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권력이다

Sources

Posts

1383 posts

연기 배틀과 연출이 볼만한 영화 승부 꽤 볼만한 영화

사진은 권력이다|2025년 3월 27일|사진

바둑 잘 모릅니다. 다만 조훈현 9단은 압니다. 조씨들이 바둑을 평정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조훈현, 조치훈 이 두 이름은 바둑을 잘 몰라도 당시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80~90년대는 바둑이 참 인기가 높았습니다. 신문에는 바둑 기보가 실리고 어른들은 바둑이나 장기를 많이 두었습니다. 지상파에서는 수시로 바둑 경기를 소개할 정도로 바둑은 국민 스포츠 중 하나였습니다. 이 바둑의 인기를 이끈 사람은 조훈현 9단입니다. 80년대 초중반만 해도 한국은 한중일 3국 중에 가장 하수의 국가였습니다. 일본이 고수 그다음이 중국으로 양 국가가 바둑의 강국이었죠. 이 변방의 국가에서 조훈현이 1989년 제1회 응씨배에서 중국 국수를 꺾고 우승을 차지합니다. 바둑 기사 최초로 카 퍼레이드를 했던 분이기도 하죠. 조훈현 9단과 제자 이창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영화 는 참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원래 이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넷플릭스 영화였습니다. 대대적인 오픈 준비를 하던 중에 악재가 터졌습니다. 바로 이창호를 연기하는 유아인이 불법 행위를 하면서 퇴출되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연기로 복기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당연히 이런 악재를 무시하고 넷플릭스에서 공개가 되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2년 동안 묵혀 있던 영화 가 넷플릭스가 아닌 영화관에서 개봉을 했습니다. 감독은 김형주 감독으로 영화 으로 2017년에 입봉 한 감독입니다. 영화 을 무척 재미없게 봐서 별 기대를 안 했는데 이 감독 칼을 갈았네요. 어?? 김형주 감독 영화가 맞나 할 정도로 찌를 때는 찌르고 뒤로 물러서고 차분해질 때는 또 차분해집니다. 아주 장단을 잘 맞추고 노는 것이 연출이 무척 세련된 영화입니다. 솔직히 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고 저 같은 40대 이상 분들이나 바둑에 관심 많은 분들은 결말이 어떨지 알 수 있습니다. 저도 물론 잘 알고 있었죠. 그런데 알고 봐도 재미있을 정도로 연출이 아주 좋네요. 이야기의 배경은 80년대 초부터 시작합니다. 조훈현 9단이 응씨배에서 한중일 국수들을 모두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하자 국보급 대우와 인기를 받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한 꼬마가 당찬 기세로 바둑으로 어른들을 물리치자 조훈현 9단이 퀴즈를 주면서 이 기보를 풀면 자신과 대국을 할 수 있다고 하죠. 이 꼬마가 바로 이창호입니다. 바둑 신동인 이창호는 며칠 후에 그 퀴즈를 풀어서 우편으로 보냈고 조훈현 9단은 직접  전주까지 내려가서 이창호와 바둑을 둡니다. 드라마 에서 박보검이 연기한 택이가 바로 이 이창호를 모델로 삼은 캐릭터입니다. 그렇게 이창호의 천재성을 발견한 조훈현 9단은 연희동 자택에서 먹고 재우면서 내제자로 키웁니다. 그렇게 이창호는 조훈현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한솥밥을 먹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다 너무 이른 시기에 아직 학생이 이창호와 조훈현이 바둑 결승에서 수차례 만나기 시작합니다. 청출어람의 이야기가 영화 의 전부라면 이 영화는 너무 뻔한 영화겠죠. 그러나 이 영화는 그 이후까지 담고 있습니다. 이게 이 영화의 핵심 재미입니다. 공격 축구의 조훈현, 수비 축구의 이창호의 숨 막히는 대결 단언컨대 바둑 하나도 몰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알고 보면 좋지만 바둑을 모르고 봐도 이해할 수 있게 영화 초반에 바둑 용어를 자막으로 알려줍니다. 바둑 잘 모르는 저도 쉽게 볼 수 있기에 바둑 모른다고 안 보일 이유는 약합니다. 영화 는 사제지간의 대결이자 바둑 스타일의 이야기가 펼쳐져 나옵니다. 조훈현 9단은 맹수같이 달려들어서 찌르고 찢고 파괴하는 전신 즉 전투의 신입니다. 공격적인 바둑이자 기세를 무척 중시합니다. 또한 승리를 앞에 두면 다리를 떨고 심지어 노래까지 불러서 대국 상대를 긁는 행동을 합니다. 비매너라고 할 수 있지만 룰에는 저촉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줄담배를 피면서 둬도 됩니다. 이렇게 시비를 걸고 멱살잡이를 하는 화끈한 공격 바둑을 두는 기사가 바로 조훈현 9단입니다. 반면 이창호 9단은 상대가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걸어도 최대한 지지 않는 확률을 확인하면서 둡니다. 애 늙은이 바둑이라고 할 정도로 느리게 둡니다. 축구로 말하면 수비축구 탁구로 치면 수비를 잘하는 탁구 선수 같습니다. 반집이라도 승리는 승리라는 생각 아래 모든 기보를 계산하고 최대한 안전빵으로 둡니다. 이는 저와 비슷합니다. 오목을 둘 때 전 3개가 이어 가기도 전에 2개만 연결해도 하나를 막아 버립니다. 애초에 씨를 심지 못하게 두죠. 공격 바둑, 수비 바둑을 두는 두 사람의 갈등이 영화 가득 나옵니다. 보통 스승과 제자의 바둑 스타일을 닮을 수밖에 없습니다. 스승이 그렇게 가르치니까요. 영화에서 조훈현은 제자 이창호에게 자신처럼 따라 하라고 다그칩니다만 이창호는 자신만의 바둑을 발견하고 수비 스타일의 강태공 바둑을 두는 과정의 갈등구조가 참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도드라지게 나오지 않지만 서봉수 9단을 롤모델로 한 남기철의 특기가 상대방을 따라서 두는 바둑입니다. 이러다 보니 상대방 분석을 아주 잘합니다. 이창호를 이끈 것도 이창호에게 져서 서러운 짐승의 울음을 내던 조훈현을 다시 세운 것도 남기철 기사입니다. 이렇게 3명의 바둑 기사의 물고 물리는 싸움이 참 볼만합니다. 두 연기 잘하는 배우의 연기 배틀이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하다 유아인, 이병헌 배우의 공통점은 2개가 있죠. 하나는 둘 다 비호감입니다. 둘 다 사생활이 안 좋죠. 이 이미지는 평생 갈 겁니다. 또 하나는 두 배우는 한국을 대표하는 연기 잘하는 배우이기도 합니다. 이병헌은 배우 자체의 사생활 때문에 좋아할 수가 없지만 연기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합니다. 이럴 때마다 현타가 오죠. 인간 이병헌은 싫은데 배우 이병헌의 연기는 너무 잘할 때 말아죠. 둘을 분리하고 봐야 하나 그럼에도 감안해서 봐야 하나 고민이 됩니다. 물론 연기를 못하면 아예 영화나 드라마를 안 보겠죠. 그러나 연기는 도 기가 막히게 합니다. 2시간 동안 두 배우의 연기 배틀이 펼쳐집니다. 이병헌이야  연기 잘하는 건 하늘도 해외에서도 잘 알지만 유아인도 이 이병헌의 연기에 막상막상한 연기로 불꽃티는 연기 대결을 합니다. 과도할 정도로 클로즈업을 많이 사용하는데 두 배우의 흐트러짐 없는 표정과 연기에 탐복을 하게 되네요. 연출도 꽤 좋은 영화 넷플릭스 땅을 치고 후회할 듯 넷플릭스용 영화로 제작한 영화가 주연 배우의 일탈 행위로 2년 동안의 장고를 거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장고 끝에 악수'가 아닌 '장고 끝에 신의 한 수'를 두었네요. 넷플릭스가 땅을 치고 후회할 정도로 현재 흥행 기세가 좋습니다. 평일에 9만 명이면 주말에는 20~30만 명 정도가 들고 쉽게 손익분기점을 넘길 듯합니다. 이 영화는 두 주연 배우의 연기와 함께 미술팀과 연출이 무척 좋습니다. 제가 일부러 80년대 분위기가 하나도 안 나면 지적하려고 했지만 없습니다. 거의 없어요. 아니 전 발견 못했습니다. 1980년대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저에게는 80년대 그 분위기를 잔뜩 느끼게 하는 모습이 참 좋더라고요. 얼마나 고증이 철저한 지 89년에 큰 인기를 끌었던 브랜따노 혹은 이랜드에서 나온 긴팔 카라티를 유아인이 입고 나오는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어디서 저 옷을 구했을까 할 정도로 당시 고증이 너무 좋네요. 또한 중요한 승부 해서 과도한 카메라 워크를 사용하지도 않고 간결하면서도 확실한 연출을 잘 보여줍니다. 정적인 스포츠인 바둑을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흐름과 기세를 연결하는 연출도 무척 좋네요. 주말에 보기 좋은 가족 영화이자 괜찮은 영화 입니다. 꽤 단단한 영화더라고요. 별점 : ★ ★ ★☆ 40자 평 : 연기의 승부를 보는 듯한 뛰어난 두 배우의 연기와 연기를 춤추게 하는 꽤 기세 좋은 연출

연기 배틀과 연출이 볼만한 영화 승부 꽤 볼만한 영화

사진은 권력이다|2025년 3월 27일|사진

바둑 잘 모릅니다. 다만 조훈현 9단은 압니다. 조씨들이 바둑을 평정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조훈현, 조치훈 이 두 이름은 바둑을 잘 몰라도 당시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80~90년대는 바둑이 참 인기가 높았습니다. 신문에는 바둑 기보가 실리고 어른들은 바둑이나 장기를 많이 두었습니다. 지상파에서는 수시로 바둑 경기를 소개할 정도로 바둑은 국민 스포츠 중 하나였습니다. 이 바둑의 인기를 이끈 사람은 조훈현 9단입니다. 80년대 초중반만 해도 한국은 한중일 3국 중에 가장 하수의 국가였습니다. 일본이 고수 그다음이 중국으로 양 국가가 바둑의 강국이었죠. 이 변방의 국가에서 조훈현이 1989년 제1회 응씨배에서 중국 국수를 꺾고 우승을 차지합니다. 바둑 기사 최초로 카 퍼레이드를 했던 분이기도 하죠. 조훈현 9단과 제자 이창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영화 는 참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원래 이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넷플릭스 영화였습니다. 대대적인 오픈 준비를 하던 중에 악재가 터졌습니다. 바로 이창호를 연기하는 유아인이 불법 행위를 하면서 퇴출되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연기로 복기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당연히 이런 악재를 무시하고 넷플릭스에서 공개가 되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2년 동안 묵혀 있던 영화 가 넷플릭스가 아닌 영화관에서 개봉을 했습니다. 감독은 김형주 감독으로 영화 으로 2017년에 입봉 한 감독입니다. 영화 을 무척 재미없게 봐서 별 기대를 안 했는데 이 감독 칼을 갈았네요. 어?? 김형주 감독 영화가 맞나 할 정도로 찌를 때는 찌르고 뒤로 물러서고 차분해질 때는 또 차분해집니다. 아주 장단을 잘 맞추고 노는 것이 연출이 무척 세련된 영화입니다. 솔직히 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고 저 같은 40대 이상 분들이나 바둑에 관심 많은 분들은 결말이 어떨지 알 수 있습니다. 저도 물론 잘 알고 있었죠. 그런데 알고 봐도 재미있을 정도로 연출이 아주 좋네요. 이야기의 배경은 80년대 초부터 시작합니다. 조훈현 9단이 응씨배에서 한중일 국수들을 모두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하자 국보급 대우와 인기를 받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한 꼬마가 당찬 기세로 바둑으로 어른들을 물리치자 조훈현 9단이 퀴즈를 주면서 이 기보를 풀면 자신과 대국을 할 수 있다고 하죠. 이 꼬마가 바로 이창호입니다. 바둑 신동인 이창호는 며칠 후에 그 퀴즈를 풀어서 우편으로 보냈고 조훈현 9단은 직접  전주까지 내려가서 이창호와 바둑을 둡니다. 드라마 에서 박보검이 연기한 택이가 바로 이 이창호를 모델로 삼은 캐릭터입니다. 그렇게 이창호의 천재성을 발견한 조훈현 9단은 연희동 자택에서 먹고 재우면서 내제자로 키웁니다. 그렇게 이창호는 조훈현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한솥밥을 먹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다 너무 이른 시기에 아직 학생이 이창호와 조훈현이 바둑 결승에서 수차례 만나기 시작합니다. 청출어람의 이야기가 영화 의 전부라면 이 영화는 너무 뻔한 영화겠죠. 그러나 이 영화는 그 이후까지 담고 있습니다. 이게 이 영화의 핵심 재미입니다. 공격 축구의 조훈현, 수비 축구의 이창호의 숨 막히는 대결 단언컨대 바둑 하나도 몰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알고 보면 좋지만 바둑을 모르고 봐도 이해할 수 있게 영화 초반에 바둑 용어를 자막으로 알려줍니다. 바둑 잘 모르는 저도 쉽게 볼 수 있기에 바둑 모른다고 안 보일 이유는 약합니다. 영화 는 사제지간의 대결이자 바둑 스타일의 이야기가 펼쳐져 나옵니다. 조훈현 9단은 맹수같이 달려들어서 찌르고 찢고 파괴하는 전신 즉 전투의 신입니다. 공격적인 바둑이자 기세를 무척 중시합니다. 또한 승리를 앞에 두면 다리를 떨고 심지어 노래까지 불러서 대국 상대를 긁는 행동을 합니다. 비매너라고 할 수 있지만 룰에는 저촉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줄담배를 피면서 둬도 됩니다. 이렇게 시비를 걸고 멱살잡이를 하는 화끈한 공격 바둑을 두는 기사가 바로 조훈현 9단입니다. 반면 이창호 9단은 상대가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걸어도 최대한 지지 않는 확률을 확인하면서 둡니다. 애 늙은이 바둑이라고 할 정도로 느리게 둡니다. 축구로 말하면 수비축구 탁구로 치면 수비를 잘하는 탁구 선수 같습니다. 반집이라도 승리는 승리라는 생각 아래 모든 기보를 계산하고 최대한 안전빵으로 둡니다. 이는 저와 비슷합니다. 오목을 둘 때 전 3개가 이어 가기도 전에 2개만 연결해도 하나를 막아 버립니다. 애초에 씨를 심지 못하게 두죠. 공격 바둑, 수비 바둑을 두는 두 사람의 갈등이 영화 가득 나옵니다. 보통 스승과 제자의 바둑 스타일을 닮을 수밖에 없습니다. 스승이 그렇게 가르치니까요. 영화에서 조훈현은 제자 이창호에게 자신처럼 따라 하라고 다그칩니다만 이창호는 자신만의 바둑을 발견하고 수비 스타일의 강태공 바둑을 두는 과정의 갈등구조가 참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도드라지게 나오지 않지만 서봉수 9단을 롤모델로 한 남기철의 특기가 상대방을 따라서 두는 바둑입니다. 이러다 보니 상대방 분석을 아주 잘합니다. 이창호를 이끈 것도 이창호에게 져서 서러운 짐승의 울음을 내던 조훈현을 다시 세운 것도 남기철 기사입니다. 이렇게 3명의 바둑 기사의 물고 물리는 싸움이 참 볼만합니다. 두 연기 잘하는 배우의 연기 배틀이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하다 유아인, 이병헌 배우의 공통점은 2개가 있죠. 하나는 둘 다 비호감입니다. 둘 다 사생활이 안 좋죠. 이 이미지는 평생 갈 겁니다. 또 하나는 두 배우는 한국을 대표하는 연기 잘하는 배우이기도 합니다. 이병헌은 배우 자체의 사생활 때문에 좋아할 수가 없지만 연기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합니다. 이럴 때마다 현타가 오죠. 인간 이병헌은 싫은데 배우 이병헌의 연기는 너무 잘할 때 말아죠. 둘을 분리하고 봐야 하나 그럼에도 감안해서 봐야 하나 고민이 됩니다. 물론 연기를 못하면 아예 영화나 드라마를 안 보겠죠. 그러나 연기는 도 기가 막히게 합니다. 2시간 동안 두 배우의 연기 배틀이 펼쳐집니다. 이병헌이야  연기 잘하는 건 하늘도 해외에서도 잘 알지만 유아인도 이 이병헌의 연기에 막상막상한 연기로 불꽃티는 연기 대결을 합니다. 과도할 정도로 클로즈업을 많이 사용하는데 두 배우의 흐트러짐 없는 표정과 연기에 탐복을 하게 되네요. 연출도 꽤 좋은 영화 넷플릭스 땅을 치고 후회할 듯 넷플릭스용 영화로 제작한 영화가 주연 배우의 일탈 행위로 2년 동안의 장고를 거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장고 끝에 악수'가 아닌 '장고 끝에 신의 한 수'를 두었네요. 넷플릭스가 땅을 치고 후회할 정도로 현재 흥행 기세가 좋습니다. 평일에 9만 명이면 주말에는 20~30만 명 정도가 들고 쉽게 손익분기점을 넘길 듯합니다. 이 영화는 두 주연 배우의 연기와 함께 미술팀과 연출이 무척 좋습니다. 제가 일부러 80년대 분위기가 하나도 안 나면 지적하려고 했지만 없습니다. 거의 없어요. 아니 전 발견 못했습니다. 1980년대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저에게는 80년대 그 분위기를 잔뜩 느끼게 하는 모습이 참 좋더라고요. 얼마나 고증이 철저한 지 89년에 큰 인기를 끌었던 브랜따노 혹은 이랜드에서 나온 긴팔 카라티를 유아인이 입고 나오는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어디서 저 옷을 구했을까 할 정도로 당시 고증이 너무 좋네요. 또한 중요한 승부 해서 과도한 카메라 워크를 사용하지도 않고 간결하면서도 확실한 연출을 잘 보여줍니다. 정적인 스포츠인 바둑을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흐름과 기세를 연결하는 연출도 무척 좋네요. 주말에 보기 좋은 가족 영화이자 괜찮은 영화 입니다. 꽤 단단한 영화더라고요. 별점 : ★ ★ ★☆ 40자 평 : 연기의 승부를 보는 듯한 뛰어난 두 배우의 연기와 연기를 춤추게 하는 꽤 기세 좋은 연출

캐논 EOS R50의 동영상 강화 버전 캐논 R50 V 공개

사진은 권력이다|2025년 3월 27일|사진

캐논이 2025년 열일을 하네요. 캐논이 3월 26일에 캐논 R50 V를 선보입니다. 이름만 봐도 대충 느낌이 오죠. 캐논 EOS R50이라는 크롭 미러리스 베이스에 V가 붙은 걸 보면 동영상 강화 카메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영상 기능 강화 카메라 캐논 R50 V 외형이 캐논 R50에 비해서 크게 다릅니다. 먼저 EVF가 없네요. 전자식 뷰파인더가 없고 전면 하단 왼쪽에 REC 레코딩 버튼이 있네요. 여기에 버튼을 단다? 아주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다만 한 손으로는 못 누르고 양손을 잡고 눌러야 합니다. 이게 무슨 혁신이라고 할 수 있지만 상단에도 녹화 버튼이 또 있는 듯합니다. 녹화 버튼이 2개 같네요. 단종된 캐논 EOS M6 II와 비슷한 디자인 같지만 그립부를 확 줄였습니다. 먼저 이미지센서는 APS-C 크롭 이미지센서이고 사진 화소수는 2,420만 화소로 캐논 R50과 동일합니다. V1의 1,4인치보다는 큽니다. 동영상은 6K 오버샘플링 된 4K 30p은 논크롭, 4K 60p는 크롭으로 기록할 수 임ㅆ습니다. FHD는 120p까지 지원되는데 소리를 녹화하거나 제거하나 할 수 있습니다. 연속 촬영 시간은 FHD 60p에서 최대 2시간입니다. 오른쪽 위에 탈리 램프가 있습니다. 10비트 422 H265/H264 레코딩 지원을 지원하고 당연히 C-log도 지원합니다. 캐논 R50 V 크기는 119.3 x 45.2 x 73.7mm이고 무게는 배터리 메모리 포함 370g으로 무척 작고 가볍습니다. 캐논 R50 캐논 R50이 크기가 116 x 86 x 69 mm이고 무게가 375g이니 엄청나게 큰 차이는 아니네요. EVF만 삭제한 느낌입니다. 소니 카메라처럼 변한 캐논 R50 V 살펴보기 상단에는 촬영 모드 다이얼이 있는데 그 흔한 P,A,S,M 촬영 모드 다이얼이 없고 A+라는 오토 메뉴 S&F와 총 3개의 커스텀 메뉴가 있네요. S&F는 소니 카메라에 있는 기능으로 슬로 앤 패스트로 동영상 프레임 수를 조절하는 기능입니다. 슬로 앤 패스트 모드에서는 4K 촬영 시에는 최대 60배로 빨리 감기가 가능하고 슬로 모션은 최대 2.5배까지 가능합니다. FHD에서는 60배 빨기 감기, 5배 슬로 모션이 가능합니다. 동영상을 빠르게 또는 느리게 쉽게 변경이 가능하네요. 솔직히 보자마자 소니 카메라인 줄 알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소니 카메라의 특징이 많이 보입니다. LIVE 버튼은 실시간 스트리밍 버튼으로 실시간 스트리밍용 카메라로 활용할 수 있는 버튼이네요. 24비트 4채널 오디오 지원하고 디지털 핫슈를 지원하고 배터리는 R50과 동일한 LP-E17을 사용합니다. 전면에 W - T 줌 레버가 있는데 이걸 이용해서 영상이나 사진을 줌인, 줌아웃을 전동 줌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동시에 출시된 렌즈가 전동줌이 되는 RF-S 14-30mm f/4-6.3 IS STM PZ입니다. 캐논 R50 V의 특징들 후면에는 3인치 스위블 LCD가 달려 있습니다. 셀카 촬영하기 좋고 모니터로 활용하기 좋습니다. 다만 R50보다 해상도는 낮습니다. 연사는 캐논 R50과 동일하고 전자 셔터로 초당 15장 촬영이 가능합니다. 시네마뷰 모드가 있습니다. 기본은 16 : 9 종횡비의 영상을 촬영하지만 시네마스코프 화면비인 2.35 : 1도 가능합니다. 정확하게는 시네마스코프는 2.39 : 1이지만 거의 비슷한 화면비입니다. 가로로 긴 영상 촬영이 가능합니다. 캐논 로그 3도 지원합니다. 손떨방은 동영상 전자 IS입니다. 광학 손떨방 넣어줄 캐논이 아니고 크롭 미러리스 바디들은 대부분 광학 손떨방을 가격 때문인지 안 넣어주더라고요. AF는 COMS AF II로 새,말, 고양이, 개, 모터 스포츠카, 오토바이, 비행기, 철도를 인식하고 눈동자 검출은 왼쪽눈 및 오른쪽 눈 눈 검출이 가능합니다. 이런 AF 기능은 영상 프로세서가 진화해야 가능합니다. 영상처리엔진은 Digic X입니다. 캐논 R50과 전체적인 기능은 비슷하지만 동영상 기능만 강화한 카메라입니다. 캐논 R50에 비디오 강화 카메라입니다. 전체적으로 별 느낌은 없습니다. 소니 카메라의 좋은 기능을 잔뜩 넣은 느낌이네요. 소니 카메라의 단점인 젤로 현상은 따라 하지 않았으면 하네요. 가장 인상 깊은 기능은 옆구리에 세로 마운트가 있어서 삼각대에서 90도로 볼 헤드를 돌릴 필요 없이 카메라 옆구리 나사 구멍에 장착할 수 있는 점이 좋네요. 확실하지 않지만 제발 좀 세로 모드 동영상 촬영 모드 좀 제대로 넣었으면 하네요. 틱톡, 네이버 클립, 유튜브 쇼츠는 다 세로 모드이고 스마트폰은 세로 모드 촬영이 지원되는데 카메라들은 세로로 돌려서 찍어도 PC에서 다시 90도로 돌려줘야 하는 불편함이 너무 큽니다. 다만 캐논은 M50 II에서부터 지원해서 지원해 줄 듯합니다. 가격은 일본에서 바디만 11만 3,300엔, RF-S14-30mm F4-6.3 IS STM PZ가 동봉하는 렌즈 킷이 14만 800엔입니다. 단순 환산을 하면 137만 원 정도입니다. 캐논 파워샷 V1보다 오히려 더 싸네요. 이러면 한국에서 20만 원 정도 저렴하게 나오니까 110만 원 대로 나올 듯합니다.

캐논 EOS R50의 동영상 강화 버전 캐논 R50 V 공개

사진은 권력이다|2025년 3월 27일|사진

캐논이 2025년 열일을 하네요. 캐논이 3월 26일에 캐논 R50 V를 선보입니다. 이름만 봐도 대충 느낌이 오죠. 캐논 EOS R50이라는 크롭 미러리스 베이스에 V가 붙은 걸 보면 동영상 강화 카메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영상 기능 강화 카메라 캐논 R50 V 외형이 캐논 R50에 비해서 크게 다릅니다. 먼저 EVF가 없네요. 전자식 뷰파인더가 없고 전면 하단 왼쪽에 REC 레코딩 버튼이 있네요. 여기에 버튼을 단다? 아주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다만 한 손으로는 못 누르고 양손을 잡고 눌러야 합니다. 이게 무슨 혁신이라고 할 수 있지만 상단에도 녹화 버튼이 또 있는 듯합니다. 녹화 버튼이 2개 같네요. 단종된 캐논 EOS M6 II와 비슷한 디자인 같지만 그립부를 확 줄였습니다. 먼저 이미지센서는 APS-C 크롭 이미지센서이고 사진 화소수는 2,420만 화소로 캐논 R50과 동일합니다. V1의 1,4인치보다는 큽니다. 동영상은 6K 오버샘플링 된 4K 30p은 논크롭, 4K 60p는 크롭으로 기록할 수 임ㅆ습니다. FHD는 120p까지 지원되는데 소리를 녹화하거나 제거하나 할 수 있습니다. 연속 촬영 시간은 FHD 60p에서 최대 2시간입니다. 오른쪽 위에 탈리 램프가 있습니다. 10비트 422 H265/H264 레코딩 지원을 지원하고 당연히 C-log도 지원합니다. 캐논 R50 V 크기는 119.3 x 45.2 x 73.7mm이고 무게는 배터리 메모리 포함 370g으로 무척 작고 가볍습니다. 캐논 R50 캐논 R50이 크기가 116 x 86 x 69 mm이고 무게가 375g이니 엄청나게 큰 차이는 아니네요. EVF만 삭제한 느낌입니다. 소니 카메라처럼 변한 캐논 R50 V 살펴보기 상단에는 촬영 모드 다이얼이 있는데 그 흔한 P,A,S,M 촬영 모드 다이얼이 없고 A+라는 오토 메뉴 S&F와 총 3개의 커스텀 메뉴가 있네요. S&F는 소니 카메라에 있는 기능으로 슬로 앤 패스트로 동영상 프레임 수를 조절하는 기능입니다. 슬로 앤 패스트 모드에서는 4K 촬영 시에는 최대 60배로 빨리 감기가 가능하고 슬로 모션은 최대 2.5배까지 가능합니다. FHD에서는 60배 빨기 감기, 5배 슬로 모션이 가능합니다. 동영상을 빠르게 또는 느리게 쉽게 변경이 가능하네요. 솔직히 보자마자 소니 카메라인 줄 알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소니 카메라의 특징이 많이 보입니다. LIVE 버튼은 실시간 스트리밍 버튼으로 실시간 스트리밍용 카메라로 활용할 수 있는 버튼이네요. 24비트 4채널 오디오 지원하고 디지털 핫슈를 지원하고 배터리는 R50과 동일한 LP-E17을 사용합니다. 전면에 W - T 줌 레버가 있는데 이걸 이용해서 영상이나 사진을 줌인, 줌아웃을 전동 줌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동시에 출시된 렌즈가 전동줌이 되는 RF-S 14-30mm f/4-6.3 IS STM PZ입니다. 캐논 R50 V의 특징들 후면에는 3인치 스위블 LCD가 달려 있습니다. 셀카 촬영하기 좋고 모니터로 활용하기 좋습니다. 다만 R50보다 해상도는 낮습니다. 연사는 캐논 R50과 동일하고 전자 셔터로 초당 15장 촬영이 가능합니다. 시네마뷰 모드가 있습니다. 기본은 16 : 9 종횡비의 영상을 촬영하지만 시네마스코프 화면비인 2.35 : 1도 가능합니다. 정확하게는 시네마스코프는 2.39 : 1이지만 거의 비슷한 화면비입니다. 가로로 긴 영상 촬영이 가능합니다. 캐논 로그 3도 지원합니다. 손떨방은 동영상 전자 IS입니다. 광학 손떨방 넣어줄 캐논이 아니고 크롭 미러리스 바디들은 대부분 광학 손떨방을 가격 때문인지 안 넣어주더라고요. AF는 COMS AF II로 새,말, 고양이, 개, 모터 스포츠카, 오토바이, 비행기, 철도를 인식하고 눈동자 검출은 왼쪽눈 및 오른쪽 눈 눈 검출이 가능합니다. 이런 AF 기능은 영상 프로세서가 진화해야 가능합니다. 영상처리엔진은 Digic X입니다. 캐논 R50과 전체적인 기능은 비슷하지만 동영상 기능만 강화한 카메라입니다. 캐논 R50에 비디오 강화 카메라입니다. 전체적으로 별 느낌은 없습니다. 소니 카메라의 좋은 기능을 잔뜩 넣은 느낌이네요. 소니 카메라의 단점인 젤로 현상은 따라 하지 않았으면 하네요. 가장 인상 깊은 기능은 옆구리에 세로 마운트가 있어서 삼각대에서 90도로 볼 헤드를 돌릴 필요 없이 카메라 옆구리 나사 구멍에 장착할 수 있는 점이 좋네요. 확실하지 않지만 제발 좀 세로 모드 동영상 촬영 모드 좀 제대로 넣었으면 하네요. 틱톡, 네이버 클립, 유튜브 쇼츠는 다 세로 모드이고 스마트폰은 세로 모드 촬영이 지원되는데 카메라들은 세로로 돌려서 찍어도 PC에서 다시 90도로 돌려줘야 하는 불편함이 너무 큽니다. 다만 캐논은 M50 II에서부터 지원해서 지원해 줄 듯합니다. 가격은 일본에서 바디만 11만 3,300엔, RF-S14-30mm F4-6.3 IS STM PZ가 동봉하는 렌즈 킷이 14만 800엔입니다. 단순 환산을 하면 137만 원 정도입니다. 캐논 파워샷 V1보다 오히려 더 싸네요. 이러면 한국에서 20만 원 정도 저렴하게 나오니까 110만 원 대로 나올 듯합니다. 방금 가격이 공개되었는데 바디만 103만 4,000원이고 RF-S14-30mm F4-6.3 IS STM PZ 렌즈는 7월에 나오기에 동시에 나오지 않네요. 가격도 미공개이지만 단독 구매시에는 48만 9천원입니다. 그러나 바디가 일본에서 110만원인데 한국에서 103만원으로 약 7만원 정도 저렴한 걸 감안하면 번들킷이 14만 800엔이니 한국에서 번들킷은 125~130만원 대에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생각보다 많이 할인해서 판매하지 않네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미국인 호머 헐버트가 묻혀 있는 양화진 선교사 묘원을 가다

사진은 권력이다|2025년 3월 25일|사진

나라가 혼란스럽습니다. 나는 한국이 발전하는 나라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고 온갖 패악질과 혐오를 기반으로 한 가짜 뉴스에 휘둘리는 좀비 같은 국민이 엄청 많다는 사실에 좀 놀랬습니다. 뭐 정치적인 성향이 다른 것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각자 가치관이 다르고 추구하는 세상이 다르니까요. 그렇지만 가짜 뉴스에 휘둘려서 사는 모습은 참 천박해 보입니다. 그리고 전 현재의 혼란스러움을 치유하는 방법 중 하나로 과거에도 그랬나?라고 돌아보면 과거에도 한국인들은 그랬습니다. 기회주의자들이 득세를 하고 정권을 잡고 권력을 휘두르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다만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익혀서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 역사를 잊어버리고 사는 민족 같네요. 요즘 한국 사회를 보면 독립 이후 남북으로 갈라지기 전까지의 혼란한 그 시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기 전인 19세기말, 20세기 초 풍경도 참 많이 겹치네요. 무능한 위정자와 정치인들이 나라를 아주 야무지게 절단을 내고 있는 모습에 눈감고 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드네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미국인  호머 헐버트 박사 나라가 어떻게 망했나. 조선은 왜 일제에 잡아 먹혔을까가 참 궁금해서 이 구한말 시대의 역사를 참 좋아합니다. 승리의 역사가 아닌 패배의 역사 속에서 오히려 배울 것이 참 많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가 망쳐 놓은 민비와 민비 친인척의 만행이나 무능한 고종의 우유부단함 등등 참 많은 것들이 조선의 위정자들의 문제가 많습니다. 여기에 이완용을 필두로 이완용보다 더 악랄했다는 윤덕영까지 최근에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 역사 탐험 중에 수시로 만나게 되는 분이 있습니다. 덕수궁 돈덕정에 가면 3분의 초상화가 있습니다. 이중 가장 왼쪽에 있는 분이 '호머 헐버트'입니다. 1863년 미국에서 태어나서 한국 고종의 외교 고문 역할을 하고 한글에 최초로 띄어쓰기를 도입할 것을 권한 분이기도 합니다. 이분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고개가 저절로 숙여집니다. 수많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한국에 큰 도움을 주었지만 그중에서도 이분이 이룬 업적과 행동과 행적은 빛이 날 정도로 엄청난 일들을 많이 하셨던 분입니다. 19세기말 1882년 한국과 미국은 수교를 맺습니다. 고종은 미국을 직접 보고 배우기 위해서 보빙사를 파견합니다. 위 이미지는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절을 하는 보빙사들입니다. 이때가 1883년입니다. 이 보빙사가 본 미국은 빛의 나라였습니다. 전기로 밤을 낮으로 만들고 엘리베이터도 타보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이 모든 것을 고종에 보고하니 고종이 서양 문명 및 문물을 적극 도입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아시아 최초로 에디슨 전구가 달린 전등을 도입한 곳이 조선이고 덕수궁이었습니다. 고종은 영어를 배우겠다면서 육영학원을 만들고 미국인 영어 교사를 보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이때 한국에 온 원어민 선생님 중 한 명이 '호머 헐버트'입니다. 그런데 원어민 선생님도 한글을 알아야 설명을 할텐데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이에 헐버트 박사는 사람을 고용해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어떤 교재도 없던 시절에 무려 3년 만에 한국어를 완벽 마스터를 하고 책까지 쓸 실력을 갖춥니다. 영어에 있는 띄어쓰기, 마침표, 쉼표를 도입한 호머 헐버트 서울대에 가면 규장각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 일기 등이 보관되어 있고 이렇게 전시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조선왕실의 기록은 한글이 아닌 한자로 적혀 있습니다. 식자들은 한문이라는 뿌리 깊은 생각을 볼 수 있습니다. 왜 80년대까지만 해도 신문에 한자 한글 병용 표기도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 한글로 표기합니다. 그런데 한자를 모르니 발음이 동일해도 뜻이 다른 것을 중노년 분들은 잘 알지만 요즘 10~30대들은 잘 모릅니다. 그래서 기본 한자는 알고 있는 것이 좋긴 합니다. 각설하고 위 책을 보면 한문이 가득한데 숨 막히지 않나요? 띄어쓰기가 없습니다. 큰 문단을 끝날 때나 여백이 있지 계속 이어서 씁니다. 한문은 기본적으로 띄어쓰기가 없습니다. 이는 일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일본어는 한글의 을를이가 같은 조사를 히라가나로 표기하다 보니 띄어쓰기가 없어도 이해하는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있으면 더 좋죠. 한글은 띄어쓰기가 있습니다. 얼마나 혹독한지 수많은 사람들이 띄어쓰기를 아주 잘하지는 못합니다. 저 조차도 잘 못해서 맞춤법 검사기의 의존합니다. 웃긴 건 맞춤법 검사기마다 또 띄어쓰기가 다릅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은 띄어쓰기를 기본적으로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를 보면 아버지가 가방에 들어가신다는 것인지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인지를 구분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띄어쓰기를 하면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라고 하면 의미가 바로 전달됩니다. 호머 헐버트 박사는 한글에 띄어쓰기가 없는 점을 보고 주시경 선생님에게 띄어쓰기와 마침표와 쉼표를 넣으면 어떻겠냐는 조언을 합니다. 그렇게 최초의 띄어쓰기가 담긴 신문이 나오는데 그게 바로 독립신문입니다. 이외에도 조선 독립을 위해서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는 등  수많은 거룩한 일을 행한 분이기도 합니다. 그 이야기는 밑에서 좀 더 풀어보겠습니다. 호머 헐버트가 묻혀 있는 양화진 선교사 묘원을 가다 양화진 선교사 묘원은 합정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용산역에서 출발했습니다. 용산 들렸다가 따릉이 타고 가려고 했는데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따릉이가 어울리지 않네요. 호머 헐버트 용산도 참 아픈 역사가 많은 곳인데 재개발 이슈만 남겨져 있네요. 여기는 한 30년 동안 이렇게 공터로 있는 듯한데 개발은 언제 하나 모르겠어요. '호머 헐버트' 박사는 한국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 헌신하시다가 헤이그 밀사에 큰 도움을 준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를 1909년 일제가 강제 출국 시킵니다. 아무래도 눈엣가시 같은 서양인이 짜증 났을 겁니다. 1945년 한국이 광복된 후 1949년 한국 정부가 국빈으로 초대하자 40년 만에 한국에 방문하게 됩니다. 그러나 당시는 비행기가 아닌 배틀 타고 왔기에 연로한 나이에 여독 때문인지 한국에서 돌아가십니다. 그리고 이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에 묻힙니다. 요즘 핫한 홍대 인근 합정역 7번 출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입니다. 이 근처를 꽤 돌아다녔는데 이제야 들려보게 되었네요. 7번 출구를 쭉 내려가시면 됩니다 이 합정역 7번 출구에는 거대한 장벽이 있는데 이 장벽은 지하철 장벽으로 한강을 건너온 2호선 전철이 지하로 내려가는 구간입니다. 다리 밑에 주차장이 있고 바로 옆에 입구가 있습니다. 무료 개방입니다. 예약을 하면 해설사의 설명과 양화진 홀 건물 안을 관람 할 수 있습니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방문 안내 개방시간 : 월~토요일 오전 10시 ~ 오후 5시 찾아오는 방법 : 2호선, 6호선 합정력 7번 출구에서 10분 거리 입장료 : 무료 규모는 생각보다 꽤 컸습니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크지는 않고  한 30분이면 다 돌아봅니다. 볕 좋고 한강 내려다 보이는 곳에 외국인 선교사 묘역이 만들어졌습니다. 최초로 묻힌 분은 1885년 북장로교 의료 선교사였던 헤론이 입국하신 후 1890년 병으로 순직한 후 여기에 묻힙니다. 이후 총 417명의 선교사 및 그 자족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국적도 다양합니다. 남아공, 뉴질랜드, 스웨덴, 미국, 영국,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인도 여기에 묻혀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두 선교사만 안장되어 있냐 아닙니다. 독립을 위해서 큰 도움을 주신 비선교사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1986년 전까지는 이 외국인 선교사 또는 외국인 무덤이 잘 관리되지 않았습니다. 무덤 관리 주체가 없다 보니 묘비가 쓰러져 있기도 했죠. 그렇다고 국가가 나서서 관리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에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사업협의회가 1986년 한국기독교 선교 기념관을 건립하면서 서울시로부터 이 선교사 묘역 관리권을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한국 기독교 단체들이 이 선교사 묘역을 꾸준히 잘 관리하고 있습니다. 예약자들을 보면 대부분 개신교 분들이 관광버스 타고 오실 정도로 많더라고요. 건물 안은 들어가보지 않았습니다. 제가 종교인도 아니고 예약을 해야 들어가 볼 수 있는 것으로 알아요. 뒤를 돌아보니 합정역 주변의 거대한 빌딩이 보이네요. 이름 모를 들꽃이 고개를 내밀고 있네요. 고대한 플라타너스 나무가 가득했는데 가지치기를 너무 많이 한 느낌도 들지만 묘비를 가리지 않기 위해서 가지치기를 한 것 같기도 합니다. 낙엽이 묘비 위에 떨어지는 것도 좋지 않게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묘역은 이렇게 봉분이 있는 묘비도 있고 비석만 있는 비석도 있습니다. 각 구역별로 구분하고 있고 확장해가고 있습니다. 최근에 돌아가신 외국인 분들도 여기 묻혀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미군이었던 분도 계시더라고요.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호머 헐버트 박사의 묘비는 B-7에 있습니다. 23살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한국에서 영어 교사로 활동하다가 감리교 선교사로 다시 한국을 찾습니다.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전에 고종 황제의 밀사로 활약했는데 이로 인해 일제로부터 1909년 추방이 됩니다. 고종이 호머 박사를 신임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아내를 잃은 고종은 일제의 만행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이때 도움을 준 사람이 '호머 헐버트' 박사입니다. 고종의 경호원을 자처하면서 일제로부터 고종을 보호했습니다. 미국인인 자신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걸 이용한 것이죠. 그리고 당시는 미국과 일본이 친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가쓰라 테프트 밀약'입니다. 먼저 살펴볼 것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에는 상호방위조약이 들어가 있습니다. 조선이 침공당하면 미국이 도와주고 미국이 침공하면 한국이 도와주는 조약이죠. 그런데 일제가 조선 정확하게는 대한제국을 먹으려고 하면 미국이 도와줘야 합니다. 그런데 모른 척합니다. 왜 그런가 봤더니 1905년 일본과 미국이 서로의 식민지를 인정해 주는 밀약을 합니다. 일본은 대한제국을 미국은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을 테니 서로 모른 척 하자는 밀약이었죠. 장충단 공원에 있는 이준 열사 동상 이것도 모른체 고종은 헐버트 박사에게  미국에 가라고 부탁을 합니다. 이에 헐버트 박사가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러 백악관까지 찾아갑니다. 대한제국이 이렇게 위태로운데 왜 안 도와주냐고 따지려고 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루스벨트 대통령은 헐버트 박사를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가쓰라 테프트' 밀약이 있었던 1905년에 을사늑약까지 체결되어서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박달 당합니다. 그제야 루스벨트 대통령이 헐버트 박사를 만나줍니다. 이 모든 걸 알게 되자 할버트 박사는 자신의 조국이 이렇게 미천한 나라였다는 것에 격분을 하고 헤이그 밀사 파견을 고종에 제안합니다. 헐버트 박사는 헤이그에 먼저 도착해서 이 헤이그 밀사 3인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대한제국이 일제의 폭력에 잡아 먹히고 있다는 걸 알립니다. 지금은 국제법이 있지만 당시에도 만민법이 있어서 제국이 식민지를 만드려고 해도 국제 여론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이 만민법에 호소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일제는 이 헐버트 박사를 추방하고 1907년 고종도 퇴위시키고 더 순종을 황제로 올립니다. 웨스턴민스터 성당에 묻히기 보다 한국에 묻히고 싶습니다 "웨스턴민스터 성당에 묻히기 보다 한국에 묻히고 싶습니다"  이 말은 '호머 헐버트' 박사가 평소에 했던 말입니다. 그리고 그 문구는 묘비에 적혀 있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한국에서 영면하신 헐버트 묘비명을 써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무려 50년이 지난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9년에 '헐버트 박사의 묘'라고 일곱 글자를 새겨 넣었습니다.  참 나라라는 것이 위인을 모시는 방식이 참 저렴하죠. 아니 박정희, 윤보선, 전두환, 노태우 정권은 뭐 했는지 모르겠어요. 특히 여기 묘역이 다시 정리되고 복원되는 과정에 있었던 정권이 노태우 정권이었는데 그때 뭐 했는지 참 어이가 없죠. 김영상 정부도 마찬가지고요. 그렇다고 김대중 정부가 솔선수범이라기 보다는 헐버트 기념 사업회 집행위원장인 정용호 씨의 수차례 부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미국으로 추방된 이후에도 꾸준히 한국 독립을 후원하고 지원했습니다. 옆면에는 글귀가 가득 적혀 있지만 무슨 글씨인지 알아보기 어렵네요. 수선을 좀 해줘야 할 듯합니다. 촬영한 사진을 확대해서 보니 1949년 8월 11일 영결식에 묘비명을 써주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50년이 지난 후 김대중 대통령이 묘비명을 새겨 넣었다는 내용이네요. 반대쪽은 기독교 대한 감리회 마크가 새겨져 있습니다. 옆에는 빅토리파 풍의 신사 헐버트 박사 이곳에 잠들다고 적혀 있습니다. 헐버트 박사는 애민정신도 투철했습니다. 그가 한글로 쓴 최초의 책인 사민필서라는 책은 대중도 쉽게 볼 수 있는 세계지리서입니다. 현재 미국은 왕의 나라가 된 느낌이지만 당시 미국은 대통령의 나라였습니다. 왕이 아닌 대중이 주인인 나라인 공화국이었죠. 그러나 조선 또는 대한제국이라는 왕과 황제의 나라를 계몽하기 위해서는 가장 쉬운 방법이 세계 지도를 보여주는 것이죠. 자기 객관화 또는 세계에서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하고 전 세계에는 어떤 나라가 있는지를 알게 하는 책이었죠. 양반, 백성, 농민 모두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이라는 책이라는 이 책만 봐도 헐버트 박사의 조선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습니다. “영국인들이 라틴어를 버린 것처럼 조선인들도 언젠가 한자를 버릴 것이다.” “아리랑은 한민족의 영원한 노래가 될 것이다.” “상층 계급과 하층 계급 사이의 장벽을 허물 수 있는 유일하고 또 유일한 방법은, 평민들에게 훌륭한 한글 문학을 선사함으로써 한자 시대를 뒤집어 진정한 교육이란 소수가 아닌 다수에게 있다는 인식을 널리 퍼뜨리는 일이다”"한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민족""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합니다." 헐버트 박사 말고 독립 운동에 큰 도움을 준 분들의 묘소도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지금은 딜쿠샤로 복원된 '앨버트 테일러'도 영면해 계십니다. 삼일운동을 뉴욕타임스에 알린 분이죠. 다른 분들의 묘비와 묘소는 따로 소개하겠습니다. 개신교 선교사 분들은 한국에 와서 고생도 많이 하셨고 헌신적으로 조선인들을 계몽시키고 독립운동을 도왔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에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네요. 다만 현재 한국의 개신교는 좋게 볼 수가 없네요. 일부라고 하지만 북한에서 활동하던 개신교 교인들이 반공몰이를 하는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그래서 현재 가장 호감도가 낮은 종교 1위가 천도교로 10.1%이고 그다음이 개신교로 14.3%입니다. 80%가 넘는 사람들이 개신교를 싫어하는 모습을 한국 개신교가 잘 새겨듣었으면 하네요. 한국 개신교의 성지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안장된 수많은 선교사들이 자랑스럽게 만드는 것이 현재를 사는 개신교들의 몫이 아닐까 합니다. 공교롭게도 근처에 절두산 천주교 성지도 있습니다. 천주교는 호감도가 48.5%로 한국 개신교의 2배가 넘네요. 개신교 분들에게는 듣기 싫은 소리일 수 있지만 제가 교회를 다녔던 80년대만 해도 한국 개신교가 이렇지 않았는데 요즘은 너무 정치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네요. 왜 종교가 특정 정치에 휩쓸리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헐버트 선교사님 같은 분만 있으면 무종교를 철칙으로 삼는 저도 개신교인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네요. 검은머리 외국인들이 넘치고 친일 역사를 자랑스럽게 말하는 무리들이 늘고 있는 세상에 더 빛이 나는 호머 헐버트 박사님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