋날 아침에 잠깐 구경했던, 이제 소개하는 내셔널모뉴먼트도 한 때 미국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요새가 NPS 소관의 공원으로 지정된 경우이다.
숙박했던 버지니아비치(Virginia Beach)에서 30여분을 달려서 햄프턴(Hampton) 마을의 도서관에 도착을 했는데, 여기가 포트먼로 내셔널모뉴먼트(Fort Monroe National Monument)의 방문자 및 교육 센터로 사용되는 곳이지만... 우리가 방문한 월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았다. 흑흑~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포트 먼로(Fort Monroe)는 2011년 9월까지 군대가 주둔하던 요새로 사용되다가 해제된 후에, 바로 11월에 당시 오바마의 대통령령에 의해 준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그래서 신호등까지 잘 만들어져 있는 오래된 요새의 정문으로 차를 몰고 안으로 들어가 보는데, 이 곳은 아래의 항공사진을 가져와서 보여드리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바닷가 모래톱에 인공적으로 땅을 파서 만든 해자(垓子, moat)로 둘러싸인 기하학적인 성벽의 모습이 한 눈에 보인다! 이 요새는 미영전쟁 이후인 1819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1834년에야 완공되었고, 제5대 대통령인 제임스 먼로(James Monroe)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 우리가 들어간 정문이 요새의 왼편에 보이는 해자를 건너는 가장 긴 다리인데, 이렇게 당시로는 난공불락의 대단한 요새를 여기에 만든 이유는 나중에 지도로 설명을 드릴 예정이다.
요새 안으로 들어와 차를 몰고 미리 예습해서 찾아놓은 케이스메이트 뮤지엄(Casemate Museum), 즉 '포대(砲臺) 박물관'을 찾아왔지만 매한가지로 문을 닫았다...
그래서 입구에 쌓아놓은 이 대포알 피라미드만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는데, 정작 이 잘 만들어 놓은 큰 요새에서 실제 전투가 벌어져서 대포를 쏜 일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성곽 모서리에 돌출되게 만들어 놓은 보루(堡壘)를 영어로 'bastion'이라 한다는데, 여기 워킹투어 4번은 제일 높은 깃대를 세워놓아서 Flagstaff Bastion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번 포스팅은 어려운 한자어가 많이 나오는 듯...^^
경사로를 따라 성곽 위로 올라오면 앞바다의 지도가 안내판에 그려져 있는데, 남쪽으로 바라보는 것이라서 지도도 위쪽이 남쪽이다. 요새가 있는 곳은 제임스 강(James River)이 체사피크 만(Chesapeake Bay)과 만나는 입구로, 여기서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길은 햄프턴로드(Hampton Roads)라 불리며 식민지 시절부터 중요한 항해로였다. 안내판에 미국의 해군기지로 유명한 노퍽(Norfolk)이라는 지명도 보이는데, 그래서 아래 구글지도를 따로 준비했다.
작은 사진들은 모두 올해 초에 찍힌 구글어스 위성사진으로, CVN 일련번호로 알 수 있듯이 가장 최신의 미국 항공모함 3척이 여기 모여있다. 마지막 10번째 니미츠급 항공모함인 오른쪽 USS George H.W. Bush는 노퍽 해군기지에서 보수중에 있고, 올해부터 작전에 투입된 차세대 포드급(Ford class) 항공모함인 왼쪽 아래 USS Gerald R. Ford와, 그 위에 제작중인 같은 급의 USS John F. Kennedy의 두 척은 뉴포트뉴스(Newport News)의 해군 조선소에 나란히 정박해 있다. 이것만 봐도 빨간 마커로 표시된 Fort Monroe가 지키고 있는 입구가 식민지 시절부터 지금 21세기까지 미국에서 얼마나 중요한 요충지인지를 잘 설명해준다.
그렇기는 한데... 요새의 성벽 위에서 딱히 더 구경할 것은 없어서, 괜히 미안해 했던 가이드의 모습이다.
이 곳이 남부 버지니아에 속하니까,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여기 주둔하던 연방군은 적군에 포위된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남군은 감히 이 철통방어의 요새를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북군은 우수한 해군력의 지원을 받아 이 요새를 거점으로 노퍽 등에서 전투를 치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곳이 '자유의 요새(Freedom's Fortress)'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는 따로 있는데, 아래 비지터센터의 내부 사진을 한 장 가져와서 보여드리며 설명한다.
남북전쟁이 시작된 직후에 인근에 살던 흑인노예 3명이 이 요새로 목숨을 걸고 탈출을 했고, 당시 미국 연방법은 도망친 노예는 잡아서 주인에게 돌려주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변호사 출신의 군인이었던 Benjamin Butler 사령관이 판단하기를... 버지니아는 미연방에서 탈퇴를 했으니 이 3명을 연방법에 따라 주인에게 돌려줄 의무가 없고, 남부가 노예들을 연방과의 전쟁에 이용하고 있으니 이 3명은 적군에게서 빼앗은(제발로 걸어왔지만^^) '전리품(contraband)'이라 선언하고는 안전하게 요새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게 된다. 이 소문이 퍼져 다른 노예들도 이리로 탈출을 해와서 '자유의 요새'로 불리게 되고, 버틀러 소장의 이러한 법해석이 나중에 링컨이 남부의 노예해방(Emancipation)을 선언하는데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여기처럼 1800년대에 벽돌로 지은 대규모 요새가 미국의 공원으로 관리되는 곳들이 이외에도 많이 있고, 그 중에 한 곳은 최고 등급(?)인 내셔널파크(National Park)로 지정되어 있는데 아직 못 가봤다! 여기를 클릭하면 그 국립공원에 가장 가까이 갔었던 여행기와 함께, 글의 제일 마지막에서 그 곳의 이름을 확인하실 수 있다. "언제 가볼 수 있을까?"
이 정도로 요새 안쪽의 구경은 마치고, 반대쪽 동문으로 나가기 위해서 파란불을 기다렸다.
모든 게이트가 차 한대만 지나갈 수 있는 폭이라서, 교차신호로 운영을 하기 때문에 중간에 절대 설 수는 없다.
요새의 바깥쪽도 저 건물을 포함해서 공원에 속하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성조기 장식을 한 저 집은 뭘 하는 곳일까?
맞은편으로는 피싱피어(fishing pier)가 만들어져 있어서 아내가 끝까지 걸어가보고 있는데, 말 그대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이 피어를 지나서 조금 더 걸어간 바닷가에 또 중요한 이정표가 하나 있는데, 거기까지 가보지를 않았기 때문에 관광청에서 가져온 사진으로 대신 보여드린다.
앞서 미국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에 관해 말씀 드렸는데, 사실 그 미국 흑인노예의 역사가 시작된 곳도 이 바닷가라고 한다. 식민지 시절이던 1619년에 영국 사략선(privateer)이 서인도 제도로 가던 포르투갈 노예선에서 뺏은 흑인노예 약 20명을 여기 포인트컴포트(Point Comfort)에서 식량과 교환했다는 기록에 따라서, 그들이 영국의 버지니아 식민지에 최초로 발을 디딘 아프리카 흑인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야전상의를 입고 낚시를 하시는 분 너머로 보이는 올드 포인트컴포트 등대(Old Point Comfort Lighthouse)는 1802년에 만들어져 지금도 불을 밝히고 있어서, 체사피크베이(Chesapeake Bay)에서 운영되고 있는 등대들 중에서는 가장 오래되었다 한다. 이렇게 오래간만에 준국립공원(National Monument) 한 곳을 간단히 둘러보았는데, 전날 국가기념물(National Memorial), 국립해안(National Seashore), 국립사적지(National Historic Site)의 3곳을 방문했으니, 1박2일 여행에서 벌써 4번째 NPS official unit인 셈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고 바로 이어지는 다음 방문지는 또 국립역사공원(National Historical Park)이었으니까, 1박2일만에 유형이 다른 총 5곳을 골고루 이 리스트(보시려면 클릭!)에 추가하는 기록을 세웠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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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주부가 미국 뉴욕을 처음 구경했던 것은 1996년 5월에 보스턴에서 열렸던 학회에 참석할 때였다. 귀국 비행기를 타기 위해 뉴욕을 잠깐 경유했었는데, 그 때 타임스퀘어를 구경하고 엠파이어스테이트 전망대를 올라간 후에, 맨하탄 남쪽에 있다는 자유의 여신상을 보자고 일행들이 의견일치를 했다. 밤비행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거의 경보하는 수준으로 초여름 늦은 오후의 무더운 뉴욕도심을 1시간반 이상 걸었는데, 당시에 우리는 맨하탄의 남쪽 끝까지 걸어만 가면 커다란 여신상이 거기에 그냥 우뚝 서있을 줄 알았지, 배를 타고 건너가야하는 섬에 세워져 있는건지 몰랐었다... (서두가 너무 길어지니까 후속 이야기는 본문에서 계속)
월요일 이른 아침에 숙소인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44번가를 따라 조금 걸어서 타임스퀘어에 다시 왔다. ABC방송의 아침 프로그램인 굳모닝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GMA)를 딱 하고있을 시간이었는데, 저기 전광판 아래 스튜디오에 가서 손이라도 흔들어볼걸 그랬나?
아침부터 타임스퀘어를 찾은 이유는 저 유명한 세로 전광판 지나 왼편에 있는 크리스피크림(Krispy Kreme) 매장에서 도넛 2박스를 사기 위해서였다.
호텔방에서 커피와 도넛으로 간단히 식사를 한 후에, 누나 가족과 함께 우리 7명은 지하철을 타고 맨하탄 남쪽 끝의 배터리파크(Battery Park)에 도착을 했다. 서두의 26년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어두워진 후에 겨우 도착했던 곳도 아마 이 부근이었을건데,
그 때 여기서는 바다 건너 작게 겨우 보이는 저 자유의 여신상이라도 제대로 봤던지 아닌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누구의 잘잘못을 가릴 겨를도 없이 모두 황급히 지하철을 타고 어떻게 해서 JFK 공항으로 갔었는데, 그 때 황당한 맨하탄 종주의 가장 큰 소득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힘들게 걸을 때 둘이 딱 붙어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던, 위기주부의 연구실 동료와 다른 회사에서 출장 왔던 여성분이 몇 년 후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배터리 공원에는 동그란 성채인 캐슬클린턴 내셔널모뉴먼트(Castle Clinton National Monument)가 있다. 1812년 영국의 침입에 대비한 요새로 처음 만들어졌다가, 전후에 차례로 정원과 공연장 (1823-1854), 미국 입국심사장 (1855-1890), 뉴욕시 수족관 (1896-1941) 등으로 사용되었다. 그 후 1946년에 두번째 브루클린 다리 건설을 위해 철거가 진행되는 도중에, 다리 대신에 해저터널을 건설하는 것으로 계획이 변경되면서, 현재의 외벽만 겨우 남아있는 상태로 준국립공원에 지정되었다.
우리는 배표를 미리 예약을 했기 때문에, 캐슬클린턴 안에 있는 매표소를 들리지 않고 바로 엄격한 보안검색을 통과한 후에 여기 부두에서 우리가 탈 페리를 기다렸다. 10여분 정도 기다려서 들어온 레이디리버티(Lady Liberty) 시티크루즈에 탑승을 해서 제일 위 3층의 뒷꽁무니에 자리를 잡았다.
간발의 차이로 배를 놓친 사람들에게 손을 흔든다. "빠이빠이~ 좀 더 서두르지 그랬어..." 왼쪽의 하얀 가건물이 보안검색 시설이고, 그 옆으로 캐슬클린턴의 동그란 외벽이 보인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잠시 후 맨하탄 마천루의 스카이라인이 한 눈에 들어오고, 벌써 20년도 더 흘렀지만 아직도 쌍둥이 빌딩의 빈 자리가 느껴진다...
맨하탄에서 떠나는 배는 제일 뒤쪽에 자리를 잡으면, 이렇게 완벽한 구도의 인물사진을 쉽게 찍을 수가 있다.^^
날씨도 좋고 배 위에서 사진을 참 많이 찍었지만, 그냥 한 바퀴 돌아본 비디오를 올려드리니 클릭해서 보실 수 있다. 맨하탄을 시작으로 허든슨 강 건너의 저지시티(Jersey City), 그 앞쪽의 엘리스 섬(Ellis Island), 자유의 여신상, 그리고 배 위의 많은 사람들, 브루클린과 다시 맨하탄 순서로 360도 감상하실 수 있다.
작은 리버티 섬(Liberty Island)의 높은 석조기단 위에 우뚝 서있는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을 지혜와 조카들이 바라보고 있다. (제일 왼쪽은 다른집 아이) 특이한 것은 섬을 둘러싼 바다는 뉴저지(New Jersey) 주에 속하고, 땅은 뉴욕(New York) 주에 속하지만, 섬 전체가 일찌기 1924년에 내셔널모뉴먼트(National Monument)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땅의 소유권은 연방정부에 있다.
포스팅의 주인공이시니까 예의상 정면 독사진 한 장 찍어서 올려드린다. 우리 가족 3명은 2011년 봄방학 미동부 여행에 이어서 두번째로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아일랜드를 직접 방문하는 것이었다. "자유의 아줌마, 그 동안 잘 계셨어요?"
선착장이 섬의 뒤쪽에 있기 때문에, 배가 이렇게 뒤로 돌아가면 맨하탄을 배경으로 자유의 여신상 뒷모습을 조망할 수도 있다. 한 쪽 발의 뒷꿈치가 들려있는 이유는 횃불을 들고 앞으로 전진하는 모습을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오전 11시 정도였는데 벌써 구경을 마치고, 우리가 타고 온 배로 돌아가려는 사람들로 선착장이 가득했다. 이 배는 저 사람들을 태우고 이민 박물관이 있는 엘리스 섬을 거쳐서 다시 맨하탄으로 돌아가게 된다.
태양을 들고 서있는 것 같은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저 발밑까지 올라가보기 위해서 기단 안에 만들어진 건물로 들어갔는데, 입구에서 한 번 더 보안검색을 거쳐야 한다.
발판(Pedestal)까지 195개의 계단을 걸어서 올라갈 것이냐? 아니면, 한 번에 4명만 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것이냐? 참고로 현재는 동상의 몸속을 지나서 왕관(Crown)까지 올라가는 것은 중단된 상태이다.
수면 위로 27미터 높이의 발판 전망대에서 바라본 뉴욕 맨하탄(Manhattan)과 뉴저지 저지시티(Jersey City)의 고층건물 풍경이다. 왼쪽에 빨간 지붕의 낮은 건물들이 모여있는 곳이 1892-1954년 동안에 배를 타고 온 이민자들의 입국심사와 수용시설이 있었던 엘리스 섬으로 1천2백만명 이상이 저기를 통해 미국에 들어왔단다.
계단으로 내려오는 중간에 이렇게 밖으로 다시 나와서, 부녀가 함께 오른손을 높이 들고 사진을 찍었다.
마지막으로 반대편 선착장 부근에 있는 2019년에 문을 연 최신의 저 박물관을 구경할 차례이다.
옛날에는 기단 안의 어두운 중앙홀에 있던 오리지널 횃불이 여기 새 박물관에서 자연광을 받으며 놓여져 있고,
벽면을 장식하고 있던 여신의 무서운 얼굴도 여기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모녀가 2011년과 똑같은 포즈로 다시 사진을 찍어서 그 때 모습과 합쳐 봤는데, 모녀의 좌우 위치가 바뀐 것까지는 미처 고려를 못했다.^^ 이것으로 자유의 여신상 구경은 마치고 돌아가는 시티크루즈를 탔는데, 우리는 배도 고프고 시간도 부족해서 엘리스 섬에는 내리지 않고 바로 맨하탄으로 돌아갔다.
정오의 땡볕 아래에서 우리가 타고 온 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안검색장까지 부두에 가득 차 있었다. 오후로 갈 수록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져서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므로, 뉴욕 맨하탄쪽에서 리버티 섬으로 향하는 배를 타실 계획인 분들은 가능한 아침 일찍 출발하는 표를 사전에 예매하시는 것을 꼭 권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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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참 신기해서... 바로 얼마 전까지 잘 알던 내용이 도무지 생각이 안 날 때가 있고, 또 그 반대로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이 갑자기 또렷이 떠오를 때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09년에 딱 한 번 달려봤던 그 길을, 작년에 2차 대륙횡단을 하며 다시 지나가면서, 참으로 그 때 미서부 30일 여행의 많은 추억들과 또 잊어버리고 있던 소중한 인연도 모두 함께 갑자기 생각이 났다.
브라이스캐년 관광을 마치고 미국의 '국민도로(All-American Roads)' 중의 하나인 유타 12번 도로를 동쪽으로 조금 달리니, 국토관리국(Bureau of Land Management, BLM) 소속의 준국립공원인 그랜드스테어케이스-에스칼란테 내셔널모뉴먼트(Grand Staircase-Escalante National Monument)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다리꼴 모양의 표지판이 나왔다.
12번 도로와 이 멋진 곳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과 함께, 13년 전에 위 사진과 똑같은 위치를 지나가면서 찍은 사진을 여기를 클릭해서 보실 수 있다. 그 때는 노란색 주의 표지판이 오른쪽으로 90도만 꺽여 있었는데, 지금은 180도 턴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나서 조금만 내려가니까 왼편에 넓은 주차장이 나왔는데, 입구가 비포장이라서 그냥 지나쳐야겠다고 생각한 그 짧은 순간에... "아! 여기가 홍사장님이 말한 그 커피집이구나~" 미리 가봐야겠다는 생각도 전혀 안 했었는데, 어떻게 그게 그 때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랐는지 지금도 신기하다.
LA에서 트레킹 전문 여행사인 유니투어를 운영하시는 홍사장님과는 지난 몇 년간 존뮤어트레일(John Muir Trail, JMT)과 미서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오지로 하이킹을 함께 다녔었다. 위 사진의 리플렉션캐년(Reflection Canyon)을 찾아가는 3차 오지탐험 계획을 세웠던게 마지막 포스팅인데... "언제 다시 못 다한 JMT의 남은 구간들과 미서부의 오지들을 함께 또 찾아다닐 수 있을까요? 정말 그립습니다~"
대륙횡단 이삿짐을 가득 실어서 차체가 낮아진 승용차를 조심조심 비포장 주차장에 세우고는, 길을 따라 절벽 끝까지 내려와 보니 키바 오두막(Kiva Kottage)이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작은 숙소도 운영을 하는 모양인데, 영어 단어에서 일부러 'C' 대신에 'K'를 쓰는 것은 한글에서 가끔 '미국'을 '미쿡'이라고 쓰는 것처럼 어떤 사회적 의미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우리가 여기서 오늘 잘 것은 아니니까 다시 조금 걸어 올라와서, 홍사장님이 항상 이 길을 지나갈 때마다 들린다고 극찬했던 키바 커피하우스(Kiva Koffeehouse)에 들어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주문하는 아내의 모습을 대충 찍었더니, 한쪽 발을 들고 손가락을 찌르는 디스코 댄스타임이 되어버렸당~^^
키바(Kiva)는 미서부 원주민들이 거주지 지하에 만든 동그란 방을 말하는데, 여기를 클릭하면 상세한 설명과 함께 진짜 키바에 들어가봤던 우리 가족의 모습을 보실 수 있다. 그래서 반원형의 카페 가운데에는 지상으로 올라가는 용도로 사용된 사다리도 하나 가져다 놓았다. 무엇보다도 어디서 이렇게 굵은 통나무와 통유리를 가져와서 멋지게 커피숍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정말 감탄이 계속 나왔다.
아내에 이어서 위기주부도 이번에는 자리에 앉아서 창밖으로 손가락을 찌르고 있다.
통유리창 밖으로는 에스칼란테 강(Escalante River)이 흘러오는 계곡을 따라서, 붉은 바위산 가운데가 노랗게 단풍이 들어 있었다. 왼쪽에 보이는 지붕은 앞서 보여드렸던 오두막 숙소인데 숙박비는 얼마나 할까?
두 번의 대륙횡단을 하면서 사먹었던 여러 점심식사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 날의 메뉴이다. 커다란 샌드위치와 머핀에 라떼 한 잔... 사이좋은 우리 부부는 모두 절반씩 나누어서 먹었다~^^ 테이블 유리 아래에 깔려있는 종이는 그랜드스테어케이스-에스칼란테 준국립공원의 지도였다.
"자~ 사진 다 찍으셨으면 이제 먹어도 됩니까?" 아침을 작은 컵라면 하나로 먹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풍경과 분위기에 취했는지? 반년이나 지나서 구체적인 기억은 없지만 음식과 커피도 무조건 맛있었을거라는 추측(?)만 남아있다.
그렇게 잊을 수 없는 식사를 마치고, 반대편으로 나가보니 야외 발코니가 만들어져 있어서 또 잠시 앉아봤다.
잠시 후 우리가 또 달릴 도로로 트럭을 개조한 작은 캠핑카 한 대가 내려가고 있다. "그냥 우리도 저런 차 한 대 장만해서, 다 잊고 떠돌아 다녀볼까?"
"우리는 안 싸우고 잘 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면서 다시 출발~
2009년의 30일 여행 때, 에스칼란테 강을 건너는 다리 직전에 똑같은 위치에서 찍었던 사진을 작게 출력해서 기념품 자석을 만들어서 냉장고에 붙여 두었었다. 여기 주차를 하고 조금 전에 카페 창밖으로 봤던 상류쪽으로 하이킹을 하면 멋진 내츄럴브리지(Natural Bridge)도 볼 수가 있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서는 지류인 Calf Creek을 따라 도로가 이어지는데, 이 쯤에서 나오는 주차장에 주차하고 개울을 따라 하이킹을 하면 또 멋진 로워캐프크릭 폭포(Lower Calf Creek Falls)가 나온다고... 훗날 다시 이 도로를 달릴 때는 모두 다 직접 꼭 가봐야지~
처음 링크한 13년전 포스팅의 마지막에 보시면, 선글래스를 낀 젊은 위기주부가 이 근처 전망대에서 찍었던 에이스크래커 광고사진을 보실 수 있다. 이제는 노안이 와서 더 이상 콘택트렌즈를 못 하기 때문에, 그런 멋진 선글래스를 다시 쓸 수가 없다... 흑흑
볼더(Boulder) 마을을 지나서 마지막으로 해발 2,700미터가 넘는 고개를 넘어갈 때는 길가에는 하얀 눈이 보였고, 노란 아스펜 단풍은 거의 다 떨어지고 끝자락만 아슬아슬 매달려 있었다. 산 넘어 토레이(Torrey) 마을에서 유타 12번 국민도로는 끝나고, 동쪽으로 우회전을 하면 '미서부와 이별여행'의 다음 목적지인 또 다른 내셔널파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P.S.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여름방학을 한 지혜를, 이 고유가 시대에 또 직접 차를 몰고 보스턴까지 올라가서 집으로 데리고 왔고, 우리 가족은 또 하나의 추억이 될 기억을 만들기 위해서 내일 비행기를 타고 여름휴가를 떠납니다. 3일마다 규칙적으로 올라오던 포스팅이 끊겼다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미리 알려드리며 5월말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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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와 하와이를 제외한 미본토의 48개 주(state)들 중에서 마지막으로 1912년 1월에 뉴멕시코(New Mexico), 2월에 아리조나(Arizona)가 미연방에 가입이 되었다. 1차 대륙횡단 이사를 하며 그 두 주를 지나갔던 여행기는 본편이 마지막이다 보니, 조만간에는 다시 아리조나와 뉴멕시코의 이야기는 위기주부의 블로그에 쓸 기회가 안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간단한 역사를 끄적여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삿짐을 꽉 채우고 머리에 봇짐까지 올린 상태로 비포장도로까지 조금 달려서 차에게 정말 미안했던 기억이 난다.^^
트레일 안내판 위에 적혀진 이 곳의 이름은 엘말파이스 내셔널모뉴먼트(El Malpais National Monument)로 뉴멕시코 주에 있는 13개의 준국립공원들 중 하나이다. 원래 이리로 오는 길에 있는 국립공원청의 Information Center에 먼저 들리려고 했지만, 문을 열지 않아서 바로 트레일헤드를 찾아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공원지도에서 53번 도로의 동쪽끝에 이전 여행기로 소개했던 별도의 준국립공원인 엘모로(El Morro)가 작게 보인다.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바위산으로 일찌감치 1906년에 지정된 엘모로와는 달리, 엘말파이스는 화산지형(volcanic field)을 보호할 목적으로 1987년에야 지정되었는데, 녹색 영역이 국립공원청이 관리하는 준국립공원이고 그 주변의 노란색은 국토관리국(Bureau of Land Management, BLM) 소관의 El Malpais National Conservation Area로 구분되어 있다.
무엇을 찾아 어디로, 어디까지 가는지도 모르지만, 사모님은 앞서서 잘도 걸어가신다~^^ 얼핏 보기에는 그냥 들판같지만, 가운데 땅이 까맣게 보이는 곳까지 가보면...
이렇게 땅이 꺼져서 동굴이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옛날에 용암이 흘렀던 곳에 만들어지는 라바튜브(lava tube)인데, 공원의 이름인 스페인어는 영어로 "The Badlands" 즉 황무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주차한 곳에서 0.1마일만 걸으면 이 짧은 트레일의 목적지인 정션케이브(Junction Cave)의 입구가 나온다. 이 트레일은 여기까지만 보고 돌아간다고 했더니, 사모님이 아주 좋아하셨다는...^^
그래서 셀카를 찍는 표정도 아주 밝으시다~
여기는 라바튜브 동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되어있는데, 저 속이 어떤 모습인지 전혀 궁금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지난 여름에 많이 들어가봤기 때문이다.
북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라바베즈(Lava Beds) 준국립공원 여행기를 클릭해서 보시면, 작은 것부터 아주 큰 동굴까지 내부가 어떤 모습인지를 3편의 여행기로 모두 보실 수 있다.
주차장의 안내판 반대편에 이 루프트레일의 이름인 엘칼데론(El Calderon)과 우측 위에 지도가 작게 보이는데, 우리는 루프가 시작되는 입구까지만 조금 걸어갔다 온 것이다.^^ 거기에 있던 동굴의 이름이 '정션(Junction)'인 이유는 아주 중요한 다른 트레일과 교차하는 곳이기 때문인데,
바로 미대륙을 지형적으로 동서로 나누는 경계를 따라 멕시코에서 캐나다까지 이어지는 컨티넨탈디바이드 트레일(Continental Divide Trail)을 지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즉, 여기 북쪽의 콜로라도에서 록키산맥 고개를 넘는 것처럼, 우리는 방금 뉴멕시코 고원지대에서 대륙을 동서로 나누는 경계를 넘어온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의미심장한 생각은 하지 않았고, 빨리 큰 마을로 가서 점심을 먹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지만 말이다.
두 곳의 준국립공원 구경을 마치고 다시 40번 고속도로와 만나는 그랜츠(Grants)에서 점심을 먹었던 아시안 슈퍼뷔페(Asian Super Buffet)의 모습이다. 나는 간단히 서브웨이를 먹자고 했지만, 아내가 여기 가보자고 해서 따라갔는데, 조금 과장해서... 내 평생에 가장 가성비가 좋은 뷔페를 먹은 곳이라, 나와서 사진 한 장 찍어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황량한 고속도로를 1시간 정도 달려 뉴멕시코 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앨버커키(Albuquerque)에서 별다방 커피와 함께 주유를 한 후에, 다시 3시간 이상을 동쪽으로 더 달려야 뉴멕시코와 텍사스의 주경계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보라색 황혼과 함께 "매혹의 땅(Land of Enchantment)"을 떠나고 있는 모습이다. 고속도로 반대쪽의 뉴멕시코로 들어가는 방향은 저 기둥 두 개를 세워서 아예 환영게이트를 만들어 놓았는데, 이번에 대륙횡단을 하면서 지나간 17개의 주들 중에서 뉴멕시코가 주경계의 간판을 가장 거창하게 만들어 놓은 주였다.
그리고, 우리의 이삿짐차는 텍사스(Texas)로 들어섰다. "Drive Friendly - The Texas Way"라 환영간판에는 적혀 있지만,
이 40번 고속도로를 지배하는 컨테이너 트럭들은 어두워질수록 별로 '프랜들리'하지는 않았던 기억이다. 물론 밤눈이 어두운 위기주부는 초행길이고 잘 안 보여서 속도를 줄였지만, 그들은 낮이나 밤이나 자주 다닌 이 길을 같은 속도로 계속 달리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그래서 2차선으로 얌전히 달렸기 때문에, 조수석의 아내가 창밖으로 풍력발전기들 위로 뜬 그믐달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금방 완전히 어두워져서 지나가는 길에 있는 관광지는 내일 아침에 돌아와서 보기로 하고, 숙소를 예약한 도시인 아마리요(Amarillo)로 직행을 해야 했다. 점심을 아시안 푸드로 거하게 먹고 5시간을 내리 운전만 했기 때문에, 저녁은 간단히 '치맥'으로 하기로 했다.
윙스탑(Wingstop)에 닭날개를 주문해놓고 마트에 맥주를 사러 들어가는 우리를 텍사스가 환영해주었다.^^ 1차 대륙횡단의 2일째는 아리조나 홀브룩에서 텍사스 아마리요까지 정동쪽으로만 총 538마일(866 km)을 9시간41분 동안 운전한 것으로 구글 타임라인에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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