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사적지
Posts
29 posts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en Poe)와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Thaddeus Kosciuszko)
정확히 10년전 여름에 하이스쿨 입학을 앞두고 있던 딸을 위해 다녀왔던 아이비 리그(Ivy League) 대학투어 8박9일 미동부 여행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던 도시가 필라델피아(Philadelphia)였다. 하지만 3년전에 미동부로 이사와서는 인근의 유명한 정원을 구경하기 위해 스쳐지나간 적만 있을 뿐, 시내로는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대도시였다. 참, 그래서 딸 자식은 투어를 다녀온 4년 후에, 아이비리그 8개 중 6개에 합격을 해서 그 중 한 곳을 졸업했고, 벌써 직장인 2년차로 맨하탄에서 혼자 살고 있다... 시간 참 겁나게 빠르다! 76번 고속도로가 스퀼킬 강(Schuylkill River)을 만나서부터 정체가 시작되어서, 앞차와의 거리를 충분히 두고 10년만에 다시 만난 필라델피아 빌딩숲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하지만 이제 찾아가는 곳은 저 시내가 아니라, 대부분의 여행객은 듣도 보도 못한 장소인데, 이 때가 위기주부 홀로 작년 12월초에 떠났던 '4차 듣보잡 여행'의 오후였기 때문이다. 고속도로에서 빠지자마자 표지판이 역시 필라델피아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인디펜던스 홀(Independence Hall)의 방향을 알려주는데, 아이비리그 대학투어 가족여행의 마지막 날에 방문했던 그 곳의 여행기를 클릭해 보실 수 있다. 그러면 위기주부는 도대체 어디를 찾아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신 분을 위해 아래 지도를 준비했다. 최근 업데이트 된 국립공원청 앱의 지도로 필라델피아를 확대하면 위와 같이 4개의 장소가 표시된다. 그러나 제일 아래쪽 Gloria Dei Church는 제휴된(affiliated) 장소라서 현재 433개의 NPS official unit들에 포함되지 않고, 가운데 인디펜던스 국립역사공원은 10년전에 다녀왔으니, 나머지 2개의 장소를 이제 방문하려는 것이다. 첫번째는 에드거앨런포 국립사적지(Edgar Allen Poe National Historic Site)로 그가 필라델피아에서 약 6년간 시인, 비평가, 편집자로 살며 거의 매년 옯겨다닌 거주지들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물이란다. 다른 오래된 집들처럼 철거될 예정이었지만 열혈팬이 1933년에 구입해서 박물관으로 개장했고, 유언으로 필라델피아 시에 기증한 것을 다시 연방정부가 인수해서 1980년에 국립사적지로 재개장을 했다. 하지만 작은 "Closed for construction" 표시가 비지터센터 문앞에 예상대로 붙어 있었다. 몇 달 전에 확인했을 때는 겨울에 다시 오픈할 예정이라고 했었지만, 미국 공무원들 일하는 스타일로 봐서 언제 재단장이 끝날지 기약이 없는 것을 알기에... 겉모습이라도 구경하려고 찾아왔던 것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안내판에 따르면 그는 뒤쪽의 작은 건물에서 어리고 병약한 아내 Virginia Clemm Poe와 고모인 동시에 장모였던 Maria Poe Clemm과 함께 1843-44년 기간에 살았고, 현재 비지터센터로 사용되고 있는 앞쪽의 큰 건물은 1848년에 추가된 것이다. 그런데 앞쪽 건물의 붉은 벽에 석양의 햇살을 받아 살벌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던 동상이 있었으니... 그가 1845년애 발표한 시(詩)의 제목이기도 한 까마귀(The Raven, 갈가마귀)이다.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en Poe)는 한국에서는 등의 공포/추리 소설의 작가로 많이 알려졌지만, 영문학에서는 를 쓴 시인으로 더 유명해서 그 시에서 까마귀가 읊조리는 말로 처음 등장했던 "Nevermore"라는 단어는 유치원생들도 출처를 알 정도라고 한다. 또한 그가 본격적인 전업작가 생활을 시작했고 또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던 도시인 볼티모어를 연고로 하는 미식축구 팀의 이름이 '레이븐스(Ravens)'인 것도 그 시에서 유래했다. 건물 내부에서 가장 인기있는 장소는 바로 안내판에서도 대표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는 지하실인데, 그 이유는 바로 그의 다른 대표작인 에서 벽 속의 시체와 함께 한쪽 눈이 없는 검은 고양이가 나타나는 지하실이 바로 이 곳을 모티브로 했기 때문이란다. 약간은 허전한 느낌을 가지고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하려다 잠시 옆건물로 눈을 돌렸는데, 특유의 애매한 눈빛으로 위기주부를 바라보는 포(Poe)가 거기에 있었다! 이 포스팅을 쓰면서 그의 일생에 대한 나무위키의 설명을 참 재미있게 읽어서, 언젠가는 여러 작품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볼티모어에는 그의 묘지와 함께 그가 살았던 집이 사설 박물관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는데, 여기를 클릭하시면 블로그 이웃이신 짱남님이 방문했던 여행기를 보실 수 있다. 남쪽으로 10분 정도 차를 달려서 두번째 목적지인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 국립기념관(Thaddeus Kosciuszko National Memorial)을 찾아왔는데, 다닥다닥 붙은 오래된 아파트들 중에서 눈에 띄는 삼각형 지붕의 건물이다. 예전에 백악관과 그 주변을 소개한 글에서 미국독립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외국인 4명을 모아 놓은 라파예트 공원에 있는 그의 동상을 간단한 소개와 함께 사진으로 보여드린 적이 있다. 폴란드 군사학교를 졸업한 코슈추슈코(Kosciuszko)는 1776년에 30세의 나이로 아무 연고도 없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와, 미국독립 전쟁에 자원해 6년간 공병장교로 활약해서 준장 계급을 받는다. 그 후 유럽으로 돌아가 고국 폴란드의 독립을 위해 또 싸우다가 러시아에 붙잡혀 징역을 살고 석방되는데, 이 곳은 그 후에 그가 다시 미국을 방문한 1797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지냈던 숙소이다. 이 곳은 이유도 없이 그냥 "Closed"가 붙어 있는데, 그 이유는 방문했던 겨울철에는 아예 문을 열지 않고, 여름철에도 주말 오후에만 잠깐 오픈할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래도 안내판 정도는 하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모퉁이를 돌아보니, 예상대로 국립공원청에서 세워 놓은 설명판이 눈에 띄었다. 무작정 신생 독립국의 수도였던 필라델피아로 와서는 대륙군에 들어가기 위해서, 벤자민 프랭클린을 찾아가 수학 실력을 보여주고는 공병장교로 추천을 받아서 입대를 할 수 있었단다. 특히 미국 독립전쟁 초기의 가장 중요한 승리로 기록되는 새러토가 전투(Battles of Saratoga)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 후 허드슨 강변의 웨스트포인트(West Point)를 요새화 하는 것을 지휘했다. 전쟁이 끝나고 그 곳에 미국 육군사관학교가 들어설 때, 제일 먼저 세워진 동상의 주인공이 코시치우슈코라고 한다. 안내판의 초상은 좀 영웅적이고 근엄한 모습이지만, 브로셔의 표지로 사용된 아래의 그림은 아주 앳된 얼굴이다. 참고로 그는 폴란드의 국민영웅이기도 해서 공원 브로셔의 뒷면은 특이하게 폴란드어로 만들어져 있었다. 미국 화가 Benjamin West가 런던에서 우연히 만나 그린 그림이라는데, 이 때의 코시치우슈코 나이가 45세라고 하니 굉장히 동안인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전혀 무골(武骨)이 아닌 공학도의 순수함(?)이 느껴지는 얼굴인데, 그가 처음 대서양을 건넜던 이유는 첫사랑의 실패로 지구 반대편에 가서 죽을 작정으로 미국 독립전쟁에 가담했다는 설도 있단다.^^ 이상과 같이 두 위인의 체취가 남았을 지도 모르는 잠겨진 두 문짝만 구경을 하고는 짧은 필라델피아 방문을 마치고 떠나며, 신호를 기다리다가 운전석 차창 밖으로 기념관의 전체 모습을 담아봤다. 정확히 건평이 81제곱미터인 저 건물만 1972년에 국가기념물(National Memorial)로 지정이 되었는데, 현재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넓은 의미의 국립 공원들 433개 중에서 면적이 가장 작은 곳이라고 한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오하이오의 작은 도시 캔턴(Canton)에 있는 퍼스트레이디(First Ladies) 국립사적지와 미국 영부인 도서관
특이하게 중국 남부 광동(廣東)의 영어 발음인 '칸톤'에서 유래한 이름의 도시가 미국 중서부 오하이오 주에 있다. 그 도시는 1805년에 메릴랜드 출신의 측량사가 볼티모어 캔톤(Canton) 지역을 따와 명명했는데, 그 지역은 중국 광둥성과 무역하던 선장이 1785년에 은퇴 후 매입한 자신의 농장을 그렇게 이름지었기 때문이다. 표준 중국어(Chinese)와 말로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홍콩에서 주로 쓰이는 광동어를 영어로 '칸토니즈(Cantonese)'라 부르는 것을 한 번쯤 들어 보셨을거다. 집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해 오하이오 주 캔턴(Canton) 시내에 있는 퍼스트레이디 국립사적지(First Ladies National Historic Site)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9시반이 넘어가고 있었고, 깜깜할 때부터 흩날리던 싸락눈이 군데군데 제법 쌓인 모습이다. 국립공원청의 무료 주차장 남쪽에 고풍스런 저택은 나중에 소개할 예정이고, 비지터센터는 반대편 북쪽으로 도로를 건너가야 한다. 미쉘 오바마(Michelle Obama) 등의 사진이 걸려있는 은행 건물이 국립사적지의 비지터센터지만, 멀리 눈을 맞은 커다란 크리스마스 장식도 보이고 해서, 큰 사거리까지 먼저 한 번 걸어가 봤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사거리에서는 이 오래된 듯한 광고판이 가장 눈에 띄었는데, 복습을 하면서 알게된 중요한 사실은... 1920년에 캔턴에서 현재 프로 미식축구 협회인 NFL(National Football League)의 전신이 창립되었고, 이 도시를 연고로 했던 팀이 1922년과 1923년에 연이어 NFL 챔피언이었으며, 이런 사연으로 1963년에 미국 프로풋볼 명예의 전당(Pro Football Hall of Fame)이 여기 오하이오의 작은 도시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단다! 다시 돌아와 건물의 로비로 들어섰는데, 지금까지의 다른 일반적인 국립사적지와는 달리 비지터센터가 입구부터 아주 '블링블링'했다~^^ 옛날 은행창구 또는 안내소 같은 칸막이 안의 은발 여성분이 첫번째 사진의 저택 유료투어를 할 것인지를 물어보셨는데... 정확히 1년전에 다른 국립사적지에서 일인 단독으로 '황제투어'를 했을 때의 뻘쭘함이 떠올라서, 정중히 사양을 하고는 내부 전시를 구경했다. 로비의 안내판처럼 역대 영부인이 선생님, 교육자, 사서 등으로 활동했던 자료들을 모은 라는 제목의 특별전시였는데, 바바라 부시(Barbara Bush)는 1990년부터 본인을 비롯해 유명인들이 책을 읽어주는 라디오 방송 "Mrs. Bush's Story Hour"를 진행했다는 내용이고, 오래간만에 보는 클라리넷이 반가웠던 이 전시는 FDR의 아내였던 엘레노어 루즈벨트(Eleanor Roosevelt)에 관한 내용으로, 대공황 시기에 웨스트버지니아에 건설되었던 실험적 공동체 마을인 아서데일(Arthurdale)의 보육시설과 학교 운영에 그녀가 주도적으로 개입했던 내용을 다루고 있다. 너무 이런 내용만 있으면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여러 영부인들이 실제 입었던 옷을 백악관 사진을 배경으로 보여주는 상설전시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다면 특정 개인이 아니라 모든 미국의 역대 영부인들을 함께 기념하는 이러한 국립사적지가 어떻게 여기 오하이오 주의 소도시 캔턴에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이 도시가 포함된 지역구 연방 하원의원의 아내였던 Mary Regula는 미국 영부인들에 대한 체계적인 자료를 수집하는 재단을 만들어서 1998년에 국가 영부인 도서관(National First Ladies Library)을, 오하이오 태생의 윌리엄 맥킨리 대통령의 아내로 캔턴이 고향인 아이다 색스턴 맥킨리(Ida Saxton McKinley)가 살았던 저택에 개관을 한다. 그 집이 먼저 2000년에 국립사적지로 지정된 후에 재단이 기증받은 한 블록 떨어진 City National Bank 건물을 개조해서 도서관과 박물관을 이전하고, 저택 내부는 다시 옛날의 모습으로 복원을 했단다. 인형들 얼굴에 눈코입이 없어서 약간은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장식의 크리스마스 트리 뒤쪽 벽에는 퍼스트레이디(First Lady) 49명의 초상화와 사진이 인쇄된 포스터가 액자에 들어있다. 지금까지 미국 대통령을 했던 45명과 딱 맞지 않는 이유는, 부인이 없는 경우에는 딸이나 며느리, 또는 조카 등의 여러 명이 그 역할을 이어받기도 했기 때문이란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의문은... 만약에 이번에 여자 대통령이 나왔다면, 그녀의 남편인 '퍼스트젠틀맨(First Gentleman)'도 나중에 저 포스터에 추가가 되고, 여기서 같이 기념을 해줄지가 궁금했다. 어쩌면 전시실보다도 더 구경거리가 많았던 곳이 여기 기념품 가게였는데, 앞쪽 책상에 놓여진 것은 영부인의 얼굴이 들어간 트리에 다는 장식으로 보였는데, 가운데 뒤쪽에 멜라니아 트럼프(Melania Trump)의 얼굴도 보인다. 앞에 놓인 종이에 해당 영부인의 이력과 활동 등이 적혀있으니까, 뭐라고 써놓았는지 궁금하신 분은 사진을 확대해서 읽어보시기 바란다. (글자가 작아서 잘 안 보이려나?) 영부인에다 국무장관까지 한 것으로 만족하고 그냥 물러났다면 미국 역사의 흐름이 혹시 바뀌었을 수도 있는...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자서전의 오래된 재고를 여기서 떨이로 판매하고 있었다.^^ 반지하의 아랫층에는 금색 철문 안으로 많은 좌석을 가진 극장이 만들어져 있었고, 스크린은 아니지만 대형 TV를 통해서 미국 영부인에 관한 다큐같은 프로그램을 아무도 없는데 틀어놓고 있어서 예의상 들어가서 관람을 좀 해줬다. 오랜 운전의 피곤으로 의자에서 잠이 들뻔 하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흥미있게 봤던 내용은... JFK가 암살될 때 재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가 입었던 '핑크 샤넬 슈트'가 사실은 뉴욕 옷가게에서 만든 복제품이며, 남편의 피가 묻은 상태로 그 날 하루종일 입었던 그 옷은 세탁되지 않은 상태로 메릴랜드 국가 기록물 보관소에 있고, 상속인의 증서에 따라 최소 2103년까지는 대중에 공개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여기를 클릭하면 비록 흑백이지만, 위기주부 블로그에 이미 등장했던 그 옷을 입은 재클린 케네디의 사진을 보실 수 있음) 주차장 바로 옆은 영부인 정원(First Ladies' Garden)이라 불리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고, 그 남쪽으로 커다란 저택이 자리잡고 있다. 국립 공원들의 간판을 그 곳의 특성에 맞는 디자인과 폰트로 제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여기도 그런 장소들 중의 하나였다. 커다란 건물이 대로변에 위치해 바로 앞에서는 전체 사진을 찍기가 어려워 남쪽 사거리 모퉁이까지 내려가야 했다. 1842년에 완공된 빅토리아 양식의 저택은 아이다 색스턴(Ida Saxton) 가문의 집으로 윌리엄 맥킨리와 결혼 후, 그가 오하이오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장녀였던 그녀가 물려받아서 함께 살았던 집이란다. 유료 투어를 하면 당시 복장을 한 가이드가 내부를 안내한다고 되어 있던데, 위기주부 혼자 꿋꿋이 하겠다고 했어도 직원이 이 추운 겨울날에 옛날 옷으로 갈아입고 해줬을까? ㅎㅎ 저택의 외부만 한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방문을 마무리하려고, 건물 뒤쪽에 만들어진 입구쪽까지 걸어왔는데, 어디서 연자방아를 가져와서 색스턴 하우스(Saxton House)를 소개하는 동판을 박아 놓았다. 1896년 대선에서 승리해 제25대 대통령이 된 윌리엄 맥킨리가 불행히도 재선 직후에 암살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부통령으로 대통령 직을 승계했던 후임자의 저택을 방문했던 여행기에서 이미 소개해드린 적이 있다. 1박2일 오하이오 여행의 다음 목적지를 향하며,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다가 눈을 맞은 트리를 찍어봤다. 맥킨리 부부의 묘지는 캔턴 교외에 있는 맥킨리 국립기념물(McKinley National Memorial) 내에 만들어졌고 그 옆으로 대통령 기념도서관도 위치하고 있지만, 둘 다 재단 소유로 관리되고 있어서 국립공원청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행계획을 세울 때 전혀 몰랐다. 혹시 알았다면 입장이 유료인 도서관은 생략하더라도 거대한 기념물은 잠깐이라도 들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오하이오의 작은 도시 캔턴(Canton)에 있는 퍼스트레이디(First Ladies) 국립사적지와 미국 영부인 도서관
특이하게 중국 남부 광동(廣東)의 영어 발음인 '칸톤'에서 유래한 이름의 도시가 미국 중서부 오하이오 주에 있다. 그 도시는 1805년에 메릴랜드 출신의 측량사가 볼티모어 캔톤(Canton) 지역을 따와 명명했는데, 그 지역은 중국 광둥성과 무역하던 선장이 1785년에 은퇴 후 매입한 자신의 농장을 그렇게 이름지었기 때문이다. 표준 중국어(Chinese)와 말로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홍콩에서 주로 쓰이는 광동어를 영어로 '칸토니즈(Cantonese)'라 부르는 것을 한 번쯤 들어 보셨을거다. 집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해 오하이오 주 캔턴(Canton) 시내에 있는 퍼스트레이디 국립사적지(First Ladies National Historic Site)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9시반이 넘어가고 있었고, 깜깜할 때부터 흩날리던 싸락눈이 군데군데 제법 쌓인 모습이다. 국립공원청의 무료 주차장 남쪽에 고풍스런 저택은 나중에 소개할 예정이고, 비지터센터는 반대편 북쪽으로 도로를 건너가야 한다. 미쉘 오바마(Michelle Obama) 등의 사진이 걸려있는 은행 건물이 국립사적지의 비지터센터지만, 멀리 눈을 맞은 커다란 크리스마스 장식도 보이고 해서, 큰 사거리까지 먼저 한 번 걸어가 봤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사거리에서는 이 오래된 듯한 광고판이 가장 눈에 띄었는데, 복습을 하면서 알게된 중요한 사실은... 1920년에 캔턴에서 현재 프로 미식축구 협회인 NFL(National Football League)의 전신이 창립되었고, 이 도시를 연고로 했던 팀이 1922년과 1923년에 연이어 NFL 챔피언이었으며, 이런 사연으로 1963년에 미국 프로풋볼 명예의 전당(Pro Football Hall of Fame)이 여기 오하이오의 작은 도시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단다! 다시 돌아와 건물의 로비로 들어섰는데, 지금까지의 다른 일반적인 국립사적지와는 달리 비지터센터가 입구부터 아주 '블링블링'했다~^^ 옛날 은행창구 또는 안내소 같은 칸막이 안의 은발 여성분이 첫번째 사진의 저택 유료투어를 할 것인지를 물어보셨는데... 정확히 1년전에 다른 국립사적지에서 일인 단독으로 '황제투어'를 했을 때의 뻘쭘함이 떠올라서, 정중히 사양을 하고는 내부 전시를 구경했다. 로비의 안내판처럼 역대 영부인이 선생님, 교육자, 사서 등으로 활동했던 자료들을 모은 라는 제목의 특별전시였는데, 바바라 부시(Barbara Bush)는 1990년부터 본인을 비롯해 유명인들이 책을 읽어주는 라디오 방송 "Mrs. Bush's Story Hour"를 진행했다는 내용이고, 오래간만에 보는 클라리넷이 반가웠던 이 전시는 FDR의 아내였던 엘레노어 루즈벨트(Eleanor Roosevelt)에 관한 내용으로, 대공황 시기에 웨스트버지니아에 건설되었던 실험적 공동체 마을인 아서데일(Arthurdale)의 보육시설과 학교 운영에 그녀가 주도적으로 개입했던 내용을 다루고 있다. 너무 이런 내용만 있으면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여러 영부인들이 실제 입었던 옷을 백악관 사진을 배경으로 보여주는 상설전시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다면 특정 개인이 아니라 모든 미국의 역대 영부인들을 함께 기념하는 이러한 국립사적지가 어떻게 여기 오하이오 주의 소도시 캔턴에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이 도시가 포함된 지역구 연방 하원의원의 아내였던 Mary Regula는 미국 영부인들에 대한 체계적인 자료를 수집하는 재단을 만들어서 1998년에 국가 영부인 도서관(National First Ladies Library)을, 오하이오 태생의 윌리엄 맥킨리 대통령의 아내로 캔턴이 고향인 아이다 색스턴 맥킨리(Ida Saxton McKinley)가 살았던 저택에 개관을 한다. 그 집이 먼저 2000년에 국립사적지로 지정된 후에 재단이 기증받은 한 블록 떨어진 City National Bank 건물을 개조해서 도서관과 박물관을 이전하고, 저택 내부는 다시 옛날의 모습으로 복원을 했단다. 인형들 얼굴에 눈코입이 없어서 약간은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장식의 크리스마스 트리 뒤쪽 벽에는 퍼스트레이디(First Lady) 49명의 초상화와 사진이 인쇄된 포스터가 액자에 들어있다. 지금까지 미국 대통령을 했던 45명과 딱 맞지 않는 이유는, 부인이 없는 경우에는 딸이나 며느리, 또는 조카 등의 여러 명이 그 역할을 이어받기도 했기 때문이란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의문은... 만약에 이번에 여자 대통령이 나왔다면, 그녀의 남편인 '퍼스트젠틀맨(First Gentleman)'도 나중에 저 포스터에 추가가 되고, 여기서 같이 기념을 해줄지가 궁금했다. 어쩌면 전시실보다도 더 구경거리가 많았던 곳이 여기 기념품 가게였는데, 앞쪽 책상에 놓여진 것은 영부인의 얼굴이 들어간 트리에 다는 장식으로 보였는데, 가운데 뒤쪽에 멜라니아 트럼프(Melania Trump)의 얼굴도 보인다. 앞에 놓인 종이에 해당 영부인의 이력과 활동 등이 적혀있으니까, 뭐라고 써놓았는지 궁금하신 분은 사진을 확대해서 읽어보시기 바란다. (글자가 작아서 잘 안 보이려나?) 영부인에다 국무장관까지 한 것으로 만족하고 그냥 물러났다면 미국 역사의 흐름이 혹시 바뀌었을 수도 있는...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자서전의 오래된 재고를 여기서 떨이로 판매하고 있었다.^^ 반지하의 아랫층에는 금색 철문 안으로 많은 좌석을 가진 극장이 만들어져 있었고, 스크린은 아니지만 대형 TV를 통해서 미국 영부인에 관한 다큐같은 프로그램을 아무도 없는데 틀어놓고 있어서 예의상 들어가서 관람을 좀 해줬다. 오랜 운전의 피곤으로 의자에서 잠이 들뻔 하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흥미있게 봤던 내용은... JFK가 암살될 때 재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가 입었던 '핑크 샤넬 슈트'가 사실은 뉴욕 옷가게에서 만든 복제품이며, 남편의 피가 묻은 상태로 그 날 하루종일 입었던 그 옷은 세탁되지 않은 상태로 메릴랜드 국가 기록물 보관소에 있고, 상속인의 증서에 따라 최소 2103년까지는 대중에 공개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여기를 클릭하면 비록 흑백이지만, 위기주부 블로그에 이미 등장했던 그 옷을 입은 재클린 케네디의 사진을 보실 수 있음) 주차장 바로 옆은 영부인 정원(First Ladies' Garden)이라 불리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고, 그 남쪽으로 커다란 저택이 자리잡고 있다. 국립 공원들의 간판을 그 곳의 특성에 맞는 디자인과 폰트로 제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여기도 그런 장소들 중의 하나였다. 커다란 건물이 대로변에 위치해 바로 앞에서는 전체 사진을 찍기가 어려워 남쪽 사거리 모퉁이까지 내려가야 했다. 1842년에 완공된 빅토리아 양식의 저택은 아이다 색스턴(Ida Saxton) 가문의 집으로 윌리엄 맥킨리와 결혼 후, 그가 오하이오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장녀였던 그녀가 물려받아서 함께 살았던 집이란다. 유료 투어를 하면 당시 복장을 한 가이드가 내부를 안내한다고 되어 있던데, 위기주부 혼자 꿋꿋이 하겠다고 했어도 직원이 이 추운 겨울날에 옛날 옷으로 갈아입고 해줬을까? ㅎㅎ 저택의 외부만 한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방문을 마무리하려고, 건물 뒤쪽에 만들어진 입구쪽까지 걸어왔는데, 어디서 연자방아를 가져와서 색스턴 하우스(Saxton House)를 소개하는 동판을 박아 놓았다. 1896년 대선에서 승리해 제25대 대통령이 된 윌리엄 맥킨리가 불행히도 재선 직후에 암살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부통령으로 대통령 직을 승계했던 후임자의 저택을 방문했던 여행기에서 이미 소개해드린 적이 있다. 1박2일 오하이오 여행의 다음 목적지를 향하며,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다가 눈을 맞은 트리를 찍어봤다. 맥킨리 부부의 묘지는 캔턴 교외에 있는 맥킨리 국립기념물(McKinley National Memorial) 내에 만들어졌고 그 옆으로 대통령 기념도서관도 위치하고 있지만, 둘 다 재단 소유로 관리되고 있어서 국립공원청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행계획을 세울 때 전혀 몰랐다. 혹시 알았다면 입장이 유료인 도서관은 생략하더라도 거대한 기념물은 잠깐이라도 들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유명했던 펜실베니아 주 철강업의 초기 역사를 보여주는 호프웰퍼니스(Hopewell Furnace) 국립사적지
딸이 보스턴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2021년, 여름 방학이 끝나서 다시 기숙사에 들어가는 이사를 도와주기 위해 LA에서 날라가, 근교를 하루 여행하며 랍스터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17세기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북미대륙 최초의 제철소 유적지를 방문했던 적이 있다. 작년말 펜실베이니아 주를 중심으로 돌아본 '4차 듣보잡 여행'에서는 그로부터 1백여년이 지난 18세기 후반의 미국독립 시기에 형성된 소규모 '철강농장(Iron Plantation)'이 국가유적으로 보존된 곳을 또 잠시 들릴 수 있었다. 주도 해리스버그(Harrisburg)에서 최대도시 필라델피아(Philadelphia)로 향하는 76번 고속도로를 절반 넘게 달리다 빠져서, 주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속을 제법 운전해야 나오는 이 곳은 호프웰퍼니스 국립사적지(Hopewell Furnace National Historic Site)이다. 비지터센터에 붙어있는 돌화살촉 모양의 커다란 국립공원청 로고... 언젠가는 저걸 하나 뜯어서 집으로 가져오거나, 직접 나무를 깍아 만드는 날이 올지도? ㅎㅎ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손님이라고는 없는 실내에서 화기애애한 담소를 나누던 파크레인저와 자원봉사자들... 직원이 쓰고 있는 로고가 박힌 털모자도 마음에 든다~^^ 연세 많은 자원봉사자에게 안내영화가 있냐고 물어봤더니, 위기주부 혼자만을 위해 영상을 틀어주셨다. 호프웰퍼니스(Hopewell Furnace)는 1771년경 '철광석 장인(Ironmaster)'이었던 Mark Bird에 의해 설립되어, 1883년까지 철강을 생산했던 마을인데, 18세기말에 연간 생산량이 700톤으로 펜실베니아의 14개 제철공장들 중에 두번째로 큰 규모였단다. 제철소를 짓고 그 주변에 직원들이 거주하는 마을과 아이들의 학교까지 들어선 형태로 이러한 산업단지를 Iron Plantation이라 불렀는데, 철강 생산이 중단된 후 완전히 버려진 곳을 연방정부가 사들여서, 1938년에 미국의 두번째 국립사적지(National Historic Site)로 지정해 대대적인 복원과정을 거쳤다. (공교롭게 첫번째 NHS는 서두에 언급한 보스턴 부근 제철소를 방문한 날의 오전에 먼저 들렀던 곳임^^) 언덕을 내려가는 트레일을 따라 차례대로 둘러보면, 여기는 재료들 중의 하나인 숯을 가져와 보관하는 곳으로 용광로 시설과는 지붕이 있는 통로로 연결이 되어 있다. 야외에도 각 위치마다 설명판이 있었지만, 먼지를 뒤집어 써서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비지터센터 전시실에서 찍었던 아래 사진을 먼저 보여드리며 기본 설명을 드린다. 그림처럼 돌로 3~4층 높이의 고로(高爐, Shaft Furnace)를 만들고 위쪽에서 철광석(iron ore), 석회(limestone), 숯(charcoal)을 계속 넣어서 불로 녹인 후에, 아래쪽에서 일정 시간마다 플러그(plug)를 열어서 쇳물을 받는 형태이다. 현대적인 제철소도 기본적으로 같은 방식인데, 불이 꺼져서 고로가 식어서 내부가 그대로 굳어지면 못 쓰게 되므로, 당시에는 작업자들이 교대로 밤이나 낮이나 재료를 끝없이 계속 넣어야 했다. 가운데 조명으로 밝혀진 곳이 고로의 제일 위쪽으로 재료를 부어 넣던 구멍은 쇠판으로 막아 놓았다. 재료와 함께 고로의 안으로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하는 것이 불을 유지하기 위한 산소인데, 건물 옆에 만들어진 커다란 물레방아를 이용해서 공기를 압축하고 파이프로 고로에 산소를 공급하는 구조이다. 이제 다시 밖으로 나가서 트레일을 따라 건물의 아래쪽으로 내려가 보자~ 그 전에 공장 옆의 사무실 건물에 잠깐 들어와 봤다.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돈이 아니라 이 마을에서만 쓸 수 있는 '크레딧'으로 대부분의 임금을 받았는데, 여기 사무실 겸 상점에서 그 크레딧으로 생필품을 구입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노동자가 일터를 떠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탄광촌 등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졌다. 고로 건물의 아랫층으로 흙바닥으로 흘러나오는 쇳물을 막대기 모양 홈을 따라 흐르게 해서 판매용 선철(pig iron)을 만든 모습이 보인다. 물레방아도 아래쪽에서 보면 나무로 만든 원기둥 형태의 압축기와 고로까지 연결된 공기 파이프를 잘 확인할 수 있었다. 공장을 나와서 개울을 건너면 직원들이 살던 마을로 학교와 집이 복원되어 있지만 멀리 가지는 않았고, 바로 앞에 있는 대장간 건물의 내부만 잠깐 들어가 봤다. 화로에서 선철을 다시 녹여서 불순물을 제거한 후에 여러가지 작은 철제 도구들을 만들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제철소 건물의 전체 모습으로 아랫층이 필요 이상으로 넓게 보이는 이유는, 고로에서 나온 쇳물을 바로 틀에 부어서 소비자용 제품을 만드는 주물 공장이 함께 있기 때문인데, 여기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제품은 마지막에 보여드리기로 한다. 사실상 이 마을 전체를 소유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의 집인 Ironmaster's Mansion으로 그냥 '빅하우스(Big House)'로 불렸단다. 당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장식이 걸려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서 내부도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벽난로 위의 초상화는 이 마을의 전성기였던 1830년대 소유주인 Clement Brooke로 그의 집안이 1800년에 이 곳을 인수해서 문을 닫을 때까지 계속 운영했고, 후손이 땅을 연방정부에 팔았던 것이다. 겨울이라 방문객도 별로 없는데, 신선한 야채가 올라간 식사 테이블까지 참 잘 꾸며놓았다는 생각을 하며 비지터센터로 돌아가서 전시관을 후다닥 둘러보는 것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여기와 같은 소규모 제철소들이 많았던 펜실베니아와 그 주변 미동부 식민지들이 대영제국 철 생산량의 15%를 담당하다가, 미국독립 전쟁에서는 대륙군에 대포와 포탄 등을 만들어 공급했다는 설명판이다. 19세기말에 숯 대신에 석탄을 이용하는 대규모의 현대식 제철소들이 우리가 다 아는 '철강도시' 피츠버그 등에 들어서며 이러한 작은 곳들은 모두 문을 닫았지만, 미국의 초기 산업화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기에 일찌감치 국립사적지로 지정되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HOPEWELL FURNACE 글자가 선명만 이 무쇠 스토브(stove)가 이 곳의 최고 히트 상품으로, 주물판 10개와 다른 작은 부품들로 스토브 하나를 조립했는데, 기록에 따르면 1839년에만 5,152개나 생산이 되었단다! 아랫칸에 불을 피우고 윗칸에 무쇠 그릇에 담긴 재료를 넣어두면 조리되는 방식은 여성이 주방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시간을 줄여줘서, 주부들이 사회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늘렸고 여성참정권 운동으로도 이어졌다는 약간은 비약적인 설명판도 있었다.^^ 이제 다음은 필라델피아 시내로 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웹툰단행본] 『통제구역관리부』 1권 후기 : 이상한 변칙과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는 공간에 대하여](https://img.zoomtrend.com/2026/06/09/1780996474-SE-5eda86fa-0d63-4afd-b8dd-b801879fed5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