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지의 중국여행기

Sources

Posts

885 posts
 추사 김정희와 청조 문인의 대화(전시회)   3~2

추사 김정희와 청조 문인의 대화(전시회) 3~2

콩지의 중국여행기|2020년 2월 3일

힌삭봉의 글씨 입니다"鳶飛魚躍"(연비어약)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띄어 오른다 壽本乎人(수본호인) 김충현 선생의 글씨 입니다청담(靑潭) 스님의 글씨 "心是佛") 심시불 입니다 해공(海公) 신익희 선생의 글씨 입니다 tag : 한석봉, 이완용, 박영효, 해공 신익희, 청맘

 추사 김정희와 청조 문인의 대화(전시회)  3~1

추사 김정희와 청조 문인의 대화(전시회) 3~1

콩지의 중국여행기|2020년 2월 3일

"추사 김정희와 청조 문인의 대화" 전시가 얘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2층과 3층에서 개최되고 있습니다. 2020.1.18일부터 3월15알까지 열립니다.추사의 고향인 예산에 추사기념관이 있고, 과천에 추사박물관이 있습니다. 추사가 유배시절을 보낸 제주에도 추사관이 있습니다추사의 작품을 접하고 감상할 기회는 많으나 심오한 경지의 추사 글씨체는 제가 볼 때 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느끼게 됩니다제가 전시회에서 담아 온 추사의 글씨와 근대 사람들의 서예 작품을 함께 올려 드리니 천천히 차 한 잔 마시면서 감상하기 바랍니다. 전시회에는 매국노로 손가락질 받는 이완용, 개혁을 주장했던 박영효, 신익희 선생 등 쉽게 접할 수 없는 작품들도 있으니 한 번 가서 직접 진품을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공맹심학 기자주수(孔孟心學 箕子疇數) 이황(李滉, 1501~ 570))의 글씨 입니다 tag : 예산, 과천, 서예박물관, 추사 김정희 서예전, 제주 기념관

 대만 금문도(金門島)  특산물 부엌 칼과 우육면 3~3

대만 금문도(金門島) 특산물 부엌 칼과 우육면 3~3

콩지의 중국여행기|2020년 2월 2일

대만 부엌 식칼의 달인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 입니다한국 TV에서는 여러 번 이 달인 사장의 일하는 모습을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열심히 작업 중인 공방 안은 포탄의 잔해들로 가득합니다부엌식칼 만들기에 달인의 경지에 오른 우썽동 사장 입니다포탄이 터지지 않은 불발탄도 꽤나 많습니다이 포탄 한 개로 60개의 식칼을 만들 수 있다고 하니, 대륙에서 쏜 이 포탄의 잔해로 사장님은 평생 식칼을 만들어도 다 소진시키지 못 할 것 같습니다담금질을 하는 작업도 대먼의 더운 기후에 뜨거운 불 옆에서 해야 하는 만큼 고됩니다. 대만의 젊은이들 역시 이런 육체적 노동의 고된 일은 잘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포탄의 잔해는 한 개가 15kg ~ 20 kg으로 꽤 무겁습니다이 공장에서 만드는 식칼이 일반 것과 다른 점은 칼의 손잡이와 몸체가 하나라는 점 입니다손잡이를 따로 만들어 끼우지 않는 것이 다른 식칼들과 다릅니다이런 일체형의 식칼은 사용시 더 편리하다는 중국 요리 셰프들도 있습니다마무리 작업으로 날을 세우고, 연마하여 광택을 냅니다칼 만드는 공장이나 가게에서는 칼 날이 얼마나 날카롭게 서 있는자룰 신문지를 직접 잘라서 보여 줍니다중국의 신강위그르 자치구에서 천산남로로 호탄(화전)을 가는 도중에 영길사(英吉社)라는 중구 명품으로 여기는 칼 공장이 있습니다이 집 칼은 우고 접이식 과도를 많이 만듭니다. 단단한 무쇠로 만들었는데 칼 날이 매우 예리하여 신문지로 자르는 시연 대신에 이 칼로 자기 얼굴의 수염을 깎는 시연을 보여줍니다 ~저도 휴대용 접이식 칼 한 자루를 사서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마치 녹이 슬듯이 색갈이 변하는데, 이것은 녹이 쓴 것이 아니며, 한 번 이렇게 색이 변하면 보기는 좀 안 좋아도 더 이상 칼 날의 변화는 없습니다팁열길사 브랜드의 칼 날은 무척 예리하므로 사용시 다치지 않도록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이 칼이 중국 전국적으로 유명하니까 가짜 영길사의 칼도 특히 상해 시중에서 많이 나돌고 있습니다날이 선 금문도의 주방 식칼 모습은 칼을 잘 못 다루면 크게 다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금문도에선 수수를 많이 재배 합니다. 수수가 바로 금문고량주의 주 원료이기도 합니다금문도에는 고량주를 만들고 남은 술찌거미를 소에게 먹여서 키우는 마을이 있고, 그 소의 육질이 아주 좋고 연하고 맛도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금문도의 한 牛肉麵(우육면, 니우러우미엔,쇠고기 국수)이 유명하기에 여기데 소개해 드립니다식당 안은 손님들로 꽉 차서 빈 자리가 없습니다금문도의 맞은 편에 있는 하문(하문 시아먼)에서 온 젋은이들이 맛 있게 먹은 금문도의 쇠고기 국수 입니다국수 위에 얹어 주는 금문도 쇠고기는 이 식당의 자랑거리 입니다쇠고기의 크기도 크고 색갈도 선명 합니다중국인들이라면 누구나 다 좋아하는 牛筋(우근 니우진) 입니다쇠고기 대신 牛筋이 고명으로 올려지면 값이 조금 더 비쌉니다금문 고량주의 주 원표인 수수 입니다술지게미를 먹인 소를 高粱牛(고량우)라고 하네요 ~수숙로 고량주를 만들고 난 후의 술지게미 입니다이 수수 술 지게미를 사료로 먹인 소는 육질도 좋고 색갈도 좋고,육즙도 많고 맛도 부드럽다는 등등 시에(謝 사람의 성) 라는 소 주인이 자랑을 많이 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소가 고량 술지게미를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술지게미엔 술의 향도 남아 있으니 더 맛이 있는 것인지, 알콜 기운이 남아 있어서 더 맛 있게 먹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춘궁기가 있었고 그 때는 식량이 부족하여 아이들이 술 지게미로 배를 채우던 때도 있었습니다. 스업시간에 술지게미에 취하여 졸던 학생들이 생각 납니다 사람도 술 지게미를 많이 먹으면 취하거든요 ㅋㅋㅋ중국에는 가난해서 굷어 죽는 사람이 무척이나 많았는데, 보릿고개 때의 굷주리는 말 표현이 靑黃不接(청황불접, 칭황뿌지에)이란 말이 있습니다. 즉 보리 이삭이 패이지 않아서 배 곯는 시절을 말 합니다금문도는 고령토의 질이 좋아서 만든 도자기의 빛갈이 좋슨 편 입니다도자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기념으로 옛 것을 모방한 것이나 현대의 화병 같은 것을 사서 가지고 오면 금문도 방문의 추억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58도 짜리 금문고량주들이 항아리 안에서 익어 가고 있습니다 tag : 수수, 금문도의 우육면, 고량주의 술 찌거미, 금문도 도자기

 대만 금문도의  군사 요새 땅굴, 가수 떵리쥔 이야기

대만 금문도의 군사 요새 땅굴, 가수 떵리쥔 이야기

콩지의 중국여행기|2020년 2월 1일

금문도의 특산품인 금문고량주(金門高粱酒. 진먼까오량지오우) 공장 안의 술 항아리가 저장되어 있는 저장소 입니다금믄도는 복건성의 경제특구가 있는 하문(廈門 시아먼)과 대만의 타이뻬이와는 210km거리이지만 실제 금문도에서 바라보는 하문의 땅은 가장 가까운 거리가 2km도 채 안되는 아주 가까운 거리인 눈 앞에 있습니다대만의 최전방인 금문도에 가서 망원경으로 대륙의 땅을 바라보면, 우리나라 강화도 애기봉에 올라 서서 바라보는 임진강 너머의 북한 땅을 바라보는 마음과 비슷할지도 모르겠습니다중국과 대만 사이에 냉전시기엔 중국에서 대포를 금문도로 향해 쏘면서 주민들과 주둔 군인들을 긴장시키기도 했습니다. 금문도에선 답례(?)로 대형 풍선에다 각종 선전물을 담아 날려서 대륙에 가서 살포가 되도록 했습니다이 방대한 수량의 포탄 잔해와 불발탄들은 지금은 큰 이득을 금문도 대장간에 안겨주고 있습니다 , 금문도의 오랜 대장쟁이가 80 여 년의 오랜 세월 동안 대를 이어서 지금까지 중국 부엌 칼을 수제로 생산하고 있는데 지금은 금문도의 유명한 명품의 하나로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제가 1961년과 1985년 두 번이나 금문도를 군용기를 타고 방문한 바 있는데, 당시엔 중국의 레이다 망을 피해서 아주 낮은 고도로 착륙을 하곤 했습니다1965년으로 기억하는데, 한국일보 기자가 금문도 취재차 방문하던 길에 비행기 사고로 순직한 일도 있었습니다핸변 오래 위에는 말뚝들이 박혀 있는데 철조망이 쳐 있습니다우리나라 동해안에도 한 때 철조망으로 둘려져 있었지요 ~1993년에 대만 정부는 민간인들의 관광을 위한 방문이 개방되었고, 민간 항공기도 정기 운행을 하고 있습니다타이뻬이 송산(松山) 공항에서 금문도 공항까지는 한 시간이 걸립니다당시에 사용했던 탱크와 포 등 군사 병기들을 야외에 전시해 놓고 있습니다적산갱도(翟山坑道)의 표지석이 있는데 이것은 금문도를 완전 요새화 하기 위해서 지하에 땅굴을 파서 금문도를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한 장소에 3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공간도 있는데, 전쟁발발시 야전 병원으로 대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라고 현지 안내인이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勿忘在莒(물망재거)라는 네 글자가 오른 편에 보입니다이것은 옛 오(吳)나라와 월(越)나라가 전쟁을 하면서 있었던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를 상기해서 대만에서 준비를 단단히 해서 잃어버린 대륙의 땅을 반드시 다시 찾아오자는 뜻으로 적은 것 입니다장개석 총통시절에는 중국을 겨냥한 표어들이 굉장힌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쌍십절 행사 때 마다 빠지지 않고 두 주먹 불끈 쥐고 광복대륙(光復大陸)을 크게 외치던 장면이 생각나기도 합니다이 莒光 거에서 영광을 되찾자는 뜻으로 열차나 고속버스의 이름에도 莒光 號가 있으며, 담배 이른에도 "莒光"이 있습니다.땅굴은 제가 1961년도에 금문도를 방문 했을 때도 일부를 본 적이 있는데 이산갱도는 그 후 계속해서 갱도를 확장하면서 크게 만들었나 봅니다자이산은 적산갱도(翟山坑道) 적산의 중국 발음 입니다암석을 뚫어서 수로를 만들어 물자 수송을 밖의 폭격을 피할 수 있도록 하였으니 놀라울 따름 입니다삼국시대에 제갈량이 북벌을 위해서 험준한 준령에 잔도(棧道)를 만든 것도 대역사이고, 조조가 군사의 이동을 비밀리에 이동시키기 위해서 만든 갱도 역시 생각해 보면 놀랍습니다. 물론 베트남이 외국과의 오랜 항전을 위해 대대적인 땅굴을 건설한 것도 역시 놀랍지요 ~암석을 뚫어서 만든 갱도 입니다대만은 지형적으로 중앙산맥이 남북으로 가로 막혀 있어서 동서간의 이동에 많은 불편을 겪었고 경제의 불균형발전도 감수해야 했는데, 이것을 타파하기 위해서 동서 횡단공로를 대리석 산을 뜷는 대역사를 착수해서 오늘날 화련의 타이루꺼 협곡(太魯閣峽谷) 관광을 내국인들과 외국인들에게 자랑스러워 하기도 합니다제가 금문도을 방문할 당시엔 없었던 외국 귀빈을 접대하기 위해 지은 영빈관 입니다저는 두 번 방문시 현지 사령관의 오찬 접대를 지하 식당에서 두 번이나 받은 바 있습니다두 번 다 58도의 금문고량주로 건배를 들기도 했습니다.떵리쥔(鄧麗君 또는 테레사 떵)은 일선장병들을 위문하는 공연을 하기 위해서 금문도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위문공연차 금문도에 체류시 묵었던 떵리쥔의 방 입니다제가 대만에 공부하기 위해서 1968년에 갔을 때 떵리쥔은 막 가수로서 부상하던 16세의 꽃다운 소녀 였습니다그 때의 데뷰 곡은 "꽌따라메라"라고 하는 중남미의 번안곡이었는데, 대만의 남녀 노소 모두 이 노래를 입 속으로 흥얼거리지 않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엔 홍콩영화 "添蜜蜜"(첨밀밀 티엔미미)애서 떵리쥔이 부른 노래가 지금까지도 불려지고 있고 라디오 음악시간에 자주 등장하곤 합니다우리나라 가요계에 이미자가 있다면 대만에는 떵리쥔이 있다고까지 말을 할 정도로 인기는 사그러들줄 몰랐으며, 한 편 중국과의 냉전시기임에도 대륙의 젊은이들은 떵리쥔의 복제판 CD를 구해 가지고 따라 부르기도 했습니다떵리쥔이 1995년 세싱을 떠난지 26년이 지나도 그녀의 인기는 여전하며, 지금도 가끔 우리나라라디오에서는 그녀 노래가 흘러나오곤 합니다 여기는 금문도에서 대륙을 향해서 선전 홍보를 하는 마산 확성기를 이용하는 마산 기지 압나더우리나라도 대북 확성기로 방송을 해 오다가 지금은 철거를 하였지요 ~망원걍으로는 하문(廈門)의 군인들이나 민간인의 이동을 살펴 볼 수 있는 가까운 거리 입니다금문도 방문객들은 망원경으로 대륙의 땅을 살펴 보면서 얼마나 가까운 거리인지 실감을 합니다지금은 정기 운항선도 여러 곳과 개통되어 있습니다 대만은 중국의 3통(通航, 通商, 通郵) 정책에 반하여 3불 정책을 표방하였습니다중국은 그동안 대만과의 일국양제를 통하여 대만의 독립을 견제하기 위해 대만의 상품은 "국산품"으로 간주하면서 관세부과도 않고 중국에 투자한 기업에 대하여는 법인세 등 각종 세금에도 특햬 조치를 했습니다대만의 중소기업들이 중국 투자에 있어서 우리나라 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가지고 상당한 성공을 거두기도 했습니다금문도의 이런저런 옛 사진들을 보니 생각 나는 것이 많아서 금문도 소개 사진을 많이 올렸습니다 tag : 금문도의 딸굴, 가수 떵리준의 금문도 위문공연

 대만 금문도(金門島) 이야기와 특산물  2~2

대만 금문도(金門島) 이야기와 특산물 2~2

콩지의 중국여행기|2020년 1월 30일

금문도 모범가(模範街 모판지에)의 건축 양식은 대만 지방이나 타이뻬이와는 완연히 다릅니다금문도의 옛 거리(라오지에 老街)인 모판지에는 금문도룰 찾는 사람들은 꼭 둘러보게되는 옛 중심 거리 입니다이 거리는 1924년에 금문도의 모범이 될만한 거리로 만들자는 취지에서 조성되었습니다금문도의 명주인 금문고량주를 전문으로 파는 가게 안 입니다도자기에 담은 고량주는 유리병 안에 담은 것보다는 가격이 좀 비싼 편 입니다특히 대만의 경축일인 쌍십절(雙十節)이면 금문도 술 제조공장은 고급 도자기에 담은 기념 술을 만들어 팔곤 했는데 제가 대만에 있을 때는 매 년 기념으로 사곤 했습니다금문도는 옛 것을 복제하거나 현대 창작 도자기로 유명합니다금문도의 중심거리 가까이에는 재래시장도 있습니다시장 입구에 세운 패루(牌樓)가 멋 집니다표준 발음은 커띠아즈지아 입니다嗲(다, 띠아)는 애교부리다의 뜻을 가지고 있으니 정말 맛 졸은 굴 튀김 전문집을 나타낸 말 이겠습니다굴을 기름에 튀겨 낸 맛 있는 굴 튀김 커띠아 입니다굴 모양을 잡아서는 끓는 기름 속에 넣어 튀깁니다기름에 튀길 때 저온에서 튀기는 것과 고온에서 튀기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먹을 때는 세 가지의 소스 중에서 마늘 맛, 매운 고추 맛 그리고 단순 간장에서 골라 찍어 먹습니다껍질이 기름에 잘 튀겨져서 아삭아삭 한데 굴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채소도 색갈이 선명할 정도로 짧게 튀겨 냅니다값은 한 개에 대만 돈 NT$30 입니다대만 본토에서 거리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어와지엔(蚵煎, 가전) 굴전과는 좀 다릅니다. 어와는 대만의 방언 발음 입니다이 집의 상호는 우리가 평소 보기 힘든 고기 魚자가 새 개나 들어 있는 글자인 鱻(선)을 써서 鱻客棧(선객잔)이라고 써 놓았습니다. 이 선은 생선이란 뜻도 있고, 싱싱한, 신선하다는 뜻이 이는 鮮자와 글자가 발음도 같고, 뜻도 같이 쓰는 "선" 입니다 . 우리나라 생선요리 전문 집에서 상호 앞에다가 "活"(활)자를 쓴 것 같이 보면 됩니다객잔(客棧)은 여인숙 같은 숙박업소의 집이지만 손님들에게 음식도 팗니다금문도의 현지 요리 몇 가지를 소개 합니다대만이든 중국 본토 어디를 가나 쉽게 만나는 공심채(空心菜) 볶음 입니다생강과 함께 볶아 낸 곱창 요리 입니다. 여기서는 따창이 생선의 내장으로 보입니다여기서 설어(雪魚 쉬에위)는 연한 대구 살 맛이 나는 메로 고기 입니다북구 쪽에서 많이 잡히는 고기 입니다생선 위에다 바삭바삭하게 튀긴 통 가루를 뿌려 놓아서 먹을 때 고소한 맛을 더 냅니다酥(소, 중국어는 수)는 요리 또는 과자를 굽거나 할 때 바삭거리도록 한 것 입니다튀김 요리 중에 많이 먹는 것으로는 오리의 시앙수야와 닭의 시앙수지(香酥鴨, 香酥鷄)가 있습니다육해공이 함께 만나서 푸짐하다고 했는데, 여기서 湯(탕 국)이 빠지면 대접하고도 상대방으로부터 욕을 먹습니다 ~금문도의 58도 고량주와 곁들이면 분위기가 살지요 ~그런데 술 잔을 이렇게 큰 것으로 해서 마시면 원 샷 하기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겁도 없이 꿀꺽~ 또 꿀꺽 ~하면 다음 날 고생 합니다술은 자기 주량에 맞추어서 적당히 마실 때 머리도 안 아프고 속도 시원 합니다 ㅎㅎㅎ후이꾸어러우(回鍋肉 회과육)은 사천요리 집에서 매운 맛으로 만든 것 먹기를 저는 좋아 합니다섬겹살이 사진 보다 좀 더 쫄깃하세 볶어냐내면 맛이 더 좋습니다팁고량주의 주 원료는 수수 입니다. 고량(高粱)은 중국어로 까오량이며 수수란 뜻 입니다여기에 소개한 금문도의 요리는 일부에 불과하며, 정식으로 큰 테이블에서 식사 할 때는 10여 가지의 큰 접시에 담은 요리와 큰 대접의 湯(탕 국)이 올려지는데, 생선은 큰 것을 통째로 쪄 낸 것이 보통 입니다중국인들은 손님 접대시 큰 생선 요리는 반드시 주문을 합니다. 생선요리가 빠지면 큰 결례로 생각 합니다그리고 옛 방식대로 먹는다면 생선요리는 맨 마지막에 나오고 다음으로는 볶음밥 또는 국수 그리고 과일과 디저트(點心, 띠엔신) 에다 따끈한 차(茶)가 나옵니다 tag : 금문도 술, 까오량, 금문도의 요리들, 모몸 라오지에, 굴 튀김 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