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766 posts이리지스터블, 2020
보수 공화당이 득세하고 있던 어느 시골 작은 도시에 변화를 추구하려는 진보 민주당의 시도. 게다가 시기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 대선 승리 즈음. 여기에 등장 배우들도 그렇고 비판적이되 어찌되었든 진보적 색채를 띄고 있는 작품인지라 다소간에 뻔해 보였던 게 사실이다. 아, 강경하고 악랄하게 묘사되는 보수당에 맞서 소시민들이 규합해 진보의 이름으로 정의를 되찾는다는 전개로군. 하지만 영화는 생각만큼 그리 뻔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반전을 통해 주인공은 물론이고 영화를 보고 있던 관객들에게도 하나의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이야기였던 것. 스포일러블! 결국 이 모든 게 다 짜고 치는 연극이었단 전개가 쌈박하다. 그러니까, 마을 사람들은 정치의 현실적인 면을 본 것. 물론 거기에는 보수와 진보의 대
애프터 양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 나무인형 피노키오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의 육체를 꿈꾸는가? 실로 많은 선배격 SF 영화들이 이미 숱하게 다루어왔던 주제. 그러나 은 그걸 반대로 푼다. 나 등이 그랬던 것처럼 안드로이드를 주인공 삼아 스스로의 존재론적 가치를 찾아 나서는 여정으로 이야기를 풀지 않았다는 소리다. 반대로 은 안드로이드를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던 남겨진 인간들의 소회로 그 안드로이드의 존재론적 가치를 되짚어 나간다. 그리고 이건, 굳이 안드로이드 소재의 이야기가 아니었어도 충분히 감동할 수 있는 보편적 이야기라 생각한다. 생뚱맞지만 이소룡의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삶은 그 자체가
콜럼버스, 2017
한 명은 어색한 사이의 부모를 이제는 떠나 보내고 싶어 콜럼버스를 찾았고, 또 다른 한 명은 돈독한 사이의 부모를 떠나 보낼 수 없어 콜럼버스에 남았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두 사람. 각기 다른 성별, 각기 다른 인종, 각기 다른 세대, 각기 다른 취향과 각기 다른 가치관 등등.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둘 모두 담배 태우는 걸 즐긴다는 정도? 영화의 잔잔함이 좋다. 최근 를 보고 나서 코고나다의 작품들이 궁금해 찾아본 것이었는데, 확실히 이쪽이 훨씬 더 차분한 느낌. 일단 는 각본 자체가 되게 감정적인 이야기였잖아. 감독이자 쇼 러너인 코고나다가 나름대로는 조금 누른다고 눌렀을 텐데도 각본이 가진 감정적 격렬함 때문에 서로 상쇄되어 그런 결과물이 나왔던 것이었겠지.
누가 로져 래빗을 모함했나, 1988
있는 그대로의 실사와 만들어진 이미지의 합성. 그리고 그 둘 사이 경계를 넘나드는 인물들. 어쩌면, 로버트 저메키스의 모션 캡쳐에 대한 열망과 3D 기술에 대한 애착은 여기서 부터 비롯되지 않았을까? 실제 배우들과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조화가 놀랍도록 뛰어나다. 영화가 제작 되던 1980년대 즈음이면 할리우드 특수효과사에 있어서도 여명기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개봉되어 전세계에 미증유의 충격을 던져준지도 10여년이 흘렀을 시점이었고, 또 조금만 버티면 또다른 전설이 될 까지 개봉될 시기였으니. 그런 관점에서만 보자면야 의 합성 기술 역시 당연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른지도. 하지만 그럼에도 대단한 건 대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