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주부의 미국 여행과 생활 V2

Sources

Posts

620 posts

플로리다 올랜도 디즈니월드(Disney World)로 여름휴가! 첫날은 디즈니스프링스(Disney Springs) 구경

반응형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019년 11월에 결혼 20주년 기념여행으로 페루를 다녀온 후로는 미국내만 여행했기 때문에, 연초만 해도 올해 여름휴가는 가족이 함께 해외로 나갈 생각이었다. 여행지 1순위는 일찌감치 관광객들을 다시 받기 시작한 아이슬랜드였는데, 문제는 귀국시 PCR검사를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계획을 확정해야 할 때쯤 다시 코로나 변종이 많이 퍼지기 시작했고, 만에 하나 귀국일정에 차질이 생기면 지혜의 여름인턴 참여에 문제가 될 것 같아 포기했다. 그래서 '바다 건너' 여행의 차선책으로 PCR검사가 필요없는 미국령 푸에르토리코도 후보에 올랐지만 일일이 여행계획을 짜는게 너무 귀찮아서 결국... 아무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이, 비행기표와 숙소를 예약하고 입장권만 사면 모든 여행준비가 끝나는 곳으로 2022년 우리 가족의 여름휴가지가 최종 결정되었다. 버지니아 집에서 20분 거리인 덜레스 국제공항은 미국 수도인 워싱턴DC의 관문답게, 미국 50개 주의 주기(state flag)들을 터미널에 걸어 놓았다. 반가운 캘리포니아 곰돌이도 보이고, 이제 타는 비행기가 경유하는 주와 최종 목적지인 주의 깃발도 모두 보인다. 덜레스 공항은 작년에 1차 대륙횡단을 마치고 비행기로 LA로 돌아가기 위해서 한 번 이용한 적이 있지만, 순전히 여행을 위해 여기서 비행기를 타는 것은 처음이었다. "공항도 가깝고 좋은데, 앞으로는 좀 자주 이용하도록 합시다~" 경유지는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최대도시인 샬럿(Charlotte)이었는데, 우리가 내린 터미널B에는 특이한 벽화들이 많이 그려져 있었다. 조명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가게 간판의 도시명 'O' 대신에 왕관이 들어가 있는데, 도시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 영국 국왕 조지 3세의 왕비였던 샤를로테의 이름을 따왔기 때문이란다. 샬럿은 뉴욕 다음가는 금융 중심지이자 아메리칸 항공의 허브공항이 위치해 있었다. 경유시간이 꽤 있었지만 캐리어를 끌고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은 힘들 것 같아서, 우리는 그냥 공항에서 점심을 사먹고는 한참을 그냥 기다린 후에 오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최종 목적지로 향했다. 플로리다 올랜도(Orlando) 국제공항에서 찍은 사진은 이 흔들린 것 하나 뿐인데, 올랜도가 나를 그리워했다는 말이 팍 와닿았다. 왜냐하면 우리 가족은 9년전인 2013년 봄방학때 플로리다 여행을 하면서 올랜도를 방문해, 왼편의 3곳 중에 제일 아래에 있는 유니버셜만 딱 하루 구경을 했었기 때문이다. 우버를 타고 도착한 숙소는 이렇게 멋진 풀이 내려다 보이는 3층의 방이었다. 하지만 여러 밤을 숙박하는 내내 한 번도 저 풀장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했었다는 사실...^^ 호텔의 로비에는 디즈니에서 놀이공원을 꾸미고 남아서 여기에 기증했는지, 스타워즈 영화에 나오는 드로이드 하나가 놓여있었다. "마침내 내가... 이제 딱 3일만 더 기다리면 된다!" 디즈니월드 앱으로 저녁 8시 식사를 예약한 식당이 있는 디즈니스프링스(Disney Springs)로 걸어가는 동안에는 비가 내렸다. 우리가 숙박하는 곳은 디즈니 직영의 리조트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걸어서 디즈니스프링스를 갈 수 있는 거리로, 우리는 이미 디즈니월드 세상에 들어와 있는 셈이었다. LA로 치자면 다운타운디즈니(Downtown Disney)와 같은 쇼핑몰이라 할 수 있는 디즈니스프링스는 당연히 입장권을 살 필요는 없지만, 입구에서 보안검색을 통과해야만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레이크부에나비스타(Lake Buena Vista)를 끼고 만들어진 이 곳은 도합 200개에 가까운 점포와 식당, 놀이시설 들이 모여있어서 그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레고로 만든 용이 분수대 속을 헤엄치고(?) 있는 모습이 눈에 확 들어와서 건너편 레고스토어로 향했지만, 줄을 서야만 입장이 가능해 내부 구경은 그냥 생략하고, 밖에 만들어 놓은 레고들만 구경을 했다. 에 등장하는 이 미키마우스 외에도 의 엘사, 안나와 울라프, 그리고 의 카일로렌 등이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특별히 무엇을 살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예의상 들어가봐야 할 것 같았던 월드오브디즈니(World of Disney) 기념품가게 입구에서 사진 한 장 찍고 안으로 들어갔다. 앞쪽에 안내판이 보이지만 디즈니월드 앱에 신용카드를 입력하면, 자신이 직접 제품의 바코드를 찍어서 결제를 한 후에, 영수증에 해당하는 QR코드를 출구의 직원에게 보여주고 그냥 나가면 되는 모바일체크아웃(mobile checkout)이 가능했다. 또 물류문제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대부분의 제품에는 1인당 2개까지만 구입이 가능하다는 안내가 적혀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내일이면 직접 보게 될 매직킹덤의 신데렐라 성의 모형 앞에서 모녀가 사진을 찍었는데, 성의 중앙에 50이라는 숫자가 보인다. 디즈니월드의 첫번째 테마파크로 1971년 10월에 처음 문을 열었으니까 정확히는 작년이 50주년이지만, 코로나 사태의 영향으로 올해말까지 50주년 행사를 연장했다고 한다. 이제 예약해 둔 레스토랑을 찾아가는데, 먹구름 아래로 나온 태양이 플로리다의 후덥지근한 햇살을 비추고 있다. 파라디소37(Paradiso 37) 식당에 도착을 했는데, 아직 예약시간이 멀어서 체크인이 되지를 않았다. 숫자 37은 아메리카 대륙의 37개 나라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냥 이것저것 다 파는 아메리칸스타일 레스토랑이다. 시간이 남아서 코카콜라 매장에도 들어가서 잠시 구경을 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름휴가 동안에 코크 참 많이 마셨다~ 식당으로 돌아와서 테이블이 준비되는 동안에 호숫가 열기구를 배경으로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화상통화로 안부를 전하고 있는 모녀의 모습이다. "건강히 잘 놀다 갈게요..." 우리가 선택한 메뉴는 나초와 타코, 그리고 백립이었는데, 창밖으로 바로 호수가 보이는 최고의 자리로 안내되었다. 거의 모든 것이 완벽한 저녁식사였는데, 딱 하나 문제점은 바로 옆 테이블의 아이들이 너무 산만하게 뛰어다녔다는 것... 다행히 식사 중간쯤에 그 가족들이 나가서, 이후로는 퍼펙트~^^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완전히 깜깜해졌는데, 디즈니스프링스 중앙의 무대에서는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조명이 들어와서 훨씬 멋있어진 호숫가를 더 돌아다닐까 했지만, 내일부터 시작될 울트라 강행군을 위해서 숙소로 돌아갔다. 여름휴가를 온 건지? 전투를 하러 온 건지? 비장한 각오를 하며 잠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으로 플로리다 올랜도 남서쪽에 위치한 월트디즈니월드(Walt Disney World)를 간단히 소개하면, 앱의 지도에 위와 같이 표시되는 4개의 별도 테마파크가 있고, 저 안에 수 많은 디즈니 직영의 리조트와 골프장, 별도의 물놀이 시설 등이 모여있는 그야말로 하나의 '세계(world)'이다. 제일 오른쪽에 파란 점으로 우리가 자는 곳이 표시되어 있는데, 위에 표시된 영역의 동서 길이가 약 12 km나 된다! 단 2개의 테마파크가 정문을 마주보고 있는 LA 디즈니랜드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라서, 파크호퍼(Park Hopper) 티켓을 구입했다면 공원간의 이동은 버스나 모노레일을 이용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에 한 곳만 방문하는 티켓으로 구입을 했고, 다음날 매직킹덤을 시작으로 '1일1팍 공원깨기'가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휴가가 아니라 전투를 하러 온 것이 맞는 듯^^)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보스턴 1박2일 왕복에서 유일하게 들린 곳인 펜실베니아 허쉬초콜릿월드(Hershey's Chocolate World)

반응형 지난 3월 봄방학때 처음으로 워싱턴DC에서 보스턴까지 750 km를 1박2일로 운전해서 올라간 것과, 또 지혜를 픽업해서 2박3일로 여행하며 내려온 것을 이미 소개해드렸었다. 두 달이 지나서 여름방학을 한 지혜가 기숙사의 짐을 모두 빼야해서, 또 다시 차를 몰고 보스턴까지 그 먼거리를 그냥 1박2일만에 빡세게 왕복을 했는데... 우리 가족 여름휴가 여행기의 프롤로그로, 둘쨋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린 펜실베니아 주의 관광지 한 곳을 보여드린다. 그 전에 먼저 첫쨋날의 사진 한 장만 보여드리면, 토요일 오후 3시반에 출발을 해서 밤 9시반에 기름을 넣고있는 여기는 코네티컷 주의 뉴타운(Newtown)이라는 시골 마을인데, 10년전에 발생했던 가장 슬프고 끔직했던 총기난사 사건으로 어린이들이 희생되었던 샌디훅(Sandy Hook) 초등학교가 있는 곳이었다. 원래 계획은 지난 번처럼 이쯤에서 숙박을 하는 것이었는데, 전날 예일 대학교가 졸업식을 해서 그런지 적당한 가격의 방이 부근에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2시간여를 더 운전해서 자정 가까운 시간에 보스턴 근교까지 가서 숙박을 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일찍 지혜의 기숙사로 가서 짐을 뺄 수가 있었다. 원래 계획은 추가로 1박을 하면서 근처의 다른 여행지들을 둘러보고 월요일에 집에 돌아가는 것이었지만, 곧 비행기를 타고 여름휴가를 떠날건데 굳이 1박을 더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아서, 집으로 그냥 바로 내려가기로 했다. 대신에 경로를 조금 돌아가더라도 일부러 내륙쪽으로 잡아서, 이제부터 보여드리는 '달달한 여행지' 한 곳을 잠깐이라도 들러서 구경하기로 했다. 펜실베니아의 주도인 해리스버그(Harrisburg) 동쪽에 있는 허쉬초콜릿월드(Hershey's Chocolate World)는 1894년에 창업한 미국 허쉬 초콜릿 회사의 첫번째 공장이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비지터센터로 1973년에 문을 열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소나기가 내리던 날씨라서 모녀가 우산을 받쳐쓰고 입구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허쉬초콜릿월드는 이 곳을 시작으로 해서 현재 전세계에 5곳이 있는데, 나머지는 차례로 라스베가스 스트립, 나이아가라 폭포, 뉴욕 타임스퀘어, 그리고 아시아 싱가포르에 만들어졌다. 반짝이는 포토부스에서 사진을 찍는 방문객들인데,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찍어 준 후에... 허쉬스(Hershey's), 키세스(Kisses), 리세스(Reese's) 마스코트들과 함께 사진을 부탁해서 찍었다~ 비지터센터 관람과 잠시 후 소개할 투어는 무료이지만, 나머지 여러 체험이나 4D영화 등은 유료이기 때문에 여기서 티켓을 구입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차피 시간도 별로 없었기에 그냥 이렇게 달달한 초콜릿 향기가 가득 풍기는 기념품 코너를 구경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가게 안에는 여러 초콜릿 제품과 관련된 많은 상품들을 살 수 있는데, 여기는 허쉬에서 1907년부터 자체적으로 개발해서 판매하기 시작한 작은 원뿔형의 초콜릿인 키세스(Kisses) 관련상품 진열대이다. 의외로 허쉬 회사에서 가장 매출액이 많다는 리세스 피넛버터컵(Reese's Peanut Butter Cups)은 1923년에 Harry Burnett Reese라는 사람이 개발한 것인데, 1963년에 허쉬가 그의 회사를 인수했다고 한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기다랗고 말랑말랑한 캔디인 트위즐러(Twizzlers)도 1929년에 다른 회사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역시 1982년에 허쉬가 합병을 했단다. 재미있는 것은 위기주부도 좋아하는 이 킷캣(Kit Kat)인데... 이 또한 다른 회사의 제품으로 1969년부터 허쉬가 라이센스를 받아서 생산과 판매를 해왔는데, 문제는 그 회사가 1988년에 허쉬의 경쟁사라 할 수 있는 유럽의 네슬레(Nestlé)에 인수가 된 것이다. 하지만 허쉬의 라이센스는 계속 유효하기 때문에 미국내의 킷캣은 지금도 허쉬의 제품이라는 사실...! 캔디머신에 들어있는 작은 알갱이들도 모두 허쉬에서 생산하는 제품들과 관련이 있는 알갱이들로 채워져 있었다. 앞서 소개한 전세계 5곳의 허쉬초콜릿월드들 중에서도 여기 발생지에만 있는 투어를 하기 위해서 입구로 들어가고 있는데, 벽에 그려진 인상 좋은 노신사가 바로 밀턴 허쉬(Milton S. Hershey)이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이 투어가 우리 가족 여름휴가의 전초전이라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투어로 향하는 기다란 통로를 따라서 2층으로 올라가니까, 이렇게 기념품 매장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는데, 기둥과 벽면을 허쉬바처럼 만들어 놓은 것도 눈에 띄지만, 무엇보다도... 이 계산을 기다리는 기다란 줄... 기념으로 뭐 하나 사려고 해도,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를 했다.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서인지 통로에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서 끝까지 바로 걸어갔는데,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놀이공원에서 볼 수 있는 탑승형 어트랙션으로 움직이는 차에 타고 초콜릿이 생산되는 과정을 정말 최신의 모형과 화면으로 보여주었다. 전체 9분 정도로 조금 길지만 유튜브 동영상을 클릭해서 보시면 투어 전체의 내용을 직접 확인하실 수 있다. 탑승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는 작은 허쉬바를 우리에게 하나씩 챙겨주는 것도 잊지 않아서 정말 즐거웠다. 울트라 사이즈의 키세스 초콜릿을 들고있는 모녀~ 이외에도 커다란 랩탑만한 허쉬바와 사람 얼굴만한 리세스 등도 사서 먹을 수가 있다. 구경을 마치고 입구 옆에 세워진 키세스 자동차 앞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오른쪽 뒤로 보이는 두 개의 굴뚝은 실제 1903년에 여기 만들어진 공장의 일부이다. 왼쪽 뒤의 노란색은 놀이동산인 허쉬파크(Hersheypark)의 롤러코스터로 이외에도 커다란 스타디움과 공연장 등이 모여있는 이 마을의 이름도 허쉬(Hershey)이다. 초콜릿을 정말 좋아하는 분이 아니라면 일부러 찾아갈 필요까지는 없지만, 지난 번에 소개했던 아미시빌리지(Amish Village)와 게티스버그(Gettysburg)에서 가까우므로 충분히 함께 둘러볼만한 곳이다. P.S. 블로그에 정치/사회적인 이슈나 의견은 쓰지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첫번째 사진 아래에 샌디훅 이야기를 해놓고 보니, 어제 또 텍사스의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로 4학년 어린이 19명과 선생님 2명이 사망한 사건을 모른척 할 수가 없네요~ 나이가 18세만 되면 순식간에 수십명을 죽일 수 있는 자동소총을 아무나 구입할 수 있는 나라, 하지만 헌법이 보장한 무장의 권리라는 이유로 총기규제가 절대로 불가능한 나라인 미국... 정말 과격한 말을 여기에 쓰고싶지만 참기로 하고, 이유없이 희생당한 아이들과 선생님의 명복을 빌 뿐입니다. T_T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두 번의 대륙횡단을 통틀어 가장 추억에 남는 점심식사를 한 곳인 키바 커피하우스(Kiva Koffeehouse)

반응형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참 신기해서... 바로 얼마 전까지 잘 알던 내용이 도무지 생각이 안 날 때가 있고, 또 그 반대로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이 갑자기 또렷이 떠오를 때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09년에 딱 한 번 달려봤던 그 길을, 작년에 2차 대륙횡단을 하며 다시 지나가면서, 참으로 그 때 미서부 30일 여행의 많은 추억들과 또 잊어버리고 있던 소중한 인연도 모두 함께 갑자기 생각이 났다. 브라이스캐년 관광을 마치고 미국의 '국민도로(All-American Roads)' 중의 하나인 유타 12번 도로를 동쪽으로 조금 달리니, 국토관리국(Bureau of Land Management, BLM) 소속의 준국립공원인 그랜드스테어케이스-에스칼란테 내셔널모뉴먼트(Grand Staircase-Escalante National Monument)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다리꼴 모양의 표지판이 나왔다. 12번 도로와 이 멋진 곳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과 함께, 13년 전에 위 사진과 똑같은 위치를 지나가면서 찍은 사진을 여기를 클릭해서 보실 수 있다. 그 때는 노란색 주의 표지판이 오른쪽으로 90도만 꺽여 있었는데, 지금은 180도 턴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나서 조금만 내려가니까 왼편에 넓은 주차장이 나왔는데, 입구가 비포장이라서 그냥 지나쳐야겠다고 생각한 그 짧은 순간에... "아! 여기가 홍사장님이 말한 그 커피집이구나~" 미리 가봐야겠다는 생각도 전혀 안 했었는데, 어떻게 그게 그 때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랐는지 지금도 신기하다. LA에서 트레킹 전문 여행사인 유니투어를 운영하시는 홍사장님과는 지난 몇 년간 존뮤어트레일(John Muir Trail, JMT)과 미서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오지로 하이킹을 함께 다녔었다. 위 사진의 리플렉션캐년(Reflection Canyon)을 찾아가는 3차 오지탐험 계획을 세웠던게 마지막 포스팅인데... "언제 다시 못 다한 JMT의 남은 구간들과 미서부의 오지들을 함께 또 찾아다닐 수 있을까요? 정말 그립습니다~" 대륙횡단 이삿짐을 가득 실어서 차체가 낮아진 승용차를 조심조심 비포장 주차장에 세우고는, 길을 따라 절벽 끝까지 내려와 보니 키바 오두막(Kiva Kottage)이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작은 숙소도 운영을 하는 모양인데, 영어 단어에서 일부러 'C' 대신에 'K'를 쓰는 것은 한글에서 가끔 '미국'을 '미쿡'이라고 쓰는 것처럼 어떤 사회적 의미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우리가 여기서 오늘 잘 것은 아니니까 다시 조금 걸어 올라와서, 홍사장님이 항상 이 길을 지나갈 때마다 들린다고 극찬했던 키바 커피하우스(Kiva Koffeehouse)에 들어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주문하는 아내의 모습을 대충 찍었더니, 한쪽 발을 들고 손가락을 찌르는 디스코 댄스타임이 되어버렸당~^^ 키바(Kiva)는 미서부 원주민들이 거주지 지하에 만든 동그란 방을 말하는데, 여기를 클릭하면 상세한 설명과 함께 진짜 키바에 들어가봤던 우리 가족의 모습을 보실 수 있다. 그래서 반원형의 카페 가운데에는 지상으로 올라가는 용도로 사용된 사다리도 하나 가져다 놓았다. 무엇보다도 어디서 이렇게 굵은 통나무와 통유리를 가져와서 멋지게 커피숍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정말 감탄이 계속 나왔다. 아내에 이어서 위기주부도 이번에는 자리에 앉아서 창밖으로 손가락을 찌르고 있다. 통유리창 밖으로는 에스칼란테 강(Escalante River)이 흘러오는 계곡을 따라서, 붉은 바위산 가운데가 노랗게 단풍이 들어 있었다. 왼쪽에 보이는 지붕은 앞서 보여드렸던 오두막 숙소인데 숙박비는 얼마나 할까? 두 번의 대륙횡단을 하면서 사먹었던 여러 점심식사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 날의 메뉴이다. 커다란 샌드위치와 머핀에 라떼 한 잔... 사이좋은 우리 부부는 모두 절반씩 나누어서 먹었다~^^ 테이블 유리 아래에 깔려있는 종이는 그랜드스테어케이스-에스칼란테 준국립공원의 지도였다. "자~ 사진 다 찍으셨으면 이제 먹어도 됩니까?" 아침을 작은 컵라면 하나로 먹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풍경과 분위기에 취했는지? 반년이나 지나서 구체적인 기억은 없지만 음식과 커피도 무조건 맛있었을거라는 추측(?)만 남아있다. 그렇게 잊을 수 없는 식사를 마치고, 반대편으로 나가보니 야외 발코니가 만들어져 있어서 또 잠시 앉아봤다. 잠시 후 우리가 또 달릴 도로로 트럭을 개조한 작은 캠핑카 한 대가 내려가고 있다. "그냥 우리도 저런 차 한 대 장만해서, 다 잊고 떠돌아 다녀볼까?" "우리는 안 싸우고 잘 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면서 다시 출발~ 2009년의 30일 여행 때, 에스칼란테 강을 건너는 다리 직전에 똑같은 위치에서 찍었던 사진을 작게 출력해서 기념품 자석을 만들어서 냉장고에 붙여 두었었다. 여기 주차를 하고 조금 전에 카페 창밖으로 봤던 상류쪽으로 하이킹을 하면 멋진 내츄럴브리지(Natural Bridge)도 볼 수가 있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서는 지류인 Calf Creek을 따라 도로가 이어지는데, 이 쯤에서 나오는 주차장에 주차하고 개울을 따라 하이킹을 하면 또 멋진 로워캐프크릭 폭포(Lower Calf Creek Falls)가 나온다고... 훗날 다시 이 도로를 달릴 때는 모두 다 직접 꼭 가봐야지~ 처음 링크한 13년전 포스팅의 마지막에 보시면, 선글래스를 낀 젊은 위기주부가 이 근처 전망대에서 찍었던 에이스크래커 광고사진을 보실 수 있다. 이제는 노안이 와서 더 이상 콘택트렌즈를 못 하기 때문에, 그런 멋진 선글래스를 다시 쓸 수가 없다... 흑흑 볼더(Boulder) 마을을 지나서 마지막으로 해발 2,700미터가 넘는 고개를 넘어갈 때는 길가에는 하얀 눈이 보였고, 노란 아스펜 단풍은 거의 다 떨어지고 끝자락만 아슬아슬 매달려 있었다. 산 넘어 토레이(Torrey) 마을에서 유타 12번 국민도로는 끝나고, 동쪽으로 우회전을 하면 '미서부와 이별여행'의 다음 목적지인 또 다른 내셔널파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P.S.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여름방학을 한 지혜를, 이 고유가 시대에 또 직접 차를 몰고 보스턴까지 올라가서 집으로 데리고 왔고, 우리 가족은 또 하나의 추억이 될 기억을 만들기 위해서 내일 비행기를 타고 여름휴가를 떠납니다. 3일마다 규칙적으로 올라오던 포스팅이 끊겼다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미리 알려드리며 5월말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남북전쟁 최초의 불런(Bull Run) 전쟁터인 매너서스 국립전장공원(Manassas National Battlefield Park)

반응형 미국의 남북전쟁은 링컨 대통령의 취임 직후인 1861년 4월 12일 새벽에, 이미 연방을 탈퇴한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계속 연방군이 주둔하고 있던 섬터 요새(Fort Sumter)를 남군이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일방적인 포격을 받은 요새의 지휘관이 다음 날 오후에 남군에 항복을 하고 요새를 내어주었기 때문에, 남과 북 사이에 직접적인 교전은 없었다. (북군이 철수하는 과정에서 예포를 발사하다가 대포가 폭발하는 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한 것이 남북을 통틀어 첫번째 인명 피해임)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은 그로부터 약 3개월 후에 북부 버지니아에서 시작되었다. 대지가 완전히 초록으로 물들기 시작했던 지난 4월에, 버지니아 최대의 한인타운인 센터빌(Centreville)의 서쪽에 있는 게인스빌(Gainesville)에 일이 있어서 다녀오는 길에 그 두 마을의 사이에 있는 매너서스 국립전장공원(Manassas National Battlefield Park)을 방문했는데, 집에서는 30분 정도 거리이다. 국립공원청에서 관리하는 군사공원의 한 종류인 배틀필드파크(Battlefield Park)는 전적지공원 또는 전쟁터공원으로 부를 수도 있지만, 이 블로그에서는 그냥 전장공원(戰場公園)으로 한 글자 줄여서 부르기로 한다. 나무들 사이로 보이던 하얀 건물은 헨리힐 비지터센터(Henry Hill Visitor Center)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이 전쟁터는 1861년 7월 21일에 미국 남과 북의 첫번째 불런 전투(First Battle of Bull Run)가 벌어진 곳으로, 황소가 달리는 곳이 아니라 미동부에서는 물이 흐르는 개울을 '런(run)'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번역하자면 황소개울 싸움... 안내데스크 뒤로 공원의 지도가 보이는데, 우리는 비지터센터 뒤쪽 들판만 돌아보는 짧은 트레일을 했기 때문에, 전체 공원지도를 따로 보여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참고로 공원 서쪽에서 이듬해인 1862년 8월에도 전투가 벌어져서, 두 전쟁터를 묶어서 하나의 국립공원으로 관리가 되고 있다. 10시가 조금 지났는데 안내영화는 11시 정각에 시작한다고 해서, 트레일을 먼저 하고와서 보기로 했다. 비지터센터 뒷문으로 나오니 푸른 초원 너머로 옛날 건물들과 기념비가 나무 난간과 함께 만들어져 있고, 그 너머로는 하얀 천막들도 많이 보였다. 무엇보다도 우리 부부가 반가워 했던 것은... 이 대포들이다~ 지난 번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Gettysburg National Military Park)에서 대포와 사랑에 빠지신 사모님... 안 말리면 그대로 주차장까지 끌고 가서 우리 차 뒤에 붙들어 메고 집으로 가지고 가실 것 같았다.^^ 대포들이 잘 나와야 한다고, 커플셀카를 몇 번이나 찍었는지 모른다. 아내가 쓰고있는 모자는 "Parents of 23"이라는 뜻인데, 정말로 내년이면 벌써 딸이 대학교 졸업이다. (미국은 한국과는 달리 입학연도가 아니라 졸업연도로 학년을 구분함) 불런 기념비(Bull Run Monument)는 4년간의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인 1865년에 6월에, 여기 헨리힐의 유해를 수습하는 임무를 맡았던 연방군 병사들이 3주만에 만들어서 세운 것으로, 남북전쟁과 관련된 기념물로는 최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하얀 천막이 만들어져 있던 곳에는 이렇게 옛날 복장을 하고 마차를 끌고 나와서 무슨 장사를 하시는가 했는데, 과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오신 분들은 이 두 명만이 아니었다! 각양각색의 군복을 입고 머스킷 소총을 든 19세기 남부연합군 병사들이 20여명이나 모여 있었는데, 그들을 지금 지휘하고 있는 사람은 21세기의 국립공원청 파크레인저...^^ 마침 일요일이라서 'Living History: Civilian & Infantry' 행사를 하는 것인데, 여름철에 매주 일요일마다 진행이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재연배우까지는 아니지만 진지한 모습의 사람들로 왠지 자원봉사같지는 않았다. 요 근래에 뮤지컬 해밀턴(Hamilton: An American Musical)이나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Bridgerton) 등의 역사극과 디즈니 영화에서도 인종불문 캐스팅이 유행이던데, 미국 남북전쟁 모습의 재연에 동양인도 받아줄까? 남부연합군과 함께 진군(?)하는 아내의 모습을 클릭해서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다. 비디오에서는 북소리도 나오고 마지막에는 아메리카 연합국(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의 펄럭이는 깃발도 보실 수 있다. 저 분은 업무시작과 동시에 잔디밭에 드러누웠는데, 아마도 누워서 휴식하는 병사가 자신이 맡은 배역일 수도 있겠다.^^ 조금 주변을 둘러보다가 루프트레일도 다 돌지 않고, 비지터센터 근처에 있는 가장 유명한 동상을 보러 가기로 했다. 참, 이 때는 몰랐는데 11시 정각에 병사들이 머스킷(musket) 소총을 실제로 발사하는 재연행사를 했다고 하는데 직접 못 봐서 아쉬웠다~ 동상으로 걸어가는 길의 나무 아래에 있던 추모비 하나... 조지아 사바나(Savannah) 출신으로 켄터키 주의 부대를 이끌고 여기 버지니아에서 싸우다가, 이 자리에서 중상을 입고 사망한 Francis S. Bartow는 남북전쟁에서 최초로 사망한 남군의 장교라고 한다. 버지니아는 물론이고 미국 남부 곳곳에서 '스톤월(Stonewall)'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할 수 있는데, 바로 그 주인공이자 이 전쟁터에서 탄생한 스타라고 할 수 있는 남부연합의 토마스 잭슨(Thomas 'Stonewall' Jackson)의 동상이다. 한국에서도 뉴스 등을 통해서 본명보다는 오히려 '스톤월 잭슨'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고, 석벽(石壁) 또는 돌담 장군으로 번역해서 쓴 뉴스 기사나 글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동상의 반대편에는 잭슨에게 그러한 별명을 안긴 유명한 말이 씌여있는데, 북군에게 밀려서 후퇴하던 남군의 제3여단장이던 비(Barnard Elliott Bee, Jr.) 준장이 뒤쪽에 있던 버지니아 출신으로만 구성된 제1여단을 이끄는 잭슨 준장을 바라보며 아래와 같이 말했단다. "There is Jackson standing like a stone wall. Let us determine to die here, and we will conquer. Rally behind the Virginians!" 저기 잭슨이 돌담처럼 버티고 있다. 우리가 여기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반드시 이길 것이다. 버지니아인들을 지원하자! 돌담처럼 버티고 선 잭슨이 지휘한 남군은 지원군이 올 때까지 5시간 동안 북군의 공세를 막아낸 후 반격에 성공해서 남북전쟁 첫번째 전투는 남군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이 후 2년 동안 '스톤월 잭슨(Stonewall Jackson)'으로 불리며 셰넌도어 계곡 등에서 전설적인 지휘관의 면모를 보여주지만, 1863년 게티스버그 직전의 챈슬러스빌(Chancellorsville) 전투가 끝난 후에 어이없는 아군의 오인사격으로 사망한다. 만약 잭슨이 살아있었다면 게티스버그 전투의 첫날에 남군이 세메터리힐을 점령해서, 최소한 게티스버그 전투의 판도는 바뀌었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내가 동상 앞에서 찍은 사진의 왼편에 멀리 보이던 이 기념물은 바로 잭슨에게 '스톤월'이라는 별명을 선사한 비(Bee)의 추모비인데, 그는 위의 말을 한 직후에 여기서 사망했다. 일설에 의하면 그가 위와 같이 말한 것은 맞지만, 자신의 부대는 전방에서 싸우는데 잭슨은 도와주러 안 오고 뒤쪽에 "돌담처럼 우두커니 서있다"고 화가 나서 한 말이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몸통이 비틀어지고 위쪽도 부러진게 수령이 2백년은 넘어 보이니, 아마도 이 나무는 160년 전에 이 언덕에서 있었던 남북전쟁 최초의 전투를 직접 목격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비지터센터로 돌아갔다. 영화시간까지 좀 남아서 전시장을 먼저 둘러봤는데, 입구에는 남군 병사들의 순진한 얼굴이 부조로 새겨져 있고, 사진 왼쪽에 처참한 흑백사진과 함께 '순수의 종말(The End of Innocence)'이라고 씌여있다. 이 말은 잠시 후에 본 무려 45분 길이의 안내영화의 제목이기도 한데, 이 첫번째 전투에서 남과 북은 각각 약 3만명의 군인들이 동원되어서 연방군 약 3천명과 남부군 약 2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전투에 참가했던 남북의 여러 부대의 군복을 모형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당시에는 남과 북 모두 통일된 군복이 없었기 때문에 200종에 가까운 유니폼이 등장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군복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위 사진에서도 알 수 있지만 남부연합국의 깃발이 당시 미연방 국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아군인지 적군인지 멀리서는 도저히 구분이 불가능했단다. 결국 이 전투가 끝나고 남부연합은 군기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지금도 남부지역이나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집회에서 볼 수 있는 X자 모양의 남부연합기(Confederate Flag)이다. 마지막으로 1차 불런 전투의 진행상황을 보여주는 LED가 깜박이는 지도인데, 인적물적 자원이 우세했던 북군이 첫 전투에서 참패하면서, 남북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는 장기전이 된 것이다. (상세한 전쟁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이듬해인 1862년 8월에 벌어진 2차 불런 전투의 비지터센터와 기념비 등도 공원 서쪽에 따로 만들어져 있는데, 집에서 가깝기는 하지만 언제 또 방문해서 거기도 가 볼 수 있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미국의 독립선언서, 헌법, 권리장전 등이 전시되어 있는 국립 문서보관소(National Archives) 박물관

반응형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에는 처음부터 전시를 목적으로 지어진 박물관과 미술관들도 많지만, 다양한 관공서들이 고유한 업무의 목적으로 건설되었다가 그 일과 관련된 소장품들을 건물 일부에 전시관을 만들어 공개하는 장소도 많이 있다. 그러한 곳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또 내셔널몰에서도 가까워 방문하기에 좋은 곳이 바로 미국의 중요한 문서와 기록들을 수집 관리하는 기구인 NARA(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에서 운영하는 국립 문서보관소 박물관(National Archives Museum)이다. 내셔널몰의 국립미술관 조각정원 구경을 마치고, 북쪽으로 헌법가(Constitution Ave) 길을 건너면 바로 1935년에 완공되었다는 내셔널아카이브 건물(National Archives Building)이 서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일단 3월 이른 봄의 햇살이 너무 뜨거웠기 때문에, 길가 푸드트럭에서 파는 버블티 한 잔 사서 마시기로 했다. 모녀가 무슨 맛을 먹을까 열심히 의논하는 중... 복숭아 맛으로 고른 버블티를 들고 신전같은 건물의 입구에서 모녀가 사진을 찍었다. 기둥들 사이에는 3월 여성의 달을 맞아서 여성참정권과 관련한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배너가 걸려있다. 건물이 멋있어서 정면에서 광각으로 부녀사진도 한 장 찍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썰렁한거야~ 문 닫았나...?" 그게 아니라, 관람객들의 입구는 정면 계단의 왼쪽으로 따로 만들어져 있었다. 푸른색 바탕의 박물관 로고가 무슨 그림인가 했더니,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로 건물 정면 꼭대기 좌우에 만들어진 조각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입장하는 줄이 두 개로 나누어진 것이 보이는데, 그냥 기다려서 들어가는 사람들이 왼편에 서있고, 비어있는 오른편은 티켓을 예매한 사람들이 기다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줄이다. 여기를 클릭해서 recreation.gov 사이트에서 일인당 $1로 예매가 가능한데, 이 날 우리는 예매없이 5분 정도만에 들어갔지만 여름방학 성수기에는 30분 이상 기다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렇게 기다리고 있으면 가끔 하얀 제복을 입은 경비원이 나와서는 전시장은 사진촬영이 금지이므로 카메라와 핸드폰을 모두 가방에 넣으라고 했다. (미리 건물 외관 사진을 많이 올린 이유가 있었음^^) 또 형식적으로 가방 안을 살펴보는 다른 스미소니언 박물관들과는 달리,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면 비행기 탑승할 때와 같이 엑스레이 검색을 통과해야만 입장이 가능했다. 그래서 이하 아래의 사진들은 박물관이나 관련 사이트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1층 입구의 정면에는 David M. Rubenstein Gallery라고 명명된 '권리의 기록(Records of Rights)' 상설전시실이 있다. 데이비드 루벤스타인은 세계최대 사모펀드 중의 하나인 칼라일그룹(Carlyle Group)의 창업자인 억만장자로 2011년에 이 전시실을 새로 만드는데만 13.5백만불을 기부했는데, 그 뿐만이 아니라 사진 오른편에 보이는 노란색 특수 보관함에 들어있는 오래된 양피지 한 장을 2007년 경매에서 21.3백만불에 사서는 이 곳에 영구대여 형식으로 기증했다. 그 양피지는 바로 인권을 최초로 성문화한 문서이자 민주주의의 시초로 여겨지는 영국의 대헌장(大憲章),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로 1215년에 최초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1297년에 영국의 왕이었던 에드워드 1세의 인장이 달려있는 것이다. 이 외에 전시실 안에는 링컨이 서명한 노예해방(Emancipation Proclamation) 문서 등의 인간의 권리와 관련된 미국의 많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2층으로 올라가서 두꺼운 문을 밀고 들어가면 '자유의 헌장들(Charters of Freedom)'이라 불리는 중앙홀이 나오는데, 사진처럼 밝은 것이 아니라 굉장히 어둡고 실내온도가 뚝 떨어졌다! 좌우로 경비원이 지키고 있는 중앙에 4페이지로 된 헌법 원본이 있고, 그 왼쪽에 독립선언서, 오른쪽에 권리장전이 특수보관함에 전시되어 있는데, 이 사진에는 없지만 철문 앞에도 경비원이 지키고 서서는 홀 안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 빠지고 나면 조금씩 입장을 시키고 있었다. 각각 독립선언서와 헌법을 제출하는 장면을 상상으로 묘사한 중앙홀 좌우 둥근 벽면의 포크너 벽화(Faulkner Murals)는 캔버스를 벽에 부착해서 그린 그림으로는 미국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두워서 그림이 있는지도 잘 모를 정도였고, 모든 전시박스 앞에는 사람들이 빼곡히 서서 시계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이면서 관람을 하게 된다. 요즘 미국정치학 수업을 듣는 따님이 왼쪽 구석부터 모든 전시를 꼼꼼히 보신다고 해서, 시간이 한 참 걸려서야 1776년에 작성된 미국 독립선언서(Declaration of Independence) 앞에 설 수 있었다. 크게 씌여진 제목과 제일 윗줄의 문장 그리고 아래쪽 가운데 가장 크고 진하게 싸인한 존 핸콕(John Hancock)의 서명 이외에는 거의 읽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글자가 희미해졌는데, 옛날에 35년 동안이나 햇빛이 비치는 곳에 잘못 보관되어서 그렇다고 한다. 커다랗게 씌여진 "We the People"로 시작하는 1787년에 씌여진 미국 헌법(Constitution of the United States) 4페이지를 휠체어에 앉으신 분까지 총 4명만 보고 있지만, 현실은 우리처럼 제일 앞에서 빈틈을 주지 않고 여기까지 움직여 온게 아니라면 가까이서 직접 읽어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뒤에 서있는 사람들이 빈틈이 생기면 바로 침투해 들어옴^^) 또 사람들 뒤쪽에도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어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기만 해도 바로 제지가 들어왔다. 중요 3문서의 마지막으로 미국의 권리장전(Bill of Rights)은 헌법에서 빠진 인권 부분을 명시적으로 보완하기 위해 1789년에 이 문서로 12개 조항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그런데 이 문서의 첫번째와 두번째 조항은 주의회의 다수 동의를 받지 못해서 폐기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보통 수정헌법 1조(First Amendment)로 알고 있는 종교, 언론, 집희의 자유 등은 이 문서의 세번째 조항에, 또 미국의 총기옹호론자들이 성배처럼 여기는 무장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2조(Second Amendment)는 네번째에 씌여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I'm going to steal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한 2004년도 디즈니 영화 National Treasure 앞부분에 주인공이 독립선언서를 훔치기 위해서 문서보관소의 이 중앙홀을 사전답사하는 장면을 위에 보실 수 있다. (독립선언서를 지하 보관실에서 훔치는 장면과 뒷면에 그려진 암호와 지도를 찾는 장면 등의 편집본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이 영화는 중앙홀에서 열리는 파티 장면까지 모두 실제로 여기 문서보관소에서 촬영을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개봉 다음해에 방문객이 40%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중앙홀을 나오면 그 뒤쪽으로 출입문을 금고처럼 만들어 놓은 Public Vaults가 홀의 뒤를 한바퀴 돌면서 만들어져 있다. 이 외에도 작은 특별전시실을 잠깐 구경하고는 마지막으로 1층의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지난 번 국립 초상화 미술관 포스팅에서도 다른 여성 대법관들과 함께 있는 그림을 보여드렸던 "Notorious RBG"의 기념품 코너가 따로 만들어져 있었다. 미국 대법원 건물도 한 번 구경하러 가봐야 되는데, 지금은 낙태에 관한 판결문이 사전에 유출되어 이와 관련한 시위대들 때문에 접근이 불가능하도록 폐쇄된 상태이다. 위에 잠깐 소개했던 의 편집본을 보면, 진짜 독립선언서를 훔쳐서 돌돌 말아 양복에 숨긴 니콜라스 케이지가 여기 기념품가게를 통해서 밖으로 나가려다가 직원에게 들키는 장면이 나온다. 직원은 사진 아래에 보이는 가짜 기념품을 훔친 것으로 생각한 것이고...^^ 1776년에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장소인 필라델피아의 인디펜던스홀을 예전에 방문했던 여행기에서도 이 영화를 소개했었지만, 미국의 역사를 대중에게 알리는데 나름 크게 기여한 영화로 위기주부는 재미있게 봤던 것 같은데 왜 평점은 별로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