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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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트 갤러틴을 아시나요? 펜실베니아의 프렌드쉽힐 국립사적지(Friendship Hill National Historic Site)
거의 한 달만에 여행기를 쓰려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 그래봐야 또 별볼일 없는 국립공원에 관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작년 여름부터 일부러 찾아다녀, 이제 집에서 2시간 이내 거리에는 NPS Official Unit들이 정말 2~3곳밖에 남지를 않았는데, 거기는 '별볼일 있는' 곳들이라서 아내와 함께 갈 장소로 계속 남겨두고 있다. 그래서 모처럼 혼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낼 수 있었던 지난 월요일에, 처음으로 범위를 넓혀서 편도 3시간 내외가 걸리는 여러 곳들을 묶어서 다녀온 첫번째 시리즈를 시작한다. 위의 경로와 같이 집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향해서,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주의 남서부에 있는 5개의 '내셔널'들과 다른 유명한 장소 하나까지 더해, 총 6곳을 하루만에 모두 둘러보았다. 저녁 8시에 집으로 돌아와 계기판을 확인해보니, 총 운전시간이 정확히 딱 10시간에 주행거리는 512마일(824 km)이었다. "오래간만에 쉬는 날 이게 뭐하는 짓이냐?" 새벽 4시반 출발의 긴장이 풀어지며 잠이 좀 온다는 느낌이 들때, 고맙게 등장해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분홍색 봄꽃 너머로 바라본 주황색 아침 여명이다~ 좀 더 기다려 일출까지 감상하려 했지만, 이 날 꽃샘추위가 극심해서 내리기 전 확인한 계기판의 온도계가 섭씨로 영하였다는...! 뒤돌아 본 메릴랜드 주의 사이들링힐 웰컴센터(Sideling Hill Welcome Center) 모습으로, 건물 오른편으로 도로를 만들기 위해 산을 깊이 깍은 것이 보인다. 저 고개를 넘어 계속 서쪽으로 달려야 하는 고속도로가 인터스테이트 68번 겸 국도 40번인데. 이 루트가 바로 1800년대 초에 신생국가 미국의 첫번째 국책사업으로 만들어진 동서를 잇는 마찻길인 '내셔널로드(National Road)' 구간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으로, 이에 대해서는 본 시리즈 여행기의 다음 편에서 자세히 설명될 예정이다. 1시간을 더 달려 "Wild and Wonderful" 웨스트버지니아 주에 들어가니까, 또 딱 맞취서 아주 잘 지어놓은 휴게소가 나온 덕택에, 졸음을 쫓고 보온병에 넣어간 커피와 아침을 먹었다. 그렇게 두 번이나 쉬면서 거의 4시간만에 펜실베니아 주에 있는 첫번째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프렌드쉽힐 국립사적지(Friendship Hill National Historic Site)라는 이름만으로는 어떤 곳인지 짐작하기 어려우니, 친절하게 그 밑에 누구의 집이었다고 적어 놓았다. 붉은 필기체 서명은 앨버트 갤러틴(Albert Gallatin)으로 그의 이름은 백악관과 그 주변을 소개했던 예전 포스팅에 이미 한 번 등장한 적이 있다. "LA 바닷가에 있는 우정의 종각은 가봤어도, 우정의 언덕은 또 처음이네~" 간판이 세워진 숲을 빠져 나오면, 파란 초원에 좌우로 가로수가 잘 심어진 진입로가 나와서, 언덕 위의 멋진 저택이 나올 것을 직감하게 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넓은 주차장에는 멀러 보이는 국립공원청 차량만 한 대 세워져 있었는데, 파크레인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난 앨버트 갤러틴은 19살이던 1780년에 신생 독립국인 미국으로 와서 하버드 대학에서 프랑스어 강사를 한 후에, 22살에 느닷없이 당시로는 가장 변방인 서부 펜실베니아 시골에 땅을 사서는 지역 유지 및 정치인이 된다. 그 후 연방 하원의장을 거쳐서 불과 40세인 1801년에 미국 재무장관이 되어 무려 13년간 역임했고, 그 후에는 외교관으로 프랑스와 영국 대사를 거쳐서, 말년에는 지금의 뉴욕 대학교(New York University, NYU)를 설립하기도 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중간에 그의 동상이 만들어져 있는데, 앞서 설명한 그가 활약한 분야들인 정치/경제/외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측량을 하는 모습이다. 그는 일찌기 서부개척에 미국의 미래가 있음을 예견해서 이리로 이사를 왔고, 지리학에 밝아서 상기의 National Road를 어디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이 지역을 방문한 워싱턴 대통령을 직접 만나 설명하기도 했단다. 그래서 재무장관 시절에 루이지애나 매입과 루이스/클라크 탐험대 후원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게 된다. 또한 언어학에도 뛰어나서 원주민 언어를 최초로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통해서 남북 아메리카 인디언이 모두 아시아에서 이주해왔다는 주장을 처음 한 사람으로 '미국 민족학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단다. 한 마디로 다재다능, 박학다식 그 자체! 그가 여기를 '우정의 언덕(Friendship Hill)'으로 부르며 1789년부터 집을 짓고, 아래쪽 강가에 자신의 고향을 기려 뉴제네바(New Geneva)라는 마을을 만들어서 유리 공장을 세웠단다. 하지만 중앙 정계로 진출해 장관과 외교관이 되고, 그 후에도 뉴욕시에서 계속 활동했기 때문에 여기에 살았던 기간은 길지 않으며, 결국 1832년에 다른 사람에게 집과 땅을 모두 팔았다고 한다. 제일 왼편의 돌로 된 외벽 부분과 우물 정도가 갤러틴이 소유했을 때 모습이고, 그 오른편과 나머지 많은 부분들은 다음 집주인이 개보수와 증축을 한 것이란다. 왠지 전설이 있을 것 같은 우물 속이 궁금해서 내려다 보니, 현대적 자물쇠로 옛날 나무로 된 입구를 잠궈 놓은게 특이했다. 비지터센터가 건물 안에 만들어져 있고, 그리로 통해서 자유롭게 집 내부도 일부 구경을 할 수 있지만, 4월말까지는 주말에만 문을 열기 때문에 직접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새로운 주인이 강을 내려다 보는 곳에 만든 정자(gazebo)는 이 지역의 사교장으로 유명했는데, 절벽이 무너질 위험이 있어서 국립공원 지정 후에 안쪽으로 옮겨 다시 만든 것이라는 설명이 안내판에 적혀 있다. 저 끝에서 축대 아래쪽을 내려다 보면, 그 옛날에는 수 많은 배들이 오가던 모논가헬라 강(Monongahela River)이 지금은 조용히 흐르고 있다. 이 강은 사진 오른편 북쪽으로 흘러 피츠버그에서 앨러게니 강(Allegheny River)과 합류해 오하이오 강이 되어 결국 미시시피 강과 연결되기 때문에, 갤러틴이 그 당시에는 모든 산업의 동맥인 뱃길을 끼고 있는 이 땅을 구입했던 것이다. 앞마당 잔디밭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주인이 바뀌며 증축이 많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국가유적으로 등록될 때까지 개인소유였다가, 정부가 구입해서 필요한 수리를 거친 후에 1978년에 국립사적지가 되었다. 그리고 언덕 아래로 아침 햇살에 빛나는 평화로운 초원의 풍경을 바라보니, 그냥 바로 떠나기는 좀 섭섭한 듯 하길래...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만난 앨버트 옹과 셀카 한 장 함께 찍었다.ㅎㅎ 공원 홈페이지 서두에는 그를 '잊혀진 건국의 아버지(America's Forgotten Founding Father)'로 부르지만, 실제 미국의 독립보다는 그 후에 주로 활동을 한 사람이다. 그러나 제4대 재무부 장관으로 미국이 지금의 세계최대 경제대국이 되는 토대(foundation)를 마련한 사람이기에 꼭 틀린 말도 아닌 듯 하다. 타주의 별볼일 없는 국립공원들까지 돌아봤던 나들이의 다음 편은, 누구나 다 아는 '국부(國父)' 조지 워싱턴의 젊은 시절 이야기로 이어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앨버트 갤러틴을 아시나요? 펜실베니아의 프렌드쉽힐 국립사적지(Friendship Hill National Historic Site)
거의 한 달만에 여행기를 쓰려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 그래봐야 또 별볼일 없는 국립공원에 관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작년 여름부터 일부러 찾아다녀, 이제 집에서 2시간 이내 거리에는 NPS Official Unit들이 정말 2~3곳밖에 남지를 않았는데, 거기는 '별볼일 있는' 곳들이라서 아내와 함께 갈 장소로 계속 남겨두고 있다. 그래서 모처럼 혼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낼 수 있었던 지난 월요일에, 처음으로 범위를 넓혀서 편도 3시간 내외가 걸리는 여러 곳들을 묶어서 다녀온 첫번째 시리즈를 시작한다. 위의 경로와 같이 집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향해서,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주의 남서부에 있는 5개의 '내셔널'들과 다른 유명한 장소 하나까지 더해, 총 6곳을 하루만에 모두 둘러보았다. 저녁 8시에 집으로 돌아와 계기판을 확인해보니, 총 운전시간이 정확히 딱 10시간에 주행거리는 512마일(824 km)이었다. "오래간만에 쉬는 날 이게 뭐하는 짓이냐?" 새벽 4시반 출발의 긴장이 풀어지며 잠이 좀 온다는 느낌이 들때, 고맙게 등장해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분홍색 봄꽃 너머로 바라본 주황색 아침 여명이다~ 좀 더 기다려 일출까지 감상하려 했지만, 이 날 꽃샘추위가 극심해서 내리기 전 확인한 계기판의 온도계가 섭씨로 영하였다는...! 뒤돌아 본 메릴랜드 주의 사이들링힐 웰컴센터(Sideling Hill Welcome Center) 모습으로, 건물 오른편으로 도로를 만들기 위해 산을 깊이 깍은 것이 보인다. 저 고개를 넘어 계속 서쪽으로 달려야 하는 고속도로가 인터스테이트 68번 겸 국도 40번인데. 이 루트가 바로 1800년대 초에 신생국가 미국의 첫번째 국책사업으로 만들어진 동서를 잇는 마찻길인 '내셔널로드(National Road)' 구간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으로, 이에 대해서는 본 시리즈 여행기의 다음 편에서 자세히 설명될 예정이다. 1시간을 더 달려 "Wild and Wonderful" 웨스트버지니아 주에 들어가니까, 또 딱 맞취서 아주 잘 지어놓은 휴게소가 나온 덕택에, 졸음을 쫓고 보온병에 넣어간 커피와 아침을 먹었다. 그렇게 두 번이나 쉬면서 거의 4시간만에 펜실베니아 주에 있는 첫번째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프렌드쉽힐 국립사적지(Friendship Hill National Historic Site)라는 이름만으로는 어떤 곳인지 짐작하기 어려우니, 친절하게 그 밑에 누구의 집이었다고 적어 놓았다. 붉은 필기체 서명은 앨버트 갤러틴(Albert Gallatin)으로 그의 이름은 백악관과 그 주변을 소개했던 예전 포스팅에 이미 한 번 등장한 적이 있다. "LA 바닷가에 있는 우정의 종각은 가봤어도, 우정의 언덕은 또 처음이네~" 간판이 세워진 숲을 빠져 나오면, 파란 초원에 좌우로 가로수가 잘 심어진 진입로가 나와서, 언덕 위의 멋진 저택이 나올 것을 직감하게 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넓은 주차장에는 멀러 보이는 국립공원청 차량만 한 대 세워져 있었는데, 파크레인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난 앨버트 갤러틴은 19살이던 1780년에 신생 독립국인 미국으로 와서 하버드 대학에서 프랑스어 강사를 한 후에, 22살에 느닷없이 당시로는 가장 변방인 서부 펜실베니아 시골에 땅을 사서는 지역 유지 및 정치인이 된다. 그 후 연방 하원의장을 거쳐서 불과 40세인 1801년에 미국 재무장관이 되어 무려 13년간 역임했고, 그 후에는 외교관으로 프랑스와 영국 대사를 거쳐서, 말년에는 지금의 뉴욕 대학교(New York University, NYU)를 설립하기도 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중간에 그의 동상이 만들어져 있는데, 앞서 설명한 그가 활약한 분야들인 정치/경제/외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측량을 하는 모습이다. 그는 일찌기 서부개척에 미국의 미래가 있음을 예견해서 이리로 이사를 왔고, 지리학에 밝아서 상기의 National Road를 어디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이 지역을 방문한 워싱턴 대통령을 직접 만나 설명하기도 했단다. 그래서 재무장관 시절에 루이지애나 매입과 루이스/클라크 탐험대 후원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게 된다. 또한 언어학에도 뛰어나서 원주민 언어를 최초로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통해서 남북 아메리카 인디언이 모두 아시아에서 이주해왔다는 주장을 처음 한 사람으로 '미국 민족학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단다. 한 마디로 다재다능, 박학다식 그 자체! 그가 여기를 '우정의 언덕(Friendship Hill)'으로 부르며 1789년부터 집을 짓고, 아래쪽 강가에 자신의 고향을 기려 뉴제네바(New Geneva)라는 마을을 만들어서 유리 공장을 세웠단다. 하지만 중앙 정계로 진출해 장관과 외교관이 되고, 그 후에도 뉴욕시에서 계속 활동했기 때문에 여기에 살았던 기간은 길지 않으며, 결국 1832년에 다른 사람에게 집과 땅을 모두 팔았다고 한다. 제일 왼편의 돌로 된 외벽 부분과 우물 정도가 갤러틴이 소유했을 때 모습이고, 그 오른편과 나머지 많은 부분들은 다음 집주인이 개보수와 증축을 한 것이란다. 왠지 전설이 있을 것 같은 우물 속이 궁금해서 내려다 보니, 현대적 자물쇠로 옛날 나무로 된 입구를 잠궈 놓은게 특이했다. 비지터센터가 건물 안에 만들어져 있고, 그리로 통해서 자유롭게 집 내부도 일부 구경을 할 수 있지만, 4월말까지는 주말에만 문을 열기 때문에 직접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새로운 주인이 강을 내려다 보는 곳에 만든 정자(gazebo)는 이 지역의 사교장으로 유명했는데, 절벽이 무너질 위험이 있어서 국립공원 지정 후에 안쪽으로 옮겨 다시 만든 것이라는 설명이 안내판에 적혀 있다. 저 끝에서 축대 아래쪽을 내려다 보면, 그 옛날에는 수 많은 배들이 오가던 모논가헬라 강(Monongahela River)이 지금은 조용히 흐르고 있다. 이 강은 사진 오른편 북쪽으로 흘러 피츠버그에서 앨러게니 강(Allegheny River)과 합류해 오하이오 강이 되어 결국 미시시피 강과 연결되기 때문에, 갤러틴이 그 당시에는 모든 산업의 동맥인 뱃길을 끼고 있는 이 땅을 구입했던 것이다. 앞마당 잔디밭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주인이 바뀌며 증축이 많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국가유적으로 등록될 때까지 개인소유였다가, 정부가 구입해서 필요한 수리를 거친 후에 1978년에 국립사적지가 되었다. 그리고 언덕 아래로 아침 햇살에 빛나는 평화로운 초원의 풍경을 바라보니, 그냥 바로 떠나기는 좀 섭섭한 듯 하길래...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만난 앨버트 옹과 셀카 한 장 함께 찍었다.ㅎㅎ 공원 홈페이지 서두에는 그를 '잊혀진 건국의 아버지(America's Forgotten Founding Father)'로 부르지만, 실제 미국의 독립보다는 그 후에 주로 활동을 한 사람이다. 그러나 제4대 재무부 장관으로 미국이 지금의 세계최대 경제대국이 되는 토대(foundation)를 마련한 사람이기에 꼭 틀린 말도 아닌 듯 하다. 타주의 별볼일 없는 국립공원들까지 돌아봤던 나들이의 다음 편은, 누구나 다 아는 '국부(國父)' 조지 워싱턴의 젊은 시절 이야기로 이어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뉴욕 맨하탄의 유니언 스퀘어(Union Square) 홀리데이 마켓과 시어도어 루즈벨트 탄생지 국립사적지
반응형 미국의 도시들 중에서 유니언 스퀘어(Union Square)라는 광장을 가지고 있는 곳은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시애틀, 볼티모어 및 위기주부가 사는 동네인 워싱턴DC, 그리고 뉴욕시 등으로 의외로 많지는 않은 반면에, 유니언 스테이션(Union Station)이라는 기차역은 거의 모든 대도시를 포함해서 약 140개의 도시에 있다고 한다. 지난 크리스마스 연휴 2박3일 뉴욕여행의 첫 행선지는 딸의 아파트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맨하탄의 전통있는 유니언 스퀘어였다. 연말 전구장식을 한 노스폴 익스프레스(North Pole Express) 투어버스가 지나는 도로 건너편이 1832년부터 Union Square로 불리기 시작했다는 광장이다. 여기를 찾아온 이유는 연말연시에만 임시로 만들어지는 홀리데이 마켓(Holiday Market)을 잠깐 구경하기 위해서인데, 광장 남쪽에 보도블럭이 깔린 곳에만 임시 상점들이 빼곡하게 만들어져 있다. 아직 어두워지기 전이라서 가게 지붕을 따라 걸린 조명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분위기는 잘 살지 않지만, 그래도 토요일 오후에 구경을 나온 뉴욕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참 많았다. 위기주부는 항상 여기 아래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기만 했지, 위에 올라와 돌아다니는 것은 처음인데, 뉴요커 따님 말씀이... 평소에 이 광장은 불법으로 대마초를 팔고 사거나 피우는 사람들만 많은 곳이라서, 홀리데이 마켓 등이 열릴 때 빼고는 와볼 필요가 전혀 없는 곳이란다~^^ 여하튼 이 날 우리 가족은 이런 전형적인 크리스마스 마켓 분위기의 가게들을 즐겁게 구경하면서 잠깐 시간을 보냈다. 광장의 남쪽에는 1856년에 세워진 조지 워싱턴의 기마상이 있는데, 모자를 벗어서 옆구리에 끼고 있는게 특이했다. 그리고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북쪽에는 망토를 감아쥐고 서있는 링컨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독립전쟁의 영웅인 라파예트(Marquis de Lafayette)의 동상과, 특이하게 1986년에는 간디(Mahatma Gandhi)의 동상도 이 광장에 세워졌다고 한다. 이제 광장 서쪽 경계인 브로드웨이(Broadway)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는데, 이 길 좌우에 들어선 파머스마켓인 Union Square Greenmarket은 연중내내 주말마다 항상 열린다. 지도를 보니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위기주부가 좋아하는 곳이 또 나와서 찾아가는 중이다. E 20th St에 위치한 그 곳은 시어도어 루즈벨트 탄생지 국립사적지(Theodore Roosevelt Birthplace National Historic Site)로 뉴욕시 맨하탄에 있는 9개의 NPS Official Unit들 중에서 위기주부가 방문하는 4번째 유닛이다.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지?" 얼떨결에 예정에 없던 국립 공원 탐방에 끌려온 모녀~^^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현관 위에 걸린 명패에는 1858년 10월 27일에, 미국의 제26대 대통령인 테디 루즈벨트가 여기서 태어났다고 적혀있다. 단, 원래 집은 여기가 상업지구가 되면서 1916년에 없어지고 새로 2층의 가게가 들어섰는데, 그가 1919년에 죽은 후에 기념재단에서 바로 가게를 다시 사들여서 헐어버리고는, 옛날과 똑같은 3층 주택을 기념관으로 새로 만들어서 1923년에 오픈한 것이란다. 역시 돈 많은 집안은 달라...ㅎㅎ 입구인 반지하의 Ground Level로 내려가니 역사 선생님같은 파크레인저께서 자리를 지키고 계셨는데, 나중에 우리 투어를 진행해주실 분이다. (한 번 선생님이라고 생각이 드니까 자꾸 존댓말이 저절로^^) 책방(book store)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이 책꽂이 하나가 전부였는데, 제일 위에 하얀 올빼미는 무슨 의미일까?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책들의 표지만 봐도 살짝 느낌이 오는데, 전반적인 그의 삶에 대한 소개는 그가 최후를 맞이한 롱아일랜드 자택에 대한 포스팅을, 특히 그의 자연보호에 대한 노력은 DC의 기념관을 방문했던 포스팅을 각각 클릭해서 보시면 된다. 그러니까 이 곳이 블로그에 벌써 3번째로 등장하는 시어도어 루즈벨트를 기리는 넓은 의미의 국립 공원인 것이다. 전시실에는 수 많은 그의 사진과 각종 소품들이 이렇게 빼곡히 전시되어 있지만,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전시물은 역시 제일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1898년에 쿠바에서 벌어진 스페인과의 전쟁에, 그가 "Rough Riders"라는 의용병을 끌고 참전했을 때 실제로 입었던 군복과 장갑이다. 이 복장을 입고 찍은 사진이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차례로 뉴욕 주지사, 미국 부통령, 그리고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사진 오른편에도 그가 입었던 하얀 셔츠와 안경집, 연설문 원고가 전시되어 있는데 모두 총알 구멍이 있다! 그가 뒤늦게 대통령을 또 하겠다고 1912년에 제3당 후보로 출마해서, 위스콘신 주의 밀워키(Milwaukee)에서 선거유세를 하다가 암살범의 총을 맞았었기 때문이다. 오후 2시반의 마지막 가이드투어에 참석한 사람들은 우리집 3명과 가운데 서있는 부부, 그리고 뒤늦게 젊은 커플이 추가되었다. 레인저 선생님께서 여기 1층 거실에서 아이패드로 루스벨트의 할아버지부터 차례로 모두 보여주시길래, 시작부터 좀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었다... 여기는 서재인데 이 재미없던 투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 두 개를 떠올린다면... 각 방의 화려한 '벽지(wallpaper)'와 테디가 어릴 때 '천식(asthma)'으로 고생했다는 것이 떠오른다. 가운데 너머의 식당에 놓인 식탁과 의자가 실제 루즈벨트 가족이 사용했던 것을 다시 가져다 놓은 오리지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2층으로 올라가서 무서운 인형이 놓여있던 놀이방에서 또 한참 테디의 천식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에, 마지막으로 그와 형제자매들이 모두 태어난 부모 침실을 둘러보았다. 그는 13세까지 여기 살다가 가족이 W 57th St의 더 큰 집을 구해 이사를 했단다. 이로써 국립공원청이 관리하는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이름이 들어간 5곳의 공원들 중에 3곳을 방문했는데, 과연 남은 2곳도 모두 가볼 수 있을까? 유적지를 나와서 다시 브로드웨이를 따라 올라가 매디슨 스퀘어(Madison Square)도 구경을 하려고 했으나, 뉴욕답게 그 쪽에서 시위대가 이리로 내려와서 경찰이 통행을 차단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 여름에 가봤으니 홀가분하게 건너 뛰고, 옆길로 레드라인 지하철 역을 찾아가서 타고 링컨센터(Lincoln Center)를 방문했던 이야기도 이미 소개해드렸으니 각각을 클릭해서 보시면 된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19세기에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힌 사람이라는 노예해방론자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
반응형 미동부 버지니아로 이사와서 두 달도 되지 않았던 2021년 12월말에, 많은 미국 위인들 동상이 만들어져 있는 내셔널하버(National Harbor)의 야외 공원에서 링컨 옆에 서있는 그를 처음 봤었다. 그 후 차례로 방문했던 웨스트버지니아 하퍼스페리(Harpers Ferry)와 메사추세츠 뉴베드포드(New Bedford) 국립역사공원에서 그의 이름을 마주쳤고, 올해 봄에 들렀던 아나폴리스(Annapolis)의 메릴랜드 주청사에서 최근에 세워진 그의 동상을 다시 만났었다. 흔히 제목처럼 "the most photographed person of the 19th century"로 알려져 있기도 한 그는, 웅변가이자 저술가로 노예해방론자로 활동한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이다. 워싱턴DC 남쪽의 아나코스티아 지역에 있어서 국립수도공원-동부(National Capital Parks-East) 그룹에 속하고, 1988년에 공식 지정된 국립 공원인 프레더릭 더글러스 국립사적지(Frederick Douglass National Historic Site)를 찾아왔다. 한쪽 언덕을 깍아서 넓은 주차장을 만들고, 바로 연결되는 비지터센터는 이렇게 땅속에 만들어서, 주변 경관을 헤치지 않도록 노력을 한 흔적이 엿보였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벽면과 천장의 거친 질감이 그의 힘들었던 어릴적 시절을 떠올리게 하려는 듯하다. 그는 1818년에 메릴랜드 시골에서 흑백 혼혈의 노예로 태어났는데, 출산 직후 엄마가 다른 곳으로 팔려가 백인 아빠가 누군지도 모른단다. 그 자신도 불과 8살에 혼자 볼티모어 가정집에 팔렸는데, 그 집의 백인 여성이 그에게 읽는 법을 잠깐 가르친 것이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 탄생하는 계기가 된다. 위기주부가 3번째로 만나는 프레더릭 더글라스의 동상으로 앞서 2개에 비해서 가장 나이 든 모습을 묘사했는지, 흑인 특유의 아프로(Afro) 헤어스타일, 소위 '폭탄머리'가 힘이 빠져서 마치 단발처럼 보이는데, 이 포스팅 맨 마지막의 사진을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실거다~^^ 레인저가 딱 맞춰 안내영화 을 틀어줬는데, 8세때 글을 배우는 모습부터 1895년에 77세의 나이로 이제 방문하는 그의 집 현관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사망할 때까지의 일생을 배우들이 잘 보여주었다. 앞에 계신 분도 혼자 오셨던데 무료 투어에 참가하지 않는 바람에, 영화가 마치고 진행된 가이드투어는 위기주부 단 1명만을 위한 단독 투어였다! ㅎㅎ 언덕 위로 올라오면 1877년에 그가 지금의 워싱턴DC 경찰서장에 해당하는 U.S. Marshal of the District of Columbia에 취임하면서 구입한 저택이 나오는데, 미국에서 상원의 인준이 필요한 연방정부 고위직에 흑인이 임명된 최초의 사례이다. 그는 청소년기에 플랜테이션에서 채찍을 맞으며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동안에도 몰래 독학으로 많은 책을 읽었고, 다시 볼티모어의 조선소로 보내진 후에 자유흑인이었던 Anna Murray의 도움으로, 20세때 가짜 신분증으로 뉴욕행 기차를 타고 탈출 후 결혼해서 함께 메사추세츠 뉴베드포드로 도망가게 된다. 그가 시더힐(Cedar Hill)로 불렀다는 저택의 정면 사진을 찍고 다가가니, 현관문을 열고 파크레인저와 투어를 담당하는 자원봉사자가 나왔다. 그리고 젊은 남녀 두 명이 옆길로 다가오길래 다른 참가자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잠깐 생각했지만, 그들은 투어를 따라다니며 이 곳에 대해서 배우고 있는 국립공원청 인턴들이었다. 즉, 직원 4명에 손님 1명...! 파크레인저는 비지터센터로 내려가고, 보조 2명을 대동한 가이드가 위기주부만을 위해 설명을 해주는 '황제투어'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현관 오른편의 응접실(parlor)로 이 집의 가구와 소품들은 대부분이 더글러스가 살던 19세기 모습 그대로라고 한다. 이렇게 잘 유지가 될 수 있었던데는 44년간 해로한 Anna가 병으로 죽고, 2년후에 재혼한 두번째 부인 Helen Pitts가 그의 사후에 기념재단을 만들어 집을 그대로 보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그녀는 더글러스의 일을 돕던 20살 연하의 백인 여성이라서, 둘의 결혼은 양가에서 모두 심한 반대에 부딪혔었단다. 자신이 노예였던 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직접 만들어 달았다는 커텐 고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는 1841년부터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노예제폐지(abolition) 운동의 연사로 활동을 시작해서 1845년에 자신이 경험한 노예의 삶을 서술한 책을 내면서 유명해진다. 하지만 당시 연방법에 따라서 도망친 노예인 범법자였기 때문에, 노예사냥꾼들을 피해서 유럽으로 건너가야 했다. 그 후 강연료 등을 모아서 자신의 법적인 소유자에게 돈을 지불한 후인 1847년에야 자유인 신분으로 미국에 돌아올 수 있었단다. 1층 안쪽에 위치한 그의 서재(library)로 많은 책과 링컨의 흑백사진이 눈에 띈다. 미국에 돌아온 후에 뉴욕 로체스터(Rochester)에 정착해서 신문을 발행하며 노예제폐지 운동을 계속하는데, 급진주의자 존 브라운(John Brown)과도 인연이 있어서 그가 1859년에 흑인 무장을 위해 하퍼스페리 무기고를 습격했다가 체포된 후에, 더글러스는 잠시 캐나다와 유럽으로 또 도피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남북전쟁 발발 후에 백악관에서 링컨을 만나서 흑인 부대 창설을 주도했고, 실제로 그의 아들들도 모두 남군과의 전투에 참가했다고 한다. 식당(dinning)에 걸린 그림과 사진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계신 자원봉사자 가이드님으로, 항상 저렇게 유일한 손님을 쳐다보며 설명을 해주셔서 사진 몇 장 찍는 것도 아주 힘들었다는...^^ 계속해서 부엌에 있는 오븐과 싱크대까지 모두 사연을 들은 후에야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내부 투어의 마지막 사진은 2층에 있는 그의 침실로, 1889년부터 2년간 주 아이티(Haiti) 공사를 지낸 기간을 제외하고는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았다. 투어를 다 마치고 감사 인사를 한 후 집밖으로 나가 시간을 확인했더니 거의 1시간이 흘렀더라는~ 뒤뜰에는 그가 '그라울러리(Growlery)'라 불렀다는 작은 돌집이 복원되어 있는데, 본채의 좋은 서재보다도 저 안에 혼자 틀어박혀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한다. 기분이 언짢거나 혼자 있고 싶을 때, 맘껏 '으르렁(growl)' 할 수 있는 개인실이나 아지트, 즉 피난처 또는 안식처의 의미로 그렇게 지었다는데, 혹시 아내의 잔소리를 피해서 도망가는 용도로 주로 사용한 것은 아닐까? ㅎㅎ 경사로를 따라 주차장으로 돌아가며 올려다본 시더힐 저택으로 원래 방이 14개였는데, 구입 후에 뒤쪽으로 건물을 이어붙여서 방이 모두 21개나 있단다. 60세에 이리로 이사올 당시에 5명의 자녀로부터 손주가 20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많은 방이 필요했다고... 그럼 마지막으로 왜 포스팅의 제목과 같이, 그가 세계에서 가장 사진에 많이 찍힌 19세기 사람이라고 여겨질까? 위 포스터와 같이 그의 사진만 모아서 따로 전시회도 열고, 비지터센터 서점에서는 두꺼운 사진 해설집도 판매하고 있는데, 노예해방 운동을 시작한 1840년대부터 죽기 직전까지 50여년 동안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찍은 독사진이 160장이 넘는다고 한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라고 해도 길어야 8년 정도만 유명했던 반면에,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는 50년 이상 계속해 미국과 영국에서 뉴스가 되고 신문에 얼굴이 나왔다고 하니, 요즘으로 치자면 틱톡이나 인스타를 주름잡은 인플루언서 또는 셀레브리티로 평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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