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주부의 미국 여행과 생활 V2

Sources

Posts

620 posts
의사당 기둥(Capitol Columns)과 분재 박물관 등이 유명한 워싱턴DC의 국립수목원(National Arboretum)

의사당 기둥(Capitol Columns)과 분재 박물관 등이 유명한 워싱턴DC의 국립수목원(National Arboretum)

지금은 한국 곳곳에 크고작은 많은 식물원과 정원 및 숲길 등이 관광지로 조성되었지만, 그 옛날에는 현재처럼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과의 첫번째 데이트 장소로, 삼촌한테서 물려받았던 당시 10년도 훨씬 더 된 수동기어의 88년형 엑셀(Excel) 승용차를 몰고 찾아갔던 곳이 바로 경기도 가평의 '아침고요수목원'이었다. 아마 그 때도 6월쯤이었던 듯 한데...^^ 머나먼 여기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미국의 국립수목원을 찾아가면서, 위기주부의 머리 속에는 계속 그 곳의 이름이 맴돌고 있었다~ 수도 워싱턴DC의 동쪽 애나코스티아(Anacostia) 강변에 1.8 ㎢ 면적으로 만들어진 국립수목원(National Arboretum)의 전체 지도를 먼저 보여드리는데, 역시 이런 장소의 안내도를 수채화풍으로 그리고 싶은 마음은 만국공통인가 보다. 우리는 정문에 해당하는 R Street Gate로 들어가서 일단 도로를 좀 더 달려서 지도 한가운데 쯤에 있는 볼거리를 먼저 찾아갔다. 그것은 생뚱맞게도 풀밭 너머로 보이는 저 커다란 기둥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무슨 폐허가 된 숲속의 유적지라 보기에는 바닥과 주변이 깨끗하고, 가운데 동그란 우물(?)에서 흘러나온 물이 아래에 보여드릴 연못으로 흘러가도록 일부러 만들어 놓기도 했다. 비록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처럼 반짝이는 대리석은 아니지만 무늬가 있는 사암(sandstone)을 깍아서 만들었고, 특히 꼭대기 부분은 코린트식(Corinthian)으로 아주 정교하게 공을 들여서 조각을 해놓았다. 여기 22개의 기둥들은 원래 1828년에 처음 완공된 미국 의사당((United States Capitol) 건물의 동쪽 현관에 세워졌던 것들이다. 그렇게 130년이 지나서 1958년에 현재의 대형 중앙돔을 포함한 확장공사를 계획하면서, 이 사암으로 만든 기둥들은 충분히 튼튼하지 않다고 판단되어 철거되었고, 1980년대까지는 조각으로 분리되어서 그냥 창고에 보관이 되었단다. 정확히 25년전의 그 엑셀 옆자리에 탔던 분과 찍은 커플셀카 한 장 보여드리고...^^ 그러다가 국립수목원 후원자들의 노력으로 이 자리에 1990년에 새로 이렇게 기둥들만 멋지게 다시 세워져 햇살을 받고 있는 것이란다. 여기를 클릭해서 보실 수 있는 재작년 미의사당 방문기 중에 현재의 동쪽면 사진이 있는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지금의 기둥과 크기와 높이 및 꼭대기의 코린트 장식과 하단부 디자인이 완전히 똑같은 것을 확인하실 수 있다. 그렇게 일단 차로 한바퀴 돌고나서, 다시 들어왔던 입구쪽에 주차를 하고 비지터센터를 통과해서 건너편의 정원으로 향했다. 참고로 국립수목원은 미국 농무부(U.S. Department of Agriculture)에서 관리하는 시설이다. 건물 뒷편은 최근에 리모델링을 마쳤다는 워터가든(water graden)으로 둘러싸여 있어 다양한 수생식물들을 볼 수 있는데, 사람 머리만한 엄청나게 큰 연꽃이 하나 피어 있었고, 사진에는 한 마리만 나왔지만 많은 비단잉어(Japanese koi)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향기로 가득한 허브가든(herb garden)을 잠깐 둘러보고는, 이 수목원에서 가장 인기있는 박물관을 찾아갔다. 그 곳은 National Bonsai & Penjing Museum으로 '본자이'는 분재(盆栽)의 일본어 발음이고 '펜징'은 분경(盆景)의 중국어 발음이다. 나무를 이용해 일본식으로 만들어진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130년 이상 다듬어가며 키웠다는 흑송(黑松) 분재가 제일 먼저 나온다. 이 나무를 포함해서 53개의 분재를 일본이 1976년에 미국독립 200주년을 기념하는 선물로 미국에 기증한 것을 시작으로, 그 후에 중국이 기증한 분경들 및 미국에서 자체적으로 키운 것들도 더해져서 현재는 약 300개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고, 그 중 일부만 돌아가며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실내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두루마리 그림과 함께 수석(壽石)이 한 점 놓여있는데, 모래 위에 한 마리의 작은 게(crab)도 돌을 깍아서 만든 것이었다! 옆으로는 족자가 걸린 동양적인 공간을 만들어두고 기괴한 형상의 수석들로 장식을 해놓았다. 수석을 영어로는 Viewing Stone 또는 Scholar's Stone이라 부르는게 일반적이고, 한자어 수석(水石)의 일본어 발음인 'Suiseki'로 쓰기도 한다. 또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한국영화 에서 수석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 후에는 한국어 발음 'Suseok'으로 부르는 경우도 늘고있는 모양이다. 실내 공간은 이렇게 수석 전시실로 이용되고 있는데, 최근에 유행하는 말로 부르자면 애완돌 또는 반려돌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유행은 미국에서 1975년에 불티나게 팔렸다는 '펫락(pet rock)'을 따라한 것이지만 말이다. 돌과 나무를 합쳐서 이렇게 실제 풍경같은 모습을 화분에 작게 만드는 것이 박물관 이름에 등장하는 분경(盆景, Penjing)이란다. 나무가 삐딱하게 자란게 먼저일까? 아니면 화분을 기울인게 먼저일까? 이렇게 멋진 분재들을 한자리에서 마지막으로 많이 봤던 곳은 LA의 헌팅턴 라이브러리였던 것 같고, 미국으로 이사오기 전에는 아마도 처음 언급한 아침고요수목원에서였던 듯 하다. 이 정도로만 첫번째 국립수목원 구경을 마치고, 여기까지 온 김에 근처의 다른 볼거리를 찾아 이동을 했다. 비록 한국정원은 따로 없지만 첫번째 지도 제일 오른편 강가의 Hickey Hill 구역에는 Korean Hillside라 불리는 곳에 버드나무 등이 심어져 있다고 하며, 지도 왼편의 Azalea Road 안쪽 산책로는 봄에 진달래 꽃이 유명하다고 하니, 내셔널몰에서 많이 떨어져 있어 찾아오는 교통이 좀 불편한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오는 가을이나 아니면 내년 봄에라도 두번째 방문을 기대해 본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리질리(Ridgely) 가문이 200년 동안 살았던 메릴랜드 햄튼 국립사적지(Hampton National Historic Site)

리질리(Ridgely) 가문이 200년 동안 살았던 메릴랜드 햄튼 국립사적지(Hampton National Historic Site)

지금 살고있는 워싱턴DC 지역에서 뉴욕(New York) 시까지 가는 중간에는 볼티모어(Baltimore)와 필라델피아(Philadelphia)의 두 대도시가 있지만, 이사 온지 3년이 다 되어가도록 아직 두 도시를 방문한 적이 없다. 딸이 사는 뉴욕을 자주 왕래하니까, 중간에 들릴 기회가 앞으로 많이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자꾸 미루게 된다. 지난 5월 중순에 모처럼 뉴욕을 1박2일로 방문했던 둘쨋날 오후에, 볼티모어 시는 아니고 그 북쪽에 붙어있는 국립 공원 한 곳을 잠깐 구경했는데, 아래 어떤 여성의 전신 초상화를 하나 보여드리면서 그 곳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기 DC의 국립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라는 그림으로, 영국 태생의 미국 화가 토머스 설리(Thomas Sully)의 1818년 작품이다. 현대식 하프가 등장하는 그림들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다는데, 모델의 이름이 Eliza Eichelberger Ridgely로 이제 소개하는 저택의 제3대 안주인(mistress)이다. 또 이 그림 덕택에 그 곳이 국립의 공원으로 보존될 수 있었기에 브로셔 표지에도 등장을 한다. 오전에 펜실베니아 주의 롱우드가든(Longwood Gardens)을 구경하고, 일부러 드라이브 삼아 1번 국도를 따라 천천히 달려서, 볼티모어 바로 북쪽에 있는 햄튼 국립사적지(Hampton National Historic Site)를 찾아왔다. 미동부 여기저기 '햄튼(Hampton, 햄프턴)'이 들어간 지명들은 대부분 식민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여기도 그렇다. 참고로 모텔 체인 '햄튼인(Hampton Inn)'의 역사와 관련된 곳은 아니다~^^ 그런데 오후 4시가 넘어서 비지터센터가 문을 닫았다... 저택 내부의 투어는 포기하고 왔지만, 관련 전시도 전혀 못 본 상태로, 다행히 밖에 비치해 둔 브로셔 하나만 챙겨서 일방통행 도로를 조금 더 달려서 위쪽 저택 옆에 만들어진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약간 바래지기는 했지만, 공원의 지도와 대략적인 소개를 함께 볼 수 있는 안내판 사진을 올린다. 영국군의 찰스 리질리 대령(Col. Charles Ridgley)이 1745년에 처음 여기 1,500에이커의 땅을 사서 담배농장을 시작했다가, 후에 아들과 함께 고향의 이름을 딴 노스햄턴 제철소(Northampton Ironworks)를 만들어 번창하는데, 독립전쟁 중에는 대륙군에 무기를 만들어 공급하기도 했단다. 그의 아들이 7년간의 공사를 거쳐 1790년에 완성한 저택이 바로 앞에 보이는 Hampton Mansion인데, 완공 당시로는 신생 독립국 미국에서 가장 큰 개인주택이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개인 소유로 남아서 만약 비싼 입장료를 받는 곳이 되었다면, 훨씬 더 깔끔한 모습이었을 듯한 느낌이 좀 들기도 했다. 이 저택의 다음 주인이었던 Charles Carnan Ridgley는 메릴랜드 주지사를 역임하기도 했는데, 그가 11명의 자녀에게 땅과 노예를 나눠서 물려주기 직전인 1829년 전성기에 햄튼 플랜테이션(Hampton Plantation)의 면적은 25,000에이커에 노예는 350명에 달했다고 한다. 저택 남쪽으로는 정사각형의 기하학적인 정원들이 여러 개 만들어져 있는데, 앞쪽 두 개만 그 모양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직전에 롱우드가든을 보고 와서 좀 시시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저택을 지을 당시부터 넓은 앞마당을 평평한 정원으로 만드는데 큰 공을 들였고, 현재의 모습으로 가꾼 것이 첫번째 그림의 주인공인 Eliza Ridgely라는 설명 등이 적혀있다.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을 거치면서 대농장의 수익성은 점차 나빠져서 낙농업 중심으로 변화한 후에, 20세기 초부터 리질리 가문 소유의 땅들은 교외의 주택단지로 개발이 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1944년에 국립미술관 디렉터가 이 집에 걸려있던 맨 위의 그림을 직접 보기위해 방문했다가, 제6대 집주인 John Ridgely, Jr.로 부터 오래된 저택을 옛모습 그대로 관리하는 고충 등을 듣고는, 국립공원청과 여러 재단 등에 연락을 해서 보존 노력을 주도하게 된다. 참, 롱우드가든 포스팅에서 'Orangery'라는 단어를 다음에 설명하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안내판의 그림과 같이 바닥에 온돌(hypocaust)을 설치한 유리 온실을 그렇게 부른다. (뒤로 보이는 건물은 1976년에 복원한 것으로 뒤쪽은 화장실로 사용) 한겨울에도 오렌지 나무를 키워서 따먹기  위한 당시 부의 상징과 같은 건물로, 프랑스 파리의 유명한 오랑주리 미술관(Musee de l'Orangerie)도 루브르 궁전의 이런 온실이었다. 저택 옆으로도 다른 건물이 있고 길 건너편에 다른 집들도 있지만, 모두 둘러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맨션의 출입구에 해당하는 북쪽 면만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1948년에 저택과 주변 땅을 90,000달러에 팔고 마지막으로 북문을 나서는 John Ridgely, Jr. 부부의 모습으로, 사들인 재단이 정부에 바로 기증을 해서 현재의 국립사적지가 되었고, 2년의 수리를 거친 후에 일반 관람객에게 집 내부가 공개되게 된다. 무엇보다 이 곳의 가치는 200년 이상 한 집안의 소유였던 땅에, 6대에 걸쳐서 그대로 보존이 된 대저택이라는데 있단다. 햄튼 저택(Hampton Mansion) 내부의 중앙홀에 걸려있는 는 비록 모사품이지만, 음악실에 전시되어 있는 하프는 실제 위 그림에 등장했던 진품이라고 한다. 국립 공원이 된 덕택에 무료인 내부 투어를 꼭 해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방문을 해야할 듯 한데... 현재 목~일요일에 오전 10시, 오후 1시와 3시의 하루 3번만 진행되는 것을 기억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집에서 뉴욕을 왔다갔다하는 일정에 맞출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리질리(Ridgely) 가문이 200년 동안 살았던 메릴랜드 햄튼 국립사적지(Hampton National Historic Site)

리질리(Ridgely) 가문이 200년 동안 살았던 메릴랜드 햄튼 국립사적지(Hampton National Historic Site)

지금 살고있는 워싱턴DC 지역에서 뉴욕(New York) 시까지 가는 중간에는 볼티모어(Baltimore)와 필라델피아(Philadelphia)의 두 대도시가 있지만, 이사 온지 3년이 다 되어가도록 아직 두 도시를 방문한 적이 없다. 딸이 사는 뉴욕을 자주 왕래하니까, 중간에 들릴 기회가 앞으로 많이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자꾸 미루게 된다. 지난 5월 중순에 모처럼 뉴욕을 1박2일로 방문했던 둘쨋날 오후에, 볼티모어 시는 아니고 그 북쪽에 붙어있는 국립 공원 한 곳을 잠깐 구경했는데, 아래 어떤 여성의 전신 초상화를 하나 보여드리면서 그 곳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기 DC의 국립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라는 그림으로, 영국 태생의 미국 화가 토머스 설리(Thomas Sully)의 1818년 작품이다. 현대식 하프가 등장하는 그림들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다는데, 모델의 이름이 Eliza Eichelberger Ridgely로 이제 소개하는 저택의 제3대 안주인(mistress)이다. 또 이 그림 덕택에 그 곳이 국립의 공원으로 보존될 수 있었기에 브로셔 표지에도 등장을 한다. 오전에 펜실베니아 주의 롱우드가든(Longwood Gardens)을 구경하고, 일부러 드라이브 삼아 1번 국도를 따라 천천히 달려서, 볼티모어 바로 북쪽에 있는 햄튼 국립사적지(Hampton National Historic Site)를 찾아왔다. 미동부 여기저기 '햄튼(Hampton, 햄프턴)'이 들어간 지명들은 대부분 식민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여기도 그렇다. 참고로 모텔 체인 '햄튼인(Hampton Inn)'의 역사와 관련된 곳은 아니다~^^ 그런데 오후 4시가 넘어서 비지터센터가 문을 닫았다... 저택 내부의 투어는 포기하고 왔지만, 관련 전시도 전혀 못 본 상태로, 다행히 밖에 비치해 둔 브로셔 하나만 챙겨서 일방통행 도로를 조금 더 달려서 위쪽 저택 옆에 만들어진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약간 바래지기는 했지만, 공원의 지도와 대략적인 소개를 함께 볼 수 있는 안내판 사진을 올린다. 영국군의 찰스 리질리 대령(Col. Charles Ridgley)이 1745년에 처음 여기 1,500에이커의 땅을 사서 담배농장을 시작했다가, 후에 아들과 함께 고향의 이름을 딴 노스햄턴 제철소(Northampton Ironworks)를 만들어 번창하는데, 독립전쟁 중에는 대륙군에 무기를 만들어 공급하기도 했단다. 그의 아들이 7년간의 공사를 거쳐 1790년에 완성한 저택이 바로 앞에 보이는 Hampton Mansion인데, 완공 당시로는 신생 독립국 미국에서 가장 큰 개인주택이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개인 소유로 남아서 만약 비싼 입장료를 받는 곳이 되었다면, 훨씬 더 깔끔한 모습이었을 듯한 느낌이 좀 들기도 했다. 이 저택의 다음 주인이었던 Charles Carnan Ridgley는 메릴랜드 주지사를 역임하기도 했는데, 그가 11명의 자녀에게 땅과 노예를 나눠서 물려주기 직전인 1829년 전성기에 햄튼 플랜테이션(Hampton Plantation)의 면적은 25,000에이커에 노예는 350명에 달했다고 한다. 저택 남쪽으로는 정사각형의 기하학적인 정원들이 여러 개 만들어져 있는데, 앞쪽 두 개만 그 모양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직전에 롱우드가든을 보고 와서 좀 시시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저택을 지을 당시부터 넓은 앞마당을 평평한 정원으로 만드는데 큰 공을 들였고, 현재의 모습으로 가꾼 것이 첫번째 그림의 주인공인 Eliza Ridgely라는 설명 등이 적혀있다.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을 거치면서 대농장의 수익성은 점차 나빠져서 낙농업 중심으로 변화한 후에, 20세기 초부터 리질리 가문 소유의 땅들은 교외의 주택단지로 개발이 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1944년에 국립미술관 디렉터가 이 집에 걸려있던 맨 위의 그림을 직접 보기위해 방문했다가, 제6대 집주인 John Ridgely, Jr.로 부터 오래된 저택을 옛모습 그대로 관리하는 고충 등을 듣고는, 국립공원청과 여러 재단 등에 연락을 해서 보존 노력을 주도하게 된다. 참, 롱우드가든 포스팅에서 'Orangery'라는 단어를 다음에 설명하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안내판의 그림과 같이 바닥에 온돌(hypocaust)을 설치한 유리 온실을 그렇게 부른다. (뒤로 보이는 건물은 1976년에 복원한 것으로 뒤쪽은 화장실로 사용) 한겨울에도 오렌지 나무를 키워서 따먹기  위한 당시 부의 상징과 같은 건물로, 프랑스 파리의 유명한 오랑주리 미술관(Musee de l'Orangerie)도 루브르 궁전의 이런 온실이었다. 저택 옆으로도 다른 건물이 있고 길 건너편에 다른 집들도 있지만, 모두 둘러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맨션의 출입구에 해당하는 북쪽 면만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1948년에 저택과 주변 땅을 90,000달러에 팔고 마지막으로 북문을 나서는 John Ridgely, Jr. 부부의 모습으로, 사들인 재단이 정부에 바로 기증을 해서 현재의 국립사적지가 되었고, 2년의 수리를 거친 후에 일반 관람객에게 집 내부가 공개되게 된다. 무엇보다 이 곳의 가치는 200년 이상 한 집안의 소유였던 땅에, 6대에 걸쳐서 그대로 보존이 된 대저택이라는데 있단다. 햄튼 저택(Hampton Mansion) 내부의 중앙홀에 걸려있는 는 비록 모사품이지만, 음악실에 전시되어 있는 하프는 실제 위 그림에 등장했던 진품이라고 한다. 국립 공원이 된 덕택에 무료인 내부 투어를 꼭 해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방문을 해야할 듯 한데... 현재 목~일요일에 오전 10시, 오후 1시와 3시의 하루 3번만 진행되는 것을 기억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집에서 뉴욕을 왔다갔다하는 일정에 맞출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미국이 다시 하나된 곳"인 버지니아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Appomattox Court House) 국립역사공원

"미국이 다시 하나된 곳"인 버지니아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Appomattox Court House) 국립역사공원

윌머 맥클린(Wilmer McLean)은 지금 센터빌 남쪽에 큰 농장을 운영하는 식료품 도매상이었다. 미국이 남북으로 갈라진 후인 1861년 7월에 남부군이 그의 농장에 주둔했고, 버지니아 민병대 출신이었던 그는 기꺼이 자신의 집을 지휘 본부로 제공했다. 21일 새벽에 북군이 개울 건너에서 선제공격을 했는데, 포탄 한 발이 그 집의 부엌으로 날아들기도 했단다. 그렇게 남북전쟁 최초의 교전인 제1차 불런전투(First Battle of Bull Run)가 그의 농장에서 시작되었고, 이듬해 인근 매너서스에서 또 전투가 벌어지자 그는 가족의 안전을 위해 150마일이나 떨어진 시골 마을로 이사를 하게 된다. 새벽에 출발해 3시간반 동안 쉬지않고 운전을 해와서 만난 국립 공원의 간판이 너무 반가워, 앞뒤로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운전석에서 사진을 찍었다.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 국립역사공원(Appomattox Court House National Historical Park)은 여기부터 제법 넓은 면적을 아우르지만, 비지터센터와 중요한 볼거리는 모두 마을 안에 있다. 참고로 옛날에는 그 카운티(County)의 법원이 소재한 마을의 이름을 '○○ Court House'로 불렀다고 한다. 공원 브로셔에 인쇄된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 마을의 조감도로 한가운데 옛날 법원(courthouse) 자리에 지은 비지터센터가 있고, 그 아래쪽에 '맥클린 하우스(McLean House)'라는 굵은 글씨가 보인다. 그렇다! 바로 처음 소개한 윌머 맥클린이 전쟁을 피해서 이사를 온 남부 버지니아의 깡촌이 바로 여기 Appomattox Court House였던 것이다. 남부 버지니아의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들 당일여행의 첫번째 목적지로 찾아왔지만, 여기를 그렇게 부르기에는 좀 미안한게... 비지터센터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위기주부 외에도 이렇게 제법 있었고, 미국 역사책에도 아주 중요한 장소로 항상 등장하는 곳이며, 여기서 벌어졌던 일을 다룬 라는 제목의 현대 오페라까지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아침부터 근무하는 파크레인저도 4명이나 되어서, 한 명은 벌써 맥클린 하우스에 가있었고, 다른 한 명이 2층의 극장에서 틀어준 이 날 첫번째로 상영하는 안내영화를 봤다. 부제는 1865년 3월초 링컨의 두번째 대통령 취임 연설 중의 유명한 문구인 "With malice toward none, with charity for all"에서 따온 것이다. 극장을 감싼 정사각형의 복도를 따라 전시가 만들어져 있는데, 먼저 미국 남북전쟁의 중요한 사건들이 시간순으로 적혀 있다. 비록 교전은 없었지만 공식적인 시작으로 보는 1961년 4월 12일 사우스캐롤라이나 포트섬터(Fort Sumter)부터, 이미 블로그에 모두 소개한 First Manassas, Antietam, Gettysburg 등등의 전투를 차례로 거쳐서... 사실상의 마지막 전역인 애퍼매톡스 캠페인(Appomattox Campaign)이 1865년 4월 2~8일 동안에, 남부연맹의 수도였던 버지니아 리치먼드(Richmond)에서부터 서쪽으로 여기 애퍼매톡스까지 전개되었던 것이다. 시리즈 전전편에 소개했던 9달반의 피터스버그 포위전(Siege of Petersburg) 끝에 서쪽으로 후퇴를 하는 빨간색의 남군과, 이들이 남쪽으로 내려가 노스캐롤라이나의 다른 남군과 합류하지 못하도록 계속 남쪽에서 따라붙었던 파란색 북군의 이동경로와 그 과정의 주요 전투를 보여준다. 4월 6일에 Sailor's Creek에서 돌파시도가 실패한 다음에는 후미도 추격을 당해서 앞뒤로 포위되고, 마지막으로 8일에 Appomattox Station에서 기차를 이용해 린치버그(Lynchburg)로 후퇴하려던 계획도 좌절되자 남군 지휘부는 마침내 항복을 결정한다. (데이비스 대통령을 포함한 남부 지도자들은 일찌감치 2일밤에 바로 특별열차를 이용해 Danville로 탈출) 전시물 중에 눈길을 끌었던 발굴된 옛날 총탄들이라고 하는데, 손가락 굵기 정도로 예상보다 아주 큰게 신기했고, 또 대부분이 흰색에 가깝게 보이는 이유가 궁금하다... 여하튼, 8일의 마지막 전투가 끝나고 몇 번의 의견교환 후에, 바로 다음날 양측의 총사령관이 만나기로 한 장소가 바로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 마을에서 가장 상태가 좋았던 윌머 맥클린 집의 거실(parlor)이었다. 1865년 4월 9일에 오른쪽 책상에 앉은 북군 총사령관 율리시스 S. 그랜트(Ulysses Simpson Grant)가 직접 그 자리에서 쓴 간단한 항복조건 문서에 왼쪽의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E. 리(Robert Edward Lee)가 서명을 하는 모습이다. 물론 이 후에도 몇 달간 다른 지역에서 남북간에 약간의 교전이 있기는 했지만, 차례로 다른 남부 지휘관들도 소식을 듣고 항복을 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이 날을 남북전쟁이 끝난 날로 역사책에 기록한다. 여기서 항복했던 남군 부대의 군기를 북군 지휘관 한 명이 기념으로 고향에 가져갔다가, 사후 그의 아내가 국립 공원에 기증한 것이 전시되어 있었다. 문제는 여기같은 박물관이 아니라, 자기 집이나 차에 저 깃발을 지금도 걸어놓은 사람들이 남부 버지니아에서는 가끔 보인다는 것... 그리고 왼편 그림은 다음날 그랜트가 먼저 떠나기 전에 리를 다시 만나서 말 위에서 30분간 이야기를 나눴다는 모습인데, 그 장소가 공원 조감도에도 제일 위쪽에 표시되어 있다. (Lee와 Grant에 대해서는 그들을 기념하는 각각의 국립 공원 방문기에서 별도로 소개 예정) 전시의 마지막은 그렇게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간 남군 장교 한 명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 애퍼매톡스에서 총성이 멎고 불과 5일이 지난 14일 저녁에, 링컨 대통령이 워싱턴DC의 포드 극장((Ford's Theatre)에서 남부 지지자에게 암살을 당하게 된다! 비지터센터를 나와 한적한 시골길을 조금 걸어서, 실제 두 장군의 만남이 있었던 맥클린 하우스(McLean House)로 왔다. 이 곳은 복원된 후에 남북전쟁 역사를 다룬 영화나 다큐멘터리의 실제 촬영장소로 여러 번 사용되었는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12년 영화 에서도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돌아가는 리(Lee)에게 그랜트(Grant)가 모자를 벗어 예를 표하는 위의 장면에 짧게 등장을 했단다. 몇 개의 계단을 올라서 정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왼편에 역사적인 장소가 완벽하게 복원되어 있다. 항복 직후에 다른 북군 장교들이 두 책상을 포함해 기념품이 될만한 것들은 모두 집주인에게 적당한 돈을 주거나 또는 그냥 가져갔기 때문에, 거실이 바로 텅텅 비었단다. 리가 사용했던 왼쪽 하얀색 대리석 상판의 책상은 시카고 역사박물관에, 그랜트가 사용했던 오른쪽 작은 나무 책상은 DC 미국사 박물관에 각각 진품이 전시되어 있다. 1층 맞은편은 맥클린 부부의 침실로 모든 것이 당시의 모습대로 꾸며져 있고, 2층에 자녀들 방도 아주 잘 만들어 놓았었다. 사실은 가구와 장식만 새로 가져다 놓은 것이 아니라, 이 집 전체가 1950년에 옛날 자재를 일부 사용해서 완전히 새로 지어진 것으로 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거실 바로 아래 본채의 주방 사진과 함께 설명드리면... 전쟁이 끝난 후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윌머 맥클린은 이 집을 팔고 북부 버지니아의 고향으로 돌아갔고, 그 후에 어떤 사업가가 다시 사서는 이 유명한 집을 통째로 워싱턴DC로 옮겨서 전시해 돈을 벌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래서 1892년에 덩어리로 분해까지는 되었는데, 결국 운반되지는 못하고 그대로 거의 방치가 되어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는 1935년에 마을 전체가 국립 기념물로 지정이 되고나서, 목재는 대부분 썩어서 버려졌지만 남아있는 원래 벽돌 등으로 현재의 집을 새로 지었던 것이다. 건너편 잘 차려진 식당의 벽에 당시 집주인 부부의 초상화가 좌우로 걸려있는데, 모든 군인들이 떠나고 난 후에 윌머 맥클린이 "The war began in my front yard and ended in my front parlor."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말로 MBC 방송의 에 나와도 될만한 기막힌 우연이 아닐까? ㅎㅎ 출구를 통해 뒷뜰로 나가면 부엌과 당시 이 집의 노예들이 살았던 숙소를 추가로 구경할 수 있다. 부엌의 모습도 당시와 비슷하게 재연을 해놓았고, 내부 다른 쪽에서는 당시 남부 노예들의 상황과 함께 남북전쟁이 끝나고 노예해방 소식이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었다. 하우스가 아니라 슬레이브쿼터스(Slave Quarters)로 불린 숙소의 내부 모습이, 좀 전의 본채 침실과 많이 비교가 되었다. 여기서 왕복 3시간이나 더 운전을 해야하기 때문에 원래 계획에는 없었던, 시리즈 전편에 소개했던 노예 출신의 흑인 교육자를 기리는 준국립공원을 방문해보기로 결정을 했기 때문에 서둘러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중심가 건너편에 1850년대 지어진 상태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사진의 Meeks Store 및 오른편 나무 뒤로 살짝 보이는 남군 병사의 가석방(parole) 증서를 급히 인쇄했었다는 Clover Hill Tavern 등은 구경할 수 없었다. 본 여행기의 제목에 쓴 것처럼 애퍼매톡스 카운티의 환영간판에 "Where Our Nation Reunited"라 써진 것을 봤었는데, 이렇게 4년 동안 전쟁을 했던 남북도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않고' 다시 하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의 미국은 서로 총질만 안한다 뿐이지 더 심하게 둘로 다시 갈라졌다는 느낌이 든다... 그나저나 이렇게 남북전쟁이 끝난 곳은 다녀왔는데,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시작된 곳은 언제쯤 직접 가볼 수 있을까?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미국이 다시 하나된 곳"인 버지니아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Appomattox Court House) 국립역사공원

"미국이 다시 하나된 곳"인 버지니아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Appomattox Court House) 국립역사공원

윌머 맥클린(Wilmer McLean)은 지금 센터빌 남쪽에 큰 농장을 운영하는 식료품 도매상이었다. 미국이 남북으로 갈라진 후인 1861년 7월에 남부군이 그의 농장에 주둔했고, 버지니아 민병대 출신이었던 그는 기꺼이 자신의 집을 지휘 본부로 제공했다. 21일 새벽에 북군이 개울 건너에서 선제공격을 했는데, 포탄 한 발이 그 집의 부엌으로 날아들기도 했단다. 그렇게 남북전쟁 최초의 교전인 제1차 불런전투(First Battle of Bull Run)가 그의 농장에서 시작되었고, 이듬해 인근 매너서스에서 또 전투가 벌어지자 그는 가족의 안전을 위해 150마일이나 떨어진 시골 마을로 이사를 하게 된다. 새벽에 출발해 3시간반 동안 쉬지않고 운전을 해와서 만난 국립 공원의 간판이 너무 반가워, 앞뒤로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운전석에서 사진을 찍었다.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 국립역사공원(Appomattox Court House National Historical Park)은 여기부터 제법 넓은 면적을 아우르지만, 비지터센터와 중요한 볼거리는 모두 마을 안에 있다. 참고로 옛날에는 그 카운티(County)의 법원이 소재한 마을의 이름을 '○○ Court House'로 불렀다고 한다. 공원 브로셔에 인쇄된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 마을의 조감도로 한가운데 옛날 법원(courthouse) 자리에 지은 비지터센터가 있고, 그 아래쪽에 '맥클린 하우스(McLean House)'라는 굵은 글씨가 보인다. 그렇다! 바로 처음 소개한 윌머 맥클린이 전쟁을 피해서 이사를 온 남부 버지니아의 깡촌이 바로 여기 Appomattox Court House였던 것이다. 남부 버지니아의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들 당일여행의 첫번째 목적지로 찾아왔지만, 여기를 그렇게 부르기에는 좀 미안한게... 비지터센터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위기주부 외에도 이렇게 제법 있었고, 미국 역사책에도 아주 중요한 장소로 항상 등장하는 곳이며, 여기서 벌어졌던 일을 다룬 라는 제목의 현대 오페라까지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아침부터 근무하는 파크레인저도 4명이나 되어서, 한 명은 벌써 맥클린 하우스에 가있었고, 다른 한 명이 2층의 극장에서 틀어준 이 날 첫번째로 상영하는 안내영화를 봤다. 부제는 1865년 3월초 링컨의 두번째 대통령 취임 연설 중의 유명한 문구인 "With malice toward none, with charity for all"에서 따온 것이다. 극장을 감싼 정사각형의 복도를 따라 전시가 만들어져 있는데, 먼저 미국 남북전쟁의 중요한 사건들이 시간순으로 적혀 있다. 비록 교전은 없었지만 공식적인 시작으로 보는 1961년 4월 12일 사우스캐롤라이나 포트섬터(Fort Sumter)부터, 이미 블로그에 모두 소개한 First Manassas, Antietam, Gettysburg 등등의 전투를 차례로 거쳐서... 사실상의 마지막 전역인 애퍼매톡스 캠페인(Appomattox Campaign)이 1865년 4월 2~8일 동안에, 남부연맹의 수도였던 버지니아 리치먼드(Richmond)에서부터 서쪽으로 여기 애퍼매톡스까지 전개되었던 것이다. 시리즈 전전편에 소개했던 9달반의 피터스버그 포위전(Siege of Petersburg) 끝에 서쪽으로 후퇴를 하는 빨간색의 남군과, 이들이 남쪽으로 내려가 노스캐롤라이나의 다른 남군과 합류하지 못하도록 계속 남쪽에서 따라붙었던 파란색 북군의 이동경로와 그 과정의 주요 전투를 보여준다. 4월 6일에 Sailor's Creek에서 돌파시도가 실패한 다음에는 후미도 추격을 당해서 앞뒤로 포위되고, 마지막으로 8일에 Appomattox Station에서 기차를 이용해 린치버그(Lynchburg)로 후퇴하려던 계획도 좌절되자 남군 지휘부는 마침내 항복을 결정한다. (데이비스 대통령을 포함한 남부 지도자들은 일찌감치 2일밤에 바로 특별열차를 이용해 Danville로 탈출) 전시물 중에 눈길을 끌었던 발굴된 옛날 총탄들이라고 하는데, 손가락 굵기 정도로 예상보다 아주 큰게 신기했고, 또 대부분이 흰색에 가깝게 보이는 이유가 궁금하다... 여하튼, 8일의 마지막 전투가 끝나고 몇 번의 의견교환 후에, 바로 다음날 양측의 총사령관이 만나기로 한 장소가 바로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 마을에서 가장 상태가 좋았던 윌머 맥클린 집의 거실(parlor)이었다. 1865년 4월 9일에 오른쪽 책상에 앉은 북군 총사령관 율리시스 S. 그랜트(Ulysses Simpson Grant)가 직접 그 자리에서 쓴 간단한 항복조건 문서에 왼쪽의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E. 리(Robert Edward Lee)가 서명을 하는 모습이다. 물론 이 후에도 몇 달간 다른 지역에서 남북간에 약간의 교전이 있기는 했지만, 차례로 다른 남부 지휘관들도 소식을 듣고 항복을 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이 날을 남북전쟁이 끝난 날로 역사책에 기록한다. 여기서 항복했던 남군 부대의 군기를 북군 지휘관 한 명이 기념으로 고향에 가져갔다가, 사후 그의 아내가 국립 공원에 기증한 것이 전시되어 있었다. 문제는 여기같은 박물관이 아니라, 자기 집이나 차에 저 깃발을 지금도 걸어놓은 사람들이 남부 버지니아에서는 가끔 보인다는 것... 그리고 왼편 그림은 다음날 그랜트가 먼저 떠나기 전에 리를 다시 만나서 말 위에서 30분간 이야기를 나눴다는 모습인데, 그 장소가 공원 조감도에도 제일 위쪽에 표시되어 있다. (Lee와 Grant에 대해서는 그들을 기념하는 각각의 국립 공원 방문기에서 별도로 소개 예정) 전시의 마지막은 그렇게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간 남군 장교 한 명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 애퍼매톡스에서 총성이 멎고 불과 5일이 지난 14일 저녁에, 링컨 대통령이 워싱턴DC의 포드 극장((Ford's Theatre)에서 남부 지지자에게 암살을 당하게 된다! 비지터센터를 나와 한적한 시골길을 조금 걸어서, 실제 두 장군의 만남이 있었던 맥클린 하우스(McLean House)로 왔다. 이 곳은 복원된 후에 남북전쟁 역사를 다룬 영화나 다큐멘터리의 실제 촬영장소로 여러 번 사용되었는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12년 영화 에서도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돌아가는 리(Lee)에게 그랜트(Grant)가 모자를 벗어 예를 표하는 위의 장면에 짧게 등장을 했단다. 몇 개의 계단을 올라서 정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왼편에 역사적인 장소가 완벽하게 복원되어 있다. 항복 직후에 다른 북군 장교들이 두 책상을 포함해 기념품이 될만한 것들은 모두 집주인에게 적당한 돈을 주거나 또는 그냥 가져갔기 때문에, 거실이 바로 텅텅 비었단다. 리가 사용했던 왼쪽 하얀색 대리석 상판의 책상은 시카고 역사박물관에, 그랜트가 사용했던 오른쪽 작은 나무 책상은 DC 미국사 박물관에 각각 진품이 전시되어 있다. 1층 맞은편은 맥클린 부부의 침실로 모든 것이 당시의 모습대로 꾸며져 있고, 2층에 자녀들 방도 아주 잘 만들어 놓았었다. 사실은 가구와 장식만 새로 가져다 놓은 것이 아니라, 이 집 전체가 1950년에 옛날 자재를 일부 사용해서 완전히 새로 지어진 것으로 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거실 바로 아래 본채의 주방 사진과 함께 설명드리면... 전쟁이 끝난 후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윌머 맥클린은 이 집을 팔고 북부 버지니아의 고향으로 돌아갔고, 그 후에 어떤 사업가가 다시 사서는 이 유명한 집을 통째로 워싱턴DC로 옮겨서 전시해 돈을 벌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래서 1892년에 덩어리로 분해까지는 되었는데, 결국 운반되지는 못하고 그대로 거의 방치가 되어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는 1935년에 마을 전체가 국립 기념물로 지정이 되고나서, 목재는 대부분 썩어서 버려졌지만 남아있는 원래 벽돌 등으로 현재의 집을 새로 지었던 것이다. 건너편 잘 차려진 식당의 벽에 당시 집주인 부부의 초상화가 좌우로 걸려있는데, 모든 군인들이 떠나고 난 후에 윌머 맥클린이 "The war began in my front yard and ended in my front parlor."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말로 MBC 방송의 에 나와도 될만한 기막힌 우연이 아닐까? ㅎㅎ 출구를 통해 뒷뜰로 나가면 부엌과 당시 이 집의 노예들이 살았던 숙소를 추가로 구경할 수 있다. 부엌의 모습도 당시와 비슷하게 재연을 해놓았고, 내부 다른 쪽에서는 당시 남부 노예들의 상황과 함께 남북전쟁이 끝나고 노예해방 소식이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었다. 하우스가 아니라 슬레이브쿼터스(Slave Quarters)로 불린 숙소의 내부 모습이, 좀 전의 본채 침실과 많이 비교가 되었다. 여기서 왕복 3시간이나 더 운전을 해야하기 때문에 원래 계획에는 없었던, 시리즈 전편에 소개했던 노예 출신의 흑인 교육자를 기리는 준국립공원을 방문해보기로 결정을 했기 때문에 서둘러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중심가 건너편에 1850년대 지어진 상태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사진의 Meeks Store 및 오른편 나무 뒤로 살짝 보이는 남군 병사의 가석방(parole) 증서를 급히 인쇄했었다는 Clover Hill Tavern 등은 구경할 수 없었다. 본 여행기의 제목에 쓴 것처럼 애퍼매톡스 카운티의 환영간판에 "Where Our Nation Reunited"라 써진 것을 봤었는데, 이렇게 4년 동안 전쟁을 했던 남북도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않고' 다시 하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의 미국은 서로 총질만 안한다 뿐이지 더 심하게 둘로 다시 갈라졌다는 느낌이 든다... 그나저나 이렇게 남북전쟁이 끝난 곳은 다녀왔는데,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시작된 곳은 언제쯤 직접 가볼 수 있을까?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