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주부의 미국 여행과 생활 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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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서티그 국립해안의 남쪽 친코티그(Chincoteague) 야생보호구역과 톰스코브(Toms Cove) 비지터센터
모두가 미국의 카우보이라 하면 붉은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황야 또는 끝없이 펼쳐진 초원의 목장을 떠올리시겠지만, 미동부 버지니아 외딴 섬마을에는 솔트워터 카우보이(Saltwater Cowboys), 즉 직역하자면 '짠물목동'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유는 카우보이들이 말을 타고 활동하는 무대가 바닷가의 숲과 습지이기 때문이고, 그들이 연례행사로 모는 것은 소가 아니라 거기서 자라는 야생마들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마지막에 다시 하기로 하고, 1년반만에 홀로 다시 방문한 국립해안 공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섬마을 신코티그(Chincoteague)를 지나 애서티그(Assateague) 섬으로 들어가는 다리 중간에 만들어져 있는 간판이다. 특이한 이름들은 원주민 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자는 "beautiful land across the water" 그리고 후자는 "swiftly moving water"라는 뜻을 각각 가지고 있단다. 길이가 60 km나 되는 좁고 기다란 Assateague Island 전체가 국립해안(National Seashore)으로 보호되는데, 북쪽을 작년 봄에 방문했던 여행기는 여기를 클릭해 보실 수 있다. 지도의 아래쪽을 확대해 보면 시리즈 전편에 소개했던 NASA Visitor Center가 육지에 있고, 175번 도로로 바다를 건너면 마을이 만들어져 있는 별도의 섬인 Chincoteague Island를 통과해서 애서티그 국립해안으로 연결되는게 보인다. 별도의 야생보호구역 비지터센터도 만들어져 있는 숲이 먼저 나오고, 천천히 달려서 거기를 통과하고 나면 바닷가의 모래들이 날려와 도로변에 쌓여있는 탁트인 습지를 지나 국립공원청 안내소가 나온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멋진 간판의 톰스코브 비지터센터(Toms Cove Visitor Center)에는 전시관 및 책방에다가 수족관(Aquariums)도 있다는데! 과연...? 대신에 스케이트보드와 자전거, 그리고 화장실은 없단다~^^ 자연보호를 위해 여기 바닷가까지는 상하수도를 만들지 않아서, 도로변에 별도로 간이 푸세식 화장실만 만들어져 있으므로, 혹시 민감하신 분들은 미리 참고하시기 바란다. 겉보기와는 달리 내부는 그냥 평범했지만, 그래도 국립 공원이라고 방문객들은 좀 있었다. 비지터센터는 북쪽 육지에 만들어진 곳이 훨씬 크고 볼게 많았다는 생각을 하며, 그래도 여기는 수족관이 있다고 했으니 찾아 봤는데... 이 바닷물 어항이 '수족관'의 전부였다! 그래도 무려 12종의 해양 동식물을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고...ㅎㅎ 그리고 전세계 여러 곳의 바닷가 모래들을 이렇게 보여주는 것이 나머지의 대부분이었다. 역시 이 전시도 여기보다 훨씬 더 많은 전세계의 모래들을 모아놓고 보여줬던 옛날에 방문했던 다른 비지터센터를 떠올리게 했는데, 산호색 모래 언덕의 그 곳 여행기는 여기를 클릭해 보실 수 있다. 지나온 숲쪽을 보는 방향으로 등대에 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바닷가가 아니라 숲속에 등대가 있는 이유는 여기 등대가 처음 만들어진 1833년경에는 해안선이 저 멀리 숲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왼편 아래에 보인다. 등대는 나가는 길에 직접 가보기로 하고, 여기까지 왔으니 모처럼 겨울바다에서 고독을 좀 씹어보기로 했다. 텅텅 비었고 줄도 없지만 두 대 모두 장애인 구역을 피해서 주차를 했는데, 까만 차는 대신에 통로를 막은 듯 하다.^^ 그래서 살짝 모래 언덕을 넘어서 바닷가로 나가야 했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남쪽으로 길게 뻗은 모래톱을 따라서 아주 넓은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는데, 한여름에는 물놀이를 온 차들로 가득한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여름철에는 첫번째 사진의 간판 지나서 나오는 게이트에서 국립 공원 입장료로 차 한 대당 10불을 내야함) 반대편 북쪽으로 바라보며 그림자 셀카 한 장을 찍었다. 이 방향으로 모래를 밟으며 40 km만 걸어가면 주경계를 지나서 지난 봄에 방문했던 곳이 나온다. 즉 애서티그 섬의 남쪽 1/3은 버지니아, 북쪽 2/3은 메릴랜드에 속하는 것이다. 단단한 모래사장 위에는 게껍질같은 물체가 많이 보였는데, 약간 둥근 모양을 보니 그냥 게(crab)가 아닌 투구게(horseshoe crab)인 것 같기도 했다. "고독은 충분히 씹었으니, 이제 야생마와 등대를 보러 가자~" 야생마를 보려면 Woodland Trail을 하라고 레인저가 알려줬지만, 동물찾기 놀이를 같이 할 사람도 없고 해서 그냥 Beach Rd를 달리다가 건너편으로 말이 보여서 잠깐 세우고 사진 한두장 찍었다. Lighthouse Trail 주차장에는 밴을 개조한 아담한 캠핑카 한 대만 주차되어 있었는데, 트레일 입구에서 마주친 중년 여성이 혼자 몰고 여행을 다니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도 큰 것 필요없고, 딱 저 정도 사이즈면 둘이 집 놔두고 놀러 다니기에는 충분할 듯 한데... 등대와는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약간의 오르막 숲길을 지나서 얕은 언덕 위로 올라가면, 나무들 너머로 우뚝 솟아있는 빨간색과 흰색을 교대로 칠한 등대가 짠하고 나타난다. 지금까지 많은 등대들을 찾아 다니며 깨달은 사실은... 바닷가 지형이 솟아 있으면 등대의 키가 작고, 평평하면 등대가 높다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당연한 사실을 대단한 발견인 척 ㅋㅋ) 1867년에 새로 만들어진 현재의 애서티그 등대(Assateague Light)는 높이가 142피트(43 m)나 되며, 2013년에 150만불을 들여서 최신의 광원과 렌즈 등으로 교체하고 보수하는 작업을 거쳐서, 지금도 매일 밤 불을 밝히는데 22마일(35 km) 거리에서도 빛이 보인단다. 등대지기는 해안경비대(Coast Gurad) 소속으로 저쪽에 잘 지은 숙소가 마련되어 있었고, 여름철 토요일 낮에만 등대 내부가 일반에게 개방되어 꼭대기에 올라가볼 수 있단다. 우드랜드 트레일 쪽으로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야생마들은 눈에 띄지 않아서 들여다 보지는 않았다. 서두에 언급했던 '짠물목동'들 이야기로 여행기를 마무리하자면, 칭코티그 섬의 카우보이들은 매년 여름에 아사티그 섬의 야생마들을 몰아서, 공원 지도에 포니스윔(Pony Swim)이라 표시된 점선을 따라 바다를 건너서 자신들의 마을에 만든 우리로 몰아 넣는 행사를 한다. 행사 주간 동안 퍼래이드와 많은 축제도 함께 열리고, 야생마들이 이렇게 우르르 헤엄쳐 오는 장관을 보기 위해서 관광객들 많이 온다고 하는데, 야생마들 중의 몇 마리를 골라서 길들이거나 경매를 열어서 타지역으로 판매가 되기도 한단다. 이 과정에서 일어났던 실화를 바탕으로 두 어린이 주인공과 '미스티'라는 말의 이야기를 담은 아동소설인 라는 책이 1947년에 출간되어 호평을 받았다. 권위있는 뉴베리 아동문학상 수상에 후속 시리즈도 여러 권 나왔으며 영화로도 제작되어서, 한국에서도 아동용 영어원서로 나름 인지도가 있는 책인 듯 하다. 미국 처음 왔을 때 딸을 위해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매주 수십권씩 빌려와 BookAdventure라는 책읽기 프로그램을 한 적이 떠오르는데, 이 작품은 그림책으로는 나오지 않아서 못 본 모양이다. 참, 2025년 버지니아 친코티그 섬의 포니스윔 행사는 7월 30일로 정해졌고, 마침 정확히 10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애서티그 국립해안의 남쪽 친코티그(Chincoteague) 야생보호구역과 톰스코브(Toms Cove) 비지터센터
모두가 미국의 카우보이라 하면 붉은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황야 또는 끝없이 펼쳐진 초원의 목장을 떠올리시겠지만, 미동부 버지니아 외딴 섬마을에는 솔트워터 카우보이(Saltwater Cowboys), 즉 직역하자면 '짠물목동'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유는 카우보이들이 말을 타고 활동하는 무대가 바닷가의 숲과 습지이기 때문이고, 그들이 연례행사로 모는 것은 소가 아니라 거기서 자라는 야생마들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마지막에 다시 하기로 하고, 1년반만에 홀로 다시 방문한 국립해안 공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섬마을 신코티그(Chincoteague)를 지나 애서티그(Assateague) 섬으로 들어가는 다리 중간에 만들어져 있는 간판이다. 특이한 이름들은 원주민 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자는 "beautiful land across the water" 그리고 후자는 "swiftly moving water"라는 뜻을 각각 가지고 있단다. 길이가 60 km나 되는 좁고 기다란 Assateague Island 전체가 국립해안(National Seashore)으로 보호되는데, 북쪽을 작년 봄에 방문했던 여행기는 여기를 클릭해 보실 수 있다. 지도의 아래쪽을 확대해 보면 시리즈 전편에 소개했던 NASA Visitor Center가 육지에 있고, 175번 도로로 바다를 건너면 마을이 만들어져 있는 별도의 섬인 Chincoteague Island를 통과해서 애서티그 국립해안으로 연결되는게 보인다. 별도의 야생보호구역 비지터센터도 만들어져 있는 숲이 먼저 나오고, 천천히 달려서 거기를 통과하고 나면 바닷가의 모래들이 날려와 도로변에 쌓여있는 탁트인 습지를 지나 국립공원청 안내소가 나온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멋진 간판의 톰스코브 비지터센터(Toms Cove Visitor Center)에는 전시관 및 책방에다가 수족관(Aquariums)도 있다는데! 과연...? 대신에 스케이트보드와 자전거, 그리고 화장실은 없단다~^^ 자연보호를 위해 여기 바닷가까지는 상하수도를 만들지 않아서, 도로변에 별도로 간이 푸세식 화장실만 만들어져 있으므로, 혹시 민감하신 분들은 미리 참고하시기 바란다. 겉보기와는 달리 내부는 그냥 평범했지만, 그래도 국립 공원이라고 방문객들은 좀 있었다. 비지터센터는 북쪽 육지에 만들어진 곳이 훨씬 크고 볼게 많았다는 생각을 하며, 그래도 여기는 수족관이 있다고 했으니 찾아 봤는데... 이 바닷물 어항이 '수족관'의 전부였다! 그래도 무려 12종의 해양 동식물을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고...ㅎㅎ 그리고 전세계 여러 곳의 바닷가 모래들을 이렇게 보여주는 것이 나머지의 대부분이었다. 역시 이 전시도 여기보다 훨씬 더 많은 전세계의 모래들을 모아놓고 보여줬던 옛날에 방문했던 다른 비지터센터를 떠올리게 했는데, 산호색 모래 언덕의 그 곳 여행기는 여기를 클릭해 보실 수 있다. 지나온 숲쪽을 보는 방향으로 등대에 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바닷가가 아니라 숲속에 등대가 있는 이유는 여기 등대가 처음 만들어진 1833년경에는 해안선이 저 멀리 숲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왼편 아래에 보인다. 등대는 나가는 길에 직접 가보기로 하고, 여기까지 왔으니 모처럼 겨울바다에서 고독을 좀 씹어보기로 했다. 텅텅 비었고 줄도 없지만 두 대 모두 장애인 구역을 피해서 주차를 했는데, 까만 차는 대신에 통로를 막은 듯 하다.^^ 그래서 살짝 모래 언덕을 넘어서 바닷가로 나가야 했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남쪽으로 길게 뻗은 모래톱을 따라서 아주 넓은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는데, 한여름에는 물놀이를 온 차들로 가득한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여름철에는 첫번째 사진의 간판 지나서 나오는 게이트에서 국립 공원 입장료로 차 한 대당 10불을 내야함) 반대편 북쪽으로 바라보며 그림자 셀카 한 장을 찍었다. 이 방향으로 모래를 밟으며 40 km만 걸어가면 주경계를 지나서 지난 봄에 방문했던 곳이 나온다. 즉 애서티그 섬의 남쪽 1/3은 버지니아, 북쪽 2/3은 메릴랜드에 속하는 것이다. 단단한 모래사장 위에는 게껍질같은 물체가 많이 보였는데, 약간 둥근 모양을 보니 그냥 게(crab)가 아닌 투구게(horseshoe crab)인 것 같기도 했다. "고독은 충분히 씹었으니, 이제 야생마와 등대를 보러 가자~" 야생마를 보려면 Woodland Trail을 하라고 레인저가 알려줬지만, 동물찾기 놀이를 같이 할 사람도 없고 해서 그냥 Beach Rd를 달리다가 건너편으로 말이 보여서 잠깐 세우고 사진 한두장 찍었다. Lighthouse Trail 주차장에는 밴을 개조한 아담한 캠핑카 한 대만 주차되어 있었는데, 트레일 입구에서 마주친 중년 여성이 혼자 몰고 여행을 다니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도 큰 것 필요없고, 딱 저 정도 사이즈면 둘이 집 놔두고 놀러 다니기에는 충분할 듯 한데... 등대와는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약간의 오르막 숲길을 지나서 얕은 언덕 위로 올라가면, 나무들 너머로 우뚝 솟아있는 빨간색과 흰색을 교대로 칠한 등대가 짠하고 나타난다. 지금까지 많은 등대들을 찾아 다니며 깨달은 사실은... 바닷가 지형이 솟아 있으면 등대의 키가 작고, 평평하면 등대가 높다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당연한 사실을 대단한 발견인 척 ㅋㅋ) 1867년에 새로 만들어진 현재의 애서티그 등대(Assateague Light)는 높이가 142피트(43 m)나 되며, 2013년에 150만불을 들여서 최신의 광원과 렌즈 등으로 교체하고 보수하는 작업을 거쳐서, 지금도 매일 밤 불을 밝히는데 22마일(35 km) 거리에서도 빛이 보인단다. 등대지기는 해안경비대(Coast Gurad) 소속으로 저쪽에 잘 지은 숙소가 마련되어 있었고, 여름철 토요일 낮에만 등대 내부가 일반에게 개방되어 꼭대기에 올라가볼 수 있단다. 우드랜드 트레일 쪽으로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야생마들은 눈에 띄지 않아서 들여다 보지는 않았다. 서두에 언급했던 '짠물목동'들 이야기로 여행기를 마무리하자면, 칭코티그 섬의 카우보이들은 매년 여름에 아사티그 섬의 야생마들을 몰아서, 공원 지도에 포니스윔(Pony Swim)이라 표시된 점선을 따라 바다를 건너서 자신들의 마을에 만든 우리로 몰아 넣는 행사를 한다. 행사 주간 동안 퍼래이드와 많은 축제도 함께 열리고, 야생마들이 이렇게 우르르 헤엄쳐 오는 장관을 보기 위해서 관광객들 많이 온다고 하는데, 야생마들 중의 몇 마리를 골라서 길들이거나 경매를 열어서 타지역으로 판매가 되기도 한단다. 이 과정에서 일어났던 실화를 바탕으로 두 어린이 주인공과 '미스티'라는 말의 이야기를 담은 아동소설인 라는 책이 1947년에 출간되어 호평을 받았다. 권위있는 뉴베리 아동문학상 수상에 후속 시리즈도 여러 권 나왔으며 영화로도 제작되어서, 한국에서도 아동용 영어원서로 나름 인지도가 있는 책인 듯 하다. 미국 처음 왔을 때 딸을 위해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매주 수십권씩 빌려와 BookAdventure라는 책읽기 프로그램을 한 적이 떠오르는데, 이 작품은 그림책으로는 나오지 않아서 못 본 모양이다. 참, 2025년 버지니아 친코티그 섬의 포니스윔 행사는 7월 30일로 정해졌고, 마침 정확히 10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덜레스 국제공항 남동쪽에 있는 페어팩스(Fairfax) 카운티에서 관리하는 설리 사적지(Sully Historic Site)
한인타운 센터빌(Centreville)부터 덜레스 국제공항 인터체인지를 지나 우리 동네 스털링(Sterling)까지를 남북으로 잇는 버지니아 28번 구간은 신호가 없는 넓은 고속도로이며 이 구간을 따로 '설리 로드(Sully Road)'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 이유는 남쪽에서 올라오다 보면 공항 못 미쳐서 오른편 바로 옆으로 해당 이름의 사적지가 나오기 때문인데, 3년 동안 표지판만 보고 지나가며 궁금해 하다가 마침내 지난 토요일 오후에 센터빌을 다녀오는 길에 잠깐 들러서 어떤 곳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한겨울의 짧은 해가 낮게 떠서 정통으로 역광인 정문 사진을 보여드리면 설리 히스토릭 사이트(Sully Historic Site)라는 이름 밑에 1794년에 만들어졌고, 국가등록사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도 지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지터센터는 주말에만 문을 열기 때문인지, 프랑스 국기를 90도 회전시킨 듯한 촌스런 '오픈 깃발'까지 일부러 걸어 놓았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보수중인지 어수선한 내부에는 다른 전시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임시로 가져다 놓은 듯한 테이블 위로 노예해방(Emancipation) 전후로 여기 농장에서 일했던 흑인들의 삶에 대한 포스터만 세워져 있었다. 그래서 이 곳을 누가 만들었는지 등에 대한 안내판은 다시 비지터센터 밖으로 나가서 찾아야 했다. 리차드 리(Richard Bland Lee)는 유명한 로버트 리(Robert Edward Lee)의 삼촌뻘로 북버지니아를 대표하는 최초의 연방 하원의원을 역임했고 이런저런 활동을 했다는 내용이다. 그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이 영지를 프랑스의 "Chateau de Sully" 즉 쉴리쉬르루아르 성(Sully-sur-Loire Castle)에서 따와 설리(Sully)로 이름지었단다. 넓은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면 먼저 숲쪽으로 노예들이 살던 당시의 Slave Cabin이 먼저 나오는데, 2001년에 복원한 건물이다. 그리고 반대편 목책 너머로는 넓은 잔디밭과 함께 설리 플랜테이션(Sully Plantation)의 비교적 소박한 건물들이 보인다. 이 때 남쪽에서부터 큰 소리가 들려서 하늘을 올려다 보니... 덜레스 국제공항(Dulles International Airport)에 곧 착륙하는 에어차이나 여객기가 보였다. 원래 이 땅도 1958년에 공항 건설을 위해 정부가 인수를 했다가, 사적지로 지정되면서 다시 카운티로 이관된 것이라 한다. 여기서 고속도로 바로 건너편은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 별관에 해당하는 Steven F. Udvar-Hazy Center로 여기를 클릭해서 방문기를 보실 수 있다. 전체 모습에서 제일 왼쪽에 보이던 이 단칸방은 원래 여기에 있던 것은 아니고, 인근 지역에서 보존을 위해 이리로 옮겨온 약 200년 전의 학교 건물이란다~ 마당의 커다란 고목이 최근에 죽었는지 토막토막 잘라놓았는데, 통나무들을 치우지 않고 이렇게 일부러 놓아둔 것인지 궁금했다. 설리 사적지에서 가장 특이한게 이 1802년에 완공된 Stone Dairy로 돌로 두껍게 벽을 만들어 우유 등을 차갑게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당시 흔한 방법인 벽돌이 아니라 자연석을 다듬어 이렇게 쌓아서 만든 것은 굉장히 특이한 경우라 한다. 사실 이 1794년에 완공된 본채는 지금 위기주부가 사는 미동부 주택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가 않다. 특히 위아래로 여닫는 투명한 창문과 그 좌우로 달린 덧문의 디자인은 그냥 완전히 똑같다고 보면 된다.^^ 내부도 당시의 모습 그대로 꾸며져 있다고 하는데, 여름철 주말에만 진행되는 유료 가이드투어로 구경이 가능하단다. 집 뒤쪽으로는 공원 지정 후에 만들어진 기념정원이 있는데, 겨울이라서 그런지 아주 삭막한 모습이다... 여기도 처음에는 담배를 키우는 플랜테이션이었지만, 리 가족이 인수한 후에는 여러 채소와 과일 나무들을 주로 키웠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조성했다고 적혀있다. 덜레스는 뉴왁(Newark) 공항과 함께 유나이티드 항공의 미동부 허브라서, 가장 많이 볼 수 있고 또 자주 이용하게 되는 여객기이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가족 묘지는 원래 왼쪽 동판이 있는 위치에 리 부부의 일찍 죽은 아기들이 묻힌 장소만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사적지로 조성된 후에 후손들이 유해를 이장해서 새로 만든 것이라 한다. 리차드 리 부부가 원래 묻혔던 워싱턴DC의 의회 묘지의 석판들도 이렇게 그대로 옮겨왔다. 자신이 살던 집의 뒷마당으로 홈커밍을 한 것은 좋지만 잠귀가 밝다면 좀 시끄러울 수 있는게... 바로 뒤쪽에 이렇게 28번 고속도로가 넓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사진을 찍는다고 고속도로 바로 옆까지 나가서 한참을 서서 두리번 거렸기 때문에, 운전해서 지나간 사람들 중에서 쌩쌩 달리는 길 옆으로 왠 수상한 놈이 서있던 공원이 어딘지 궁금해서, 집에 가서 지도를 찾아보고 또 직접 방문하는 위기주부같은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동네 사적지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나? 없으면 말고..ㅎㅎ)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덜레스 국제공항 남동쪽에 있는 페어팩스(Fairfax) 카운티에서 관리하는 설리 사적지(Sully Historic Site)
한인타운 센터빌(Centreville)부터 덜레스 국제공항 인터체인지를 지나 우리 동네 스털링(Sterling)까지를 남북으로 잇는 버지니아 28번 구간은 신호가 없는 넓은 고속도로이며 이 구간을 따로 '설리 로드(Sully Road)'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 이유는 남쪽에서 올라오다 보면 공항 못 미쳐서 오른편 바로 옆으로 해당 이름의 사적지가 나오기 때문인데, 3년 동안 표지판만 보고 지나가며 궁금해 하다가 마침내 지난 토요일 오후에 센터빌을 다녀오는 길에 잠깐 들러서 어떤 곳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한겨울의 짧은 해가 낮게 떠서 정통으로 역광인 정문 사진을 보여드리면 설리 히스토릭 사이트(Sully Historic Site)라는 이름 밑에 1794년에 만들어졌고, 국가등록사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도 지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지터센터는 주말에만 문을 열기 때문인지, 프랑스 국기를 90도 회전시킨 듯한 촌스런 '오픈 깃발'까지 일부러 걸어 놓았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보수중인지 어수선한 내부에는 다른 전시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임시로 가져다 놓은 듯한 테이블 위로 노예해방(Emancipation) 전후로 여기 농장에서 일했던 흑인들의 삶에 대한 포스터만 세워져 있었다. 그래서 이 곳을 누가 만들었는지 등에 대한 안내판은 다시 비지터센터 밖으로 나가서 찾아야 했다. 리차드 리(Richard Bland Lee)는 유명한 로버트 리(Robert Edward Lee)의 삼촌뻘로 북버지니아를 대표하는 최초의 연방 하원의원을 역임했고 이런저런 활동을 했다는 내용이다. 그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이 영지를 프랑스의 "Chateau de Sully" 즉 쉴리쉬르루아르 성(Sully-sur-Loire Castle)에서 따와 설리(Sully)로 이름지었단다. 넓은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면 먼저 숲쪽으로 노예들이 살던 당시의 Slave Cabin이 먼저 나오는데, 2001년에 복원한 건물이다. 그리고 반대편 목책 너머로는 넓은 잔디밭과 함께 설리 플랜테이션(Sully Plantation)의 비교적 소박한 건물들이 보인다. 이 때 남쪽에서부터 큰 소리가 들려서 하늘을 올려다 보니... 덜레스 국제공항(Dulles International Airport)에 곧 착륙하는 에어차이나 여객기가 보였다. 원래 이 땅도 1958년에 공항 건설을 위해 정부가 인수를 했다가, 사적지로 지정되면서 다시 카운티로 이관된 것이라 한다. 여기서 고속도로 바로 건너편은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 별관에 해당하는 Steven F. Udvar-Hazy Center로 여기를 클릭해서 방문기를 보실 수 있다. 전체 모습에서 제일 왼쪽에 보이던 이 단칸방은 원래 여기에 있던 것은 아니고, 인근 지역에서 보존을 위해 이리로 옮겨온 약 200년 전의 학교 건물이란다~ 마당의 커다란 고목이 최근에 죽었는지 토막토막 잘라놓았는데, 통나무들을 치우지 않고 이렇게 일부러 놓아둔 것인지 궁금했다. 설리 사적지에서 가장 특이한게 이 1802년에 완공된 Stone Dairy로 돌로 두껍게 벽을 만들어 우유 등을 차갑게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당시 흔한 방법인 벽돌이 아니라 자연석을 다듬어 이렇게 쌓아서 만든 것은 굉장히 특이한 경우라 한다. 사실 이 1794년에 완공된 본채는 지금 위기주부가 사는 미동부 주택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가 않다. 특히 위아래로 여닫는 투명한 창문과 그 좌우로 달린 덧문의 디자인은 그냥 완전히 똑같다고 보면 된다.^^ 내부도 당시의 모습 그대로 꾸며져 있다고 하는데, 여름철 주말에만 진행되는 유료 가이드투어로 구경이 가능하단다. 집 뒤쪽으로는 공원 지정 후에 만들어진 기념정원이 있는데, 겨울이라서 그런지 아주 삭막한 모습이다... 여기도 처음에는 담배를 키우는 플랜테이션이었지만, 리 가족이 인수한 후에는 여러 채소와 과일 나무들을 주로 키웠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조성했다고 적혀있다. 덜레스는 뉴왁(Newark) 공항과 함께 유나이티드 항공의 미동부 허브라서, 가장 많이 볼 수 있고 또 자주 이용하게 되는 여객기이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가족 묘지는 원래 왼쪽 동판이 있는 위치에 리 부부의 일찍 죽은 아기들이 묻힌 장소만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사적지로 조성된 후에 후손들이 유해를 이장해서 새로 만든 것이라 한다. 리차드 리 부부가 원래 묻혔던 워싱턴DC의 의회 묘지의 석판들도 이렇게 그대로 옮겨왔다. 자신이 살던 집의 뒷마당으로 홈커밍을 한 것은 좋지만 잠귀가 밝다면 좀 시끄러울 수 있는게... 바로 뒤쪽에 이렇게 28번 고속도로가 넓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사진을 찍는다고 고속도로 바로 옆까지 나가서 한참을 서서 두리번 거렸기 때문에, 운전해서 지나간 사람들 중에서 쌩쌩 달리는 길 옆으로 왠 수상한 놈이 서있던 공원이 어딘지 궁금해서, 집에 가서 지도를 찾아보고 또 직접 방문하는 위기주부같은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동네 사적지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나? 없으면 말고..ㅎㅎ)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미국 제34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대통령의 집과 농장이 보존된 국립사적지
3탄 동쪽 듣보잡 여행지 드라이브를 다녀온 지 일주일만에 다시 4탄을 또 다녀왔다. 아래와 같이 집에서 북동쪽으로 크게 시계방향으로 한바퀴를 돌았는데, 지도에는 7시간반 정도 소요된다고 표시되어 있지만, 마지막에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심한 금요일 밤의 주말정체를 겪는 바람에 결국은 또 9시간 이상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 했다. 위기주부는 쉬는 날에 서울-부산 왕복에 해당하는 9시간짜리 드라이브 정도는 해줘야 피로가 풀리는 듯해서, 이건 취미를 넘어서 약간의 중독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ㅎㅎ 첫번째로 방문한 국립사적지의 이름이 제일 왼편에 씌여있는데, 이 곳의 이야기는 아래의 영화장면으로 시작한다. 2008년에 개봉했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4탄 은 동서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1957년이 배경으로, 영화 초반부에 소련 KGB에 납치되어 51구역에 끌려온 존스 박사의 "I like Ike"라는 대사가 한국 개봉관에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자막으로 번역되었다. (여기나 사진을 클릭해서 영상으로 보실 수 있음) '아이크(Ike)'는 바로 1953-61년에 재직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애칭으로, 냉전시대에 반공을 기치로 당선되었던 그의 대통령 선거 구호가 바로 'I Like Ike'였다. 그의 간단한 이력은 워싱턴DC에 있는 아이젠하워 기념물(Dwight D. Eisenhower Memorial) 방문기에서 소개했으므로 넘어가고, 이제 펜실베니아에 있는 그가 평생에 유일하게 소유했던 전원주택(?)을 방문해보자~ 아이젠하워 국립사적지(Eisenhower National Historic Site)는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과 붙어있어서 함께 관리되는데, 위기주부가 게티스버그를 방문했던 2022년 봄까지는 비지터센터에서 셔틀버스를 타야만 방문이 가능했다. 하지만 최근에 큰 주차장을 만들고 여기 60년대 경비초소가 남아있는 후문쪽과 연결해서 이제는 차를 몰고 직접 들어갈 수 있다. 비포장의 일방통행로가 지금도 소를 키우고 있는 Farm 2 구역을 지나는데, 옛날에 농장 책임자 가족이 살던 '목동의 집(Herdsman's Home)'이 현재 공원본부로 이용되고 있다. 안내판 그림에 노란 별로 표시된 일반 주차장에 역시 1등으로 주차를 하고, 왼편의 아이젠하워 농장(Eisenhower Farm)이라 표시된 구역을 걸어서 차례로 둘러본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5성 장군으로 연합군을 지휘했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아이젠하워는 평생 군대에서 제공되는 숙소에서 살았기 때문에, 1948년 컬럼비아 대학교 총장이 된 후에야 집을 물색하기 시작해서 1950년에 구입한 이 집과 농장이 그들 부부가 소유한 처음이자 마지막 부동산이란다. 현재로 약 50만불에 해당하는 당시 4만불의 구입가에는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낡아빠진 건물들과 함께 닭 600마리 및 소 25마리도 포함되었다고...^^ 정해진 시간의 무료 내부 가이드투어에 참가할 수도 있는데, 위기주부는 바쁜 드라이브 일정상 그냥 아침 일찍 외부만 둘러보는 것으로 처음부터 계획을 세웠다. 아이젠하워가 1951년에 NATO 총사령관이 되어 유럽으로 다시 떠나서 방치되다가, 1953년에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후부터 리노베이션이 시작되어서 1955년에 대부분의 건물이 새로 완공되었는데, 그 비용이 당시로 25만불에 달했다고 한다. 집앞 잔디밭에 헬기 착륙장(Helicopter Landing Pad)이 있었는데, 안내판의 사진은 1960년에 프랑스의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대통령과 10분 거리인 캠프 데이비드(Camp David)에서 정상회담을 한 후에 보다 친밀한 대화를 위해 자신의 집으로 함께 헬기를 타고 온 모습이다. 옛날 차고를 개조했다는 이 건물은 이름이 게스트하우스인데, 그렇다고 드골 대통령같은 '손님'을 여기 재운 것은 아니고... 캠프 데이비드 이름의 바로 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손자 데이비드가 개인 숙소로 주로 이용을 했단다. 농장의 정문쪽에 공원 간판이 세워져 있고 커다란 헛간(Barn)이 먼저 나오는데, 그 앞으로 돌출된 작은 건물이 대통령 경호요원들의 사무실로 이용된 곳이라고 한다. 그 내부에는 60년대 통신설비와 CCTV 등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어서 오픈 시간에는 볼 수 있단다. 저 쪽으로는 아이젠하워가 좋아한 스키트(Skeet) 사격 연습장이 만들어져 있다지만 끝까지 걸어가보지는 않았고, 부근에 높은 지대가 전혀 없는 특성상, 주변 감시를 위해 높은 망루가 입구쪽에 만들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퇴임 후에 계속 여기 살다가 생전인 1967년에 국립공원청에 기증을 했고, 2년 후에 그가 사망하자 바로 국립사적지로 지정이 되었다. 하지만 아내 Mamie Eisenhower가 계속 여기서 살기를 원했기에, 1979년에 그녀가 죽은 이듬해인 1980년부터 일반에 공개되었다. 이제 헛간에서 집쪽으로 돌출된 부분에 만들어진 차고(Garage)로 가보자. 차고 역시 이른 시간이라 문이 닫혀 있었지만, 다행히 유리창이 있어서 내부를 들여다 보고 겨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이 크라이슬러에서 특별 제작 후 개조된 1955 Crown Imperial Limousine은 아이젠하워가 공식적인 이동에 가장 많이 이용한 차량이라 한다. 그 옆의 가운데는 퇴임 후 직접 몰고 동네를 다녔다는 뷰익 승용차가 있었고, 지금은 사라진 자동차 회사인 크로슬리(Crosley) 차량을 개조한 이 오픈카는 집에 오는 손님들을 태우고 농장을 천천히 돌아보는 용도로 쓰였다는데, 흑백 사진 속 뒷자리에 아이젠하워와 나란히 앉아서 하얀 모자에 시가를 물고 있는 사람은 윈스턴 처칠이다. 대통령 아이젠하워가 집에 있을 때는 성조기가 게양되었고, 퇴임 후에는 다시 5성 장군 깃발이 펄럭였다는 깃대의 옆으로는 퍼팅그린이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하얀 펜스 너머로 멀리 점점이 보이는 까만 것들은 이 농장에서 개량된 블랙 앵거스 품종의 소들로, 캔사스 시골에서 목장일을 하며 자란 아이젠하워는 여기서 소를 키우는 것에 진심이었다고 한다. 대통령 문양이 새겨진 종이 뒷마당으로 내려오는 양쪽 계단에 하나씩 설치가 되어 있었는데, 저 손잡이를 잡아 흔들어 종소리를 들어보고 싶은 것을 참느라 고생했었다는...ㅎㅎ 마지막으로 온실과 그 옆으로 정원이 있는데, 겨울철이라 그런지 거의 관리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대통령 재임시에도 여기서 부부가 함께 키운 꽃으로 집을 장식하고 채소를 식탁에 올렸는데, 가끔은 꽃과 채소를 백악관까지 헬기로 공수해서 자랑을 하기도 했단다. 저 파란색 차는 아침부터 계속 세워져 있으니까 직원이 안에 있다는 말인데, 똑똑 문 두드려서 안에 좀 보여달라 할걸 그랬나? 나중에 계절이 좋을 때 아내와 다시 방문해서 소련 서기장 흐루쇼프(Khrushchev , 흐루시초프)와 앉아서 담소를 나눴다는 거실 등도 둘러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차를 몰고 출구로 나갔다. 아이젠하워 국립사적지를 나가서 다시 15번 국도를 타는 길은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을 관통하기 때문에 도로 옆으로 이런 동상과 대포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2022년 봄에 위기주부가 자동차로 게티스버그를 둘러볼 때 빠트린 구역들을 한 번 찾아가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계획대로 움직여도 빠듯한 드라이브라는 것을 알기에 바로 1시간 거리의 다음 목적지로 이동을 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