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주부의 미국 여행과 생활 V2

Sources

Posts

620 posts

워싱턴이 다녀간 미국 최초의 온천 휴양지라는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버클리스프링스(Berkeley Springs)

미국에서 도시나 마을의 이름 끝에 'Springs'가 붙으면, 옛날부터 특별한 온천이나 샘물로 유명한 곳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모두 몇 곳이나 있는지 궁금하길래 요즘 대세라는 ChatGPT에 물어보니 17개가 나오고, 구글 검색으로는 25개가 적힌 사이트를 알려줬다. 하지만 둘 다 이제 소개하는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 마을의 이름은 그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볼티모어(Baltimore) 관광을 마친 후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차가운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고, 오래간만에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돌아다녔더니 피곤해서 체크인하고 바로 둘 다 잠들었다... 그래서 저녁은 그냥 여기 호텔 레스토랑에서 먹기로 했는데, 사실 아주 작은 마을이라서 특별히 찾아갈만한 다른 식당도 없었다. 동양인이라고는 우리 둘밖에 없던 웨스트버지니아(West Virginia) 주의 촌구석 식당에서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저녁을 먹었다. 고풍스런 컨트리인(Country Inn)의 로비 모습으로 이 자리에 숙소가 처음 들어선 것은 177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현재의 이 건물은 1932년에 만들어졌단다. 데스크 옆으로 기념품 가게가 있다고 해서 들어가 봤는데, 간단한 옷가지와 머그컵 등 외에 특별히 눈에 띈 것은 바로... 장식장 안에 고이 모셔둔 이 생수병들이었다! 이제서야 이름을 알려드리는 여기 버클리스프링스(Berkeley Springs) 마을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물맛 대회'라는 International Water Tasting을 매년 개최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생수병에 든 물맛을 어떻게 평가해서 경진대회를 한다는 것인지, 음식맛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위기주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하다~ ㅎㅎ 다음날 아침 날씨가 맑아져 체크아웃을 한 후에 호텔 외관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유일한 관광지가 길 건너에 있었지만 일단 아침을 먹어야 해서, 차를 몰고 여기서 가장 인기있는 브런치 식당을 들린 후에, 다시 이 곳으로 돌아와 주차를 하고 바로 옆 공원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마을의 한 가운데 버클리스프링스 주립공원(Berkeley Springs State Park)이 있는데, 그림과 함께 '미국 최초의 온천(America's First Spa)'이라고 자랑스럽게 적혀있는 다른쪽 표지판은 찍지를 못했다. 공원의 양쪽으로 온천탕 건물이 만들어져 있어서, 여기는 1929년에 만들어진 메인 배스하우스(Main Bathhouse)로 우리가 숙박한 호텔 바로 옆 건물이다. 3년전 대륙횡단 이사를 할 때 들렀던 아칸소 주의 핫스프링스(Hot Springs)가 미국의 '국립온천'이라면, 이 곳은 미국에서 유일한 '주립온천'이라고 하는데, 과감히 미국의 최초 온천이라고 주장을 하는 근거는 다름아니라 아래의 노천 욕탕(bath tub) 때문이다. 1748년 식민지 시대에 페어팩스 경을 위한 탐사대의 일원으로 16세의 조지 워싱턴이 여기를 처음 방문한 후로 여러번 온천욕을 위해 다시 찾았고, 당시 웜스프링스(Warm Springs)로 불리던 이 지역은 1776년에 영국의 유명한 온천도시의 이름을 따서 바스(Bath)로 처음 명명되었다. 워싱턴이 마지막으로 1784년에 찾아왔을 때는 우리가 잤던 곳에 그도 머물렀는데, 그렇다고 저 낙엽이 둥둥 떠있는 물에 들어가면 워싱턴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야외 욕조는 1930년대에 공원을 정비하면서 관광용으로 만든 것이다.^^ '워싱턴 욕탕'의 바로 위 언덕에는 슬픈 사랑이야기를 담고 1891년에 만들어진 버클리스프링스 캐슬(Berkeley Springs Castle)도 있는데, 미리 예약을 통해서만 들어가 볼 수 있고 평소에는 일반에게 개방되지 않는다. 이 공원이 좌측 언덕의 여러 곳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이 합쳐져 흐르는 위치라서 옛날부터 개발이 되었는데, 건너편에 보이는 건물들이 가장 오래된 시설이다. 아이들이 발을 담그고 들어간 곳을 노천 족탕이라 부를 수 있겠지만, 위에 언급했던 핫스프링스처럼 정말 자연적으로 뜨거운 물이 흘러오는 정도는 아니고, 그냥 쌀쌀한 가을날씨에 비해서 물온도는 차갑다고 느껴지지 않는 정도였다. 1815년에 만들어진 모습 그대로의 올드로만 배스하우스(Old Roman Bathhouse)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건물 중의 하나라는데, 잠시 들어가서 내부를 구경해봤다. 따로 탈의실과 대형 욕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개인실만 9개가 있어서 지금도 요금을 내면 물을 새로 채우고 정해진 시간만큼 사용을 하는 형태로 운영이 되고 있다. 건물 옆의 안내판에는 이 목욕탕과 윗층의 박물관 및 온천의 수질, 그리고 지금의 웨스트버지니아 지역을 다녀간 조지 워싱턴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Washington Heritage Trail 등에 대해 설명을 해놓았다. 박물관은 11시에 문을 연다고 해서 기다리는 동안에 주변의 상점들을 둘러보았다. 미국의 이런 시골 마을에는 중심가에 꼭 골동품점이 하나씩 있는데, 이 앤틱몰(Antique Mall)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아주 넓은 실내가 온갖 오래된 잡동사니(?)들로 가득 차있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 많은 것들을 모았는지? 손으로 쓴 가격표에 있는 값들을 모두 합친다면 과연 얼마가 될지?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재미있게 구경을 했다. 박물관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판매용인지 전시용인지 헷갈리는 오래된 수영복들과 함께 걸려있던, 욕조에 들어가서 노란 오리를 가지고 놀고있는 조지 워싱턴의 그림이었다. 이 곳의 다른 유명한 인물은 제임스 럼지(James Rumsey)로 한 때 여기 살면서 포토맥 강을 운항하는 증기선을 최초로 만들려고 시도한 엔지니어라 한다. 워싱턴의 추천을 받아 활발히 연구를 하다가 영국으로 건너가 여러 개의 특허를 받았지만, 젊은 나이에 과로로 급사하는 바람에 많이 알려지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박물관을 관통해서 나오니 '미국 최초의 온천'이었던 버클리스프링스 주립공원의 전체 모습이 내려다 보였다. 사진 아래쪽에 무슨 통을 장바구니에 가득 담고 걸어가시는 분이 보이는데... 옆건물 Gentleman's Spring 수도꼭지에서 공짜로 물을 받아가려는 동네 사람들이 각자 물통을 들고 와있는 것이었다. 위키에 따르면 이 마을의 모든 상수도가 같은 샘물을 사용한다고 해서, 호텔 욕조에 몸을 담근 것으로 온천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따로 와서 여기 물을 받아가는 것을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자칭 '온천 애호가'라는 아내 말씀이 호텔의 수돗물이 좀 다른 듯 하지만, 위의 핫스프링스 온천수 만큼의 감동은 별로 없었다고 하니, 아무래도 기회가 되면 다시 방문을 해서 주립공원 내의 공식 온천탕 둘 중의 하나를 이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볼티모어 시내의 피바디 도서관(Peabody Library), 월터스 미술관(Walters Art Museum), 워싱턴 기념탑

위기주부는 2003년에 한국에서 출장으로 미국의 볼티모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을 한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이너하버(Inner Harbor)에 정박되어 있는 오래된 범선과, 학회장 맞은편에 흔히 '캠든야드(Camden Yards)'라 불리는 MLB 볼티모어 오리올스(Baltimore Orioles) 야구장 등을 밖에서 잠깐씩 구경했던게 전부였다. 20년이 훌쩍 지나 다시 찾은 볼티모어에서 역사적인 성지가 된 요새를 구경한 후에 다운타운의 북쪽에 있는 볼티모어의 다른 관광지들을 찾아 이동을 했다. 오리올스 야구팀의 마스코트인 찌르레기(oriole)가 그려진 까만 시내버스 위로 솟아 있는 둥근 기둥의 꼭대기 동상은 조지 워싱턴이고, 그 좌우로 이제 소개하는 건물들이 있기 때문에 기념탑을 지나서 도로변에 주차를 했다. 기념탑을 중심으로 십자형의 공원이 만들어져 있는데, 동남쪽 사분면에 위치한 이 건물이 첫번째 목적지로 밖에서 봤을 때는 평범한 2층 건물같지만, 중앙 입구로 들어가서 왼편의 홀을 거쳐 좁은 문을 통과하면... 미국 또는 세계에서 아름다운 도서관들을 꼽으면 순위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는 조지 피바디 라이브러리(George Peabody Library)가 눈앞에 나타난다. 이 건물은 1857년에 설립된 피바디 연구소(Peabody Institute)의 도서관으로 1878년에 완공되었는데, 연구소가 독립적인 피바디 음악원이 된 후에 1977년에 존스홉킨스(Johns Hopkins) 음악대학이 되면서, 현재는 대학교 소속 도서관으로 관리되고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방문객들은 1층만 자유롭게 돌아볼 수 있다고 해서, 한바퀴 돌며 이 멋진 공간을 잠시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무슨 책들이 꽂혀 있는지 궁금해서, 서가 한 칸에 들어가서 책꽂이를 찍어봤다~ 1층에 있는 책들이야 우리같은 관광객들이라도 슬쩍 꺼내서 한 번 펼쳐 보지만, 저 위에 꽂혀있는 책들 중에서 지구 멸망 전에 사람에게 다시 읽혀질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 흑백의 대리석 바닥에서 꼭대기 채광창까지의 높이는 약 20미터이고, 그 사방을 둘러싸고 6층으로 만들어진 서가에 소장된 책들은 약 30만권이란다. 이러한 웅장한 실내가 마치 대성당에 들어선 느낌과 비슷해서 이 도서관은 "Cathedral of Books"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오래된 책걸상에 잠시 앉아서 아무 책이나 뽑아 한 페이지라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밖으로 나가 다음 목적지를 찾아갔다. 다운타운 북쪽의 얕은 언덕 꼭대기에 1815년에 착공되어 1829년에 완공된 높이 약 55미터의 이 워싱턴기념탑(Washington Monument)은, 1799년 워싱턴 사후에 그를 추모하는 대규모 기념물로는 미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 이 언덕 주변지역이 워싱턴의 버지니아 농장 이름을 딴 마운트버넌(Mount Vernon)으로 불리는 계기가 되었다. 기념탑은 나중에 둘러보기로 하고 공원을 가로질러서 다른 건물로 들어갔는데, 기념탑 남쪽에 세워진 동상은 미국독립에 결정적 기여를 한 프랑스인 라파예트(La Fayette)의 기마상이었다. 남북전쟁 후에 대서양 연안 철도노선을 설립한 윌리엄 톰슨 월터스(William Thompson Walters)와 그의 아들 헨리(Henry)가 대를 이어 수집한 미술품들을 모아 1934년에 개관한 월터스 미술관(The Walters Art Museum)의 옛날 입구로 들어섰는데, 계단 위로 보이는 조각 전시실은 현재 들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언덕에 만들어진 3개의 건물이 연결된 미로같은 통로를 지나서 주입구를 겨우 찾아갔다. 1층에서는 로 유명한 장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서, 농촌의 풍경을 묘사한 이 유화와 함께, 다른 대표작인 과 의 스케치에 간단히 칠을 한 습작화들도 볼 수 있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시아 미술을 모아놓은 4층으로 먼저 올라왔는데, 입구에서 찍은 이 모습 외에는 다른 사진이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전시가 볼게 없었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모처럼 미술관에 와서 조용히 감상에 집중했던 듯...^^ 나선형 계단을 따라 3층 중세미술로 내려왔는데, 일요일이라 입구에서 무슨 체험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색종이와 여러 장식들이 제공되어 뭔가를 만들어서 가져갈 수 있는거라, 잠시 할까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전시실로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붉은 벽지에 그림들을 벽에 빼곡히 걸어 놓아서, 유럽의 미술관에 온 듯한 착각이 잠시 들었던 방이다. 유럽 가본지 오래 됐네... 가이드를 따라 다니며 설명을 듣는 그룹도 있었는데, 지팡이를 짚으신 할머니부터 그림에는 관심없고 핸드폰에 열심인 십대 청소년까지 다양한게 무슨 사람들이 모인 것인지 궁금했다. 2층 고대미술은 입구 사진조차도 없어서, 마지막에 주입구로 나가기 직전에 나선형 계단을 올려다 보고 찍은 모습이 미술관 관람 내용의 끝이다. 여기 미술품들은 모두 아들 헨리가 사망하면서 볼티모어 시에 기증한 것이고, 설립 후에 유지 관리를 위해 약간의 입장료를 계속 받아왔지만, 2006년부터는 완전히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므로 꼭 들러볼만한 관광지라 할 수 있다. 근처에서 점심을 먹기 전에 기념탑 내부를 잠깐 둘러보기 위해서 안으로 들어갔는데, 기둥 안에 만들어진 227개의 나선형 계단을 올라서 꼭대기 전망대로 올라가는 것만 유료이다. 방문객이 거의 없어서 현장에서 돈만 내면 바로 올라가보는 것이 가능했지만, 그러기에는 둘 다 배가 고팠기 때문에... 정면에 있던 로마의 신처럼 조각된 워싱턴의 흉상만 잠깐 구경을 하고는 찾아둔 식당으로 이동을 했다. 꿀꿀한 날씨에 따뜻한 국물이 땡겨서 일본라멘 등으로 점심을 잘 먹고는, 20여년 전에 방문했었던 컨벤션센터와 오리올스 홈구장 등을 지나서 고속도로를 탄 후에, 예약해 둔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숙소를 네비게이션에 찍고는 서쪽으로 2시간 이상을 달렸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볼티모어 시내의 피바디 도서관(Peabody Library), 월터스 미술관(Walters Art Museum), 워싱턴 기념탑

위기주부는 2003년에 한국에서 출장으로 미국의 볼티모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을 한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이너하버(Inner Harbor)에 정박되어 있는 오래된 범선과, 학회장 맞은편에 흔히 '캠든야드(Camden Yards)'라 불리는 MLB 볼티모어 오리올스(Baltimore Orioles) 야구장 등을 밖에서 잠깐씩 구경했던게 전부였다. 20년이 훌쩍 지나 다시 찾은 볼티모어에서 역사적인 성지가 된 요새를 구경한 후에 다운타운의 북쪽에 있는 볼티모어의 다른 관광지들을 찾아 이동을 했다. 오리올스 야구팀의 마스코트인 찌르레기(oriole)가 그려진 까만 시내버스 위로 솟아 있는 둥근 기둥의 꼭대기 동상은 조지 워싱턴이고, 그 좌우로 이제 소개하는 건물들이 있기 때문에 기념탑을 지나서 도로변에 주차를 했다. 기념탑을 중심으로 십자형의 공원이 만들어져 있는데, 동남쪽 사분면에 위치한 이 건물이 첫번째 목적지로 밖에서 봤을 때는 평범한 2층 건물같지만, 중앙 입구로 들어가서 왼편의 홀을 거쳐 좁은 문을 통과하면... 미국 또는 세계에서 아름다운 도서관들을 꼽으면 순위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는 조지 피바디 라이브러리(George Peabody Library)가 눈앞에 나타난다. 이 건물은 1857년에 설립된 피바디 연구소(Peabody Institute)의 도서관으로 1878년에 완공되었는데, 연구소가 독립적인 피바디 음악원이 된 후에 1977년에 존스홉킨스(Johns Hopkins) 음악대학이 되면서, 현재는 대학교 소속 도서관으로 관리되고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방문객들은 1층만 자유롭게 돌아볼 수 있다고 해서, 한바퀴 돌며 이 멋진 공간을 잠시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무슨 책들이 꽂혀 있는지 궁금해서, 서가 한 칸에 들어가서 책꽂이를 찍어봤다~ 1층에 있는 책들이야 우리같은 관광객들이라도 슬쩍 꺼내서 한 번 펼쳐 보지만, 저 위에 꽂혀있는 책들 중에서 지구 멸망 전에 사람에게 다시 읽혀질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 흑백의 대리석 바닥에서 꼭대기 채광창까지의 높이는 약 20미터이고, 그 사방을 둘러싸고 6층으로 만들어진 서가에 소장된 책들은 약 30만권이란다. 이러한 웅장한 실내가 마치 대성당에 들어선 느낌과 비슷해서 이 도서관은 "Cathedral of Books"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오래된 책걸상에 잠시 앉아서 아무 책이나 뽑아 한 페이지라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밖으로 나가 다음 목적지를 찾아갔다. 다운타운 북쪽의 얕은 언덕 꼭대기에 1815년에 착공되어 1829년에 완공된 높이 약 55미터의 이 워싱턴기념탑(Washington Monument)은, 1799년 워싱턴 사후에 그를 추모하는 대규모 기념물로는 미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 이 언덕 주변지역이 워싱턴의 버지니아 농장 이름을 딴 마운트버넌(Mount Vernon)으로 불리는 계기가 되었다. 기념탑은 나중에 둘러보기로 하고 공원을 가로질러서 다른 건물로 들어갔는데, 기념탑 남쪽에 세워진 동상은 미국독립에 결정적 기여를 한 프랑스인 라파예트(La Fayette)의 기마상이었다. 남북전쟁 후에 대서양 연안 철도노선을 설립한 윌리엄 톰슨 월터스(William Thompson Walters)와 그의 아들 헨리(Henry)가 대를 이어 수집한 미술품들을 모아 1934년에 개관한 월터스 미술관(The Walters Art Museum)의 옛날 입구로 들어섰는데, 계단 위로 보이는 조각 전시실은 현재 들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언덕에 만들어진 3개의 건물이 연결된 미로같은 통로를 지나서 주입구를 겨우 찾아갔다. 1층에서는 로 유명한 장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서, 농촌의 풍경을 묘사한 이 유화와 함께, 다른 대표작인 과 의 스케치에 간단히 칠을 한 습작화들도 볼 수 있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시아 미술을 모아놓은 4층으로 먼저 올라왔는데, 입구에서 찍은 이 모습 외에는 다른 사진이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전시가 볼게 없었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모처럼 미술관에 와서 조용히 감상에 집중했던 듯...^^ 나선형 계단을 따라 3층 중세미술로 내려왔는데, 일요일이라 입구에서 무슨 체험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색종이와 여러 장식들이 제공되어 뭔가를 만들어서 가져갈 수 있는거라, 잠시 할까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전시실로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붉은 벽지에 그림들을 벽에 빼곡히 걸어 놓아서, 유럽의 미술관에 온 듯한 착각이 잠시 들었던 방이다. 유럽 가본지 오래 됐네... 가이드를 따라 다니며 설명을 듣는 그룹도 있었는데, 지팡이를 짚으신 할머니부터 그림에는 관심없고 핸드폰에 열심인 십대 청소년까지 다양한게 무슨 사람들이 모인 것인지 궁금했다. 2층 고대미술은 입구 사진조차도 없어서, 마지막에 주입구로 나가기 직전에 나선형 계단을 올려다 보고 찍은 모습이 미술관 관람 내용의 끝이다. 여기 미술품들은 모두 아들 헨리가 사망하면서 볼티모어 시에 기증한 것이고, 설립 후에 유지 관리를 위해 약간의 입장료를 계속 받아왔지만, 2006년부터는 완전히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므로 꼭 들러볼만한 관광지라 할 수 있다. 근처에서 점심을 먹기 전에 기념탑 내부를 잠깐 둘러보기 위해서 안으로 들어갔는데, 기둥 안에 만들어진 227개의 나선형 계단을 올라서 꼭대기 전망대로 올라가는 것만 유료이다. 방문객이 거의 없어서 현장에서 돈만 내면 바로 올라가보는 것이 가능했지만, 그러기에는 둘 다 배가 고팠기 때문에... 정면에 있던 로마의 신처럼 조각된 워싱턴의 흉상만 잠깐 구경을 하고는 찾아둔 식당으로 이동을 했다. 꿀꿀한 날씨에 따뜻한 국물이 땡겨서 일본라멘 등으로 점심을 잘 먹고는, 20여년 전에 방문했었던 컨벤션센터와 오리올스 홈구장 등을 지나서 고속도로를 탄 후에, 예약해 둔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숙소를 네비게이션에 찍고는 서쪽으로 2시간 이상을 달렸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미국 국가(國歌)의 가사가 만들어진 장소인 볼티모어 포트맥헨리(Fort McHenry) 준국립공원 및 역사성지

미국 국가(國歌)의 가사가 만들어진 장소인 볼티모어 포트맥헨리(Fort McHenry) 준국립공원 및 역사성지

메릴랜드 주의 최대 도시인 볼티모어(Baltimore)는 워싱턴DC를 중심으로 한 미국 광역수도권의 대표적인 항구도시로, 쉽게 말해서 한국의 인천에 해당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자매도시는 의외로 경상남도 창원) 그렇게 지금 사는 곳에서 1시간 거리의 가까운 곳이지만, 뉴욕까지 운전할 때마다 뮤지컬 의 '굿모닝 볼티모어' 노래를 들으며 지나가기만 할 뿐, 지난 3년동안 전혀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곳인데, 이번에 처음으로 아내와 함께 여행하며 도심의 두세곳을 둘러보았다. 볼티모어 항구의 가운데로 튀어나온 반도의 끝에는 1798년부터 건설이 시작돼 1805년에 완공된 별모양(star-shaped)의 요새가 있는데, 메릴랜드 대표로 미국 헌법에 서명했던 당시 전쟁장관 James McHenry를 기려 포트 맥헨리(Fort McHenry)로 명명되었다. 이 곳은 인공적인 구조물로는 최초로 1925년에 미국의 내셔널파크(National Park)로 일찌감치 지정이 되었다가, 은색 비지터센터의 외벽에 길게 씌여진 것처럼 1939년에 포트맥헨리 국가기념지 및 역사성지(Fort McHenry National Monument and Historic Shrine)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재지정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우리는 비지터센터를 통과해서 바로 역사적인 요새로 향했는데, 매일 오전 10시에 진행되는 국기교체식(Flag Change)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풀밭 너머 붉은 벽돌로 만든 요새 위로 높이 휘날리는 성조기가 보이고, 안내판에는 여기 게양되는 네가지 크기의 깃발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날씨가 흐려서 우리도 아침에 올까말까 망설이다 늦었는데, 그래서 요새 안에 만들어진 게양대 주위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대여섯명에 불과했다. 바닷바람이 굉장히 차가웠기 때문에, 오각형의 요새 안쪽을 빙 돌아서 만들어진 막사 건물들 내부의 전시를 기다리는 동안 잠깐 구경을 하기로 했다. 요새가 완공되었을 때 처음 걸린 성조기는 버몬트와 켄터키가 추가된 15개 주(state)를 상징하는 15개의 별이 그려진 것은 쉽게 알 수 있는데, 자세히 세어보면 흰색과 빨간색의 줄도 15개로 같이 늘렸다! 하지만, 이 다음에 한꺼번에 5개의 주가 더 추가되어 20개가 되니까 줄을 가늘고 촘촘하게 같은 수로 늘리는 것은 모양상 별로라고 판단이 되어서, 줄은 최초의 13개주 상징으로 원복하고 향후 별의 갯수만 맞춰서 늘리기로 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10시가 되어 연세 지긋하신 파크레인저가 나와서 국기교체식을 진행하기 시작하셨다. 이 다음날 월요일이 11월 11일로 한국에서는 빼빼로데이지만 미국에서는 '참전용사의 날' 베테랑스데이(Veterance Day)였는데, 그 유래가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기념한 것에서 시작했다. 그래서 날씨만 좋았으면 직전 주말에는 보통 수십명이 참석을 하는데, 오늘은 궂은 날씨 때문에 인원이 적어서 아쉽다고 하시며, 뒤에 접어서 놓아둔 성조기를 함께 펼치자고 했다. 이 주간은 특별히 베테랑스 데이를 기념해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디자인으로 48개의 별이 그려진 성조기를 게양했는데, 제일 아래쪽에 손이 보이는 우리 부부도 함께 깃발을 들었다.^^ 우리들 손에서 놓여진 성조기가 밧줄에 매달려 올라가고 있는데 특이한 점은... 밤새 걸려있던 작은 깃발이 내려오는 동시에 새 깃발이 올라갈 수 있도록 게양대를 특수하게 이중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1948년 트루먼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따라 맥헨리 요새는 바람이 극심한 경우를 빼고 24시간 성조기가 게양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곳이 미국에서 유일하게 '역사적 성지(Historic Shirine)'라는 칭호를 받으며 이런 특별대접을 받는 이유는 나중에 자세히 알려드린다. 하강하는 국기를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미국 육군과 해군 복장을 한 자원봉사자들이 챙기는 모습으로, 제1차 세계대전 때 포트 맥헨리는 유럽에서 돌아온 부상병들을 치료하는 군사병원으로 사용되어 주변에 100채가 넘는 병동이 만들어졌었다고 한다. 나중에 우리가 둘러본 막사 한 곳에는 당시 의무장교와 간호사 복장을 한 사람들도 만나서 그 때 설명을 직접 들을 수도 있었다. 아내는 하강된 국기를 접는 것도 가서 도와줬는데, 같은 털모자를 쓴 3명은 함께 군대에서 복무했던 전우들로 매년 베테랑스 데이 직전 주말에 이 곳에서 다시 만나고 있단다! 이상으로 우리 부부에게도 의미있던 국기교체식 참가를 마치고 나머지 막사들의 전시를 둘러보는데, 좁은 문으로 들어갔다가 심각하게 책상을 짚고 우리를 노려보는 사람을 만나서 깜짝 놀랐다~ 미국과 영국이 다시 맞붙어서 제2의 독립전쟁이라 불리기도 하는 '1812년 전쟁'이 발발하고 2년이 지난 1814년 9월, 워싱턴DC를 불태운 영국군이 볼티모어 점령을 위해 육지와 바다로 동시에 접근하는 상황에서, 요새 지휘관인 조지 아미스테드(George Armistead) 소령이 방어전략을 수립하는 모습이란다. 그렇게 전시를 다 둘러보고 나왔는데, 파크레인저가 15개의 별과 줄이 있는 그 당시 성조기를 또 방문객들과 함께 펼쳐 들고 열심히 설명을 하고 계셨다. 요새의 방어벽 위와 바깥쪽으로도 둘러볼 수 있는 트레일이 있지만, 쌀쌀한 날씨 때문에 그만 비지터센터로 돌아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이 커다란 대포들만 잠깐 구경했는데, 이 곳은 볼티모어 항구의 한 가운데 위치한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1925년부터 국립공원청 관리로 넘어갔지만, 국가 비상시에는 다시 국방부가 통제권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해안경비대가 다시 주둔하기도 했단다. 비지터센터 전시실에는 국가(國歌, National Anthem)와 애국심 등에 대한 내용이 가득한데, 여기 맥헨리 요새가 현재의 미국 국가 "별이 빛나는 깃발(The Star-Spangled Banner)"의 노랫말이 만들어진 장소이기 때문이다. 멀리 두 사람이 서있는 앞이 커다란 스크린인데, 정해진 시간마다 보여주는 짧은 영화의 내용인 즉슨... 위의 미영전쟁에서 영국이 요새를 공격하기 일주일 전에, 젊은 변호사인 프랜시스 스콧 키(Francis Scott Key)는 다른 군장교와 함께 영국 해군에 억류된 민간인의 석방을 위해 비무장한 배를 타고 영국 함대의 본진으로 가서 협상을 벌인다. 협상이 잘 진행되어 인질은 풀려났지만, 영국은 볼티모어를 총공격할거라는 사실을 아는 그들의 배가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아 두게 된다. 그리고는 9월 13일 새벽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25시간 동안 무려 2천발에 가까운 폭탄과 로켓으로 맥헨리 요새를 공격했는데... 조국의 땅으로 퍼붓는 대영제국의 엄청난 화력을 안타깝게 적진에서 바라봐야만 했던 그가, 14일 아침에 맥헨리 요새에서 굳건히 계속 펄럭이는 성조기를 바라보는 가장 유명한 상징적인 그림이다. 그는 바로 가지고 있던 종이에 그 감동을 시(詩)로 쓰기 시작했고, 이틀 후 볼티모어로 돌아가서 4연으로 된 "맥헨리 요새의 방어(Defence of Fort McHenry)"를 완성해 신문에 기고한다. 그 후 사람들이 유명해진 그의 시를 영국에서 유래한 권주가 "천국의 아나크레온에게(To Anacreon in Heaven)"에 맞춰서 부르기 시작했고, 결국은 그 노래가 1931년에 공식적으로 미국의 국가로 채택이 되었다. 영화에서는 사실적으로 망원경을 통해 국기를 확인하는 모습으로 나오는데, 그럴만 한게 영국 공격선들이 요새를 방어하는 대포의 사거리 밖인 1.5마일 이상 떨어진 곳에서 포격을 했고, 키 일행이 탄 배는 훨씬 더 뒤쪽의 영국 함대 본진에 있었기 때문에, 깃발이 아무리 컸다고 해도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을 거란다. 당시 실제로 휘날렸던 세로 30피트, 가로 34피트의 200년 이상 된 깃발은 아미스테드 소령의 후손이 보관하다가 스미소니언 재단에 기증을 해서, DC의 국립 미국사 박물관 암실에 전시가 된 모습은 여기를 클릭해 예전 방문기에서 보실 수 있다. 극장 바닥까지 이용해서 성조기의 물결을 만들며 영화가 끝난 후에, 아래와 같은 가사의 미국 국가 1절 노래가 나오면서 갑자기 커다란 스크린이 위로 올라가면, O say can you see, by the dawn’s early light, What so proudly we hail’d at the twilight’s last gleaming, Whose broad stripes and bright stars through the perilous fight O’er the ramparts we watch’d were so gallantly streaming? And the rocket’s red glare, the bombs bursting in air, Gave proof through the night that our flag was still there, O say does that star-spangled banner yet wave O’er the land of the free and the home of the brave? 오, 그대는 보이는가, 이 새벽의 여명 사이로, 황혼의 미광 속에서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환호하였던 넓은 줄무늬와 밝은 별들이 이 치열한 전투 속에서 저기 성벽 위로 당당하게 휘날리고 있는 것이 보이는가? 로켓의 붉은 섬광과 창공에서 작렬하는 폭탄은 밤새도록 우리의 깃발이 그곳을 지켰음을 증명할지니 오, 말해주오. 성조기는 지금도 여전히 휘날리고 있는가? 자유로운 이들의 땅과, 용기 있는 자들의 고향에서! 비지터센터 창문 밖으로 포트 맥헨리와 그 위로 높이 게양되어 있는 성조기가 나타나는데, 아마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가장 큰 크기의 개리슨플래그(Garrison Flag)가 제대로 펄럭이고 있었다면 감동백배였을 듯... 그리고, 이렇게 화면이 올라가면서 실물이 등장하는 연출은 우리 부부에게는 옛날 30일간의 캠핑여행에서 방문했던 세인트헬렌스(St. Helens) 화산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다. 한 나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두가지가 국기와 국가라고 볼 때,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Stars and Stripes)는 그 탄생지를 어디라고 딱 정하기가 애매한 반면에, 국가는 볼티모어 포트맥헨리(Fort McHenry)라는 확실한 위치가 있으므로, 여기가 국가적인 숭배의 장소로 손색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덩달아 성조기도 잔뜩 쌓아놓고 팔던 기념품 가게를 잠깐 구경하고는 볼티모어의 다른 관광지를 찾아 이동을 했는데, 이로써 마침내 위기주부가 거주하는 DMV 지역에 있는 5개의 준국립공원(National Monument)을 모두 방문한게 되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미국 국가(國歌)의 가사가 만들어진 장소인 볼티모어 포트맥헨리(Fort McHenry) 준국립공원 및 역사성지

미국 국가(國歌)의 가사가 만들어진 장소인 볼티모어 포트맥헨리(Fort McHenry) 준국립공원 및 역사성지

메릴랜드 주의 최대 도시인 볼티모어(Baltimore)는 워싱턴DC를 중심으로 한 미국 광역수도권의 대표적인 항구도시로, 쉽게 말해서 한국의 인천에 해당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자매도시는 의외로 경상남도 창원) 그렇게 지금 사는 곳에서 1시간 거리의 가까운 곳이지만, 뉴욕까지 운전할 때마다 뮤지컬 의 '굿모닝 볼티모어' 노래를 들으며 지나가기만 할 뿐, 지난 3년동안 전혀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곳인데, 이번에 처음으로 아내와 함께 여행하며 도심의 두세곳을 둘러보았다. 볼티모어 항구의 가운데로 튀어나온 반도의 끝에는 1798년부터 건설이 시작돼 1805년에 완공된 별모양(star-shaped)의 요새가 있는데, 메릴랜드 대표로 미국 헌법에 서명했던 당시 전쟁장관 James McHenry를 기려 포트 맥헨리(Fort McHenry)로 명명되었다. 이 곳은 인공적인 구조물로는 최초로 1925년에 미국의 내셔널파크(National Park)로 일찌감치 지정이 되었다가, 은색 비지터센터의 외벽에 길게 씌여진 것처럼 1939년에 포트맥헨리 국가기념지 및 역사성지(Fort McHenry National Monument and Historic Shrine)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재지정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우리는 비지터센터를 통과해서 바로 역사적인 요새로 향했는데, 매일 오전 10시에 진행되는 국기교체식(Flag Change)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풀밭 너머 붉은 벽돌로 만든 요새 위로 높이 휘날리는 성조기가 보이고, 안내판에는 여기 게양되는 네가지 크기의 깃발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날씨가 흐려서 우리도 아침에 올까말까 망설이다 늦었는데, 그래서 요새 안에 만들어진 게양대 주위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대여섯명에 불과했다. 바닷바람이 굉장히 차가웠기 때문에, 오각형의 요새 안쪽을 빙 돌아서 만들어진 막사 건물들 내부의 전시를 기다리는 동안 잠깐 구경을 하기로 했다. 요새가 완공되었을 때 처음 걸린 성조기는 버몬트와 켄터키가 추가된 15개 주(state)를 상징하는 15개의 별이 그려진 것은 쉽게 알 수 있는데, 자세히 세어보면 흰색과 빨간색의 줄도 15개로 같이 늘렸다! 하지만, 이 다음에 한꺼번에 5개의 주가 더 추가되어 20개가 되니까 줄을 가늘고 촘촘하게 같은 수로 늘리는 것은 모양상 별로라고 판단이 되어서, 줄은 최초의 13개주 상징으로 원복하고 향후 별의 갯수만 맞춰서 늘리기로 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10시가 되어 연세 지긋하신 파크레인저가 나와서 국기교체식을 진행하기 시작하셨다. 이 다음날 월요일이 11월 11일로 한국에서는 빼빼로데이지만 미국에서는 '참전용사의 날' 베테랑스데이(Veterance Day)였는데, 그 유래가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기념한 것에서 시작했다. 그래서 날씨만 좋았으면 직전 주말에는 보통 수십명이 참석을 하는데, 오늘은 궂은 날씨 때문에 인원이 적어서 아쉽다고 하시며, 뒤에 접어서 놓아둔 성조기를 함께 펼치자고 했다. 이 주간은 특별히 베테랑스 데이를 기념해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디자인으로 48개의 별이 그려진 성조기를 게양했는데, 제일 아래쪽에 손이 보이는 우리 부부도 함께 깃발을 들었다.^^ 우리들 손에서 놓여진 성조기가 밧줄에 매달려 올라가고 있는데 특이한 점은... 밤새 걸려있던 작은 깃발이 내려오는 동시에 새 깃발이 올라갈 수 있도록 게양대를 특수하게 이중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1948년 트루먼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따라 맥헨리 요새는 바람이 극심한 경우를 빼고 24시간 성조기가 게양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곳이 미국에서 유일하게 '역사적 성지(Historic Shirine)'라는 칭호를 받으며 이런 특별대접을 받는 이유는 나중에 자세히 알려드린다. 하강하는 국기를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미국 육군과 해군 복장을 한 자원봉사자들이 챙기는 모습으로, 제1차 세계대전 때 포트 맥헨리는 유럽에서 돌아온 부상병들을 치료하는 군사병원으로 사용되어 주변에 100채가 넘는 병동이 만들어졌었다고 한다. 나중에 우리가 둘러본 막사 한 곳에는 당시 의무장교와 간호사 복장을 한 사람들도 만나서 그 때 설명을 직접 들을 수도 있었다. 아내는 하강된 국기를 접는 것도 가서 도와줬는데, 같은 털모자를 쓴 3명은 함께 군대에서 복무했던 전우들로 매년 베테랑스 데이 직전 주말에 이 곳에서 다시 만나고 있단다! 이상으로 우리 부부에게도 의미있던 국기교체식 참가를 마치고 나머지 막사들의 전시를 둘러보는데, 좁은 문으로 들어갔다가 심각하게 책상을 짚고 우리를 노려보는 사람을 만나서 깜짝 놀랐다~ 미국과 영국이 다시 맞붙어서 제2의 독립전쟁이라 불리기도 하는 '1812년 전쟁'이 발발하고 2년이 지난 1814년 9월, 워싱턴DC를 불태운 영국군이 볼티모어 점령을 위해 육지와 바다로 동시에 접근하는 상황에서, 요새 지휘관인 조지 아미스테드(George Armistead) 소령이 방어전략을 수립하는 모습이란다. 그렇게 전시를 다 둘러보고 나왔는데, 파크레인저가 15개의 별과 줄이 있는 그 당시 성조기를 또 방문객들과 함께 펼쳐 들고 열심히 설명을 하고 계셨다. 요새의 방어벽 위와 바깥쪽으로도 둘러볼 수 있는 트레일이 있지만, 쌀쌀한 날씨 때문에 그만 비지터센터로 돌아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이 커다란 대포들만 잠깐 구경했는데, 이 곳은 볼티모어 항구의 한 가운데 위치한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1925년부터 국립공원청 관리로 넘어갔지만, 국가 비상시에는 다시 국방부가 통제권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해안경비대가 다시 주둔하기도 했단다. 비지터센터 전시실에는 국가(國歌, National Anthem)와 애국심 등에 대한 내용이 가득한데, 여기 맥헨리 요새가 현재의 미국 국가 "별이 빛나는 깃발(The Star-Spangled Banner)"의 노랫말이 만들어진 장소이기 때문이다. 멀리 두 사람이 서있는 앞이 커다란 스크린인데, 정해진 시간마다 보여주는 짧은 영화의 내용인 즉슨... 위의 미영전쟁에서 영국이 요새를 공격하기 일주일 전에, 젊은 변호사인 프랜시스 스콧 키(Francis Scott Key)는 다른 군장교와 함께 영국 해군에 억류된 민간인의 석방을 위해 비무장한 배를 타고 영국 함대의 본진으로 가서 협상을 벌인다. 협상이 잘 진행되어 인질은 풀려났지만, 영국은 볼티모어를 총공격할거라는 사실을 아는 그들의 배가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아 두게 된다. 그리고는 9월 13일 새벽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25시간 동안 무려 2천발에 가까운 폭탄과 로켓으로 맥헨리 요새를 공격했는데... 조국의 땅으로 퍼붓는 대영제국의 엄청난 화력을 안타깝게 적진에서 바라봐야만 했던 그가, 14일 아침에 맥헨리 요새에서 굳건히 계속 펄럭이는 성조기를 바라보는 가장 유명한 상징적인 그림이다. 그는 바로 가지고 있던 종이에 그 감동을 시(詩)로 쓰기 시작했고, 이틀 후 볼티모어로 돌아가서 4연으로 된 "맥헨리 요새의 방어(Defence of Fort McHenry)"를 완성해 신문에 기고한다. 그 후 사람들이 유명해진 그의 시를 영국에서 유래한 권주가 "천국의 아나크레온에게(To Anacreon in Heaven)"에 맞춰서 부르기 시작했고, 결국은 그 노래가 1931년에 공식적으로 미국의 국가로 채택이 되었다. 영화에서는 사실적으로 망원경을 통해 국기를 확인하는 모습으로 나오는데, 그럴만 한게 영국 공격선들이 요새를 방어하는 대포의 사거리 밖인 1.5마일 이상 떨어진 곳에서 포격을 했고, 키 일행이 탄 배는 훨씬 더 뒤쪽의 영국 함대 본진에 있었기 때문에, 깃발이 아무리 컸다고 해도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을 거란다. 당시 실제로 휘날렸던 세로 30피트, 가로 34피트의 200년 이상 된 깃발은 아미스테드 소령의 후손이 보관하다가 스미소니언 재단에 기증을 해서, DC의 국립 미국사 박물관 암실에 전시가 된 모습은 여기를 클릭해 예전 방문기에서 보실 수 있다. 극장 바닥까지 이용해서 성조기의 물결을 만들며 영화가 끝난 후에, 아래와 같은 가사의 미국 국가 1절 노래가 나오면서 갑자기 커다란 스크린이 위로 올라가면, O say can you see, by the dawn’s early light, What so proudly we hail’d at the twilight’s last gleaming, Whose broad stripes and bright stars through the perilous fight O’er the ramparts we watch’d were so gallantly streaming? And the rocket’s red glare, the bombs bursting in air, Gave proof through the night that our flag was still there, O say does that star-spangled banner yet wave O’er the land of the free and the home of the brave? 오, 그대는 보이는가, 이 새벽의 여명 사이로, 황혼의 미광 속에서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환호하였던 넓은 줄무늬와 밝은 별들이 이 치열한 전투 속에서 저기 성벽 위로 당당하게 휘날리고 있는 것이 보이는가? 로켓의 붉은 섬광과 창공에서 작렬하는 폭탄은 밤새도록 우리의 깃발이 그곳을 지켰음을 증명할지니 오, 말해주오. 성조기는 지금도 여전히 휘날리고 있는가? 자유로운 이들의 땅과, 용기 있는 자들의 고향에서! 비지터센터 창문 밖으로 포트 맥헨리와 그 위로 높이 게양되어 있는 성조기가 나타나는데, 아마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가장 큰 크기의 개리슨플래그(Garrison Flag)가 제대로 펄럭이고 있었다면 감동백배였을 듯... 그리고, 이렇게 화면이 올라가면서 실물이 등장하는 연출은 우리 부부에게는 옛날 30일간의 캠핑여행에서 방문했던 세인트헬렌스(St. Helens) 화산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다. 한 나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두가지가 국기와 국가라고 볼 때,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Stars and Stripes)는 그 탄생지를 어디라고 딱 정하기가 애매한 반면에, 국가는 볼티모어 포트맥헨리(Fort McHenry)라는 확실한 위치가 있으므로, 여기가 국가적인 숭배의 장소로 손색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덩달아 성조기도 잔뜩 쌓아놓고 팔던 기념품 가게를 잠깐 구경하고는 볼티모어의 다른 관광지를 찾아 이동을 했는데, 이로써 마침내 위기주부가 거주하는 DMV 지역에 있는 5개의 준국립공원(National Monument)을 모두 방문한게 되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