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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탈창신에서 체험해본 중형카메라 후지 GFX 100S II

사진은 권력이다|2024년 11월 19일|사진

카메라 체험 매장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래서 카메라 신제품 나오면 체험해 볼 공간을 찾으러 직접 가야 합니다. 그러나 카메라 체험 매장에서 카메라를 마음껏 살펴보고 만져보고 하기 쉽지 않습니다. 직원들이 간섭은 안 하는데 눈치가 솔직히 많이 보입니다. 그래서 꼼꼼하게 살피지 못하고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후지필름 카메라 체험매장이자 판매매장인 후지필름 TP존 남대문점인 '디지털창신' 사장님이 후지필름 카메라 체험을 지원해 주셔서 몇 몇 카메라를 직접 체험해 봤습니다. 후지필름 중형 카메라 GFX 라인의 간단 소개 후지필름 GFX 100 II 잘 아시겠지만 후지필름 카메라는 풀프레임 미러리스가 없습니다. 대신 APS-C 사이즈 크롭 이미지센서를 사용하는 크롭 이미지센서 카메라 라인과 중형 카메라 이미지센서 라인인 GFX 시리즈가 있습니다.이 GFX 시리즈는 후지필름이 앞으로 크게 키울 라인으로 최근 뉴스를 보내 시네마 카메라 라인도 투입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풀프레임 이미지센서의 1.7배의 대형 크기의 이미지센서를 후지필름은 라지 포멧 이미지센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중형 카메라 이미지센서보다는 좀 작은 44x33mm입니다. 그럼에도 큰 범주 안에서 중형 카메라 카테고리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GFX 시리즈 중에 가장 비싸고 큰 제품은 후지 GFX 100 라인으로 현재 2까지 나왔습니다. 이 GFX의 경량화 버전 즉 컴팩트 버전이 후지필름 GFX 100S 라인이고 이 제품도 최신 제품의 2까지 나왔습니다. 크기도 작지만 가격도 작은 600만 원 대입니다. 둘다 스펙과 해상도는 거의 비슷합니다. 1억 2백만 화소입니다. 이 밑에 있는 라인이 GFX 50S II입니다. GFX 50S II는 5,000만 화소에 가격도 GFX 100S II의 반 정도인 3백만원 대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지만 가격이 생각보다 저렴합니다. 중형 카메라 시장은 많은 브랜드가 없습니다. 북유럽 브랜드가 있는데 가격이 꽤 높고 외형도 중형 필름 카메라 스타일입니다. 그러나 후지필름은 경쟁이 심한 풀프레임 시장을 벗어나서 중형 카메라 시장을  노립니다. 대신 DSLR 외형에 크기도 작고 가볍게 만들고 가격대도 낮춰서 내놓기 시작하자 시장에서 반응을 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멜들이 가격이 계속 상승하면서 지금 현재 후지 중형 카메라 라인과 풀프레임 미러리스 가격이 중첩되고 있습니다. 후지 GFX 100S II 후지필름 중형 카메라를 구매하는 사람들 중형 카메라의 특장점은 고해상도입니다. 1억 2백만 화소는 일반 취미 사진가에게는 과한 해상도입니다. 사진 1장에 200메가 정도 합니다. 이 고해상도는 사진작가나 상업사진가들을 위한 해상도입니다. 이분들은 사진을 작은 액자에 넣어서 전시를 하기도 하지만 대형 사진전을 하거나 미술관에서 전시를 할 때 대표 사진은 초대형 프린팅을 해서 걸기도 합니다. 또한 건물 외벽에 거대한 현수막을 걸고 광고를 할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는 고해상도 이미지가 있어야 합니다. 취미 사진가들이 주로 사용하는 2,400만 화소로는 초대형 인쇄물이나 프린팅을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해상력도 중요합니다. 피사체의 선을 아주 자세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중요한데 중형 카메라들이 이게 뛰어납니다. 물론 중형 카메라만 잘해서는 안 됩니다. 갤럭시 S 시리즈처럼 2억 화소 카메라가 달리는 스마트폰도 있으니까요. 중형 카메라 렌즈도 아주 중요합니다. X-Processor 5  영상처리엔진이 들어간 후지필름 GFX 100S II 후지필름 GFX 100S II는 2024년 5월에 출시되었습니다. 이전 세대 제품인 100, 100S보다 읽기 속도를 향상시킨 1억 200만 화소 이미지센서를 사용했습니다. 아시겠지만 후지필름은 이미지센서 직접 만듭니다. 영상처리엔진은 X-Processor 5로 최신 영상처리엔진이 들어갔습니다. 최신 영상처리엔진이 들어갔다는 건 AF 속도가 개선되었다는 소리죠. 사실 AF 속도는 그런대로 준수합니다. 그럼에도 이 중형 카메라는 빠른 피사체를 촬영하는 야생동물이나 스포츠 사진용은 아니고 풍경 사진, 모델 인물 사진 등등 비교적 느리거나 제어가 가능한 피사체 촬영용입니다. 따라서 AF 속도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만 실제 체험해보니 AF는 꽤 좋네요. X-Processor 5가 들어가서 ISO는 80까지 지원하고 AI 기술을 이용한 피사체 인식 AF와 후지필름의 자랑 필름 시뮬레이션이 들어갔습니다. 이전 제품에는 없었습니다. 바디 손떨방은 무려 8스텝으로 고해상도 제품에 걸맞는 높은 손떨방 제어력을 제공합니다. 동영상은 후지 GFX 100 II가 8K 지원하는데 GFX 100S II는  4K 30P까지만 지원합니다. 이외에도  연사가 8연사가 아닌 7연사이고 EVF 해상도가 9440이 아닌 5760K인 점이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스펙이 크게 차지 나지 않고 크기가 좀 더 작고 가벼워서 요즘은 GFX 100S II를 더 많이 찾습니다. 후지필름 GFX 100S II 디자인 및 외형 살펴보기 후지필름 GFX 100S II와  GFX 100 II, 50S II와 100S II 디자인은 거의 비슷합니다. 버튼 배치 등등 거의 비슷해서 구분이 안 갑니다. 쉽게 구분하는 방법은 왼쪽 옆구리에 GFX 100S II라고 박혀 있습니다. 또 다른 점이 있다면 패턴입니다. 그립부와 바디 겉면의 패턴이 박혀 있는데 이게 일본 전통 문양 패턴이라고 하네요. 위에서 내려다 보면 전형적인 DSLR 외형의 디자인입니다. 펜타프리즘 디자인이죠. 물론 미러리스라서 펜타프리즘은 없고 그 안에 EVF가 있습니다. 왼쪽에 촬영 모드 다이얼이 있고 그 위에 사진, 동영상 전환 레버가 있습니다. 직관적입니다. 제가 가장 먼저 놀란 건 오른쪽 정보 디스플레이창입니다. 지금 카메라 전원을 끈 상태입니다. 그런데 저렇게 숫자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응? 안 꺼졌나하고 다시 확인했는데 보시면 셔터 버튼 뒤에 전원 레버가 OFF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전원이 들어와 있다? 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잠시 고민하다 3초 만에 아! 이거 혹시 E-INK ????? 전자책리더기에서 사용하는 E-INK는 화면이 바뀔때만 전기를 먹고 전원을 꺼도 액정이 그대로 멈추기에 저렇게 표시할 수 있습니다. 역시 후지필름이네요. 카메라 제조사들은 특허를 참 많이 내는데 후지필름이 독특한 특허를 참 잘 냅니다. 이것도 대단한 아이디어네요. 심지어 표시 방식도 가상 다이얼 형식으로 표시할 수도 있네요. 외형은 엄청 뛰어나다도 아닌 못생겼다고 아닌 그냥 댄디하고 단단하다라는 느낌입니다. 모범생 느낌입니다. GFX 시리즈 디자인이 거의 비슷해서 지루할 수 있지만 제가 보기엔 폼펙터를 공유해서 가격을 낮추려는 것 같더라고요. 실제로 후지필름 GFX 시리즈는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가격이 낮아져서 나옵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나오는가 보다 했습니다. 가격이 워낙 비싸서 내가 접근할 가격이 아니다 했는데 2가 나오면서 가격이 풀프레임 가격에 근접하기 시작하면서 눈길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립부도 튼실하고 실제로 들어보니 그냥 플래그십 풀프레임 미러리스입니다. 크기도 무게도 풀프 미러리스 정도 느낌입니다. 바디는 후지 GFX 100 II 보다 150g 가벼운 883g입니다. 다만 배터리 그립은 장착할 수 없습니다. 장노출 사진이나 장시간 촬영을 할 때는 배터리를 여러개 사서 갈아끼면서 촬영해야 합니다. 일종의 급나누기죠. 그런데 가격을 보면 수긍이 가능합니다. 상위 모델인 GFX 100 II가 1천만원 이 후지 GFX 100S II가 6백만원대로 3~4백만원 저렴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크기가 좀 더 작고 가벼움을 추구해서 이동성이 많은 분들에게 어울리는 바디로 거리사진, 스튜디오 사진, 풍경 사진용으로 적합합니다.배터리는 NP-W235를 사용하고 촬영 최대 매수는 540장입니다. 크기는 150×104.2×87.2mm. 무게는 배터리 카드 포함 883g으로 GFX 시리즈 중 가장 가볍습니다. 후지필름 GFX 100S II 의 AF AF의 속도는 캐논, 소니를 따라갈 카메라는 없습니다. 그래서 기자들의 카메라는 소니와 캐논 카메라를 주로 사용하고 니콘 Z9가 AF 속도를 개선하고 엄청난 퍼포먼스를 내면서 인기가 높습니다. 후지필름 카메라를 사건 현장이나 행사장에서 아직까지는 볼 수 없습니다. 대신 서두에서 설명했듯이 풍경사진, 스튜디오 사진, 인물사진 등등 사진작가들이 원하는 고해상도와 고해상력을 갖추어서 작품 사진 및 상업 사진을 찍는 프로 사진가들이 많이 사용합니다. 그렇다고 AF가 엄청 느리냐 그건 아닙니다. 제가 체험해보니 쓸만하고 괜찮습니다. 캐논 소니 보다 못하다 뿐이죠. 여기에 1초에 7연사까지 지원하면서 서서히 야생동물사진, 스포츠 사진 촬영에 사용가능할 정도로 성능이 받쳐주기 시작했습니다. AF 영역도 쉽게 조절이 가능합니다. 후면 조이스틱 버튼으로 위치를 변경하고 설정을 전택하고 후면 휠로 크기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가로로 길게 할 수도 있고 세로로 길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방식을 올림푸스에서 처음 봤는데 이거 무척 편리합니다. 피사체 검출 기능은 AI 학습에 의한  동물, 새, 자동차, 자전거, 비행기, 전철을 인지 검출 추적이 가능합니다. 또한 얼굴의 동공 AF도 보다 향상되었습니다. 연사 속도는 1초에 7장 전작의 5장보다 2장 늘다 1억 2백만 화소면 사진 한장에 200메가가 넘습니다. 따라서 빠른 저장속도를 지원해야 합니다. 그런데 무려 1초에 7장으로 이전 제품의 5장보다 2장이 더 늘었습니다. 이 고속 연사가 가능해지면서 야생동물이나 스포츠 촬영에도 도전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메모리는 SD 카드 더블 슬롯으로 UHS-II까지 사용 가능합니다. 여기에 SSD 메모리도 연결해서 저장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손떨방은 무려 8스텝으로 인바디 광학식 손떨방이 들어갔습니다. 후지논 GF 63mm f2.8 R WR과 장착하면 8스텝까지 가능합니다. 하방 45도 까지 가능한 틸트 3.2인치 LCD EVF는 0.5인치의 576만 도트의 해상도로 전작의 369만 도트보다 해상도가 좀 더 높아졌습니다. 후면 LCD는 3.2인치 236만 도트의 터치 LCD가 들어갔습니다. 틸트 LCD로 상방 90도 하방 틸트도 가능해서 하이앵글, 로우앵글을 빠르게 촬영 가능합니다.

독립운동가들의 얼이 가득한 효창공원

사진은 권력이다|2024년 11월 18일|사진

서울도 꽤 커서 안 가 본 곳이 꽤 많습니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날 좋은 날 걸어서 여러 동네를 돌아다녀보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중순에 남산 및 해방촌을 둘러보고 갈월동 지하차도를 넘었습니다. 친일파가 세운 고등학교를 다녔던 그 시절 효창공원에 참배하러 가다 효창공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제 고등학교 생각이 나네요.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친일파가 세운 고등학교입니다. 학교명을 밝히지 않는 이유는 이 블로그에 두 설립자가 친일파였다는 사실을 적시했다고 해외에 있는 동문들까지 와서 협박과 비난을 엄청나게 하더라고요. 그런다고 친일을 한 것이 사라집니까? 과거가 바뀝니까? 친일을 했으니까 친일인명사전에 올라갔죠. 그런데 불경스럽다고 합니다. 아니 내가 친일파입니까? 그 학교 나온 학생들이 친일파입니까? 그냥 친일파가 세운 학교라는 말 한마디에 엄청난 비난이 날아오더라고요. 어떤 분은 동문회 나오면 가만 안 두겠다고 하시던데 동문회 관심도 없고 나갈 생각도 없고 앞으로도 안 갑니다. 오히려 그런 동문들이 있다는 자체가 창피스럽네요. 전 친일파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친일을 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이 있고 평생 사죄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친일이 어때서라고 떵떵거리면서 사는 사람도 있죠. 고등학교 설립자는 친일파는 맞습니다. 일본 장교 출신이니까요. 다만 그 이후의 행동이 다른 친일파와 다릅니다. 6.25 전쟁을 훌륭하게 잘 치르셨고 4.19 혁명 전에 3월 학생 시위를 주도하셨습니다. 또한 친일 행동을 부끄러워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행동 중 하나가 매년 봄에 학생들에게 효창공원에 가서 참배하는 것이었죠. 그런 분입니다. 친일을 했지만 부끄러워했고 독립운동가들을 참배하는 관습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전 친일파인 설립자에 대한 반감은 없습니다. 오히려 동문들에게 있을 뿐이죠. 한국 사회가 그렇습니다. 잘못을 했으면 잘못했다고 인정을 하고 반성을 하면 되는데 끝까지 변명을 합니다. "세상이 변할줄 몰랐으니까", "친일이 어때서" 식으로 말합니다. 뉴라이트 놈들 보세요. 아주 악질들입니다. 이런 인간들이 대한민국의 보훈과 역사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효창공원 간 기억이 희미합니다. 간 것 같기도 하고 안 간 것 같기도 하고요. 비가와서 안 갔나 제가 나름 기억력이 좋은데 효창공원 간 기억이 없습니다. 다른 반 아이들은 간 걸 기억하는 걸 보면 그때 다른 곳으로 갔었던 것 같습니다. 효창공원과 남산 밑 안중근 박물관으로 찢어져서 갔는데 아마 전 안중근 박물관을 갔던 것 같네요. 칠궁 덕안궁에 모셔져 있는 엄귀비 용산에는 숙대가 있죠. 숙대도 가본 적이 없네요. 뭐 대학교가 다 거기서 거기같지만 그 학교 안에 대자보를 읽다 보면 학풍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뭐에 관심 있는지도 알 수 있고요. 그래서 가끔 대학교 앞을 지나가면 들어가 봅니다. 순헌황귀비길이라고 적혀 있네요. 이분 기억나요. 순헌황귀비라고 해서 누군가 했네요. 이분은 청와대 왼쪽에 있는 칠궁 중에 덕안궁에 위패가 모셔져 있는 분입니다. 조선 칠궁은 왕을 낳았지만 왕비가 되지 못한 후궁 7명의 신위가 모셔진 사당입니다. 7명 중에는 장희빈도 있습니다. 덕안궁은 고종의 후궁인 엄귀비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이분이 낳은 아들이 영친왕입니다. 엄귀비는 5살에 궁궐 나인이 되었다가 임오군란 당시 민비가 빤스런을 한 사이에 고종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핍니다. 이에 고종은 지밀상궁으로 격상시킵니다. 그렇게 나인이 엄상궁이 됩니다. 엄상궁은 사진으로도 남아 있는데 못생겼습니다. 그런데 민비가 이 엄상궁을 엄청나게 구박하고 질투했고 결국 궁에서 나가게 합니다. 드라마 명성왕후가 역사를 왜곡했지 민비 자체는 악녀에 가까운 여자입니다. 비록 일본 자객에 죽은 서사와 이미연이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대사 하나로 지금도 뮤지컬 '명성왕후'가 울려퍼지고 있죠. 나라 말아먹은 여자가 민비입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지금도 비슷한 꼬라지네요. 그렇게 민비가 을미사변으로 죽자 고종은 아내가 죽은 지 5일 후에 엄상궁을 다시 옆에 둡니다. 엄상궁은 꽤 성품이 좋았는지 숙명여대를 만들기도 하고 아관파천을 주도하기도 합니다. 고종과 순종을 자신의 가마에 태워서 몰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시킵니다. 이런 게 참 재미있어요. 제가 요즘 푹 빠진 분야는 역사입니다. 역사는 참 재미있어요. 그리고 그 역사에서 참 많이 배웁니다. 지금 한국 돌아가는 꼬라지가 딱 구한말 같네요. 뭐 항상 위기가 오면 구한말 같다고 하듯이요. 숙명여대를 지나서 효창공원에 도착했습니다. 효창원을 효창공원으로 만든 일제 효창공원은 효창원이었습니다. 정조의 장남인 문효세자와 생모인 의빈 성씨가 사망한 후 그 묘소를 여기 효창원에 만듭니다. 비교적 고궁에서 가까운 곳이죠. 한강이 내려다 보이고 소나무가 울창한 효창원에 아들과 아내를 묻습니다. 효성과 번성의 뜻을 가진 효창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그러나 청일전쟁 당시 인적 드문 여기에 일본군이 주둔합니다. 조선 왕실 묘역을 군이 주둔하는 자체가 무척 불경스럽죠. 그후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자 매춘을 하는 유곽도 여기에 세웁니다. 이 용산이라는 동네는 몽골군, 왜군 그리고 현재는 미군 같은 군기지가 있었던 곳으로 용산이 군사들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일부 미군 기지가 있죠. 용산은 지리적으로 4대 고궁 근처이고 평지가 많아서 군사 주둔지로 참 많이 활용되었습니다. 여기에 한강도 근처라서 큰 배가 들어올 수 있어서 역사적으로 군 주둔지가 많았습니다. 1924년 일제는 효창원을 효창공원으로 바꿉니다. 이는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바꾸듯이 바꿉니다. 그리고 효창공원은 독립투사와 임시정부 요인과 백범 김구의 묘가 있는 독립 역사를 기리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효창운동장이 있고 삼의자 모역, 백범 김구 묘역 등등 온통 독립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한 곳입니다. 그러나 근처 사는 주민들에게는 큰 근린공원으로 활용됩니다. 뭐 여기 백범 김구 묘를 보러 오거나 기념관을 들리기 위해서 오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있는지도 모르는 분들도 많으니까요. 다만 학생들이 단체로 방문하는 것이 대부분이겠죠. 원효대사상이 있네요. 남산밑에도 순국선열 동상이 참 많고 유관순 열사 동상도 거기에 있습니다. 삼일운동 기념탑도 거기에 있고요. 그리고 여기도 조금은 있네요. 수많은 순국선열의 동상은 1969년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지는데 박정희 정권이 만든 것은 아니고 애국선열 조상건립위원회라는 민간단체에서 만든 동상입니다. 당시 성금을 모아서 만들었는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작은 동산 및 숲이 있네요. 전형적인 근린공원인데 꽤 규모가 있어서 한바퀴 도는 산책로도 있습니다. 정조의 큰아들은 5살에 돌아가셨네요. 한창 귀여울 나이인데요. 문효세자의 무덤은 1944년 고양시 서삼릉으로 옮겨졌으며 이 문효세자 묘소 자리에 독립 선열인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삼의사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습니다. 공원은 아주 잘관리되어 있고 숲과 공원이 공존하는 느낌입니다. 여기가 숲이 있고 경치가 좋고 한강도 보여서 풍수지리로는 딱 좋은 위치이긴 하네요. 북한반공투사 위령탑도 있네요.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막혀 있더라고요. 이곳이 바로 백범 김구의 묘소입니다. 작은 정자 옆에는 책들이 놓여 있는데 활용도가 낮은데 저런 걸 많이 만들더라고요. 책도 다 오래된 책입니다. 이 책들이 도서관에서 폐기하려는 책을 여기에 놓는 것 같더라고요. 백범 김구의 묘소 앞에는 거대한 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가 문지기 역할을 하는 느낌입니다. 여기가 입구입니다. 단촐합니다. 꾸밈이 많지 않고요. 그래도 규모는 큽니다. 저 앞에 까지 갈 수 있습니다. 제단이 있습니다. 병풍 같은 소나무들이 가득하네요. 뒤늦게나마 여기를 찾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효창공원이 왜 여기 있을까? 궁금했는데 이게 다 이승만 대통령의 질투심 때문이라고 하네요. 이승만은 김구 선생님을 정적으로 여겼습니다. 아주 싫어했죠. 그래서 백범 김구 묘소 근처에 1956년 육군 공병대대를 불러서 효창운동장을 만듭니다. 친일파를 색출하는 반민특위를 박살 낸 것도 이승만입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악질 대통령이 이승만으로 심지어 현 윤석열보다 악질입니다. 조선에 선조가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있습니다. 한국 역사를 들여다 보고 공부하면 얼마나 무능하고 악질적인 행동을 많이 했는지 셀 수가 없습니다. 물론 독립운동을 한 독립투사였지만 문제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한 행동들이 문제입니다. 효창운동장은 원래 종합운동장으로 지으려고 했지만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반대를 해서 그나마 규모가 축소되어서 종합운동장은 되지 못합니다. 참 못난 대통령입니다. 효창공원 백범 묘지에 참배자들이 늘자 민심이 자꾸 현 대통령이 아닌 돌아가신 백범에게 쏠리자 효창운동장을 만들었다고 하죠. 그러나 역사는 백범에게 향했고 여기에 백범 기념관이 만들어집니다. 백범 김구 기념관은 꽤 웅장하고 규모가 큰 기념관입니다. 그런데 이 기념관 누가 어떤 대통령 때 만들었을까요? 바로 김대중 대통령시절 지어지기 시작해서 2002년 완공합니다. 올 연말까지 보수 공사를 한다고 하네요. 안에 들어갔다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사진으로 담아왔는데 따로 소개하겠습니다. 친일정권 2024년 윤석열 정부 많은 것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국가 전체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드는 생각은 다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IT 전시회에서 최신 첨단 기술을 소개하는 코너에서 들어보고 물어보면 연구를 하는 중인데 연구비가 끊겨서 더 연구를 못하고 있다는 소리를 수시로 듣고 있습니다. 여기에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에도 친일은 금기시된 단어였는데 2024년 윤석열 정권은 대놓고 친일을 하고 보훈부가 친일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광복회장과 각을 세우고 있고 일본에 대한 비난을 하지도 못합니다. 나라가 어떻게 이렇게 망가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이 블로그에서 정치 이야기 끊은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해봐야 세상 바뀌는 것도 아니고 악플이나 달리고 내 만족이라서 안 쓰고 앞으로도 안 쓸 생각이지만 이렇게 한 번은 쓰고 가야겠습니다. 내 평생 이런 무능한 정권은 처음입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도 견뎠지만 이 무능하고 무식한 정권은 견딜수가 없네요. 마치 고종과 민비의 시대 갔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한 이승만 정권 같기도 합니다. 자신의 정적이고 대통령인 이승만 보다 죽은 백범 김구 묘소에 참배객이 많다면서 질투심에 효창운동장 만들어서  운동장 주변에서 노상방뇨하고 술 쳐 먹고 노는 꼬라지를 만든 이승만 정권까지 오버랩되네요. 뭐 지금은 동네 운동장으로 전락했고 이북5도 체육대회나 치르는 경기장이지만 참 불경스러운 운동장이 효창운동장이네요. 마치 일제가 창경궁에 동물 집어넣어서 창경원으로 만든 것을 벤치마킹한 이승만 같네요. 국부? 웃기는 소리죠. 대한민국을 제대로 한 번 말아 드신 이승만 정권이고 이제는 그 바통을 윤석열 정권이 받아서 달리고 있네요. 사람이 발전을 안 하니 역사도 발전을 안 하고 한국인들이 과연 발전하는 나라의 국민성을 가졌나 하는 의심이 드는 요즘입니다. 요즘 분위기가 오히려 90년대보다 못하다면 말 다했죠. 적어도 90년대는 염치라도 있었던 시대였는데요. 지금은 염치가 사라진 사회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의 얼이 가득한 효창공원

사진은 권력이다|2024년 11월 18일|사진

서울도 꽤 커서 안 가 본 곳이 꽤 많습니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날 좋은 날 걸어서 여러 동네를 돌아다녀보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중순에 남산 및 해방촌을 둘러보고 갈월동 지하차도를 넘었습니다. 친일파가 세운 고등학교를 다녔던 그 시절 효창공원에 참배하러 가다 효창공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제 고등학교 생각이 나네요.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친일파가 세운 고등학교입니다. 학교명을 밝히지 않는 이유는 이 블로그에 두 설립자가 친일파였다는 사실을 적시했다고 해외에 있는 동문들까지 와서 협박과 비난을 엄청나게 하더라고요. 그런다고 친일을 한 것이 사라집니까? 과거가 바뀝니까? 친일을 했으니까 친일인명사전에 올라갔죠. 그런데 불경스럽다고 합니다. 아니 내가 친일파입니까? 그 학교 나온 학생들이 친일파입니까? 그냥 친일파가 세운 학교라는 말 한마디에 엄청난 비난이 날아오더라고요. 어떤 분은 동문회 나오면 가만 안 두겠다고 하시던데 동문회 관심도 없고 나갈 생각도 없고 앞으로도 안 갑니다. 오히려 그런 동문들이 있다는 자체가 창피스럽네요. 전 친일파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친일을 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이 있고 평생 사죄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친일이 어때서라고 떵떵거리면서 사는 사람도 있죠. 고등학교 설립자는 친일파는 맞습니다. 일본 장교 출신이니까요. 다만 그 이후의 행동이 다른 친일파와 다릅니다. 6.25 전쟁을 훌륭하게 잘 치르셨고 4.19 혁명 전에 3월 학생 시위를 주도하셨습니다. 또한 친일 행동을 부끄러워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행동 중 하나가 매년 봄에 학생들에게 효창공원에 가서 참배하는 것이었죠. 그런 분입니다. 친일을 했지만 부끄러워했고 독립운동가들을 참배하는 관습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전 친일파인 설립자에 대한 반감은 없습니다. 오히려 동문들에게 있을 뿐이죠. 한국 사회가 그렇습니다. 잘못을 했으면 잘못했다고 인정을 하고 반성을 하면 되는데 끝까지 변명을 합니다. "세상이 변할줄 몰랐으니까", "친일이 어때서" 식으로 말합니다. 뉴라이트 놈들 보세요. 아주 악질들입니다. 이런 인간들이 대한민국의 보훈과 역사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효창공원 간 기억이 희미합니다. 간 것 같기도 하고 안 간 것 같기도 하고요. 비가와서 안 갔나 제가 나름 기억력이 좋은데 효창공원 간 기억이 없습니다. 다른 반 아이들은 간 걸 기억하는 걸 보면 그때 다른 곳으로 갔었던 것 같습니다. 효창공원과 남산 밑 안중근 박물관으로 찢어져서 갔는데 아마 전 안중근 박물관을 갔던 것 같네요. 칠궁 덕안궁에 모셔져 있는 엄귀비 용산에는 숙대가 있죠. 숙대도 가본 적이 없네요. 뭐 대학교가 다 거기서 거기같지만 그 학교 안에 대자보를 읽다 보면 학풍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뭐에 관심 있는지도 알 수 있고요. 그래서 가끔 대학교 앞을 지나가면 들어가 봅니다. 순헌황귀비길이라고 적혀 있네요. 이분 기억나요. 순헌황귀비라고 해서 누군가 했네요. 이분은 청와대 왼쪽에 있는 칠궁 중에 덕안궁에 위패가 모셔져 있는 분입니다. 조선 칠궁은 왕을 낳았지만 왕비가 되지 못한 후궁 7명의 신위가 모셔진 사당입니다. 7명 중에는 장희빈도 있습니다. 덕안궁은 고종의 후궁인 엄귀비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이분이 낳은 아들이 영친왕입니다. 엄귀비는 5살에 궁궐 나인이 되었다가 임오군란 당시 민비가 빤스런을 한 사이에 고종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핍니다. 이에 고종은 지밀상궁으로 격상시킵니다. 그렇게 나인이 엄상궁이 됩니다. 엄상궁은 사진으로도 남아 있는데 못생겼습니다. 그런데 민비가 이 엄상궁을 엄청나게 구박하고 질투했고 결국 궁에서 나가게 합니다. 드라마 명성왕후가 역사를 왜곡했지 민비 자체는 악녀에 가까운 여자입니다. 비록 일본 자객에 죽은 서사와 이미연이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대사 하나로 지금도 뮤지컬 '명성왕후'가 울려퍼지고 있죠. 나라 말아먹은 여자가 민비입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지금도 비슷한 꼬라지네요. 그렇게 민비가 을미사변으로 죽자 고종은 아내가 죽은 지 5일 후에 엄상궁을 다시 옆에 둡니다. 엄상궁은 꽤 성품이 좋았는지 숙명여대를 만들기도 하고 아관파천을 주도하기도 합니다. 고종과 순종을 자신의 가마에 태워서 몰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시킵니다. 이런 게 참 재미있어요. 제가 요즘 푹 빠진 분야는 역사입니다. 역사는 참 재미있어요. 그리고 그 역사에서 참 많이 배웁니다. 지금 한국 돌아가는 꼬라지가 딱 구한말 같네요. 뭐 항상 위기가 오면 구한말 같다고 하듯이요. 숙명여대를 지나서 효창공원에 도착했습니다. 효창원을 효창공원으로 만든 일제 효창공원은 효창원이었습니다. 정조의 장남인 문효세자와 생모인 의빈 성씨가 사망한 후 그 묘소를 여기 효창원에 만듭니다. 비교적 고궁에서 가까운 곳이죠. 한강이 내려다 보이고 소나무가 울창한 효창원에 아들과 아내를 묻습니다. 효성과 번성의 뜻을 가진 효창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그러나 청일전쟁 당시 인적 드문 여기에 일본군이 주둔합니다. 조선 왕실 묘역을 군이 주둔하는 자체가 무척 불경스럽죠. 그후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자 매춘을 하는 유곽도 여기에 세웁니다. 이 용산이라는 동네는 몽골군, 왜군 그리고 현재는 미군 같은 군기지가 있었던 곳으로 용산이 군사들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일부 미군 기지가 있죠. 용산은 지리적으로 4대 고궁 근처이고 평지가 많아서 군사 주둔지로 참 많이 활용되었습니다. 여기에 한강도 근처라서 큰 배가 들어올 수 있어서 역사적으로 군 주둔지가 많았습니다. 1924년 일제는 효창원을 효창공원으로 바꿉니다. 이는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바꾸듯이 바꿉니다. 그리고 효창공원은 독립투사와 임시정부 요인과 백범 김구의 묘가 있는 독립 역사를 기리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효창운동장이 있고 삼의자 모역, 백범 김구 묘역 등등 온통 독립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한 곳입니다. 그러나 근처 사는 주민들에게는 큰 근린공원으로 활용됩니다. 뭐 여기 백범 김구 묘를 보러 오거나 기념관을 들리기 위해서 오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있는지도 모르는 분들도 많으니까요. 다만 학생들이 단체로 방문하는 것이 대부분이겠죠. 원효대사상이 있네요. 남산밑에도 순국선열 동상이 참 많고 유관순 열사 동상도 거기에 있습니다. 삼일운동 기념탑도 거기에 있고요. 그리고 여기도 조금은 있네요. 수많은 순국선열의 동상은 1969년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지는데 박정희 정권이 만든 것은 아니고 애국선열 조상건립위원회라는 민간단체에서 만든 동상입니다. 당시 성금을 모아서 만들었는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작은 동산 및 숲이 있네요. 전형적인 근린공원인데 꽤 규모가 있어서 한바퀴 도는 산책로도 있습니다. 정조의 큰아들은 5살에 돌아가셨네요. 한창 귀여울 나이인데요. 문효세자의 무덤은 1944년 고양시 서삼릉으로 옮겨졌으며 이 문효세자 묘소 자리에 독립 선열인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삼의사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습니다. 공원은 아주 잘관리되어 있고 숲과 공원이 공존하는 느낌입니다. 여기가 숲이 있고 경치가 좋고 한강도 보여서 풍수지리로는 딱 좋은 위치이긴 하네요. 북한반공투사 위령탑도 있네요.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막혀 있더라고요. 이곳이 바로 백범 김구의 묘소입니다. 작은 정자 옆에는 책들이 놓여 있는데 활용도가 낮은데 저런 걸 많이 만들더라고요. 책도 다 오래된 책입니다. 이 책들이 도서관에서 폐기하려는 책을 여기에 놓는 것 같더라고요. 백범 김구의 묘소 앞에는 거대한 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가 문지기 역할을 하는 느낌입니다. 여기가 입구입니다. 단촐합니다. 꾸밈이 많지 않고요. 그래도 규모는 큽니다. 저 앞에 까지 갈 수 있습니다. 제단이 있습니다. 병풍 같은 소나무들이 가득하네요. 뒤늦게나마 여기를 찾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효창공원이 왜 여기 있을까? 궁금했는데 이게 다 이승만 대통령의 질투심 때문이라고 하네요. 이승만은 김구 선생님을 정적으로 여겼습니다. 아주 싫어했죠. 그래서 백범 김구 묘소 근처에 1956년 육군 공병대대를 불러서 효창운동장을 만듭니다. 친일파를 색출하는 반민특위를 박살 낸 것도 이승만입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악질 대통령이 이승만으로 심지어 현 윤석열보다 악질입니다. 조선에 선조가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있습니다. 한국 역사를 들여다 보고 공부하면 얼마나 무능하고 악질적인 행동을 많이 했는지 셀 수가 없습니다. 물론 독립운동을 한 독립투사였지만 문제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한 행동들이 문제입니다. 효창운동장은 원래 종합운동장으로 지으려고 했지만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반대를 해서 그나마 규모가 축소되어서 종합운동장은 되지 못합니다. 참 못난 대통령입니다. 효창공원 백범 묘지에 참배자들이 늘자 민심이 자꾸 현 대통령이 아닌 돌아가신 백범에게 쏠리자 효창운동장을 만들었다고 하죠. 그러나 역사는 백범에게 향했고 여기에 백범 기념관이 만들어집니다. 백범 김구 기념관은 꽤 웅장하고 규모가 큰 기념관입니다. 그런데 이 기념관 누가 어떤 대통령 때 만들었을까요? 바로 김대중 대통령시절 지어지기 시작해서 2002년 완공합니다. 올 연말까지 보수 공사를 한다고 하네요. 안에 들어갔다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사진으로 담아왔는데 따로 소개하겠습니다. 친일정권 2024년 윤석열 정부 많은 것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국가 전체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드는 생각은 다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IT 전시회에서 최신 첨단 기술을 소개하는 코너에서 들어보고 물어보면 연구를 하는 중인데 연구비가 끊겨서 더 연구를 못하고 있다는 소리를 수시로 듣고 있습니다. 여기에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에도 친일은 금기시된 단어였는데 2024년 윤석열 정권은 대놓고 친일을 하고 보훈부가 친일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광복회장과 각을 세우고 있고 일본에 대한 비난을 하지도 못합니다. 나라가 어떻게 이렇게 망가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이 블로그에서 정치 이야기 끊은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해봐야 세상 바뀌는 것도 아니고 악플이나 달리고 내 만족이라서 안 쓰고 앞으로도 안 쓸 생각이지만 이렇게 한 번은 쓰고 가야겠습니다. 내 평생 이런 무능한 정권은 처음입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도 견뎠지만 이 무능하고 무식한 정권은 견딜수가 없네요. 마치 고종과 민비의 시대 갔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한 이승만 정권 같기도 합니다. 자신의 정적이고 대통령인 이승만 보다 죽은 백범 김구 묘소에 참배객이 많다면서 질투심에 효창운동장 만들어서  운동장 주변에서 노상방뇨하고 술 쳐 먹고 노는 꼬라지를 만든 이승만 정권까지 오버랩되네요. 뭐 지금은 동네 운동장으로 전락했고 이북5도 체육대회나 치르는 경기장이지만 참 불경스러운 운동장이 효창운동장이네요. 마치 일제가 창경궁에 동물 집어넣어서 창경원으로 만든 것을 벤치마킹한 이승만 같네요. 국부? 웃기는 소리죠. 대한민국을 제대로 한 번 말아 드신 이승만 정권이고 이제는 그 바통을 윤석열 정권이 받아서 달리고 있네요. 사람이 발전을 안 하니 역사도 발전을 안 하고 한국인들이 과연 발전하는 나라의 국민성을 가졌나 하는 의심이 드는 요즘입니다. 요즘 분위기가 오히려 90년대보다 못하다면 말 다했죠. 적어도 90년대는 염치라도 있었던 시대였는데요. 지금은 염치가 사라진 사회입니다.

청와대 단풍 맛집은 상춘재 주변 그러나 늦게 익는 중

사진은 권력이다|2024년 11월 17일|사진

9일 전인 11월 8일 금요일에 청와대에 갔습니다. 청와대를 다시 찾은 이유는 청와대에 멋진 단풍 공간이 있기 때문이죠. 청와대 자체는 엄청나게 큰 공간은 아니지만 그 부속 건물까지 포함하면 꽤 큽니다. 예를 들어 청와대 춘추관은 기자 회견 장소로 유명하죠. 이번 대통령의 담화를 보면서 무슨 초등학교 교실에서 기자회견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국가의 품위는 행사장의 규모와 품격에서 나오는데 너무 초라해서 나라가 왜 이렇게 망가졌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든 다시 청와대로 갈 확률이 높기에 정권 바뀌기 전에 청와대 꾸준히 담아볼 생각입니다. 청와대 단풍 공간은 입구에서 오른쪽 상춘재 주변 청와대에 들어간 후에 바로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이 길이 나옵니다. 벤치가 가득한 이 공간이 청와대 최고의 단풍 공간입니다. 청와대 자체는 단풍나무가 많은 곳이 아니고 여기 상춘재 주변이 청와대의 녹지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해외 정상들이 방한하면 여기서 담소를 나누기도 하죠. 공간 자체가 주는 운치가 너무 좋아서 한국의 단아한 한옥과 풍광을 잘 볼 수 있습니다. 11월 8일 금요일에 갔는데 단풍이 이제 막 시작하네요. 예년보다 2주 이상 느린 단풍 속도입니다. 사진들이 여기가 상춘재 주변인지 아닌지 몰라서 지도를 먼저 띄웁니다. 여기는 상춘재라는 ㄱ자로 된 작은 한옥 전각에서 9시 방향 작은 숲입니다. 여기는 그나마 단풍이 꽤 들었네요. 위 사진 속 잔디밭 한 가운데 있는 나무 뒤쪽에 상춘재가 있습니다. 정작 상춘재는 사진으로 안 담았네요. 올해는 정말 역대급 더위 때문에 가을도 늦게 도착했네요. 상춘재 주변에는 단풍나무가 꽤 있습니다. 서울 4대 고궁에도 단풍나무가 참 많아요. 특히 창덕궁, 창경궁이 많은데 여기 청와대도 경복궁의 일부였다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관저를 만들면서 경복궁에서 벗어났죠. 터가 안 좋다 뭐라 해도 방어하기 좋고 기밀성이 좋아서 여기가 딱 좋습니다. 매일 같이 출퇴근하는 대통령으로 인해 수시로 한남로가 통제당하는 시민 불편도 없고요. 관저에서 청와대까지 걸어서 10분 컷입니다. 대통령 출근한다고 우리가 불편할 거 하나 없습니다. 뭐 한 여자 대통령은 수요일마다 관저에서 드라마 보기도 했지만 공간 자체는 너무 좋네요. 앞으로 3년 후에는 이곳을 다시 찾을 수 없어서 수시로 다녀보려고 합니다. 숲길인데 너무 예쁘네요. 말 안 하면 여기가 내장산인지 청와대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원래 여기 때문에 청와대를 다시 찾았습니다. 상춘재 바로 옆에 구름다리가 있고 계곡이 있습니다. 자연 계곡 같은데 이 주변에 단풍나무가 가득합니다. 이걸 사진으로 담으려고 다시 찾았는데 새파랗네요. 제 얼굴도 파랗게 질렸습니다. 또 와야 하잖아요. 그래서 다음 주 수요일에 또 가려고요. 정말 파랗네요. 11월 8일이 이정도인데 11월 중순인 지금은 좀 더 단풍이 들었을 것 같네요. 응달이 진 곳은 이렇게 새파랗게 피어 있어서 당혹스럽기까지 하네요. 청와대 상춘재 앞 휴게 공간 청와대 상춘재 녹지마당 맞은편에는 4층 짜리 높은 건물이 있습니다. 여기는 여민 1관이라는 건물입니다. 이 건물 1층과 2층을 전면 개방했습니다. 화장실도 여기에 있고 수유 시설도 여기에 있습니다. 너무 시설이 좋아서 작은 카페인가 했네요. 자판기 음료 마실 수 있고 음료를 마실 수 있지만 음식물 섭취는 안 됩니다. 냄새나잖아요. 입구에 직원 2명이 지키고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공부하는 분도 있네요. 사람도 없고 공부하기 딱 좋네요. 평일은 이런 상태입니다. 청와대 모형도 있습니다. 다시 상춘재 주변을 돌아봤습니다. 뭔가 풍성하면서도 아쉬운 올해 단풍입니다. 너무 느리게 들다 보니 이러다 첫눈이 먼저 내릴 듯 합니다. 상춘재 주변은 정말 잘 정돈된 계곡 느낌이네요. 이 계곡을 경복궁에서도 보면 좋으련면 여기가 상류라서 여기만 볼 수 있네요. 계곡에는 초가 지붕을 한 작은 정자가 있어서 더 운치가 있습니다. 단풍만 들면 금상첨화인데 아쉽네요. 그래도 여기 상춘재 뒤편 단풍은 많이 물들었네요. 다음 주에 또 가보고 또 사진으로 소개해봐야겠습니다.

청와대 단풍 맛집은 상춘재 주변 그러나 늦게 익는 중

사진은 권력이다|2024년 11월 17일|사진

9일 전인 11월 8일 금요일에 청와대에 갔습니다. 청와대를 다시 찾은 이유는 청와대에 멋진 단풍 공간이 있기 때문이죠. 청와대 자체는 엄청나게 큰 공간은 아니지만 그 부속 건물까지 포함하면 꽤 큽니다. 예를 들어 청와대 춘추관은 기자 회견 장소로 유명하죠. 이번 대통령의 담화를 보면서 무슨 초등학교 교실에서 기자회견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국가의 품위는 행사장의 규모와 품격에서 나오는데 너무 초라해서 나라가 왜 이렇게 망가졌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든 다시 청와대로 갈 확률이 높기에 정권 바뀌기 전에 청와대 꾸준히 담아볼 생각입니다. 청와대 단풍 공간은 입구에서 오른쪽 상춘재 주변 청와대에 들어간 후에 바로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이 길이 나옵니다. 벤치가 가득한 이 공간이 청와대 최고의 단풍 공간입니다. 청와대 자체는 단풍나무가 많은 곳이 아니고 여기 상춘재 주변이 청와대의 녹지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해외 정상들이 방한하면 여기서 담소를 나누기도 하죠. 공간 자체가 주는 운치가 너무 좋아서 한국의 단아한 한옥과 풍광을 잘 볼 수 있습니다. 11월 8일 금요일에 갔는데 단풍이 이제 막 시작하네요. 예년보다 2주 이상 느린 단풍 속도입니다. 사진들이 여기가 상춘재 주변인지 아닌지 몰라서 지도를 먼저 띄웁니다. 여기는 상춘재라는 ㄱ자로 된 작은 한옥 전각에서 9시 방향 작은 숲입니다. 여기는 그나마 단풍이 꽤 들었네요. 위 사진 속 잔디밭 한 가운데 있는 나무 뒤쪽에 상춘재가 있습니다. 정작 상춘재는 사진으로 안 담았네요. 올해는 정말 역대급 더위 때문에 가을도 늦게 도착했네요. 상춘재 주변에는 단풍나무가 꽤 있습니다. 서울 4대 고궁에도 단풍나무가 참 많아요. 특히 창덕궁, 창경궁이 많은데 여기 청와대도 경복궁의 일부였다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관저를 만들면서 경복궁에서 벗어났죠. 터가 안 좋다 뭐라 해도 방어하기 좋고 기밀성이 좋아서 여기가 딱 좋습니다. 매일 같이 출퇴근하는 대통령으로 인해 수시로 한남로가 통제당하는 시민 불편도 없고요. 관저에서 청와대까지 걸어서 10분 컷입니다. 대통령 출근한다고 우리가 불편할 거 하나 없습니다. 뭐 한 여자 대통령은 수요일마다 관저에서 드라마 보기도 했지만 공간 자체는 너무 좋네요. 앞으로 3년 후에는 이곳을 다시 찾을 수 없어서 수시로 다녀보려고 합니다. 숲길인데 너무 예쁘네요. 말 안 하면 여기가 내장산인지 청와대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원래 여기 때문에 청와대를 다시 찾았습니다. 상춘재 바로 옆에 구름다리가 있고 계곡이 있습니다. 자연 계곡 같은데 이 주변에 단풍나무가 가득합니다. 이걸 사진으로 담으려고 다시 찾았는데 새파랗네요. 제 얼굴도 파랗게 질렸습니다. 또 와야 하잖아요. 그래서 다음 주 수요일에 또 가려고요. 정말 파랗네요. 11월 8일이 이정도인데 11월 중순인 지금은 좀 더 단풍이 들었을 것 같네요. 응달이 진 곳은 이렇게 새파랗게 피어 있어서 당혹스럽기까지 하네요. 청와대 상춘재 앞 휴게 공간 청와대 상춘재 녹지마당 맞은편에는 4층 짜리 높은 건물이 있습니다. 여기는 여민 1관이라는 건물입니다. 이 건물 1층과 2층을 전면 개방했습니다. 화장실도 여기에 있고 수유 시설도 여기에 있습니다. 너무 시설이 좋아서 작은 카페인가 했네요. 자판기 음료 마실 수 있고 음료를 마실 수 있지만 음식물 섭취는 안 됩니다. 냄새나잖아요. 입구에 직원 2명이 지키고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공부하는 분도 있네요. 사람도 없고 공부하기 딱 좋네요. 평일은 이런 상태입니다. 청와대 모형도 있습니다. 다시 상춘재 주변을 돌아봤습니다. 뭔가 풍성하면서도 아쉬운 올해 단풍입니다. 너무 느리게 들다 보니 이러다 첫눈이 먼저 내릴 듯 합니다. 상춘재 주변은 정말 잘 정돈된 계곡 느낌이네요. 이 계곡을 경복궁에서도 보면 좋으련면 여기가 상류라서 여기만 볼 수 있네요. 계곡에는 초가 지붕을 한 작은 정자가 있어서 더 운치가 있습니다. 단풍만 들면 금상첨화인데 아쉽네요. 그래도 여기 상춘재 뒤편 단풍은 많이 물들었네요. 다음 주에 또 가보고 또 사진으로 소개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