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주부의 미국 여행과 생활 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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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 posts미래 20달러 지폐의 모델? 해리엇터브먼 지하철도(Harriet Tubman Underground Railroad) 국립역사공원
취미(趣味, hobby)의 사전적인 뜻은 '여가 시간을 즐기기 위해 좋아서 하는 것'이다. 옛날 본인의 취미는 대학생 때는 테니스, 그 후로는 등산 정도만 떠오르고, 미국에 온 다음에는 역시 캠핑 여행과 하이킹 또는 트레킹이라 말할 수 있으며, 잠깐 종이접기가 취미였던 적도 있다. 물론 블로그 쓰는 것 자체를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쓸 내용이 되는 구체적인 활동이 선행되어야 하는 점에서 제외하고, 지금 위기주부의 취미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면... 혼자서 9시간 이상 차를 몰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좋다고 돌아다닌 것으로 봐서 '미국의 듣보잡 여행지 찾아다니기'라 할 수 있겠다. 4월에 다녀왔던 1탄 북서쪽 듣보잡 여행과 2탄 남쪽 듣보잡 여행에 이어서, 12월의 3탄은 집에서 동쪽으로 다녀왔는데, 과연 위의 지도에 표시된 4곳의 목적지 이름을 하나라도 듣거나 직접 가서 보신 분이 계실까? ㅎㅎ 지난 1탄과 2탄에서는 각각 5곳씩이나 국립 공원을 들렀었지만, 이번에는 지도 중앙에 표시된 하나만 처음 방문하는 국립역사공원으로 흑인 여성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의 출생지를 기념하는 곳이다. 위기주부는 그녀의 이름을 처음 들었던 때를 분명히 기억하는데, 미국 지폐에 등장하는 인물이 모두 백인 남성이라는 비판에 따라, 2016년 오바마 행정부가 20달러의 모델을 그녀로 변경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봤을 때이다. 2019년에 조폐국에서 위와 같은 컨셉 도안을 만들기도 했지만, 트럼프 1기에서 2030년 이후로 연기를 발표했고, 바이든 행정부가 다시 교체를 앞당긴다고 했으나, 결국 트럼프 2기에서 흐지부지될 공산이 큰 상태이다. 그럼 그녀는 도대체 어떤 인물이길래 잭슨 대통령을 대체할 모델로 선정되었고 또 공원명의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는 무엇인지? 3탄 듣보잡 여행의 첫번째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금요일 아침의 출근 정체까지 약간 겪으며 집에서 2시간반 정도 걸려서 해리엇터브먼 지하철도 국립역사공원(Harriet Tubman Underground Railroad National Historical Park)의 비지터센터에 도착을 했다. 국립공원청 로고 왼쪽에 메릴랜드 공원부 표시도 함께 있는데, 이 곳은 메릴랜드 주의 주립공원이기도 해서 두 기관이 함께 관리하고 있다. 처음 지도의 델마바 반도(Delmarva Peninsula)에서도 정말 외딴 시골에 위치해 있어서, 10시 좀 지나서 찾아간 위기주부가 이 날의 첫번째 손님(?)이었다. 하지만 안내데스크에 국립공원청 파크레인저와 주립공원 안내원 그리고 기념품 가게를 지키는 사람까지 직원은 3명이나 있더라는...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20달러 지폐 도안에 등장했던 초상과 그녀의 흉상이 눈에 띄는데, 먼저 은하철도는 들어보셨어도 지하철도는 처음이라는 분들을 위해 설명을 드리면... 19세기에 남부의 흑인 노예들을 북쪽의 자유주(free state) 또는 캐나다로 도망시키는 비밀 네트워크가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Underground Railroad)'로, 탈출을 이끄는 사람을 차장(conductor), 중간에 그들을 숨겨주고 재워주는 장소를 역(station)이라 불렀다. 1822년생의 해리엇 터브먼은 27세이던 1849년에 홀로 여기서 필라델피아로 탈출했다가, 계속 노예로 남아있던 가족과 친척 및 지인들을 데리고 나오기 위해 그 후 약 10년 동안 13회에 걸쳐서 약 70명의 노예를 지하철도를 이용해 북쪽으로 탈출시켰는데, 단 한번도 기차가 탈선하거나 손님을 잃어버린 적이 없어서, 흑인들은 그녀를 모세(Moses)로 불렀고 백인 농장주들에게는 최대의 적으로 막대한 현상금이 걸렸단다. 입구 안내도의 번호에 따라서 먼저 극장에서 잘 만들어진 영화를 봤는데, 여기를 클릭해서 유튜브에서 보실 수도 있다. 문제는 1850년에 도망노예법이 만들어져 도망친 노예들은 자유주에 살아도 현상금 사냥꾼들에게 계속 쫓기는 신세고, 연방법에 따라서 노예의 탈출을 돕거나 숨기는 것도 범죄였다는 사실이다. 즉, 그녀는 매번 잡혀서 고문이나 죽임을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노예들을 구출했던 것이다. 그리고 전시실을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정말로 큰 규모로 아주 잘 만들어 놓았다. 참고로 이 곳은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2013년에 준국립공원으로 먼저 보호되고 이듬해 국립역사공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이 비교적 최신의 비지터센터는 2017년에 완공되었다. 많은 동상은 물론 작은 모형까지도 금속으로 조각을 한 것으로 봐서 굉장히 노력을 해서 만들었다는게 단박에 느껴졌다~ 특히 이렇게 출생 당시의 모습까지 동상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국립 공원에서 주인공의 갓난아기 모습을 조각으로 본 것은 지금까지 링컨 탄생지(Abraham Lincoln Birthplace) 국립역사공원이 유일했던 듯 하다...^^ 또 특이한 동상이 있어서 보여드리면, 노예 시절의 한겨울에 늪지에 들어가서 사향쥐(muskrat)를 잡는 모습이라는데, 당시에 털가죽은 모피로 고기는 식용으로 사용이 되었단다. 그리고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그녀는 처음 흑인 연대의 간호사로 참전을 했다가, 은밀히 적진의 흑인 사회에 침투하고 이동하는 능력으로 나중에는 정찰대원으로도 활동하게 되며, 북군의 백인 장교들로부터도 능력을 인정을 받는다. 안내판 지도처럼 북군과 함께 플로리다까지 내려가서 작전을 펼쳤는데, 특히 1863년 6월에 사우스캐롤라이나 컴바히 강(Combahee River)에서 실질적으로 그녀가 150명의 흑인 부대를 이끌고 남군 기지를 습격해서 약 800명의 노예를 구출하게 된다. 이로써 그녀는 무장 공격하는 미국군을 지휘한 최초의 여성으로 널리 인정을 받고 있으며, 바로 올해 11월에 이 곳에서 그녀에게 메릴랜드 주방위군의 준장 계급이 추서되었다. 걸개 그림들이 걸려있는 쪽으로 나가면 말년 모습의 동상이 의자에 앉아 있는데, 전후에는 뉴욕 주 오번(Auburn)에서 농장을 운영하며 해방된 흑인들을 도왔고 1913년에 91세로 사망할 때까지 여성참정권(Women's suffrage) 활동에도 참여해서, 인권과 평등에 기여한 공로로 그녀의 집은 현재 별도의 국립역사공원으로 또 지정되어 있다. 그렇게 관람을 마치고 나왔는데, 다들 어디 가셨나? 여전히 다른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지키는 사람도 사라지고 없고...ㅎㅎ 텅 빈 건물을 나가면서 과연 노예주였던 앤드류 잭슨 대통령을 몰아내고, 미래에 해리엇 터브먼의 얼굴이 그려진 20달러 지폐가 실제 유통되는 날이 올까하는 의문이 살짝 들기도 했다. 해리엇 터브먼이 목숨을 걸고 노예들을 탈출시켰던 지하철도의 경로는 현재 Harriet Tubman Underground Railroad Byway로 관리되어서, 현재 미국에 37개가 있는 교통부가 지정한 '국민도로(All-American Road)'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동부에서는 역사적 중요성으로 국민도로가 된 곳이 많아서, 기회가 되면 이것도 한 번 따져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계속해서 시골길을 또 2시간 운전해 다음 듣보잡 목적지를 찾아갔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미래 20달러 지폐의 모델? 해리엇터브먼 지하철도(Harriet Tubman Underground Railroad) 국립역사공원
취미(趣味, hobby)의 사전적인 뜻은 '여가 시간을 즐기기 위해 좋아서 하는 것'이다. 옛날 본인의 취미는 대학생 때는 테니스, 그 후로는 등산 정도만 떠오르고, 미국에 온 다음에는 역시 캠핑 여행과 하이킹 또는 트레킹이라 말할 수 있으며, 잠깐 종이접기가 취미였던 적도 있다. 물론 블로그 쓰는 것 자체를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쓸 내용이 되는 구체적인 활동이 선행되어야 하는 점에서 제외하고, 지금 위기주부의 취미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면... 혼자서 9시간 이상 차를 몰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좋다고 돌아다닌 것으로 봐서 '미국의 듣보잡 여행지 찾아다니기'라 할 수 있겠다. 4월에 다녀왔던 1탄 북서쪽 듣보잡 여행과 2탄 남쪽 듣보잡 여행에 이어서, 12월의 3탄은 집에서 동쪽으로 다녀왔는데, 과연 위의 지도에 표시된 4곳의 목적지 이름을 하나라도 듣거나 직접 가서 보신 분이 계실까? ㅎㅎ 지난 1탄과 2탄에서는 각각 5곳씩이나 국립 공원을 들렀었지만, 이번에는 지도 중앙에 표시된 하나만 처음 방문하는 국립역사공원으로 흑인 여성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의 출생지를 기념하는 곳이다. 위기주부는 그녀의 이름을 처음 들었던 때를 분명히 기억하는데, 미국 지폐에 등장하는 인물이 모두 백인 남성이라는 비판에 따라, 2016년 오바마 행정부가 20달러의 모델을 그녀로 변경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봤을 때이다. 2019년에 조폐국에서 위와 같은 컨셉 도안을 만들기도 했지만, 트럼프 1기에서 2030년 이후로 연기를 발표했고, 바이든 행정부가 다시 교체를 앞당긴다고 했으나, 결국 트럼프 2기에서 흐지부지될 공산이 큰 상태이다. 그럼 그녀는 도대체 어떤 인물이길래 잭슨 대통령을 대체할 모델로 선정되었고 또 공원명의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는 무엇인지? 3탄 듣보잡 여행의 첫번째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금요일 아침의 출근 정체까지 약간 겪으며 집에서 2시간반 정도 걸려서 해리엇터브먼 지하철도 국립역사공원(Harriet Tubman Underground Railroad National Historical Park)의 비지터센터에 도착을 했다. 국립공원청 로고 왼쪽에 메릴랜드 공원부 표시도 함께 있는데, 이 곳은 메릴랜드 주의 주립공원이기도 해서 두 기관이 함께 관리하고 있다. 처음 지도의 델마바 반도(Delmarva Peninsula)에서도 정말 외딴 시골에 위치해 있어서, 10시 좀 지나서 찾아간 위기주부가 이 날의 첫번째 손님(?)이었다. 하지만 안내데스크에 국립공원청 파크레인저와 주립공원 안내원 그리고 기념품 가게를 지키는 사람까지 직원은 3명이나 있더라는...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20달러 지폐 도안에 등장했던 초상과 그녀의 흉상이 눈에 띄는데, 먼저 은하철도는 들어보셨어도 지하철도는 처음이라는 분들을 위해 설명을 드리면... 19세기에 남부의 흑인 노예들을 북쪽의 자유주(free state) 또는 캐나다로 도망시키는 비밀 네트워크가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Underground Railroad)'로, 탈출을 이끄는 사람을 차장(conductor), 중간에 그들을 숨겨주고 재워주는 장소를 역(station)이라 불렀다. 1822년생의 해리엇 터브먼은 27세이던 1849년에 홀로 여기서 필라델피아로 탈출했다가, 계속 노예로 남아있던 가족과 친척 및 지인들을 데리고 나오기 위해 그 후 약 10년 동안 13회에 걸쳐서 약 70명의 노예를 지하철도를 이용해 북쪽으로 탈출시켰는데, 단 한번도 기차가 탈선하거나 손님을 잃어버린 적이 없어서, 흑인들은 그녀를 모세(Moses)로 불렀고 백인 농장주들에게는 최대의 적으로 막대한 현상금이 걸렸단다. 입구 안내도의 번호에 따라서 먼저 극장에서 잘 만들어진 영화를 봤는데, 여기를 클릭해서 유튜브에서 보실 수도 있다. 문제는 1850년에 도망노예법이 만들어져 도망친 노예들은 자유주에 살아도 현상금 사냥꾼들에게 계속 쫓기는 신세고, 연방법에 따라서 노예의 탈출을 돕거나 숨기는 것도 범죄였다는 사실이다. 즉, 그녀는 매번 잡혀서 고문이나 죽임을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노예들을 구출했던 것이다. 그리고 전시실을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정말로 큰 규모로 아주 잘 만들어 놓았다. 참고로 이 곳은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2013년에 준국립공원으로 먼저 보호되고 이듬해 국립역사공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이 비교적 최신의 비지터센터는 2017년에 완공되었다. 많은 동상은 물론 작은 모형까지도 금속으로 조각을 한 것으로 봐서 굉장히 노력을 해서 만들었다는게 단박에 느껴졌다~ 특히 이렇게 출생 당시의 모습까지 동상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국립 공원에서 주인공의 갓난아기 모습을 조각으로 본 것은 지금까지 링컨 탄생지(Abraham Lincoln Birthplace) 국립역사공원이 유일했던 듯 하다...^^ 또 특이한 동상이 있어서 보여드리면, 노예 시절의 한겨울에 늪지에 들어가서 사향쥐(muskrat)를 잡는 모습이라는데, 당시에 털가죽은 모피로 고기는 식용으로 사용이 되었단다. 그리고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그녀는 처음 흑인 연대의 간호사로 참전을 했다가, 은밀히 적진의 흑인 사회에 침투하고 이동하는 능력으로 나중에는 정찰대원으로도 활동하게 되며, 북군의 백인 장교들로부터도 능력을 인정을 받는다. 안내판 지도처럼 북군과 함께 플로리다까지 내려가서 작전을 펼쳤는데, 특히 1863년 6월에 사우스캐롤라이나 컴바히 강(Combahee River)에서 실질적으로 그녀가 150명의 흑인 부대를 이끌고 남군 기지를 습격해서 약 800명의 노예를 구출하게 된다. 이로써 그녀는 무장 공격하는 미국군을 지휘한 최초의 여성으로 널리 인정을 받고 있으며, 바로 올해 11월에 이 곳에서 그녀에게 메릴랜드 주방위군의 준장 계급이 추서되었다. 걸개 그림들이 걸려있는 쪽으로 나가면 말년 모습의 동상이 의자에 앉아 있는데, 전후에는 뉴욕 주 오번(Auburn)에서 농장을 운영하며 해방된 흑인들을 도왔고 1913년에 91세로 사망할 때까지 여성참정권(Women's suffrage) 활동에도 참여해서, 인권과 평등에 기여한 공로로 그녀의 집은 현재 별도의 국립역사공원으로 또 지정되어 있다. 그렇게 관람을 마치고 나왔는데, 다들 어디 가셨나? 여전히 다른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지키는 사람도 사라지고 없고...ㅎㅎ 텅 빈 건물을 나가면서 과연 노예주였던 앤드류 잭슨 대통령을 몰아내고, 미래에 해리엇 터브먼의 얼굴이 그려진 20달러 지폐가 실제 유통되는 날이 올까하는 의문이 살짝 들기도 했다. 해리엇 터브먼이 목숨을 걸고 노예들을 탈출시켰던 지하철도의 경로는 현재 Harriet Tubman Underground Railroad Byway로 관리되어서, 현재 미국에 37개가 있는 교통부가 지정한 '국민도로(All-American Road)'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동부에서는 역사적 중요성으로 국민도로가 된 곳이 많아서, 기회가 되면 이것도 한 번 따져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계속해서 시골길을 또 2시간 운전해 다음 듣보잡 목적지를 찾아갔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포토맥 강(Potomac River)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하퍼스페리 브루잉(Harpers Ferry Brewing)
본론과 전혀 관계없는 '알쓸미잡' 지리학 공부로 글을 시작하면... 미국의 50개 주(state) 모양을 놓고 봤을때, 다른 주에 둘러싸여 툭 튀어나온 부분을 일컫는 '후라이팬 손잡이' 팬핸들(panhandle)은 아래 지도와 같이 10곳이 있단다. 가장 유명하고 바로 눈에 띄는 오클라호마 주의 서쪽 팬핸들에 비해서, 텍사스 주의 북쪽과 네브라스카 주의 서쪽으로 각각 튀어나온 부분들은 손잡이치고는 너무 뭉툭하다. 그리고 코네티컷 주의 남서쪽으로 튀어나온 부분은 손잡이로 쓰기에는 너무 작아 보인다.^^ 그런데 10곳이라면서 색칠된 주의 갯수는 9개뿐인 이유는 자세히 보시면 웨스트버지니아(West Virginia, WV)가 북쪽과 동쪽으로 2개의 팬핸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동쪽으로 돌출된 팬핸들 지역에 직전에 소개한 버클리스프링스가 있고, 거기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찰스타운(Charles Town)과 하퍼스페리(Harpers Ferry) 등의 관광지를 지나지만, 모두 한 번씩 가봤던 곳이라 그냥 통과를 했다. 하지만 바로 1박2일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는 좀 섭섭하길래, 점심을 겸해서 요즘 맛을 들인 브루어리 방문을 또 시전했다~ 일단 짚고 넘어갈 것은 이 집의 이름이 하퍼스페리 브루잉(Harpers Ferry Brewing)이지만 웨스트버지니아 주에 있는게 아니라, 쉐난도어 강을 건너서 행정구역상 버지니아 주의 퍼셀빌(Purcellville)에 속한다는 점이다. 짙은 가을 하늘색으로 칠해진 브루어리 건물로 아내가 들어가고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벽에 붙어있는 메뉴판과 같이 20종의 수제맥주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항상 그렇듯이 이 집의 가장 대표적인 라거(Lager)와 IPA(India Pale Ale)로 각각 한 잔씩 마셔보기로 했다. 왼쪽의 IPA는 기대를 만족했지만, 오른쪽의 라거가 색깔부터 짙은게 좀 특이했고 탄산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상당히 밍밍했던 기억이다. 맥주잔 뒤로 곰가죽이 걸려있는 곳에서 가성비를 생각해 통짜 피자를 점심으로 주문했다. 그 옆에 기념품으로 브루어리 이름이 새겨진 다양한 옷과 모자를 많이 진열해 놓았는데, 사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건물을 관통해서 강쪽으로 나와보니, 당시 베테랑스데이 휴일을 맞아서 우리처럼 낮술을 즐기는 분들이 제법 있었다. 우리는 일단 피자를 편하게 먹기 위해서 왼편에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발코니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다리가 놓여진 물길은 포토맥 강(Potomac River)으로 서쪽 상류의 하퍼스페리에서 쉐난도어 강과 합류해서 동쪽 워싱턴DC로 흘러가는 것이고, 강 건너는 1박2일 여행의 첫날 들렀던 메릴랜드 주이다. 피자를 받아와서 맥주와 같이 '피맥' 사진을 찍었는데, 이 집은 거의 대부분의 손님이 안주로 피자를 주문해서 먹는 듯 했다. 부러진 나무의 끝을 성조기를 감싼 블랙베어로 조각을 해놓고, 그 아래에는 처음 간판 사진에도 적혀있던 #brewswithviews 모토를 새겨놓았다. 풍경을 어떻게 집어넣어서 맥주를 만드는지는 모르겠지만, 포토맥 강이 내려다 보이는 풍경으로 장사를 하는 것은 확실하다.^^ 점심을 다 먹은 후에 남은 피자 박스는 잘 닫아서 들고, 우리도 아래쪽 잔디밭에 나란히 놓여진 애디론댁 체어(Adirondack chair)에 등을 기댔다. 오전에 관광지들은 다 그냥 지나쳐 왔지만, 사모님께서 여기서 집에 가는 길에 있는 아울렛은 빠트릴 수 없다고 해서, 금방 일어나 앞쪽 난간까지만 걸어가본 후에 출발하기로 했다. 강을 건너는 다리는 340번 국도로 쉐난도어 국립공원의 남쪽 부근에서 시작해 북동쪽으로 계속 올라와 웨스트버지니아 동쪽 팬핸들을 관통한 후에, 여기서 아주 짧게 다시 버지니아를 지났다가 강건너 메릴랜드의 프레더릭(Frederick)에서 40번 국도를 만나며 끝난다. 그리고 포토맥 강의 상류쪽으로 눈을 돌려야만, 쉐난도어 강이 합류하는 위치에 있는 하퍼스페리 마을이 멀리 살짝 보인다. 즉 지금 서있는 강남은 버지니아, 정면의 '양수리'는 웨스트버지니아, 그리고 강북은 메릴랜드 주이며, 특히 처음 링크한 여행기에서 보여드린 것처럼 사진 오른편 언덕인 메릴랜드하이츠(Maryland Heights)에서 하퍼스페리를 내려다 보는 모습이 유명하다고 해서 꼭 한 번 하이킹으로 올라가볼 생각을 하며 자리를 떴다. P.S. 옛날에는 11월말 추수감사절에 데스밸리나 그랜드서클로 여행을 떠났지만, 이제는 타지에서 일하는 딸이 집을 방문해서 가족이 모이는 날이 되었다... 그래서 아래 사진 두 장만 여기 올려놓고 2024년 추수감사절의 간단한 기억을 남겨본다. 딸이 일찍 월요일에 친구와 함께 내려오는 바람에 모처럼 대청소도 하고, 저녁에는 심혈을 다해 2인치 두께의 립아이 스테이크를 구웠다. 처음으로 숯불에 히코리(hickory) 훈연칩도 넣고, 막판 뒤집기 후에 사진처럼 버터도 한조각씩 올린 다음에 화로에서 꺼내, 충분히 레스팅(resting)을 해줬더니 아주 완벽한 꽃등심 스테이크가 되었다. 귀한 손님 대접한다고 바빠서 단면 사진을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 추수감사절 당일에는 단골 스시 뷔페로 점심을 먹은 후 아내는 야간근무로 출근해서, 딸과 둘이서만 동네 그레이트폴스 공원(Great Falls Park)을 방문해서 오붓한 부녀간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 일찍 딸은 뉴욕으로 비행기를 타고 돌아갔고, 영하의 아주 추운 날씨와 함께 12월이 시작되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포토맥 강(Potomac River)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하퍼스페리 브루잉(Harpers Ferry Brewing)
본론과 전혀 관계없는 '알쓸미잡' 지리학 공부로 글을 시작하면... 미국의 50개 주(state) 모양을 놓고 봤을때, 다른 주에 둘러싸여 툭 튀어나온 부분을 일컫는 '후라이팬 손잡이' 팬핸들(panhandle)은 아래 지도와 같이 10곳이 있단다. 가장 유명하고 바로 눈에 띄는 오클라호마 주의 서쪽 팬핸들에 비해서, 텍사스 주의 북쪽과 네브라스카 주의 서쪽으로 각각 튀어나온 부분들은 손잡이치고는 너무 뭉툭하다. 그리고 코네티컷 주의 남서쪽으로 튀어나온 부분은 손잡이로 쓰기에는 너무 작아 보인다.^^ 그런데 10곳이라면서 색칠된 주의 갯수는 9개뿐인 이유는 자세히 보시면 웨스트버지니아(West Virginia, WV)가 북쪽과 동쪽으로 2개의 팬핸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동쪽으로 돌출된 팬핸들 지역에 직전에 소개한 버클리스프링스가 있고, 거기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찰스타운(Charles Town)과 하퍼스페리(Harpers Ferry) 등의 관광지를 지나지만, 모두 한 번씩 가봤던 곳이라 그냥 통과를 했다. 하지만 바로 1박2일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는 좀 섭섭하길래, 점심을 겸해서 요즘 맛을 들인 브루어리 방문을 또 시전했다~ 일단 짚고 넘어갈 것은 이 집의 이름이 하퍼스페리 브루잉(Harpers Ferry Brewing)이지만 웨스트버지니아 주에 있는게 아니라, 쉐난도어 강을 건너서 행정구역상 버지니아 주의 퍼셀빌(Purcellville)에 속한다는 점이다. 짙은 가을 하늘색으로 칠해진 브루어리 건물로 아내가 들어가고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벽에 붙어있는 메뉴판과 같이 20종의 수제맥주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항상 그렇듯이 이 집의 가장 대표적인 라거(Lager)와 IPA(India Pale Ale)로 각각 한 잔씩 마셔보기로 했다. 왼쪽의 IPA는 기대를 만족했지만, 오른쪽의 라거가 색깔부터 짙은게 좀 특이했고 탄산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상당히 밍밍했던 기억이다. 맥주잔 뒤로 곰가죽이 걸려있는 곳에서 가성비를 생각해 통짜 피자를 점심으로 주문했다. 그 옆에 기념품으로 브루어리 이름이 새겨진 다양한 옷과 모자를 많이 진열해 놓았는데, 사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건물을 관통해서 강쪽으로 나와보니, 당시 베테랑스데이 휴일을 맞아서 우리처럼 낮술을 즐기는 분들이 제법 있었다. 우리는 일단 피자를 편하게 먹기 위해서 왼편에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발코니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다리가 놓여진 물길은 포토맥 강(Potomac River)으로 서쪽 상류의 하퍼스페리에서 쉐난도어 강과 합류해서 동쪽 워싱턴DC로 흘러가는 것이고, 강 건너는 1박2일 여행의 첫날 들렀던 메릴랜드 주이다. 피자를 받아와서 맥주와 같이 '피맥' 사진을 찍었는데, 이 집은 거의 대부분의 손님이 안주로 피자를 주문해서 먹는 듯 했다. 부러진 나무의 끝을 성조기를 감싼 블랙베어로 조각을 해놓고, 그 아래에는 처음 간판 사진에도 적혀있던 #brewswithviews 모토를 새겨놓았다. 풍경을 어떻게 집어넣어서 맥주를 만드는지는 모르겠지만, 포토맥 강이 내려다 보이는 풍경으로 장사를 하는 것은 확실하다.^^ 점심을 다 먹은 후에 남은 피자 박스는 잘 닫아서 들고, 우리도 아래쪽 잔디밭에 나란히 놓여진 애디론댁 체어(Adirondack chair)에 등을 기댔다. 오전에 관광지들은 다 그냥 지나쳐 왔지만, 사모님께서 여기서 집에 가는 길에 있는 아울렛은 빠트릴 수 없다고 해서, 금방 일어나 앞쪽 난간까지만 걸어가본 후에 출발하기로 했다. 강을 건너는 다리는 340번 국도로 쉐난도어 국립공원의 남쪽 부근에서 시작해 북동쪽으로 계속 올라와 웨스트버지니아 동쪽 팬핸들을 관통한 후에, 여기서 아주 짧게 다시 버지니아를 지났다가 강건너 메릴랜드의 프레더릭(Frederick)에서 40번 국도를 만나며 끝난다. 그리고 포토맥 강의 상류쪽으로 눈을 돌려야만, 쉐난도어 강이 합류하는 위치에 있는 하퍼스페리 마을이 멀리 살짝 보인다. 즉 지금 서있는 강남은 버지니아, 정면의 '양수리'는 웨스트버지니아, 그리고 강북은 메릴랜드 주이며, 특히 처음 링크한 여행기에서 보여드린 것처럼 사진 오른편 언덕인 메릴랜드하이츠(Maryland Heights)에서 하퍼스페리를 내려다 보는 모습이 유명하다고 해서 꼭 한 번 하이킹으로 올라가볼 생각을 하며 자리를 떴다. P.S. 옛날에는 11월말 추수감사절에 데스밸리나 그랜드서클로 여행을 떠났지만, 이제는 타지에서 일하는 딸이 집을 방문해서 가족이 모이는 날이 되었다... 그래서 아래 사진 두 장만 여기 올려놓고 2024년 추수감사절의 간단한 기억을 남겨본다. 딸이 일찍 월요일에 친구와 함께 내려오는 바람에 모처럼 대청소도 하고, 저녁에는 심혈을 다해 2인치 두께의 립아이 스테이크를 구웠다. 처음으로 숯불에 히코리(hickory) 훈연칩도 넣고, 막판 뒤집기 후에 사진처럼 버터도 한조각씩 올린 다음에 화로에서 꺼내, 충분히 레스팅(resting)을 해줬더니 아주 완벽한 꽃등심 스테이크가 되었다. 귀한 손님 대접한다고 바빠서 단면 사진을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 추수감사절 당일에는 단골 스시 뷔페로 점심을 먹은 후 아내는 야간근무로 출근해서, 딸과 둘이서만 동네 그레이트폴스 공원(Great Falls Park)을 방문해서 오붓한 부녀간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 일찍 딸은 뉴욕으로 비행기를 타고 돌아갔고, 영하의 아주 추운 날씨와 함께 12월이 시작되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워싱턴이 다녀간 미국 최초의 온천 휴양지라는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버클리스프링스(Berkeley Springs)
미국에서 도시나 마을의 이름 끝에 'Springs'가 붙으면, 옛날부터 특별한 온천이나 샘물로 유명한 곳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모두 몇 곳이나 있는지 궁금하길래 요즘 대세라는 ChatGPT에 물어보니 17개가 나오고, 구글 검색으로는 25개가 적힌 사이트를 알려줬다. 하지만 둘 다 이제 소개하는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 마을의 이름은 그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볼티모어(Baltimore) 관광을 마친 후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차가운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고, 오래간만에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돌아다녔더니 피곤해서 체크인하고 바로 둘 다 잠들었다... 그래서 저녁은 그냥 여기 호텔 레스토랑에서 먹기로 했는데, 사실 아주 작은 마을이라서 특별히 찾아갈만한 다른 식당도 없었다. 동양인이라고는 우리 둘밖에 없던 웨스트버지니아(West Virginia) 주의 촌구석 식당에서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저녁을 먹었다. 고풍스런 컨트리인(Country Inn)의 로비 모습으로 이 자리에 숙소가 처음 들어선 것은 177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현재의 이 건물은 1932년에 만들어졌단다. 데스크 옆으로 기념품 가게가 있다고 해서 들어가 봤는데, 간단한 옷가지와 머그컵 등 외에 특별히 눈에 띈 것은 바로... 장식장 안에 고이 모셔둔 이 생수병들이었다! 이제서야 이름을 알려드리는 여기 버클리스프링스(Berkeley Springs) 마을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물맛 대회'라는 International Water Tasting을 매년 개최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생수병에 든 물맛을 어떻게 평가해서 경진대회를 한다는 것인지, 음식맛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위기주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하다~ ㅎㅎ 다음날 아침 날씨가 맑아져 체크아웃을 한 후에 호텔 외관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유일한 관광지가 길 건너에 있었지만 일단 아침을 먹어야 해서, 차를 몰고 여기서 가장 인기있는 브런치 식당을 들린 후에, 다시 이 곳으로 돌아와 주차를 하고 바로 옆 공원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마을의 한 가운데 버클리스프링스 주립공원(Berkeley Springs State Park)이 있는데, 그림과 함께 '미국 최초의 온천(America's First Spa)'이라고 자랑스럽게 적혀있는 다른쪽 표지판은 찍지를 못했다. 공원의 양쪽으로 온천탕 건물이 만들어져 있어서, 여기는 1929년에 만들어진 메인 배스하우스(Main Bathhouse)로 우리가 숙박한 호텔 바로 옆 건물이다. 3년전 대륙횡단 이사를 할 때 들렀던 아칸소 주의 핫스프링스(Hot Springs)가 미국의 '국립온천'이라면, 이 곳은 미국에서 유일한 '주립온천'이라고 하는데, 과감히 미국의 최초 온천이라고 주장을 하는 근거는 다름아니라 아래의 노천 욕탕(bath tub) 때문이다. 1748년 식민지 시대에 페어팩스 경을 위한 탐사대의 일원으로 16세의 조지 워싱턴이 여기를 처음 방문한 후로 여러번 온천욕을 위해 다시 찾았고, 당시 웜스프링스(Warm Springs)로 불리던 이 지역은 1776년에 영국의 유명한 온천도시의 이름을 따서 바스(Bath)로 처음 명명되었다. 워싱턴이 마지막으로 1784년에 찾아왔을 때는 우리가 잤던 곳에 그도 머물렀는데, 그렇다고 저 낙엽이 둥둥 떠있는 물에 들어가면 워싱턴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야외 욕조는 1930년대에 공원을 정비하면서 관광용으로 만든 것이다.^^ '워싱턴 욕탕'의 바로 위 언덕에는 슬픈 사랑이야기를 담고 1891년에 만들어진 버클리스프링스 캐슬(Berkeley Springs Castle)도 있는데, 미리 예약을 통해서만 들어가 볼 수 있고 평소에는 일반에게 개방되지 않는다. 이 공원이 좌측 언덕의 여러 곳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이 합쳐져 흐르는 위치라서 옛날부터 개발이 되었는데, 건너편에 보이는 건물들이 가장 오래된 시설이다. 아이들이 발을 담그고 들어간 곳을 노천 족탕이라 부를 수 있겠지만, 위에 언급했던 핫스프링스처럼 정말 자연적으로 뜨거운 물이 흘러오는 정도는 아니고, 그냥 쌀쌀한 가을날씨에 비해서 물온도는 차갑다고 느껴지지 않는 정도였다. 1815년에 만들어진 모습 그대로의 올드로만 배스하우스(Old Roman Bathhouse)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건물 중의 하나라는데, 잠시 들어가서 내부를 구경해봤다. 따로 탈의실과 대형 욕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개인실만 9개가 있어서 지금도 요금을 내면 물을 새로 채우고 정해진 시간만큼 사용을 하는 형태로 운영이 되고 있다. 건물 옆의 안내판에는 이 목욕탕과 윗층의 박물관 및 온천의 수질, 그리고 지금의 웨스트버지니아 지역을 다녀간 조지 워싱턴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Washington Heritage Trail 등에 대해 설명을 해놓았다. 박물관은 11시에 문을 연다고 해서 기다리는 동안에 주변의 상점들을 둘러보았다. 미국의 이런 시골 마을에는 중심가에 꼭 골동품점이 하나씩 있는데, 이 앤틱몰(Antique Mall)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아주 넓은 실내가 온갖 오래된 잡동사니(?)들로 가득 차있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 많은 것들을 모았는지? 손으로 쓴 가격표에 있는 값들을 모두 합친다면 과연 얼마가 될지?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재미있게 구경을 했다. 박물관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판매용인지 전시용인지 헷갈리는 오래된 수영복들과 함께 걸려있던, 욕조에 들어가서 노란 오리를 가지고 놀고있는 조지 워싱턴의 그림이었다. 이 곳의 다른 유명한 인물은 제임스 럼지(James Rumsey)로 한 때 여기 살면서 포토맥 강을 운항하는 증기선을 최초로 만들려고 시도한 엔지니어라 한다. 워싱턴의 추천을 받아 활발히 연구를 하다가 영국으로 건너가 여러 개의 특허를 받았지만, 젊은 나이에 과로로 급사하는 바람에 많이 알려지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박물관을 관통해서 나오니 '미국 최초의 온천'이었던 버클리스프링스 주립공원의 전체 모습이 내려다 보였다. 사진 아래쪽에 무슨 통을 장바구니에 가득 담고 걸어가시는 분이 보이는데... 옆건물 Gentleman's Spring 수도꼭지에서 공짜로 물을 받아가려는 동네 사람들이 각자 물통을 들고 와있는 것이었다. 위키에 따르면 이 마을의 모든 상수도가 같은 샘물을 사용한다고 해서, 호텔 욕조에 몸을 담근 것으로 온천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따로 와서 여기 물을 받아가는 것을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자칭 '온천 애호가'라는 아내 말씀이 호텔의 수돗물이 좀 다른 듯 하지만, 위의 핫스프링스 온천수 만큼의 감동은 별로 없었다고 하니, 아무래도 기회가 되면 다시 방문을 해서 주립공원 내의 공식 온천탕 둘 중의 하나를 이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