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먼드(Richmond)의 침보라소(Chimborazo) 의료박물관과 매기 워커(Maggie Walker) 국립사적지
미국 남북전쟁 1861~65년 기간에 남부연합의 수도였던 리치먼드(Richmond)는 워싱턴 남쪽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해서, 우리에게는 마치 '서울-평양'과 같은 느낌을 준다. 재작년에 그 도시에 있는 버지니아 주청사만 잠깐 방문해서 소개를 한 적이 있는데, 거기와 다른 남부 버지니아 지역의 국립 공원들 총 5곳을 묶어서 '1탄 펜실베니아'에 이은 3~4시간 거리의 별볼일 없는 곳들 찾아다니기 시리즈 2탄으로 또 다녀왔다.
지도에 표시된 5곳을 북쪽 집에서 출발해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서, 리치먼드 시내의 2곳은 마지막에 잠깐씩만 들렀기에 묶어서 제일 먼저 소개한다. 이 여행은 블로그 역사상 처음으로 경로의 역순(逆順)으로 글을 쓰는데, 그 이유는 이어질 시리즈 내용을 차례로 잘 읽어보시면 알게 된다.
리치먼드와 그 외곽의 남북전쟁 관련 장소들이 리치먼드 국립전장공원(Richmond National Battlefield Park)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여기는 시내 공원에 위치한 비지터센터로 간판 아래쪽에 의료박물관(Medical Museum)이라 씌여있다. 일단 '침보라소(Chimborazo)'는 여기 야트막한 언덕과 공원의 이름이기도 한데, 생뚱맞게도 중미 에콰도르(Ecuador)의 가장 높은 해발 6,310 m 성층화산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전체 공원 지도를 예의상 올려보는데, 도시 외곽에 1862년의 7일 전투(Seven Days' Battle)와 1864년 콜드하버 전투(Battle of Cold Harbor) 유적지들이 메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관계상 4곳의 비지터센터들 중에서 시내에 있는 여기 하나만 잠깐 들리는 것으로 위기주부의 국립 공원들 방문 리스트에 추가하기로...^^
남북전쟁 기간 동안에 부상당한 남군 병사들의 치료를 위한 군사병원(military hospital)이 이 언덕에 만들어졌었는데, 목재로 만들었던 150동의 건물은 현재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비지터센터로 사용되는 이 건물은 1900년대 초에 연방정부가 기상관측용으로 지은 것이라 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여기에 있던 병원에서 전쟁기간 동안에 76,000명 이상의 부상병을 치료하며 사망률은 10% 미만이라서, 당시로는 전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면서 치료수준도 높았던 병원이라 할 수 있단다.
목수(carpenter)의 연장 가방이 아니라, 19세기 중반 외과의사(surgeon)의 치료 가방이란다.
남군 군의관의 복장과 무기를 비롯해 그들의 활약상에 대한 소개 등도 전시되어 있었다.
위기주부는 의대 진학은 꿈도 꿔본 적이 없고, 피를 보면 약간의 경기도 일으키는 체질이라서, 당시의 의료상황 등을 소개하는 전시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가 않았다.^^ 여기에는 또 활톱(hacksaw)이 전시된 것이 보이는데, 이런 도구들로...
당시 어떻게 부상당한 다리를 절단했는지 친절하게 그림으로 설명을 해놓았다. 이 정도로 리치먼드 국립전장공원에 속하는 침보라소 의료박물관(Chimborazo Medical Museum) 구경은 마치고, 밖으로 나가서 공원을 잠깐 둘러보았다.
사진 가운데 실루엣으로 보이는 동상이 여기서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가는 길인데, 그 동상은 바로 무엇인고 하니...
자유의 여신상이다~ㅎㅎ 1950년에 시작된 미국 보이스카웃 연맹의 'Strengthen the Arm of Liberty'라는 캠페인으로 미국 전역에 높이 2.5 m의 이런 동상이 약 200개나 세워졌는데, 현재 약 100개 정도가 남았다고 한다.
캠페인 제목에 따라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횃불을 들고 있는 팔이 약간 비정상적으로 길어 보였다. 전체적으로 심하게 때가 탄 것은 물론이고 왕관도 일부 부러져 있어서, 청소와 보수가 좀 필요해 보였다.
나무들 너머로 제임스 강(James River)이 살짝 내려다 보이는 언덕의 끝쪽으로 걸어가면, 여기에 앞서 설명한 침보라소 병원(Chimborazo Hospital)이 있었다는 동판을 볼 수 있다. 이제 북부 버지니아와는 뭔가 살짝 분위기가 다른 남부 리치먼드 시내를 운전해서 마지막 목적지를 급하게 찾아갔다.
구글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데로 찾아왔는데, 공원 홈페이지에 나온 건물 모습과는 살짝 다른 여기는 매기워커 국립사적지(Maggie L Walker National Historic Site)이다.
입구가 어딘지 두리번거리다가 비지터센터는 건물 사이 통로를 이용해 안뜰로 들어가라는 표지판을 겨우 찾았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비지터센터가 5시가 아니라 4시반까지만 운영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 때는 이미 그 시간을 살짝 넘기고 있었지만 문이 잠기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열고 들어갔더니, 국립공원청 파크레인저 예닐곱명이 모여서 퇴근 준비를 하면서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다가, 갑자기 들어오는 동양남자 한 명을 보고는 상당히 놀라더라는...ㅎㅎ
매기 워커(Maggie Lena Walker)는 흑인 노예의 딸로 태어난 교육자 겸 사업가로, 1903년에 미국 최초의 여성 은행장이 되어서 흑인들의 자립을 도운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모든 여성과 장애인들의 인권신장에도 기여해서 그녀가 살았던 집이 1975년에 국립사적지로 지정되었는데, 여기는 옆건물에 만들어진 비지터센터고 다른 외관의 보존된 집은 주차한 곳 반대쪽인데 늦어서 들어가볼 수는 없었다.
이 날 하루 이미 계기판에 찍힌 누적 운전시간이 9시간이었지만, 또 2시간을 더 운전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길 건너편 소방서 건물에 그려진 벽화를 감상했다. 다른 파크레인저 한 명이 또 모임에 참여하려고 비지터센터로 들어가는 모습인데, 참 팔자 좋은 연방 공무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거슬러서 이 날 이전에 방문했던 다른 국립 공원들을 소개하며 남북전쟁과 흑인 지도자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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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국립공원] 시간여행 사진관 이벤트(삼릉, 토함산탐방지원센터) 벚꽃과 함께 찰칵!
"웰컴 투 버지니아(Welcome to Virginia)" 닭살 돋는 환영간판으로 시작된 우리의 버지니아 주 이야기
작년 10월초에 이삿짐을 싣고 캘리포니아 주 LA에서 출발한지 7일만에 버지니아 주에 도착을 했었다. 물론 목적지는 워싱턴DC와 접한 버지니아의 제일 북쪽이고, 우리는 노스캐롤라이나와 접한 남서쪽 시골 산길에서의 첫만남이었지만 말이다. 원래는 대륙횡단기 전편에 아래 환영간판 이야기만 덧붙이고 7일째는 포스팅은 하나로 끝낼까 하다가... 환영간판 말고도 이제 4개월째 살고 있는 버지니아 주에 대해서 이것저것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따로 본 포스팅으로 몇가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적어본다. 그래서 이 글은 특정 장소에 대한 여행기가 아니라서, 오래간만에 '미국에 관한 도움말' 카테고리에 넣기로 한다.
그 산길로 주경계를 통과할 때 처음 보게된 "VIRGINIA IS FOR LO♥ERS"라는 정말 오글거리는 문구가 씌여진 환영간판의 사진 하나를 인터넷에서 가져왔다. 이게 어떤 느낌이었냐면 한국에서 경기도로 들어가는데, 커다한 하트와 함께 "경기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사랑꾼을 위한 경기도"라고 써놓은 것 같았다~
옛날에는 위와 같이 벚꽃(?)이 핀 나무에 주조(state bird)인 빨간 홍관조가 앉아있는 그림의 환영간판이 사용되었다는데 (파란 바탕에 글씨가 크게 씌여있고, 같은 그림은 작게 들어간 버전도 있음), 2015년 1월에 민주당 주지사였던 Terry McAuliffe가 현재의 디자인으로 변경을 했다고 한다. (슬로건 “Virginia Is for Lovers”는 버지니아 관광청이 1969년부터 사용해왔던 문구라고 함)
많은 한국분들은 비행기로 버지니아 주에 도착하니까 주경계에 있는 이 '닭살문구'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오산이다. 대한항공이 도착하는 덜레스 국제공항(Dulles International Airport)을 나가는 도로 옆에 아주 크게, 폭설이 내리던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지사가 직접 나와서 제일 먼저 세워놓았으니까...^^ 그런데 주지사(governor) 이야기가 나왔으니, 작년인 2021년 11월 2일에 치러졌던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참고로 우리 부부는 공식적으로 11월 3일부터 버지니아 주민이 되어서 투표는 할 수 없었음)
빨간색으로 표시된 공화당의 글렌 영킨(Glenn Youngkin)이 재임에 도전한 민주당 테리 매컬리프(Terry McAuliffe)를 2% 차이로 이겼고, 같이 치러진 검찰총장과 주 하원의원 선거에서도 모조리 승리하면서 12년만에 공화당이 주정부를 탈환했다. 특이한 것은 버지니아 주 헌법은 주지사가 재임(再任)은 할 수 있어도 연임(連任)은 안 되기 때문에, 이미 2014~2018년에 주지사를 하면서 위의 환영간판을 바꿨던 Terry McAuliffe가 민주당 후보로 다시 나왔지만 공화당 정치신인에게 패했던 것이다.
선거결과 그림의 제일 위에 작게 보이던 버지니아 주기(state flag)를 크게 보여드리면, 파란 바탕에 주를 상징하는 동그란 문양(seal)이 들어있는 단순한 모습이지만 그림이 재미있다. 창을 든 '덕(Virtue)의 여신'이 폭군을 발로 밟고 서있고, 그 아래에 라틴어 "Sic semper tyrannis"라고 씌여있는데, 직역하면 "thus always to tyrants(그러므로 언제나 폭군에게는)"으로 그 뒤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생략된 셈이다. 특이한 사실은 여전사 아마조네스처럼 그려진 여신의 한 쪽 가슴이 노출되어 있어서, 미국 50개의 주깃발들 중에서 유일하게 누드화가 들어있는 깃발이라고...^^
"Sic semper tyrannis!"는 한글로 간단히 "독재자에게 죽음을!"로 많이 번역되는데, 기원전 로마에서 브루투스(Marcus Brutus)가 시저(Julius Caesar)를 암살하고 처음으로 그렇게 말했다는 전설이 있다. 위의 1864년 셰익스피어의 역사극 흑백사진에서 이 말을 들으며 칼에 찔려 죽는 시저 역할을 연기했던 제일 왼쪽에 존 부스(John Booth)가...
다음해인 1865년에 워싱턴DC의 포드 극장에서 링컨 대통령에게 총을 쏘면서 라틴어로 "Sic semper tyrannis!"라고 외쳤다는 기록이 있다. 또 대륙횡단 여행기에서 소개해드렸던 1995년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탄테러의 범인인 티모시 맥베이(Timothy McVeigh)가 체포될 때 이 문구가 씌여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식민지배를 하는 영국의 폭압에 반대한다는 좋은 의도로 버지니아 주의 문양에 사용된 글이 후대에는 급진주의자들에 의해서 악용되는 이러한 일은, 아래에 또 소개할 다른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산길을 벗어나 버지니아 주의 서쪽 경계를 따라 북동쪽으로 올라가는 81번 고속도로를 탔는데, 퇴근길 정체를 만난건지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결국 5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운전만 해서 겨우 스톤튼(Staunton)에 도착해 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숙박했었다. (중간에 하나 더 구경하려다 못한 곳은 2차 대륙횡단에서 결국 방문하게 됨)
버지니아 주깃발에 이어서, 당시 꽉 막힌 고속도로 앞에 있던 자동차의 버지니아 번호판 이야기를 또 해보자~ 노란 바탕에 똬리를 틀고있는 방울뱀 아래에 "나를 밟지마라(DONT TREAD ON ME)"라고 씌여있는 특별 번호판은, 같은 그림의 개즈던 플래그(Gadsden flag)를 상징하는 것으로 미국내 11개 주가 유사한 디자인의 공식 번호판을 제공한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의 독립전쟁 지도자인 Christopher Gadsden이 1775년에 만든 이 깃발은, 역시 영국에 저항하는 의미로 만들어져 초기에는 거의 미국의 국기처럼 대우를 받았고, 초창기 해병대와 해군이 유사한 깃발을 공식적으로 사용을 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들이 개즈던 깃발을 정부에 반대하는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하고, 2009년부터 극우 티파티(Tea Party) 세력도 그들의 상징으로 사용한다. 그러다가 위와 같이 2017년 버지니아 샬롯츠빌 차량돌진 사건의 원인이 된 백인우월주의자 집회에 남부연합기 및 나치깃발과 함께 뉴스에 나오면서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참고로 샬롯츠빌(Charlottesville)은 앞서 보여드린 주지사 선거결과의 카운티별 득표현황 지도의 한가운데 혼자 파랗게 표시된 곳으로, 제퍼슨이 만든 버지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Virginia)가 위치해 민주당 지지율이 80%가 넘는 진보적인 교육도시이다.
급기야 작년 1월 6일의 국회의사당 습격에 트럼프 지지자들이 대거 들고 나오면서, 지금은 완전히 '극우 또라이들'의 상징으로 변절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개즈던 번호판을 단 오래된 짚(Jeep)의 주인이 100% 극우파나 '트럼피'라는 것은 아니고, 남부 버지니아에서는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번호판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버지니아의 주도인 리치먼드(Richmond)가 남북전쟁 당시에 남부연합의 수도였던 만큼, 지금 위기주부가 살고있는 북부 버지니아(Northern Virginia, NOVA)의 워싱턴 메트로폴리탄 지역과는 정치문화적으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인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북전쟁 역사공부가 필요하다.
미국 남북전쟁 말기의 전황을 보여주는 지도로 버지니아만 확대지도로 설명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만큼 치열하게 남북이 피를 흘리며 싸운 전쟁터들이 버지니아에 많이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781년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요크타운(Yorktown)과 1607년에 건설된 최초의 영국 식민지인 제임스타운(Jamestown)이 모두 버지니아 동남쪽 체사피크 만의 입구에 있는데, 이러한 역사와 문화, 정치에 대해서는 앞으로 그 장소들을 방문한 후에 여행기를 쓰면서 조금씩 계속 알아보기로 하고, 이 글에서는 소위 '알쓸미잡'이라 할 수 있는 버지니아가 1등인 특이한 두 가지에 대해서만 여담으로 소개하며 끝낸다.
필립모리스에서 1968년에 세계 최초로 가늘고 긴 담배를 출시하면서 그 이름을 '버지니아슬림(Virginia Slims)'이라고 붙인 이유가 다 있었다. 식민지 시절부터 담배농장이 많이 운영되어서 지금도 미국내 담배 생산량이 1등이고, 말보로(Marlboro)를 만드는 Philip Morris의 모회사로 세계 최대의 담배회사인 알트리아(Altria)의 본사가 버지니아의 주도인 리치몬드에 있단다. 그래서 버지니아 주는 미국에서 담배 가격이 가장 싼 주로 유명해서, 말보로 1갑의 가격이 뉴욕 주의 1/3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위기주부가 담배는 안 피니까 이건 생계에 별 도움은 안 된다...
또 다른 1등은 미국에서 가장 번개가 많이 치는 곳이라는데, 위 사진의 로이 설리번(Roy Sullivan, 1912~1983)은 버지니아 주의 쉐난도어 국립공원에서 근무하던 1942~1977년 사이에 무려 7번이나 번개를 맞아서 기네스북에 올랐다. (레인저 모자의 윗부분이 번개를 맞아서 까맣게 탔음) 별명이 '인간피뢰침(Human Lightning Rod)'이라서 비 오는 날에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피했다고 하는데, 번개를 7번이나 맞고도 살아남은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71세의 나이에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번 1등은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관련이 있는데, LA에서 DC까지 1차 대륙횡단의 마지막 8일째인 다음 날에 우리가 그 쉐난도어 국립공원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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