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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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간서클 역사지구(Logan Circle Historic District)의 미국 국립사적지들과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등

로간서클 역사지구(Logan Circle Historic District)의 미국 국립사적지들과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등

반응형 프랑스 출신의 피에르 랑팡(Pierre L'Enfant)이 베르사유 왕궁을 참고해 1791년에 설계했다는 워싱턴DC 중심부의 도로망은, 일반적인 바둑판 형태에다 중요 장소들을 비스듬히 연결하는 대로들을 추가한 것이 특징으로, 동서 방향의 도로는 알파벳, 남북은 숫자, 그리고 사선의 대로는 여러 주(state)의 이름을 붙였고, 백악관과 의사당이 들어선 위치를 제외한 나머지 그 대로들이 교차하는 곳에는 사각형의 넓은 광장이나 또는 '서클(Circle)'이라 부르는 둥근 로터리를 만들었다. 메릴랜드의 그린벨트 공원 하이킹을 마치고 DC를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중에 소소한 볼거리들이 부근에 많이 있는 로간서클(Logan Circle) 지역을 들러보기로 했다. 차를 주차한 곳은 로드아일랜드 애비뉴(Rhode Island Ave)에 접해있는 조그만 카터 G. 우드슨(Carter G. Woodson) 기념공원 부근이었다. 그는 노예였던 부부에게서 1875년에 태어나 농장과 탄광 일을 한다고 20세가 넘어 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그후 꾸준히 문학과 역사를 공부해서 1912년에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런데 기념물 계단에 놓인 맥주캔에다가 동상 뒤쪽으로는 노숙자 한 분이 살림을 차리고 계셔서, 사진 한 장만 찍고는 바로 아래에 있다는 국립 공원으로 지정된 그의 집을 찾아갔지만... 카터우드슨 국립사적지(Carter G. Woodson Home National Historic Site)는 내부수리중으로 내년 봄에 재개관을 한단다. 그는 평생을 아프리카와 미국의 흑인들 역사에 대해 연구했는데, 그가 만든 학회에서 1926년에 최초로 2월 둘쨋주를 'Negro History Week'로 지정한 것이, 지금은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2월을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로 기리는 계기가 되었고, 이를 따라해서 수 많은 '○○ History(또는 Heritage) Month'들이 생겨났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남서쪽으로 비스듬한 로드아일랜드 대로를 따라 로간서클까지 걸어왔는데, 로터리 도로를 따라서 둥글게 늘어선 빅토리아풍의 예쁜 건물들은 1870년대부터 신흥부자들의 집으로 지어져서, 지금도 DC에서 주택가격이 가장 비싼 동네들 중의 하나라고 한다. 로터리 중앙에 만들어진 공원을 구경하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가면, 1901년에 매킨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헌정된,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장군이자 정치가였던 존 A. 로건(John Alexander Logan)의 청동 기마상이 공원 중앙에서 위용을 자랑한다. 일리노이 주 출신의 하원의원이었던 그는 블로그에 방문기가 있는 첫번째 불런 전투(First Battle of Bull Run)에 참가한 후에 주로 서부전선에서 남군과 싸웠다. 그리고 1868년에 남북전쟁에서 사망한 병사들을 추모하는 날의 제정에 앞장서는데, 그게 지금 미국의 여름 휴가시즌 시작을 알리는 연휴를 만든 5월말의 메모리얼데이(Memorial Day)가 되었다. 그 후 상원의원을 거쳐서 1884년에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지만 낙선하고 2년 후에 사망했다. 날씨는 흐렸지만 가을 단풍이 들기 시작할 때였고, 동상 주변의 잔디만 더 잘 관리되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마상의 기단도 청동으로 만든 것은 처음인 듯 했는데, 이 쪽 면에 새겨진 그림은 상원의원 선서를 하는 모습이란다. 이제 공원을 통과해서 두번째 목적지를 찾아 걸어간다. 로건서클의 다른 '비스듬 대로'인 버몬트 애비뉴(Vermont Ave)를 따라 조금 내려오니까, 바로 길 건너편으로 메리맥러드베순 의사당 국립사적지(Mary McLeod Bethune Council House National Historic Site)라는 긴 이름이 적힌 작은 국립공원청 간판이 보였다. 로간서클 역사지구 안내판에 메리 매클러드 베튠(Mary McLeod Bethune, 1875~1955)에 대한 소개와 사진들이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역시 노예의 딸로 태어났던 그녀는 학교를 만들어 흑인 소녀들에게 글을 가르치다가, 1935년에 FDR 대통령의 자문위원이 되어 DC에 와서는 전미흑인여성회(National Council of Negro Women)를 조직해서 권리신장과 평등을 위해 여생을 바쳤다. 그녀가 1943년부터 살면서 NCNW 본부로도 사용되었던 이 건물이 1982년에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점심 시간이라서 1시 이후에 문을 연다는 종이가 문에 붙어 있었다... 그래서, 버몬트 애비뉴를 따라서 남쪽으로 더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로 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조금 작은 다른 서클을 만나는 모퉁이에 서있는 Luther Place Memorial Church는 1873년에 건축되었는데, 그 앞의 청동상은 당연히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Martin Luther)로 독일황제 빌헬름 1세가 선물한 것이란다~ 사선의 매사추세츠 대로(Massachusetts Ave)가 지하로 지나가는 토마스서클(Thomas Circle)은 현대적으로 개발이 되었는데, 오른편 버몬트 대로로 계속해서 1km만 더 직진하면 백악관이 나온다. 교차로 중앙의 동상은 뒷모습만 멀리 보여서 그냥 이름만 찾아보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위키피디아의 내용을 읽어보니까 그의 사진과 함께 간단히 소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부 버지니아가 고향인 조지 H. 토머스(George Henry Thomas)는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군인으로, 남북전쟁에서 가족과 동료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으며 연방에 남아서 북군 지휘관이 되었다. 서부전선에서 그랜트와 셔먼에 버금가는 전공을 올리며 소장(major general)으로 전쟁을 마친 후에도, 회고록을 쓰며 업적을 자랑하는 다른 장군들과는 달리, 남부에서 학대받는 흑인들을 보호하며 군정에 참여했다. 잭슨 대통령이 중장으로 진급시켜 워싱턴으로 부르려 했지만, 그는 정치판에 얽히기 싫다며 거부하고, 태평양군 지휘관을 자청해 샌프란시스코로 온 이듬해 53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단다. 토머스서클에 있는 이 건물은 1930년에 만들어진 National City Christian Church라는데, 사실 걸려있는 큰 깃발에 더 눈이 갔다. 무지개 깃발이야 자주 봤지만 저런 식으로 색깔이 훨씬 더 많이 추가된 것은 처음이라 찾아보니 LGBTQIA2S+ 깃발이란다... 오후 1시가 넘어서 앞서 국립사적지를 다시 찾아갔지만, 계속 문은 잠겨있고 서성거려도 안에 인기척이 없어서 그냥 바로 3번째 목적지를 찾아갔다. 여기서 정서 방향에 있는 2011년 미동부 여행에서 숙박했던 듀퐁서클(Dupont Circle)은 상업지구로 개발된 반면에, 로간서클은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주택가로 남아있는게 큰 차이점이다. 이 예쁜 집들의 제일 북쪽에 목적지가 있는데, 다시 로터리 공원 안을 지나서 걸어간다. 로간 장군은 새들의 친구...ㅎㅎ 주변에 나무가 많고 교통량은 적은 곳이라서 그런지, 지금까지 워싱턴DC에서 본 동상들 중에서 새들이 가장 많이 앉아있는 모습이었는데, 대충 세어봐도 20마리 정도 되는 듯 했다. 기단의 서쪽면은 남북전쟁에서 가운데 로간이 장교들과 작전회의를 하는 모습이라는데, 모두 긴 콧수염에 같은 사람처럼 보인다. 옥상에서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는 모퉁이의 집이 바로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Old Korean Legation Museum)으로, 아래쪽 게양대에는 한미수교 70주년 기념 배너와 표지판도 볼 수 있었다. 우리 민족이 미국에서 처음 소유한 건물로 1891년에 고종의 쌈짓돈 2만5천불로 매입한 자주외교의 상징이었지만,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뺏긴 후 일제가 1910년에 매각한 것을 오랜 노력 끝에 2012년에 350만불에 다시 한국 정부가 사들였다. 그 후 6년 동안 옛모습으로 복원해서 2018년 5월 22일 박물관으로 재개관했는데, 1890년대에 DC에 있던 30여 곳의 외국 공사관들 중에서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된 곳이란다. 평소에 문은 잠겨있고 사전예약을 통해서만 내부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데, 몇 번 예약을 시도했었지만 우리 가족이 가능한 시간과는 잘 맞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바쁜 따님은 이제 시간 맞추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2명으로 다시 예약을 해보도록 해야겠다~ 복원 전에 주차장이 있던 자리에는 한국식 돌담과 작은 정원, 그리고 창덕궁 불로문(不老門)의 복제품이 세워졌는데, 다른 한국분들이 오랫동안 구경을 하셔서 저기도 다음에 함께 둘러보는걸로 하고, 주차해둔 곳으로 돌아가면서 마지막 보너스 하나를 더 찾아가봤다. '수박집' 워터멜론하우스(Watermelon House)는 작은 연립주택의 벽면을 원래 핑크색으로 칠하려다, 색깔이 진하게 나오는 바람에 얼떨결에 수박을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2017년에 누군가 이 집 앞에서 점프를 하며 찍은 사진이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해져서 #watermelonhouse #watermelonjump 등의 태그를 단 나름 핫스팟이 되었단다. 혼자 점프를 하며 셀카를 찍을 수도 없고 해서 여기도 다음 기회에...^^ 참, 위에 소개한 2곳의 국립사적지도 내부는 못 봤지만 방문한 것으로 친다면, 이제 워싱턴DC 안에서 아직 둘러보지 못한 국립공원청의 독립적인 Official Unit은 딱 두 개만 남았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펜실베니아 애비뉴(Pennsylvania Ave)에서 케네디 센터까지 걸어가서 국립 교향악단 콘서트 관람

펜실베니아 애비뉴(Pennsylvania Ave)에서 케네디 센터까지 걸어가서 국립 교향악단 콘서트 관람

반응형 지난 여름에 울프트랩 야외극장에서 빗속의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긴 했지만, 위기주부에게는 와인을 곁들인 피크닉 겸 새로운 국립 공원 탐방에 더 가까웠고, 그 전에는 2019년 가을에 딸이 연주했던 하버드 대학 오케스트라 공연을 봤던게 마지막이었다. 옛날에 LA에 살 때는 클라리넷을 하는 딸 덕분에, 또 지휘자를 찾아가 사인을 받을 정도로 클래식을 좋아하는 아내를 둬서 연주회에 자주 다녔었다. 그 동안 팬데믹도 있었고 미동부로 이사를 한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이 날 콘서트홀에서 진지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감상한 것이 그러니까 딱 4년만인 셈이다. 공연장의 비싼 주차비를 아끼기 위해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한 김에, 조금 일찍 DC에 도착해서 올라가봤던 옛날 우체국 건물의 시계탑이 오른편에 서있다. 가운데 멀리 보이는 의사당에서 백악관까지 이어지는 펜실베니아애비뉴 국립사적지(Pennsylvania Avenue National Historic Site)의 소소한 볼거리들을 구경하며 이제 뒤돌아 케네디센터까지 걸어가보자~ 1910년에 세워진 이 기마상의 특이한 점은 말의 콧구멍이 유달리 크다는 것과 올라탄 사람의 특이한 복장과 모자이다. 카시미르 풀라스키(Casimir Pulaski)는 폴란드 귀족으로 미국 독립전쟁에 참여해서 워싱턴의 목숨을 구한 후에 대륙군 준장(brigadier general)에 오르며 "미국 기병대의 아버지(The Father of American cavalry)"로 불렸다. 그러나 불과 34세이던 1779년에 남부 사바나(Savannah)에서 벌어진 영국군과의 전투를 선봉에서 이끌다 전사했고, 지금까지 단 8명뿐인 미국 명예시민권을 받은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동상이 서있던 곳은 넓고 평평한 프리덤 플라자(Freedom Plaza)의 동쪽 끝이다. 이 광장은 사진처럼 스케이트보드 타는 사람들에게 인기라는데, 국립공원청이 공식적으로는 금지하지만 거의 묵인하는 수준이란다.^^ 넓은 바닥에는 전편에 보여드린 것처럼 의사당에서 백악관까지의 지도가 그려져 있고, 두 건물의 평면도까지 자세히 바닥에 새겨져 있었다. (점프하는 순간을 찍었어야 되는데 ㅎㅎ)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사람 뒤로 평범해 보이는 건물에 내셔널시어터(National Theatre), 즉 국립극장 간판이 보인다. 광장 북쪽에 처음 문을 연 것은 1835년이고, 지금의 1,700석 규모의 극장 건물은 1923년에 만들어져서, 지금도 브로드웨이 뮤지컬 등의 공연이 계속 열리고 있단다. 14th St를 건너서 퍼싱 공원(Pershing Park)에는 제1차 세계대전 미국 원정군 총사령관이었던 존 J. 퍼싱(John Joseph Pershing)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는 미군 역사상 단 4명만 존재하는 대원수(General of the Armies), 즉 소위 말하는 '6성 장군'에 해당한다. 그의 맞은 편에 제1차 세계대전 기념물(World War I Memorial)이 2021년에 공식적으로 만들어졌는데, 작년에 슬쩍 지나가며 봤을 때 저 벽의 까만 부분은 동상이 완성되었고, 하얀 부분은 아직 제작중이라 그림을 붙여놓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1년이 지났는데도 전혀 진척이 없는 것 같다고 아내에게 말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까만 부분도 동상이 아니라 그림 또는 사진이었다. (저 통쾌하게 비웃으시는 표정^^) 따로 세워진 안내판에 따르면 38개의 인물상으로 만들어지는 "A Soldier's Journey"는 2024년에 전체가 완성되어서 여기 설치될 예정이란다~ 퍼싱 공원 북쪽에는 1901년에 지금의 12층 건물로 만들어진 윌라드 호텔(Willard Hotel)이 있어서 로비를 잠깐 구경했다. 백악관에서 가장 가까운 5성급 호텔로 지금은 인터컨티넨탈이 운영을 하고 있다. 잠시 앉아서 쉰 곳에는 일본풍 그림과 기모노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200여년 전부터 호텔이 운영되어서 수 많은 대통령과 유명인사들이 거쳐간 화려한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도 따로 있다고 하므로 다음에 기회가 되면 자세히 둘러보고 싶다. 호텔을 나와 15th St를 건너면 남쪽 내셔널몰 방향으로 높은 기단의 기마상이 눈에 띈다. 우리 가족에게는 남북전쟁의 영웅보다는 '세계 최대의 나무' 이름으로 처음 기억되었던 윌리엄 테쿰세 셔먼(William Tecumseh Sherman) 장군 기념물인데, 보안구역 안에 위치해 있어서 바로 앞까지 갈 수는 없게 막혀있다. 그리고 '남의 집' 잔디밭을 가로지를 수는 없으니 여기서 북쪽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주소가 '1600 Pennsylvania Ave, Washington, DC'인 그 집이 높은 철제 담벼락 너머로 보인다. 1981년부터 저 자리에 들어섰다는 '세계평화'를 주장하는 텐트가 요즘은 다 부질없어 보이고, 비밀경호국 경찰들이 작년 여름보다 주변에 훨씬 많이 보였다... 멀리 나폴레옹처럼 모자를 벗어서 인사하고 있는 기마상을 포함해 여기 화이트하우스 주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여기를 클릭해서 작년에 올린 포스팅을 보시면 된다. 백악관의 서쪽 지역을 포기보텀(Foggy Bottom)이라 부르는데, 거기에 1821년에 개교한 조지워싱턴 대학교(The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캠퍼스가 넓게 자리하고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사립대이기는 하지만 초대 워싱턴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미의회가 헌장을 만들어 설립을 추진했다는 역사적 특수성이 있으며, 미국 수도에 있는 만큼 정관계쪽으로 매우 유명하단다. 케네디센터 배너가 걸려있는 가로등 옆으로 나무들 색깔이 아주 이뻤는데, 확실히 DC는 도시라서 그런지 시골인 우리 동네보다는 단풍이 조금 늦게까지 남아있는 듯 했다. 문제는 걸어오면서 배가 고파 쓰러질 지경이었기 때문에 지나온 대학 캠퍼스와 박물관, 또 이런 단풍을 제대로 구경할 여력이 전혀 없었다는 것... 존 F. 케네디 공연예술 센터(John F. Kennedy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의 심플한 외관이 마침내 눈앞에 나타났고, 이 곳의 역사와 대통령 전시관 등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해서 지난 여름의 첫번째 방문기를 보시면 된다. 배고픈 우리 부부는 우측 계단으로 바로 들어갔지만, 사진 왼쪽에 보이는 동상을 멀리서 찍은 사진으로 간단히 소개한다. 이렇게 정면에서 봐서는 무슨 동상인지 감이 안 오실텐데... 바위와 청동을 결합해서 만든 돈키호테(Don Quixote) 조각으로, 스페인 국왕 부부가 미국독립 200주년을 기념해서 1976년에 선물한 작품이란다. 옆에서 찍은 다른 사진을 보면 기다란 창을 든 돈키호테가 왠지 괴물처럼 보이는 그의 말 로시난테(Rocinante)를 타고 바위를 부수며 나오는 듯한 역동적인 느낌이다. 우리는 만사 제치고 꼭대기 층에 있는 KC Cafe로 직행했다! 치즈버거와 양파링, 샐러드와 수프로 늦은 점심을 정말 배불리 잘 먹었는데, 여기 카페의 샐러드는 특히 추천할만 하다~ 역시 "유자왕도 식후경" ㅎㅎ 앞서 언급한 케네디 대통령 기념전시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이 공연장은 처음부터 국립공원청에서 직접 관리를 하다가 1994년에 재단으로 이관되었다고 하니, 사실상 워싱턴DC에 있는 8번째 대통령 국가기념물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이 날은 3개의 무대 중 가장 남쪽의 콘서트홀에서 열린 국립교향악단(National Symphony Orchestra) 연주회를 관람했다. 이름에 '내셔널'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국가대표급의 실력이나 위상은 전혀 아니고, 대충 찾아보니까 미국에서 10~20위권의 오케스트라로 보시면 된다. 참고로 음악(연주 실력)은 시카고 심포니가 1등인 듯 하고, 매출(장사 실력)은 LA필이 독보적인 1등이었다. 우리 부부의 좌석은 제일 윗층의 가장자리로 화려한 샹들리에를 눈높이에서 가까이 감상할 수 있는 큰 잇점이 있었다.^^ 콘서트홀도 오페라극장과 마찬가지로 1층 바닥의 경사가 별로 없고 2~3층은 테두리를 따라 좁게 만들어져 있는 옛날 유럽식 소극장 분위기라서 옛날 살던 동네의 극장과 계속 비교를 하게 되었다. (비슷한 위치에 앉아서 내려다 본 LA 디즈니홀의 모습을 보시려면 클릭) 1부는 중국 피아니스트 유자 왕(Yuja Wang) 협연이었고, 앵콜곡을 지휘자와 함께 피아노 연탄을 한 후에 인사하는 모습이다. 2부는 시벨리우스 교향곡이었는데, 예전에 지혜도 클라리넷으로 공연한 적이 있는 곡이라고 아내가 끝나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나도 케네디센터 북쪽의 이 둥근 건물이 모든 '○○게이트'의 원조인 워터게이트 호텔(Watergate Hotel)이라고 알려주었다. 만약 이 호텔 이름이 워터파이프(Waterpipe)였다면, 그런 사건들을 모두 '○○파이프'라고 지금 사람들이 부를거라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은 조지워싱턴 대학병원 안에 있는 포기바텀-GWU 역에서 탔다. 백악관에서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이라서 대통령도 위급시에 이 곳을 이용하는데, 1981년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에서 총상을 입은 로널드 레이건이 여기 실려와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참, 케네디센터 연주회 티켓은 4번의 공연을 한꺼번에 예약해서 할인을 받았기 때문에, 앞으로 여기 지하철역은 자주 이용하게 될 듯 하므로 이 동네에 얽힌 다른 이야기는 차차 하도록 하자.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올드포스트오피스(Old Post Office) 빌딩 시계탑 전망대와 월도프아스토리아(Waldorf Astoria) 호텔

반응형 미국 대통령은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취임식을 한 후에 백악관까지 퍼래이드를 하게 되는데, 두 곳을 비스듬한 직선으로 연결하는 도로가 바로 펜실베이니아 애비뉴(Pennsylvania Avenue)로 많은 사람들이 흔히 "America's Main Street"라 부르는 길이다. 미국의 수도를 대표하는 중심가답게 왕복 8차선의 대로 좌우로는 많은 역사적인 건물이 세워져 있고 다수의 동상과 기념물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 중에서 꼭 올라가보고 싶었던 빌딩의 전망대를 이 지역으로 이사를 온 지 정확히 2년만에 찾아갔다. 모든 역이 똑같이 지하 방공호처럼 만들어져 있는 워싱턴 지하철을 오래간만에 이용했는데, 우리가 내린 역의 이름은 '연방 삼각형' 페더럴 트라이앵글(Federal Triangle)이다. 이 곳의 유일한 출구를 통해서 지상으로 올라가면 눈앞에... 우리의 목적지인 '옛날 우체국' 올드포스트오피스(Old Post Office) 빌딩이 바로 딱 나타난다! 이제 올라가려는 시계탑이 지붕 너머로 북쪽에 솟아있는 것이 보이는데, 저리로 가기 위해서는 일단 건물의 반대편 남쪽의 입구로 가야 한다. 여러 개의 문들 중에서 뮤지엄/클락타워(Museum & Clock Tower)라 적힌 아래로 들어간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보안검색을 거친 후에 코너를 틀면, 이렇게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의 긴 복도 좌우로 전시들이 만들어져 있는 박물관이 먼저 나온다. 위기주부 오른편의 사진이 이 건물의 북쪽 정면 모습인데, 1899년에 완공되어서 미국의 중앙 우체국으로 1914년까지 사용되었고, 그 이후로는 여러 정부 기관의 사무실로 이용되었다. 연방청사들이 모여있는 Federal Triangle 구역에 위치해서 1970년대 초에는 완전히 철거될 뻔 했지만,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어 대대적인 수리를 거친 후에 1983년부터 Old Post Office Pavilion으로 최근까지 불려왔다. 벽에 붙어있던 지도로 파란색 테두리의 안쪽이 1965년에 독립적인 펜실베니아애비뉴 국립사적지(Pennsylvania Avenue National Historic Site)로 지정이 되었는데 지금 건물은 ⑧번 위치이다. 이미 블로그에 소개한 여기 포함되는 곳들로는 ③번 제1차 세계대전 기념물, ⑨번 포드 극장, ⑩번 스미소니언 초상화/미국 미술관, ⑫번 국립 문서보관소 등으로 각각 이름을 클릭해서 보실 수 있다. 그 중에 국립공원청이 관리하는 곳들을 묶어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었고, 아마도 국립사적지의 다른 나머지 장소들을 방문한 한두편은 더 추가가 될 것 같다. 전시의 마지막에 '반가운' 이름과 그의 가족사진까지 등장을 한다.^^ 앞서 수리 후 30년 가까이 지나 건물이 다시 노후화되자, 정부는 민간사업자와 60년 임대계약을 하는데 그 상대가 바로 트럼프 회사였다! 그리하여 우체국 건물은 2억5천만불의 리모델링을 거쳐 객실 270개의 최고급 호텔로 거듭나게 되고,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Trump International Hotel)이 그가 힐러리를 꺽고 대통령에 당선되기 불과 2주전인 2016년 10월말에 정식 개장을 했다. 일단 여기서 국립공원청 직원의 안내에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으로 올라가서 계속... 방금 우리가 타고 올라온 반투명 유리창의 둥근 엘리베이터가 다시 벽을 따라 내려가는 모습이다. 건물의 가운데가 이렇게 완전히 비어있는 구조인데, 바닥층에 빨간 단풍나무도 있고 아주 이쁘게 장식이 되어있는 것을 본 아내 왈... "저 아래에 꼭 들어가 보자~" 건물 역사 이야기를 마저 하자면... 원래 호텔업자이던 대통령이 백악관 바로 근처에서 (직접은 아니지만) 장사를 하는게 법적으로 여러가지 문제의 소지가 있었고, 또 트럼프에 반대하는 정치 시위가 호텔앞에서 자주 벌어지는 것도 영업에 도움이 되지 않았단다. 그래서, 2019년부터 트럼프 재단은 매각을 추진했고, 결국 그가 재선에 실패한 다음 해인 2021년에 남은 임대권한을 힐튼에 3억7천5백만불에 팔아서 1억불 이상 차액을 남겼단다! 그리고 정확히 1년 후인 2022년 6월에 지금의 월도프 아스토리아(Waldorf Astoria) 호텔이 새로 문을 연 것이다. 9층에서 시계탑 꼭대기는 다시 저 작은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데, 전망대의 인원수를 25명으로 제한해서 타고 내려온 사람 수 만큼만 태워서 올려보내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방문에 예약은 필요 없음) 기다리는 동안에 가운데 직원이 여러 이야기를 해주거나 질문에 답하는데, 왼편 바닥에 놓여진 여러 사진과 설명 중에서 제일 아래 있는 그림을 확대해 보여드린다. 라디오 송신탑같은 구조물을 제외하고, 워싱턴DC에서 가장 높은 5개의 건축물을 차례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 시계탑은 최대 높이 315피트(96m)로 3등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제 전망대에 올라가면 나머지 4개가 모두 다 보인다는 점인데... 기대하시라~ 작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까 제일 먼저 춥다는 느낌과 함께 좀 썰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이런 꼭대기는 지금까지 종탑인 경우가 많아서 당연히 여러 개의 종이 있는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상상했던 것 같다. 가운데 부분은 내려가기 전에 설명을 드리고, 시계탑에 올라왔으니 북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차례로 밖을 내다 보았다. (하하~ 약속대로 보여드리긴 하는데, 너무 작아서 화살표로 알려드림^^) 왼쪽이 건물 높이 4등인 워싱턴 국립 대성당(성공회)이고, 오른쪽이 2등인 국립 성모 대성당(천주교)으로 사진 원본을 확대하면 그래도 형체는 알아보실 수 있을거다... DC의 내셔널몰 주변 볼거리는 거의 다 봐가니까, 이제 슬슬 멀리 저 두 곳도 직접 한 번 찾아가볼 때가 되긴 했다. 동쪽은 5등 국회의사당에서 백악관 방향으로 뻗어 오는 펜실베니아 대로가 늦은 가을 단풍 가로수와 함께 가장 잘 보였다. 길 오른편 Federal Triangle 구역의 연방청사 건물들 지붕을 모두 붉은 기와로 올린 것도 이채롭다. 남쪽 방향 내셔널몰을 내려다 보는 아내의 모습으로, 영원한 1등인 워싱턴 기념탑이 흑인역사문화관 위로 솟은 것처럼 보인다. (워싱턴DC 안에는 법적으로 워싱턴 기념탑보다 더 높은 건물을 짓는 것이 금지되어 있음) 서쪽 멀리 보이는 현대식 고층건물들은 강 건너 버지니아 알링턴에 있지만, 그래도 예의를 지켜서 최대 높이가 400피트(120m) 정도로 워싱턴 기념탑보다 높지 않게 만들었다.^^ 하지만 네방향 중에서 서쪽 창문들이 가장 인기있는 이유는 왼편의 저 건물들 때문이 아니라... 사진 가운데 위쪽의 하얀 백악관이 가까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 앞쪽의 그리스 신전같은 건물은 재무부) 재미있는 것은 사진 우측 아래의 하얀 바닥인 프리덤 플라자(Freedom Plaza)로 앞서 보여드린 펜실베니아 애비뉴를 중심으로 한 지도가 바닥에 새겨져 있다. 전망대 가운데 유리로 보호된 기계의 톱니와 회전 레버를 이용해서, 우리가 서있는 곳 아래쪽으로 동서남북 4개 면에 모두 설치된 대형 시계를 동시에 조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제 시계탑 유적지 구경은 모두 마쳤고, 들어왔던 곳으로 나가서 12th St와 대로가 만나는 모퉁이로 향했다. 거기에는 '최초의 미국인'으로 통하는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의 동상이 서있는데, 신문사 워싱턴포스트(The Washington Post)의 창업자가 1889년에 만들어서 정부에 기증한 것으로 원래는 10th St 교차로에 있던 것을 1980년에 이리로 옮겨 왔단다. 광각으로 올려다 보고 찍었더니, 무슨 공포영화에 나오는 프랑스의 오래된 성같은 느낌이...^^ 북쪽면이 원래는 정문이었겠지만, 지금 호텔의 입구는 건물의 동쪽면에 있어서, 멀리 보이는 모퉁이를 돌아서 씩씩하게 입구를 찾아 들어갔다. 고급 호텔의 좁고 긴 통로나 로비를 옛날에 상류층 여성들이 화려한 드레스를 뽐내면서 걸었다고 해서 피콕앨리(Peacock Alley)라 뉴욕에서 부르기 시작했었다는데, 여기 월도프아스토리아 워싱턴DC 호텔의 그랜드 아트리움(Grand Atrium) 로비에 있는 바의 이름이기도 했다. 샹들리에를 메달기 위해서 철제 구조물을 추가로 설치해놓아서 전체적으로 좀 복잡한 느낌이었다는 점만 빼면 아주 멋진 공간이었고, 바의 뒤쪽 벽에 빈 크리스탈 병들을 높이 가득 전시해 놓은 것을 아내가 마음에 들어했다. 시계탑을 올라갈 때 눈에 띄었던 빨간 단풍나무는 애석하게도 가짜였지만, 그 아래에서 들려오는 하프 소리는 녹음이 아니라 직접 연주를 하는 생음악이었다. 일단 자리에 앉아서 어떤 메뉴가 있는지 확인부터...^^ 브런치를 먹기에 딱 좋은 장소였지만, 우리가 예약해놓은 케네디센터 연주회의 시작 시간에 맞추려면 바로 나가서 부지런히 걸어가야할 듯 했다. 여기서 서쪽으로 펜실베니아 애비뉴(Pennsylvania Ave)를 따라 백악관을 지나 걸어가면서 잠깐씩 둘러본 다른 동상과 기념물들 및 처음 들어가 보는 콘서트홀의 모습 등이 별도의 포스팅으로 곧 이어질 예정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미국의 '잃어버린 식민지'와 남북전쟁 역사가 있는 로어노크 섬의 포트롤리(Fort Raleigh) 국립사적지

반응형 정확히 1년전에 버지니아(Virginia) 주로 이사를 온 후부터, 미동부를 돌아다닌 여행기를 쓰고 있으면... 본인이 미국사를 전공하는 역사학도가 된 착각을 하는 것 같다. 열심히 찾아보고 정리해서 재미있게 블로그에 올려봐야 알아주는 사람도 거의 없는데, "왜 계속 이 짓을 하고있을까?"라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지난 9월에 집에서 남쪽으로 다녀온 1박2일 여행도 거의 '역사투어'에 가까웠는데, 지금의 미국땅에 영국인들이 최초로 식민지를 건설했던 두 곳이 목적지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일단 본편은 자료조사와 정리를 다 마쳤으니 평소처럼 논문...이 아니라 여행기를 완성하고, 앞으로도 역사공부를 계속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 전편에서 소개한 미국에서 가장 높은 등대를 구경하고 (여행기를 보시려면 클릭),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주의 해안을 따라 길게 만들어진 섬들을 이어주는 다리를 달려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다. 사진 정면에 나지막히 건물들이 보이는 땅이 그 평행사도(Barrier Island) 안쪽에 있는 로어노크 섬(Roanoke Island)으로, 이제 찾아가는 유적지가 있는 곳이다. Whalebone Junction 삼거리에서 시작되는 64번 국도로 좌회전 후에 또 다리를 건너면 로어노크 섬이다. 마땅히 점심을 먹을만한 곳이 없어서 만테오(Manteo) 마을의 맥도널드에서 투고를 해서 국립공원의 피크닉 장소에서 먹기로 했다. 섬의 제일 북쪽에 포트롤리 국립사적지(Fort Raleigh National Historic Site)가 있는데, 그 밑에 별도로 적혀있는 두 곳은 아래의 공원지도를 보며 설명을 드리기로 한다. 참고로 노스캐롤라이나 주도(state capital)도 같은 사람의 이름을 딴 롤리(Raleigh)인데, 실제 영어발음은 '랄리'에 가깝지만 대부분의 한글 사이트에서 '롤리'로 표기를 해서 그에 따르기로 한다. 먼저 다른 색으로 표시된 엘리자베스 가든(The Elizabethan Gardens)은 1950년대에 조성된 영국식 정원인데, 시간도 없었고 별도의 입장료가 있어서 들리지 않았다. 또 수변무대(Waterside Theatre)는 1937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여름마다, 이제 소개할 '잃어버린 식민지'를 소재로 한 로스트 콜로니(The Lost Colony) 야외공연을 하는 장소이다. 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과 코로나 팬데믹이 정점이던 2020년의 두 시즌만 건너뛰고 지금까지 계속 같은 내용의 공연을 한 장소에서 하고 있는데, 이것은 오케스트라가 동원되는 공연으로는 미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어지는 기록이라고 한다. 그 두 곳을 빼고나면 사실 여기서 남는 것은 거의 이 비지터센터 밖에는 없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여기 나무 그늘의 피크닉테이블에서 늦은 점심으로 '1+1버거'를 참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다. 비지터센터에 붙어있는 이름인 린제이 워런(Lindsay Warren)은 1941년에 이 곳이 국립사적지로 지정되는데 기여한 연방 하원의원이다. 안내영화 시작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먼저 제일 안쪽에 보이는 전시실을 구경했다. "그럼 역사공부를 또 시작해볼까?" 1584년에 영국인 월터 롤리 경(Sir Walter Raleigh)이 당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후원으로 신대륙을 탐험해, 여기 로어노크 섬에 도착해서 최초로 잉글랜드 깃발을 꼽고 '처녀여왕'을 기리는 의미로 버지니아(Virginia)라 명명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탐험대 수준이라서 오래 머물 수 없었고, 다음 해에 병력을 끌고 다시 와서 주둔지를 만들기는 했지만 역시 또 포기하고 철수해야 했다. 마침내 1587년 여름에 친구인 존 화이트(John White)를 책임자로 여성과 어린이가 포함된 약 120명의 이주민이 도착해서 여기에 최초의 잉글랜드 식민지를 건설한다. 하지만 원주민과의 분쟁 및 식량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연말에 존 화이트가 보급품과 추가인력을 데리고 다시 돌아오기로 하고 영국으로 떠나게 된다. 남아있는 사람들 중에는 존 화이트의 딸과 사위, 그리고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태어난 영국계(English) 사람으로 기록된 그의 손녀인 버지니아 데어(Virginia Dare)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과 전쟁 중이던 영국은 바로 구호선단을 보낼 여력이 없었고... 결국 화이트는 손녀의 3번째 생일인 1590년 8월 18일에야 로어노크 섬에 돌아왔지만, 마을은 전투가 벌어진 흔적도 없이 버려진 상태로 120명의 사람들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고 한다. 유일한 단서는 울타리 기둥에 새겨진 '크로아토안(Croatoan)'이라는 남쪽 원주민 부족의 이름이었기 때문에, 화이트는 바로 40마일 떨어진 그 곳에 가서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폭풍우도 몰아치고 그의 선원들은 스페인 무역선의 해적질이 항해의 주목적이라서 탐사를 거부하는 바람에 사라진 사람들의 행방은 결국 미궁으로 남았다. 이상의 내용을 모두 보여주는 안내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다른 전시실로 들어갔더니, 그 곳에는 왼쪽의 월터 롤리 경과 오른쪽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신대륙 탐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창문 너머 실루엣으로 보이는 두 명이 움직이면서 실제 대화를 하는 영상이 나오는데, 아내가 조종판 앞에서 꼼꼼히 내용을 읽어보고 있는 모습이다. 롤리는 영국의 정치인, 탐험가, 작가, 시인이자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총신으로, 진흙길 위에 자신의 값진 망토를 펼쳐 엘리자베스 1세를 지나가게 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며, 일설에는 그가 엘리자베스 1세의 숨겨진 애인이라는 주장도 있단다. 특히 그는 신대륙에서 들여온 담배를 영국에 최초로 전파한 인물로 유명한데, 그가 담배연기를 내뿜자 하인이 불이 붙은 줄 알고 롤리에게 물을 퍼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렇게 엘리자베스 시절에는 잘 나가던 그였지만... 1603년에 제임스 1세가 즉위하자 정쟁에 휘말려 런던탑에 갇혀 12년을 보내야 했으며, 65세에 특별사면을 받아서 다시 신대륙으로 탐험을 떠나지만, 항해중에 스페인과 싸우지 말라는 왕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다시 송환되어서, 결국 웨스트민스터에서 참수형으로 최후를 맞이한 한마디로 '풍운아'라 할 수 있다. 비지터센터 앞마당에 세워진 Freedmen's Colony Monument라는 까만 기념비에 우리 부부가 비친 모습이 살짝 보인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흘러 1860년대 미국 남북전쟁 때 북군이 로어노크 섬을 점령해서 롤리 요새(Fort Raligh)를 만들고, 남부 여러 주에서 탈출한 흑인 노예들을 여기에 받아들여 그들의 목숨을 살린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볼거 다 본거 같았지만 그래도 국립공원에 왔으니 조금은 걸어주는 것이 예의일거 같아서, 비지터센터 옆으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서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공원지도에 1896 Monument라 되어있는 비석인데, 이 장소의 역사적 가치를 최초로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협회에서 1896년에 만들어서 세운 것으로, 앞서 언급한 영국인들의 탐험 기록들과 함께 이 땅에서 태어난 Virginia Dare가 세례받은 이야기 등이 자세히 적혀있다. 20세기 들어서 여기 '로어노크의 잃어버린 식민지(Lost Colony of Roanoke)'의 고고학적 발굴이 진행되기는 했지만 대장간의 쇳덩이나 도자기 조각 등이 약간 나온 것 말고 큰 성과는 없는 것 같다.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는 무슨 건물의 흔적같이 보이는 이것도, 1585년에 영국 탐험대가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습으로, 1950년대에 일부러 다시 만든 토성(Earthen Fort)의 잔해일 뿐이다. 전시실에 작게 붙어있던 삽화로, 존 화이트가 사람들은 사라지고 'CROATOAN' 글자만 남아있는 로어노크 식민지(Roanoke Colony)에 돌아온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드린다. 이 잃어버린 식민지와 흔적없이 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양한 상상력이 더해져서 소설과 영화의 소재가 되었으며, 지금도 DNA 분석기법 등을 이용해서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추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단다. 이렇게 월터 롤리(Walter Raleigh)가 주도했던 영국인들의 첫번째 아메리카 식민지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 후 런던 주식회사(London Company)에서 다시 3척의 배로 100여명의 남성을 1607년에 북쪽의 체사피크 만 안쪽에 상륙을 시켜서 성공적으로 식민지를 건설하게 되는데... 그 곳도 다음날 오후에 직접 찾아갔으므로, 이어지는 1박2일 여행기에서 역사공부는 계속된다. "To Be Continued"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