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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레스 국제공항 남동쪽에 있는 페어팩스(Fairfax) 카운티에서 관리하는 설리 사적지(Sully Historic Site)

덜레스 국제공항 남동쪽에 있는 페어팩스(Fairfax) 카운티에서 관리하는 설리 사적지(Sully Historic Site)

한인타운 센터빌(Centreville)부터 덜레스 국제공항 인터체인지를 지나 우리 동네 스털링(Sterling)까지를 남북으로 잇는 버지니아 28번 구간은 신호가 없는 넓은 고속도로이며 이 구간을 따로 '설리 로드(Sully Road)'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 이유는 남쪽에서 올라오다 보면 공항 못 미쳐서 오른편 바로 옆으로 해당 이름의 사적지가 나오기 때문인데, 3년 동안 표지판만 보고 지나가며 궁금해 하다가 마침내 지난 토요일 오후에 센터빌을 다녀오는 길에 잠깐 들러서 어떤 곳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한겨울의 짧은 해가 낮게 떠서 정통으로 역광인 정문 사진을 보여드리면 설리 히스토릭 사이트(Sully Historic Site)라는 이름 밑에 1794년에 만들어졌고, 국가등록사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도 지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지터센터는 주말에만 문을 열기 때문인지, 프랑스 국기를 90도 회전시킨 듯한 촌스런 '오픈 깃발'까지 일부러 걸어 놓았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보수중인지 어수선한 내부에는 다른 전시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임시로 가져다 놓은 듯한 테이블 위로 노예해방(Emancipation) 전후로 여기 농장에서 일했던 흑인들의 삶에 대한 포스터만 세워져 있었다. 그래서 이 곳을 누가 만들었는지 등에 대한 안내판은 다시 비지터센터 밖으로 나가서 찾아야 했다. 리차드 리(Richard Bland Lee)는 유명한 로버트 리(Robert Edward Lee)의 삼촌뻘로 북버지니아를 대표하는 최초의 연방 하원의원을 역임했고 이런저런 활동을 했다는 내용이다. 그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이 영지를 프랑스의 "Chateau de Sully" 즉 쉴리쉬르루아르 성(Sully-sur-Loire Castle)에서 따와 설리(Sully)로 이름지었단다. 넓은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면 먼저 숲쪽으로 노예들이 살던 당시의 Slave Cabin이 먼저 나오는데, 2001년에 복원한 건물이다. 그리고 반대편 목책 너머로는 넓은 잔디밭과 함께 설리 플랜테이션(Sully Plantation)의 비교적 소박한 건물들이 보인다. 이 때 남쪽에서부터 큰 소리가 들려서 하늘을 올려다 보니... 덜레스 국제공항(Dulles International Airport)에 곧 착륙하는 에어차이나 여객기가 보였다. 원래 이 땅도 1958년에 공항 건설을 위해 정부가 인수를 했다가, 사적지로 지정되면서 다시 카운티로 이관된 것이라 한다. 여기서 고속도로 바로 건너편은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 별관에 해당하는 Steven F. Udvar-Hazy Center로 여기를 클릭해서 방문기를 보실 수 있다. 전체 모습에서 제일 왼쪽에 보이던 이 단칸방은 원래 여기에 있던 것은 아니고, 인근 지역에서 보존을 위해 이리로 옮겨온 약 200년 전의 학교 건물이란다~ 마당의 커다란 고목이 최근에 죽었는지 토막토막 잘라놓았는데, 통나무들을 치우지 않고 이렇게 일부러 놓아둔 것인지 궁금했다. 설리 사적지에서 가장 특이한게 이 1802년에 완공된 Stone Dairy로 돌로 두껍게 벽을 만들어 우유 등을 차갑게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당시 흔한 방법인 벽돌이 아니라 자연석을 다듬어 이렇게 쌓아서 만든 것은 굉장히 특이한 경우라 한다. 사실 이 1794년에 완공된 본채는 지금 위기주부가 사는 미동부 주택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가 않다. 특히 위아래로 여닫는 투명한 창문과 그 좌우로 달린 덧문의 디자인은 그냥 완전히 똑같다고 보면 된다.^^ 내부도 당시의 모습 그대로 꾸며져 있다고 하는데, 여름철 주말에만 진행되는 유료 가이드투어로 구경이 가능하단다. 집 뒤쪽으로는 공원 지정 후에 만들어진 기념정원이 있는데, 겨울이라서 그런지 아주 삭막한 모습이다... 여기도 처음에는 담배를 키우는 플랜테이션이었지만, 리 가족이 인수한 후에는 여러 채소와 과일 나무들을 주로 키웠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조성했다고 적혀있다. 덜레스는 뉴왁(Newark) 공항과 함께 유나이티드 항공의 미동부 허브라서, 가장 많이 볼 수 있고 또 자주 이용하게 되는 여객기이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가족 묘지는 원래 왼쪽 동판이 있는 위치에 리 부부의 일찍 죽은 아기들이 묻힌 장소만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사적지로 조성된 후에 후손들이 유해를 이장해서 새로 만든 것이라 한다. 리차드 리 부부가 원래 묻혔던 워싱턴DC의 의회 묘지의 석판들도 이렇게 그대로 옮겨왔다. 자신이 살던 집의 뒷마당으로 홈커밍을 한 것은 좋지만 잠귀가 밝다면 좀 시끄러울 수 있는게... 바로 뒤쪽에 이렇게 28번 고속도로가 넓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사진을 찍는다고 고속도로 바로 옆까지 나가서 한참을 서서 두리번 거렸기 때문에, 운전해서 지나간 사람들 중에서 쌩쌩 달리는 길 옆으로 왠 수상한 놈이 서있던 공원이 어딘지 궁금해서, 집에 가서 지도를 찾아보고 또 직접 방문하는 위기주부같은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동네 사적지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나? 없으면 말고..ㅎㅎ)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덜레스 국제공항 남동쪽에 있는 페어팩스(Fairfax) 카운티에서 관리하는 설리 사적지(Sully Historic Site)

덜레스 국제공항 남동쪽에 있는 페어팩스(Fairfax) 카운티에서 관리하는 설리 사적지(Sully Historic Site)

한인타운 센터빌(Centreville)부터 덜레스 국제공항 인터체인지를 지나 우리 동네 스털링(Sterling)까지를 남북으로 잇는 버지니아 28번 구간은 신호가 없는 넓은 고속도로이며 이 구간을 따로 '설리 로드(Sully Road)'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 이유는 남쪽에서 올라오다 보면 공항 못 미쳐서 오른편 바로 옆으로 해당 이름의 사적지가 나오기 때문인데, 3년 동안 표지판만 보고 지나가며 궁금해 하다가 마침내 지난 토요일 오후에 센터빌을 다녀오는 길에 잠깐 들러서 어떤 곳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한겨울의 짧은 해가 낮게 떠서 정통으로 역광인 정문 사진을 보여드리면 설리 히스토릭 사이트(Sully Historic Site)라는 이름 밑에 1794년에 만들어졌고, 국가등록사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도 지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지터센터는 주말에만 문을 열기 때문인지, 프랑스 국기를 90도 회전시킨 듯한 촌스런 '오픈 깃발'까지 일부러 걸어 놓았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보수중인지 어수선한 내부에는 다른 전시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임시로 가져다 놓은 듯한 테이블 위로 노예해방(Emancipation) 전후로 여기 농장에서 일했던 흑인들의 삶에 대한 포스터만 세워져 있었다. 그래서 이 곳을 누가 만들었는지 등에 대한 안내판은 다시 비지터센터 밖으로 나가서 찾아야 했다. 리차드 리(Richard Bland Lee)는 유명한 로버트 리(Robert Edward Lee)의 삼촌뻘로 북버지니아를 대표하는 최초의 연방 하원의원을 역임했고 이런저런 활동을 했다는 내용이다. 그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이 영지를 프랑스의 "Chateau de Sully" 즉 쉴리쉬르루아르 성(Sully-sur-Loire Castle)에서 따와 설리(Sully)로 이름지었단다. 넓은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면 먼저 숲쪽으로 노예들이 살던 당시의 Slave Cabin이 먼저 나오는데, 2001년에 복원한 건물이다. 그리고 반대편 목책 너머로는 넓은 잔디밭과 함께 설리 플랜테이션(Sully Plantation)의 비교적 소박한 건물들이 보인다. 이 때 남쪽에서부터 큰 소리가 들려서 하늘을 올려다 보니... 덜레스 국제공항(Dulles International Airport)에 곧 착륙하는 에어차이나 여객기가 보였다. 원래 이 땅도 1958년에 공항 건설을 위해 정부가 인수를 했다가, 사적지로 지정되면서 다시 카운티로 이관된 것이라 한다. 여기서 고속도로 바로 건너편은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 별관에 해당하는 Steven F. Udvar-Hazy Center로 여기를 클릭해서 방문기를 보실 수 있다. 전체 모습에서 제일 왼쪽에 보이던 이 단칸방은 원래 여기에 있던 것은 아니고, 인근 지역에서 보존을 위해 이리로 옮겨온 약 200년 전의 학교 건물이란다~ 마당의 커다란 고목이 최근에 죽었는지 토막토막 잘라놓았는데, 통나무들을 치우지 않고 이렇게 일부러 놓아둔 것인지 궁금했다. 설리 사적지에서 가장 특이한게 이 1802년에 완공된 Stone Dairy로 돌로 두껍게 벽을 만들어 우유 등을 차갑게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당시 흔한 방법인 벽돌이 아니라 자연석을 다듬어 이렇게 쌓아서 만든 것은 굉장히 특이한 경우라 한다. 사실 이 1794년에 완공된 본채는 지금 위기주부가 사는 미동부 주택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가 않다. 특히 위아래로 여닫는 투명한 창문과 그 좌우로 달린 덧문의 디자인은 그냥 완전히 똑같다고 보면 된다.^^ 내부도 당시의 모습 그대로 꾸며져 있다고 하는데, 여름철 주말에만 진행되는 유료 가이드투어로 구경이 가능하단다. 집 뒤쪽으로는 공원 지정 후에 만들어진 기념정원이 있는데, 겨울이라서 그런지 아주 삭막한 모습이다... 여기도 처음에는 담배를 키우는 플랜테이션이었지만, 리 가족이 인수한 후에는 여러 채소와 과일 나무들을 주로 키웠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조성했다고 적혀있다. 덜레스는 뉴왁(Newark) 공항과 함께 유나이티드 항공의 미동부 허브라서, 가장 많이 볼 수 있고 또 자주 이용하게 되는 여객기이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가족 묘지는 원래 왼쪽 동판이 있는 위치에 리 부부의 일찍 죽은 아기들이 묻힌 장소만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사적지로 조성된 후에 후손들이 유해를 이장해서 새로 만든 것이라 한다. 리차드 리 부부가 원래 묻혔던 워싱턴DC의 의회 묘지의 석판들도 이렇게 그대로 옮겨왔다. 자신이 살던 집의 뒷마당으로 홈커밍을 한 것은 좋지만 잠귀가 밝다면 좀 시끄러울 수 있는게... 바로 뒤쪽에 이렇게 28번 고속도로가 넓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사진을 찍는다고 고속도로 바로 옆까지 나가서 한참을 서서 두리번 거렸기 때문에, 운전해서 지나간 사람들 중에서 쌩쌩 달리는 길 옆으로 왠 수상한 놈이 서있던 공원이 어딘지 궁금해서, 집에 가서 지도를 찾아보고 또 직접 방문하는 위기주부같은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동네 사적지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나? 없으면 말고..ㅎㅎ)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리질리(Ridgely) 가문이 200년 동안 살았던 메릴랜드 햄튼 국립사적지(Hampton National Historic Site)

리질리(Ridgely) 가문이 200년 동안 살았던 메릴랜드 햄튼 국립사적지(Hampton National Historic Site)

지금 살고있는 워싱턴DC 지역에서 뉴욕(New York) 시까지 가는 중간에는 볼티모어(Baltimore)와 필라델피아(Philadelphia)의 두 대도시가 있지만, 이사 온지 3년이 다 되어가도록 아직 두 도시를 방문한 적이 없다. 딸이 사는 뉴욕을 자주 왕래하니까, 중간에 들릴 기회가 앞으로 많이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자꾸 미루게 된다. 지난 5월 중순에 모처럼 뉴욕을 1박2일로 방문했던 둘쨋날 오후에, 볼티모어 시는 아니고 그 북쪽에 붙어있는 국립 공원 한 곳을 잠깐 구경했는데, 아래 어떤 여성의 전신 초상화를 하나 보여드리면서 그 곳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기 DC의 국립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라는 그림으로, 영국 태생의 미국 화가 토머스 설리(Thomas Sully)의 1818년 작품이다. 현대식 하프가 등장하는 그림들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다는데, 모델의 이름이 Eliza Eichelberger Ridgely로 이제 소개하는 저택의 제3대 안주인(mistress)이다. 또 이 그림 덕택에 그 곳이 국립의 공원으로 보존될 수 있었기에 브로셔 표지에도 등장을 한다. 오전에 펜실베니아 주의 롱우드가든(Longwood Gardens)을 구경하고, 일부러 드라이브 삼아 1번 국도를 따라 천천히 달려서, 볼티모어 바로 북쪽에 있는 햄튼 국립사적지(Hampton National Historic Site)를 찾아왔다. 미동부 여기저기 '햄튼(Hampton, 햄프턴)'이 들어간 지명들은 대부분 식민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여기도 그렇다. 참고로 모텔 체인 '햄튼인(Hampton Inn)'의 역사와 관련된 곳은 아니다~^^ 그런데 오후 4시가 넘어서 비지터센터가 문을 닫았다... 저택 내부의 투어는 포기하고 왔지만, 관련 전시도 전혀 못 본 상태로, 다행히 밖에 비치해 둔 브로셔 하나만 챙겨서 일방통행 도로를 조금 더 달려서 위쪽 저택 옆에 만들어진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약간 바래지기는 했지만, 공원의 지도와 대략적인 소개를 함께 볼 수 있는 안내판 사진을 올린다. 영국군의 찰스 리질리 대령(Col. Charles Ridgley)이 1745년에 처음 여기 1,500에이커의 땅을 사서 담배농장을 시작했다가, 후에 아들과 함께 고향의 이름을 딴 노스햄턴 제철소(Northampton Ironworks)를 만들어 번창하는데, 독립전쟁 중에는 대륙군에 무기를 만들어 공급하기도 했단다. 그의 아들이 7년간의 공사를 거쳐 1790년에 완성한 저택이 바로 앞에 보이는 Hampton Mansion인데, 완공 당시로는 신생 독립국 미국에서 가장 큰 개인주택이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개인 소유로 남아서 만약 비싼 입장료를 받는 곳이 되었다면, 훨씬 더 깔끔한 모습이었을 듯한 느낌이 좀 들기도 했다. 이 저택의 다음 주인이었던 Charles Carnan Ridgley는 메릴랜드 주지사를 역임하기도 했는데, 그가 11명의 자녀에게 땅과 노예를 나눠서 물려주기 직전인 1829년 전성기에 햄튼 플랜테이션(Hampton Plantation)의 면적은 25,000에이커에 노예는 350명에 달했다고 한다. 저택 남쪽으로는 정사각형의 기하학적인 정원들이 여러 개 만들어져 있는데, 앞쪽 두 개만 그 모양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직전에 롱우드가든을 보고 와서 좀 시시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저택을 지을 당시부터 넓은 앞마당을 평평한 정원으로 만드는데 큰 공을 들였고, 현재의 모습으로 가꾼 것이 첫번째 그림의 주인공인 Eliza Ridgely라는 설명 등이 적혀있다.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을 거치면서 대농장의 수익성은 점차 나빠져서 낙농업 중심으로 변화한 후에, 20세기 초부터 리질리 가문 소유의 땅들은 교외의 주택단지로 개발이 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1944년에 국립미술관 디렉터가 이 집에 걸려있던 맨 위의 그림을 직접 보기위해 방문했다가, 제6대 집주인 John Ridgely, Jr.로 부터 오래된 저택을 옛모습 그대로 관리하는 고충 등을 듣고는, 국립공원청과 여러 재단 등에 연락을 해서 보존 노력을 주도하게 된다. 참, 롱우드가든 포스팅에서 'Orangery'라는 단어를 다음에 설명하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안내판의 그림과 같이 바닥에 온돌(hypocaust)을 설치한 유리 온실을 그렇게 부른다. (뒤로 보이는 건물은 1976년에 복원한 것으로 뒤쪽은 화장실로 사용) 한겨울에도 오렌지 나무를 키워서 따먹기  위한 당시 부의 상징과 같은 건물로, 프랑스 파리의 유명한 오랑주리 미술관(Musee de l'Orangerie)도 루브르 궁전의 이런 온실이었다. 저택 옆으로도 다른 건물이 있고 길 건너편에 다른 집들도 있지만, 모두 둘러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맨션의 출입구에 해당하는 북쪽 면만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1948년에 저택과 주변 땅을 90,000달러에 팔고 마지막으로 북문을 나서는 John Ridgely, Jr. 부부의 모습으로, 사들인 재단이 정부에 바로 기증을 해서 현재의 국립사적지가 되었고, 2년의 수리를 거친 후에 일반 관람객에게 집 내부가 공개되게 된다. 무엇보다 이 곳의 가치는 200년 이상 한 집안의 소유였던 땅에, 6대에 걸쳐서 그대로 보존이 된 대저택이라는데 있단다. 햄튼 저택(Hampton Mansion) 내부의 중앙홀에 걸려있는 는 비록 모사품이지만, 음악실에 전시되어 있는 하프는 실제 위 그림에 등장했던 진품이라고 한다. 국립 공원이 된 덕택에 무료인 내부 투어를 꼭 해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방문을 해야할 듯 한데... 현재 목~일요일에 오전 10시, 오후 1시와 3시의 하루 3번만 진행되는 것을 기억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집에서 뉴욕을 왔다갔다하는 일정에 맞출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리질리(Ridgely) 가문이 200년 동안 살았던 메릴랜드 햄튼 국립사적지(Hampton National Historic Site)

리질리(Ridgely) 가문이 200년 동안 살았던 메릴랜드 햄튼 국립사적지(Hampton National Historic Site)

지금 살고있는 워싱턴DC 지역에서 뉴욕(New York) 시까지 가는 중간에는 볼티모어(Baltimore)와 필라델피아(Philadelphia)의 두 대도시가 있지만, 이사 온지 3년이 다 되어가도록 아직 두 도시를 방문한 적이 없다. 딸이 사는 뉴욕을 자주 왕래하니까, 중간에 들릴 기회가 앞으로 많이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자꾸 미루게 된다. 지난 5월 중순에 모처럼 뉴욕을 1박2일로 방문했던 둘쨋날 오후에, 볼티모어 시는 아니고 그 북쪽에 붙어있는 국립 공원 한 곳을 잠깐 구경했는데, 아래 어떤 여성의 전신 초상화를 하나 보여드리면서 그 곳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기 DC의 국립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라는 그림으로, 영국 태생의 미국 화가 토머스 설리(Thomas Sully)의 1818년 작품이다. 현대식 하프가 등장하는 그림들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다는데, 모델의 이름이 Eliza Eichelberger Ridgely로 이제 소개하는 저택의 제3대 안주인(mistress)이다. 또 이 그림 덕택에 그 곳이 국립의 공원으로 보존될 수 있었기에 브로셔 표지에도 등장을 한다. 오전에 펜실베니아 주의 롱우드가든(Longwood Gardens)을 구경하고, 일부러 드라이브 삼아 1번 국도를 따라 천천히 달려서, 볼티모어 바로 북쪽에 있는 햄튼 국립사적지(Hampton National Historic Site)를 찾아왔다. 미동부 여기저기 '햄튼(Hampton, 햄프턴)'이 들어간 지명들은 대부분 식민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여기도 그렇다. 참고로 모텔 체인 '햄튼인(Hampton Inn)'의 역사와 관련된 곳은 아니다~^^ 그런데 오후 4시가 넘어서 비지터센터가 문을 닫았다... 저택 내부의 투어는 포기하고 왔지만, 관련 전시도 전혀 못 본 상태로, 다행히 밖에 비치해 둔 브로셔 하나만 챙겨서 일방통행 도로를 조금 더 달려서 위쪽 저택 옆에 만들어진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약간 바래지기는 했지만, 공원의 지도와 대략적인 소개를 함께 볼 수 있는 안내판 사진을 올린다. 영국군의 찰스 리질리 대령(Col. Charles Ridgley)이 1745년에 처음 여기 1,500에이커의 땅을 사서 담배농장을 시작했다가, 후에 아들과 함께 고향의 이름을 딴 노스햄턴 제철소(Northampton Ironworks)를 만들어 번창하는데, 독립전쟁 중에는 대륙군에 무기를 만들어 공급하기도 했단다. 그의 아들이 7년간의 공사를 거쳐 1790년에 완성한 저택이 바로 앞에 보이는 Hampton Mansion인데, 완공 당시로는 신생 독립국 미국에서 가장 큰 개인주택이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개인 소유로 남아서 만약 비싼 입장료를 받는 곳이 되었다면, 훨씬 더 깔끔한 모습이었을 듯한 느낌이 좀 들기도 했다. 이 저택의 다음 주인이었던 Charles Carnan Ridgley는 메릴랜드 주지사를 역임하기도 했는데, 그가 11명의 자녀에게 땅과 노예를 나눠서 물려주기 직전인 1829년 전성기에 햄튼 플랜테이션(Hampton Plantation)의 면적은 25,000에이커에 노예는 350명에 달했다고 한다. 저택 남쪽으로는 정사각형의 기하학적인 정원들이 여러 개 만들어져 있는데, 앞쪽 두 개만 그 모양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직전에 롱우드가든을 보고 와서 좀 시시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저택을 지을 당시부터 넓은 앞마당을 평평한 정원으로 만드는데 큰 공을 들였고, 현재의 모습으로 가꾼 것이 첫번째 그림의 주인공인 Eliza Ridgely라는 설명 등이 적혀있다.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을 거치면서 대농장의 수익성은 점차 나빠져서 낙농업 중심으로 변화한 후에, 20세기 초부터 리질리 가문 소유의 땅들은 교외의 주택단지로 개발이 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1944년에 국립미술관 디렉터가 이 집에 걸려있던 맨 위의 그림을 직접 보기위해 방문했다가, 제6대 집주인 John Ridgely, Jr.로 부터 오래된 저택을 옛모습 그대로 관리하는 고충 등을 듣고는, 국립공원청과 여러 재단 등에 연락을 해서 보존 노력을 주도하게 된다. 참, 롱우드가든 포스팅에서 'Orangery'라는 단어를 다음에 설명하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안내판의 그림과 같이 바닥에 온돌(hypocaust)을 설치한 유리 온실을 그렇게 부른다. (뒤로 보이는 건물은 1976년에 복원한 것으로 뒤쪽은 화장실로 사용) 한겨울에도 오렌지 나무를 키워서 따먹기  위한 당시 부의 상징과 같은 건물로, 프랑스 파리의 유명한 오랑주리 미술관(Musee de l'Orangerie)도 루브르 궁전의 이런 온실이었다. 저택 옆으로도 다른 건물이 있고 길 건너편에 다른 집들도 있지만, 모두 둘러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맨션의 출입구에 해당하는 북쪽 면만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1948년에 저택과 주변 땅을 90,000달러에 팔고 마지막으로 북문을 나서는 John Ridgely, Jr. 부부의 모습으로, 사들인 재단이 정부에 바로 기증을 해서 현재의 국립사적지가 되었고, 2년의 수리를 거친 후에 일반 관람객에게 집 내부가 공개되게 된다. 무엇보다 이 곳의 가치는 200년 이상 한 집안의 소유였던 땅에, 6대에 걸쳐서 그대로 보존이 된 대저택이라는데 있단다. 햄튼 저택(Hampton Mansion) 내부의 중앙홀에 걸려있는 는 비록 모사품이지만, 음악실에 전시되어 있는 하프는 실제 위 그림에 등장했던 진품이라고 한다. 국립 공원이 된 덕택에 무료인 내부 투어를 꼭 해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방문을 해야할 듯 한데... 현재 목~일요일에 오전 10시, 오후 1시와 3시의 하루 3번만 진행되는 것을 기억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집에서 뉴욕을 왔다갔다하는 일정에 맞출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