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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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질리(Ridgely) 가문이 200년 동안 살았던 메릴랜드 햄튼 국립사적지(Hampton National Historic Site)
지금 살고있는 워싱턴DC 지역에서 뉴욕(New York) 시까지 가는 중간에는 볼티모어(Baltimore)와 필라델피아(Philadelphia)의 두 대도시가 있지만, 이사 온지 3년이 다 되어가도록 아직 두 도시를 방문한 적이 없다. 딸이 사는 뉴욕을 자주 왕래하니까, 중간에 들릴 기회가 앞으로 많이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자꾸 미루게 된다. 지난 5월 중순에 모처럼 뉴욕을 1박2일로 방문했던 둘쨋날 오후에, 볼티모어 시는 아니고 그 북쪽에 붙어있는 국립 공원 한 곳을 잠깐 구경했는데, 아래 어떤 여성의 전신 초상화를 하나 보여드리면서 그 곳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기 DC의 국립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라는 그림으로, 영국 태생의 미국 화가 토머스 설리(Thomas Sully)의 1818년 작품이다. 현대식 하프가 등장하는 그림들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다는데, 모델의 이름이 Eliza Eichelberger Ridgely로 이제 소개하는 저택의 제3대 안주인(mistress)이다. 또 이 그림 덕택에 그 곳이 국립의 공원으로 보존될 수 있었기에 브로셔 표지에도 등장을 한다. 오전에 펜실베니아 주의 롱우드가든(Longwood Gardens)을 구경하고, 일부러 드라이브 삼아 1번 국도를 따라 천천히 달려서, 볼티모어 바로 북쪽에 있는 햄튼 국립사적지(Hampton National Historic Site)를 찾아왔다. 미동부 여기저기 '햄튼(Hampton, 햄프턴)'이 들어간 지명들은 대부분 식민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여기도 그렇다. 참고로 모텔 체인 '햄튼인(Hampton Inn)'의 역사와 관련된 곳은 아니다~^^ 그런데 오후 4시가 넘어서 비지터센터가 문을 닫았다... 저택 내부의 투어는 포기하고 왔지만, 관련 전시도 전혀 못 본 상태로, 다행히 밖에 비치해 둔 브로셔 하나만 챙겨서 일방통행 도로를 조금 더 달려서 위쪽 저택 옆에 만들어진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약간 바래지기는 했지만, 공원의 지도와 대략적인 소개를 함께 볼 수 있는 안내판 사진을 올린다. 영국군의 찰스 리질리 대령(Col. Charles Ridgley)이 1745년에 처음 여기 1,500에이커의 땅을 사서 담배농장을 시작했다가, 후에 아들과 함께 고향의 이름을 딴 노스햄턴 제철소(Northampton Ironworks)를 만들어 번창하는데, 독립전쟁 중에는 대륙군에 무기를 만들어 공급하기도 했단다. 그의 아들이 7년간의 공사를 거쳐 1790년에 완성한 저택이 바로 앞에 보이는 Hampton Mansion인데, 완공 당시로는 신생 독립국 미국에서 가장 큰 개인주택이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개인 소유로 남아서 만약 비싼 입장료를 받는 곳이 되었다면, 훨씬 더 깔끔한 모습이었을 듯한 느낌이 좀 들기도 했다. 이 저택의 다음 주인이었던 Charles Carnan Ridgley는 메릴랜드 주지사를 역임하기도 했는데, 그가 11명의 자녀에게 땅과 노예를 나눠서 물려주기 직전인 1829년 전성기에 햄튼 플랜테이션(Hampton Plantation)의 면적은 25,000에이커에 노예는 350명에 달했다고 한다. 저택 남쪽으로는 정사각형의 기하학적인 정원들이 여러 개 만들어져 있는데, 앞쪽 두 개만 그 모양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직전에 롱우드가든을 보고 와서 좀 시시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저택을 지을 당시부터 넓은 앞마당을 평평한 정원으로 만드는데 큰 공을 들였고, 현재의 모습으로 가꾼 것이 첫번째 그림의 주인공인 Eliza Ridgely라는 설명 등이 적혀있다.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을 거치면서 대농장의 수익성은 점차 나빠져서 낙농업 중심으로 변화한 후에, 20세기 초부터 리질리 가문 소유의 땅들은 교외의 주택단지로 개발이 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1944년에 국립미술관 디렉터가 이 집에 걸려있던 맨 위의 그림을 직접 보기위해 방문했다가, 제6대 집주인 John Ridgely, Jr.로 부터 오래된 저택을 옛모습 그대로 관리하는 고충 등을 듣고는, 국립공원청과 여러 재단 등에 연락을 해서 보존 노력을 주도하게 된다. 참, 롱우드가든 포스팅에서 'Orangery'라는 단어를 다음에 설명하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안내판의 그림과 같이 바닥에 온돌(hypocaust)을 설치한 유리 온실을 그렇게 부른다. (뒤로 보이는 건물은 1976년에 복원한 것으로 뒤쪽은 화장실로 사용) 한겨울에도 오렌지 나무를 키워서 따먹기 위한 당시 부의 상징과 같은 건물로, 프랑스 파리의 유명한 오랑주리 미술관(Musee de l'Orangerie)도 루브르 궁전의 이런 온실이었다. 저택 옆으로도 다른 건물이 있고 길 건너편에 다른 집들도 있지만, 모두 둘러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맨션의 출입구에 해당하는 북쪽 면만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1948년에 저택과 주변 땅을 90,000달러에 팔고 마지막으로 북문을 나서는 John Ridgely, Jr. 부부의 모습으로, 사들인 재단이 정부에 바로 기증을 해서 현재의 국립사적지가 되었고, 2년의 수리를 거친 후에 일반 관람객에게 집 내부가 공개되게 된다. 무엇보다 이 곳의 가치는 200년 이상 한 집안의 소유였던 땅에, 6대에 걸쳐서 그대로 보존이 된 대저택이라는데 있단다. 햄튼 저택(Hampton Mansion) 내부의 중앙홀에 걸려있는 는 비록 모사품이지만, 음악실에 전시되어 있는 하프는 실제 위 그림에 등장했던 진품이라고 한다. 국립 공원이 된 덕택에 무료인 내부 투어를 꼭 해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방문을 해야할 듯 한데... 현재 목~일요일에 오전 10시, 오후 1시와 3시의 하루 3번만 진행되는 것을 기억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집에서 뉴욕을 왔다갔다하는 일정에 맞출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앨러게니 포티지 레일로드(Allegheny Portage Railroad) 국립사적지
혼자 하루에 10시간 동안 차를 몰고 6곳의 목적지를 찾아다녔던, 지난 4월말의 '펜실베이니아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들'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다. 해질녘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 첫인상은 얼핏 묘비처럼 보이기도 했던 아래 사진의 공원 간판에는, 앨러게니 포티지 레일로드 국립사적지(Allegheny Portage Railroad National Historic Site)라 씌여 있으니까 기차(train)와 관련된 장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 테두리의 돌로 만든 아치는 철도가 지나가는 다리의 교각이나 터널의 형상을 나타내고자 했던 것 같다. 내륙에 해발고도까지 높아서 나무에 새순이 이제야 올라오고 있었던 숲속에는 아무 것도 나오지를 않다가... 숲을 지나서 언덕 꼭대기에 도착하니까, 아주 크고 튼튼하게 잘 지어놓은 기차역같은 건물들이 나와서 놀랬다. 전혀 예상하지 않은 장소에서 아주 멋진 기차역을 만나니까... 주변 풍경과 건축 양식은 완전히 다르지만, 15년전에 방문했던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의 켈소(Kelso)가 떠오른다. 그러나 이 건물들은 기차역은 아니고, 이 곳이 1964년에 국립사적지로 지정이 되며 건설된 비지터센터와 관리사무소 등이 모여있을 뿐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국립공원청 로고가 붙어있는 오른편 안내소로 들어가면, 당연히 기차가 먼저 나오겠지 생각했는데... 입구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하얀 물체는 배(boat)였다! 퇴근을 준비하다가 종소리에 놀라 밖으로 나온 털보 레인저가 틀어준 안내영화를 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공원 브로셔의 지도나 그림을 PDF로 못 찾아서 아래에 앞면 전체를 사진으로 찍어서 올리는데, 위기주부가 이렇게라도 보여드려야겠다 생각할 정도로 흥미로운 경우는 매우 드물다.^^ 1830년대는 증기기관(steam engine)을 이용한 철도가 건설되기 시작했지만, 대량의 물류운송은 아직도 운하(canal)가 효율적이던 시기였다. 1사분면의 펜실베니아 지도와 같이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를 운하로 바로 연결하는 것은 높은 앨러게니 산맥(Allegheny Mountain)에 가로막혀 불가능하니까, 거기 블레어 고개(Blair Gap)를 넘는 36마일 구간은 운하를 다니는 배를 통째로 차량에 실어서 철도로 산을 넘도록 만든게 1834년에 개통된 Allegheny Portage Railroad란다. (두 수로 사이의 구간을 육로 운송하는 행위가 '포티지(portage)'라는 단어의 뜻) 아주 잘 만들어 놓은 이 디오라마처럼 기관차가 배를 끌고 산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인데... 배가 두동강이 나있다? 처음에는 모형이 만든지 오래되어서 갈라져 떨어졌나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 철도 차량 길이에 맞춰서 화물선이 분리가 가능하도록 일부러 만든 것이란다! 이렇게 함으로써 두 번이나 짐을 옮겨 싣는 수고를 할 필요없이 전구간 운송이 가능하도록 했다는건데, 어찌보면 현대의 규격화된 컨테이너 화물운송의 원조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비지터센터에는 배를 실은 차량을 '평지에서' 끌었던 기관차도 하나 전시되어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증기 기관차가 아니라 그냥 보일러에 바퀴를 달아놓은 모습이다. 이 철도의 더 대단한 사실은 밖으로 나가서, 옛날 선로가 지나가는 곳에서 직접 확인하게 되는데, 그 전에 중요한 장소를 설명하는 안내판 하나만 더 보여드린다. 미국 최초의 기차가 지나는 동굴로 약 300미터 길이의 '스테이플 벤드 터널(Staple Bend Tunnel)'도 이 철도와 함께 만들어졌는데, 시리즈 전편에 소개했던 존스타운(Johnstown) 부근에 사진과 같은 모습으로 복원되어 있다고 한다. (창문 밖으로 이 날 위기주부와 함께 수고했던 차가 보임^^) 철도가 놓여진 곳으로 오니까, 미국 토목학회가 지정한 국가유적이라는 의미인 National Historic Civil Engineering Landmark 간판이 먼저 보였다. 그런데 뒤쪽으로 보이는 철도가 복선이다. 단선으로 교차 운행도 가능했을 건데 굳이 복선으로 꼭 만들어야 했던 이유는 혹시 브로셔 그림을 자세히 보신 분이라면 이미 알겠지만, 복선 철도를 덮고 건설된 저 커다란 하얀 건물인 '엔진 하우스(Engine House)'에 있다. 브로셔 사진 제일 아래에 이 노선의 고도 변화를 보여주는 단면도가 있는데, 배를 실은 무거운 기차가 산을 넘기 위해서는 10곳의 경사로마다 이런 엔진실을 만들어서 열차를 밧줄로 잡아 당겨야 했던 것이다! 엔진하우스 내부 복선 철도의 바닥에 피스톤 엔진과 커다란 톱니바퀴가 보이는데, 그냥 줄을 감아서 끌어올릴 힘은 없었기 때문에, 하나의 밧줄로 도르래를 이용해 복선 철도의 양쪽의 기차를 연결해서, 한 대가 올라가면 다른 한 대는 내려오는 식으로 엔진은 바퀴를 돌려주는 역할만 했다고 한다. 즉, 푸니큘라 또는 인클라인이라 부르는 경사철도(incline railroad) 혹은 강삭철도(cable railway) 시스템을 10개나 만든 것이다. 제목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을 언급했지만, 약 200년전에 이런 기계로 배를 산으로 끌어올린 것을 보면... 여기서는 정말 "의지만 있으면 배도 산으로 간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처음 15년 동안은 사진에 보이는 삼(hemp)을 꼬아서 만든 밧줄이 짐을 가득 실은 배와 차량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끊어지며 사고도 발생을 했지만, 새로 발명된 강철 케이블(iron wire rope)로 1849년에 모두 바꿔서 안정적으로 내륙 물류수송의 대동맥 역할을 했으나... 증기기관의 개선으로 기차의 마력이 증가하고, 토목공학의 발달로 보다 긴 터널과 교량의 건설이 가능해져서, 결국 1854년에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를 한 번에 연결하는 완전히 새로운 철도가 개통을 하자마자, 운하를 다니는 배를 싣고 밧줄로 끌어서 산을 넘었던 이 구식 철도는 한순간에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여기 6번 엔진하우스의 고도가 전구간에서 가장 높은 해발 717 m이고, 사진의 서쪽 방향으로 완만한 서밋레벨(Summit Level)을 지나 1~5번의 경사로를 내려가서 해발 358 m의 존스타운에서 기차에 실린 배를 다시 운하에 내렸던 것이다. 여기서 반대편 동쪽 방향으로 10번 엔진하우스 자리까지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쪽으로 철도가 끝나는 홀리데이스버그(Holidaysburg) 마을은 291 m로 거리는 훨씬 가깝지만 고도차는 더 크다. 바로 옆으로는 레몬 하우스(Lemon House)라 불리는 2층 건물이 있는데, 과일 레몬과는 관계가 없고 운영한 부부의 성씨가 레몬이었단다.^^ 철도와 함께 만들어져서 작업자와 이용객들에게 식사와 음료를 파는 친목의 장소였다고 하는데, 이미 레인저가 문을 잠그고 퇴근해서 옛날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는 내부는 들어가 볼 수 없었다. 레몬하우스 뒤로 버려진 이 철도를 따라 건설되었던 옛날 22번 국도(Old Route 22)가 살짝 보인다. 위기주부는 공원 출입구와 연결된 왕복 4차선의 현재 22번 국도를 이용해 산을 내려가 3시간 거리의 집까지 운전해 돌아갔는데, 여기를 포함해 이 날 방문했던 6곳을 대표하는 연도를 시간 순으로 링크를 걸어보면 1754년, 1789년, 1834년, 1889년, 1936년, 그리고 2001년까지... 참으로 부지런히 시공간(時空間)을 헤집고 다녔던 2024년 4월 22일의 이야기가 모두 끝났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리치먼드(Richmond)의 침보라소(Chimborazo) 의료박물관과 매기 워커(Maggie Walker) 국립사적지
미국 남북전쟁 1861~65년 기간에 남부연합의 수도였던 리치먼드(Richmond)는 워싱턴 남쪽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해서, 우리에게는 마치 '서울-평양'과 같은 느낌을 준다. 재작년에 그 도시에 있는 버지니아 주청사만 잠깐 방문해서 소개를 한 적이 있는데, 거기와 다른 남부 버지니아 지역의 국립 공원들 총 5곳을 묶어서 '1탄 펜실베니아'에 이은 3~4시간 거리의 별볼일 없는 곳들 찾아다니기 시리즈 2탄으로 또 다녀왔다. 지도에 표시된 5곳을 북쪽 집에서 출발해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서, 리치먼드 시내의 2곳은 마지막에 잠깐씩만 들렀기에 묶어서 제일 먼저 소개한다. 이 여행은 블로그 역사상 처음으로 경로의 역순(逆順)으로 글을 쓰는데, 그 이유는 이어질 시리즈 내용을 차례로 잘 읽어보시면 알게 된다. 리치먼드와 그 외곽의 남북전쟁 관련 장소들이 리치먼드 국립전장공원(Richmond National Battlefield Park)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여기는 시내 공원에 위치한 비지터센터로 간판 아래쪽에 의료박물관(Medical Museum)이라 씌여있다. 일단 '침보라소(Chimborazo)'는 여기 야트막한 언덕과 공원의 이름이기도 한데, 생뚱맞게도 중미 에콰도르(Ecuador)의 가장 높은 해발 6,310 m 성층화산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전체 공원 지도를 예의상 올려보는데, 도시 외곽에 1862년의 7일 전투(Seven Days' Battle)와 1864년 콜드하버 전투(Battle of Cold Harbor) 유적지들이 메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관계상 4곳의 비지터센터들 중에서 시내에 있는 여기 하나만 잠깐 들리는 것으로 위기주부의 국립 공원들 방문 리스트에 추가하기로...^^ 남북전쟁 기간 동안에 부상당한 남군 병사들의 치료를 위한 군사병원(military hospital)이 이 언덕에 만들어졌었는데, 목재로 만들었던 150동의 건물은 현재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비지터센터로 사용되는 이 건물은 1900년대 초에 연방정부가 기상관측용으로 지은 것이라 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여기에 있던 병원에서 전쟁기간 동안에 76,000명 이상의 부상병을 치료하며 사망률은 10% 미만이라서, 당시로는 전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면서 치료수준도 높았던 병원이라 할 수 있단다. 목수(carpenter)의 연장 가방이 아니라, 19세기 중반 외과의사(surgeon)의 치료 가방이란다. 남군 군의관의 복장과 무기를 비롯해 그들의 활약상에 대한 소개 등도 전시되어 있었다. 위기주부는 의대 진학은 꿈도 꿔본 적이 없고, 피를 보면 약간의 경기도 일으키는 체질이라서, 당시의 의료상황 등을 소개하는 전시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가 않았다.^^ 여기에는 또 활톱(hacksaw)이 전시된 것이 보이는데, 이런 도구들로... 당시 어떻게 부상당한 다리를 절단했는지 친절하게 그림으로 설명을 해놓았다. 이 정도로 리치먼드 국립전장공원에 속하는 침보라소 의료박물관(Chimborazo Medical Museum) 구경은 마치고, 밖으로 나가서 공원을 잠깐 둘러보았다. 사진 가운데 실루엣으로 보이는 동상이 여기서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가는 길인데, 그 동상은 바로 무엇인고 하니... 자유의 여신상이다~ㅎㅎ 1950년에 시작된 미국 보이스카웃 연맹의 'Strengthen the Arm of Liberty'라는 캠페인으로 미국 전역에 높이 2.5 m의 이런 동상이 약 200개나 세워졌는데, 현재 약 100개 정도가 남았다고 한다. 캠페인 제목에 따라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횃불을 들고 있는 팔이 약간 비정상적으로 길어 보였다. 전체적으로 심하게 때가 탄 것은 물론이고 왕관도 일부 부러져 있어서, 청소와 보수가 좀 필요해 보였다. 나무들 너머로 제임스 강(James River)이 살짝 내려다 보이는 언덕의 끝쪽으로 걸어가면, 여기에 앞서 설명한 침보라소 병원(Chimborazo Hospital)이 있었다는 동판을 볼 수 있다. 이제 북부 버지니아와는 뭔가 살짝 분위기가 다른 남부 리치먼드 시내를 운전해서 마지막 목적지를 급하게 찾아갔다. 구글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데로 찾아왔는데, 공원 홈페이지에 나온 건물 모습과는 살짝 다른 여기는 매기워커 국립사적지(Maggie L Walker National Historic Site)이다. 입구가 어딘지 두리번거리다가 비지터센터는 건물 사이 통로를 이용해 안뜰로 들어가라는 표지판을 겨우 찾았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비지터센터가 5시가 아니라 4시반까지만 운영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 때는 이미 그 시간을 살짝 넘기고 있었지만 문이 잠기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열고 들어갔더니, 국립공원청 파크레인저 예닐곱명이 모여서 퇴근 준비를 하면서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다가, 갑자기 들어오는 동양남자 한 명을 보고는 상당히 놀라더라는...ㅎㅎ 매기 워커(Maggie Lena Walker)는 흑인 노예의 딸로 태어난 교육자 겸 사업가로, 1903년에 미국 최초의 여성 은행장이 되어서 흑인들의 자립을 도운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모든 여성과 장애인들의 인권신장에도 기여해서 그녀가 살았던 집이 1975년에 국립사적지로 지정되었는데, 여기는 옆건물에 만들어진 비지터센터고 다른 외관의 보존된 집은 주차한 곳 반대쪽인데 늦어서 들어가볼 수는 없었다. 이 날 하루 이미 계기판에 찍힌 누적 운전시간이 9시간이었지만, 또 2시간을 더 운전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길 건너편 소방서 건물에 그려진 벽화를 감상했다. 다른 파크레인저 한 명이 또 모임에 참여하려고 비지터센터로 들어가는 모습인데, 참 팔자 좋은 연방 공무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거슬러서 이 날 이전에 방문했던 다른 국립 공원들을 소개하며 남북전쟁과 흑인 지도자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리치먼드(Richmond)의 침보라소(Chimborazo) 의료박물관과 매기 워커(Maggie Walker) 국립사적지
미국 남북전쟁 1861~65년 기간에 남부연합의 수도였던 리치먼드(Richmond)는 워싱턴 남쪽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해서, 우리에게는 마치 '서울-평양'과 같은 느낌을 준다. 재작년에 그 도시에 있는 버지니아 주청사만 잠깐 방문해서 소개를 한 적이 있는데, 거기와 다른 남부 버지니아 지역의 국립 공원들 총 5곳을 묶어서 '1탄 펜실베니아'에 이은 3~4시간 거리의 별볼일 없는 곳들 찾아다니기 시리즈 2탄으로 또 다녀왔다. 지도에 표시된 5곳을 북쪽 집에서 출발해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서, 리치먼드 시내의 2곳은 마지막에 잠깐씩만 들렀기에 묶어서 제일 먼저 소개한다. 이 여행은 블로그 역사상 처음으로 경로의 역순(逆順)으로 글을 쓰는데, 그 이유는 이어질 시리즈 내용을 차례로 잘 읽어보시면 알게 된다. 리치먼드와 그 외곽의 남북전쟁 관련 장소들이 리치먼드 국립전장공원(Richmond National Battlefield Park)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여기는 시내 공원에 위치한 비지터센터로 간판 아래쪽에 의료박물관(Medical Museum)이라 씌여있다. 일단 '침보라소(Chimborazo)'는 여기 야트막한 언덕과 공원의 이름이기도 한데, 생뚱맞게도 중미 에콰도르(Ecuador)의 가장 높은 해발 6,310 m 성층화산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전체 공원 지도를 예의상 올려보는데, 도시 외곽에 1862년의 7일 전투(Seven Days' Battle)와 1864년 콜드하버 전투(Battle of Cold Harbor) 유적지들이 메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관계상 4곳의 비지터센터들 중에서 시내에 있는 여기 하나만 잠깐 들리는 것으로 위기주부의 국립 공원들 방문 리스트에 추가하기로...^^ 남북전쟁 기간 동안에 부상당한 남군 병사들의 치료를 위한 군사병원(military hospital)이 이 언덕에 만들어졌었는데, 목재로 만들었던 150동의 건물은 현재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비지터센터로 사용되는 이 건물은 1900년대 초에 연방정부가 기상관측용으로 지은 것이라 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여기에 있던 병원에서 전쟁기간 동안에 76,000명 이상의 부상병을 치료하며 사망률은 10% 미만이라서, 당시로는 전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면서 치료수준도 높았던 병원이라 할 수 있단다. 목수(carpenter)의 연장 가방이 아니라, 19세기 중반 외과의사(surgeon)의 치료 가방이란다. 남군 군의관의 복장과 무기를 비롯해 그들의 활약상에 대한 소개 등도 전시되어 있었다. 위기주부는 의대 진학은 꿈도 꿔본 적이 없고, 피를 보면 약간의 경기도 일으키는 체질이라서, 당시의 의료상황 등을 소개하는 전시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가 않았다.^^ 여기에는 또 활톱(hacksaw)이 전시된 것이 보이는데, 이런 도구들로... 당시 어떻게 부상당한 다리를 절단했는지 친절하게 그림으로 설명을 해놓았다. 이 정도로 리치먼드 국립전장공원에 속하는 침보라소 의료박물관(Chimborazo Medical Museum) 구경은 마치고, 밖으로 나가서 공원을 잠깐 둘러보았다. 사진 가운데 실루엣으로 보이는 동상이 여기서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가는 길인데, 그 동상은 바로 무엇인고 하니... 자유의 여신상이다~ㅎㅎ 1950년에 시작된 미국 보이스카웃 연맹의 'Strengthen the Arm of Liberty'라는 캠페인으로 미국 전역에 높이 2.5 m의 이런 동상이 약 200개나 세워졌는데, 현재 약 100개 정도가 남았다고 한다. 캠페인 제목에 따라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횃불을 들고 있는 팔이 약간 비정상적으로 길어 보였다. 전체적으로 심하게 때가 탄 것은 물론이고 왕관도 일부 부러져 있어서, 청소와 보수가 좀 필요해 보였다. 나무들 너머로 제임스 강(James River)이 살짝 내려다 보이는 언덕의 끝쪽으로 걸어가면, 여기에 앞서 설명한 침보라소 병원(Chimborazo Hospital)이 있었다는 동판을 볼 수 있다. 이제 북부 버지니아와는 뭔가 살짝 분위기가 다른 남부 리치먼드 시내를 운전해서 마지막 목적지를 급하게 찾아갔다. 구글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데로 찾아왔는데, 공원 홈페이지에 나온 건물 모습과는 살짝 다른 여기는 매기워커 국립사적지(Maggie L Walker National Historic Site)이다. 입구가 어딘지 두리번거리다가 비지터센터는 건물 사이 통로를 이용해 안뜰로 들어가라는 표지판을 겨우 찾았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비지터센터가 5시가 아니라 4시반까지만 운영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 때는 이미 그 시간을 살짝 넘기고 있었지만 문이 잠기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열고 들어갔더니, 국립공원청 파크레인저 예닐곱명이 모여서 퇴근 준비를 하면서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다가, 갑자기 들어오는 동양남자 한 명을 보고는 상당히 놀라더라는...ㅎㅎ 매기 워커(Maggie Lena Walker)는 흑인 노예의 딸로 태어난 교육자 겸 사업가로, 1903년에 미국 최초의 여성 은행장이 되어서 흑인들의 자립을 도운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모든 여성과 장애인들의 인권신장에도 기여해서 그녀가 살았던 집이 1975년에 국립사적지로 지정되었는데, 여기는 옆건물에 만들어진 비지터센터고 다른 외관의 보존된 집은 주차한 곳 반대쪽인데 늦어서 들어가볼 수는 없었다. 이 날 하루 이미 계기판에 찍힌 누적 운전시간이 9시간이었지만, 또 2시간을 더 운전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길 건너편 소방서 건물에 그려진 벽화를 감상했다. 다른 파크레인저 한 명이 또 모임에 참여하려고 비지터센터로 들어가는 모습인데, 참 팔자 좋은 연방 공무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거슬러서 이 날 이전에 방문했던 다른 국립 공원들을 소개하며 남북전쟁과 흑인 지도자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