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주부의 미국 여행과 생활 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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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악의 댐 붕괴 사고를 기억하는 존스타운 홍수 국립기념지(Johnstown Flood National Memorial)

미국 최악의 댐 붕괴 사고를 기억하는 존스타운 홍수 국립기념지(Johnstown Flood National Memorial)

현재 미국 국립공원청이 직접 독립적인 공원으로 관리하는 내셔널 메모리얼(National Memorial)은 31개인데, 대부분이 전직 대통령 등의 역사적인 위인을 기리는 곳이거나 또는 여러 전쟁을 기념하는 장소이다. 그 외에 재난이나 사고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곳이 딱 4개가 있는데, 특이하게 그 중 2개가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다. 시리즈 전편에 소개했던 '플라이트93'에 바로 이어서, 이번에는 전염병이나 허리케인 등을 제외하고는 미국에서 가장 인명피해가 컸던 사건들 중의 하나가 일어났던 곳으로 가보자. 펜실베니아 주의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들 돌아보기 당일여행의 5번째 목적지에 도착하니까, 푸른 언덕 아래로 작고 예쁜 집이 하나 보이고, 저 멀리 밑에는 작은 개울이 흘러가는 한적한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잘 만들어진 경사로를 따라가면 커다란 헛간 건물이 처음 나오는데, 그 전에 보이는 안내판의 내용을 먼저 자세히 보자~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1889년 5월 31일, 오후 3시 15분에 여기 있던 사우스포크 댐(South Fork Dam)이 무너지면서, 콘마 호(Lake Conemaugh)의 물 2천만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20미터가 넘는 높이의 급류가 한시간만에 하류 22 km에 위치한 존스타운 마을까지 휩쓸었는데, 이 재해로 인한 총 사망자는 2,200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봄꽃에 살짝 가린 국립공원청 로고가 보이는 존스타운 홍수 국립기념지(Johnstown Flood National Memorial)의 비지터센터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길을 확 사로잡는 전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벽을 뚫고 들어온 거대한 나무뿌리와 철도차량, 그리고 건물에 매달린 사람의 모습이다! 위기주부가 미국의 정말 많은 비지터센터를 다니며 멋진 전시들을 많이 봤지만, 이렇게 기발한 아이디어는 처음인 듯 했다. 여기 댐은 1853년 펜실베니아 주에서 운하에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불과 4년만에 철도회사로 소유권이 넘어가서 잘 관리되지 않다가 1862년에 처음 누수가 발생해 보수가 시작된다. 애물단지가 된 댐과 호수 지역을 철강왕 카네기를 포함한 피츠버그의 재력가들이 인수해서 휴양지로 개발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도로를 넓힌다고 댐의 높이가 낮아지고 낚시를 위해 풀어놓은 물고기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배수로에 그물을 쳐서 그 기능을 상실하게 만드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후에 댐은 한순간에 완전히 붕괴되는데, 심각성을 인지한 관리자가 3시간 전부터 높은 곳으로 대피하라는 전보를 세 번이나 아랫 마을로 보냈지만, 그 전에도 가끔 있던 일이라서 전보를 받은 사람들이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난간에 부착된 스피커의 빨간 버튼을 누르면, 어릴 때 존스타운에 물이 들이닥치는 것을 실제 경험한 사람의 육성이 나오는데, 문제는 끄는 버튼이 없어서 조용한 비지터센터에서 계속 그 분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랫층 계단으로 내려가야 했다. 당시 떠내려온 철도 차량을 포함해 피해 상황과 복구 과정 등이 소개되어 있는데, 미국 전역은 물론 유럽에서도 많은 구호품과 물자들이 쏟아졌단다. 또 작년에 소개했던 클라라 바튼(Clara Barton)이 사람들을 이끌며 5개월 동안 머물렀는데, 미국 적십자사가 재난현장에서 대규모 구호활동을 한 최초의 사례라고 한다. 그건 그렇고 기발한 전시는 밑에서 올려다 보면 더 대단한데, 저 만한 나무를 통째로 길게 벽에 박아놓은 것은 그냥 떠오른게 아니라... 홍수의 위력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가장 유명했던 이 사진의 현장을 재현한 것이다. 얼핏 봐서는 4층 건물의 3층에 나무가 박힌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니라 통째로 옆으로 쓰러진 2층 집의 제일 위쪽을 부수고 들어갔다가 물이 빠지며 떨어진 것이다. 매시 15분에 상영되는 영화를 꼭 봐야한다는데, 시간이 좀 남아서 아랫층 출구로 밖으로 나왔다. 댐과 호수를 소유했던 부자들의 사교모임인 South Fork Fishing and Hunting Club의 관리자가 살았던 집을 복원한게 왼쪽이고, 가운데로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건너편에 그들의 여름별장(cottage)들과 클럽하우스가 아직도 남아있다. 그리고 바로 아래로는 아직도 뻥 뚫린 구멍이 그대로 남아있는 댐의 잔해가 보인다. 남북의 양쪽으로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어서, 걸어서 끝까지 가볼 수도 있다지만, 영화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조금 내려가다가 뒤로 돌아섰다. 그 옛날에는 호숫가의 집이었을 텐데, 모르고 보면 그냥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다시 헛간 비지터센터까지 올라가 윗층의 극장 입구로 향하는데, 맨발로 필사적으로 매달린 마네킹에 또 눈길이 갔다. 이 곳이 1964년에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며 이 전시도 만들어졌다면 60년이나 됐다는 이야기인데 그럴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이제 들어갈 극장과 함께 중간에 리모델링을 하면서 제작된게 아닐까 생각된다. 아주 제대로 된 극장에 관객은 위기주부와 다른 부부해서 총 3명뿐이었다. 레인저가 들어와 이제 틀어줄 35분 길이의 라는 영화에 대해 잠깐 설명을 하는데,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옛날에 흑백으로 만들어졌으나 지금까지 국립공원청이 제작한 영화들 중에서 아직도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했던 것 같다. 참고로 존스타운 마을의 기념관에서 상영하며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도 있는, 1990년 아카데미 단편 다큐멘터리 상을 받은 와는 다른 영화이다. 존스타운에 1892년에 만들어진 이 공동묘지에 비가 내리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되었는데, 앞부분은 마치 히치콕 감독의 공포영화를 보는 듯 했다. 그리고는 댐이 무너지는 장면과 철도와 다리가 부서지고, 사람들이 물에 휩쓸리는 모습들까지 아주 잘 찍은 재난영화로 이어지는 명작이었다.^^ 보통 비지터센터에서 틀어주는 영화는 공원 홈페이지를 통해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는 인터넷에도 전혀 없고 오직 여기 비지터센터의 극장에 직접 와야만 관람이 가능하단다. 이 사건 직후에도 존스타운 생존자들이 댐 관리부실로 상기의 클럽을 고소했지만, 결국 아무도 법적 처벌은 받지 않았고 클럽 멤버들은 조용히 자신들의 별장을 모두 처분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책임을 질 소지가 있는 이러한 재해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우에, 이를 국가적으로 추모하고 기념하는 시설을 만들기 까지는 몇 세대가 흘러야만 가능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존스타운 홍수 국립기념지를 떠나 이 날의 마지막 목적지를 찾아가며 떠올랐던 것 같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미국 최악의 댐 붕괴 사고를 기억하는 존스타운 홍수 국립기념지(Johnstown Flood National Memorial)

미국 최악의 댐 붕괴 사고를 기억하는 존스타운 홍수 국립기념지(Johnstown Flood National Memorial)

현재 미국 국립공원청이 직접 독립적인 공원으로 관리하는 내셔널 메모리얼(National Memorial)은 31개인데, 대부분이 전직 대통령 등의 역사적인 위인을 기리는 곳이거나 또는 여러 전쟁을 기념하는 장소이다. 그 외에 재난이나 사고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곳이 딱 4개가 있는데, 특이하게 그 중 2개가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다. 시리즈 전편에 소개했던 '플라이트93'에 바로 이어서, 이번에는 전염병이나 허리케인 등을 제외하고는 미국에서 가장 인명피해가 컸던 사건들 중의 하나가 일어났던 곳으로 가보자. 펜실베니아 주의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들 돌아보기 당일여행의 5번째 목적지에 도착하니까, 푸른 언덕 아래로 작고 예쁜 집이 하나 보이고, 저 멀리 밑에는 작은 개울이 흘러가는 한적한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잘 만들어진 경사로를 따라가면 커다란 헛간 건물이 처음 나오는데, 그 전에 보이는 안내판의 내용을 먼저 자세히 보자~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1889년 5월 31일, 오후 3시 15분에 여기 있던 사우스포크 댐(South Fork Dam)이 무너지면서, 콘마 호(Lake Conemaugh)의 물 2천만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20미터가 넘는 높이의 급류가 한시간만에 하류 22 km에 위치한 존스타운 마을까지 휩쓸었는데, 이 재해로 인한 총 사망자는 2,200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봄꽃에 살짝 가린 국립공원청 로고가 보이는 존스타운 홍수 국립기념지(Johnstown Flood National Memorial)의 비지터센터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길을 확 사로잡는 전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벽을 뚫고 들어온 거대한 나무뿌리와 철도차량, 그리고 건물에 매달린 사람의 모습이다! 위기주부가 미국의 정말 많은 비지터센터를 다니며 멋진 전시들을 많이 봤지만, 이렇게 기발한 아이디어는 처음인 듯 했다. 여기 댐은 1853년 펜실베니아 주에서 운하에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불과 4년만에 철도회사로 소유권이 넘어가서 잘 관리되지 않다가 1862년에 처음 누수가 발생해 보수가 시작된다. 애물단지가 된 댐과 호수 지역을 철강왕 카네기를 포함한 피츠버그의 재력가들이 인수해서 휴양지로 개발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도로를 넓힌다고 댐의 높이가 낮아지고 낚시를 위해 풀어놓은 물고기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배수로에 그물을 쳐서 그 기능을 상실하게 만드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후에 댐은 한순간에 완전히 붕괴되는데, 심각성을 인지한 관리자가 3시간 전부터 높은 곳으로 대피하라는 전보를 세 번이나 아랫 마을로 보냈지만, 그 전에도 가끔 있던 일이라서 전보를 받은 사람들이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난간에 부착된 스피커의 빨간 버튼을 누르면, 어릴 때 존스타운에 물이 들이닥치는 것을 실제 경험한 사람의 육성이 나오는데, 문제는 끄는 버튼이 없어서 조용한 비지터센터에서 계속 그 분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랫층 계단으로 내려가야 했다. 당시 떠내려온 철도 차량을 포함해 피해 상황과 복구 과정 등이 소개되어 있는데, 미국 전역은 물론 유럽에서도 많은 구호품과 물자들이 쏟아졌단다. 또 작년에 소개했던 클라라 바튼(Clara Barton)이 사람들을 이끌며 5개월 동안 머물렀는데, 미국 적십자사가 재난현장에서 대규모 구호활동을 한 최초의 사례라고 한다. 그건 그렇고 기발한 전시는 밑에서 올려다 보면 더 대단한데, 저 만한 나무를 통째로 길게 벽에 박아놓은 것은 그냥 떠오른게 아니라... 홍수의 위력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가장 유명했던 이 사진의 현장을 재현한 것이다. 얼핏 봐서는 4층 건물의 3층에 나무가 박힌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니라 통째로 옆으로 쓰러진 2층 집의 제일 위쪽을 부수고 들어갔다가 물이 빠지며 떨어진 것이다. 매시 15분에 상영되는 영화를 꼭 봐야한다는데, 시간이 좀 남아서 아랫층 출구로 밖으로 나왔다. 댐과 호수를 소유했던 부자들의 사교모임인 South Fork Fishing and Hunting Club의 관리자가 살았던 집을 복원한게 왼쪽이고, 가운데로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건너편에 그들의 여름별장(cottage)들과 클럽하우스가 아직도 남아있다. 그리고 바로 아래로는 아직도 뻥 뚫린 구멍이 그대로 남아있는 댐의 잔해가 보인다. 남북의 양쪽으로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어서, 걸어서 끝까지 가볼 수도 있다지만, 영화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조금 내려가다가 뒤로 돌아섰다. 그 옛날에는 호숫가의 집이었을 텐데, 모르고 보면 그냥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다시 헛간 비지터센터까지 올라가 윗층의 극장 입구로 향하는데, 맨발로 필사적으로 매달린 마네킹에 또 눈길이 갔다. 이 곳이 1964년에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며 이 전시도 만들어졌다면 60년이나 됐다는 이야기인데 그럴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이제 들어갈 극장과 함께 중간에 리모델링을 하면서 제작된게 아닐까 생각된다. 아주 제대로 된 극장에 관객은 위기주부와 다른 부부해서 총 3명뿐이었다. 레인저가 들어와 이제 틀어줄 35분 길이의 라는 영화에 대해 잠깐 설명을 하는데,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옛날에 흑백으로 만들어졌으나 지금까지 국립공원청이 제작한 영화들 중에서 아직도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했던 것 같다. 참고로 존스타운 마을의 기념관에서 상영하며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도 있는, 1990년 아카데미 단편 다큐멘터리 상을 받은 와는 다른 영화이다. 존스타운에 1892년에 만들어진 이 공동묘지에 비가 내리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되었는데, 앞부분은 마치 히치콕 감독의 공포영화를 보는 듯 했다. 그리고는 댐이 무너지는 장면과 철도와 다리가 부서지고, 사람들이 물에 휩쓸리는 모습들까지 아주 잘 찍은 재난영화로 이어지는 명작이었다.^^ 보통 비지터센터에서 틀어주는 영화는 공원 홈페이지를 통해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는 인터넷에도 전혀 없고 오직 여기 비지터센터의 극장에 직접 와야만 관람이 가능하단다. 이 사건 직후에도 존스타운 생존자들이 댐 관리부실로 상기의 클럽을 고소했지만, 결국 아무도 법적 처벌은 받지 않았고 클럽 멤버들은 조용히 자신들의 별장을 모두 처분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책임을 질 소지가 있는 이러한 재해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우에, 이를 국가적으로 추모하고 기념하는 시설을 만들기 까지는 몇 세대가 흘러야만 가능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존스타운 홍수 국립기념지를 떠나 이 날의 마지막 목적지를 찾아가며 떠올랐던 것 같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로워맨하탄에 있는 두 개의 준국립공원인 스톤월과 흑인매장지 및 다른 곳들도 둘러본 셀프 워킹투어

로워맨하탄에 있는 두 개의 준국립공원인 스톤월과 흑인매장지 및 다른 곳들도 둘러본 셀프 워킹투어

작년 7월부터 딸이 맨하탄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로 거의 매달 뉴욕시를 찾았었지만, 이번에는 정확히 무려 3개월만의 방문이었다. 대신에 그 전에는 대부분이 당일치기였다면, 이번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루 숙박을 해서, 동부로 이사온 후부터 계속 가보고 싶었던 정원도 다음날 구경을 하고 다른 역사공원 한 곳도 잠시 들렀다. 또 첫날 맨하탄에서 잠시 위기주부 혼자 셀프 워킹투어를 하면서, 본 포스팅인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 뉴욕 번외편'도 찍는 등 오래간만에 여러모로 알찬 1박2일 여행이었다.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의 'Sotto 13'이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의 일요일 점심은, 뉴욕으로 프로포즈 여행을 온 아칸소 주에 살고 있는 조카와 약혼녀를 함께 만나서 특별히 더욱 뜻깊었고, 또 이 날은 미국의 마더스데이(Mother's Day)이기도 했다. 그러나 식사만 마치고 우리는 모두 뿔뿔이 흩어졌는데... 조카 커플은 맨하탄 관광을 위해 첼시로 향했고, 지혜는 급한 업무로 일을 하러 아파트로 돌아가고, 아내는 마침 뉴욕에 와있는 LA 친구를 만나러 갔다. 그래서 위기주부는 혼자 로워맨하탄(Lower Manhattan) 지역의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들을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아내를 근처 커피숍에 바래다 주고 6번가(6th Ave)를 따라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니, 작년 8월에 점심을 먹었던 초록색 Olio e Più 식당이 나왔다. 여기서 오른편 크리스토퍼 길(Christopher St)로 들어가면 비교적 최근인 2016년에 오바마 대통령이 지정한 준국립공원이 하나 나온다. 도로 가운데 좁고 긴 삼각형의 녹지에 성조기와 함께 무지개 깃발이 걸려있고, 그 오른편으로 이제 찾아가는 '술집'이 나온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스톤월인(Stonewall Inn)이란 가게 이름 네온사인이 양복을 입은 두 남자에 살짝 가렸는데, 1969년 6월 28일 새벽 1시경에 뉴욕경찰이 주류 판매허가 없이 술을 판다고 단속을 나왔던 게이바(gay bar)로, 사건 후 오랫동안 폐업했다가 2007년부터 다시 운영하고 있다. (주점과 별도의 오른쪽 하얀 문을 입구로 하는 비지터센터가 올해 6월말에 오픈 예정) 맞은 편 공원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뜬금없이... 남북전쟁과 인디언전쟁에서 활약한 5성 장군 필립 셰리든(Philip Sheridan)의 동상인데, 그래서 여기 교차로는 셰리든 광장(Sheridan Square)으로 불린다. (여기를 클릭해서 셰리든 원수를 소개했던 여행기를 보실 수 있음) 그 공원의 입구쪽으로 돌아가니까 마침내 스톤월 내셔널모뉴먼트(Stonewall National Monument)라는 간판을 찾을 수 있었다. 여러 안내판들 외에 기념물이라 할 만한 것은 약간 어설프게 조각한 것 같았던 두 커플의 하얀 동상이다. 이 곳이 준국립공원으로 지정되던 그 해에, 위기주부가 방문했던 준국립공원들 리스트를 정리하는 포스팅을 작성하면서, 지정에 논란이 많은 장소라는 언급을 했었지만... 실제 방문을 하고 포스팅을 쓰면서 나무위키의 '스톤월 항쟁(Stonewall Uprising)' 문서 등을 읽어보니까, 그 이듬해인 1970년부터 시작되어 지금은 전세계에서 매년 6월에 열리는 프라이드 퍼레이드(Pride Parade)가 시작된 장소로서 충분히 국가적으로 기념할만 한 곳이라는 생각이다. 문제는 수집하는 까만 줄의 브로셔를 구해야 하는데... 밖의 공원에는 비치된 것이 없어, 지키고 있는 경찰에게 물어보니 아마 가게에 있을 거란다~ 그렇다고 저 까만 문을 열고 위기주부 혼자 안에 들어가기는 좀 거시기 해서... 그냥 생략하고 남쪽으로 워킹투어를 계속했다. 7번가(7th Ave)를 따라 제법 걸으니까, 맨하탄과 뉴저지를 연결하는 홀랜드 터널(Holland Tunnel)의 입구가 나왔다. 1927년에 개통되어 거의 백년이 다 되어가는데, 개통 당시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해저 터널이었단다. (지나갈 때마다 물에 잠길까봐 조마조마^^) 그리고 뉴욕시에 처음 정착한 네덜란드 사람들을 기려서 이름을 붙였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터널의 설계 책임자였다가 완공을 보지 못하고 급사한 Clifford Holland의 성을 딴 것이란다. 그 남쪽 지역은 트리베카(Tribeca)라 불리는데 "Triangle Below Canal street"라는 뜻으로, 소방차 한 대 겨우 들어갈 것 같은 저 소방서 건물을 보러왔다. 어디서 보신 듯한 저 건물의 힌트는 빨간 차고문 위에 매달린 하얀 간판인데, 바로 1984년 Ghostbusters 영화에서 유령잡는 회사의 본부로 나왔던 건물로, 영화에서는 폐소방서라고 하지만 지금도 실제 소방서로 이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이미 소개한 적이 있는 젱가타워(Jenga Tower)인데 높이 250 m의 57층 콘도 빌딩으로 2017년에 완공되었다. 이제 워킹투어는 맨하탄을 동쪽으로 가로질러야 해서, 이왕 여기까지 온거 저 건물 바로 밑으로 지나가 보기로 했다. 거기에는 시카고의 클라우드게이트(Cloud Gate), 소위 "콩(The Bean)"과 비슷한 둥근 스테인레스 덩어리를 볼 수 있는데, 역시 시카고의 콩을 만든 인도계 영국인 Anish Kapoor 작품이라고 한다. 길 건너서 광각으로 찍어보면, 이렇게 젱가의 제일 아래쪽 모퉁이를 은색 조약돌로 받쳐놓은 것 같이 보였다. 또 이 건물은 2022년 게임스탑 주식과 함께 급등락을 하다가 파산했던 Bed Bath & Beyond 회사의 CFO가 18층 자택 발코니에서 투신자살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두번째 준국립공원은 사진 가운데 보이는 브로드웨이(Broadway) 대로변의 연방정부 건물 안에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1990년대에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저 빌딩을 짓기 위해 땅을 파는 과정에서 400여구의 매장된 시신이 새로 발견되었다. 건물 왼편 뒤로 꼭대기가 살짝 보이는 뉴욕시청을 포함해 이 지역은 18세기말까지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만을 위한 묘지로 사용되어 15,000개 정도의 무덤이 있었지만, 19세기에는 아무런 보호도 없이 갈아엎고 건물들을 지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사를 중단하고 지역을 모두 발굴해서 유해와 유물들을 수습한 후에, 건물 내부에 이 장소의 역사를 소개하는 비지터센터와 함께 외부에 별도의 추모공간을 만들어서 2006년에 흑인매장지 준국립공원(African Burial Ground National Monument)으로 지정을 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일요일에는 연방 공무원들이 일을 안하기 때문에 비지터센터도 문을 닫는다는 사실... 흑흑~ 비지터센터를 통과해서 나오게 된다는 메모리얼 광장도 못 들어가게 막아 놓았다.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오른쪽 잔디밭으로 여러 개의 봉분들이 있는데, 발굴된 유해들의 분석을 마친 후에 아프리카 전통의 이장 의식을 행해서 다시 단체로 여기 매장을 했다고 한다. 그런 역사도 있는 맨하탄의 지금 모습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듯 해서...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노란 신호등과, 대피용 외부 계단이 붙어있는 붉은 벽돌 건물의 모습을 찍어 봤는데,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곳은 19세기 이후 맨하탄에서 살았던 평범한 소시민들의 모습을 보존하고 전시한 곳이다. 철조망 사이로 핸폰 렌즈를 넣고 찍은 사진인데, 허름한 '공동주택(tenement)'의 반지하에서 여러 사람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연말에 방문했던 맨하탄 차이나타운(Chinatown)과 가까이 있는 이 건물은, 전세계에서 뉴욕으로 온 이민자 가족들이 힘들게 살았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데, 너무 낡아서 수리도 못하고 50년 가까이 비워졌던 아파트를 통째로 1988년에 박물관으로 만든 것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거주박물관(Tenement Museum)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National Historic Site로, 국립공원청의 협력을 받는 연계 장소(affiliated unit)에 포함된다. 1층 비지터센터의 유리벽에 여기에서 살았던 이민자 가족들의 흑백사진이 차례로 붙어있는데, 뮤지엄에 대한 상세한 소개는 공원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가 있다. 곧 유료투어가 시작된다는 방송에 사람들이 싹 이동해서 썰렁해 보이는 것이고, 조금 전까지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어찌보면 앞서 위기주부말고는 일부러 찾는 사람이 없던 두 곳의 준국립공원들보다도 훨씬 '장사'가 잘 되는 역사유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안쪽에 이 곳의 역사를 보여주는 영화를 공짜로 틀어줘서, 이게 왠 떡이냐 하며 워킹투어로 지친 발걸음을 쉬며 감상하려고 했는데, 아내로부터 친구와 헤어지고 이제 지혜 아파트로 돌아간다는 카톡이 와서 앉자마자 일어서여 했다... 이렇게 워킹투어를 정리해보니 1993년에 출간된 소설가 황석영의 방북기 제목인 가 떠오른다. 인권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성소수자들, 노예로 잡혀와 죽은 흑인들, 그리고 전세계에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뉴욕으로 왔던 이민자들까지, 여기 맨하탄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로워맨하탄에 있는 두 개의 준국립공원인 스톤월과 흑인매장지 및 다른 곳들도 둘러본 셀프 워킹투어

로워맨하탄에 있는 두 개의 준국립공원인 스톤월과 흑인매장지 및 다른 곳들도 둘러본 셀프 워킹투어

작년 7월부터 딸이 맨하탄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로 거의 매달 뉴욕시를 찾았었지만, 이번에는 정확히 무려 3개월만의 방문이었다. 대신에 그 전에는 대부분이 당일치기였다면, 이번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루 숙박을 해서, 동부로 이사온 후부터 계속 가보고 싶었던 정원도 다음날 구경을 하고 다른 역사공원 한 곳도 잠시 들렀다. 또 첫날 맨하탄에서 잠시 위기주부 혼자 셀프 워킹투어를 하면서, 본 포스팅인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 뉴욕 번외편'도 찍는 등 오래간만에 여러모로 알찬 1박2일 여행이었다.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의 'Sotto 13'이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의 일요일 점심은, 뉴욕으로 프로포즈 여행을 온 아칸소 주에 살고 있는 조카와 약혼녀를 함께 만나서 특별히 더욱 뜻깊었고, 또 이 날은 미국의 마더스데이(Mother's Day)이기도 했다. 그러나 식사만 마치고 우리는 모두 뿔뿔이 흩어졌는데... 조카 커플은 맨하탄 관광을 위해 첼시로 향했고, 지혜는 급한 업무로 일을 하러 아파트로 돌아가고, 아내는 마침 뉴욕에 와있는 LA 친구를 만나러 갔다. 그래서 위기주부는 혼자 로워맨하탄(Lower Manhattan) 지역의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들을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아내를 근처 커피숍에 바래다 주고 6번가(6th Ave)를 따라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니, 작년 8월에 점심을 먹었던 초록색 Olio e Più 식당이 나왔다. 여기서 오른편 크리스토퍼 길(Christopher St)로 들어가면 비교적 최근인 2016년에 오바마 대통령이 지정한 준국립공원이 하나 나온다. 도로 가운데 좁고 긴 삼각형의 녹지에 성조기와 함께 무지개 깃발이 걸려있고, 그 오른편으로 이제 찾아가는 '술집'이 나온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스톤월인(Stonewall Inn)이란 가게 이름 네온사인이 양복을 입은 두 남자에 살짝 가렸는데, 1969년 6월 28일 새벽 1시경에 뉴욕경찰이 주류 판매허가 없이 술을 판다고 단속을 나왔던 게이바(gay bar)로, 사건 후 오랫동안 폐업했다가 2007년부터 다시 운영하고 있다. (주점과 별도의 오른쪽 하얀 문을 입구로 하는 비지터센터가 올해 6월말에 오픈 예정) 맞은 편 공원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뜬금없이... 남북전쟁과 인디언전쟁에서 활약한 5성 장군 필립 셰리든(Philip Sheridan)의 동상인데, 그래서 여기 교차로는 셰리든 광장(Sheridan Square)으로 불린다. (여기를 클릭해서 셰리든 원수를 소개했던 여행기를 보실 수 있음) 그 공원의 입구쪽으로 돌아가니까 마침내 스톤월 내셔널모뉴먼트(Stonewall National Monument)라는 간판을 찾을 수 있었다. 여러 안내판들 외에 기념물이라 할 만한 것은 약간 어설프게 조각한 것 같았던 두 커플의 하얀 동상이다. 이 곳이 준국립공원으로 지정되던 그 해에, 위기주부가 방문했던 준국립공원들 리스트를 정리하는 포스팅을 작성하면서, 지정에 논란이 많은 장소라는 언급을 했었지만... 실제 방문을 하고 포스팅을 쓰면서 나무위키의 '스톤월 항쟁(Stonewall Uprising)' 문서 등을 읽어보니까, 그 이듬해인 1970년부터 시작되어 지금은 전세계에서 매년 6월에 열리는 프라이드 퍼레이드(Pride Parade)가 시작된 장소로서 충분히 국가적으로 기념할만 한 곳이라는 생각이다. 문제는 수집하는 까만 줄의 브로셔를 구해야 하는데... 밖의 공원에는 비치된 것이 없어, 지키고 있는 경찰에게 물어보니 아마 가게에 있을 거란다~ 그렇다고 저 까만 문을 열고 위기주부 혼자 안에 들어가기는 좀 거시기 해서... 그냥 생략하고 남쪽으로 워킹투어를 계속했다. 7번가(7th Ave)를 따라 제법 걸으니까, 맨하탄과 뉴저지를 연결하는 홀랜드 터널(Holland Tunnel)의 입구가 나왔다. 1927년에 개통되어 거의 백년이 다 되어가는데, 개통 당시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해저 터널이었단다. (지나갈 때마다 물에 잠길까봐 조마조마^^) 그리고 뉴욕시에 처음 정착한 네덜란드 사람들을 기려서 이름을 붙였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터널의 설계 책임자였다가 완공을 보지 못하고 급사한 Clifford Holland의 성을 딴 것이란다. 그 남쪽 지역은 트리베카(Tribeca)라 불리는데 "Triangle Below Canal street"라는 뜻으로, 소방차 한 대 겨우 들어갈 것 같은 저 소방서 건물을 보러왔다. 어디서 보신 듯한 저 건물의 힌트는 빨간 차고문 위에 매달린 하얀 간판인데, 바로 1984년 Ghostbusters 영화에서 유령잡는 회사의 본부로 나왔던 건물로, 영화에서는 폐소방서라고 하지만 지금도 실제 소방서로 이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이미 소개한 적이 있는 젱가타워(Jenga Tower)인데 높이 250 m의 57층 콘도 빌딩으로 2017년에 완공되었다. 이제 워킹투어는 맨하탄을 동쪽으로 가로질러야 해서, 이왕 여기까지 온거 저 건물 바로 밑으로 지나가 보기로 했다. 거기에는 시카고의 클라우드게이트(Cloud Gate), 소위 "콩(The Bean)"과 비슷한 둥근 스테인레스 덩어리를 볼 수 있는데, 역시 시카고의 콩을 만든 인도계 영국인 Anish Kapoor 작품이라고 한다. 길 건너서 광각으로 찍어보면, 이렇게 젱가의 제일 아래쪽 모퉁이를 은색 조약돌로 받쳐놓은 것 같이 보였다. 또 이 건물은 2022년 게임스탑 주식과 함께 급등락을 하다가 파산했던 Bed Bath & Beyond 회사의 CFO가 18층 자택 발코니에서 투신자살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두번째 준국립공원은 사진 가운데 보이는 브로드웨이(Broadway) 대로변의 연방정부 건물 안에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1990년대에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저 빌딩을 짓기 위해 땅을 파는 과정에서 400여구의 매장된 시신이 새로 발견되었다. 건물 왼편 뒤로 꼭대기가 살짝 보이는 뉴욕시청을 포함해 이 지역은 18세기말까지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만을 위한 묘지로 사용되어 15,000개 정도의 무덤이 있었지만, 19세기에는 아무런 보호도 없이 갈아엎고 건물들을 지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사를 중단하고 지역을 모두 발굴해서 유해와 유물들을 수습한 후에, 건물 내부에 이 장소의 역사를 소개하는 비지터센터와 함께 외부에 별도의 추모공간을 만들어서 2006년에 흑인매장지 준국립공원(African Burial Ground National Monument)으로 지정을 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일요일에는 연방 공무원들이 일을 안하기 때문에 비지터센터도 문을 닫는다는 사실... 흑흑~ 비지터센터를 통과해서 나오게 된다는 메모리얼 광장도 못 들어가게 막아 놓았다.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오른쪽 잔디밭으로 여러 개의 봉분들이 있는데, 발굴된 유해들의 분석을 마친 후에 아프리카 전통의 이장 의식을 행해서 다시 단체로 여기 매장을 했다고 한다. 그런 역사도 있는 맨하탄의 지금 모습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듯 해서...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노란 신호등과, 대피용 외부 계단이 붙어있는 붉은 벽돌 건물의 모습을 찍어 봤는데,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곳은 19세기 이후 맨하탄에서 살았던 평범한 소시민들의 모습을 보존하고 전시한 곳이다. 철조망 사이로 핸폰 렌즈를 넣고 찍은 사진인데, 허름한 '공동주택(tenement)'의 반지하에서 여러 사람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연말에 방문했던 맨하탄 차이나타운(Chinatown)과 가까이 있는 이 건물은, 전세계에서 뉴욕으로 온 이민자 가족들이 힘들게 살았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데, 너무 낡아서 수리도 못하고 50년 가까이 비워졌던 아파트를 통째로 1988년에 박물관으로 만든 것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거주박물관(Tenement Museum)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National Historic Site로, 국립공원청의 협력을 받는 연계 장소(affiliated unit)에 포함된다. 1층 비지터센터의 유리벽에 여기에서 살았던 이민자 가족들의 흑백사진이 차례로 붙어있는데, 뮤지엄에 대한 상세한 소개는 공원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가 있다. 곧 유료투어가 시작된다는 방송에 사람들이 싹 이동해서 썰렁해 보이는 것이고, 조금 전까지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어찌보면 앞서 위기주부말고는 일부러 찾는 사람이 없던 두 곳의 준국립공원들보다도 훨씬 '장사'가 잘 되는 역사유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안쪽에 이 곳의 역사를 보여주는 영화를 공짜로 틀어줘서, 이게 왠 떡이냐 하며 워킹투어로 지친 발걸음을 쉬며 감상하려고 했는데, 아내로부터 친구와 헤어지고 이제 지혜 아파트로 돌아간다는 카톡이 와서 앉자마자 일어서여 했다... 이렇게 워킹투어를 정리해보니 1993년에 출간된 소설가 황석영의 방북기 제목인 가 떠오른다. 인권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성소수자들, 노예로 잡혀와 죽은 흑인들, 그리고 전세계에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뉴욕으로 왔던 이민자들까지, 여기 맨하탄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미국 남북전쟁(Civil War)에서 가장 길었던 9달반의 군사작전인 피터스버그 포위전(Siege of Petersburg)

미국 남북전쟁(Civil War)에서 가장 길었던 9달반의 군사작전인 피터스버그 포위전(Siege of Petersburg)

"움켜잡다/점령하다"라는 뜻의 영단어 'seize'와 스펠링과 발음, 그리고 의미까지 비슷해서 헷갈리는 다른 단어로 'siege'가 있다. 영어에 약했던 위기주부는 "가두다/포위하다"라는 뜻의 이 단어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때를 정확히 기억하는데, 바로 한국에 PC방 열풍을 일으켰던 컴퓨터 전략 게임인 스타크래프트(StarCraft)를 하면서, 테란 종족의 지상공격 무기에 시즈탱크(Siege Tank)가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본인의 주종족은 프로토스였는데... 정말 거의 30년전 이야기다! ㅎㅎ 말을 꺼낸 김에 찾아본 시즈탱크의 모습으로 애니메이션처럼 지지대로 땅에 고정되는 '시즈모드(siege mode)'를 개발하면, 엄청난 사거리의 포격으로 적의 기지와 방어선을 공성(攻城)하는 능력이 탁월한 무기였다. 옛날이라 비록 이런 탱크는 없었지만(^^) 북군이 무지막지한 크기의 대포를 만들면서까지, 남군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피터스버그를 9개월 이상 둘러싸고 공격을 했던 것이 바로 피터스버그 포위전(Siege of Petersburg)이다. 1864년 남북전쟁 말기의 소위 '오버랜드 캠페인(Overland Campaign)'에서 양측의 이동경로를 보여주는 지도이다. 제일 위쪽의 The Wilderness와 Spotsylvania Court House 전투는 작년 여름에, 그랜트가 남군 수도 리치먼드를 점령하려다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Cold Harbor 전투는 시리즈 전편에서 잠깐씩 소개를 했었다. 그 후에 제일 아래의 여기 피터스버그를 점령하기 위해 9개월 이상 공성전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부근의 많은 전투지역과 북군의 보급기지였던 제임스 강변의 시티포인트(City Point) 등이 국립 공원인 피터스버그 국립전쟁터(Petersburg National Battlefield)로 지정이 되어 있고, 여기는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동부전선 안내소(Eastern Front Visitor Center)인데, 시작부터 커다란 대포들이 즐비하게 놓여있다. 공성전의 의미를 살리려 했는지, 비지터센터 건물의 외관도 아주 튼튼한 성처럼 느껴졌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여기서 제임스 강을 따라서 하류로 내려가면, 재작년에 방문해서 잠깐 소개한 적이 있는 버지니아 식민지가 시작된 제임스타운(Jamestown)이 나오는데, 그 공원 안에 있던 역사적인 글래스하우스(Glasshouse)에서 만든 유리공예 제품을 전시판매하고 있는게 특이했다. 직원이 위기주부만을 위해서 안내영화 를 틀어주었는데, 재연배우들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피터스버그 포위전을 이해하는데 역시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화면의 좌우 아래쪽으로 많이 보이는 것들이 모두 스피커였나? 앞서 잠깐 언급했던 특별 제작한 대포인 'The Dictator'로 지름 13인치에 무게 100 kg이 넘는 포탄을 2.5마일 거리까지 발사할 수 있었단다. 하지만 대포 자체의 무게가 8톤이 넘어서, 철도로만 운반이 가능했기 때문에 활용도가 낮아서 자주 사용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원형의 극장을 전시장이 둘러싸고 있는데, 그 사이에는 참호를 연상시키도록 땅을 파놓은 이유도 나중에 아시게 된다. 그렇게 비지터센터 구경을 마치고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여기는 오토투어의 출발점 역할만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기는 했지만 레인저가 추천해 준 장소 두 곳은 둘러보기로 하고, 아래와 같은 일방통행 도로를 따라서 출발을 했다. 넓은 지역을 모두 표시한 공원 지도에서 피터스버그 시내와 가장 가까웠던 동부전선 지역만 크게 확대한 것으로, 연한 붉은색으로 띄엄띄엄 그려진 굵은 선들이 남군의 방어선을 나타낸다. ③번 Siege Encampment Exhibit로 양측이 9개월 이상 대치할 때, 병사들이 임시로 만들어 지냈던 통나무집과 함께... 당시의 참호를 재현해 놓았다. 1900년대 초의 제1차 세계대전을 상징하는 장면인 참호전이, 실질적으로 처음 등장한 전투가 피터스버그 포위전이라 한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이 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인 ⑧번 The Crater이다. "여기에 무슨 분화구가 있다는 말이지?" 난간 안쪽으로 지금도 움푹 꺼져보이는 곳이 바로 그 '분화구'이다. 빨리 피터스버그를 함락시키고 리치먼드를 점령해 전쟁을 끝내고 싶었던 그랜트 장군의 지시로, 남군 방어선 아래로 몰래 땅굴을 파서, 1864년 7월 30일 새벽에 무려 8,000파운드의 화약을 폭발시켜서 지름 50 m에 깊이 9 m의 거대한 이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당연히 남군의 진지도 싹 다 날라가서, 그 무너진 틈으로 북군이 돌격을 했지만... 공원 브로셔 표지에 인쇄된 이 그림처럼 북군은 깊숙한 구덩이에 빠져서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고, 정신을 차린 주변의 남군이 반격을 해와서, 대부분 흑인으로 구성되었던 북군의 돌격부대는 거의 학살을 당하는 수준으로 무려 3,800명의 사상자를 내게 된다. 이 구덩이 전투(Battle of the Crater)의 실패로 그랜트는 전략을 바꿔서, 피터스버그를 포위하고 남군의 보급 철도망을 하나씩 끊어나가는 장기전에 돌입하게 된다. 확실히 여기는 남부 버지니아라서 그런지 구덩이 주변으로는 여기를 지키고 싸웠던 남군을 추모하는 기념물이 많이 보였는데, 앞쪽에 보이는 것은 노스캐롤라이나 부대를 기리는 것이고, 뒤로 보이는 탑은 그 날 반격을 주도한 남군의 마혼(Mahone) 장군 기념비이다. 그렇게 남군은 절대적인 열세 속에서 이듬해 3월말까지 무려 9개월반을 버텼지만... 결국 마지막 보급선까지 끊어지고 북군 총사령관 그랜트 장군이 총공세를 예고하자, 1865년 4월 2일 밤에 남군 총사령관 리(Lee) 장군은 피터스버그와 리치먼드를 동시에 포기하고 전병력을 유일한 탈출구인 서쪽으로 후퇴시키기로 결정한다. 그로부터 7일 후에 두 장군이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장소가 바로, 이 날 위기주부가 첫번째로 방문했던 곳으로 '남부 버지니아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들'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 소개될 예정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