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

포스트: 1001|아이템:일본(6751)
Tags

Posts

1001 posts
란 乱 (1985)

란 乱 (1985)

멧가비|2016년 9월 17일

제목이 뜻하는 바 처럼, 어지러운 것은 열도의 정세도 가족의 질서도 아닌 다이묘의 통찰력이다. 난세를 헤쳐 온 늙은 권력자의 눈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 종자로 붙어있는 익살꾼조차 정확히 보고있는 것들을 마치 하늘에 구름 끼듯 흐려진 통찰력으로 인해 모두 놓치고 만다. 큰 아들 타로는 우유부단했으며 둘째 지로는 피를 보는 성정이었다. 각각 노란색, 빨간색의 기치(旗幟)는 그들의 그러한 성품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하늘색 기치를 내세우는 셋째 사부로는 세 아들 중 유일하게 정직한 대장부였으나, 새파란 하늘에 적란운이 뭉글거리는 도입부 장면은 사부로의 앞날에 대한 복선이기도 하다. 모르긴 몰라도 며칠을 꼬박 기다리며 영화 스탭들을 고생시키며 찍었을 게 뻔한 그 (고요하면서도 아찔한) 장면이야말로

라쇼몽 羅生門 (1950)

라쇼몽 羅生門 (1950)

멧가비|2016년 9월 8일

등장 인물들이 하나의 사건을 두고 각기 다른 진술을 하는 식의 연출 기법을 상징하는 말이 된 그 유명한 제목 라쇼몽, 나생문. 요즘 애들은 롤로노아 조로 필살기 이름인줄만 알겠지. 늙은 나는 기스 하워드를 먼저 떠올린다. 무사와 아내는 산 길을 지나는 중에 산적의 눈에 띄여 봉변을 당한다. 무사는 죽고 아내는 범해진다. '사실'은 여기까지. 거기에 각기 달리 주장하는 '각자의 진실'이 살 붙는다. 산적은 비겁하고, 무사는 비열하고, 아내는 비참하며, 나무꾼은 비굴하다. 그들은 각기 자신의 비겁함, 비열함, 비참함, 비굴함이 들킬까 자신을 보호할 살을 보태어 진술한다. 영화는 '사실'과 '인지'의 다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이 말하는 사실과 인지의 갭에 숨은 것이 의도적인 거짓말일지, 본능적인

태풍클럽 台風クラブ (1985)

태풍클럽 台風クラブ (1985)

멧가비|2016년 9월 7일

작은 마을에 불어온 태풍, 중학생 소년 소녀들은 태풍의 전조와 함께 조금씩 일탈을 시작하며 태풍의 눈이 머리 위에 온 순간 비바람에 취해 교복을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춤을 춘다. 여기서의 태풍은 그저 단순한 기상 현상도 아니고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 광기를 끌어내는 매개체도 아니다. 질풍노도(疾風怒濤)의 풍(風)을 마치 그 자체로 시각화 하듯, 영화 속 4일간의 태풍은 그 시절 아이들의 일탈, 비행, 휩쓸림, 고민, 광기 등을 은유하는 상징적인 장치일 것이다. '중2병'이라는 말이 있다. 유행 타는 비속어이나 그 만큼 그 시절 아이들의 기행과 돌연변이적 사고를 잘 함축하는 단어도 찾기 힘들다. 중2병은 다분히 전시(展示)적인 증상이다. 세대와 위치에 따라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이 다르듯, 미드

 세일러복과 기관총 セーラー服と機関銃 (1981)

세일러복과 기관총 セーラー服と機関銃 (1981)

멧가비|2016년 9월 6일

4인으로 구성된 작은 규모라고는 하나 어엿한 야쿠자 조직의 조장이 된 여고생. 별안간 놓인 낯설고 위험한 환경에서도 여고생 이즈미는 씩씩하다. 여고생이 야쿠자가 되는 영화라고 해서 특별히 판타지적인 이야기는 아니고, 여고생이라는 외부인의 시각에서 본 야쿠자 세계의 어리숙하면서도 교활하고 비정한 모습들을 관조한 영화 쯤 된다. 이즈미는 야쿠자들과 마음을 나누고 관계를 형성하지만 그 유명한 "쾌감" 장면을 제외하면 절대로 야쿠자 세계에 동화되지 않는다. 야쿠자의 조장이 됐다고 해서 여고생이 갑자기 문신을 새기거나 시라사야(白鞘)를 바지 춤에 꽂고 다니게 되진 않는다. 쇠락해 와해되기 직전인 야쿠자 잔당들이 마치 몰락한 막부의 사무라이들처럼, 죽을 자리를 찾기 위해 마지막 주군을 모시는 것 같은 형국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