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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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4개월만에 암살당한 대통령의 집이었던 클리블랜드 외곽의 가필드(James A. Garfield) 국립사적지
올해 트럼프가 제47대로 다시 취임하며 미국 역사상 두번째의 '징검다리 임기' 대통령이 되었다. 그 첫번째는 1885~1897년의 가운데 4년을 뺀 제22·24대를 역임한 그로버 클리블랜드(Grover Cleveland)였다. 비록 그는 뉴저지 출생에 뉴욕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이 되어 오하이오(Ohio) 주와 직접적 관련은 없지만, 1796년에 이리 호(Lake Erie) 연안을 탐험하다 쿠야호가 강(Cuyahoga River)이 호수로 흘러드는 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마을을 처음 만들었던 모세스 클리블랜드(Moses Cleaveland) 장군의 먼 후손이다. 그 마을이 20세기 전반에 인구 1백만의 돈이 넘쳐나는 '철강도시' 클리블랜드(Cleveland)로 발전했지만, 중반 이후 오대호 지역의 제조업 쇠퇴와 함께 현재는 인구 40만명으로 쇠락한 대표적 '러스트 벨트' 도시이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는 세계적 명성의 종합병원으로 다시 알려지며 '의료도시'로 탈바꿈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오케스트라와 미술관이 유명하고 로큰롤 명예의 전당이 대표적 관광지라지만, 위기주부는 그 모두를 제쳐두고 북동쪽의 멘토(Mentor)라는 위성도시로 향했다. 제임스 가필드 국립사적지(James A. Garfield National Historic Site)는 미국 제20대 대통령이 1880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4년전에 구입한 농장과 저택을 보존하기 위해 1980년에 지정되었다. 그는 남북전쟁 중인 1862년에 처음 하원에 당선되어 대선때가 18년째로, 미국 역사상 지금까지도 유일하게 현직 연방 하원의원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경우이다. 농장의 말과 마차를 보관하던 커다란 캐리지 하우스(Carriage House)를 개조한 비지터센터의 입구로, 계속 내리던 진눈깨비는 그쳤지만 꾸물꾸물한 날씨가 이제 소개할 그의 슬픈 죽음과 맞물려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입구를 장식하는 제임스 A. 가필드(James Abram Garfield) 대통령의 옆모습으로, 워싱턴DC 내셔널몰에 있는 그의 동상을 찾아봤던 여행기에서 이력을 짧게 소개한 것을 클릭해서 보실 수 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힘들게 공부해서 윌리엄스 대학을 졸업하고 고대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를 거쳐 모교의 학장이 되었고, 변호사와 군장교를 거쳐 정치에 입문해 대통령까지 된 정말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마굿간을 개조해서 그런지 비지터센터 내부구조가 좀 특이했는데, 취임선서를 하는 모습의 하얀 동상이 있는 곳에서 오른편 안쪽으로 전시관이 만들어져 있었다. 지금은 대통령도서관(Presidential Library)이라면 그냥 특정 대통령의 기념관을 좀 우아하게(?) 부르는 표현으로 인식되지만, 여기는 그가 암살되고 4년후인 1885년에 계속 여기에 거주하던 미망인이 집의 일부를 그가 문학교수와 변호사로 일하며 소유했던 책들을 모아서 따로 공개하는 공간으로 만들었기에, 공식적인 최초의 미국 대통령 도서관으로 인정되는 유적지이다. 인문학자답게 남북전쟁을 노예제에 대항하는 성전으로 인식해서, 스스로 의용군을 조직해서 북군에 합류해 서부전선의 최대 격전이었던 치카모가 전투(Battle of Chickamauga) 등에서 활약해 명성을 얻기도 했다. (다른 오하이오 출신의 미래 대통령이 두 명이나 참전했던 동부전선 버지니아 지역의 전투에 대한 포스팅을 보시려면 클릭) 다음으로 대통령 선거와 취임식 등을 보여주는데, 제일 왼쪽에 빨간 옷을 맞춰 입은 사람들이 당시 선거운동원 모습이란다. 공화당 내 급진파였던 가필드는 선거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에, 다른 최대파벌의 지원을 받는 대신에 부통령 후보로 그쪽 계파 사람을 골랐고, 당선되면 상대 파벌에도 요직을 준다는 조건에 합의해야만 했다. 그 결과로 아주 근소한 차이로 대선에서 승리해서 1881년 3월에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대통령이 된 가필드는 돈으로 관직을 사고파는 엽관제가 만연한 당시의 부패한 공직사회를 일소하려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 파벌에 행정부 요직을 준다는 약속도 지킬 수가 없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Charles J. Guiteau가 불과 취임 4개월만에 기차역에서 그의 등 뒤에 두 발의 총격을 가했다. 문제는 자신이 가필드 대통령 당선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믿었던 암살범은 정치판 주변을 기웃거리는 과대망상증 환자였고,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면 자신은 사면될거라 주장했지만, 약 1년 후에 결국 교수형에 처해진다. 총알 하나가 몸에 박힌 상태로 가필드는 2개월 이상을 병석에 누워 있다가 패혈증이 겹치면서 결국 사망했는데, 안타깝게도 의사들이 무리하게 총알을 찾으려다가 병세가 오히려 악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단다. 마지막에는 병상에 누운 상태로 백악관을 떠나 기차를 타고 뉴저지 바닷가 휴양지로 향했다가 거기서 사망하는데, 당시 덜컹거리는 기차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철망으로 특수 제작되었던 매트리스 실물이란다. 이외에도 사망 후에 제작한 데드마스크와 손의 모형 등도 유리함 안에 전시되어 있었다. 앞서 링크로 소개한 그의 동상에서도 묘사된 것처럼... 학자, 군인, 정치가로서 모두 역량을 보여준 훌륭한 인물이었기에, 만약 암살되지 않았다면 대통령으로 어떤 업적을 이루고 또 후대에 어떤 평가를 받았을지가, 짧은 안내영화를 보면서 계속 궁금했다~ 저택의 내부를 구경할 수 있는 이 날의 마지막 무료 가이드투어에 20분 정도 기다리면 참여가 가능했지만, 예약해 놓은 숙소까지 또 2시간을 더 운전해서 가야했기 때문에, 그냥 혼자 집 주위만 둘러보고는 떠나기로 했다. 가필드 사망 후에도 많은 확장과 시설 추가를 거친 후에, 자녀들에 의해서 1936년에 클리블랜드 역사학회에 기증되었다가, 국립사적지로 지정된 후에 대대적인 보수를 거치면서, 19세기 미국 대통령 유적지들 중에서 가장 정확하게 복원되고 세부묘사가 뛰어난 실내로 여겨진단다. 본채 옆으로는 대선 때 선거운동 본부로 사용되었던 작은 별채인 캠페인오피스(Campaign Office)가 있어서, 유리창을 통해 내부를 살짝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상당히 독특한 외관의 1895년에 추가된 풍차(Windmill)는 곡식을 빻는 용도가 아니라, 창문이 보이는 2~3층의 안에 있는 커다란 저수조의 물을 지하로 매설된 파이프를 통해 저택 꼭대기의 작은 물탱크로 보내는 역할을 했단다. 이외에 마굿간 옆으로는 지하 가스전에서 나오는 연료를 보관해서 집의 난방과 취사에 사용하기 위해 1885년에 설치된 가스홀더(Gasholder) 건물도 있었다. 이상으로 또 한 명의 미국 대통령에 대한 공부를 마치고는 대각선으로 오하이오의 중심을 향하는 71번 고속도로를 따라 주도인 콜럼버스(Columbus)로 향했다. 시간이 있었으면 사진 가운데 빌딩의 뒤에 위치한 주청사라도 잠깐 구경하고 싶었지만, 도심으로 향하는 표지판이 나왔을 때는 사진보다 더 어두워진 저녁에 겨울비까지 내리는 초행길이었기 때문에, 바로 외곽순환 270번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도시 북서쪽의 예약한 모텔로 향했다. 따로 저녁 먹을 곳을 찾기도 귀찮을 것 같아 미리 준비해간 즉석밥에 팝콘과 맥주를 후식으로 먹고는 바로 잠들었고, 다음날 아침도 방에서 간단히 해결하고는 이미 블로그에 소개한 1시간 거리의 미공군 국립박물관을 찾아갔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미국 대통령과 대법원장을 모두 역임한 인물이 태어난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Cincinnati)의 국립사적지
고대 로마의 집정관을 지낸 킨키나투스(Cincinnatus)는 은퇴해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두번이나 군사와 행정을 총괄하는 독재관에 임명되어 로마를 위기에서 구해낸다. 그는 임무를 마친 즉시 모든 권력을 버리고 다시 밭을 갈러 돌아갔는데, 마찬가지로 대륙군을 이끈 조지 워싱턴이 미국독립 후에 바로 고향으로 돌아간 것을 계기로, 1783년에 독립전쟁에서 싸운 대륙군 장교들의 모임인 Society of the Cincinnati가 만들어지고 워싱턴이 초대 협회장에 선출된다. 1790년에 그 회원중의 한 명이 당시 북서부 준주의 작은 마을에 협회 이름을 붙이는데, 그 도시가 바로 지금 오하이오 강가의 신시내티(Cincinnati)이다. 한국에서는 추신수 선수가 잠깐 활약했던 MLB팀 신시내티 레즈(Reds) 정도로만 도시명이 알려진 듯 한데, 빨간색 관중석의 그 경기장이 사진에도 보인다. 흘러오는 강물의 오른편은 바로 켄터키 주이고, 하류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또 인디애나 주가 나와서, 그야말로 오하이오 주의 가장 남서쪽 끝자락이다. 위기주부가 집에서 500마일이나 떨어진 이 곳을 일부러 들린 이유는 사진의 멋진 도심이나 야구장을 구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적한 주택가에 남아있는 집 하나를 보기 위해서였다.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국립사적지(William Howard Taft National Historic Site)는 미국 제27대 대통령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집으로 1969년에 지정되었다. 작은 주차장과 함께 별도로 만들어진 비지터센터에 먼저 들렀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데, 그 전에 언제 재임했던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궁금해하는 분이 혹시라도 계실까봐 아래에 백악관 공식 초상화 먼저 잠깐 보여드린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대통령으로 1909~1913년 단임을 했던 태프트는 미국 역사상 가장 뚱뚱한 대통령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재임시 최고로 몸무게가 나갔을 때는 160 kg 이상이었다. 그래서 탑승한 군함에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없어서 목수가 급히 두 개를 하나로 합쳐서 만들어야 했다거나, 백악관의 욕조를 큰 것으로 바꿔야 했다는 일화가 있다. 또 마지막으로 콧수염을 길렀고 최초로 메이저리그 시구를 한 대통령이란 기록도 있는데, 7이닝 중간의 스트레치 전통이 그에게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넓은 비지터센터에 유일한 직원과 방문객 한 명... 짧은 안내영화를 보고는 안쪽으로 만들어진 전시실을 한바퀴 돌았다. 아주 휑하게 느껴졌던 전시실로 아마도 나중에 보여드릴 넓은 저택의 2층에 따로 업적을 소개하는 전시 공간을 만들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래도 제일 오른쪽에 세워진 배너는 크게 따로 보여드리는게 좋을 듯 한데, 대통령에서 물러난 후에 예일대 헌법학 교수가 되었다가, 1921년 하딩 대통령에 의해 제10대 연방 대법원장으로 지명되어 사망하는 1930년까지 재임해서,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행정부와 사법부의 수장을 모두 역임한 인물이다. 특히 혹평을 받았던 대통령으로서의 정치력에 비해서, 대법원장으로서는 직무를 아주 잘 수행했고 중요한 업적도 많이 남겼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전시는 신시내티 시장을 지냈던 막내아들 Charles Taft가 낚시하는 인형으로, 머리와 손발이 움직이며 아버지에 대한 회상을 들려주는 애니매트로닉스(Animatronics) 로봇인데, 방문했을 때는 버튼을 눌러도 동작하지가 않았다. 아마도 역대 대통령들의 로봇을 모두 만들어 모아놓은 쇼를 보여주는 디즈니의 협찬을 받아 제작한게 아닐까? ㅎㅎ 참고로 오하이오 상원의원으로 대를 이어 대통령을 꿈꿨던 큰아들 Robert Taft가 블로그에 먼저 등장했었는데, 여기를 클릭해서 워싱턴DC에 있는 그의 기념물을 보실 수 있다. 본채는 그냥 들어가서 자유롭게 둘러보면 된다고 해서 의아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다른 직원이 한 명 더 있었다. 궁금한게 있으면 물어보라는 말만 남기고 다시 핸드폰에 집중하시던데... 요즘 미국 연방 공무원들 감원의 칼바람이 불고, 특히 내무부 국립공원청과 농무부 산림청 등등이 심하다는데, 두 사람 모두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지가 갑자기 궁금하다~ 이 집은 주인이 바뀌면서 1940년대에는 아파트로 개조되는 등의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결국 기념재단이 인수해서 대대적인 복원작업을 거쳐서 태프트 대통령이 어린 시절에 살던 1860년대 모습으로 완전히 다시 꾸며졌다고 한다. 거실 벽에는 그의 부모 초상화가 좌우로 걸려있는데, 집안은 대를 이은 법조인 가문으로 그의 아버지 알폰소는 그랜트 행정부에서 전쟁장관과 법무장관을 역임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윌리엄은 아버지의 모교인 예일대를 차석으로 졸업한 후에 신시내티 로스쿨을 다니며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오하이오 주 검사와 판사를 거쳐서 불과 33세의 나이에 연방 법무차관으로 임명되며 정계로 진출했다. 윗층으로 올라오는 계단과 복도의 구조가 상당히 특이했고, 2층의 대부분 방들은 전시실로 꾸며져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보통 이런 복원된 역사적 저택은 화장실이 없거나 닫혀 있는게 보통인데, 여기는 일반 방문객이 사용 가능하도록 개방되어 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전쟁장관(Secretary of War)으로 재직하던 1905년에 식민지 필리핀을 가는 길에 루즈벨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일본을 몰래 들러서, 우리가 옛날 역사책에서 배운 일본의 조선 지배를 미국이 묵인하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렇게 '루즈벨트의 황태자'로 일찌감치 낙점을 받아서, 1908년 선거에서 쉽게 승리해서 제27대 대통령이 되지만... 결국은 또 루즈벨트의 어깃장으로 재선에 실패해서 단임으로 끝나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역시 국립사적지로 지정된 전임자의 저택을 방문한 여행기에서 설명드렸다. 마지막으로 들어간 방은 커다란 8인용 식탁과 다른 고풍스런 가구들로 꾸며져 있는데, 평면TV가 마치 당시 물건인 것처럼 놓여있는 느낌이 좀 특이했다. 대법원장으로 생을 마감한 태프트 대통령은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혔고, 그의 집안은 이후에도 법조인 및 정치가를 계속 배출해서 증손자들까지 국방부 차관과 오하이오 주지사 등을 지냈다. 작년 12월에 엉겁결에 혼자 떠났던 1박2일 오하이오 주 여행의 둘쨋날 오후, 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신시내티(Cincinnati)까지 와서도 이렇게 역사공부만 하고는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무슨 학교 건물같았던 비지터센터 주차장으로 돌아가 이제 버지니아를 향해 동쪽으로 8시간이나 운전을 해야 하지만 모든 여정이 끝난게 아니다... 돌아가는 길에 오하이오 주 안에서 들러야할 '넓은 의미의 국립 공원'들이 아직 두 곳이나 더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미국 대통령과 대법원장을 모두 역임한 인물이 태어난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Cincinnati)의 국립사적지
고대 로마의 집정관을 지낸 킨키나투스(Cincinnatus)는 은퇴해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두번이나 군사와 행정을 총괄하는 독재관에 임명되어 로마를 위기에서 구해낸다. 그는 임무를 마친 즉시 모든 권력을 버리고 다시 밭을 갈러 돌아갔는데, 마찬가지로 대륙군을 이끈 조지 워싱턴이 미국독립 후에 바로 고향으로 돌아간 것을 계기로, 1783년에 독립전쟁에서 싸운 대륙군 장교들의 모임인 Society of the Cincinnati가 만들어지고 워싱턴이 초대 협회장에 선출된다. 1790년에 그 회원중의 한 명이 당시 북서부 준주의 작은 마을에 협회 이름을 붙이는데, 그 도시가 바로 지금 오하이오 강가의 신시내티(Cincinnati)이다. 한국에서는 추신수 선수가 잠깐 활약했던 MLB팀 신시내티 레즈(Reds) 정도로만 도시명이 알려진 듯 한데, 빨간색 관중석의 그 경기장이 사진에도 보인다. 흘러오는 강물의 오른편은 바로 켄터키 주이고, 하류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또 인디애나 주가 나와서, 그야말로 오하이오 주의 가장 남서쪽 끝자락이다. 위기주부가 집에서 500마일이나 떨어진 이 곳을 일부러 들린 이유는 사진의 멋진 도심이나 야구장을 구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적한 주택가에 남아있는 집 하나를 보기 위해서였다.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국립사적지(William Howard Taft National Historic Site)는 미국 제27대 대통령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집으로 1969년에 지정되었다. 작은 주차장과 함께 별도로 만들어진 비지터센터에 먼저 들렀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데, 그 전에 언제 재임했던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궁금해하는 분이 혹시라도 계실까봐 아래에 백악관 공식 초상화 먼저 잠깐 보여드린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대통령으로 1909~1913년 단임을 했던 태프트는 미국 역사상 가장 뚱뚱한 대통령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재임시 최고로 몸무게가 나갔을 때는 160 kg 이상이었다. 그래서 탑승한 군함에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없어서 목수가 급히 두 개를 하나로 합쳐서 만들어야 했다거나, 백악관의 욕조를 큰 것으로 바꿔야 했다는 일화가 있다. 또 마지막으로 콧수염을 길렀고 최초로 메이저리그 시구를 한 대통령이란 기록도 있는데, 7이닝 중간의 스트레치 전통이 그에게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넓은 비지터센터에 유일한 직원과 방문객 한 명... 짧은 안내영화를 보고는 안쪽으로 만들어진 전시실을 한바퀴 돌았다. 아주 휑하게 느껴졌던 전시실로 아마도 나중에 보여드릴 넓은 저택의 2층에 따로 업적을 소개하는 전시 공간을 만들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래도 제일 오른쪽에 세워진 배너는 크게 따로 보여드리는게 좋을 듯 한데, 대통령에서 물러난 후에 예일대 헌법학 교수가 되었다가, 1921년 하딩 대통령에 의해 제10대 연방 대법원장으로 지명되어 사망하는 1930년까지 재임해서,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행정부와 사법부의 수장을 모두 역임한 인물이다. 특히 혹평을 받았던 대통령으로서의 정치력에 비해서, 대법원장으로서는 직무를 아주 잘 수행했고 중요한 업적도 많이 남겼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전시는 신시내티 시장을 지냈던 막내아들 Charles Taft가 낚시하는 인형으로, 머리와 손발이 움직이며 아버지에 대한 회상을 들려주는 애니매트로닉스(Animatronics) 로봇인데, 방문했을 때는 버튼을 눌러도 동작하지가 않았다. 아마도 역대 대통령들의 로봇을 모두 만들어 모아놓은 쇼를 보여주는 디즈니의 협찬을 받아 제작한게 아닐까? ㅎㅎ 참고로 오하이오 상원의원으로 대를 이어 대통령을 꿈꿨던 큰아들 Robert Taft가 블로그에 먼저 등장했었는데, 여기를 클릭해서 워싱턴DC에 있는 그의 기념물을 보실 수 있다. 본채는 그냥 들어가서 자유롭게 둘러보면 된다고 해서 의아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다른 직원이 한 명 더 있었다. 궁금한게 있으면 물어보라는 말만 남기고 다시 핸드폰에 집중하시던데... 요즘 미국 연방 공무원들 감원의 칼바람이 불고, 특히 내무부 국립공원청과 농무부 산림청 등등이 심하다는데, 두 사람 모두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지가 갑자기 궁금하다~ 이 집은 주인이 바뀌면서 1940년대에는 아파트로 개조되는 등의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결국 기념재단이 인수해서 대대적인 복원작업을 거쳐서 태프트 대통령이 어린 시절에 살던 1860년대 모습으로 완전히 다시 꾸며졌다고 한다. 거실 벽에는 그의 부모 초상화가 좌우로 걸려있는데, 집안은 대를 이은 법조인 가문으로 그의 아버지 알폰소는 그랜트 행정부에서 전쟁장관과 법무장관을 역임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윌리엄은 아버지의 모교인 예일대를 차석으로 졸업한 후에 신시내티 로스쿨을 다니며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오하이오 주 검사와 판사를 거쳐서 불과 33세의 나이에 연방 법무차관으로 임명되며 정계로 진출했다. 윗층으로 올라오는 계단과 복도의 구조가 상당히 특이했고, 2층의 대부분 방들은 전시실로 꾸며져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보통 이런 복원된 역사적 저택은 화장실이 없거나 닫혀 있는게 보통인데, 여기는 일반 방문객이 사용 가능하도록 개방되어 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전쟁장관(Secretary of War)으로 재직하던 1905년에 식민지 필리핀을 가는 길에 루즈벨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일본을 몰래 들러서, 우리가 옛날 역사책에서 배운 일본의 조선 지배를 미국이 묵인하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렇게 '루즈벨트의 황태자'로 일찌감치 낙점을 받아서, 1908년 선거에서 쉽게 승리해서 제27대 대통령이 되지만... 결국은 또 루즈벨트의 어깃장으로 재선에 실패해서 단임으로 끝나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역시 국립사적지로 지정된 전임자의 저택을 방문한 여행기에서 설명드렸다. 마지막으로 들어간 방은 커다란 8인용 식탁과 다른 고풍스런 가구들로 꾸며져 있는데, 평면TV가 마치 당시 물건인 것처럼 놓여있는 느낌이 좀 특이했다. 대법원장으로 생을 마감한 태프트 대통령은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혔고, 그의 집안은 이후에도 법조인 및 정치가를 계속 배출해서 증손자들까지 국방부 차관과 오하이오 주지사 등을 지냈다. 작년 12월에 엉겁결에 혼자 떠났던 1박2일 오하이오 주 여행의 둘쨋날 오후, 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신시내티(Cincinnati)까지 와서도 이렇게 역사공부만 하고는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무슨 학교 건물같았던 비지터센터 주차장으로 돌아가 이제 버지니아를 향해 동쪽으로 8시간이나 운전을 해야 하지만 모든 여정이 끝난게 아니다... 돌아가는 길에 오하이오 주 안에서 들러야할 '넓은 의미의 국립 공원'들이 아직 두 곳이나 더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en Poe)와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Thaddeus Kosciuszko)
정확히 10년전 여름에 하이스쿨 입학을 앞두고 있던 딸을 위해 다녀왔던 아이비 리그(Ivy League) 대학투어 8박9일 미동부 여행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던 도시가 필라델피아(Philadelphia)였다. 하지만 3년전에 미동부로 이사와서는 인근의 유명한 정원을 구경하기 위해 스쳐지나간 적만 있을 뿐, 시내로는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대도시였다. 참, 그래서 딸 자식은 투어를 다녀온 4년 후에, 아이비리그 8개 중 6개에 합격을 해서 그 중 한 곳을 졸업했고, 벌써 직장인 2년차로 맨하탄에서 혼자 살고 있다... 시간 참 겁나게 빠르다! 76번 고속도로가 스퀼킬 강(Schuylkill River)을 만나서부터 정체가 시작되어서, 앞차와의 거리를 충분히 두고 10년만에 다시 만난 필라델피아 빌딩숲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하지만 이제 찾아가는 곳은 저 시내가 아니라, 대부분의 여행객은 듣도 보도 못한 장소인데, 이 때가 위기주부 홀로 작년 12월초에 떠났던 '4차 듣보잡 여행'의 오후였기 때문이다. 고속도로에서 빠지자마자 표지판이 역시 필라델피아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인디펜던스 홀(Independence Hall)의 방향을 알려주는데, 아이비리그 대학투어 가족여행의 마지막 날에 방문했던 그 곳의 여행기를 클릭해 보실 수 있다. 그러면 위기주부는 도대체 어디를 찾아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신 분을 위해 아래 지도를 준비했다. 최근 업데이트 된 국립공원청 앱의 지도로 필라델피아를 확대하면 위와 같이 4개의 장소가 표시된다. 그러나 제일 아래쪽 Gloria Dei Church는 제휴된(affiliated) 장소라서 현재 433개의 NPS official unit들에 포함되지 않고, 가운데 인디펜던스 국립역사공원은 10년전에 다녀왔으니, 나머지 2개의 장소를 이제 방문하려는 것이다. 첫번째는 에드거앨런포 국립사적지(Edgar Allen Poe National Historic Site)로 그가 필라델피아에서 약 6년간 시인, 비평가, 편집자로 살며 거의 매년 옯겨다닌 거주지들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물이란다. 다른 오래된 집들처럼 철거될 예정이었지만 열혈팬이 1933년에 구입해서 박물관으로 개장했고, 유언으로 필라델피아 시에 기증한 것을 다시 연방정부가 인수해서 1980년에 국립사적지로 재개장을 했다. 하지만 작은 "Closed for construction" 표시가 비지터센터 문앞에 예상대로 붙어 있었다. 몇 달 전에 확인했을 때는 겨울에 다시 오픈할 예정이라고 했었지만, 미국 공무원들 일하는 스타일로 봐서 언제 재단장이 끝날지 기약이 없는 것을 알기에... 겉모습이라도 구경하려고 찾아왔던 것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안내판에 따르면 그는 뒤쪽의 작은 건물에서 어리고 병약한 아내 Virginia Clemm Poe와 고모인 동시에 장모였던 Maria Poe Clemm과 함께 1843-44년 기간에 살았고, 현재 비지터센터로 사용되고 있는 앞쪽의 큰 건물은 1848년에 추가된 것이다. 그런데 앞쪽 건물의 붉은 벽에 석양의 햇살을 받아 살벌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던 동상이 있었으니... 그가 1845년애 발표한 시(詩)의 제목이기도 한 까마귀(The Raven, 갈가마귀)이다.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en Poe)는 한국에서는 등의 공포/추리 소설의 작가로 많이 알려졌지만, 영문학에서는 를 쓴 시인으로 더 유명해서 그 시에서 까마귀가 읊조리는 말로 처음 등장했던 "Nevermore"라는 단어는 유치원생들도 출처를 알 정도라고 한다. 또한 그가 본격적인 전업작가 생활을 시작했고 또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던 도시인 볼티모어를 연고로 하는 미식축구 팀의 이름이 '레이븐스(Ravens)'인 것도 그 시에서 유래했다. 건물 내부에서 가장 인기있는 장소는 바로 안내판에서도 대표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는 지하실인데, 그 이유는 바로 그의 다른 대표작인 에서 벽 속의 시체와 함께 한쪽 눈이 없는 검은 고양이가 나타나는 지하실이 바로 이 곳을 모티브로 했기 때문이란다. 약간은 허전한 느낌을 가지고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하려다 잠시 옆건물로 눈을 돌렸는데, 특유의 애매한 눈빛으로 위기주부를 바라보는 포(Poe)가 거기에 있었다! 이 포스팅을 쓰면서 그의 일생에 대한 나무위키의 설명을 참 재미있게 읽어서, 언젠가는 여러 작품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볼티모어에는 그의 묘지와 함께 그가 살았던 집이 사설 박물관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는데, 여기를 클릭하시면 블로그 이웃이신 짱남님이 방문했던 여행기를 보실 수 있다. 남쪽으로 10분 정도 차를 달려서 두번째 목적지인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 국립기념관(Thaddeus Kosciuszko National Memorial)을 찾아왔는데, 다닥다닥 붙은 오래된 아파트들 중에서 눈에 띄는 삼각형 지붕의 건물이다. 예전에 백악관과 그 주변을 소개한 글에서 미국독립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외국인 4명을 모아 놓은 라파예트 공원에 있는 그의 동상을 간단한 소개와 함께 사진으로 보여드린 적이 있다. 폴란드 군사학교를 졸업한 코슈추슈코(Kosciuszko)는 1776년에 30세의 나이로 아무 연고도 없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와, 미국독립 전쟁에 자원해 6년간 공병장교로 활약해서 준장 계급을 받는다. 그 후 유럽으로 돌아가 고국 폴란드의 독립을 위해 또 싸우다가 러시아에 붙잡혀 징역을 살고 석방되는데, 이 곳은 그 후에 그가 다시 미국을 방문한 1797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지냈던 숙소이다. 이 곳은 이유도 없이 그냥 "Closed"가 붙어 있는데, 그 이유는 방문했던 겨울철에는 아예 문을 열지 않고, 여름철에도 주말 오후에만 잠깐 오픈할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래도 안내판 정도는 하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모퉁이를 돌아보니, 예상대로 국립공원청에서 세워 놓은 설명판이 눈에 띄었다. 무작정 신생 독립국의 수도였던 필라델피아로 와서는 대륙군에 들어가기 위해서, 벤자민 프랭클린을 찾아가 수학 실력을 보여주고는 공병장교로 추천을 받아서 입대를 할 수 있었단다. 특히 미국 독립전쟁 초기의 가장 중요한 승리로 기록되는 새러토가 전투(Battles of Saratoga)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 후 허드슨 강변의 웨스트포인트(West Point)를 요새화 하는 것을 지휘했다. 전쟁이 끝나고 그 곳에 미국 육군사관학교가 들어설 때, 제일 먼저 세워진 동상의 주인공이 코시치우슈코라고 한다. 안내판의 초상은 좀 영웅적이고 근엄한 모습이지만, 브로셔의 표지로 사용된 아래의 그림은 아주 앳된 얼굴이다. 참고로 그는 폴란드의 국민영웅이기도 해서 공원 브로셔의 뒷면은 특이하게 폴란드어로 만들어져 있었다. 미국 화가 Benjamin West가 런던에서 우연히 만나 그린 그림이라는데, 이 때의 코시치우슈코 나이가 45세라고 하니 굉장히 동안인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전혀 무골(武骨)이 아닌 공학도의 순수함(?)이 느껴지는 얼굴인데, 그가 처음 대서양을 건넜던 이유는 첫사랑의 실패로 지구 반대편에 가서 죽을 작정으로 미국 독립전쟁에 가담했다는 설도 있단다.^^ 이상과 같이 두 위인의 체취가 남았을 지도 모르는 잠겨진 두 문짝만 구경을 하고는 짧은 필라델피아 방문을 마치고 떠나며, 신호를 기다리다가 운전석 차창 밖으로 기념관의 전체 모습을 담아봤다. 정확히 건평이 81제곱미터인 저 건물만 1972년에 국가기념물(National Memorial)로 지정이 되었는데, 현재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넓은 의미의 국립 공원들 433개 중에서 면적이 가장 작은 곳이라고 한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웹툰단행본] 『통제구역관리부』 1권 후기 : 이상한 변칙과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는 공간에 대하여](https://img.zoomtrend.com/2026/06/09/1780996474-SE-5eda86fa-0d63-4afd-b8dd-b801879fed5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